백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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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백매순은 588년 백제 위덕왕 시기에 일본에 파견된 노반박사(鑪盤博士)이다.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백제 국사 혜총을 비롯한 기술자들과 함께 소가노 우마코의 요청에 따라 사찰 건설에 참여했다. 백매순을 포함한 백제 기술자들은 이란계 호인(胡人)일 가능성이 제기되며, 일본 최초의 불교 사찰인 아스카데라(법흥사) 창건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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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매순 - [인물]에 관한 문서 | |
---|---|
인물 정보 | |
이름 | 백매순 |
한자 | 白昧淳 |
한글 | 백매순 |
로마자 표기 | Baek Maesun |
매큔-라이샤워 표기 | Paek Maesun |
기본 정보 | |
다른 이름 | 백미순 (白味淳) |
국적 | 백제 |
직업 | 노반박사 |
관직 | 노반박사 |
주요 활동 시기 | 백제 위덕왕 시대 |
관등 | |
관등 정보 | 백제 16관등 중 7번째 등급 |
2. 생애
588년(백제 위덕왕 35년) 백매순은 노반박사(鑪盤博士)로서 은솔(恩率) 수신(首信), 덕솔(德率) 개문(蓋文), 나솔(那率) 복부미신(福富味身) 등 수신사(修信使) 일행과 함께 사공(寺工), 와박사(瓦博士), 화공(畵工), 서인(書人) 양고(陽古)와 함께 왜국으로 건너갔다.[11]
백매순은 일본 최초의 불교 사찰이자 소가 씨(蘇我 氏)의 씨사(氏寺)인 나라시 아스카데라(법흥사, 비조사, 원흥사) 창건에 참여하였다. 『원흥사연기(元興寺緣起)』 노반명(露盤銘)에는 '누반사 자매순'으로 기록되어 있다.[11]
노반(鑪盤)은 노반(露盤) 또는 누반(鏤盤)이라고도 하며, 불탑의 상륜부(相輪部)를 가리킨다. 노반박사(鑪盤博士)는 탑 건립을 담당하는 주조 기술자였다.[11]
『일본서기』에 따르면, 백제는 588년에 당시 일본의 대신(大臣)이자 숭불론자였던 소가씨(蘇我氏) 소가노 우마코(蘇我馬子, ? ~ 626년)의 요청으로 백제국사(百濟國師) 혜총(惠總), 승려 영근(令斤), 혜식(惠寔)을 비롯하여 사공(寺工) 태량미태(太良未太)와 문고고자(文賈古子), 노반박사 장덕(將德) 백매순, 와박사(瓦博士) 마나문노(麻奈文奴), 양귀문(陽貴文), 능귀문(㥄貴文), 석마제미(昔麻帝彌), 화공(畫工) 백가(白加) 등을 함께 파견하였다고 한다.
이토 요시노리, 이모토 에이이치, 스즈키 야스히토 등은 복원된 인명의 원어에 차이가 있지만, 일본에 파견된 사공 다라미타, 문가고자, 노반 박사 백매순, 와박사 마내문노, 양귀문, 㥄귀문, 석마제미, 화공 백가, 양고 등의 장인들이 모두 이란계(페르시아) 호인(胡人)이라는 점에는 의견이 일치한다.[9][10][2][5]
백제가 중국남북조 시대와 밀접하게 교류했다는 사실은 인도 승려 마라난타가 동진으로부터 불교를 전래한 것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백제는 고구려, 신라와 비교해도 중국남북조 시대와 교섭이 활발했고, 황해를 건너면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중국남북조 시대로부터의 도래인도 많았다.[7][6]
3. 평가
3. 1. 백제 기술자들의 이란계 기원설
588년 (백제 위덕왕 35년)에 백매순은 노반 박사로서 은솔 수신, 덕솔 수신, 덕솔 개문, 나율 복부미신 등 수신사 일행과 함께 사공, 와박사, 화공, 서인 양고와 함께 왜국으로 갔다.[1] 노반(또는 루반)은 불탑의 상륜부를 뜻하며, 노반 박사는 탑 건립을 담당하는 주조 기술자이다.[4]
일본서기에 따르면, 588년 백제는 소가 가 우마코의 요청으로 국사 혜총과 승려 영근, 혜식, 사공 다라미타, 문가고자, 노반 박사 백매순, 와박사 마내문노, 양귀문, 㥄귀문, 석마제미, 화공 백가 등을 파견했다.[1]
이토 요시노리, 이모토 에이이치, 스즈키 야스히토 등은 복원된 인명의 원어에 차이가 있지만, 일본에 파견된 다라미타, 문가고자, 백매순, 마내문노, 양귀문, 㥄귀문, 석마제미, 백가, 양고 등은 모두 이란계 (페르시아) 호인이라는 점에 의견이 일치한다.[9][10][2][5]
백제는 마라난타에 의해 동진으로부터 불교가 전래된 것에서 알 수 있듯 중국남북조 시대와 밀접하게 교류했다. 고구려, 신라보다 중국남북조 시대와 교섭이 활발했고, 황해를 건너면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중국남북조 시대로부터의 도래인도 많았다.[7][6] 『양서』에는 중국인이 신라인과 대화할 때 백제인을 통역으로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7] 중국남북조 시대에는 이란계 (페르시아) 호인, 아랍인 상인들이 일찍부터 진출해 있었고,[8] 호코지 조영에 참여한 백제 장인들도 이란계 호인이거나 그 자손으로 추정된다.[9][10][2]
참조
[1]
서적
巻第21崇峻天皇紀
中央公論新社
587
[2]
서적
太良未太
朝日新聞出版
1994-11-01
[3]
서적
ゾロアスター教論集
平河出版社
2001-10-01
[4]
서적
日本書紀II
中央公論新社
[5]
뉴스
欽明朝に来日した百済の医師王有稜陀について
日本医史学会
1983-10
[6]
서적
百済仏教史序説
吉川弘文館
1978-10-01
[7]
서적
「鳥羽之表」事件の背景
愛知県立大学
2008
[8]
서적
正倉院 : 流沙と潮の香の秘密をさぐる
瑠璃書房
1980
[9]
서적
ペルシア文化渡来考―シルクロードから飛鳥へ
岩波書店
1980
[10]
서적
古代の日本とイラン
学生社
1980-01-01
[11]
웹인용
백매순(白昧淳)
http://encykorea.aks[...]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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