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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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순흥면은 경상북도 영주시의 면으로, 고려 시대에는 흥주, 조선 시대에는 순흥도호부로 불렸다. 고려 유신 안향의 고향이며 소수서원이 위치한 곳이다. 조선 세조 때 단종 복위 운동 실패로 지역 주민들이 희생되는 사건이 있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영주군에 편입되었다. 1980년 영주읍이 영주시로 승격되면서 영풍군 순흥면이 되었고, 1995년 영주시와 영풍군이 통합되어 현재의 영주시 순흥면이 되었다. 순흥은 '번영을 따르다'라는 의미를 가지며, 19세기 중반에는 한국 최초의 외국 광산(은광)이 위치하기도 했다. 현재 내죽리 등 여러 법정리와 행정리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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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흥면 - [지명]에 관한 문서 | |
---|---|
개요 | |
![]() | |
한글 표기 | 순흥면 |
한자 표기 | 順興面 |
로마자 표기 | Sunheung-myeon |
뜻 | 번영을 따르는 면 |
면적 | 54.35 sqkm |
다른 뜻 | 순흥 (1914년까지 존재한 군) |
행정 구역 | |
광역시/도 | 경상북도 |
시/군/구 | 영주시 |
면적 | 54.4 |
세대 | 1,101 |
세대 조사 기준 | 2015년 12월 31일 |
인구 | 1,988 |
인구 조사 기준 | 2022년 3월 |
행정리 수 | 18 |
법정리 수 | 8 |
반 수 | 56 |
면사무소 주소 | 순흥면 순흥로 67 (읍내리) |
홈페이지 | 순흥면 행정복지센터 |
2. 역사
순흥면은 흥주 도호부가 있던 곳으로, 고려의 유신 안향의 고향이며 소수서원이 있는 곳이다. 조선시대에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순흥부사 이보흠이 역적으로 몰려 죽음을 당하였다. 이때 순흥읍내의 남자들은 젖먹이까지 남김없이 죽임을 당해 30리 일대에 피로 물들었다고 한다. 폐읍이 되었다가 230년 후에야 예전의 독자적인 행정구역으로 복위되었다.[1]
순흥의 행정 구역 변천은 다음과 같다.
시대 | 명칭 | 비고 |
---|---|---|
고구려 | 급벌산군(及伐山郡) | |
통일신라 | 급산군(及山郡) | |
고려 | 흥주(興州) | 성종 때 순정(順政)으로 개칭, 충목왕 4년에 순흥부(順興府)로 승격 |
조선 | 순흥도호부(順興都護府) | 태종 14년에 설치, 세조 3년에 폐지, 숙종 10년에 복구, 고종 34년에 순흥군(順興郡) 설치 |
일제강점기 | 영주군 순흥면 | 1914년 부군면 통폐합으로 순흥군, 풍기군, 영주군이 병합 |
대한민국 | 영풍군 순흥면 | 1980년 영주읍이 영주시로 승격, 1995년 영주시와 영풍군 통합 |
2. 1. 고대
고구려 시대에는 급벌산군(及伐山郡)으로 불렸다.[1] 통일신라 시대에는 급산군(及山郡)으로 불렸다.[1]2. 2. 고려 시대
고려 시대에는 흥주(興州)로 개칭되었다.[1] 성종 때 순정(順政)으로 개칭되었다.[1] 충목왕 4년(1348년)에 순흥부(順興府)로 승격되었다.[1] 순흥은 고려의 유신 안향의 고향이다.[1]2. 3. 조선 시대
조선 태종 14년(1413년)에 순흥도호부(順興都護府)가 설치되었다.[1] 세조 3년(1457년) 단종 복위 운동 실패로 순흥도호부가 폐지되고, 지역 주민들이 희생당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때 순흥읍내의 남자들은 젖먹이까지 남김없이 죽임을 당해 30리 일대에 피로 물들었다고 한다.[1] 폐읍이 되었다가 230년 후인 숙종 10년(1683년)에 순흥도호부로 복위되었다.[1] 고종 34년(1895년)에 순흥군(順興郡)이 설치되었다.[1]조선시대에 소수서원이 건립되었다. 안향은 순흥 출신이다.
조선 왕조 말기에 순흥은 부로 태백산 일대의 평원과 내륙 지역을 관할했다. 순흥의 산들은 한국 최초의 외국 광산 부지였으며, 1850년대 초 몇 달 동안 운영된 후 서울의 왕실에 의해 허가가 취소된 은광이었다.
2. 4. 일제강점기
1914년 4월 1일 부군면 통폐합으로 순흥군, 풍기군, 영주군이 병합되어 영주군 순흥면이 되었다.[1]2. 5. 대한민국
1980년 4월 1일 영주읍이 영주시로 승격되면서 영풍군 순흥면이 되었다.[1]1995년 1월 1일 영주시와 영풍군이 통합되어 영주시 순흥면이 되었다.[1]
3. 명칭
순흥(Sunheung)은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을 로마자 표기로 표기한 "Sunhŭng"의 영어화이다. 대한민국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로마자 표기법은 "Sunheung"이다. 19세기 자료에서는 순흥이 '''Sioun-heng-fu'''로 나타나는데,[1] 이는 한국 지명을 프랑스어로 음역하고, 순흥이 군 또는 지휘부의 소재지임을 중국어 발음으로 표기한 것이다. 이름의 문자적 의미는 "번영을 따르다", "복종하다" 또는 "성공을 따르다"이지만, 순흥은 또한 영향력 있는 한국 유학자 안향을 포함한 이 지역의 한국 씨족의 본관이기도 하다.
4. 행정 구역
순흥면은 내죽리, 덕현리, 배점리, 석교리, 읍내리, 지동리, 청구리, 태장리 등 여러 법정리와 행정리로 구성되어 있다. 면행정복지센터는 읍내리에 있다.
4. 1. 법정리 및 행정리
법정리 | 행정리 | 비고 |
---|---|---|
내죽리 | 내죽1리, 내죽2리 | |
덕현리 | 덕현리 | |
배점리 | 배점1리, 배점2리 | |
석교리 | 석교1리, 석교2리 | |
읍내리 | 읍내1리, 읍내2리, 읍내3리 | 면행정복지센터 소재지 |
지동리 | 지동1리, 지동2리, 지동3리 | |
청구리 | 청구1리, 청구2리 | |
태장리 | 태장1리, 태장2리, 태장3리 |
5. 광업
19세기 중반, 순흥의 산들은 한국 최초의 외국 광산(은광)이 있던 곳이었다. 이 은광은 1850년대 초 몇 달 동안 운영되었으나, 조선 왕실에 의해 허가가 취소되었다. 이는 외세의 경제적 침탈에 대한 저항으로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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