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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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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시민극은 중산층의 삶과 가치를 다룬 연극으로, 고전주의 비극이 귀족과 왕족을 주인공으로 삼았던 것과 달리 평범한 시민들의 이야기와 갈등을 다루었다. 18세기 유럽에서 발생하여 영국, 프랑스, 독일 등에서 발전했으며, 중산층의 성장과 함께 근대적 가치관을 확산하는 데 기여했다. 시민극은 미덕, 인간성, 개성, 진정한 감정을 중요하게 다루었으며, 개인과 가족의 삶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예술성 부족, 지나친 감상주의 등의 한계도 지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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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극

2. 고전 비극의 영웅

일반적으로 희극의 대상은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고전 및 신고전주의 이론가들은 비극의 영웅은 항상 고귀한 신분을 가진 인물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저서 《시학》에서 이러한 생각을 명확히 밝혔으며,[2] 이는 이후 고대 연극 및 시학 관련 저술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16세기와 17세기의 비평가들은 상류층만이 심각한 고통을 겪을 수 있다고 보았으며, 이러한 관점은 수 세기 동안 유럽 전역에서 지켜졌다. 대표적인 예로 안드레아스 그리피우스의 《카롤루스 스투아르두스》(찰스 1세), 장 라신페드르(테세우스의 아내 파이드라), 윌리엄 셰익스피어리어왕(리어) 등이 있다.

2. 1. 고전주의 비극의 특징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시학》에서 비극의 주인공은 고귀한 신분을 가진 인물이어야 한다고 명확히 밝혔다.[2] 이는 이후 고대 연극 및 시학 관련 저술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16세기17세기의 비평가들, 특히 독일의 마르틴 오피츠 등은 상류층만이 극적으로 재현될 만큼 심각한 고통을 겪을 수 있다는 이론을 옹호했다. 이들은 일반 사람들은 희극의 대상이며, 비극의 주인공은 항상 귀족 계급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규칙은 수 세기 동안 유럽 전역에서 지켜졌으며,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왕족과 귀족들이 비극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3. 유럽 시민극의 발생

18세기 유럽에서는 중산층이 성장하면서 이들의 삶과 가치를 반영하는 새로운 연극 장르인 시민극이 등장했다. 시민극은 비극희극의 고전적인 틀에서 벗어나 평범한 시민들의 삶과 갈등을 현실적으로 묘사하고, 그들의 도덕적 가치를 옹호하는 경향을 보였다.

데투시의 <거만한 남자>, 니벨 드 라 쇼세의 <유행의 편견> 등이 시민극의 초기 형태를 보여주며, 특히 라 쇼세의 작품은 '눈물을 주세요 희극'이라 불릴 정도로 감상적인 요소가 강했다. 라 쇼세의 <멜라니드>는 희극성이 없는 가정극으로, 시민극과 유사한 면모를 보였다.

시민극은 영국에서 먼저 발생했고, 프랑스에서 이론이 확립되었으며, 독일에서 걸작들이 나왔다.

3. 1. 영국의 시민극

자본주의 발전과 중산층의 성장이 가장 먼저 일어난 영국에서 시민극 역시 먼저 발생했다. 조지 릴로(George Lillo)의 '런던 상인(The London Merchant; or, the History of George Barnwell)'은 1731년에 처음 공연되었으며, 최초의 시민극으로 평가받는다.[1] 이 작품은 평범한 상인이 비극적인 삶을 통해 당시 사회의 도덕적 문제를 제기했다. 선량한 청년이 창녀에게 빠져 돈이 부족해지자 고용주의 물건을 훔치고, 유산을 탐내 숙부를 살해하는 죄를 범하는 내용을 다룬다.[2] 에드워드 무어(Edward Moore)의 '도박자'는 도박으로 인해 파멸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며, 중산층의 삶에 대한 현실적인 묘사를 보여주었다. 이 작품은 명배우 개리크와의 합동 작품으로, 도박이 한 남자의 인생을 파괴하고 감옥과 자살로 몰아넣는 비극을 그렸다.[2] 이러한 묘사의 사실성은 당시 프랑스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2]

3. 2. 프랑스의 시민극

프랑스에서는 계몽주의 사상의 영향으로 시민극이 발전했다. 디드로는 영국의 시민극을 시민적 가정비극의 전형으로 보았고, 백과전서 편찬과 더불어 시민극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 그는 폴 랑두아의 《실비》(Sylvie)에 이어, 《사생아》(Le fils naturel, 1757년)와 《가족의 아버지》(Le père de famille, 1758년) 등의 작품을 통해 시민들의 삶과 갈등을 현실적으로 묘사했다. 이 작품들은 엄밀히 말하면 비극은 아니었지만, 당시 희극에서는 전형적이지 않은 진지한 방식으로 부르주아의 삶을 다루어, 더욱 진정한 비극 작품의 모델을 제공했다.

3. 2. 1. 프랑스 시민극의 상연 형태

디드로가 의도한 시민극은 당시의 시민 생활을 사실적으로 무대에 표현하려 했던 것이나 사상적 성격으로 말미암아 자주 상연 금지를 당했으며, 또한 보수적인 파리의 대극장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시민극은 줄곧 극장을 구하지 못해 고난을 겪었고 보르도, 리옹, 마르세유 등 지방 도시의 극장이나 파리의 '불바르(큰 거리)' 극장에까지 진출하거나 또는 오를레앙 공과 같은 연극 애호가의 살롱에서 그 활로를 찾기도 했다.

연극 그 자체도 음악을 곁들인 시민 변장을 하거나 과거의 역사에서 소재를 구하여 정치적 의도를 위장했다. 샤를 콜레의 <앙리 4세의 사냥대회>는 현 정치 체제에 대한 간접적 비판이라 하여 공개가 허락되기까지 2년이나 걸렸으며, 메르셰의 <리쥬의 주교 장 앙뉴이에>는 성 바톨로메 대학살에서 소재를 구한 것으로 종교 문제에 대한 비판이라 하여 상연은커녕 출판조차 비밀리에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메르셰의 <식초 장수의 손수레>는 <극예술 신론(新論)>에서 말한 민중극의 주장을 실현한 것으로, 시민극을 더욱 대중에게 개방하였다.

3. 3. 독일의 시민극

독일에서는 시민극이 '시민 비극(Bürgerliches Trauerspiel)'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일반적으로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의 희곡 ''사라 섐슨 양''(1755년 초연)이 독일 최초의 '시민 비극'으로 여겨지지만, 크리스티안 레베레히트 마르티니의 드라마 ''Rhynsolt und Sapphira''가 약간 더 오래되었다.

레싱의 1771년작 ''에밀리아 갈로티''는 독일 시민 비극의 전형적인 예이다. 레싱은 또한 그의 ''함부르크 연극론''(Hamburgische Dramaturgie)에서 고전적인 규칙을 무시한 것에 대한 철저한 이론적 정당성을 제시했다. 독일 시민 비극의 다른 중요한 예로는 야콥 미하엘 라인홀트 렌츠의 ''병사들''(1776)과 프리드리히 실러의 ''간계와 사랑''(1784)이 있다.

4. 볼테르의 비극 쇄신

18세기의 대표적인 철학자 볼테르영국에 망명 중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접하고 시민극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셰익스피어극의 거친 에너지에 감동한 그는 당시 프랑스 비극의 무기력함을 인지하였으나, 고전주의의 충실한 신봉자였기에 근본적인 개혁보다는 개량을 추구했다.

볼테르는 고전극의 배경을 고대 그리스고대 로마에 한정하지 않고 중국, 인도, 아메리카 등 모든 지역과 시대로 확대했다. 또한 비극의 요인을 연애뿐만 아니라 종교적 광신, 정치적 야심 등 다양하게 다루었으며, 화려한 장치와 의상을 통해 극에 생기를 불어넣고자 했다.

오셀로를 연상시키는 비극 <자이르>, 모성의 비극을 그린 <메로프> 등이 대표작이나, 깊은 심리적 묘사가 부족하여 걸작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볼테르는 장르의 구별을 엄격히 지켰지만, <방탕아>, <나닌> 등의 희극에서는 감동과 웃음을 융합하려는 시대적 흐름에 따랐다. 그는 비극 쇄신의 필요성과 방법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편협한 취향과 창의성 부족으로 인해 이를 완수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고전극에서 시민극, 더 나아가 낭만파극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5. 시민극의 일반적 특징

시민극은 중산층의 가치를 옹호하며, 그들의 삶과 갈등을 현실적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있었다. 미덕, 인간성, 개성, 진정한 감정 등 중산층의 가치가 중요하게 다루어졌으며, 국가적인 사건보다는 개인과 가족의 삶에 초점을 맞추었다.[1] 시민극은 영웅이 속한 부르주아 계급의 가치를 전파하고, 그들의 이상을 국가 문제가 아닌 사생활과 가족 생활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다.[1]

6. 시민극의 의의와 한계

시민극은 당시에는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지만, 오늘날에는 거의 감상하기 어렵게 되었다. 18세기에는 신선했던 새로운 사상도 이미 상식이 되었고, 시사성에 의존하는 정치적인 작품이 많았다는 점이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결국 가장 큰 결함은 예술성의 결여였다. 이러한 점에서는 독일의 시민극이 훌륭하게 반증을 보이고 있다.[1]

참조

[1] 서적 Exemplarity and mediocrity : the art of the average from bourgeois tragedy to realism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9
[2] 문서 アリストテレス『詩学』1448a、1449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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