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어왕》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극으로, 브리튼의 왕 리어가 왕국을 세 딸에게 나누어 주는 과정에서 겪는 배신, 광기, 그리고 비극적인 결말을 그린다. 리어는 진실한 막내딸 코델리아를 오해하고, 아첨하는 두 딸 고네릴과 리건에게 권력을 넘겨주면서 비극이 시작된다. 작품은 권력, 배신, 인간 본성, 정의, 자연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켄트 백작, 글로스터 백작, 에드먼드 등의 등장인물 간의 갈등을 통해 인간 사회의 문제점을 드러낸다. 《리어왕》은 다양한 판본으로 존재하며, 연극, 영화, 오페라, 소설 등 다양한 형태로 각색되어 널리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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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왕 - 레이르 레이르는 제프리 오브 몬머스의 《브리타니아 열왕사》에 등장하는 전설 속 인물로, 세 딸에게 왕국을 나누어주려다 배신당하고 프랑스로 도망쳐 복위하지만 결국 사망하는 이야기로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등 여러 문학 작품에 영향을 미쳤다.
리어왕 - 코르델리아 코르델리아는 리어왕의 딸로, 아첨을 거부하고 프랑크 왕과 결혼했다가 아버지의 왕위 복귀를 도왔지만 조카들에게 체포되어 자살한 고대 브리튼 전설 속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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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튼의 노왕 리어는 왕국을 세 딸에게 나누어 주고 은퇴할 생각으로,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딸에게 가장 큰 영토를 주겠다고 선언한다. 첫째 딸 고너릴과 둘째 딸 리건은 온갖 아첨으로 아버지의 환심을 사지만, 막내딸 코델리아는 꾸밈없이 진실된 사랑만을 이야기한다. 이에 격분한 리어는 코델리아와 의절하고 그녀를 추방하며, 그녀를 변호하던 충신 켄트 백작마저 추방한다. 코델리아는 프랑스 왕과 결혼하여 떠나고, 켄트 백작은 변장한 채 리어 곁에 남아 그를 섬긴다.
재산을 물려받은 고너릴과 리건은 곧 본색을 드러내 아버지를 냉대하고 내쫓는다. 모든 것을 잃고 폭풍우 치는 황야를 헤매게 된 리어는 충격과 배신감으로 점차 광기에 사로잡힌다. 한편, 글로스터 백작의 사생아 에드먼드는 적자인 형 에드거를 모함하여 그의 상속권을 빼앗고, 아버지 글로스터마저 배신하여 눈을 멀게 만든다. 에드거는 미친 거지로 변장하여 도망자 신세가 된다.
아버지의 소식을 들은 코델리아는 프랑스 군대를 이끌고 영국 도버에 상륙하여 리어와 재회하고, 리어는 딸에게 용서를 구한다. 그러나 이어지는 전투에서 프랑스 군대는 패배하고 리어와 코델리아는 포로가 된다. 에드먼드의 야심과 고너릴, 리건의 질투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에드거는 에드먼드와의 결투에서 승리하여 진실을 밝히지만, 글로스터는 아들의 정체를 알게 된 충격으로 숨을 거둔다. 고너릴은 리건을 독살하고 자신도 자살하며, 에드먼드는 결투에서 입은 상처로 죽기 직전 리어 부녀의 살해 명령을 내렸음을 고백한다. 결국 코델리아는 교수형으로 살해되고, 딸의 죽음을 목격한 리어는 비통함 속에서 절규하며 숨을 거둔다.
이 비극적인 이야기 속에서 리어 왕을 따르는 광대의 풍자적인 대사는 세상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꼬집으며 극의 깊이를 더한다. 『리어 왕』은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가장 웅장한 작품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리어 왕』에는 두 가지 주요 판본이 존재한다. 1608년에 출판된 "사절판(Quarto)"인 『리어 왕과 세 딸들의 생애와 죽음의 역사에 관한 진실된 이야기』(The True Chronicle of the History of the Life and Death of King Lear and His Three Daughterseng)와, 1623년퍼스트 폴리오에 수록된, 보다 연극적인 판본인 『리어 왕의 비극』(The Tragedy of King Leareng)이다. 과거에는 두 판본을 절충하여 편집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최근에는 옥스퍼드판이나 뉴 캠브리지판 등에서 두 판본을 각각 독립된 텍스트로 다루는 경향이 있다.[33]
3. 1. 1막
브리튼의 리어 왕은 고령으로 인해 왕위에서 물러나기로 하고, 자신의 왕국을 세 딸에게 나누어 주기로 결심한다. 그는 자신을 가장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딸에게 가장 넓은 영토를 주겠다고 선언한다. 첫째 딸 고너릴과 둘째 딸 리건은 교언영색으로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과장되게 표현하며 각각 자신의 몫을 약속받는다. 리어는 그들의 말이 끝나자마자 각각에게 영토를 나누어 준다.
''리어 왕의 궁정에서의 코르델리아'' (1873) 존 길버트 경
그러나 리어가 가장 아끼던 막내딸 코델리아는 언니들의 거짓된 아첨을 비판하며, 자신은 딸로서의 의무만큼 아버지를 사랑할 뿐이며, 미래의 남편을 위해 사랑의 절반은 남겨두겠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코델리아의 꾸밈없는 말에 격분한 리어는 그녀와 의절하고 상속에서 제외하며, 그녀에게 돌아갈 몫마저 고너릴과 리건에게 나누어 준다.
켄트 백작은 리어의 불공정한 처사에 강하게 반발하지만, 왕의 노여움을 사 추방당한다. 한편, 코델리아의 정직함과 고결함에 감탄한 프랑스의 왕은 지참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왕비로 맞이하기로 결정한다. 프랑스 왕은 리어가 그토록 총애했던 코델리아를 내치는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4] 코델리아는 언니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프랑스로 떠난다.
''리어 왕: 코르델리아의 작별'' 에드윈 오스틴 애비
리어는 앞으로 백 명의 기사를 거느리고 고너릴과 리건의 집에서 번갈아 한 달씩 머물겠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코델리아가 떠나자마자 고너릴과 리건은 리어를 어리석은 늙은이로 여기며 그들의 사랑 고백이 거짓이었음을 드러낸다.
한편, 글로스터 백작의 사생아 아들 에드먼드는 자신의 처지에 불만을 품고 적자인 형 에드거를 몰아내고 재산을 차지할 음모를 꾸민다. 그는 에드거가 아버지를 살해하려 한다는 내용의 가짜 편지를 만들어 글로스터 백작에게 보여주고, 글로스터는 아들 에드거와 의절하고 그를 찾아 처형하겠다고 맹세한다.
추방당했던 켄트 백작은 '카이우스'라는 이름의 평민으로 변장하고 돌아와 리어의 충성스러운 하인이 된다. 리어가 고너릴의 남편인 알바니 공작의 성에 머무는 동안, 고너릴은 리어의 기사들이 소란을 피운다는 핑계로 그 수를 절반으로 줄이라고 요구하며 아버지를 무시하기 시작한다. 리어는 고너릴의 냉대에 분노하여 둘째 딸 리건에게 가기로 결심한다. 리어의 광대는 모든 것을 딸들에게 넘겨준 왕의 어리석음을 조롱하며 리건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한다.
에드먼드는 리건과 그녀의 남편 콘월 공작이 글로스터의 성에 도착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이용해 에드거가 자신을 공격한 것처럼 꾸며 글로스터를 완전히 속인다. 글로스터는 에드거의 상속권을 박탈하고 그를 반역자로 선포하며, 에드거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도망쳐 미친 거지 행세를 하기로 결심한다.
리어를 대신해 리건에게 소식을 전하러 갔던 켄트(카이우스)는 글로스터의 성 앞에서 고너릴의 집사 오스월드와 다시 마주쳐 시비가 붙고, 결국 리건과 콘월 공작에 의해 형틀에 묶이는 수모를 당한다. 리어가 글로스터의 성에 도착하여 자신의 사자가 학대받은 것에 항의하지만, 리건은 언니 고너릴과 마찬가지로 아버지를 냉대한다. 곧이어 고너릴이 도착하고, 두 딸은 아버지에게 기사의 수를 100명에서 50명, 25명으로 줄이라고 요구하다가 결국 단 한 명의 기사도 둘 수 없다고 말한다. 딸들의 배은망덕함과 냉혹함에 리어는 엄청난 충격과 분노에 휩싸여 이성을 잃고, 충성스러운 광대와 함께 폭풍우가 몰아치는 황야로 뛰쳐나간다.
3. 2. 2막
켄트 백작은 평민으로 변장하여 리어의 충실한 하인으로 다시 섬기기 시작한다.[1] 첫째 딸 고너릴은 아버지 리어의 기사들이 행패를 부린다는 구실로 그 수를 절반으로 줄일 것을 요구하며 아버지를 압박한다.[2] 이에 격분한 리어는 고너릴의 집을 떠나 둘째 딸 리건에게 가기로 결심한다.
리어는 변장한 켄트를, 고너릴은 자신의 집사 오스월드를 각각 리건에게 전령으로 보낸다. 이들은 글로스터 백작의 성에서 리건과 그녀의 남편 콘월 공작을 만나게 된다. 성 앞에서 마주친 켄트와 오스월드 사이에 시비가 붙자, 켄트는 오스월드를 거칠게 다룬다. 이 소란을 듣고 나온 리건과 콘월 공작은 리어의 전령인 켄트를 오히려 형틀에 가두는 무례를 범한다.[3]
한편, 글로스터 백작의 사생아 에드먼드는 적자인 형 에드거를 모함하여 그의 상속권을 빼앗으려는 계략을 꾸민다. 에드먼드의 거짓 편지에 속은 글로스터는 에드거를 의심하고, 에드거는 아버지의 분노를 피해 도망자 신세가 된다. 에드거는 자신의 신분을 숨기기 위해 미친 거지 행세를 하기로 마음먹는다.[1]
글로스터의 성에 도착한 리어는 자신의 충직한 신하 켄트가 형틀에 묶여 있는 것을 보고 분노하지만, 리건은 냉담하게 언니 고너릴에게 돌아가 용서를 구하라고 말한다. 곧이어 고너릴이 도착하고, 두 딸은 리어에게 남은 기사의 수를 50명, 25명으로 줄이라고 요구하다가 끝내는 단 한 명의 수행원도 둘 수 없다고 선언한다.[4] 딸들의 배신과 냉대에 충격을 받은 리어는 이성을 잃고 광기에 사로잡혀 폭풍우가 몰아치는 황야로 뛰쳐나간다.[2]
3. 3. 3막
글로스터 백작의 성에서 리건을 만난 리어왕은 그녀마저 냉담하게 대하자 분노한다. 곧이어 고너릴이 도착하고, 두 딸은 아버지에게 수행하는 기사의 수를 줄이라고 압박하다가 결국 단 한 명의 기사도 용납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딸들의 배신과 몰인정한 대우에 리어는 엄청난 충격과 분노로 이성을 잃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황야로 뛰쳐나간다.
리건과 그녀의 남편 콘월 공작은 글로스터 백작에게 성문을 잠그고 리어를 들이지 말라고 명령한다. 하지만 글로스터는 차마 왕을 외면하지 못하고 몰래 그를 도우려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글로스터의 사생아 에드먼드는 자신의 야심을 위해 아버지를 콘월 공작에게 밀고한다.
콘월과 리건은 글로스터를 반역자로 몰아 잔인하게 그의 두 눈을 뽑아버린다. 이 끔찍한 고문 속에서 글로스터는 비로소 적자 에드거가 무고했으며, 자신을 배신한 것이 아들 에드먼드였음을 깨닫는다.(3막 7장) 글로스터를 향한 잔혹한 처사에 분노한 콘월의 한 하인이 콘월에게 맞서 싸우다가 죽임을 당하고, 콘월 역시 이 싸움에서 깊은 상처를 입고 결국 목숨을 잃는다.
3. 4. 4막
켄트 백작은 프랑스 왕비가 된 코델리아에게 리어가 처한 비참한 상황을 알린다. 아버지를 돕기 위해 코델리아는 프랑스 군대를 이끌고 영국의 도버에 상륙한다.
한편, 에드먼드의 계략으로 두 눈을 잃고 쫓겨난 글로스터 백작은 절망 속에서 도버의 절벽에서 몸을 던지려 한다. 그의 아들 에드거는 미친 거지 '톰'으로 변장한 채 정체를 숨기고 아버지를 인도하며 죽음의 문턱에서 구해낸다.
고너릴과 과부가 된 리건은 모두 에드먼드에게 연정을 품고 그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고너릴의 남편인 알바니 공작은 점차 아내의 사악함을 깨닫고 리어왕에게 동정심을 느끼기 시작한다.
도버에서 마침내 리어와 코델리아는 재회한다. 광기가 남아있는 리어 앞에서 코델리아는 변함없는 사랑과 용서를 보여준다. 리어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깊이 후회하며 막내딸에게 용서를 구하고, 부녀는 감동적인 화해를 이룬다.
포드 매독스 브라운의 ''Lear and Cordelia'': 도버에서 재회한 리어와 코델리아. 리어는 코델리아에게 용서를 구한다.
3. 5. 5막
프랑스 왕비가 된 코델리아는 아버지 리어의 비참한 소식을 듣고 프랑스 군대를 이끌고 영국 도버에 상륙한다. 도버에서 리어와 코델리아는 감동적으로 재회하고, 광기에서 어느 정도 회복된 리어는 막내딸에게 지난날의 잘못을 사과하며 용서를 구한다.
한편, 고너릴과 남편 알바니 공작 사이의 갈등은 깊어지고, 고너릴과 과부가 된 리건은 모두 야심가 에드먼드에게 연정을 품고 그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한다. 에드먼드가 이끄는 영국군은 코델리아의 프랑스 군대와 전투를 벌이고, 프랑스 군은 패배한다. 리어와 코델리아는 에드먼드에게 포로로 사로잡힌다. 에드먼드는 몰래 부하에게 명령하여 감옥에 있는 리어와 코델리아를 살해하도록 지시한다.
눈이 먼 글로스터 백작은 아들 에드거의 도움(정체를 숨긴 채)으로 도버까지 오게 된다. 에드거는 알바니 공작에게 에드먼드의 반역과 악행을 고발하는 편지를 전달하고, 정식 결투를 신청한다. 결투에서 에드거는 에드먼드에게 승리하여 자신의 명예와 지위를 되찾는다. 에드거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자, 글로스터 백작은 오해를 풀고 아들을 되찾은 충격과 기쁨이 뒤섞인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
고너릴은 에드먼드를 독차지하기 위해 동생 리건을 독살하지만, 그녀의 악행이 남편 알바니 공작에게 발각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죽어가던 에드먼드는 자신의 죄를 일부 뉘우치며 리어와 코델리아를 살해하라는 명령을 내렸음을 고백하고 숨을 거둔다. 에드먼드의 고백에도 불구하고 코델리아는 이미 감옥에서 살해당한 뒤였다. 리어는 죽은 코델리아의 시신을 안고 나타나 극심한 슬픔과 비통함 속에서 절규하다 숨을 거둔다.
4. 작품 분석 및 해석
셰익스피어가 다양한 자료를 폭넓게 활용하여 서로 상충하는 관점들을 흡수했기 때문에, 『리어왕』은 단일한 해석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 해석을 가능하게 하며, 실제로 요구하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1] 작품에 대한 분석과 해석은 여러 갈래로 이루어져 왔으며, 자연관, 정치적 함의, 정신분석학적 접근, 종교적 의미 등 다양한 주제를 중심으로 깊이 있는 논의가 진행되어 왔다. 또한, 작품의 역사적 배경, 여러 판본의 차이, 그리고 시대를 거치며 이루어진 수많은 각색과 공연 역시 중요한 분석 대상이다.
4. 1. 역사적 배경
나훔 테이트(Nahum Tate)의 ''리어 왕의 역사(The History of King Lear)'' 표지
셰익스피어는 극단의 주요 비극 배우였던 리처드 버비지를 염두에 두고 리어 역할을 창조했으며, 버비지의 경력이 쌓임에 따라 점차 나이 든 역할을 맡겼다. 광대 역할은 극단의 광대였던 로버트 아민을 위해 쓰였거나, 소년 배우 중 한 명이 코델리아 역과 함께 연기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셰익스피어 생전에 이 작품이 공연된 기록은 단 한 번 남아있는데, 1606년 12월 26일 화이트홀 궁전에서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 앞에서 공연된 것이다. 원래 공연은 글로브 극장에서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이며, 당시에는 현대적인 무대 장치가 없었다. 배우들은 소품과 의상을 통해 시각적으로 역할을 표현했는데, 예를 들어 리어의 의상은 그의 신분이 하락함에 따라 변화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왕관과 왕족 의상을 입고 등장했다가 사냥꾼 복장으로 바뀌고, 폭풍 장면에서는 맨머리로 격분하며, 마지막에는 그의 이전 지위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꽃으로 만든 관을 쓰는 식이었다.
1642년 9월 6일, 청교도 정부는 모든 극장을 폐쇄했다. 1660년 왕정복고 이후, 왕립 극단과 공작 극단이라는 두 개의 특허 극단이 설립되었고, 기존 연극 레퍼토리는 이들 사이에 나뉘었다. 왕정복고 시대부터 19세기 중반까지 『리어왕』 공연의 역사는 셰익스피어의 원작이 아닌 나훔 테이트의 인기 있는 각색본, 『리어 왕의 역사』의 역사였다. 테이트의 각색본은 셰익스피어 원작과 여러 면에서 달랐다. 가장 큰 차이점은 광대 역할을 완전히 삭제하고, 리어와 코델리아가 살아남는 해피엔딩을 도입한 것이다. 또한, 원작에서는 전혀 교류가 없는 코델리아와 에드거 사이에 사랑 이야기를 만들어 그들의 결혼으로 극을 마무리했다. 당시 대부분의 각색가들처럼 테이트는 셰익스피어의 천재성을 인정하면서도, 당대의 예술 기준(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삼일치 법칙과 같은 신고전주의 원칙)에 맞춰 작품을 보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코델리아에게 아란테라는 측근을 추가하고, 에드먼드와 리건, 고네릴 사이의 애정 행각, 에드거가 에드먼드의 코델리아 납치 및 강간 시도로부터 그녀를 구출하는 장면 등 자극적인 요소를 추가하여 극을 당시의 시적 정의 개념에 더 부합하게 만들었다. 이 각색본은 "국왕의 복된 복위"를 축하하며 끝나는데, 이는 잉글랜드의 찰스 2세를 명백히 언급하는 것이다.
『리어왕』의 이야기는 브리튼인의 전설적인 왕인 레이어(브리튼의 레어)를 모델로 하며, 여러 문헌에서 영감을 받았다. 특히 중요한 자료는 셰익스피어가 다른 역사극에서도 주요 자료로 사용한 라파엘 홀린셰드의 『연대기』(1587년 제2판)인데, 이는 12세기 제프리 오브 몬머스의 『브리타니아 열왕사』에 기반을 두고 있다. 1590년에 출판된 에드먼드 스펜서의 『요정의 여왕』에도 코델리아라는 인물이 등장하며, 『리어왕』에서처럼 죽음을 맞이한다.
다른 자료로는 존 히긴스의 『위정자의 거울』(1574년), 존 마스턴의 『불만가』(1604년), 셰익스피어 외전으로 분류되는 『런던의 방탕자』(1605년), 필립 시드니의 『아카디아』(1580년-1590년, 글로스터 백작과 그의 아들 에드거, 에드먼드의 이야기는 여기서 가져옴), 1603년 존 플로리오가 영어로 번역한 미셸 드 몽테뉴의 『수필』, 윌리엄 해리슨의 『An Historical Description of Iland of Britaine』, 윌리엄 캠던의 『Remaines Concerning Britaine』(1606년), 윌리엄 워너의 『Albion's England』(1589년), 새뮤얼 허스넷의 『A Declaration of egregious Popish Impostures』(1603년, 에드거가 광기를 가장할 때 사용하는 일부 표현의 출처) 등이 있다.
『리어왕』과 내용이 유사한 『레어왕(King Leir)』이라는 작자 미상의 희곡이 1605년에 출판되었다. 아덴판 셰익스피어의 편집자 R. A. 포크스는 셰익스피어가 이 『레어왕』의 텍스트를 자료로 사용했다고 주장하지만, 리버사이드판 셰익스피어의 편집자 프랭크 커모드는 셰익스피어가 이미 『리어왕』을 완성한 상태였다고 반박한다. 1936년 A. S. 케인크로스는 두 희곡의 관계가 반대, 즉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이 먼저 쓰였고 『레어왕』의 작가가 이를 모방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594년 서적 출판업 조합 기록과 필립 헨슬로의 일기에 1594년 로즈 극장에서 『레어왕』(King Leir)을 관람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레어왕』이 먼저 존재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다만 이 기록들이 철자는 다르지만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의미한다는 반론도 있다. 『레어왕』은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셰익스피어는 이를 비극으로 각색했으며, 『레어왕』에는 등장하지 않는 광대나 글로스터 백작 부자 이야기 등을 추가했다. R. A. 포크스에 따르면, 셰익스피어는 다양한 자료를 흡수하여 모순되는 관점들을 작품에 담아냈고, 이로 인해 『리어왕』은 단일한 해석보다는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4. 2. 주제
코델리아, 알렉산더 존스턴(화가)(1894년경)
셰익스피어는 방대한 독서를 통해 다양한 자료를 활용하여 서로 상충하는 종교적, 세속적, 긍정적, 부정적 관점들을 작품에 녹여냈다. R. A. 포크스가 지적했듯이, 이러한 접근 덕분에 『리어왕』은 단일한 지배적 관점에 얽매이지 않고 다층적인 해석을 가능하게 하며, 실제로 다양한 해석을 요구하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자연관과 사회 질서존 F. 댄비(John F. Danby)는 『리어왕』이 셰익스피어 시대의 '자연(nature)'의 의미에 대한 논쟁을 반영한다고 분석한다. 극 중에서 '자연', '자연스러운', '비자연적인'이라는 단어가 40회 이상 사용되는데, 이는 당시 자연의 본질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충돌했음을 보여준다. 작품 속에는 인간 본성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관점이 제시된다. 하나는 베이컨이나 후커의 철학을 보여주는 리어, 글로스터, 올버니, 켄트 등의 전통적이고 공동체적인 자연관이다. 다른 하나는 에드먼드, 콘월, 고네릴, 리건 등이 보여주는 개인주의적이고 경쟁적인 자연관으로, 이는 훗날 홉스가 체계화한 견해와 유사하다(비록 홉스는 『리어왕』 초연 당시 철학 활동을 시작하지 않았지만).
이 두 가지 자연관은 서로 다른 이성관과 사회관으로 이어진다. 에드먼드로 대표되는 새로운 세력은 합리성을 극단으로 밀어붙여 '이성 속의 광기'에 빠지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리어의 '광기 속의 이성'이나 광대의 어리석음 속에 담긴 지혜와 대조를 이룬다. 에드먼드는 경쟁과 의심, 개인의 영광을 추구하는 새로운 시대의 인물로, 협력과 예의, 전체의 가치를 중시하던 중세적 사회 질서와 대립한다.
따라서 『리어왕』은 일종의 우화로도 읽힐 수 있다. 어리석은 왕과 함께 오류에 빠진 낡은 사회가 새롭고 냉혹한 마키아벨리즘에 의해 위협받지만, 결국 왕이 내쳤던 딸 코델리아에게서 구현되는 새로운 질서의 비전, 즉 사랑과 공동체의 가치를 통해 구원의 가능성을 모색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셰익스피어는 에드먼드와 같은 새로운 인간형에 대해서도 깊은 이해를 보여주며, 그의 에너지와 해방성, 용기 등 르네상스적 개인주의의 긍정적 측면 또한 그려낸다. 댄비는 에드먼드가 "최종적인 종합이 재확인해야 할 중요한 것을 구현한다"고 평가하면서도, 그가 주장하는 인간 유형 자체는 셰익스피어가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권력, 배신, 그리고 정치적 함의구스타프 포프(Gustav Pope)의 『리어왕의 세 딸』
리어왕의 비극은 권력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딸들의 진심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아첨에 넘어가 결국 배신당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는 권력의 속성과 인간의 탐욕을 보여주는 동시에, 당시 영국의 정치적 상황과도 연결지어 해석될 수 있다.
셰익스피어가 『리어왕』을 쓸 무렵 영국은 제임스 1세가 통치하고 있었다. 스코틀랜드 왕이었던 제임스는 1603년 엘리자베스 1세의 뒤를 이어 잉글랜드 왕위에 올라 브리튼 섬의 통합을 추진했다. 그는 자신의 아들들에게 콘월 공작과 올버니 공작 작위를 주었는데, 이는 극 중 리건과 고네릴의 남편들이 가진 작위와 같다. 극 초반 리어가 브리튼 전체를 다스리다 왕국을 분열시키는 모습은 제임스 1세의 브리튼 통일 정책과 대조를 이루며, 왕국 분열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메시지로 읽힐 수 있다.
또한, 제임스 1세는 절대 왕권을 주장하며 의회와 갈등을 빚었고, 자신에게 아첨하는 신하들을 총애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극 중 리어왕이 자신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하는 두 딸에게 권력을 넘겨주고, 진실을 말하는 코델리아와 충신 켄트를 내치는 모습과 유사하다. 켄트는 리어 개인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왕이 다스리는 국가 제도에 대한 충성을 내세우며 왕에게 직언하지만 쫓겨난다. 이는 당시 왕에게 개인적인 충성이 아닌 국가와 헌법에 대한 충성을 요구했던 의회의 입장과 유사하다. 켄트가 오스왈드를 아첨으로 출세한 인물이라고 비판하는 장면 역시, 제임스 1세 주변의 아첨꾼들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5] 리어왕의 궁정처럼 방탕하고 타락한 아첨꾼들에게 둘러싸여 진정한 충언을 외면하는 군주의 모습은 제임스 1세에게 보내는 경고로 읽힐 여지가 있다. 제임스 1세가 자신을 '국가의 아버지'로 칭하며 신하들을 자녀처럼 대하려 했던 점 역시, 리어가 주변 사람들을 유아화하는 모습과 연결된다. 광기와 정신분석학적 해석벤자민 웨스트(Benjamin West)의 1793년 작, 리어왕과 코르델리아
『리어왕』은 "영국 문학사에서 정신적 붕괴의 가장 중요한 연출"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리어의 광기는 딸들에게 배신당하고 권력을 잃은 충격에서 비롯되지만, 단순한 정신 이상을 넘어 세상의 부조리와 인간 존재의 한계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리어의 행동은 다양한 해석을 낳았다. 코펠리아 카한은 극 중에 어머니가 부재하다는 점에 주목하여, 노년의 리어가 유아기적 상태로 퇴행하여 딸들에게 모성적인 사랑과 보살핌을 갈구한다고 분석한다. 딸들에게 사랑을 시험하는 것은 일종의 계약으로, 자신을 돌봐주는 대가로 상속을 약속하는 것이다. 코델리아가 아버지 이상의 사랑을 거부하는 것은 근친상간적 요구에 대한 저항으로도 읽히지만, 카한은 이를 '거부하는 어머니'의 이미지로 해석한다. 결국 리어의 광기는 자식으로서 받아야 할 보살핌을 박탈당한 데 대한 유아적 분노라는 것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코델리아를 죽음의 상징으로 보았다. 리어가 코델리아를 거부하는 것은 죽음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과 같으며, 자신의 유한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라는 해석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리어가 죽은 코델리아의 시신을 안고 절규하는 것은 결국 피할 수 없는 죽음과 대면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프로이트는 이를 통해 리어가 "죽음의 필요성과 친구가 되게" 한다고 보았다.
반면 알프레드 아들러 이론에 기반한 분석은 리어의 행동을 권력과 통제에 대한 욕구로 설명한다. 딸들에게 사랑을 시험하는 것은 아직 결혼하지 않은 코델리아에 대한 통제력을 확인하려는 시도이며, 왕국을 분할한 후에도 여전히 권력을 유지하려는 욕망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에드먼드: 새로운 시대의 인물해롤드 블룸은 에드먼드를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가장 독창적인 인물"이라고 언급한다. 블룸은 헤즐릿의 지적을 인용하며, 에드먼드가 고네릴과 리건의 위선을 공유하지 않고 그의 마키아벨리즘은 절대적으로 순수하며 오이디푸스적 동기가 부족하다고 설명한다. 에드먼드는 어떤 열정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결코 누구도 사랑한 적 없고 사랑하지 않을 인물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이아고와도 구별되며,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가장 독창적인 인물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종교적 해석: 구원과 절망 사이『리어왕』이 특정 기독교 교리를 긍정하는지에 대해서는 비평가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일부 비평가들은 리어가 고통과 자기 포기를 통해 기독교적인 구원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A.C. 브래들리나 존 라이베탄츠 등은 고통을 통해 리어가 깨달음을 얻고 영혼의 구원을 받는다고 해석한다. 이는 강자의 몰락과 세속적 가치의 덧없음을 강조하는 기독교적 세계관과 연결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당시 설교에서는 부자나 현자, 권력자 모두 결국 죽음과 고난을 피할 수 없음을 강조했는데, 리어의 몰락이 이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비평가들은 리어의 구원에 대한 증거가 부족하며, 오히려 마지막 장면의 참혹함과 절망을 강조한다. 존 홀로웨이, 마빈 로젠버그, 윌리엄 R. 엘튼 등은 작품의 기독교 이전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리어가 이교도적인 삶을 살았고 결국 구원받지 못한 채 "구원받을 수 없는 상실의 순간에 완전한 신성모독에 빠진다"고 본다. 해롤드 블룸은 더 나아가 『리어왕』이 신학, 형이상학, 윤리 등 기존의 도덕 체계를 완전히 초월하는 작품이라고 주장하며, 이 작품에는 "...신학도, 형이상학도, 윤리도 없다"고 썼다.[11]
4. 3. 판본
1608년 쿼터판(Q₁)의 제목 페이지
1632년 제2 폴리오의 《리어 왕》 첫 페이지
《리어 왕》의 현대 텍스트는 주로 세 가지 초기 인쇄본에 기반한다. 첫째는 1608년에 출판된 4절판(Quarto, 이하 Q₁)이며, 정식 제목은 The True Chronicle of the History of the Life and Death of King Lear and His Three Daughters|리어 왕과 세 딸들의 생애와 죽음의 역사에 관한 진실된 이야기eng이다. 둘째는 1619년에 나온 또 다른 4절판(Q₂)으로, 이는 윌리엄 재거드가 만든 소위 가짜 폴리오의 일부이다. Q₂는 Q₁을 바탕으로 일부 수정되었지만 새로운 오류를 포함하기도 했고, 이후 나올 제1 폴리오 텍스트에도 영향을 미쳤다.[8][9] 셋째는 1623년 제1 폴리오(First Folio, 이하 F₁)에 수록된 버전으로, 제목은 The Tragedy of King Lear|리어 왕의 비극eng이다.
이 두 주요 판본인 Q₁과 F₁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Q₁에는 F₁에 없는 285줄이 포함되어 있고, 반대로 F₁에는 Q₁에 없는 약 100줄이 들어 있다. 또한 두 텍스트 사이에는 최소 1,000개 이상의 단어 차이가 있으며, 구두점 사용 방식도 다르고, F₁에 운문으로 처리된 행의 약 절반 가량이 Q₁에서는 산문으로 인쇄되거나 행 나눔이 다르게 되어 있다.
알렉산더 포프와 같은 초기 편집자들은 이 두 판본을 하나로 합쳐서 편집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러한 혼합본은 오랫동안 표준적인 《리어 왕》 텍스트로 받아들여졌는데, 이는 두 판본의 차이가 작가 셰익스피어의 의도적인 수정이라기보다는, 현재는 사라진 원본 원고 하나가 존재했고 Q₁과 F₁은 이 원본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왜곡되어 기록된 것이라는 가정에 기반했다. 2021년 던컨 솔켈드는 Q₁이 독자가 조판공에게 구술하는 과정에서 잘못 듣고 생긴 오류가 많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견해를 뒷받침했다.[10]
그러나 1931년 마들렌 도런은 Q₁과 F₁이 각기 독립적인 텍스트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두 판본의 차이 자체가 비판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1970년대 후반 마이클 워렌과 게리 테일러 등에 의해 본격적으로 재조명되었다. 이들은 Q₁이 셰익스피어의 초고(foul papers)를 바탕으로 인쇄되었을 가능성과, F₁이 실제 공연을 위해 준비된 프롬프트북(prompt-book)에서 인쇄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러한 연구 경향에 따라, 최근에는 두 판본을 별개의 작품으로 간주하는 시각이 힘을 얻고 있다. 뉴 캠브리지 셰익스피어 시리즈는 Q₁과 F₁을 각각 별도의 판본으로 출판했으며, 펠리컨 셰익스피어 최신판은 Q₁과 F₁ 텍스트와 더불어 전통적인 혼합본까지 세 가지 버전을 함께 제공한다. R. A. 포크스가 편집한 뉴 아든 에디션은 혼합된 텍스트를 기본으로 하되, 각 판본(Q 또는 F)에서만 발견되는 구절을 명확히 표시하는 방식을 택했다. 옥스퍼드판 셰익스피어나 뉴 캠브리지판 등 역시 두 판본을 각각 독립된 작품으로 출판하는 경우가 많다.[33]
한편, 앤서니 넛탈이나 해롤드 블룸과 같은 학자들은 셰익스피어 자신이 생전에 《리어 왕》을 적어도 한 번 이상 수정했을 것이라는 견해를 지지한다. 블룸은 F₁ 버전의 결말에서 에드거가 마지못해 왕위를 받아들이는 모습이 Q₁과 다른 점 등을 근거로 들며, 셰익스피어가 공연이나 다른 텍스트적 요구에 맞춰 작품을 수정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4. 4. 각색 및 영향
1660년 왕정복고 이후, 기존의 연극 레퍼토리는 새로 설립된 두 특허 극단(왕립 극단과 공작 극단) 사이에 나뉘었다.[21] 복고 시대부터 19세기 중반까지 ''리어 왕''은 셰익스피어의 원작 대신 나훔 테이트가 각색한 ''리어 왕의 역사(The History of King Lear)'' 버전으로 주로 공연되었다. 테이트 버전은 광대를 완전히 삭제하고, 리어와 코델리아가 살아남는 해피엔딩을 도입했으며, 원작에서는 교류가 없는 코델리아와 에드거 사이에 로맨스를 추가하여 결혼으로 끝맺는 등 원작과 큰 차이를 보였다. 테이트는 당대의 예술 기준(주로 신고전주의적 통일성)에 맞춰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보완하고자 했으며, 코델리아에게 아란테라는 측근을 추가하고, 에드먼드와 리건, 고네릴 사이의 애정 행각, 에드거가 에드먼드의 코델리아 납치 및 강간 시도로부터 코델리아를 구출하는 장면 등 자극적인 요소를 더했다.[28] 이 버전은 찰스 2세의 왕정복고를 축하하며 끝난다.
18세기 초, 조지프 애디슨과 같은 작가들은 테이트의 각색을 비판했지만,[30] 무대에서는 여전히 테이트 버전이 우세했다. 데이비드 개릭은 셰익스피어 원작에 가깝게 테이트 버전을 수정하려 시도했으나, 해피엔딩 등 주요 변경점은 유지했다.[33] 북미에서는 1752년경 할람 컴퍼니가 처음으로 전문적인 공연을 올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리어 왕이 코르델리아의 죽음을 애도하다'', 제임스 배리, 1786–1788
19세기 낭만주의 시대 찰스 램은 ''리어 왕''이 무대 공연보다는 읽기에 더 적합하다고 주장했다.[40] 조지 3세의 광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민감해져 1811년부터 1820년까지 런던 공연이 중단되기도 했다. 존 필립 켐블은 셰익스피어의 텍스트를 더 많이 도입했지만 테이트의 핵심 요소는 유지했고, 에드먼드 킨은 1823년 비극적인 결말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여 테이트 버전으로 되돌아갔다. 마침내 1838년, 윌리엄 매크레디가 코번트 가든에서 광대를 복원하고 비극적 결말을 되살린, 셰익스피어 원작에 가까운 버전을 성공적으로 공연했다. 이 공연에서 광대 역은 여배우 프리실라 호튼이 맡았고, 헬렌 포싯이 연기한 코델리아의 죽음 장면은 빅토리아 시대의 상징적인 이미지가 되었다. 매크레디는 무대에 스톤헨지 같은 구조물을 사용하는 등 고대적 배경을 시각화하는 혁신을 도입했으며, 이는 20세기까지 영향을 미쳤다.
19세기 후반에는 시각적 장관을 중시하는 "회화주의"가 유행했다. 헨리 어빙의 1892년 공연은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했지만 텍스트의 상당 부분을 삭제했다. 어빙은 포드 매독스 브라운의 그림 ''코르델리아의 상속''에서 영감을 받기도 했다. 이에 대한 반발로 르네상스 시대 극장과 유사한 단순한 무대를 추구하는 재구성 운동이 일어났고, 윌리엄 폴이 주요 지지자였다.
포드 매독스 브라운(Ford Madox Brown)의 ''코딜리아의 상속''
20세기 중반에는 배우 겸 연출가 대신 전문 연출가가 공연을 주도하게 되었다. 도널드 울핏(Donald Wolfit)은 이 전통의 마지막 주자 중 한 명으로, 1944년 리어 역으로 호평받았다. 20세기 리어는 존 길구드(John Gielgud), 도널드 신던(Donald Sinden) 등 강인한 왕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았고,[24] 코딜리아 역시 페기 애슈크로프트(Peggy Ashcroft)처럼 전쟁 지도자의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광대 역할도 뮤직홀(music hall)이나 서커스(circus) 전통의 영향을 받아 다양하게 해석되었다.
1962년 피터 브룩(Peter Brook)은 폴 스코필드(Paul Scofield) 주연으로 미니멀리즘적인 연출을 선보여 큰 영향을 미쳤다. 이 공연의 라디오 방송 일부는 비틀즈(The Beatles)의 노래 "아이 엠 더 월러스(I Am the Walrus)"에 사용되기도 했다.
''리어 왕''은 다양한 문화권에서 각색되었다. 1989년 인도 케랄라(Kerala)에서는 카타칼리(Kathakali) 형식으로 공연되었고, 1997년 옹 켄센(Ong Keng Sen)은 여러 아시아 연기 전통(경극, 노 등)을 결합한 공연을 선보였다. 1974년 버즈 굿바디(Buzz Goodbody)는 RSC의 스튜디오 극장에서 현대 의상을 사용한 심리극으로 연출했다.
현대 공연들은 종종 동시대 사회 문제를 반영한다. 존 우드의 1990년 리어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노인의 모습을 그렸고, 1994년 모스크바에서는 소련 해체의 분위기를 담은 두 개의 다른 공연이 올라왔다. 2002년과 2010년 허드슨 셰익스피어 컴퍼니는 각각 서인도 제도와 현대 도시(영화 다크 나이트 분위기)를 배경으로 각색했다. 2012년 캐나다 국립예술센터에서는 17세기 알곤킨족(Algonquin people) 설정을 바탕으로 어거스트 셸렌버그 등 원주민 배우들이 공연했다. 2015년 토론토 시어터 파세 뮤라유는 1837년 상부 캐나다 반란(Upper Canada Rebellion) 시기를 배경으로 삼았다.
최근 주요 공연으로는 제프리 러시(Geoffrey Rush)(2015-16, 시드니), 돈 워링턴(Don Warrington)(2016, 탈라와 극단/로열 익스체인지), 앤터니 셔(Antony Sher)(2016, RSC), 스티븐 요컴(Stephen Yoakam)(2017, 거스리 극장), 폴 그로스(Paul Gross)(2023, 스트랫퍼드 페스티벌),[12] 케네스 브래너(Kenneth Branagh)(2023-24, 웨스트엔드/뉴욕), 대니 사파니(Danny Sapani)(2024, 알메이다 극장) 등이 있다.
=== 영화 ===
''리어 왕''은 영화 초기부터 각색되었다. 최초의 영화는 1905년경 독일에서 제작된 5분짜리 버전(소실)이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은 1909년 미국 비타그래프(Vitagraph)사의 10분짜리 버전이다. 이후 이탈리아(1910년 2편, ''Re Lear''), 프랑스(1911년, 현대 배경, ''Le Roi Lear Au Village''), 미국(1914년) 등에서 무성 영화로 제작되었다.
직접적인 각색 외에도 ''리어 왕''의 영향을 받은 영화들이 있다. 낯선 자들의 집(House of Strangers)(1949)과 부러진 창(Broken Lance)(1954)은 아버지와 아들들의 갈등 구조에서 유사점을 보인다.
텔레비전에서는 1953년 옴니버스 시리즈에서 오손 웰스(Orson Welles) 주연, 피터 브룩(Peter Brook) 각색으로 73분짜리 버전(King Lear)이 방영되었다.
1971년에는 두 편의 중요한 영화가 개봉했다. 소련의 그리고리 코진체프(Grigori Kozintsev) 감독 버전(Король Лир)과 영국의 피터 브룩(Peter Brook) 감독, 폴 스코필드(Paul Scofield) 주연 버전(King Lear)이다. 브룩의 영화는 얀 코트(Jan Kott)의 해석(리어 왕과 부조리 연극, 특히 사뮈엘 베케트의 끝없는 게임과의 유사성)에 영향을 받았으며, 매우 어둡고 잔혹한 분위기로 평이 극명하게 갈렸다. 반면 코진체프의 영화는 보리스 파스테르나크(Boris Pasternak)의 번역을 바탕으로 서사적이고 철학적인 접근을 보여주었으며,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Dmitri Shostakovich)가 음악을 맡았다.[13] 코진체프는 리어 개인뿐 아니라 백성들의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며 왕의 몰락과 사회적 차원을 강조했다.
조나단 밀러(Jonathan Miller)는 마이클 호든(Michael Hordern) 주연으로 두 차례(1975년 BBC Play of the Month, 1982년 BBC Television Shakespeare) TV 영화를 연출했다. 1983년에는 로렌스 올리비에(Laurence Olivier)가 그라나다 텔레비전 제작의 TV 영화(King Lear)에서 마지막 셰익스피어 연기를 선보였다.
1985년 구로사와 아키라(Akira Kurosawa)는 일본의 16세기 센고쿠 시대를 배경으로 한 대서사극 란(亂)을 만들었다. 이는 ''리어 왕''의 이야기를 봉건 영주 히데토라(나카다이 타츠야)와 세 아들의 이야기로 각색한 것으로, 화려한 색채와 에미 와다의 아카데미 수상 의상이 특징이다.
이 외에도 ''리어 왕''의 요소는 여러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공포 영화 피의 극장(Theatre of Blood)(1973)의 클라이맥스, 드레서(1983)의 코믹한 설정, 마음이 있는 곳(1990), 대부 3(The Godfather Part III)(1990) 등에서 그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장뤽 고다르는 1987년 자신만의 해석을 담은 영화 King Lear을 만들었다.
1997년에는 제인 스마일리(Jane Smiley)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천 에이커가 개봉했다. 현대 아이오와 농장을 배경으로 딸들의 관점에서 근친상간 등 원작의 어두운 측면을 탐구했다.
1998년에는 이안 홀름(Ian Holm) 주연의 왕립 국립극장 공연을 바탕으로 한 BBC TV 영화가 제작되었다.[14][15][16] 1999년에는 브라이언 블레스드가 감독 및 주연을 맡은 영화 ''King Lear''가 나왔다. 2001년에는 갱스터 세계를 배경으로 한 나의 왕국(리처드 해리스 주연)이, 2002년에는 1840년대 텍사스를 배경으로 한 미국 TV 영화 텍사스의 왕(King of Texas)(패트릭 스튜어트(Patrick Stewart) 주연)가 만들어졌다. 2003년 영국 채널 4에서는 아시아계 커뮤니티를 배경으로 한 2부작 세컨드 제너레이션(Second Generation)을 방영했다.
캐나다 TV 시리즈 슬링스 앤 애로즈(Slings & Arrows)(2003-2006)는 세 번째 시즌에서 ''리어 왕'' 제작 과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18] 2008년에는 이안 맥켈런(Ian McKellen) 주연의 RSC 공연을 영화화한 King Lear가 개봉했다.[19] 로맨틱 코미디 만약 내가 당신이라면(2012)에서는 여성 버전의 ''리어 왕'' 극중극이 등장한다. 미국 TV 시리즈 엠파이어(2015-)도 부분적으로 ''리어 왕''에서 영감을 받았다.[20][21][22] 2017년에는 브루스 던(Bruce Dern) 주연의 현대 각색 영화 리어들(The Lears)이 개봉했다. 2018년에는 앤서니 홉킨스(Anthony Hopkins) 주연, 리처드 에어(Richard Eyre) 감독의 현대 배경 BBC Two TV 영화(King Lear)가 방영되었다.
아래는 주요 영화 및 TV 각색 목록이다.
연도
제목
감독/제작사
주연 배우 (리어/해당 역)
비고
1909
King Lear
비타그래프
(불명)
현존 최고(最古) 영화
1953
King Lear
CBS (옴니버스)
오손 웰스(Orson Welles)
미국 TV 드라마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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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리 코진체프(Grigori Kozintsev)
유리 야르벳(Jüri Järvet)
소련 영화
1971
King Lear
피터 브룩(Peter Brook)
폴 스코필드(Paul Scofield)
영국 영화
1975
King Lear
BBC (Play of the Month)
마이클 호든(Michael Hordern)
영국 TV 영화
1982
King Lear
BBC (BBC Television Shakespeare)
마이클 호든(Michael Hordern)
영국 TV 영화
1983
King Lear
그라나다 텔레비전
로렌스 올리비에(Laurence Olivier)
영국 TV 영화
1985
란(亂)
구로사와 아키라(Akira Kurosawa)
나카다이 타츠야(Tatsuya Nakadai) (히데토라 역)
일본 영화, 리어왕 기반 각색
1987
King Lear
장뤽 고다르(Jean-Luc Godard)
(실험 영화)
프랑스/스위스 영화, 독자적 해석
1997
A Thousand Acres
조슬린 무어하우스(Jocelyn Moorhouse)
제이슨 로바즈(Jason Robards) (래리 쿡 역)
미국 영화, 소설 원작, 현대 각색
1998
King Lear
BBC / 왕립 국립극장
이안 홀름(Ian Holm)
영국 TV 영화 (극장 공연 기반)
1999
King Lear
브라이언 블레스드(Brian Blessed)
브라이언 블레스드(Brian Blessed)
영국 영화
2001
My Kingdom
돈 보이드
리처드 해리스(Richard Harris) (샌드먼 역)
영국/미국 영화, 갱스터 배경 각색
2002
King of Texas
울리 에델
패트릭 스튜어트(Patrick Stewart) (존 리어 역)
미국 TV 영화, 서부극 배경 각색
2008
King Lear
트레버 넌(Trevor Nunn) / RSC
이안 맥켈런(Ian McKellen)
영국 TV 영화 (극장 공연 기반)
2018
King Lear
리처드 에어(Richard Eyre) / BBC Two
앤서니 홉킨스(Anthony Hopkins)
영국 TV 영화, 현대 배경
=== 라디오 및 오디오 드라마 ===
''리어 왕''은 여러 차례 라디오 드라마와 오디오북으로 제작되었다.
1957년: 아르고 레코드(Argo Records)의 아르고 셰익스피어 시리즈 첫 녹음. 윌리엄 데블린(William Devlin)이 리어 역, 질 발콘(Jill Balcon)이 고네릴 역, 프루넬라 스케일스(Prunella Scales)가 코델리아 역.
1965년: 셰익스피어 녹음 협회(Shakespeare Recording Society) 제작. 폴 스코필드(Paul Scofield)가 리어 역, 시릴 쿠삭(Cyril Cusack)이 글로스터 역, 로버트 스티븐스(Robert Stephens)가 에드먼드 역.
1967년: BBC 제3 프로그램 생방송. 존 길구드(John Gielgud)가 리어 역. 이 방송의 일부(4막 6장)가 비틀즈의 "아이 엠 더 월러스"에 오버더빙됨.[23]
1994년: 케네스 브래너(Kenneth Branagh)의 르네상스 극단 제작. 존 길구드(John Gielgud)가 리어 역, 주디 덴치(Dame Judi Dench)가 고네릴 역, 에마 톰슨(Emma Thompson)이 코델리아 역, 케네스 브래너가 에드먼드 역 등 호화 캐스팅.
2002년: 낙소스 오디오북스(Naxos AudioBooks) 제작. 폴 스코필드(Paul Scofield)가 리어 역, 알렉 맥코웬(Alec McCowen)이 글로스터 역, 케네스 브래너가 광대 역.[24]
2017년: 빅 피니시 프로덕션(Big Finish Productions) 제작. 데이비드 워너(David Warner)가 리어 역, 루이스 제임슨(Louise Jameson)이 고네릴 역, 리사 보워먼(Lisa Bowerman)이 리건 역.[25]
=== 오페라 ===
주세페 베르디는 오페라 ''리어 왕(Re Lear)''을 구상하고 대본까지 의뢰했으나 작곡하지는 않았다.
아리베르트 라이만(Aribert Reimann)의 오페라 ''리어(Lear)'' (1978년 초연)
호소카와 도시오(Toshio Hosokawa)의 오페라 ''리어의 환영(Vision of Lear)'' (1998년 초연)
아울리스 살리넨(Aulis Sallinen)의 오페라 ''리어 왕(Kuningas Lear)'' (2000년 초연)[26]
=== 소설 ===
제인 스마일리(Jane Smiley)의 ''천 에이커(A Thousand Acres)'' (1991): 퓰리처상 수상작. 1979년 아이오와 농장을 배경으로 장녀의 시점에서 재구성.[27]
크리스토퍼 무어(Christopher Moore)의 ''어릿광대(Fool)'' (2009): 궁정 광대의 시점에서 코믹하게 재해석.[28]
에드워드 세인트 오빈(Edward St Aubyn)의 ''던바(Dunbar)'' (2017):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의 일환으로 현대적으로 재해석.[29]
테사 그래튼(Tessa Gratton)의 ''이니스 리어의 여왕들(The Queens of Innis Lear)'' (2018): 판타지 소설로 각색.[30]
프레티 타네자(Preti Taneja)의 ''우리 젊은이들(We That Are Young)'' (2018): 현대를 배경으로 인도에서 재구성.[31]
J. R. 쏘프(J. R. Thorpe)의 ''리어의 아내(Learwife)'' (2021): 극에 등장하지 않는 리어의 아내를 상상하여
5.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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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1]
웹사이트
King Lear Plot Summary Shakespeare Learning Zone Royal Shakespeare Company
https://www.rsc.org.[...]
2023-10-29
[2]
웹사이트
A Defence of Poetry by Percy Bysshe Shel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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