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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세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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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테세우스는 아테네의 영웅으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아이게우스의 아들이자, 미노타우로스를 물리친 업적으로 유명하다. 그는 육로를 통해 아테네로 가는 길에 여섯 명의 악당을 처치하고, 미노타우로스를 처치하기 위해 자원하여 미궁에 들어가 아리아드네의 도움을 받아 괴물을 죽였다. 아테네의 왕이 된 후에는 아마존 여왕 안티오페와 결혼하고, 페이리토스와 함께 헬레네와 페르세포네를 납치하려다 실패하기도 했다. 만년에는 쿠데타로 축출되어 스키로스 섬에서 암살당했다. 테세우스의 이야기는 다양한 문학 작품, 연극, 오페라, 영화, 게임 등에서 다루어지며, 아테네의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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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세우스
지도 정보
기본 정보
테세우스
테세우스
아버지아이게우스 또는 포세이돈
어머니아이트라
배우자파이드라
아리아드네
히폴리테
자녀데모폰
아카마스
히폴리토스
출생지트로이젠
사망지스키로스
숭배엘리시움
상징
고린도 투구 (때때로)
축제테세이아
역할
역할아테네의 창시자 및 수호자
미노타우로스 살해자
이름 정보
로마자 표기Thēseus
관련 인물
관련 인물페리토스
헤라클레스
신화적 이야기
주요 업적미노타우로스 처치
아마존과의 전쟁
켄타우로스와의 전투 (켄타우로마키)
아테네 통합
추가 정보
참고고대 그리스 종교

2. 생애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는 후계자를 얻기 위해 델포이 신탁을 찾았으나 모호한 답만 얻었다. 트로이젠의 왕 피테우스는 신탁을 해석하여 아이게우스와 자신의 딸 에트라를 맺어주었고, 이 사이에서 테세우스가 태어났다.[6] 일설에는 에트라가 같은 날 밤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도 관계를 맺어 테세우스가 신성을 지니게 되었다고도 한다. 아이게우스는 아테네로 돌아가기 전, 바위 밑에 자신의 과 샌들을 숨겨 두고 아들이 자라 힘이 세지면 이것을 찾아오도록 했다.[7]

청년이 된 테세우스는 바위를 옮겨 징표를 찾고,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정체를 들은 뒤 아테네로 향했다. 그는 안전한 바닷길 대신 위험한 육로를 택하여 사론 만을 따라가며 여러 악당들을 처치하며 영웅으로서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8]

아테네에 도착한 테세우스는 메데이아의 방해를 이겨 내고 아버지 아이게우스와 재회하여 후계자로 인정받았다. 그의 가장 유명한 업적은 크레타 섬으로 건너가 미궁 속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처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리아드네의 도움을 받았으나, 귀환 길에 그녀를 낙소스 섬에 남겨 두고 떠났다. 또한 아테네로 돌아올 때 아버지와 약속했던 흰 돛을 다는 것을 잊어, 아들의 죽음을 예감한 아이게우스 왕이 바다에 몸을 던져 에게 해의 유래가 되었다.[12]

아이게우스의 뒤를 이어 아테네의 왕이 된 테세우스는 아테네를 통합하고 민주적인 제도를 도입하는 등 도시국가의 기틀을 다진 현명한 통치자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동시에 아마존과의 전쟁, 켄타우로스와의 전쟁, 친구 페이리토스와 함께 헬레네를 납치하고 저승까지 내려가는 등 여러 모험에 휘말렸다. 그의 개인적인 삶은 비극으로 얼룩졌는데, 아내 파이드라가 의붓아들 히폴리토스를 사랑하게 되면서 벌어진 사건으로 아내와 아들을 모두 잃었다. 말년에는 아테네에서 추방당해 스키로스 섬으로 피신했으나, 그곳의 왕 뤼코메데스에게 살해당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2. 1. 탄생과 성장

아테나이의 왕 아이게우스는 후계자가 없어 고심했다. 그는 델포이 신탁에 조언을 구했으나, "아테나이의 언덕에 오르기 전에는 술가죽 부대를 풀지 말라"는 수수께끼 같은 답만 얻었다.[6] 뜻을 이해하지 못한 아이게우스는 친구이자 트로이젠의 왕인 피테우스에게 도움을 청했다. 예언의 의미를 알아챈 피테우스는 아이게우스를 술에 취하게 한 뒤 자신의 딸 에트라와 동침하게 했다.[6]

''테세우스와 에트라'', 로랑 드 라 이르의 작품


그날 밤, 에트라는 꿈에서 아테나 여신의 지시를 받고 스파이리아 섬으로 건너가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관계를 맺었다고도 전해진다. 이로 인해 테세우스는 인간 아버지 아이게우스와 신적인 아버지 포세이돈을 두게 되어, 신성과 인간성을 모두 지닌 영웅이 되었다. 이는 다른 그리스 영웅들에게서도 나타나는 특징이다. 에트라가 임신한 것을 알게 된 아이게우스는 아테나이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떠나기 전, 그는 큰 바위 아래에 자신의 과 샌들을 숨겨두고, 아들이 자라 힘이 세져 바위를 옮길 수 있게 되면 이 징표들을 가지고 자신을 찾아오도록 에트라에게 일렀다.[7] 아테나이로 돌아온 아이게우스는 코린토스에서 이아손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들을 살해하고 도망쳐 온 메데이아와 결혼했다.

테세우스는 어머니의 고향 트로이젠에서 자랐다. 청년이 된 테세우스는 어머니가 알려준 바위를 옮겨 아버지 아이게우스가 남긴 칼과 샌들을 찾아냈다. 에트라는 테세우스에게 그의 아버지가 아테나이의 왕 아이게우스임을 밝히고, 징표를 가지고 아버지를 찾아가 왕위를 계승할 권리를 주장하라고 말했다.

테세우스가 아이게우스의 검과 샌들을 발견하는 모습, 기원전 140/39년의 조각상


아테나이로 가는 길은 안전한 바닷길과 사론 만을 따라가는 위험한 육로가 있었다. 육로에는 그리스 신화 속 지하 세계로 통하는 여섯 개의 입구가 있고[8], 각 길목마다 악당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젊고 용감하며 영웅이 되기를 갈망했던 테세우스는 위험을 무릅쓰고 홀로 육로를 택했다. 그는 여정 중에 여러 악당과 괴물을 차례로 물리쳤다.

  • 에피다우로스에서는 곤봉을 휘두르는 도적인 페리페테스를 처치하고 그의 곤봉을 빼앗아 자신의 무기로 삼았다.
  • 코린토스 지협에서는 소나무 두 그루를 휘어잡아 지나가는 행인을 찢어 죽이는 악당 시니스를 같은 방식으로 처단했다.
  • 크로뮈온 지역에서는 파이아라고 불리는 거대한 멧돼지 (크로뮈온의 멧돼지)를 사냥했다.
  • 메가라의 해안 절벽에서는 지나가는 나그네의 발을 씻기게 한 뒤 절벽 아래로 차버려 바다거북의 먹이가 되게 하는 스케이론을 똑같은 방식으로 응징했다.
  • 엘레우시스에서는 행인들에게 레슬링 시합을 강요하여 패배하면 죽이는 왕 케르키온을 레슬링으로 쓰러뜨렸다.
  • 케피소스 강가에서는 자신의 침대에 행인을 눕히고 침대보다 키가 크면 몸을 잘라내고, 작으면 몸을 늘여 죽이는 악명 높은 산적 프로크루스테스를 그의 침대에 눕혀 똑같이 처치했다.


테세우스는 이들 모두를 그들이 행했던 잔인한 방식 그대로 처단하며 정의를 실현했다. 특히 프로크루스테스의 이야기는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 것을 억지로 맞추려는 행태를 비판하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는 관용구의 유래가 되었다.

마침내 아테나이에 도착한 테세우스는 아버지 아이게우스와 재회했지만, 아이게우스의 아내인 메데이아는 테세우스가 자신의 아들 메도스의 왕위 계승에 방해가 될 것을 우려하여 그를 독살하려 했다. 메데이아는 테세우스를 외지에서 온 위협적인 인물로 몰아 마라톤의 황소를 퇴치하도록 보내 죽이려 했으나, 테세우스는 황소를 성공적으로 제압했다. 이후 메데이아는 연회에서 테세우스에게 독이 든 술잔을 건넸지만, 아이게우스는 테세우스가 고기를 자르기 위해 꺼낸 칼을 보고 그가 자신의 아들임을 알아보았다. 아이게우스는 즉시 독이 든 술잔을 쳐서 떨어뜨리고 테세우스를 자신의 아들이자 후계자로 선언했다. 음모가 드러난 메데이아는 아테나이에서 추방되었다.

2. 2. 아테네에서의 활약

테세우스가 마라톤 황소를 잡는 모습 (아이손이 그린 킬릭스, 기원전 5세기)


테세우스는 아테네에 도착했을 때 자신의 정체를 바로 밝히지 않았다. 아이게우스 왕은 그를 환대했지만, 젊고 강한 이방인의 의도를 의심했다. 아이게우스의 아내 메데이아는 테세우스가 아이게우스의 아들임을 즉시 알아차리고, 자신의 아들 메두스 대신 테세우스가 왕위를 계승할 것을 우려했다. 메데이아는 테세우스를 제거하기 위해, 크레타의 힘을 상징하는 마라톤 황소를 잡아오도록 시켰다.

마라톤으로 가던 중, 테세우스는 폭풍우를 피해 헤칼레라는 노파의 오두막에 머물렀다. 헤칼레는 테세우스가 황소를 잡는 데 성공하면 제우스에게 제물을 바치겠다고 약속했다. 테세우스는 황소를 성공적으로 포획했지만, 오두막으로 돌아왔을 때 헤칼레는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다. 테세우스는 그녀를 기리기 위해 아티카의 데메 중 하나에 그녀의 이름을 붙이고, 그곳 주민들을 그녀의 양자로 삼았다.

테세우스가 승리하여 아테네로 돌아와 황소를 제물로 바쳤을 때, 메데이아는 그를 독살하려 했다. 그러나 술잔을 건네는 마지막 순간, 아이게우스는 테세우스가 가진 과 샌들을 보고 그가 자신의 아들임을 알아보았다. 아이게우스는 급히 독이 든 술잔을 쳐냈고, 부자는 극적으로 재회했다. 음모가 드러난 메데이아는 아시아로 도망쳤다.[9]

테세우스가 아테네에 나타났을 때, 그는 이미 트로이젠에서 아테네까지 해안 도로를 따라 여행하며 악명 높은 강도들을 처치한 것으로 명성이 높았다. 아이가 없던 아이게우스의 조카이자 팔라스의 아들들인 팔란티데스는 왕위 계승을 노리고 있었는데, 테세우스의 등장은 그들의 계획에 큰 위협이 되었다.[10] 팔란티데스는 테세우스를 제거하기 위해 함정을 팠다. 한 무리는 정면에서 아테네를 공격하고, 다른 무리는 가르게투스 근처에 매복하여 테세우스와 아이게우스가 정면의 적을 쫓을 때 후방을 기습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테세우스는 레오스라는 전령을 통해 이 계획을 미리 알게 되었다. 그는 한밤중에 몰래 도시를 빠져나가 매복하고 있던 팔란티데스 무리를 기습하여 모두 죽였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매복 부대가 전멸하자 팔라스가 이끌던 나머지 무리도 흩어져 버렸다.[11]

2. 3. 미노타우로스 퇴치

테세우스의 여러 일화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미궁에 들어가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처치한 것이다.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로스


당시 아테네는 크레타 섬의 미노스 왕에게 지배받고 있었다. 미노스 왕의 아들 안드로게오스는 아테네에서 열린 파나테나이아 축제에 참가했다가 뛰어난 실력으로 여러 경기에서 우승하며 인기를 얻었으나, 이를 시기한 이들에게 암살당했다. 아들의 죽음에 분노한 미노스 왕은 함대를 이끌고 아테네를 공격했고, 아테네는 결국 미노스에게 굴복했다. 그 대가로 아테네는 정기적으로 젊은 남녀를 크레타에 공물로 바쳐야 했다. 한 전승에 따르면 매년, 다른 전승에서는 9년마다 7명의 소년과 7명의 소녀를 보내 다이달로스가 만든 미궁에 사는 반인반수 괴물 미노타우로스의 먹이가 되게 했다.

미노타우로스 전설의 무대가 된 크노소스 궁전


세 번째 공물을 바칠 시기가 되자, 테세우스는 이 끔찍한 관행을 끝내기 위해 스스로 제물이 되어 크레타로 가겠다고 나섰다. 아버지 아이게우스 왕은 아들의 안위를 걱정하며 반대했지만, 테세우스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테세우스는 만약 살아서 돌아오게 된다면, 슬픔을 상징하는 검은 대신 기쁨을 나타내는 흰 돛을 달고 귀환하겠다고 아버지와 약속하고 아테네를 떠났다.[12]

키에티의 모자이크,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와 싸우는 모습,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 기원전 1세기 – 서기 1세기


크레타에 도착한 테세우스는 미노스 왕의 딸 아리아드네와 마주쳤다.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에게 첫눈에 반했고, 그를 돕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명공 다이달로스의 조언 또는 자신의 기지로[13] 테세우스에게 실타래단검을 몰래 건네주었다. 테세우스는 미궁에 들어가면 아리아드네를 아테네로 데려가겠다고 약속했다.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가 알려준 대로 실타래의 끝을 미궁 입구에 묶고 실을 풀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미궁 깊숙한 곳에서 잠들어 있는 미노타우로스를 발견한 테세우스는 격렬한 싸움 끝에 괴물을 처치했다. 일부 기록에서는 칼로 목을 찔렀다고 하고, 다른 기록에서는 목을 졸라 죽였다고 한다.[14]

미노타우로스를 퇴치하는 테세우스


헤르쿨라네움의 고대 프레스코에 있는 테세우스


미노타우로스를 처치한 테세우스는 묶어둔 실을 따라 무사히 미궁을 빠져나왔고, 함께 끌려온 아테네의 젊은이들과 아리아드네, 그리고 그녀의 여동생 파이드라와 함께 크레타를 탈출했다.

귀환하는 길에 일행은 낙소스 섬에 잠시 머물렀다. 테세우스는 이곳에서 아리아드네를 남겨두고 떠났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전해진다. 아테나 여신이 테세우스에게 아리아드네를 두고 떠나라고 지시했다는 설, 디오니소스(바쿠스) 신이 아리아드네에게 반해 그녀를 데려가 버렸다는 설(이후 디오니소스는 아리아드네를 아내로 맞이한다), 또는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에게 싫증이 나 버리고 갔다는 설 등이 있다. 낙소스 섬을 떠난 테세우스는 델로스 섬에 들러 미궁의 복잡한 경로를 모방한 '두루미 춤'을 추었다고 플루타르코스는 전한다.[15]

그러나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와의 일 때문인지, 아니면 승리의 기쁨에 취해서인지 아버지 아이게우스와 했던 흰 돛 약속을 잊어버렸다. 아테네로 돌아오는 배에는 여전히 검은 돛이 달려 있었다. 수니온 곶에서 배를 기다리던 아이게우스 왕은 멀리서 다가오는 배의 검은 돛을 보고 아들 테세우스가 죽었다고 생각해 절망한 나머지 절벽 아래 바다로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 이후 이 바다는 왕의 이름을 따서 에게 해라고 불리게 되었다.

한편, 로마의 역사가 플루타르크는 테세우스가 퇴치한 미노타우로스가 실제로는 미노아 문명의 강력한 장군이었던 '타우로스'라는 인물이었을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2. 4. 아테네의 왕

아테네에 도착한 테세우스는 자신의 정체를 바로 드러내지 않았다. 아이게우스 왕은 그를 환대했지만, 젊고 강한 이방인의 속내를 의심했다. 아이게우스의 아내 메데이아는 테세우스가 아이게우스의 아들임을 즉시 알아보고, 자신의 아들 메두스 대신 테세우스가 왕위를 이을까 염려했다. 메데이아는 테세우스를 제거하기 위해 크레타의 힘을 상징하는 마라톤 황소를 잡아오도록 시켰다.

마라톤으로 가는 길에 테세우스는 폭풍우를 만나 헤칼레라는 노파의 오두막에 머물게 되었다. 헤칼레는 테세우스가 황소를 잡는 데 성공하면 제우스에게 제물을 바치겠다고 약속했다. 테세우스는 황소를 성공적으로 잡았으나, 오두막으로 돌아왔을 때 헤칼레는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다. 테세우스는 그녀를 기리기 위해 아티카의 데메 중 한 곳에 그녀의 이름을 붙이고, 그곳 주민들을 그녀의 양자로 삼았다.

테세우스가 승리하여 아테네로 돌아와 황소를 제물로 바치려 할 때, 메데이아는 다시 그를 독살하려 했다. 그러나 아이게우스는 테세우스가 가진 칼과 샌들을 보고 그가 자신의 아들임을 알아차렸고, 마지막 순간에 독이 든 술잔을 쳐냈다. 이렇게 아버지와 아들은 극적으로 재회했고, 메데이아는 아시아로 도망쳤다.[9]

테세우스가 아테네에 나타났을 무렵, 그는 이미 트로이젠에서 아테네까지 해안 도로를 따라 이동하며 악명 높은 강도들을 처치한 영웅으로 명성이 높았다. 한편, 아이게우스에게 아들이 없었기에 왕위를 노리던 팔란티데스(팔라스의 아들들이자 아이게우스의 조카들)는 테세우스의 등장이 자신들의 계획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했다.[10] 그들은 테세우스를 제거하기 위해 함정을 팠다. 한 무리가 아테네 정면으로 진군하고, 다른 무리는 가르게투스 근처에 매복하여 테세우스와 아이게우스가 정면의 적을 추격할 때 뒤에서 기습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테세우스는 전령 레오스를 통해 이 계획을 미리 알게 되었고, 한밤중에 몰래 도시를 빠져나가 매복해 있던 팔란티데스 무리를 기습하여 모두 제거했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이 소식을 들은 팔라스가 이끌던 나머지 무리도 흩어져 도망갔다.[11]

아이게우스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테세우스는 자비로운 통치를 펼쳤다. 그는 예술가들을 후원했으며, 을 구워 만든 도자기 조각에 이름을 적어 시민대표를 선출하는 의회 제도를 최초로 도입했다. 이는 민주주의예술 후원의 시작으로 여겨진다. 선출된 시민 대표는 국왕과 행정부를 견제하는 역할을 수행했으며, 테세우스가 자리를 비웠을 때는 의회가 행정부의 상급 기관으로서 정책을 대신 결정하기도 했다.

또한 테세우스는 귀족, 승려, 공업인, 상인, 농업인직업 또는 신분을 법적으로 처음 구분했지만, 이들에게 동등한 시민권을 부여했다. 심지어 외국인에게도 아테네 시민권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신분 제도의 도입은 후대에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이로 인해 헤라클레스, 페르세우스, 벨레로폰 등 다른 영웅들에 비해 다소 저평가받기도 한다.

테세우스와 마라톤 황소를 묘사한 은제 킬릭스, 기원전 445–440년, 바실 보즈코프 컬렉션, 소피아, 불가리아 소장


테세우스의 측근 중 헤르무스라는 인물은 테세우스의 아내 안티오페를 남몰래 사랑했다. 헤르무스가 안티오페에게 고백했지만 거절당하자, 그는 절망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주변 사람들은 헤르무스를 벌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테세우스는 그의 사정을 듣고 오히려 그의 사당을 지어 넋을 위로하고, 헤르무스의 동생 디오클레스를 한 주의 주지사로 임명하는 관용을 보였다.

왕으로서 테세우스는 아테네를 다스리는 한편, 여러 모험에 참여했다. 아마존의 여왕 안티오페(또는 히폴리테)를 납치하여 아내로 삼거나, 황금 양털을 찾아 나선 아르고 원정대(아르고나우타이)에 합류하기도 했다. 또한 절친한 친구 페이리토스와 함께 스파르타의 공주 헬레네를 납치하고, 심지어 저승으로 내려가 여왕 페르세포네를 유괴하려 시도하기도 했다.

저승으로 모험을 떠나기 전,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의 여동생 파이드라와 결혼하여 잠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비극이 찾아왔다. 파이드라는 의붓아들인 히폴리토스에게 사랑을 느꼈고, 그에게 마음을 고백했지만 히폴리토스는 이를 격렬하게 비난하며 거절했다. 자신의 마음이 남편 테세우스에게 알려질 것을 두려워한 파이드라는 옷을 찢고 "히폴리토스에게 모욕을 당했다"는 거짓 유서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내의 유서를 본 테세우스는 크게 분노하여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기도했고, 그 결과 히폴리토스는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 나중에 진실을 알게 된 테세우스는 아내와 아들을 모두 잃은 슬픔에 깊이 잠겼다.

테세우스의 말년은 불행했다. 페르세포네를 납치하기 위해 오랫동안 저승에 머물며 나라를 비운 사이, 그는 아테네의 왕위를 잃었다. 결국 그는 스키로스 섬으로 피신하여 그곳의 왕 뤼코메데스에게 의탁했지만, 뤼코메데스는 테세우스가 자신의 왕위를 빼앗을 것을 두려워하여 그를 절벽에서 밀어 살해했다. 훗날 델포이의 신탁에 따라 테세우스의 유해는 아테네로 옮겨졌고, 아테네 시민들에 의해 성대하게 장례가 치러졌다.

2. 5. 아마존과의 전쟁

아이게우스의 뒤를 이어 아테나이의 왕이 된 테세우스는 아마존의 여왕 안티오페 또는 히폴리테를 납치하여 아내로 삼았다.

2. 6. 켄타우로스와의 전쟁

안토니오 카노바의 ''테세우스가 켄타우로스를 물리치는 모습'' (1804–1819), 쿤스트히스토리스ches 박물관


피리토스와 히포다미아가 결혼식에서 켄타우로스들을 맞이하는 모습. 폼페이의 고대 프레스코화


테세우스의 가장 친한 친구는 라피테스의 왕 피리토스였다. 피리토스는 테세우스의 용맹함에 대한 소문을 듣고 직접 확인하고자 마라톤에서 테세우스의 소 떼를 몰아냈다. 테세우스가 뒤쫓아 와 서로 싸우려 했지만, 막상 마주하자 서로의 모습과 용기에 감탄하여 깊은 우정을 맹세했다.[19] 둘은 함께 칼리돈 멧돼지 사냥에 참여하기도 했다.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에서 네스토르의 입을 빌려 피리토스와 테세우스를 "지구상에서 태어난 가장 강한 남자들"이자 "사나운 산악 부족을 완전히 파괴한" 젊은 시절의 영웅으로 칭송했다.

이후 피리토스는 히포다미아와 결혼하게 되었다. 결혼 축하연에 켄타우로스들도 초대받았는데, 그들은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며 신부 히포다미아를 포함한 여성들을 납치하려 했다. 이에 테세우스는 친구 피리토스와 함께 라피테스족을 도와 켄타우로스들과 싸웠고(켄타우로마키아), 결국 라피테스족이 승리했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서는 테세우스가 이 전투에서 "모든 사나운 켄타우로스들 중 가장 사나운" 에우리토스와 싸워 죽였다고 묘사한다.[20]

2. 7. 페이리토스와의 모험

테세우스의 가장 친한 친구는 라피테스의 왕 피리토스였다. 피리토스는 테세우스의 용맹함에 대한 소문을 듣고 이를 직접 확인하고자 마라톤에서 테세우스의 소 떼를 몰아냈다. 테세우스가 추격에 나서자 둘은 무기를 들고 마주 섰으나, 서로의 모습에 감탄하여 싸움을 멈추고 우정의 맹세를 맺었다.[19] 이후 두 영웅은 칼리돈 멧돼지 사냥에 함께 참여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 네스토르는 젊은 시절 영웅으로 피리토스와 테세우스를 언급하며, 그들이 "지구상에서 태어난 가장 강한 남자들"로서 "사나운 산악 부족"을 물리쳤다고 회상한다. 피리토스가 히포다미아와 결혼할 때, 결혼 연회에 초대된 켄타우로스들이 술에 취해 히포다미아를 비롯한 여성들을 납치하려 했다. 이로 인해 벌어진 전투(켄타우로마키아)에서 테세우스는 피리토스를 도와 싸웠고, 라피테스족은 승리했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따르면, 테세우스는 이 전투에서 가장 난폭한 켄타우로스인 에우리토스를 직접 죽였다.[20]

이후 아내를 모두 잃은 테세우스는 피리토스와 함께 각자 제우스의 딸을 아내로 삼기로 맹세했다.[23] 테세우스는 스파르타의 공주 헬레네를 선택했고,[24] 피리토스와 함께 그녀를 납치했다. 그들은 헬레네가 결혼할 나이가 될 때까지 테세우스의 어머니 아이트라에게 맡기고 아피드나에 두었다. 그러나 이후 헬레네는 그녀의 형제인 디오스쿠로이에게 구출된다.

테세우스가 헬레네를 데려가는 모습, 아테네의 적색상 암포라, 기원전 510년경


피리토스는 지하 세계의 여왕 페르세포네를 아내로 삼기를 원했다. 테세우스는 친구를 돕기 위해 함께 하데스가 다스리는 지하 세계로 내려갔다. 그러나 그들의 계획은 하데스에게 간파당했고, 두 영웅은 지하 세계에 감금되었다. 테세우스는 '망각의 의자'에 앉아 바위에 몸이 붙어버렸고, 피리토스는 푸리아이(복수의 여신들)에게 끌려가 벌을 받게 되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12가지 과업을 수행하던 헤라클레스가 지하 세계에 도착했다. 헤라클레스는 페르세포네를 설득하여 테세우스를 의자에서 떼어내 구출했다. 하지만 페리토스를 구출하려 하자 지하 세계가 크게 흔들려, 결국 페리토스는 구하지 못하고 지하 세계에 남겨졌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테세우스가 납치하려 한 것은 헬레네가 아니라 몰로소스 왕의 딸이었으며, 헤라클레스가 도착했을 때 페리토스는 이미 개에게 물려 죽은 상태였다는 다른 이야기도 전해진다.

테세우스가 아테네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디오스쿠로이가 헬레네와 아이트라를 스파르타로 데려간 후였다.

2. 8. 파이드라와 히폴리토스

파이드라는 테세우스의 두 번째 아내이자 미노스 왕의 딸로, 테세우스와의 사이에서 데모폰과 아카마스 두 아들을 낳았다. 파이드라는 이 두 아들이 아직 어릴 때, 테세우스와 아마존 여왕 히폴리테(혹은 안티오페) 사이에서 태어난 의붓아들 히폴리토스를 사랑하게 되었다. 일부 이야기에 따르면, 히폴리토스는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멀리하고 사냥과 순결의 여신 아르테미스를 열렬히 따랐는데, 이에 분노한 아프로디테가 벌로 파이드라가 히폴리토스를 사랑하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히폴리토스는 자신의 정숙함을 지키기 위해 파이드라의 사랑을 거절했다.

이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는 여러 작가에 의해 다르게 전해진다.

고대 그리스의 극작가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히폴리토스''에서는 파이드라의 유모가 히폴리토스에게 파이드라의 마음을 전한다. 히폴리토스는 이를 거절하며 분노하지만, 유모에게 비밀을 지키겠다고 맹세했기에 이를 발설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마음이 드러날 것을 두려워한 파이드라는 히폴리토스가 자신을 겁탈하려 했다는 거짓 내용의 글을 남기고 목숨을 끊는다. 아내의 유서를 본 테세우스는 격분하여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받은 세 가지 소원 중 하나를 사용해 아들에게 저주를 내린다. 이 저주로 인해 히폴리토스가 해변에서 전차를 몰 때, 포세이돈이 보낸 바다 괴물(혹은 황소)이 나타나 말들을 놀라게 했고, 놀란 말들은 히폴리토스를 끌고 가 죽음에 이르게 했다. 나중에 아르테미스 여신이 테세우스에게 나타나 모든 진실을 밝히고, 아프로디테의 추종자에게 복수할 것을 약속한다.

로마의 극작가 세네카의 비극 ''파이드라''에서는 파이드라가 직접 테세우스에게 히폴리토스가 자신을 강간하려 했다고 거짓으로 고발한다. 테세우스는 넵투누스(그리스 신화의 포세이돈에 해당)에게 아들을 죽여달라고 기도한다.[25] 넵투누스가 보낸 바다 괴물에 의해 히폴리토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파이드라는 죄책감에 시달리다 결국 자살한다.[26]

또 다른 버전에서는 파이드라가 히폴리토스를 고발한 뒤에도 자살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이 이야기에서는 디오니소스 신이 보낸 황소가 히폴리토스의 말들을 놀라게 하여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한다.

어떤 이야기가 되었든, 진실을 알게 된 테세우스는 아내와 아들을 모두 잃은 슬픔에 깊이 잠겼다.

한편, 비극적으로 죽은 히폴리토스를 중심으로 한 숭배가 생겨났다. 특히 결혼을 앞둔 처녀들은 그의 제단에 자신들의 머리카락을 바치며 순결을 기렸다. 또한,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가 히폴리토스를 부활시켰으며, 그가 이탈리아 라티움아리차 근처 신성한 숲에서 살고 있다는 믿음도 있었다.

2. 9. 죽음

테세우스는 크레타를 떠나기 전, 자신이 살아서 돌아오면 배에 흰 깃발을 달고, 죽어서 돌아오면 검은 깃발을 그대로 두겠다고 아버지 아이게우스와 약속했다. 그러나 미노타우로스를 처치하고 돌아오는 과정에서 경황이 없던 테세우스는 깃발을 흰색으로 바꾸는 것을 잊었다. 아크로폴리스 언덕에서 매일 아들의 배를 기다리던 아이게우스는 검정색 깃발을 단 배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절망하여 절벽에서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백일홍 전설이 여기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테세우스는 안티오페, 파이드라 등 여러 아내를 두었으나 모두 잃고 홀로 된 후, 친구 페이리토스와 함께 각자 제우스의 딸을 아내로 삼기로 약속했다. 그들은 스파르타의 공주 헬레네를 테세우스의 몫으로, 지하 세계의 여왕 페르세포네를 페이리토스의 몫으로 정했다. 테세우스는 헬레네를 납치하는 데 성공했으나, 페이리토스를 돕기 위해 함께 지하 세계로 내려가 페르세포네를 납치하려다 하데스에게 붙잡혀 감금되었다. 이후 헤라클레스가 지하 세계에 내려왔을 때 테세우스를 구출했으나, 페이리토스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구하지 못하고 남겨두었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테세우스가 납치하려던 것은 몰로소스 왕의 딸이었으며, 헤라클레스가 지하 세계에 도착했을 때 페이리토스는 이미 에게 물려 죽은 상태였다고도 한다.

그의 아내 파이드라는 의붓아들 히폴리토스를 연모하게 되었다. 파이드라는 히폴리토스에게 고백했지만 거절당하자, 모욕감과 두려움에 히폴리토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내의 유서를 본 테세우스는 분노하여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기도했고, 포세이돈이 보낸 황소 때문에 히폴리토스는 마차 사고로 죽게 된다. 나중에 진실을 알게 된 테세우스는 아내와 아들을 모두 잃은 슬픔에 깊이 잠겼다.

지하 세계에서 돌아온 후, 테세우스는 아테네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그가 오랫동안 자리를 비운 사이, 에렉테우스의 후손을 사칭한 메네스테우스가 시민들을 선동하여 쿠데타를 일으켰고, 결국 테세우스는 아테네에서 축출당했다. 왕위를 잃은 테세우스는 스키로스 섬으로 가서 은퇴 생활을 하려 했다. 그러나 스키로스 섬의 왕 리코메데스는 테세우스가 자신의 왕위를 빼앗을 것을 두려워하여 그를 절벽에서 밀어 떨어뜨려 살해했다.

기원전 475년, 아테네의 장군 키몬델포이의 신탁에 따라 스키로스 섬을 정복하고 테세우스의 유해를 찾았다. 그는 "청동 창날과 칼이 옆에 놓인 거대한 시체의 관"을 발견하여 이를 테세우스의 유해로 확인하고 아테네로 옮겨와 성대하게 장례를 치렀다.[28] 아테네 사람들은 헤파이스토스 신전을 테세우스의 신전(테세이온)으로 여기기도 했으나, 실제 그의 무덤이 있던 곳은 다른 장소로 추정된다.

일부 자료에 따르면 테세우스는 아르고호의 영웅 중 한 명이었다고도 한다.[27] 하지만 로도스의 아폴로니오스는 그의 저서 ''아르고나우티카''에서 테세우스가 아르고 원정 당시에는 지하 세계에 있었다고 기록했다. 테세우스는 파이드라와의 사이에서 아들 아카마스를 낳았는데, 그는 트로이 전쟁 당시 트로이의 목마 안에 숨어 있던 용사 중 한 명이었다. 또한 테세우스는 방랑하던 오이디푸스를 받아들이고, 아드라스토스가 테베 공략 7장수의 시신을 매장하는 것을 돕기도 했다.

3. 사후

테세우스가 죽고 천 년이 지난 페르시아 전쟁 시기, 어떤 사람이 땅을 파자 이 솟아났는데, 이때 아테네를 공격하러 오던 페르시아 이 물에 빠져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아테네 시민들이 델포이에 신탁을 구하자, 이는 테세우스의 영혼이 아테네 군을 도운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전쟁의 사령관이었던 키몬은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후 테세우스의 유해를 찾아 아테네 시내에 테세이온 신전을 짓고 안장했다. 이로써 테세우스는 사후 천 년 만에 명예를 회복하게 되었다. 이후 테세이온 신전은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 버림받은 이들, 매춘부 등의 피난처이자 안식처가 되었다.

헤로도토스와 같은 역사가들은 테세우스를 실존 인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희극 작가 아리스토파네스는 그의 작품 《개구리》에서 테세우스를 아테네의 여러 전통을 만들어낸 인물로 묘사했다. 한편, 미노스 문명(크레타 문명)과 아테네 사이의 패권 다툼이나 경쟁 관계를 중심으로 해석하는 이론[45]에 따르면, 테세우스는 실존 인물이 아니라 아테네 문명이 미노스 문명으로부터 독립하고 해방된 사건을 상징하는 가상의 인물일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플루타르코스가 쓴 《테세우스의 생애》에 따르면, 테세우스가 미노아 크레타에서 아테네로 돌아올 때 탔던 배는 아테네 항구에 수 세기 동안 기념물로 보존되었다.

> 테세우스와 아테네의 젊은이들이 돌아온 배는 30개의 노를 가지고 있었고, 데메트리우스 팔레레우스 시대까지 아테네인들에 의해 보존되었다.[16] 그들은 낡은 널빤지가 썩으면 제거하고 그 자리에 새롭고 더 튼튼한 목재를 넣었다...[17]

이 배는 항해가 가능한 상태로 유지되어야 했는데, 이는 테세우스의 성공적인 임무 완수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아테네인들이 매년 아폴론 신에게 경의를 표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테네인들은 이 배, 즉 아테네의 국립 갤리선을 이용하여 아폴론의 신성한 성소 중 하나인 델로스 섬으로 종교 사절단을 보내 신에 대한 약속을 지켰다. 이 종교 의식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의식이 시작되고 배가 델로스에서 돌아올 때까지 (보통 몇 주가 소요됨) 아테네에서는 사형 집행이 금지되었다.[18]

배를 보존하는 과정에서 낡거나 썩은 나무 부품은 계속해서 새로운 것으로 교체되었다. 이 때문에 철학자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원래 배의 어느 부분이 남아있는지 불분명해졌다고 지적하며, 과연 이 배를 계속해서 "같은" 배라고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졌다. 정체성의 본질에 관한 이러한 철학적 문제는 오늘날 '테세우스의 배' 역설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철학적 문제와는 별개로, 아테네인들은 이 배를 소중히 보존했다. 그들은 테세우스를 실제 역사적 인물로 믿었으며, 이 배는 그들에게 자신들의 신성한 기원과 연결되는 중요한 상징물이었다.

4. 평가 및 영향

테세우스의 인생은 구전되다가 그리스역사학자 헤로도토스의 역사 2편과, 로마 사람 역사학자 플루타르코스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등을 통해 전해진다. 플루타르코스는 테세우스 열전에서 미노타우루스를 물리치고 미궁을 탈출하며 아리아드네와 사랑에 빠진 그의 업적 등을 다양한 관점에서 설명한다.

테세우스는 아테네의 중앙 집권화를 이룩한 영웅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도리스 부족은 테세우스보다 헤라클레스를 더 높이 평가한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테세우스는 50세의 나이에 스파르타의 18세 헬레네를 납치했다고 한다. 헤로도토스는 이를 근거로 테세우스를 인격적으로 문제 삼으며, 업적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는 보잘것없는 인물이라고 혹평했다.

플루타르코스의 《테세우스의 생애》에 따르면, 테세우스가 미노아 크레타에서 아테네로 돌아올 때 사용했던 배는 아테네 항구에 수세기 동안 기념물로 보존되었다.

> 테세우스와 아테네의 젊은이들이 돌아온 배는 30개의 노를 가지고 있었고, 데메트리우스 팔레레우스 시대까지 아테네인들에 의해 보존되었다.[16] 그들은 낡은 널빤지가 썩으면 제거하고 그 자리에 새롭고 더 튼튼한 목재를 넣었다...[17]

이 배는 항해 가능한 상태로 유지되어야 했다. 테세우스의 성공적인 임무에 대한 보답으로 아테네인들은 이후 매년 아폴론을 기리기 위해 델로스 섬으로 사절단을 보내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이 종교 의식이 시작될 때부터 배가 델로스에서 돌아올 때까지 (몇 주가 소요됨) 사형 집행은 허용되지 않았다.[18]

배를 보존하기 위해 낡거나 썩은 나무는 계속 교체되었다. 이 때문에 철학자들은 원래 배의 어느 부분이 남아 있는지 불분명하다고 생각했고, 이는 그 배가 과연 '같은' 배로 간주될 수 있는지에 대한 철학적 질문, 즉 '테세우스의 배' 역설로 이어졌다. 이러한 철학적 문제와는 별개로, 아테네인들은 테세우스를 실존 인물로 믿었기에 그 배를 보존하며 자신들의 신성한 기원과 연결되는 유형적인 증거로 삼았다.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르스의 머리를 들고 있다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르스'' (1843), 앙투안루이 바리의 청동 조각


테세우스의 업적, 아테네의 적색 채색 도기 킬릭스, 기원전 440–430년경 (대영 박물관)

  • 기원전 6세기 익명의 시인이 지은 서사시 ''테세이스''(현재 소실됨)는 테세우스 관련 신화를 다루었다.[29]
  • 소포클레스비극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에서 테세우스는 주요 등장인물이다.
  •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히폴리토스''와 세네카의 ''파이드라''는 테세우스의 아들 히폴리토스의 죽음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 제프리 초서의 서사시 "기사의 이야기"(캔터베리 이야기 중 하나)에서 테세우스는 아테네 공작이자 이폴리타의 남편으로 등장한다.
  • 야코프 아이러는 희곡 ''테세우스''(1618)를 썼다.
  • 라신의 ''파이드라''(1677)는 테세우스, 히폴리토스, 파이드라를 등장시킨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한여름 밤의 꿈''과 ''두 귀족 사촌''에서 테세우스는 아테네 공작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히폴리타도 두 작품에 모두 등장한다.
  • 1898년 단편 소설 ''페르세우스와 고르곤의 머리 이야기''에 테세우스 신화가 묘사된다.
  • F. L. 루카스의 서사시 ''아리아드네''(1932)는 미궁 신화를 재해석한다.[30]
  • 앙드레 지드의 ''테세''(1946)는 노년의 테세우스가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가상의 자서전이다.
  • 메리 르노의 소설 ''왕은 죽어야 한다''(1958)와 속편 ''바다에서 온 황소''(1962)는 테세우스 전설을 극적으로 재현한다.
  • 에반젤린 월턴의 역사 소설 ''칼은 단조된다''(1983)는 테세우스와 안티오페의 이야기를 다룬다.[31]
  • 프란 로스의 1974년 소설 ''오레오''는 테세우스 신화에서 영감을 얻었다.[32]
  • 스티븐 도빈스는 시 ''미궁 속의 테세우스''(1986)에서 아리아드네, 테세우스, 미노타우르스 신화를 재해석했다.
  • ''프라이트 나이트'' 만화 시리즈 12호 ''황소 채찍질''(Bull-Whipped)에서는 아리아드네의 환생이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르스를 부활시킨다.
  • 키르 불리초프의 1993년 책 ''테세우스의 생애에 대한 시도''(Покушение на Тезеяru)는 테세우스의 삶을 체험하는 가상 현실 투어 중 암살 음모를 다룬다.
  • 알렉세이 랴비닌의 책 ''테세우스: 고대 신, 여신, 왕, 전사들의 이야기''(2018)는 테세우스, 아이게우스, 미노타우루스, 아리아드네, 피리토스 등의 신화를 재해석한다.[33][34]
  • 트로이 데닝의 1996년 소설 ''고통의 페이지''는 기억 상실증에 걸린 테세우스가 플레인스케이프 세계관에서 자신의 과거를 찾는 이야기이다.
  • 스티븐 프레스필드의 소설 ''아마존의 마지막''(2002)은 테세우스와 안티오페의 만남과 결혼, 이후 전쟁을 역사적 배경 속에서 그린다.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단편 소설 "아스테리온의 집"(La Casa de Asteriónes)에서 신화의 변형을 제시한다.
  • 영국 코미디언 토니 로빈슨은 "테세우스: 슈퍼 히어로"라는 제목으로 테세우스 이야기를 각색했다.
  • 진 울프의 ''새로운 태양의 책''에서는 주인공이 테세우스 신화와 햄프턴 로드 해전 이야기를 섞어 읽는다. (이 버전에서 테세우스 캐릭터는 '테시스' [학생의 아들]이며, 모니터와 미노타우르스를 혼동한 것으로 보인다.)
  • 장바티스트 륄리는 필리프 키노의 대본을 바탕으로 오비디우스의 내용을 각색하여 초기 프랑스 오페라 ''테세''(1675)를 작곡했다.[35]
  •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은 니콜라 프란체스코 하임의 대본을 바탕으로 오페라 세리아 ''테세오''(1713)를 제작했다.[36]
  • 장-필립 라모의 오페라 ''이폴리트 에 아르시''(1733)는 라신을 바탕으로 하며 테세우스를 등장시킨다.
  •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루스의 허구적 버전은 1960년 이탈리아 검과 샌들 영화 ''테세오 콘트로 일 미노타우로''[37]와 2006년 공포 영화 ''미노타우루스''[38]에 등장한다.
  • 영화 ''신들의 전쟁''(2011)은 헨리 카빌이 테세우스 역을 맡아, 티탄족을 풀어 신들과 싸우려는 악한 왕 하이페리온으로부터 인류를 구하는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각색했다.[39]
  • 비디오 게임 ''Hades''에서는 테세우스가 게임의 세 번째 레벨인 엘리시움의 보스로 미노타우루스(게임 내 이름 아스테리우스)와 함께 등장한다.[40]

참조

[1] 서적 Bibliotheca https://www.perseus.[...]
[1] 서적 Fabulae https://topostex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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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적 Life of Theseus
[3] 논문 Plutarch's Ariadne in Chariton's Chaereas and Callirhoe
[4] 웹사이트 Theseus, Hero of Athens https://www.metmuseu[...] 2018-11-25
[5] 웹사이트 Classical Mythology Tenth Edition 2016-10-31
[6] 서적 Classical Mythology Oxford University Press
[7] 문서 Rock "which had a hollow in it just large enough to receive these objects," Plutarch says.
[8] 문서 Compared to Labours of Hercules|Hercules and his Labours, "Theseus is occupied only with the sacred Entrances that are local to the lands of Athens"
[9] 웹사이트 Medea {{!}} Characteristics, Family, & Plays https://www.britanni[...] 2021-04-27
[10] Plutarch Theseus
[11] Plutarch Theseus
[12] 문서 Plutarch quotes Simonides to the effect that the alternate sail given by Aegeus was not white, but "a scarlet sail dyed with the tender flower of luxuriant Quercus ilex|holm oak."
[13] 문서 Ariadne is sometimes represented in vase-paintings with the thread wound on her spindle (textiles)|spindle.
[14] 서적 The Heroes of the Greeks
[15] Plutarch Theseus
[16] 문서 Demetrius Phalereus was a distinguished orator and statesman, who governed Athens for a decade before being exiled, in 307 BCE.
[17] Plutarch Theseus
[18] 서적 Plato: Complete Works https://archive.org/[...] Hackett
[19] Plutarch Theseus
[20] 문서 Metamorphoses
[21] 웹사이트 OVID, HEROIDES IV – Theoi Classical Texts Library https://www.theoi.co[...] 2022-09-11
[22] 서적 Heroides http://www.perseus.t[...]
[23] 문서 Scholia on Iliad III.144 and a fragment (#227) of Pindar, according to Kerenyi 1951:237, note 588.
[24] 서적 Deipnosophistae http://digicoll.libr[...]
[25] 웹사이트 Sen. Phaed. 941–949 https://www.perseus.[...]
[26] 웹사이트 Sen. Phaed. 1159–1198. https://www.perseus.[...]
[27] 서적 Apollodorus https://www.perseus.[...]
[28] 서적 Greek Religion Harvard University Press
[29] 서적 Classical Myth Oxford University Press 2021
[30] 서적 Ariadne http://www.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31] 웹사이트 'The Sword Is Forged' https://www.kirkusre[...] 2016-03-16
[32] 논문 '"Apple Pie with Oreo Crust": Fran Ross\'s Recipe for an Idiosyncratic American Novel' https://academic.oup[...] 2002-03-01
[33] 서적 Theseus. The story of ancient gods, goddesses, kings, and warriors. Антология
[34] 뉴스 O. Zdanov. Life and adventures of Theseus https://www.kp.ru/da[...] "KP" 2018-02-14
[35] 웹사이트 Lully's Thésée https://bemf.org/rec[...] 2023-05-04
[36] 웹사이트 Handel's "Teseo" – an introduction https://bachtrack.co[...] 2008-12-07 2023-05-04
[37] 웹사이트 The Minotaur, the Wild Beast of Crete https://letterboxd.c[...] 2022-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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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간행물 Immortals https://www.imdb.com[...] Relativity Media, Virgin Produced, Mark Canton Productions 2011-11-11
[40] 웹사이트 The joy of loving Theseus from Hades https://www.rockpape[...] 2020-10-29 2024-05-15
[41] 문서 Thēseus
[42] 논문 Plutarch's Ariadne in Chariton's Chaereas and Callirhoe 1996
[43] 웹인용 Theseus, Hero of Athens https://www.metmuseu[...] 2018-11-25
[44] 웹인용 Classical Mythology Tenth Edition https://global.oup.c[...] Oxford University Press 2016-10-31
[45] 문서 미노스 문화적 패권은 발굴되는 토기 유물에 반영되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패권과는 꼭 관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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