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라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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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시에라고르다는 멕시코 시에라 마드레 오리엔탈 산맥의 지맥에 위치한 지역으로, 케레타로, 과나후아토, 이달고, 산 루이스 포토시 주에 걸쳐 있다. 이 지역은 쥐라기 및 백악기 시대에 형성된 석회암 지형과 다양한 해발 고도 및 강수량으로 인해 다양한 생태계를 가지고 있으며, 멸종 위기종을 포함한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한다. 시에라고르다에는 세 개의 주요 강이 흐르며, 파누코 강 유역을 형성한다. 이 지역은 오토미족, 파메족, 치치메카족 등 다양한 원주민 공동체의 고향이며, 우아팡고 음악과 춤이 특징적인 문화적 유산을 가지고 있다. 케레타로와 과나후아토 주에는 시에라고르다 생물권 보전 지역이 지정되어 있으며, 18세기에는 다섯 개의 프란체스코회 선교부가 건설되었다. 이 지역에는 400개 이상의 고고학 유적이 있으며, 라스 라나스와 톨루킬라가 가장 중요한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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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에라고르다 | |
|---|---|
| 개요 | |
![]() | |
| 위치 | 케레타로 주, 멕시코 |
| 가장 가까운 도시 | 할판 데 세라 |
| 지정일 | 1997년 5월 19일 |
| 관리 주체 | 국립 보호 구역 위원회 (CONANP), 환경 천연 자원부 (SEMARNAT) |
| 웹사이트 | 시에라 고르다 |
| 지리 및 생태 | |
| 위치 | 멕시코의 케레타로 주, 과나후아토 주, 이달고 주, 산루이스포토시 주 |
| 설명 | 멕시코 동부 시에라 마드레 산맥의 일부 |
| 추가 정보 | |
| 뜻 | 뚱뚱한 산 |
2. 지리
이 지역은 시에라 마드레 오리엔탈 산맥의 지맥에 위치해 있으며, 약 2억 4천만 년 전에 형성된 일련의 산맥이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뻗어 있다.[3][8] 대부분은 쥐라기와 백악기 시대의 해저에서 형성된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후, 특히 이 지역의 광물 매장량이 유래된 이달고 주 동부 지역에서 화산암이 관입되었다.[3][8] 석회암은 침식의 영향을 받아 우아스테카 카르스트를 형성했으며, 이 지역에는 수많은 동굴과 수직 동굴(소타노)이 있으며, 일부는 수백 미터 깊이로 뻗어 있다.[3][9]
시에라 고르다는 협곡과 가파른 산을 포함한 매우 험준한 지형으로 특징지어진다. 해발 고도는 할판의 리오 산타 마리아 협곡의 해발 300m에서 피날 데 아몰레스의 세로 데 라 핑귀카의 해발 3100m까지 다양하다. 이달고 지역의 가장 중요한 봉우리는 해발 2820m의 세로 캉간도이다.[8] 강수량 또한 연간 350mm에서 2000mm까지 크게 다르다. 이 산들 중에는 시에라 알타 데 이달고와 관련된 봉우리, 사모라노의 소나무 숲, 엑스토라즈 협곡, 우아즈마존타의 경사면, 다섯 개의 선교지가 있는 산간 계곡, 라 우아스테카로 이어지는 구릉이 있다. 고도와 강수량의 광범위한 변화는 다양한 동식물을 가능하게 한다.[3][10]
시에라 고르다에는 파누코 강 유역의 일부인 산타 마리아 강, 엑스토라즈 강, 모크테주마 강 등 세 개의 주요 강이 있다. 세 강 모두 깊은 협곡을 지나며 이 지역의 주와 시 경계를 형성하는 경향이 있다. 산타 마리아 강은 케레타로와 산 루이스 포토시 사이의 경계의 일부를 이루고, 모크테주마 강은 케레타로와 이달고 사이의 경계의 일부를 이룬다. 툴라 강과 모크테주마 강은 이달고의 시에라 고르다에서 만난다. 여기서 모크테주마 강 협곡은 12km 뻗어 있으며 바닥에서 480m 상승한다.[3][8]
2. 1. 기후
시에라고르다 지역의 기후는 고도에 따라 다르며, 산맥은 주요 수분 공급원인 멕시코만으로부터 자연적인 장벽을 형성한다. 산맥의 동쪽은 지형성 강수 형태로 서쪽보다 훨씬 더 많은 강우량을 보이는데, 멕시코만에서 오는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산비탈을 오르면서 구름이 형성되기 때문이다.[3] 동쪽에는 숲과 심지어 열대 우림도 발견되는 반면, 서쪽은 사막과 사막과 유사한 환경이 지배적이다. 동쪽, 특히 높은 산악 지역에서는 아침에 보통 구름이 끼고 안개가 낀다.[3] 가장 많은 수분은 시에라고르다 지역의 북동쪽 가장자리, 즉 산루이스포토시 주와 이달고 주에 걸쳐 있는 라 우아스테카 지역으로 유입된다.[11] 이 지역 전체에서 가장 추운 온도는 12월과 1월 사이에 나타나고, 4월과 5월에 최고 기온을 기록한다. 기온은 피날 데 아몰레스와 같은 고도가 높은 지역의 연평균 13°C에서 할판과 같은 낮은 지역의 24°C까지 고도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가장 높은 고도에서는 서리와 기온 강하가 드물지 않게 발생한다.[4][12] 2010년에는 시에라고르다 지역의 피날 데 아몰레스 시에서 18년 만에 처음으로 상당한 양의 적설량이 기록되었으며, 기온은 -4°C까지 떨어졌다. 어떤 곳에서는 적설량이 15cm 깊이로 쌓였다.[13]3. 생태
시에라고르다는 멕시코에서 생물 다양성이 가장 풍부한 지역 중 하나로, 침엽수림, 참나무 숲, 낙엽수림, 사막, 반사막 등 다양한 생태계가 나타난다.[3][10]
재규어, 퓨마, 흑곰, 녹색 앵무새, 베라크루스 자고새, 훔볼트 나비 등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다.[14] 멸종 위기 식물 종으로는 biznaga gigante (''Echinocactus platyacanthus''), chapote (''Diospyros riojae''), guayamé (''Abies guatemalensis''), 목련 (''Magnolia dealbata'') 및 페요테(''Lophophora diffusa'')가 있다.[14] 제왕나비는 겨울 서식지로 이동하는 도중에 이 지역을 지나간다.[15]
최근 가뭄으로 나무껍질 딱정벌레 (''Dendroctonus adjunctus'')와 겨우살이 (''Arceuthobium sp.'') 같은 해충 피해가 발생했으며, 이는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여겨진다.[16]
3. 1. 생물권 보전 지역
시에라고르다 지역에는 케레타로와 과나후아토 주에 각각 하나씩, 두 개의 주요 생물권 보전 지역이 있다.3. 1. 1. 케레타로 생물권 보전 지역
마르타 이사벨 루이스 코르소와 그녀의 시에라고르다 생태 그룹(GESG, ''Grupo Ecológico Sierra Gorda'')의 노력으로, 케레타로 주의 시에라고르다 생물권 보전 지역은 다양한 종과 생태계로 인해 1997년 5월 19일 법령에 의해 지정되었다.[4][17] 이 보호 구역은 약 40만 헥타르에 걸쳐 케레타로 주와 산루이스포토시 주에 걸쳐 있으며,[14] 케레타로 주 전체 면적의 약 32%를 차지한다.[18] 2001년에는 유네스코의 인간과 생물권 국제 네트워크에 13번째 멕시코 보호 구역으로 추가되어 생태 다양성 측면에서 1위를 차지했다.[4] 또한 꼰세호 인터나시오날 파라 라 프레세르바시온 데 라스 아베스 멕시카나스(Consejo Internacional para la Preservación de las Aves Mexicanas)에 의해 아베스 데 임포르탄시아 파라 라 콘세르바시온(Área de Importancia para la Conservación de las Aves, 조류 보존 중요 지역)으로 인정받고 있다.[9]이 생물권 보전 지역은 지역 사회의 노력으로 지정되었으며, 멕시코에서 이런 방식으로 지정된 유일한 곳이다. 원래 지정된 면적은 383,567 헥타르이다.[22] 지정 당시 이 보호 구역에는 약 10만 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683개의 공동체가 있었으나,[19][20] 그 이후로 인구는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21] 케레타로 주에서 이 생물권 보전 지역은 할판 데 세라, 란다 데 마타모로스, 아로요 세코, 피날 데 아몰레스(영토의 88%) 및 페냐밀레르(영토의 69.7%) 자치구를 포함한다.[9]
이 지역의 다양성은 보호 구역에서 발견되는 식물과 동물의 종의 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308종의 식물,[21][25] 130종의 포유류, 71종의 파충류 및 23종의 양서류가 있으며, 여기에는 6종의 고양이과 동물, 검은곰 (''Ursus americanus'') 및 멕시코 거미 원숭이 (''Ateles geoffroyi vellerosus'')가 포함된다. 360종의 조류가 있으며, 이는 이 나라 조류 종의 30% 이상을 차지하며, 군용 마코 앵무 (''Ara militaris'')를 포함한다.[18][25] 이동하는 제왕나비는 남쪽으로 가는 길에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며,[24] 나비 종의 수는 미국과 캐나다 전체를 합친 것보다 많다.[16] 이 종들 중 많은 수가 멸종 위기에 처해 있으며, 아직 연구되지 않은 종도 많다.[21]
케레타로의 생물권 보전 지역은 세마르나트(Semarnat)의 코미시온 나시오날 데 아레아스 나투랄레스 프로테히다스(Comisión Nacional de Áreas Naturales Protegidas)가 관리한다.[22]
3. 1. 2. 과나후아토 생물권 보전 지역
구아나후아토주로 뻗어 있는 시에라고르다 지역은 2007년에 생물다양성을 보존하기 위해 생물권 보전 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이 보호 구역은 시추 시 전체, 빅토리아의 70%, 아타르헤아의 65%, 산 루이스 데 라 파스의 약 1/4, 산타 카타리나의 작은 부분을 포함하여 236882ha에 달한다.[29][30] 이곳의 보전 지역은 빅토리아, 아타르헤아, 시추 시에 있는 핵심 지역과 주변 지역으로 나뉜다. 핵심 지역에서는 생태 관광, 연구 활동, 전통적인 경제 활동 및 저영향 개발만 허용된다.[29]이 시에라고르다 지역에는 나무에서 선인장에 이르기까지 84종의 식물, 182종의 조류, 42종의 포유류가 서식한다.[29] 험준한 지형으로 인해 평균 기온이 16°C~19°C 사이에서만 변동하지만 매우 다양한 미기후가 존재한다. 가장 낮은 지점은 해발 650m의 시추에 있는 파소 데 오르미가스 협곡으로 열대 과일에 적합한 매우 따뜻한 기후를 보인다. 가장 높은 지점은 해발 3300m의 피날 데 사모라노이며, 그 다음으로 엘 피카초 데 푸에블로 누에보, 엘 조릴로, 엘 쿠에르보가 모두 해발 2700m 이상이다. 가장 큰 변화는 건조 지역과 습한 지역에서 나타나며, 이는 종종 비교적 가까이에 위치할 수 있으며, 식생은 열대 우림에서 소나무 숲, 사막 풍경으로 변화한다.[31]
3. 1. 3. 보존 과제
시에라 고르다는 멕시코에서 인구가 두 번째로 많은 자연 보호 구역이며, 심각한 빈곤 문제를 겪고 있어 보존 노력과 지역 생계 유지 간의 균형이 필요하다.[18][24] 대규모 이주로 인구가 절반으로 줄면서 자연 자원에 대한 압박이 완화되었지만,[21][25] 불법 벌목은 여전히 심각한 문제이다.[24][33] 특히 란다 데 마타모로스, 피날 데 아몰레스, 할판 데 세라에서 불법 벌목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33]경작지를 확보하려는 지역 농부들로 인해 숲이 개간되면서 샘과 강이 마르고 표토가 침식되는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엄격한 환경 보호 법률이 존재하지만 시행이 부족하여, 지역 사회에서 자체적으로 산림 보호에 힘쓰고 있다.[24]
가뭄과 소나무하늘소, 유럽 겨우살이 등의 해충 발생 문제도 심각하다. 가뭄으로 인해 나무가 약해져 해충 피해가 커졌다.[34]
지역 사회를 돕기 위한 노력으로 보존 토지 소유자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고 생태 관광을 활성화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연방 정부는 유엔과 함께 토지 소유자에게 "환경 서비스" 비용을 지불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했지만, 보호 구역의 5.6%에 불과하다.[25] 시에라 고르다 에코투어스(Sierra Gorda Ecotours)는 생태 관광을 지원하는 단체이다.[18]
3. 1. 4. 시에라 고르다 데 이달고
이 지역은 시에라 마드레 오리엔탈 산맥의 지맥에 위치하며, 약 2억 4천만 년 전에 형성된 산맥들이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뻗어 있다.[3][8] 쥐라기와 백악기 시대의 해저에서 형성된 석회암이 대부분이지만, 이달고 주 동부 지역에는 화산암이 관입되어 광물 매장량이 형성되었다.[3][8] 시에라 고르다는 협곡과 가파른 산을 포함한 매우 험준한 지형이 특징이며, 이달고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봉우리는 해발 2,820m의 세로 캉간도이다.[8]시에라 고르다 데 이달고는 생물권 보전 지역은 아니지만, 다양한 생태계를 포함하고 있다.[8] 지질학적 역사 후반에 화산암의 비율이 더 높다.[8] 이달고의 시에라 고르다는 건조한 남쪽과 숲이 우거진 북쪽으로 나뉜다. 북쪽에는 소나무, 오코테, 참나무, 노간주나무 등이 자라는 숲이 있고, 남쪽은 관목 덤불이 주를 이룬다.[35]
이 지역은 모크테수마 강과 툴라 강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모크테수마 강에는 깊이 480m의 협곡이 있으며, 이달고와 케레타로 사이의 경계는 두 강이 만나는 지점으로 표시된다.[8]
4. 인물과 문화
시에라고르다 지역에는 오토미족, 파메족, 치치메카족 등 다양한 원주민 공동체가 거주하고 있다.[35] 원주민이 이 지역 인구의 아주 작은 비율을 차지하지만, 우아스테카 문화는 선 스페인 시대부터 이 지역에 강력한 영향을 미쳐왔다.[30] 대부분의 인구는 500명 미만의 매우 작은 농촌 공동체에 거주하며, 이 지역에는 사회적 갈등이나 불법 마약 거래와 관련된 문제는 없다.[16][29][21]
이 지역의 생태적 중요성이 널리 알려지면서 관광은 최근의 현상이 되었다.[37] 3월에는 케레타로 주의 시에라고르다 지역을 가로지르는 "에스칼레라 델 인피에르노"(지옥의 사다리)라는 연례 사이클링 행사가 열린다. 이 행사는 베르날에서 시작하여 에세키엘 몬테스, 카데레타를 거쳐 산 호아킨에서 끝나며, 총 137km이며, 이 중 28km가 오르막길이다.[38]
4. 1. 우아스테카 문화
우아팡고는 시에라고르다 지역의 지배적인 토착 음악 및 춤 스타일이다. 시추, 피날 데 아몰레스, 산 호아킨에서 이와 관련된 축제가 열리며, 이곳에서 우아스테카의 영향력이 가장 강하다.[36]4. 2. 빈곤과 이주
시에라고르다는 생태적, 문화적 풍요로움에도 불구하고 빈곤 수준이 높다.[14] 대부분의 주민들은 농업, 축산업, 광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며,[16][35][29] 일부 지역에서는 이러한 전통 경제가 법으로 보호받고 있다.[16][29] 그러나 극심한 빈곤으로 인해 많은 사람, 특히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이주하고 있다. 이로 인해 많은 지역이 본국으로 송금되는 돈에 의존하며, 그중 상당 부분은 미국에서 온다. 일부 지역에서는 4가구 중 1가구가 송금 자금으로 생계를 유지한다.[21]5. 정착지
잘판 데 세라, 시추, 시마판은 시에라고르다 지역의 주요 정착지이다. 잘판 데 세라는 "시에라고르다의 심장"이라 불리며,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에 자갈길이 있는 특징을 가진다.[4] 과나후아토주에 있는 시추는 광산 도시로 설립되었으며, 해발 고도가 다양하고 우아스테카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40] 시마판은 이달고주에 있으며 시에라고르다에서 가장 큰 도시로, 오토미족이 지배했던 지역이며 광업이 발달했다.[41]
5. 1. 할판 데 세라
잘판 데 세라는 케레타로 주 북쪽에 위치하며, 지리적 위치와 생물권 내 유일한 도시라는 점 때문에 "시에라 고르다의 심장"이라고 불린다.[4] 잘판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중심부 주변에는 자갈길이 있다. 아침에는 자주 안개가 끼거나 구름이 많지만, 정오쯤에는 햇볕이 쨍하게 내리쬔다.[37] 최근에는 5개의 프란체스코 수도원과 관련된 생태 관광 및 관광이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면서 경제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잘판 댐은 수생 조류의 서식지로서 중요해졌다.[4]
잘판 데 세라에는 시에라 고르다 지역의 역사와 지리를 다루는 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 건물은 1576년에 요새이자 군사 기지로 처음 건설되었으며, 16세기 말에 재건되었다. 1990년에 개조되어 1991년에 박물관으로 개관했으며, 선사 시대부터 개혁 전쟁까지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8개의 전시관, 서점, 시청각실, 임시 전시관, 연구 센터 및 도서관을 갖추고 있으며, 교육, 생태 및 문화 행사를 조직한다.[39]
5. 2. 시추
과나후아토주 시추는 1585년에 광산 도시로 설립되었다. 자치구에는 해발 2400m인 세로 엘 데스카라도(Cerro El Descarado)와 산타마리아 강과 Xoconoxtle가 만나는 해발 826m 지점이 있는데, 이는 주에서 가장 낮은 고도이다. 인구는 11,000명이 넘으며, 원주민은 매우 적지만, 우아스테카 문화의 영향이 두드러진다.[40]5. 3. 시마판
시마판은 이달고주에 있는 시에라고르다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시에라고르다의 다른 지역과 달리 이 지역은 오토미족이 지배했으며, 1522년에 스페인 도시가 설립되었다. 주로 광업 중심지이며, 주변의 가파른 산에서 다양한 금속과 돌을 채굴한다. 자치구에는 상당히 많은 수의 원주민 언어 사용자가 있으며, 총인구 약 34,000명 중 3,000명 이상이 이에 해당한다.[41]6. 역사
시에라고르다는 6,000년에서 4,000년 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으며, 지역 남부의 카데레타 데 몬테스 자치구에 있는 메사 데 레온(Mesa de León)에서 최초의 정착지가 발견되었다.[4] 이후 시에라고르다의 역사는 '선 스페인 시대', '식민지 시대', '독립 이후', '현대'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사와 수은 채광은 선 스페인 시대부터 시에라고르다 남부에서 이루어졌다. 1970년대까지 상업 광산이 운영되었고, 2000년에 마코니의 마지막 광산이 폐쇄되었지만, 여전히 소규모 채굴이 이루어지고 있다. 연구자들은 오랜 수은 채광 역사가 환경 오염을 유발하여 이 지역의 특정 만성 질환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46]
익스토라즈 강에는 85m 높이의 댐을 건설하여 1.18억m3의 물을 저장하고, 138km 길이의 수로를 통해 케레타로 시로 물을 운송할 계획이 있었으나, 지역의 반대가 있었다.[47]
시에라고르다 지역의 고고학 연구는 19세기 후반 광산 기술자들의 고고학적 발견 보고로 시작되었다. 일부 기술자들은 주 정부의 지원을 받아 라스 라나스와 톨루킬라 유적의 지도를 작성하고 탐험했다. 1931년 고고학자 에두아르도 노게라와 건축가 에밀리오 쿠에바스가 방문하기 전까지 추가 탐험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1939년까지 케레타로와 시에라고르다에서 각각 27개, 23개의 유적이 확인되었다.[3] 400개 이상의 고고학 유적이 있으며,[47] 아우아카틀란, 아로요 세코, 아르키토스, 카노아스, 세로 데 라 캄파나, 세로 델 사포, 콩카, 데코니, 에카티틀란, 엘 닥터, 라 콜로니아, 라 플라주엘라, 로보, 로스 모크테수마스, 푸에블로 비에호, 푸리시마, 라나스, 사비노, 산 후안, 소야탈, 탄카마, 탄코욜, 틸라코, 톨루킬라, 토나티코, 비가스 등 26개의 주요 유적이 있다.[10]
인류학적 관점에서 케레타로, 특히 북동부는 문화 발전과 소멸, 그리고 메소아메리카 및 북쪽 문화와의 관련성 때문에 흥미롭지만, 관련 지식은 제한적이다.[48] 이 지역 사람들은 카사스 그란데스와 현재의 뉴멕시코, 애리조나와 같은 북쪽 지역과 문화적, 경제적 접촉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48] 카데레이타 데 몬테스 자치구의 알타미라 지역 근처 동굴에서 발견된 소녀 미라는 농업 정착의 증거를 보여준다.[49] 시에라고르다 대부분 지역의 반사막 조건은 서기 1000년대 말 기후 변화로 인해 지역이 건조해지고 도시와 지배 체제가 종식되면서 나타났을 가능성이 있다.[48]
6. 1. 선 스페인 시대
초기에는 수렵 채집 생활을 했으나, 선(Pre Classic) 시대 말까지 점차 정착 농업 마을이 발전했다.[3][4] 농업은 계곡 저지대, 평원, 산기슭에 집중되었으며, 더 많은 농지를 만들기 위해 삼림 벌채도 이루어졌다. 대부분의 정착지는 강이 좁은 협곡 대신 샘, 연못, 작은 호수와 같이 쉽게 물을 구할 수 있는 곳 근처에 있었다.[3] 우아스테카족은 이 지역 북동쪽에서 면화를 재배했다.[12]6세기에서 10세기 사이는 이 지역 정착의 절정기로, 농업과 광업에 기반한 경제를 가진 많은 수의 성공적인 정착지가 있었다.[3] 멕시코만, 우아스테카 지역, 멕시코 고원 사이의 상업적, 문화적 교류가 활발했으며, 산 루이스 포토시의 리오 베르데, 테오티우아칸, 툴라, 바히오 서쪽 및 케레타로와 산 후안 델 리오 계곡과 관련된 유물이 발견되었다.[4] 시에라고르다 사람들은 남쪽의 멕시코 고원보다 서쪽, 북쪽, 동쪽 사람들과 더 많은 관계를 맺었다.[3]

이 시기에 라스 라나스와 톨루킬라 도시가 성장했다. 두 도시의 경제는 주사 광산 및 무역로 통제에 기반을 두었으며, 주사는 붉은 안료로 사용되었다. 주사 광산은 계층적인 노동 관행을 필요로 했으며, 이는 도시 발전을 이끌었다. 이 지역은 중앙 아메리카에 붉은 안료를 제공하는 주요 공급원이었다.[3]
고전기 말기에 시에라고르다 지역 대부분은 농업 마을로 채워졌으며, 멕시코 고원과 멕시코 만 해안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 특히 후자에서 온 사람들이 많았다. 정착지는 기능에 따라 중요도 순위가 매겨졌으며, 라스 라나스와 톨루킬라가 가장 중요한 위치였다.[3]
선 스페인 시대 건축물은 주요 도시 중심지에서 가장 잘 발달했다. 이 도시들은 메소아메리카 공놀이 경기장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여러 광장과 피라미드 기단 위의 기념비적인 구조물로 이어진다. 행정 건물 및 주거와 같은 다른 구조물은 사각형과 둥근 형태 모두에서 발견되지만, 대부분은 처마 장식이 있는 탈루드(talud)가 위에 얹혀 있다. 많은 도시가 언덕 위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공간을 만들기 위한 계단식 지반 평탄화는 또 다른 특징이다.[3]
이 지역의 도자기는 채색을 위해 이 지역의 광물 매장량과 이 지역 동쪽에서 온 올멕 기반의 영향을 받았다. 두 가지 모두의 강력한 예는 소위 "검은 올멕 도자기"의 생산이다.[10] 종교적 믿음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는데, 신이나 종교 달력을 식별할 수 있는 상징이 거의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장된 개인(때로는 희생)이 태아 자세로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을 나타낸다. 부장품에는 삶에서 사용된 많은 물건과 음식을 담았을 용기가 포함되어 있다.[3]
서기 200년에서 1000년 사이에 이 지역은 리오 베르데, 세라나 문화, 우아스테카의 세 지역으로 문화적으로 나뉘었다.[4] 오토미족은 서기 800년에 이 지역에 평화롭게 정착했다.[4]
11세기에 도시와 지배권의 발전이 중단되었다. 후기 고전 시대(900–1521) 동안 케레타로의 이 지역 모든 도시가 버려졌다. 기후 변화로 인해 이 지역이 건조해졌거나, 테오티우아칸을 포함한 중앙 아메리카의 여러 도시가 쇠퇴한 것처럼 사회적 현상 때문일 수 있다. 시에라고르다의 도시들은 완전히 버려졌지만, 이는 점진적으로 이루어졌을 수 있다. 라스 라나스와 톨루킬라의 증거는 농업 공동체가 버려지고 수렵 채집 공동체로 대체되면서 비폭력적 전환이 이루어졌음을 나타낸다.[3][4]
11세기부터 이주해 온 수렵 채집 문화는 식민지 시대까지 남아 있었으며, "치치메카"로 함께 분류되었다. 이들은 파메족, 심페체족, 과치칠족, 호나스족을 포함한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되었다. 모두 오토망게어족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하며, 문화적인 차이가 대부분이었다. 파메족은 주로 동부에서, 호나스족은 서부에서 발견되었다. 또한 오토미족과 우아스테카족도 발견되었다.[3][9]
6. 2. 식민지 시대
스페인은 일찍이 시에라고르다의 중심부로 진입하여 누뇨 데 구스만이 1527년에 할판 데 세라, 실리틀라, 탄코요르, 틸라코를 포함하는 옥시티파 지배권을 정복했다.[4] 그러나 초기 식민지 시대 동안 케레타로 시에라고르다는 치치메카가 스페인의 지배에 맞서 싸웠기 때문에 위험한 지역으로 남아 있었다.[4][11] 16세기와 17세기 동안 스페인은 이 지역을 서쪽, 동쪽, 남쪽으로 에워싸고 내부로 군사적, 선교적 침략을 가했다. 스페인 정착촌은 유목민 치치메카 부족에 대한 방벽을 형성하기 위해 빌라 데 카데레타와 같은 이 지역 남쪽에 시작되었다. 16세기 말에는 엘 조프레와 할판을 포함한 여러 요새가 이 지역에 설립되었다.[11]케레타로 지역에 대한 체계적인 복음화는 17세기까지 시도되지 않았는데, 동부의 아우구스티노회와 서부의 프란체스코회가 1670년대와 1680년대에 헤로니모 데 라브라 대위의 군사적 보호 아래 선교부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라브라는 1683년에 사망했고, 선교부는 보호를 받지 못했다. 도미니코회가 곧 도착했지만 1700년까지 그들과 아우구스티노회, 도미니코회는 이 지역 대부분의 선교부를 버리고 톨리만, 카데레타, 에스카넬라, 마코니에 프란체스코회만 남겨두었다.[4][42]
1740년에 멕시코 시티의 식민 정부는 시에라고르다의 원주민 저항을 없애기로 결정하고, 호세 데 에스칸돈이 이끄는 원정대를 보냈다. 에스칸돈은 주로 치치메카 호나스족과 싸웠고, 1749년 메디아 루나 전투에서 치치메카는 결정적으로 패배했다.[3][4]
케레타로의 가장 북쪽에서 파메족은 더 평화롭고 스페인 지배를 수용했다. 프란체스코회가 선교부 주변의 더 큰 정착촌으로 묶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사람들이었다.[4][42] 할판의 선교부는 후니페로 세라가 1750년에 이 지역에 도착하기 전에 설립되었지만, 세라는 이 지역의 다섯 개의 주요 선교부를 건설하고 지역 사람들의 복음화를 완료한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4][10] 실제로는 콩카의 호세 안토니오 데 무르기아, 틸라코의 후안 크리스피, 탄코요르, 란다의 미겔 데 라 캄파를 포함한 다양한 프란체스코회 수사들의 지휘 아래 파메족의 손으로 선교부가 건설되었다.[42]

6. 3. 독립 이후
멕시코 독립 전쟁의 일환으로 1810년에 이 지역에서 여러 차례 봉기가 발생했다. 1819년에는 할판 마을이 왕당파에 의해 불태워지고 약탈당했다.[4]19세기에는 이 지역은 여전히 원주민에 의해 지배되었으며, 메스티소와 크리오요의 작은 정착촌이 있었다. 이 시기에 토지, 물, 특히 숲과 같은 천연 자원을 놓고 원주민 집단과 다른 집단 간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1847년 멕시코 군대 탈영병에 의해 시에라고르다 반란이 시작되었다. 반란은 과나후아토에서 산 루이스 포토시, 베라크루스에 이르기까지 시에라고르다 지역 거의 모든 부분으로 확산되었으며, 1847년에서 1849년 사이에 산타 마리아 델 리오, 시추, 리오베르데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다. 반군은 다양한 토지의 자유로운 사용, 부과금 폐지, 아시엔다 분할, 교구 교회 토지 권한 종료를 요구했다. 당국의 봉기 진압 노력은 초기에는 부분적으로만 성공하여, 1849년까지 반군은 시우다드 페르난데스, 리오베르데, 산타 마리아 델 리오와 같은 다양한 도시를 장악했다. 그러나 그해 정부는 키로스라는 가장 중요한 반군 지도자를 체포하여 처형했고, 이는 주요 저항을 분쇄하여 1850년까지 정부는 반란의 많은 부분을 진압할 수 있었다.[43]
토마스 메히아 장군은 할판에서 케레타로 주와 국가에 설치된 자유주의 정부에 대항하여 군사 행동을 수행했다. 그는 1857년에 케레타로의 주요 광장을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개혁 전쟁이 끝나자 멕시코의 막시밀리안 1세와 함께 처형되었다.[4]
1880년에 이 지역과 수도를 연결하기 위해 첫 번째 주요 (흙) 도로가 건설되어 이 지역의 경제 발전이 촉진되었다.[4]
할판은 이미 전력, 전화, 전신, 사탕수수 공장을 가지고 있어 1904년에 도시 지위를 얻었다. 1911년에는 폴리카르포 올베라 아래 할판에 그룹 레볼루시오나리오 아킬레스 세르단이 결성되어 프란시스코 I. 마데로 아래의 군대와 함께 싸웠다.[4]
1962년에서 1970년 사이에 현대적인 케레타로-할판 고속도로가 건설되었으며, 여러 다른 도로, 다리, 전기 및 급수 시설이 건설되었다.[4]
6. 4. 현대
이 지역의 경제는 식민지 시대 이후 거의 변하지 않고 주로 농업과 축산업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1989년 지역 주민들이 비정부기구 Grupo Ecológico Sierra Gorda를 결성하면서 이러한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이 단체는 환경 교육, 재조림 및 폐기물 관리 등을 수행한다. 이 단체는 1997년에 생물권으로 지정받기 위해 노력했으며, 이후 국제적인 지원을 받아왔다. 이는 생태 관광을 촉진했다.[16]7. 선교부 (Missions)
후니페로 세라는 1770년까지 8년 동안 선교지 건설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러나 예수회 추방 등 여러 역사적 사건으로 인해 선교지는 버려졌고, 세라는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9] 세라가 떠난 후, 선교지는 일반 성직자들에게 맡겨졌다. 멕시코 독립 전쟁과 멕시코 혁명을 거치며 선교지는 약탈과 파괴를 겪었다.[45]
1980년대에 선교 교회 외부 복원 작업이 시작되었다. 1991년부터 1997년까지는 제단, 성가대, 오르간, 그림 등 내부 작업이 진행되었고, 1997년부터 2002년까지 주 정부의 지원을 받았다. 1990년대에는 주변 광장과 기념물에 대한 작업도 이루어졌다.[4][44] 2000년에 세계 유산 등재 노력이 시작되어, 2003년 제27차 세계 유산 위원회 회의에서 등재가 결정되었다.[4]
7. 1. 주요 선교부
16세기와 17세기 동안, 아우구스티노회, 프란치스코회, 도미니코회는 케레타로의 시에라고르다 지역을 개종시키려 했으나, 대부분의 선교지는 완공되지 못하거나 건설 직후 원주민 공동체에 의해 파괴되었다.[10][11] 1740년대 호세 데 에스칸돈의 군사적 평정 이후 시에라고르다 중심부에 영구적인 선교지 건설이 가능해졌다.[9]후니페로 세라가 프란치스코회에 위임받아 건설한 5개의 선교지는 파메족 영토에 건설되었는데, 이들이 스페인 지배를 더 잘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선교지의 배치는 시에라고르다의 중심부를 나누고 산 루이스 포토시로 가는 길을 열기 위한 것이었다.[4][42] 콩카의 호세 안토니오 데 무르기아, 틸라코의 후안 크리스피, 탄코욜의 후안 라모스 데 로라, 란다의 미겔 데 라 캄파 등 다양한 프란치스코회 수사들이 파메족의 손으로 선교지를 건설했다.[42]
이 교회들의 주요 특징은 본당의 화려한 장식이며, 종탑과 일부 교회에서는 다른 지역에도 장식이 있다. 이 장식은 INAH에 따르면 "메스티소 바로크" 또는 "메스티소 건축"이라고 불린다.[9][42] 화려한 장식은 주로 원주민들에게 새로운 종교를 가르치기 위한 것이지만, 남쪽에 있는 바로크 작품들과는 달리 세라의 생각은 완전한 정복보다는 문화의 혼합을 보여주는 것이었기 때문에 원주민의 영향이 분명하게 나타난다.[4][9] 파스텔 색상을 포함한 빨간색, 주황색 및 노란색의 사용과 토착 숭배 인물인 토끼와 재규어가 나타나는 것이 그 예이다.[37] 선교 교회는 포물선 천장으로 덮인 단일 신도석을 가지고 있지만, 각각은 특히 정문에서 고유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42]
7. 1. 1. 할판의 산티아고 아포스톨 선교부
할판 데 세라의 선교지는 1744년 후니페로 세라가 도착하기 전에 설립되었지만, 세라는 1751년부터 1758년까지 오늘날 서 있는 선교 단지를 건설하는 일을 담당했다. 이 단지는 최초의 복음 전도자인 사도 야고보에게 헌정되었다.[9][45] 이 단지는 주요 광장 앞에 있는 현대 도시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으며, 안뜰, 회랑, 순례자 정문, 교회로 구성되어 있고, 왼쪽에 부속 예배당이 있다. 원래 안뜰 벽은 사라졌지만 동일한 스타일로 재건되었으며, 세 개의 정문과 반전된 아치가 있다.[4] 정면의 화려한 정문의 주요 특징은 피라르의 성모와 과달루페의 성모인데, 둘 다 메소아메리카와 연결되어 있으며, 두 문화의 혼합을 상징하는 쌍두 독수리가 있다.[9]7. 1. 2. 탄코욜의 누에스트라 세뇨라 데 라 루스 선교부
탄코욜에 위치한 누에스트라 세뇨라 데 라 루스 데 탄코욜 선교부는 시에라고르다의 프란치스코회 선교지에 헌정되었다. 옥수수 이삭이 눈에 띄는 풍부한 식물 장식이 있는 이 정면은 5개의 선교지 중 가장 정교하다.[4][9] 이 선교지는 1761년부터 1767년까지 이곳에 거주했던 후안 라모스 데 로라가 건설했을 가능성이 높다.[4][44]
이 구조는 할판 데 세라와 란다 데 마타모로스의 구조와 유사하다. 라틴 십자가 배치와 성가대 공간이 있는 교회, 성물실, 십자가가 있는 안뜰, '카피야 포사'라고 불리는 안뜰 모서리에 있는 예배당, 순례자 문, 회랑 및 사제의 숙소가 있다. 내부에는 '빛의 성모' 조각상을 포함한 여러 조각상이 있다.[44]
정면은 세 개의 몸체, 박공 및 네 개의 에스티피테 기둥으로 구성된다. 하부에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의 조각상과 프란치스코회 문장이 있다. 두 번째 몸체에는 요아킴과 성 안나의 조각상이 있으며, 성모 마리아가 품에 안겨 있고, 중앙에는 틈새가 있다. 그리스도의 수난에서 못과 창과 같은 이미지도 있다. 이 틈새에는 빛의 성모상이 있었지만 지금은 비어 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몸체 사이에는 큰 창문이 있으며, 그 위에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의 성흔을 나타내는 그림이 있다. 박공에는 프란치스코회와 도미니코회와 관련된 두 가지 스타일의 큰 십자가가 부조로 새겨져 있다.[44][45]
종탑은 좁고, 세례당은 이 탑의 기저에 있다. 하부에는 세례당을 비추는 작은 창문이 나타난다. 탑의 돔은 맨 위에 바로크 철 십자가가 있는 피라미드 모양이다.[44] 원주민의 영향은 교회의 내부 기둥에서 볼 수 있는데, 재규어와 올멕족의 특징을 가진 사람의 이미지가 있다.[45]
7. 1. 3. 콩카의 산 미겔 선교부
산 미겔 콩카는 할판 데 세라에서 고속도로 69번을 타고 리오 베르데로 가는 길에 40km 떨어져 있다. 교회는 게레로 거리의 한쪽에 있는 지역 중심부에 있으며, 남쪽을 향하고 대천사 미카엘에게 헌정되었다. 교회 내부의 비문에 따르면, 이곳은 선교 교회 중 가장 작으며 1754년에 완공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4] 콩카는 파메어(Pame)로 "나와 함께"를 의미한다.[9]
교회 장식은 메스티소(혼혈) 양식을 띄고 있으며, 큰 꽃, 잎사귀, 원주민 스타일의 거친 그림 등이 특징이다. 꼭대기에는 삼위일체 이미지와 토끼, 쌍두 독수리가 있다.[9][45]
7. 1. 4. 틸라코의 산 프란시스코 델 바예 선교부
산 프란시스코 델 바예 데 틸라코는 란다 데 마타모로스에서 북동쪽으로 18km 떨어진 작은 지역이다.[4] 1754년에서 1762년 사이에 후안 크레스피가 건설했으며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에게 헌정되었다.[45]
이 선교지는 다른 선교지와 구별되는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첫째, 경사면에 건설되었다.[42] 종탑은 세례당 때문에 교회의 본당과 분리되어 있으며, 구조적으로 교회의 버팀대 역할을 한다.[4] 틸라코는 다섯 선교지 중 가장 잘 보존되어 있고, 정면에 가장 섬세한 장식이 있다.[45] 정면은 세 개의 수평 및 세 개의 수직 분할로 구성되어 있으며, 프란치스코회 문장이 주요 입구 위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42] 정면에는 작은 천사, 옥수수 이삭,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이미지가 있는 특이한 큰 항아리가 있다.[9] 독특한 장식 요소로는 원주민 특징을 가진 네 명의 인어가 있다. 틸라코는 행렬에 사용되었던 "카피야 포사"라고 불리는 가장 잘 보존된 안뜰 모서리 예배당을 가지고 있다.[45]
7. 1. 5. 란다의 산타 마리아 델 아구아 선교부
산타 마리아 델 아구아 데 란다는 할판 데 세라에서 고속도로 120번을 타고 실리틀라로 가는 길에 20km 떨어져 있으며, 미겔 데 라 캄파가 1760년에서 1768년 사이에 건설했다. 이 선교지는 무염시태의 성모에게 헌정되었으며, 지역 이름의 일부를 낳았다. 란다 선교지는 마지막으로 건설된 선교지였다.[4][45] 안뜰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중앙에 십자가가 있으며 돌로 포장되어 있다. 구성의 균형과 정면에 통합된 매우 좁은 종탑으로 유명하며, 정면의 조각은 아르케올로히아 멕시카나 잡지에 따르면 5개 선교지 중 최고로 평가받는다.[4] 란다의 인어 얼굴에는 원주민의 특징이 나타난다.[9]
8. 고고학 유적지
시에라 고르다 지역에는 400개 이상의 고고학 유적이 있으며,[47] 아우아카틀란, 아로요 세코, 아르키토스, 카노아스, 세로 데 라 캄파나, 세로 델 사포, 콩카, 데코니, 에카티틀란, 엘 닥터, 라 콜로니아, 라 플라주엘라, 로보, 로스 모크테수마스, 푸에블로 비에호, 푸리시마, 라나스, 사비노, 산 후안, 소야탈, 탄카마, 탄코욜, 틸라코, 톨루킬라, 토나티코, 비가스 등 26개의 주요 유적이 있다.[10] 이 지역의 고고학은 19세기 후반 직전에 광산 기술자들이 산에서 고고학적 발견을 보고하면서 시작되었다.[3]
고전기 말기에 시에라 고르다 지역 대부분은 농업 마을로 채워졌다. 농업은 낮은 계곡, 평원, 산의 일부 측면에 집중되었고, 더 많은 농지를 만들기 위해 산림이 벌채되기도 했다. 대부분의 정착지는 강이 아닌 샘, 연못, 작은 호수 근처에 있었다. 정착지는 기능에 따라 중요도 순위가 매겨졌으며, 라스 라나스와 톨루킬라가 가장 중요한 위치였다.[3]
이 지역 정착의 절정은 6세기에서 10세기 사이로, 농업과 광업을 기반으로 경제가 발전했다. 주요 도시들은 메소아메리카 공놀이 경기장을 중심으로 광장과 피라미드 기단 위에 기념비적인 구조물로 이어졌다. 행정 건물 및 주거와 같은 다른 구조물은 사각형과 둥근 형태였고, 대부분 처마 장식이 있는 탈루드(talud)가 위에 있었다. 많은 도시가 언덕 위에 위치해 공간을 만들기 위한 계단식 지반 평탄화가 이루어졌다.[3]
주사(cinnabar) 채광은 계층적인 노동 관행을 필요로 했으며, 라스 라나스와 톨루킬라 도시 발전을 이끌었다. 이 지역은 메소아메리카에 이 붉은 안료를 공급하는 주요 공급처였다.[3] 이 지역의 도자기는 채색을 위해 지역의 광물과 동쪽의 올멕의 영향을 받았다.[10] 종교적 믿음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지만, 매장된 개인(때로는 희생)이 태아 자세로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을 나타낸다.[3]
라스 라나스와 톨루킬라는 시에라 고르다 지역에서 발전한 두 개의 가장 큰 선 스페인 시대 도시였다. 라스 라나스는 7세기부터 11세기까지, 톨루킬라는 11세기에 절정에 달했다. 두 도시 모두 서로 가깝고, 주사 채광과 무역로를 통제했다. 이 지역을 통과하는 무역은 멕시코 만과 멕시코 중앙 고원, 북쪽의 일부 지역을 연결했다.[4] 광범위한 채광은 서기 200년에서 300년 사이에 톨루킬라와 라스 라나스에서 시작되어 주사, 수은, 유황을 추출했다. 주사는 장례식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50] 2009년, INAH는 광업의 중요성을 결정하기 위해 선 스페인 시대의 30구의 해골에 대한 톨루킬라 연구를 수행했다. 뼈에서 수은 축적량을 결정하여 누가 광업에 관련되었고,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내는 것이 목적이었다. 라스 라나스와 톨루킬라 주변에서 80개 이상의 주사 채취 현장이 발견되었으며, 이들은 멕시코에서 가장 큰 광물 매장량 중 하나에 위치해 있다.[50]
시에라 고르다 프로젝트에 의한 광업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는 1970년대에 시작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라스 라나스와 톨루킬라 도시의 지도를 더욱 발전시켰다. 1980년대의 추가 연구를 통해 이전의 발견이 통합되었고 더 넓은 지역의 정착 패턴이 밝혀졌다. 고대 문화가 분류되었고, 북부 케레타로 전체와 산 루이스 포토시까지 500개 이상의 유적이 등록되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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