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행정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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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라의 행정 구역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전국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마련한 지방 행정 체제이다. 신문왕 5년(685년)에 9주와 5소경으로 재편성되었으며, 9주는 신라 본국, 백제 지역, 고구려 지역에 각각 3개씩 배치되어 삼국통일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9주는 총관, 군에는 수, 현에는 영 등의 장관을 두었으며, 군현 아래에는 촌주가 다스리는 촌을 두었다. 또한, 지방관 감찰을 위해 외사정을 파견하고 상수리 제도를 실시했다. 5소경은 수도의 편재성을 보완하기 위해 설치되었으며, 금관경, 남원경, 서원경, 중원경, 북원경이 있었다. 5소경에는 중앙 귀족 자제, 호민, 민호를 이주시켜 지방 세력을 견제하고 사신이 다스렸다. 이러한 9주 5소경 제도는 통일신라의 중앙 집권화와 지방 통치 강화에 기여했다.
9주(九州)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이다.[1] 신문왕 5년(685년) 전국의 행정 구역을 9주·5소경으로 재편성하였다.[1] 9주는 신라 본국에 3개, 정복한 백제 지역에 3개, 정복한 고구려 지역에 3개 등으로 배분되어 있는데, 이는 삼국통일의 정당성을 강조한 정치적 배려로 이해된다.[1]
2. 9주
경덕왕 16년(757년)에는 행정 구역명을 대국의 예에 따라 고쳤으며, 혜공왕대에 다시 원래 명칭으로 되돌렸다.[1] 《삼국사기》에는 경덕왕 때 중국식으로 고친 명칭을 기준으로, 상주(尙州), 양주(良州), 강주(康州), 한주(漢州), 삭주(朔州), 명주(溟州), 웅주(熊州), 전주(全州), 무주(武州)로 기록되어 있다.
9주의 소관 군현 수는 450군현에 이르렀다.[1] 주 밑에는 군(郡)·현(縣)을 두어 계통적인 조직을 하였으며, 주에는 총관(摠官 : 나중에 도독으로 개칭), 군에는 수(守), 현에는 영(令) 등의 장관(현령, 縣令)을 두었다.[1] 군현의 아래에는 촌(村)을 두었는데, 지방 토착 세력인 촌주(村主)가 지방관의 통제를 받으면서 다스렸다.[1] 그밖에 특수 행정 단위인 향(鄕)·부곡(部曲)도 있었다.[1] 또한 지방관을 감찰하려고 외사정(外司正)을 파견하였으며, 지방 세력을 견제하려고 상수리 제도를 실시하였다.[1]
2. 1. 설치 배경 및 목적
2. 2. 9주의 변천
2. 3. 9주의 구성
2. 4. 삽량주 (양주)
삽량주(歃良州)는 지금의 양산시를 중심으로 경상북도 남동부 및 경상남도 동부 일대에 위치하였다. 삽량주는 1개 소경, 12개 군, 34개 현으로 구성되었으며, 직접 관할하는 현은 1개였다.
2. 4. 1. 삽량주 소속 군현
삽량주에는 양주, 김해경, 의안군, 밀성군, 화왕군, 수창군, 장산군, 임고군, 동래군, 동안군, 임관군, 의창군, 대성군, 상성군 등이 소속되어 있었다.
5소경은 통일신라의 행정 구역으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9주를 설치하여 지방 행정 조직을 정비하면서 설치되었다.[2] 신라의 수도는 반도의 동남쪽에 치우쳐 있어서 확대된 영역을 통치하기가 불편하였으므로, 수도를 지금의 대구로 옮기려 하였으나 실행하지 못했다.[2] 그 대신 금관가야의 본거지와 백제, 고구려의 옛 땅에 다섯 개의 소경을 두었다. 금관경(金官京), 남원경(南原京), 서원경(西原京), 중원경(中原京), 북원경(北原京)이 5소경에 해당하며,[2] 중앙 귀족의 자제나 호민(豪民), 여러 주군(州郡)의 민호(民戶)를 강제로 이주시켜 지방 세력을 견제하게 하였다. 소경에는 사신(仕臣)이라는 장관이 있어 이를 다스렸다.[3]
3. 5소경
3. 1. 설치 목적 및 배경
3. 2. 5소경의 구성
4. 9주 5소경의 의의 및 평가
9주 5소경 제도는 신라가 고구려, 백제를 정복하고 당나라를 축출한 후 신문왕 5년(685년)에 전국을 9주와 5소경으로 재편성하면서 확립되었다.[1] 9주는 신라 본국에 3개, 정복한 백제 지역에 3개, 정복한 고구려 지역에 3개씩 배치하여 삼국통일의 정당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1] 경덕왕 16년(757년)에는 행정 구역명을 대국의 예에 따라 고쳤다가 혜공왕대에 다시 원래 명칭으로 되돌리는 등 변화를 겪었다. 9주에는 총관(摠官, 후에 도독으로 개칭)을, 군(郡)에는 수(守), 현(縣)에는 영(令) 등의 장관을 두었으며, 군현 아래에는 촌주(村主)가 다스리는 촌(村)을 두었다.[1] 또한, 지방관을 감찰하기 위해 외사정(外司正)을 파견하고, 지방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상수리 제도를 실시하였다.[1]
5소경은 수도가 반도의 동남쪽에 치우쳐 있어 넓어진 영역을 통치하기 불편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설치되었다.[2] 금관가야의 본거지와 백제, 고구려의 옛 땅에 설치된 5소경은 금관경(김해), 남원경(남원), 서원경(청주), 중원경(충주), 북원경(원주)이었다.[2] 이곳에는 중앙 귀족의 자제나 호민(豪民), 여러 주군의 민호(民戶)를 강제로 이주시켜 지방 세력을 견제하였으며, 사신(仕臣)이라는 장관이 다스렸다.[3]
이러한 9주 5소경 제도는 통일신라의 중앙 집권화와 지방 통치 강화에 기여하였으며, 수도의 편재성을 보완하고 지방 세력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4. 1. 현대적 관점
참조
[1]
백과사전
한국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http://100.nate.com/[...]
[2]
웹사이트
대구광역시청
http://www.daegu.go.[...]
[3]
문서
사대등(仕大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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