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뜨르 비행장
1. 개요
알뜨르 비행장은 일제강점기인 1926년부터 1930년 사이에 건설된 비행장으로, 제주도 모슬포 지역에 위치했다. 처음에는 정찰 및 해상 초계기의 기지로 사용되었으며, 중일 전쟁 기간에는 중국 본토 폭격을 위한 전진 기지로 활용되었다. 태평양 전쟁 말기에는 지하 벙커가 구축되고 가미카제 훈련에 사용되기도 했다. 광복 후 미군을 거쳐 대한민국 공군이 관리하게 되었으며, 2006년에는 격납고 등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비행장으로 사용되지 않지만, 다크 투어리즘 및 평화 공원 조성 등의 활용 방안이 논의되고 있으며, 난징 대학살 추모 행사가 매년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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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 해군의 비행장 -
아쓰기 해군 비행장
아쓰기 해군 비행장은 가나가와현 아쓰기시 인근에 위치한 군사 비행장으로, 일본 해군이 건설하여 태평양 전쟁 당시 운용 후 미군 기지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미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가 공동으로 사용하며 소음, 환경 문제, 기지 이전 계획 등으로 논란이 있다. -
서귀포시의 건축물 -
제주국제컨벤션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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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아플라넷
아쿠아플라넷은 대한민국 여러 지역에서 운영되는 아쿠아리움으로, 아쿠아플라넷 63, 여수, 제주, 일산, 광교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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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납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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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알뜨르 비행장은 1926년부터 1930년 사이에 일제강점기에 '알테루 비행장'이라는 이름으로 건설되었다. 지역 주민들은 강제 동원되어 지형 평탄화 작업과 지하 터널 건설에 투입되었다. 초기에는 정찰 및 해상 초계 항공기 기지 겸 급유 기지로 사용되었으며, 중일 전쟁 기간에는 오무라 해군 항공대의 전진 기지로 활용되어 상하이, 난징 등 중국 도시 폭격에 사용되었다.
태평양 전쟁 종전 후 미국군에 접수되어 한국 전쟁 당시에는 K-40 제주 제2공군기지로 미국 공군이 사용하였다. 한국전쟁 휴전 후 한국에 반환되어 대한민국 공군 관할이 되었다.
2000년대 후반, 서귀포시는 이 지역을 테마파크로 개발할 계획을 세웠으나, 2006년 11월 29일 주변 군사 시설이 근대 등록문화재로 등록되었다. 다만 활주로는 공군의 반대로 등록되지 못했다.
알뜨르 비행장 관련 주요 연혁은 다음과 같다.
| 연도 | 내용 |
|---|---|
| 1931년 | 비행장 건설 시작 |
| 1935년 | 비행장 완공 (면적 60만 제곱미터) |
| 1937년 | 중일 전쟁 발발, 중국 본토 공습 기지로 사용, 비행장 확장 (132만 제곱미터) |
| 1944년 | 비행장 확장 공사 시작 (220만 제곱미터) |
| 2002년 | 엄폐호 등록문화재 등록 |
| 2006년 | 지하호, 주변 군사 시설 등록문화재 등록 |
| 2014년 | 난징 시민 추도식 시작 |
2.1. 일제강점기 (1926년 ~ 1945년)
알뜨르 비행장은 원래 제주도민들이 대를 이어 농사를 짓던 농지 겸 목초지였다. 일제강점기 일본 조선군이 모슬포 주민들을 동원하여 1920년대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 군용 비행장으로 건설하였다. 1931년 비행장 건설이 시작되었고, 1935년에 완공되었으며, 면적은 60만 제곱미터였다. 66 ha 넓이의 비행장 안에는 폭 20m, 높이 4m, 길이 10.5m 규모의 격납고 20개가 세워졌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전초 기지로 쓰이기 시작했고, 약 700 km 떨어진 중국 난징을 폭격하기 위해 오무라 해군 항공대의 많은 전투기가 출격하였다. 중일 전쟁 기간 중 2차 공사를 통해 40만 평(132만 제곱미터)으로 확장되었다. 1938년 11월 일본군이 상하이를 점령하면서 오무라 해군항공대는 중국 본토로 옮겨졌고, 알뜨르 비행장은 연습비행장이 되었다.
1942년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여 264ha로 확장되었다. 1944년 10월 3차 공사로 레이다 진지와 각종 지하 진지가 건설되었고, 220만 제곱미터로 확장하기 위한 공사가 시작되었다. 1945년 2월 9일 결호 작전이 승인되면서 연합국의 상륙에 대비하여 각 시설을 잇는 터널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다.
알뜨르 비행장은 당시 '알테루 비행장'으로 알려졌으며, 지역 주민들은 강제 노동으로 동원되어 지형을 평탄하게 만들고 지하 터널을 건설하는 데 투입되었다. 처음에는 정찰 및 해상 초계 항공기의 기지이자 급유 기지로 사용되었다. 중일 전쟁 기간 오무라 해군 항공대의 전진 기지로도 활용되어 상하이와 난징 등 중국 도시를 폭격하는 데 사용되었다.
알뜨르 비행장은 가미카제 조종사 훈련에 사용되었으며, 전쟁 말기에는 해군 항공대 병력 2,500명과 항공기 25대가 견고한 항공기 쉘터에 배치되었다. 태평양 전쟁 종전이 다가오면서 일본은 패배에 직면했고, 일본 본토 전투를 두려워한 일본은 연합군에 맞서 방어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제주도 알뜨르 비행장을 사용할 계획을 세웠다.
2.2. 미군정 및 대한민국 공군 관리 시기 (1945년 ~ 현재)
한국 전쟁 발발 후, 제주도로 건너온 육군 제25교육연대가 모슬포의 오무라 병영에 제1훈련소를 설치하면서 알뜨르 비행장을 훈련장으로 이용했다. 제5공군 군사고문단원들이 주둔하면서 K-40 비행장으로도 알려졌다. 미 공군은 이 기지를 제주도 제2 비행장 또는 K-40으로 지정하고, 주로 급유 및 통신 시설로 사용하였다. 1951년 8월 5일부터 제100 공군 기지 비행단 관할 하에 있었으며, 공군 회사의 비행장 경비 헌병, 통신, 토목, 식사 지원 부대가 상주했다.
1960년대 초, 현재 '알뜨르 비행장'으로 알려진 기지에 TACAN 시설이 건설되었고, 그해 말 미 공군에서 대한민국 공군으로 소유권이 이관되었다. 이 기지는 여전히 대한민국 공군 소유이며, 이관 이후 대부분 민간에 임대되어 현재는 대부분 감자 밭으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전후 시설을 포함한 다수의 시설들이 어느 정도 온전하게 남아있는데, 여기에는 19개(원래 20개)의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항공기 벙커와 1,400미터 길이의 잔디 활주로가 포함되며, 현재도 대한민국 공군 예비 비행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서귀포시는 2000년대 후반 이 지역을 테마파크로 개발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2006년 11월 29일, 등록문화재로서 격납고, 지하벙커, 셋알오름의 동굴진지와 고사포 진지가 지정되었으나, 활주로는 대한민국 공군의 반대로 제외되었다.
2010년 4월 6일, 제주도 신공항 입지 문제로 정석비행장과 함께 거론되었다.
2011년, 대한민국 공군이 탐색 구조 부대를 창설하기로 결정하면서 알뜨르 비행장 사용 여부가 논의되었다. 탐색구조헬기 HH-60P, HH-47D와 CN-235, C-130 수송기 전력 위주의 대대급 규모로 창설될 예정이었다. 김태환 제주도지사는 "제주도에 공군 기지가 들어온다면 알뜨르 비행장 밖에 자리가 없다"라고 언급하며 알뜨르 비행장 문제가 논의 대상이 되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국방부의 제주 남부탐색구조부대 창설 계획에 대해 "이 부대는 제주도민을 속이기 위해 '전투기'라는 용어만 삭제했을 뿐 실제로는 전투기 수용능력을 갖춘 부대"라고 주장하며 비판했다.
2.3.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지정 (2006년)
2006년 11월 29일, 대한민국 근대 문화유산 등록문화재로 격납고, 지하벙커, 셋알오름의 동굴진지와 고사포 진지가 지정되었다. 활주로는 대한민국 공군의 반대로 제외되었다.
3. 시설 및 유적
알뜨르 비행장은 1926년에서 1930년 사이 일제강점기에 건설되었으며, 당시 지역 주민들은 강제 노동으로 동원되어 지형을 평탄하게 만들고 지하 터널을 건설하는 데 투입되었다. 처음에는 정찰기 및 해상 초계기의 기지이자 급유 기지로 사용되었으며, 중일 전쟁 기간에는 오무라 해군 항공대의 전진 기지로 활용되어 중국 도시 폭격에 사용되었다. 가미카제 조종사 훈련에도 사용되었으며, 전쟁 말기에는 2,500명의 해군 항공대 병력과 25대의 항공기가 배치되었다.
미 공군은 이 기지를 '제주도 제2 비행장' 또는 'K-40'으로 지정하고, 주로 급유 및 통신 시설로 사용했다. 1951년 8월 5일부터는 '제100 공군 기지 비행단'의 관할 하에 있었다. 1960년대 초에는 TACAN 시설이 건설되었고, 이후 대한민국 공군으로 이관되었다.
현재 대부분의 부지가 감자 밭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19개(원래 20개)의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항공기 벙커와 1400m 길이의 잔디 활주로를 포함하여 다수의 시설들이 남아있으며, 대한민국 공군 예비군 비행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서귀포시는 2000년대 후반, 이 지역을 테마파크로 개발할 계획을 세웠다.
3.1. 격납고
일제강점기 일본 조선군이 모슬포 주민들을 동원하여 1920년대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 군용 비행장을 건설하면서, 66 ha 넓이의 비행장 안에 폭 20m, 높이 4m, 길이 10.5m 규모의 격납고 20개가 세워졌다. 1937년 중일전쟁 발발 후, 알뜨르 비행장은 전초 기지로 쓰이며 약 700 km 떨어진 중국 난징을 폭격하기 위해 오무라 해군 항공대의 많은 전투기가 출격하였다.
1960년대 초, 미 공군에서 대한민국 공군으로 이관된 후, 대부분 민간에 임대되어 현재는 감자 밭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19개(원래 20개)의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항공기 벙커는 온전하게 남아있다.
엄폐호는 20개가 설치되었으며, 그 중 19개가 현존한다. 키가 큰 풀로 위장되어 있으며, 특공대가 사용하는 비행기를 격납하기 위한 것이었다.
3.2. 지하 벙커
1944년 10월, 3차 공사를 통해 레이다 진지와 각종 지하 진지가 건설되었다. 1945년 2월 9일, 결호 작전이 승인되면서 연합군의 상륙에 대비하여 각 시설을 잇는 터널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은 강제 동원되어 지형 평탄화 및 지하 터널 건설에 투입되었다.
* 지하호
:: 콘크리트로 만들어졌으며, 화산암과 관목으로 위장되어 있다.
* 엄폐호
:: 20개의 엄폐호가 설치되었으며, 그 중 19개가 현재 남아있다. 특공대가 사용하는 비행기를 격납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다수의 엄폐호가 현존하는 장소는 일본 본토에도 없다.
3.3. 활주로
알뜨르 비행장의 활주로는 원래 제주도민들이 농사를 짓던 농지 겸 목초지였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조선군이 모슬포 주민들을 동원하여 1920년대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 군용 비행장으로 건설하면서 활주로가 만들어졌다. 1937년 중일전쟁 발발 후에는 전초 기지로 사용되었고, 난징 폭격을 위해 오무라 해군 항공대의 전투기들이 이 활주로를 이용했다. 중일 전쟁 기간에는 오무라 해군 항공대의 전진 기지로도 활용되어 상하이와 난징과 같은 중국 도시를 폭격하는 데 활주로가 사용되었다.
1942년 태평양 전쟁 발발 후에는 비행장이 264ha로 확장되었고, 1944년 10월 3차 공사로 레이다 진지와 각종 지하 진지들이 건설되었다. 1945년 2월 9일 결호 작전이 승인되면서 연합군의 상륙에 대비하여 각 시설을 잇는 터널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다.
현재는 약 1,400m 길이의 잔디 활주로가 남아있으며, 대한민국 공군 예비 비행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3.4. 기타 시설
* 지하호: 콘크리트로 만들어졌으며, 화산암과 관목으로 위장되어 있다.
* 엄폐호: 20개의 엄폐호가 설치되었으며, 그 중 19개가 현재 남아있다. 키가 큰 풀로 위장되어 있으며, 특공대가 사용하는 비행기를 격납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본토에도 이처럼 다수의 엄폐호가 남아있는 장소는 없다.
* 활주로: 약 1400m 길이의 활주로가 설치되어 있었다.
4. 현재 상황 및 활용 방안
한국 전쟁 당시 알뜨르 비행장은 육군 제1훈련소의 훈련장으로 사용되었으며, 제5공군 군사고문단이 주둔하면서 K-40 비행장으로도 알려졌다. 1960년대 초에는 TACAN 시설이 건설되었고, 이후 미 공군에서 대한민국 공군으로 이관되었다.
현재 알뜨르 비행장은 대부분 민간에 임대되어 감자 밭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19개의 항공기 벙커와 1,400미터 길이의 잔디 활주로 등 시설 일부가 남아있다. 이 활주로는 비상시 대한민국 공군의 예비 비행장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관리되고 있다. 주변 엄체호는 농기구 보관소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2006년에는 격납고, 지하벙커, 셋알오름 동굴진지 등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으나, 활주로는 공군의 반대로 제외되었다.
4.1. 다크 투어리즘
서귀포시는 알뜨르 비행장을 다크 투어리즘 목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으며, 2000년대에 관광객 유치를 위해 주변 도로를 포장했다。 시는 비행장 주변을 평화공원으로 정비할 계획이지만, 토지 소유권을 공군으로부터 시로 이전해야 하기 때문에 계획이 난항을 겪고 있다。
알뜨르 비행장이 난징 폭격의 거점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2014년부터 매년 난징 대학살이 있었던 12월 13일에 추도식이 열리고 있다。
4.2. 평화 공원 조성
서귀포시는 비행장 주변을 평화공원으로 정비할 계획이었으나, 토지 소유권을 공군으로부터 시로 이전해야 하는 문제로 인해 계획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이 비행장은 난징 폭격의 거점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2014년부터 매년 난징 대학살이 있었던 12월 13일에 추도식이 열리고 있다.
4.3. 난징 대학살 추모
일제가 중일 전쟁 중 난징을 폭격할 때 이 비행장을 거점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2014년부터 매년 난징 대학살이 있었던 12월 13일에 추도식이 열리고 있다.
4.4. 신공항 건설 논란
2010년 4월 6일, 제주도 신공항 입지 문제로 정석비행장과 함께 거론되었다.
2011년 대한민국 공군이 탐색 구조 부대 창설을 결정하면서 알뜨르 비행장 사용 여부가 문제되었다. 김태환 제주도지사는 "제주도에 공군 기지가 들어온다면 알뜨르 비행장 밖에 자리가 없다"라고 언급하며 이 문제가 논의 대상이 되었다고 밝혔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국방부의 제주 남부탐색구조부대 창설 계획에 대해 "이 부대는 제주도민을 속이기 위해 '전투기'라는 용어만 삭제했을 뿐 실제로는 전투기 수용능력을 갖춘 부대"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