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구치 쓰토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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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야마구치 쓰토무는 1916년 나가사키현에서 태어나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유조선 설계자로 일했다. 그는 1945년 히로시마에 출장 중 원자폭탄 공격을 겪었고, 며칠 뒤 나가사키에서 다시 피폭되어, 두 차례 원폭 피해를 입은 유일한 생존자가 되었다. 그는 핵무기 폐기를 지지하며 자신의 경험을 책으로 썼고, 2010년 9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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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마구치 쓰토무 - [인물]에 관한 문서 | |
|---|---|
| 기본 정보 | |
| 이름 | 야마구치 쓰토무 |
| 원어 이름 | 山口 彊 |
| 로마자 표기 | Yamaguchi Tsutomu |
| 출생 | 1916년 3월 16일 |
| 출생지 | 나가사키시 |
| 사망 | 2010년 1월 4일 |
| 사망지 | 나가사키시 |
| 국적 | 일본 |
| 직업 | |
| 직업 | 엔지니어 |
| 고용주 | 미쓰비시 중공업 |
| 근무지 | 미쓰비시 중공업 나가사키 조선소 의장 설계과 |
| 가족 | |
| 배우자 | 히사코 (2008년 사망) |
| 자녀 | 3명 (야마구치 도시코, 야마구치 가쓰토시, 야마구치 나오코) |
| 활동 | |
| 운동 | 핵무기 폐기 |
| 알려진 이유 | 히바쿠샤,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 폭탄 투하 모두에서 생존 |
| 대표작 | 생카사레테 이루 이노치 히로시마 나가사키 니주 히바쿠샤 90사이카라노 쇼겐 (生かされている命 広島・長崎 「二重被爆者」、90歳からの証言) 히로시마 나가사키 니주 히바쿠 (ヒロシマ・ナガサキ 二重被爆) |
2. 생애
야마구치 쓰토무는 1916년 3월 16일 나가사키현에서 태어났다.[4] 구제 중학교를 졸업하고 미쓰비시 중공업 나가사키 조선에 입사하여 기장 설계과 제도공으로 근무했으며,[4] 1930년대에는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도면사로서 유조선을 설계했다.[4]
제2차 세계 대전 중, 야마구치는 일본이 전쟁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계속 일했지만, 일본 산업은 자원 부족과 유조선 침몰로 어려움을 겪었다.[4] 전쟁이 길어지면서 국가 상황에 비관하여 일본 패배 시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명예 자결을 통한 가족 살해를 고려하기도 했다.[4]
1945년 여름, 야마구치는 히로시마로 3개월간 출장을 갔다.[4]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이 투하되었을 때, 폭심지에서 약 3km 떨어진 곳에 있었다.[4][8] 이 폭발로 왼쪽 고막이 파열되었고, 몸 상반부 왼쪽에 심각한 방사선 화상을 입었다.[6] 이후 공습 대피소에서 밤을 보낸 후 다음 날 나가사키로 돌아갔다.[5][6]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나가사키에 팻 맨 핵폭탄이 투하되었을 때, 야마구치는 히로시마에서의 폭발에 대해 상사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그의 직장은 다시 폭심지에서 3km 떨어진 곳에 있었지만, 이번에는 폭발로 다치지 않았다.[8] 그러나 망가진 붕대를 교체할 수 없었고, 일주일 넘게 고열과 지속적인 구토에 시달렸다.[4]
일본 점령 기간 동안, 야마구치는 점령군 통역관으로 일했다. 1950년대 초,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생존자인 아내와 두 딸을 두었다. 이후 미쓰비시로 돌아가 유조선을 설계했다.[4] 종전 후, 나가사키 미쓰비시 조선에서 해고당하고 나가사키 주둔 미국 해병대 제5대대에서 통역으로 종사했다. 그 후 중학교 영어 교사를 7년간 맡은 뒤, 미쓰비시 조선에 복직하여 정년까지 유조선 설계를 했다.[28]
나이가 들면서, 야마구치는 원자 무기 사용에 대한 견해를 바꾸기 시작했다. 80대에 자신의 경험을 담은 책 《살아있는 생명》(''Ikasareteiru inochi'')과 시집을 썼고,[9] 2006년 유엔에서 상영된 다큐멘터리 ''두 번 살아남다''에 참여하여 원자 무기 폐기를 호소했다.[10] 2006년 다큐멘터리 영화 『이중 피폭』에 출연, 뉴욕 유엔 본부 빌딩과 컬럼비아 대학교 상영에 맞춰 미국을 방문하여 핵무기 폐절을 호소했다[34]. 2007년에는 『살아있는 생명』을 출판했다.
야마구치는 핵무기 폐기의 적극적인 지지자가 되었으며,[11] "세상이 핵폭탄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핵무기 개발에 비판적 입장을 밝혔다.[8]
2009년 12월 22일, 미국 영화 감독 제임스 캐머런이 병실을 방문하여 원폭 주제 영화 구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야마구치는 영어로 "나의 역할은 끝났다. 나머지는 당신에게 맡기고 싶다"라고 말했다.[32]
2. 1. 초기 생애
야마구치는 1916년 3월 16일 나가사키현에서 태어났다.[4] 구제 중학교를 졸업 후, 미쓰비시 중공업 나가사키 조선에 입사하여 기장 설계과 제도공으로 근무했다.[4] 1930년대에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도면사로서 유조선을 설계하는 일을 했다.[4]2. 2. 제2차 세계 대전
야마구치는 "일본이 전쟁을 시작해야 한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계속 일했지만, 곧 일본 산업은 자원이 부족해지고 유조선이 침몰하면서 심각한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4] 전쟁이 길어지면서 그는 국가의 상황에 대해 너무나 비관하여 일본이 패배할 경우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명예 자결을 통한 가족 살해를 고려했다.[4]2. 2. 1. 히로시마 피폭
1945년 여름, 야마구치 쓰토무는 히로시마로 3개월간 출장을 갔다.[4] 8월 6일, 동료들과 함께 도시를 떠날 준비를 하던 중 한코를 두고 온 것을 깨닫고 직장으로 돌아갔다.[5][6] 오전 8시 15분, 부두로 걸어가고 있을 때, 미국 B-29 폭격기 에놀라 게이가 도시 중심부 근처, 3km 떨어진 곳에 리틀 보이 원자 폭탄을 투하했다.[4][8]야마구치는 폭격기와 두 개의 작은 낙하산을 본 후 "하늘에 큰 섬광이 있었고, 나는 날아갔다"고 회상한다.[6] 폭발로 그는 왼쪽 고막이 파열되었고, 섬광 시로 일시적으로 시력을 잃었으며, 몸 상반부 왼쪽에 심각한 방사선 화상을 입었다.[6] 회복 후 대피소로 기어가 휴식을 취한 뒤 동료들을 찾았다.[6] 그들 역시 살아남았고, 함께 공습 대피소에서 밤을 보낸 후 다음 날 나가사키로 돌아갔다.[5][6]
1945년 5월, 야마구치는 8월 7일까지 히로시마 조선소에 출장했다.[30] 8월 6일 히로시마시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을 때, 야마구치는 출근길이었으며, 폭심지에서 약 3킬로미터 떨어진 히로시마 전철 에바선에바 전철 정류장에 있다가 피폭되었다.[30] 이 피폭으로 왼쪽 고막이 파열되었고, 왼쪽 상반신에 화상을 입었다.[31] 다음 날, 야마구치는 국철산요 본선고이역에서 구원 열차를 타고 나가사키로 돌아갔다.[30]
2. 2. 2. 나가사키 피폭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야마구치는 히로시마에서의 폭발에 대해 그의 상사에게 설명하고 있었는데, 이때 미국의 폭격기 Bockscar가 팻 맨 핵폭탄을 나가사키시 상공에 투하했다. 그의 직장은 다시 그를 폭심지에서 3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게 했지만, 이번에는 폭발로 인해 다치지 않았다.[8] 그러나 그는 망가진 붕대를 교체할 수 없었고, 일주일 넘게 고열과 지속적인 구토에 시달렸다.[4]2. 3. 전후
연합군의 일본 점령 기간 동안, 야마구치는 점령군을 위해 통역관으로 일했다. 1950년대 초,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생존자이기도 한 아내와 함께 두 딸을 두었다. 이후 미쓰비시로 돌아가 유조선을 설계하는 일을 했다.[4] 종전 후, 나가사키 미쓰비시 조선에서 해고당하고 나가사키에 주둔하던 미국 해병대 제5대대에서 통역으로 종사했다. 그 후 중학교 영어 교사를 7년간 맡은 뒤, 미쓰비시 조선에 복직하여 정년까지 유조선 설계를 했다.[28]나이가 들면서, 원자 무기 사용에 대한 견해를 바꾸기 시작했다. 80대에 자신의 경험에 대한 책인 《살아있는 생명》(''Ikasareteiru inochi'')과 시집을 썼으며,[9] 2006년에는 '두 번 생존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이중 원자폭탄 피해자'라는 165명의 이중 원폭 생존자(일본에서는 ''니주 히바쿠샤''라고 불림)에 관한 다큐멘터리 ''두 번 살아남다''에 참여하여 유엔에서 상영되었다.[10] 상영회에서 원자 무기 폐기를 호소했다.[8] 2006년 다큐멘터리 영화 『이중 피폭』(감독: 아오키 료)에 출연했다. 이 영화는 야마구치의 제안에 따라 해외 상영이 이루어져, 뉴욕의 유엔 본부 빌딩과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상영되었다. 상영에 맞춰 직접 미국을 방문하여 핵무기 폐절을 호소했다[34]. 2007년에는 자신의 증언을 담은 『살아있는 생명』을 출판했다.
야마구치는 핵무기 폐기의 적극적인 지지자가 되었다.[11] 인터뷰에서 "제가 원자 폭탄을 싫어하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의 존엄성에 미치는 영향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11] 전화 인터뷰에서 딸을 통해 "세상이 핵폭탄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계속 이러한 무기를 개발할 수 있습니까?"라고 말했다.[8]
2009년 3월, 원폭 후유증으로 보이는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터뷰에서 밝혔다.[31]
2009년 12월 22일, 미국의 영화 감독 제임스 캐머런이 병실을 방문하여, 원폭을 주제로 한 영화 구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야마구치는 영어로 "나의 역할은 끝났다. 나머지는 당신에게 맡기고 싶다"라고 말했다.[32] 제임스 카메론 감독과 작가 찰스 펠레그리노는 나가사키의 한 병원에 입원해 있던 야마구치를 만나 핵무기에 관한 영화 제작 아이디어를 논의했다. 야마구치는 "카메론과 펠레그리노가 핵무기에 관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12]
3. 이중 피폭 인정
야마구치는 처음에는 두 번 피폭된 생존자라는 사실을 굳이 알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8] 하지만, 말년에 그는 자신의 생존을 운명으로 여기게 되었고, 2009년 1월에 이중 생존자 인정을 신청했다.[8] 이 신청은 2009년 3월 일본 정부에 의해 받아들여졌고, 야마구치는 두 번의 원자 폭탄 공격의 생존자로 공식 인정받은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4][8] 그는 이 인정을 받으면서 "나의 이중 방사선 피폭은 이제 공식적인 정부 기록이 되었습니다. 내가 죽은 후에도 젊은 세대에게 원자 폭탄 공격의 끔찍한 역사를 말해줄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13]
4. 핵무기 폐기 운동
야마구치 쓰토무는 핵무기 폐기의 적극적인 지지자였다.[11] 그는 인터뷰에서 "제가 원자 폭탄을 싫어하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의 존엄성에 미치는 영향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11] 그는 전화 인터뷰에서 딸을 통해 "세상이 핵폭탄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계속 이러한 무기를 개발할 수 있습니까?"라고 말했다.[8]
2006년 다큐멘터리 영화 《이중 피폭》에 출연했다. 이 영화는 야마구치의 제안에 따라 해외 상영이 이루어져, 뉴욕의 유엔 본부 빌딩과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상영되었다. 상영에 맞춰 직접 미국을 방문하여 핵무기 폐절을 호소했다.[34]
2009년 12월 22일, 캐나다 영화 감독 제임스 카메론과 작가 찰스 펠레그리노는 나가사키의 한 병원에 입원해 있던 야마구치를 만나 핵무기에 관한 영화 제작 아이디어를 논의했다. 야마구치는 "카메론과 펠레그리노가 핵무기에 관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12]
5. 사망
야마구치 쓰토무|야마구치 쓰토무일본어는 2009년에 위암 진단을 받았다.[8] 2009년 3월에는 원폭 후유증으로 보이는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터뷰에서 밝혔다.[31] 2009년 12월 22일에는 미국의 영화 감독 제임스 캐머런이 병실을 방문하여 원폭을 주제로 한 영화 구상에 대해 이야기했고, 야마구치 쓰토무|야마구치 쓰토무일본어는 영어로 "나의 역할은 끝났다. 나머지는 당신에게 맡기고 싶다"라고 말했다.[32] 그는 2010년 1월 4일 나가사키에서 9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5][17][18][19][20]
6. 가족
야마구치 쓰토무는 아내 히사코(1920-2008)와 결혼하여[14] 슬하에 아들 가쓰토시(1946-2005), 딸 도시코(1948/1949년생)와 나오코, 세 자녀를 두었다. 세 자녀는 모두 평생 심각한 건강 문제를 겪었다. 나가사키 원폭 생존자이기도 한 야마구치의 아내는 2008년 여든여덟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사인은 간암과 신장암으로, 평생 겪어온 원폭 피해의 합병증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사망 당시 야마구치는 나가사키에서 딸 도시코와 함께 살고 있었다.[8]
7. BBC 논란
2010년 12월 17일, BBC의 코미디 프로그램 ''QI''에서 야마구치 쓰토무를 "세계에서 가장 불운한 남자"라고 언급하며 소개해 일본에서 비판을 받았다.[21] ''QI''의 진행자 스티븐 프라이와 게스트들은 야마구치가 폭탄을 맞고 "튕겨나갔냐"는 등의 블랙 유머를 던져 청중의 웃음을 자아냈다.[22] 야마구치의 딸 야마자키 도시코는 NHK 인터뷰에서 "핵무기를 보유한 영국에서 원자폭탄 경험을 비웃는 것을 용서할 수 없다. 원자폭탄의 공포가 제대로 이해되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화가 나기보다는 슬프다"라고 말했다.[24]
주영 일본 대사관은 BBC에 항의 서한을 보내 프로그램이 원폭 피해자들을 모욕했다고 주장했다. 프로듀서 피어스 플레처는 "불쾌감을 드려 유감", "일본 시청자들의 잠재적 민감성을 과소평가했다"고 밝혔다.[25]
2011년 1월 22일, BBC와 Talkback Thames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고,[26] 마크 톰슨 BBC 사장은 주영 일본 대사관에 서한을 전달했다.[27] 마에하라 세이지 외상 등 일본 정부는 "강한 분노와 불쾌감을 느꼈다"며 비난했다.[38]
한편, 영국에서는 웃음의 취지가 원폭 문제가 아니라, 원폭 투하 다음 날에도 운행한 일본 철도를 통해 영국 철도를 풍자한 것이라는 인식도 있어, 일본 측 항의에 당혹스럽다는 반응도 있었다.[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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