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자키 가오루
1. 개요
오카자키 가오루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자 지도자이다. 오이타 현립 오이타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9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하여 1996년 은퇴할 때까지 선수로 활동했다. 내야수로서 1989년 일본 시리즈 우수 선수, 1990년 감투상을 수상했으며, 1990년에는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은퇴 후에는 닛폰 방송 해설위원, TBS 텔레비전 스포츠 캐스터로 활동했으며, 요미우리 자이언츠 코치와 감독을 역임했다. 2022년에는 규슈 아시아 리그 오이타 B-링스 제너럴 매니저로 취임했다.
| 이름: 오카자키 가오루 | |
| 원어 이름 | 岡崎 郁일본어 |
|---|---|
| 로마자 표기 | Kaoru Okazaki |
| 한자 표기 | 岡崎 郁 |
| 가나 표기 | おかざき かおる |
| 출생일 | 1961년 6월 7일 |
| 출생지 | 오이타현 오이타시 |
| 신장 | 178 |
| 체중 | 77 |
| 투구 | 우 |
| 타석 | 좌 |
| 수비 위치 | 내야수 |
| 포지션 | 내야수 / 코치 |
|---|---|
| 데뷔 리그 | NPB |
| 데뷔일 | 1982년 10월 5일 |
| 데뷔팀 | 요미우리 자이언츠 |
| 최종일 | 1996년 10월 8일 |
| 최종팀 | 요미우리 자이언츠 |
| 프로 입단 년도 | 1979년 |
| 드래프트 순위 | 드래프트 3순위 |
| 첫 출장 | 1982년 10월 5일 |
| 마지막 경기 | 1996년 10월 8일 |
| 선수 | 요미우리 자이언츠 (1980–1996) |
| 감독 및 코치 |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6–2015) |
|---|
| 타율 | .260 |
|---|---|
| 안타 | 112 |
| 홈런 | 63 |
| 타점 | 906 |
| 도루 | 23 |
| 주요 수상 | 4× NPB 올스타 (1989 - 1992) 1× 미쓰이 골든 글러브상 (1990) 3× 일본 시리즈 우승 (1981, 1989, 1994) |
|---|
| 뱃 | 왼쪽 |
|---|---|
| 던짐 | 오른쪽 |
| 유튜브 채널 이름 | 아슬레틱 아카데미아【오카자키 이쿠 공식 채널】 |
| 유튜브 채널 URL | UCB-FcvdGhY5a69C7Csv4unA |
| 활동 기간 | 2022년 1월 11일 (개설일은 2021년 12월 15일) - |
| 장르 | 야구 |
| 구독자 수 | 9.07만 명 |
| 총 조회수 | 35,970,756회 |
| 캐치프레이즈 | 아슬레틱 아카데미아 학장 오카자키 이쿠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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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별 타격 성적을 포함한 문서 -
도마시노 겐지
도마시노 겐지는 1988년 야쿠르트 스왈로스에 입단하여 1989년 신인왕을 수상하고 빠른 발과 수비력을 갖춘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활약한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자 현재 야구 해설가이다. -
연도별 타격 성적을 포함한 문서 -
나가오카 히데키
나가오카 히데키는 일본 프로 야구 선수로, 유격수 및 2루수로 활동하며 2022년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하고 2024년 최다 안타 타이틀을 획득했다. -
센트럴 리그 골든 글러브상 -
기타벳푸 마나부
기타벳푸 마나부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서 213승을 기록한 전설적인 투수로, 일본시리즈 우승과 MVP 수상, 명예의 전당 헌액 등 화려한 선수 경력 이후 야구 해설가, 지도자, 유튜버로 활동했다. -
센트럴 리그 골든 글러브상 -
후루타 아쓰야
후루타 아쓰야는 일본 프로 야구 선수, 감독, 해설가 및 방송인으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주전 포수로서 뛰어난 타격과 수비 능력으로 MVP를 수상하고 도루 저지율 신기록을 세웠으며, 선수회 회장으로서 파업을 주도하여 선수 권익 신장에 기여했고 야쿠르트 스왈로스 감독을 역임했다. -
오이타현 출신 야구 선수 -
오시마 야스노리
오시마 야스노리는 일본의 야구 선수이자 지도자였으며,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감독을 역임했고,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팀 타격 코치를 맡아 우승에 기여했으며, 2021년 대장암으로 사망했다. -
오이타현 출신 야구 선수 -
아라마키 아쓰시
아라마키 아쓰시는 빠른 공으로 유명했던 일본 프로 야구 선수로, 마이니치 오리온스에서 신인왕, 다승왕, 최우수 평균 자책점 3관왕을 달성하며 팀 우승에 기여했고 은퇴 후 야구 해설가와 코치를 지냈으며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 선수 시절
오이타 현립 오이타 상업고등학교 시절인 1979년 봄과 여름에 있은 고시엔 대회에 출전했고, 졸업 후 호세이 대학으로 진학을 희망했지만 같은 해 프로 야구 드래프트 3순위로 요미우리 자이언츠로부터 지명을 받아 나가시마 시게오 감독의 설득에 의해 입단했다. 그러나 입단 첫 해인 1980년부터 1981년까지 2년간 고노 가즈마사, 시노즈카 도시오, 나카하타 기요시, 하라 다쓰노리 등과 같은 주력 선수들에게 밀리면서 경기 출전 기회를 가질 수가 없었다. 그 후 늑막염이 발병해 요양 생활을 보내는 등 1984년에 연습생 신분으로 뛰었다.
이듬해 1985년부터는 1군에서 뛰기 시작하면서 1987년 시즌에는 유격수로서 시즌 수비율의 일본 기록을 수립하는 등 주전 선수로서의 클래스 기능을 보이는 것도 규정 타석에 도달할 수 없었다. 그러나 프로 생활 10년차인 1989년에는 당시 감독인 후지타 모토시로부터 승부에 강한 배팅을 찾아내 전지 훈련에서는 3루수를 중심으로 1루수까지 해내는 등 수비 위치의 변경이 있었다. 시범 경기에서 수위타자를 획득해 개막전은 1루수로서 선발 출전했고, 그 후 나카하타 기요시의 부상에 의해 3루수를 차지했으며 1992년까지는 3루수의 주전 포지션을 지켰다. 친구인 고마다 노리히로와의 일명 ‘공포의 6·7번 콤비’는 제2의 클린업으로 무장시키는 등 타 구단으로서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1989년 일본 시리즈 우승, 1990년에는 센트럴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올스타전에서는 1989년부터 4년 연속 센트럴 리그 3루수 부문에서 팬 투표로 선정되었고 일본 시리즈에서는 1989년에 우수 선수, 1990년 감투상 수상자로 선정, 1993년에는 4번 타자도 맡았다. 1995년 이후에는 모토키 다이스케의 성장, 니시 도시히사의 입단으로 인해 좀처럼 출전 기회를 가질 수가 없어 1996년 시즌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2.1. 프로 입단 전
오이타 현립 오이타 상업고등학교 시절, 1979년 봄과 여름에 고시엔 대회에 연속 출전했다. 봄의 선발에서는 투수로 기용되어 1회전에서 사쿠신가쿠인을 상대로 승리했지만, 2회전에서 도요대 히메지에게 패했다. 여름의 선수권에서는 유격수로 출전하여 팀의 준준결승 진출에 기여했지만, 요코하마 상업에게 패했다. 같은 해 전일본 고교 선발팀의 하와이 원정에도 선출되었다.
호세이 대학 진학을 희망했지만, 1979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요미우리에 내야수로 3순위 지명을 받았다. 이후 나가시마 시게오 1군 감독의 설득으로 입단했다.
2.2.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오카자키 가오루는 1979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3순위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지명되어 입단했다. 입단 초기에는 고노 가즈마사, 시노즈카 도시오, 나카하타 기요시, 하라 다쓰노리 등 주전 선수들에게 밀려 1군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다. 1984년에는 늑막염으로 요양 생활을 하며 연습생 신분으로 뛰었다.
1985년에 1군에 복귀하여 가와노 가즈마사, 이시와타 시게루 등과 유격수 주전 경쟁을 벌여 8월에 주전 자리를 획득했다. 1987년에는 고노 쥰키와의 경쟁 속에서 주로 2번 타자로 출전, 수비율 0.994를 기록하며 유격수 부문 일본 기록(당시)을 세웠다. 일본 시리즈에서도 3경기에 선발 출전하여 12타수 4안타를 기록했다.
1988년에는 등번호를 45번에서 5번으로 변경했다. 1989년, 후지타 모토시 감독의 눈에 띄어 3루수와 1루수로 훈련하며, 오픈전에서 수위타자를 획득, 개막전에서 1루수로 선발 출전했다. 나카하타 기요시의 부상으로 3루수 주전 자리를 차지하며, 고마다 노리히로와 함께 '공포의 6, 7번 콤비'로 불리며 팀의 중심 타자로 활약했다. 1989년 일본 시리즈에서 2홈런을 쳐 우수 선수상을 수상했다.
1990년에는 시즌 도중 부상으로 이탈했지만, 막바지에 규정 타석을 달성하여 타율 .289 (리그 14위)를 기록하며 센트럴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골든 글러브상을 처음으로 수상했다. 1990년 일본 시리즈에서는 12타수 5안타 1홈런으로 분전하며 감투상을 수상했다. 1991년부터 선수 회장과 주장을 맡았다.
1993년에는 하라 다쓰노리가 3루수로 복귀하면서 대타로 출전했지만, 팀 타격 부진으로 인해 8월 11일 야쿠르트와의 경기에서 팀 58대 4번 타자로 기용되어 3안타 1타점을 기록했다. 1994년에는 하라의 부상으로 3루수로 복귀하여 5번 타자로 정착,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일본 시리즈에서는 제3전에서 2안타, 제4전에서 3안타를 기록하며 팀의 일본 시리즈 우승에 공헌했다.
1995년에는 모토키 다이스케의 부진으로 개막부터 2루수로 기용되었지만, 1996년에는 모토키, 다카무라 요시카의 성장과 니시 히사시의 입단 등으로 인해 출전 기회가 줄어들어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3. 은퇴 후
오카자키 가오루는 은퇴 후 닛폰 방송의 야구 해설위원(1997~2004년)과 스포츠 캐스터로 활동했다. TBS 텔레비전의 『오하요 쿠지라』(1997년 4월~1999년 3월), 『익스프레스』 수요일 (1999년 4월~2002년 3월) 스포츠 캐스터로 활동하였다. 도쿄도 지요다구에서 야키니쿠 전문점을 운영하기도 했다. 2005년에는 뉴욕 양키스 산하 마이너 리그 팀에서 코치 연수를 받았다.
2006년부터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 타격 코치(2006~2007년), 2군 수석 코치 겸 내야 수비 코치(2008년), 2군 감독(2009~2010년, 2013~2015년), 1군 수석 코치(2011~2012년)를 역임했다. 2010년에는 제17회 IBAF 인터컨티넨탈컵 일본 대표 감독을 맡았다. 1군 수석 코치 시절인 2011년 와타나베 쓰네오 구단 회장과의 갈등으로 구단 내 인사에 혼란이 있었으나, 결국 1군 수석 코치로 유임되었다.
2016년 요미우리 편성 본부 고문,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스카우트 부장을 역임했다. 2019년 12월 1일, 자이언츠 아카데미 교장에 취임했다. 2021년 말,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퇴단했다. 2022년 11월 2일, 규슈 아시아 리그의 오이타 B-링스 제너럴 매니저에 취임했다.
4. 선수로서의 특징
부드러운 배트 다루기와 뛰어난 타격 기술로 시노즈카 2세"라고 불린 호타자이다. 클러치 히터였으며, 뛰어난 승부 근성 또한 무기였다。수비에서는 내야 전 포지션을 소화했으며, 1990년에는 3루수로서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5. 기타
"시노즈카 2세"라고 불린 호타자로, 클러치 히터였다. 1990년에는 3루수로서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전 노기자카46 멤버이자 연예인인 에토 미사와 친척 관계이다. 에토 미사는 오카자키 가오루의 오이타 상업고등학교 후배인 겐다 소스케와 결혼했는데, 오카자키는 결혼식 초대장은 받지 못했다.
원래 한신 타이거스 팬임을 공언했었다. 1979년 드래프트 회의에서 한신으로부터 1순위 지명을 받지 못하면 대학에 진학할 예정이었으나, 나카시마 시게오의 설득으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1984년, 늑막염으로 입원 중, 한 여고생으로부터 팬레터를 받고 격려를 받아 후에 결혼에 이르렀다.
6. 상세 정보
6.1. 출신 학교
오카자키 가오루는 오이타 현립 오이타 상업고등학교 출신이다.
6.2. 선수 경력
요미우리 자이언츠(1980년 ~ 1996년)
6.3. 지도자 경력
2006년부터 2007년까지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 타격 코치를 맡았다. 2008년에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 수석 코치 겸 내야 수비 코치를 역임했다. 2009년부터 2010년까지, 그리고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 감독을 맡았다. 2010년에는 제17회 IBAF 인터컨티넨탈컵 일본 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다. 2011년부터 2012년까지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1군 수석 코치를 맡았다.
6.4. 수상 경력
오카자키 가오루는 1990년에 골든 글러브상을 1회 수상하였다. 같은 해 일본 시리즈 감투상을 받았으며, 1989년에는 일본 시리즈 우수 선수상을 1회 받았다.
6.5. 개인 기록
* 첫 출장: 1982년 10월 5일,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 25차전(고라쿠엔 구장), 9회초에 카와노 카즈마사 대신 유격수로 출장
* 첫 타석: 1983년 8월 28일, 야쿠르트 스왈로스 18차전(고라쿠엔 구장), 5회말에 코사카 히데노리의 대타로 출장, 미야모토 켄지 앞에서 범퇴
* 첫 안타: 1985년 4월 13일,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 1차전(고라쿠엔 구장), 8회말에 카와노 카즈마사의 대타로 출장, 사이토 아키오로부터 단타
* 첫 선발 출장: 1985년 4월 25일, 주니치 드래곤즈 2차전(고라쿠엔 구장), 7번・유격수로 선발 출장
* 첫 타점: 1985년 4월 26일, 주니치 드래곤즈 3차전(고라쿠엔 구장), 3회말에 곽원지로부터 적시타
* 첫 홈런: 1985년 7월 31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 13차전(히로시마 시민 구장), 7회초에 야마네 카즈오로부터 솔로
* 1000경기 출장: 1994년 6월 21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 11차전(도쿄 돔), 5번・2루수로 선발 출장 ※역대 320번째
* 올스타 게임 출장: 4회 (1989년 - 1992년)
6.5.1. 첫 기록
첫 출장 : 1982년 10월 5일, 대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 25차전(고라쿠엔 구장), 9회초에 고노 가즈마사를 대신해서 유격수로 출장했다.
첫 타석 : 1983년 8월 28일, 대 야쿠르트 스왈로스 18차전(고라쿠엔 구장), 5회말에 고사카 히데노리의 대타로 출장, 미야모토 겐지 앞에서 범퇴했다.
첫 안타 : 1985년 4월 13일, 대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 1차전(고라쿠엔 구장), 8회말에 고노 가즈마사의 대타로 출장, 사이토 아키오로부터 단타를 쳤다.
첫 선발 출장 : 1985년 4월 25일, 대 주니치 드래곤스 2차전(고라쿠엔 구장), 7번·유격수로서 선발 출장했다.
첫 타점 : 1985년 4월 26일, 대 주니치 드래곤스 3차전(고라쿠엔 구장), 3회말에 가쿠 겐지로부터 적시타를 쳤다.
첫 홈런 : 1985년 7월 31일,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13차전(히로시마 시민 구장), 7회초에 야마네 가즈오로부터 솔로 홈런을 쳤다.
6.5.2. 기록 달성 경력
통산 1000경기 출장 : 1994년 6월 21일,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11차전(도쿄 돔), 5번·2루수로서 선발 출장 ※역대 320번째
6.5.3. 기타
올스타전 출장 : 4회(1989년 ~ 199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