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우네비 (방호순양함)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우네비는 1880년대 일본 해군의 군비 확장 계획에 따라 프랑스에서 건조된 방호순양함이다. 1884년 기공되어 1886년 진수되었으나, 일본으로 향하던 중 남중국해에서 실종되었다.

우네비는 3,615톤의 배수량, 24cm 주포 4문, 15cm 부포 7문 등을 탑재했으며, 17.5~18.5kn의 속도로 운항할 수 있었다. 실종 원인으로는 과도한 무장과 텀블홈 구조로 인한 복원성 부족이 유력하게 제기된다. 우네비의 실종은 일본 해군에 큰 영향을 미쳐, 대체 함선 건조와 함께, 동형함 설계 변경을 가져왔다. 우네비는 이후 대중문화 작품의 소재로도 활용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실종선 - U-1 (1935년)
    핀란드 해군 잠수함 베시코를 기반으로 1935년 독일에서 건조된 독일 해군의 잠수함 U-1은 2차 세계 대전 발발 전 취역하여 1940년 북해에서 기뢰에 의해 침몰, 승무원 전원이 사망했으며 노르웨이 해역에서 작전 수행 후 베저위붕 작전 준비 중 침몰했고, 2007년 불가리아 연안에서 잔해가 발견되었다.
  • 남중국해의 침몰선 - 엑슨발데즈
    엑슨발데즈는 1989년 알래스카 프린스 윌리엄 해협에서 좌초되어 대규모 원유 유출 사고를 일으킨 유조선이다.
우네비 (방호순양함) - [배(Ship)]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1886년 10월 18일, 르아브르 항의 안벽을 떠난 우네비
1886년 10월 18일, 르아브르 항의 안벽을 떠난 우네비
함명우네비 (畝傍)
함명 유래우네비 산
함종방호순양함
건조프랑스, 르아브르, 지롱드 조선소
소속일본 제국 해군
모항요코스카
계획1883년도 계획
발주1884년 5월 28일 계약
기공1884년 5월 27일
진수1886년 4월 6일
완공1886년 10월 18일
최종 운항1886년 12월 3일 싱가포르 출항 후 행방불명
제적1887년 10월 19일 망실 인정
제원
배수량계획 3,615톤
길이98.00m
13.10m
깊이8.50m
흘수중앙 5.70m
추진
추진 방식2축
주기관횡치 경사동 2단 2기통 왕복 기관 2기
출력계획: 강압 통풍 5,500마력, 자연 통풍 3,800마력
보일러저 원통형 보일러 9기
속력계획: 17.5노트
승조원
정원400명
무장
주포35구경 24cm 단장포 4문
부포35구경 15cm 단장포 7문
기타6파운드포 2문
노르덴펠트식 25mm 4연장 기관포 10기
노르덴 6파운드 연발포 2기
개틀링 기관포 4기
발사관 4문 (계획 2문)
장갑
장갑계획: 50mm (또는 2.5인치)
갑판2.33인치 (59.2mm)
기타

탑재정
탑재정계획: 증기선 1척, 단정 7척
건조 비용
건조 비용계약 시 금액: 5,175,420 프랑스 프랑

2. 배경

1880년대 초, 해군 대신 가와무라 스미요시는 일본의 제한된 재정 자원 속에서 중국의 성장하는 베이양 함대에 맞서기 위해 고심하고 있었다.[1] 이러한 상황에서 프랑스가 개발한 젊은 학파프랑스어 해군 교리는 값비싼 어뢰정 및 중무장 경순양함을 사용하여 중무장한 장갑 전함에서 상대의 우위를 상쇄하는 것을 강조했다.[1] 또한, 암스트롱 휘트워스의 조지 렌델이 설계한 중무장 경순양함인 칠레 순양함 ''에스메랄다''가 젊은 학파프랑스어 교리에 부합했다.[1] 렌델은 자신의 함선이 더 빠른 속도로 전투 거리를 결정하거나 필요에 따라 교전할 수 있기 때문에 전함 파괴선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1]

칠레가 칠레 순양함 ''에스메랄다''의 구매 시도를 거절한 후, 가와무라는 1884년 3월 암스트롱 휘트워스에 개량형인 급 2척을 발주했다.[2] 그는 영국에서 건조된 함선에 필적할 만한 다른 함선을 원했기에, 포제 에 샹티에 드 라 지롱드가 제시한 합리적인 가격에 감명받아, 5월 22일 계약이 체결되었다.[2]

청일 전쟁에 대비하여 해군경 가와무라 스미요시가 제안한 군함 증강 계획에 따라 구입된 대철갑함 3척 중 1척이 우네비함이다.[38] 다른 2척은 영국나니와다카치호였다.[38]

3. 건조

1884년(메이지 17년) 5월 27일, 프랑스 르아브르에 있는 Forges et Chantiers de la Gironde 조선소에서 기공되었다.[36] 같은 해 6월 5일, 일본 해군은 이 함을 정식으로 '우네비'(畝傍)로 명명했다.[33][39] 후보 함명으로는 우네비 외에 잠자리(아키츠), 이와레(磐余)가 있었다.[40]

르 아브르를 출발한 직후 기동중인 ''우네비''


1886년 4월 6일, 후시미 친왕이 참석한 가운데 진수식을 가졌다.[41] 10월 18일, ¥1,812,673의 비용으로 완성되었는데, 이는 원래 계약상의 ¥1,093,000보다 훨씬 더 많은 금액이었다.[7]

일본인 선원과 조선소 직원이 함께 승선한 ''우네비''는 18일 르 아브르를 출발하여 일본으로 향하려 했으나, 심한 폭풍우를 만나 배가 심하게 흔들려 안전에 위협을 느껴 회항해야 했다. 다음 날 출항한 이 배는 수에즈 운하를 통과한 후 지중해에서 약한 폭풍을 만났다. 더 강력한 폭풍으로 인해 ''우네비''는 예멘의 아덴으로 돌아와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주포 2문을 하역했다.[8]

이후의 행적과 침몰에 대한 내용은 다른 섹션에서 다룬다.

4. 구조 및 특징

우네비는 나니와급 방호순양함과 비교했을 때, 다소 구식인 3장 버크형 기범선이었다.[5] 수선간 길이는 98m, 선폭은 13.1m, 평균 흘수선은 5.72m였다. 배수량은 3615t이었고, 400명의 승무원이 탑승했다.[3]

주포는 크루프 35구경 24cm 포 4문, 부포는 크루프 35구경 15cm 포 7문을 갖추고 있었다. 24cm 주포는 상부 갑판에 단장 포좌로 선체 측면에 스폰슨식으로 장착되었고,[6] 15cm 부포 대부분은 상부 갑판의 중앙부에 장착되었으며, 좌우 현측에 각각 3문씩 배치되었다. 나머지 1문은 짧은 포갑판 아래의 전방 추격포로 장착되었다. 어뢰정에 대한 방어는 한 쌍의 57mm 노르덴펠트 속사포로 제공되었으며, 1문은 포갑판에, 다른 1문은 선미에 장착되었다. 근거리 방어 무기로는 10문의 4연장 25mm 노르덴펠트포와 4문의 10연장 11mm 노르덴펠트 기관총이 함선에 분산 배치되었다. 또한 35.6cm 수상 어뢰발사관 4문을 갖추고 슈바르츠코프 어뢰를 운용했다.[6]

프랑스 함선의 전통적인 텀블홈 구조를 채택하여 갑판 면적이 좁고, 상부 구조물이 높아 톱 헤비(Top-heavy) 문제가 있었다. 함수가 장착되었으며, 주포의 사격 각도를 넓히고 선체에 가깝게 발사할 때의 폭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선측에 상당한 양의 텀블홈이 있었다.[3] 메타센터 높이는 침몰 전까지 측정된 적이 없지만, 매우 낮았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로 인해 선박 복원성이 불안정했을 것으로 보인다. 함선의 인도 항해 보고서에는 과도한 선박 운동에 대한 내용이 언급되었다.[3]

우네비는 2개의 왕복동 증기 기관을 장착했는데, 각 기관은 1개의 샤프트를 구동하며, 6개의 스코치 해양 보일러에서 공급되는 증기를 사용했다. 이 엔진은 5500ihp의 출력을 냈으며, 함선은 17.5-18.5kn의 속도를 낼 수 있었다.[5] 10kn의 속도로 5600nmi의 항속 거리를 제공할 수 있는 충분한 양의 석탄을 실었다.[4] 장갑은 함선의 전체 길이를 덮는 63mm 하부 갑판에 한정되었으며, 함교는 22mm 두께의 장갑으로 보호되었다.[6]

5. 회항 및 실종

1886년 10월 19일, 프랑스인 함장 르페브르의 지휘 아래 르아브르에서 일본으로 출항했다. 이 배에는 일본 해군 장병과 주일 프랑스인 가족, 프랑스인 승무원 등 총 90여 명이 승선했다.[47] 12월 3일, 기항지인 싱가포르를 출항한 후[36][46] 남중국해 해상에서 실종되었다.[45] 당시 승선 인원은 프랑스인 79명, 아랍인 화부 9명, 일본인 회항원 7명 외에 해군 생도 1명이 타고 있었다.[44]

실종 후, 철갑함 후소와 카이몬이 토사 앞바다에서 하치조섬까지 해상 수색을 실시했다.[46] 그 외에도 통신성 등대국의 메이지마루와 일본우선 소속 나가토마루도 수색에 나섰고,[47] 여러 외국 선박도 수색에 협력했지만, 단서를 찾지 못해[48][49][50][51] 미스터리한 실종으로 남았다.[52]

1887년 10월 19일, 일본 정부는 우네비를 망실(유실) 처리하고,[36][45] 승무원 전원의 사망을 인정했다.[16][53]

도쿄 아오야마 묘지에 있는 ''우네비''와 침몰한 어뢰정 지시마 기념비

5. 1. 실종 원인에 대한 가설

우네비는 1886년 12월 3일, 일본 해군의 회항 임무를 위해 프랑스인 토시카즈 선장 외 프랑스인 78명, 아랍인 보일러공 9명, 일본인 짐꾼 7명, 해군 학생 1명으로 구성된 승무원을 태우고 싱가포르를 출발(12월 14일에서 15일 사이에 요코하마 항에 도착 예정)했다.[8] 그러나 그 후 남중국해에서 실종되었다.[8] 12월 말, 철갑선 후소와 카이몬이 토사에서 하치조 섬까지 해상 수색을 실시하고, 일본 우선 소속 나가토 마루를 포함한 다른 배들도 수색에 참여했지만 아무런 단서도 발견되지 않았다.[8]

실종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가설이 존재한다. 가장 유력한 가설은 과도한 무장과 텀블홈 구조로 인한 복원성 부족이다. 프랑스 해군의 전통적인 선체 설계를 채택한 결과, 갑판 면적이 좁아지고 상부 구조물을 높여 보완했기 때문에 복원성이 부족했다.[58] 또한, 일본 측의 요구에 따라 과도한 무장을 탑재하여, 톱 헤비와 복원력 부족이 더욱 심해졌으며, 남중국해에서 설계의 상정 외인 태풍을 만나 전복 침몰했을 가능성이 유력하게 제기된다.[59] 태풍이 아니더라도, 갑작스러운 타(舵) 조작으로 인해 함이 크게 기울어져 횡파를 받아 복원력 부족으로 순식간에 전복될 위험성도 있었다.[60]

당시에는 여러 종류의 전설(무인도 표착설, 해적 나포설, 청나라 해군 격침설 등)이 있었고,[61][64][62][63] 모험 소설의 소재로 쓰이기도 했다. 오시카와 슌로는 세이난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이고 다카모리가 우네비에 승선하여 시베리아를 모험한다는 소설을 발표했다.[64] 러시아 해군에 나포되었다는 설도 있었으며, 러일 전쟁 당시 "나포된 우네비가 발트 함대의 일원으로서 일본에 습격해 온다"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1897년 7월, 미국의 신문 뉴욕 트리뷴과 모닝 타임즈에 따르면, 수년 전 어부들이 페스카도르스 제도 해변에서 일본 배의 잔해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일본 해군과 섬의 경찰 부대가 실시한 후속 조사에 따르면 어부들이 실제로 약 10년 전에 해변에서 배 잔해를 발견하여 나무 오두막을 짓는 데 사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오두막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조사관들은 장식된 나무 조각과 풍화된 글자 우네비가 새겨진 객실 문 2개 등을 발견했다.[9] 그러나 오늘날까지 이 순양함이 언제 어디서 침몰했고, 우네비의 붕괴 원인이 무엇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우네비''는 1887년 10월 19일 모든 승무원과 함께 공식적으로 유실된 것으로 선언되었고 해군 목록에서 삭제되었다.[10] ''우네비'' 실종 승무원을 위한 기념비는 도쿄의 아오야마 묘지에 있다.

6. 사건의 영향

일본은 군함 회항에 보험을 들어 1,245,309엔의 보험금이 지급되었기에[54], 우네비의 대체함으로 순양함 지요다를 영국에 발주했다. 우네비의 동형함이 될 예정이었던 방호순양함 아키츠시마는 영국식 순양함으로 재설계되어 건조되었다.[60]

일본은 우네비의 건조비 잔액을 지불할 필요가 없어졌지만, 프랑스는 잔액을 회수하기 위해 수뢰포함지시마를 건조했다. 그러나 지시마도 회항 중 1892년 11월 30일, 세토 내해에서 영국 상선충돌하여 침몰했다[55][56](지시마 함 사건).

우네비라는 이름은 본 함이 초대이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연기가 좋지 않은 이름이라고 여겨지게 되어, 현재 상태에서는 이후의 함에 계승되지 않아 1대 한정의 명칭이 되었다.

아오야마 묘지에 우네비의 기념비 및 관계자 묘지가 있다.

7. 기념

8. 대중문화 속 우네비

요시오카 타이라의 라이트 노벨 시리즈 《우주 제일의 무책임 남자》에서는 신성 라알곤 제국의 타임 워프 실험에 의해 7000년 후의 미래우주 공간으로 날아가 버렸다는 설정이다. 야하기 토시히코와 시죠 시로의 소설 《바다에서 온 사무라이》에서는 메이지 시대 미국에 병합되는 하와이를 배경으로, 미국에 나포되어 무장을 빼앗긴 우네비가 하와이 앞바다에 유기되어 있으며, 무장은 다이아몬드 헤드 요새에 설치되어 있다.

오시카와 슌로의 소설 《해저 군함 시리즈》에서는 남해의 고도에 표류한 후, 비밀 조직 "동양 단결"에 의해 "제2 우네비", "제3 우네비"와 같은 동형함이 양산되고 있었다는 설정이다. 히라타 신사쿠의 소설 《신 전함 다카치호》에서는 비밀리에 북극 탐험을 향한 후 조난된 결과 북극에 존재하는 "북극 비밀경"이 일본 영토가 되었다는 설정이다. 이는 당시 일본 제국의 팽창주의적 야욕을 드러내는 설정으로 해석될 수 있다. raiL soft의 소설 게임 《알바트로스 항해록》은 소실된 우네비의 그 후를 그린 작품이다.

키쿠치 히데유키의 라이트 노벨 《마계 도시 <신주쿠>》에서는 신주쿠 중앙 공원 상공에 세계 각지의 이차원 공간과 연결되는 "가마구치"라고 불리는 통로가 있고, 퇴적하는 표류물 산 속에 우네비도 존재했다.

8. 1. 등장 작품

요시오카 타이라의 라이트 노벨 시리즈 《우주 제일의 무책임 남자》에서는 신성 라알곤 제국의 타임 워프 실험에 의해 7000년 후의 미래 우주 공간으로 날아가 버렸다는 설정이다. 야하기 토시히코와 시죠 시로의 소설 《바다에서 온 사무라이》에서는 메이지 시대 미국에 병합되는 하와이를 배경으로, 미국에 나포되어 무장을 빼앗긴 우네비가 하와이 앞바다에 유기되어 있으며, 무장은 다이아몬드 헤드 요새에 설치되어 있다.

오시카와 슌로의 소설 《해저 군함 시리즈》에서는 남해의 고도에 표류한 후, 비밀 조직 "동양 단결"에 의해 "제2 우네비", "제3 우네비"와 같은 동형함이 양산되고 있었다는 설정이다. 히라타 신사쿠의 소설 《신 전함 다카치호》에서는 비밀리에 북극 탐험을 향한 후 조난된 결과 북극에 존재하는 "북극 비밀경"이 일본 영토가 되었다는 설정이다. raiL soft의 소설 게임 《알바트로스 항해록》은 소실된 우네비의 그 후를 그린 작품이다.

키쿠치 히데유키의 라이트 노벨 《마계 도시 <신주쿠>》에서는 신주쿠 중앙 공원 상공에 세계 각지의 이차원 공간과 연결되는 "가마구치"라고 불리는 통로가 있고, 퇴적하는 표류물 산 속에 우네비도 존재했다.

참조

[1] 서적 Brooke, p. 45; Schenking, p. 36
[2] 서적 Milanovich, p. 170
[3] 서적 Chesneau, p. 227; Milanovich, pp. 171–172, 175
[4] 서적 Jentschura, Jung & Mickel, p. 96
[5] 서적 Milanovich, pp. 171–172, 175
[6] 서적 Milanovich, pp. 172, 175
[7] 서적 Milanovich, pp. 170–172
[8] 서적 Milanovich, pp. 172–173
[9] 뉴스 The Morning Times July 9.1897 https://tile.loc.gov[...]
[10] 서적 Evans, p. 545; Milanovich, p. 173
[11] 서적 Chesneau, p. 223; Milanovich, p. 173
[12] 서적 海軍艦艇史2 p.40、写真No.2048の解説
[13] 서적 日本の戦艦(上)2001 p.26
[14] 서적 日本の戦艦(上)2001 p.20
[15] 문서 公文備考別輯畝傍上/艦体(6) 画像31、畝傍艦製造條約
[16] 문서 艦船名考(1928) pp.54-55
[17] 문서 公文備考別輯畝傍上/艦体(8) 画像37、〔 赤松宛 若山 本月六日伏見宮ノ面前ニテ畝傍艦ノ進水式ヲ執行シ満足ノ結果ヲ得タリ 八十六年四月八日発 〕
[18] 문서 公文備考別輯畝傍上/回航手続(1) 画像16-17
[19] 문서 公文備考別輯畝傍上/畝傍横須賀所轄 画像1〔 十一月五日 畝傍艦ヲ横須賀鎮守府ノ所轄ト定ム 海軍省達海軍一般 要第七三八号ノ二 畝傍艦横須賀鎮守府所轄ト定メラル此旨心得ベシ 十九年十一月5日
[20] 문서 公文備考別輯畝傍上/艦体(6) 画像29、畝傍艦製造條約、第17條
[21] 문서 公文備考別輯畝傍上/艦体(6) 画像7-10、フォルヂェシャンチェー會社ノセルラル○舩
[22] 서적 帝国海軍機関史(1975) 上巻p.526(第二巻一九四頁)
[23] 서적 日本の戦艦(上)2001 p.106
[24] 서적 帝国海軍機関史(1975) 上巻p.526(第二巻一九四頁)によると垂線間長{{Convert|323|ft|6|in|m|2|abbr=on|lk=on}}
[25] 문서 公文備考別輯畝傍上/艦体(6) 画像6
[26] 서적 日本の戦艦(下)2001 p.48
[27] 서적 日本の戦艦(下)2001 p.42
[28] 문서 公文備考別輯畝傍上/艦体(9) 画像2-3『畝傍艦ノ公試運転ハ本日(九月二日)施行シ速力ハ十八節三六ナリ委細ハ郵便』による。同画像16-20の若山三等技監の報告によると2時間平均速力を計算すると18.28ノット。造船会社の主張は速力18.37ノットであり、これらの数値は褒賞金に関わる問題だった。
[29] 서적 海軍制度沿革10-1(1972) p.171、明治19年1月21日(丙2)畝傍外七艦定員
[30] 서적 日本の戦艦(下)2001 p.152
[31] 문서 公文備考別輯畝傍上/兵器船具(2) 画像29-30、明治19年10月15日附畝傍甲第36号
[32] 서적 日本の戦艦(上)2001 p.216
[33] 문서 海軍制度沿革(巻8、1940) コマ197〔 ◎軍艦畝傍命名ノ件 明治十七年六月五日(丙九〇)今般佛國注文セシ軍艦ヲウネト命名ス此旨爲心得相達候事 〕
[34] 문서 幕末以降帝国軍艦写真と史実 コマ237(原本82頁)〔 一、初めて軍艦を佛國に註文す―明治十七年(一八八四)「畝傍」ヲ註文し、明治十九年竣工、本邦への回航途次「シンガポール」出發後行衛不明トナル 〕
[35] 문서 明治の海軍物語 コマ55(原本93)
[36] 문서 "#幕末以降帝国軍艦写真と史実"
[37] 간행물 明治20年10月19日官報第1293号。国立国会図書館デジタルコレクション コマ3 https://dl.ndl.go.jp[...]
[38] 문서 "#海軍制度沿革(巻8、1940)"
[39] 문서 "#海軍省畝傍命名"
[40] 문서 "#仏国注文巡洋艦名号"
[41] 간행물 月曜会記事 第17号 明治19年11月印刷(3)p.1 https://www.jacar.ar[...]
[42] 문서 "#海軍艦艇史2"
[43] 문서 "#公文備考別輯畝傍上/回航手続(1)"
[44] 문서 "#公文備考別輯畝傍中/捜索(9)"
[45] 문서 "#海軍制度沿革(巻8、1940)"
[46] 간행물 明治20年3月2日官報第1098号。国立国会図書館デジタルコレクション コマ3 https://dl.ndl.go.jp[...]
[47] 서적 日本海軍史 第1巻
[48] 간행물 明治20年3月3日官報第1099号。国立国会図書館デジタルコレクション コマ3 https://dl.ndl.go.jp[...]
[49] 간행물 明治20年3月4日官報第1100号。国立国会図書館デジタルコレクション コマ3 https://dl.ndl.go.jp[...]
[50] 간행물 明治20年3月7日官報第1102号。国立国会図書館デジタルコレクション コマ3-4 https://dl.ndl.go.jp[...]
[51] 간행물 明治20年3月8日官報第1103号。国立国会図書館デジタルコレクション コマ3-4 https://dl.ndl.go.jp[...]
[52] 문서 "#S05、海軍写真帖"
[53] 문서 "#公文備考別輯畝傍下/保険金(1)"
[54] 문서 "#海軍制度沿革(巻8、1940)"
[55] 문서 "#明治の海軍物語"
[56] 문서 "#幕末以降帝国軍艦写真と史実"
[57] 문서 "#幕末以降帝国軍艦写真と史実"
[58] 문서 "#明治文明綺談"
[59] 문서 "#明治文明綺談"
[60] 서적 "#日本巡洋艦物語"
[61] 문서 "#明治文明綺談"
[62] 서적 幼年冒険小説集
[63] 서적 幼年冒険小説集
[64] 문서 "#明治文明綺談"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