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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선박건조조성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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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수선박건조조성시설은 1937년 일본에서 시행된 조선 진흥 정책으로, 기존의 선박개선조성시설보다 대상 선종을 확대하고 대형화 및 고속화를 추구했다. 이 정책은 해운 및 조선 업계의 요구와 일본 해군의 함대 확장 계획을 배경으로, 잉여 선복 문제 해결과 유사시 선박 증강을 목표로 했다. 지원 대상은 여객선과 화물선·유조선으로, 6,000 총톤 이상, 19노트 이상의 속력을 갖춘 선박이었으며, 국산 자재 사용, 설계 시 모형 시험 실시, 외국인 선원 승무 금지 등의 요건을 충족해야 했다. 지원금은 속력에 따라 차등 지급되거나 톤당 40엔이 지급되었으며, 군에 징발될 경우를 대비한 세부 설계 요구사항도 포함되었다. 이 정책을 통해 여러 선박이 건조되었으며, 일부는 항공모함이나 특설순양함으로 개조되기도 했다. 대형우수선건조조성시설은 우수선박건조조성시설에 이어 시행된 정책으로, 더 크고 빠른 호화 여객선을 대상으로 했으며, 유사시 군함으로 개조될 것을 전제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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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책결정 배경

쇼와 대공황의 대책으로 1932년부터 1936년까지 실시된 스크랩 앤드 빌드 방식의 조선 진흥 정책인 선박 개선 조성 시설은 조선 수요를 환기하고 과잉 선복을 조절하며, 노후 상선을 교체하는 데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쇼와 대공황에서 벗어난 이후에도 해운·조선 업계에서는 선박 개선 조성 시설 정책의 지속을 요구했다[1]

한편, 일본을 둘러싼 국제 정세가 악화되면서 군부에서도 유사시에 대비하기 위한 상선의 질적·양적 증강을 요구했다. 특히 일본 해군1936년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의 효력이 상실된 것을 계기로 함대 확장을 추진하고 있었으며[2], 항공모함이나 특설 순양함 후보가 되는 대형 화객선 및 보급함 후보가 되는 유조선의 정비를 요구했다.

국제적으로도 서구 각국에서 자국 상선 보호를 위한 대규모 정책이 시행되기 시작했다. 당시 영국, 프랑스, 미국, 이탈리아 등에서는 조선 자금의 보조 및 융자, 원양 항로에 대한 운항 경비 보조 등이 실시되고 있었다[3]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여 체신성은 과잉 선복 문제가 해결되었고 유사시에 대비한 양적 증강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노후 선박 해체를 조건으로 하지 않는 국방 중시의 신조선 건조 보조 실시를 계획했다. 이 새로운 보조 방안인 우수 선박 건조 조성 시설은, 운항 경비를 보조하는 원양 항해 보조 시설, 건조 비용 등의 융자를 실시하는 선박 금융 시설, 선원 양성·선박 시험의 확충과 함께 '''해운 국책'''이라고 칭해졌다.

해운 국책 예산안은 1936년히로타 내각에 의해 제국 의회에 제출되었으며, 다음 해인 1937년 3월 하야시 내각 하에서 성립되었다[2]。 구체적인 실시 요항은 1937년 4월 1일 체신성 고시(쇼와 12년 체신성 고시 제826호)를 통해 발표되었고, 각 선박회사가 체신성에 조성 자금을 신청하여 지급받는 형태로 건조가 이루어졌다.

3. 우수선박건조조성시설

우수선박건조조성시설은 기존의 선박개선조성시설을 확대 개편한 제도로, 지원 대상 선종을 늘리고 선박의 대형화 및 고속화를 추구했다. 기존 제도가 원칙적으로 화물선만을 대상으로 했던 것과 달리, 이 시설에서는 제1종(여객선)과 제2종(화물선, 유조선)을 설정하여 지원 범위를 넓혔다. 건조 목표는 제1종과 제2종 각각 15만 총 톤수로 설정되었으며[4], 이를 위해 제1종선에는 약 4469만, 제2종선에는 600만의 예산이 배정되었다.

이 제도는 단순히 상선 건조를 지원하는 것을 넘어, 제2차 세계 대전을 앞두고 일본의 군사력 증강 계획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지원 요건으로 제시된 선박의 크기와 속력은 당시 상선으로서는 경제성이 떨어지는 고성능을 요구하는 것이었으며[6], 세부 설계에는 군사적 활용을 염두에 둔 요구 사항들이 포함되었다.[7] 예를 들어, 특정 선박은 유사시 항공모함으로 쉽게 개조할 수 있도록 미리 설계되거나, 군함에 대한 해상 급유 능력을 갖추도록 요구되었다.

당초 제1종선 12척, 제2종선 16척 건조가 계획되었으나, 미일 관계 악화 등으로 계획이 변경되어 최종적으로는 제1종선 11척, 제2종선 15척(화물선 7척, 유조선 8척)이 준공되었다. 건조된 선박 중 일부는 실제로 해군에 의해 매수되거나 특설함선으로 개조되어 전쟁에 투입되었다.

3. 1. 지원 요건

기본적인 보조금 교부 요건은 다음과 같았다[5].

  • 제1종(여객선)과 제2종(화물선, 유조선) 모두 6000 총톤 이상, 속력 19노트 이상일 것.
  • 선적은 내지, 조선, 대만, 관동주 중 하나여야 했다.
  • 내지의 조선소에서 건조하고, 자재·기관·의장품은 원칙적으로 일본산을 사용해야 했다.
  • 설계 시 선체와 스크류 모형을 이용한 수조 시험을 실시해야 했다.
  • 외국인 선원의 승무를 금지했다.


보조금은 제1종 선박의 경우 속력에 따라 산정되었고, 제2종 선박은 1 총톤당 40이 지급되었다.

이는 기존 선박개량조성시설의 요건(4000 총톤 이상, 13.5 노트 이상)보다 훨씬 대형이고 고속 선박을 요구하는 것으로, 상선으로서의 경제성을 떨어뜨리는 측면이 있었다[6]. 또한, 선박의 세부 설계에는 군용으로 사용될 경우를 대비한 요구 사항이 다수 포함되었다. 예를 들어, 항공모함으로 개조될 예정이었던 닛타마루급 화객선은 항공기용 엘리베이터와 연료 탱크 설치 공간이 미리 마련되었고, 화물선은 군대 수송선으로 사용될 것을 고려하여 병사 거주 구역이 될 선창에 다수의 현창을 설치하고 자위용 화포나 상륙용 주정 탑재 공간도 준비되었다[7]. 유조선의 경우, 가와사키형 유조선 또는 동급 선박으로 건조되어 해상 급유 설비가 미리 갖추어졌다.

3. 2. 지원 내용

우수선박건조조성시설 자금을 이용해 건조된 가와사키형 유조선 신고쿠마루. 이들 유조선은 해군의 요구에 의해 군함에 대한 해상급유설비를 갖춘 채 건조되었다.


기존의 선박개선조성시설에서는 지원 대상이 원칙적으로 화물선이었던 데 반해, 우수선박건조조성시설에서는 제1종(여객선)과 제2종(화물선, 유조선)으로 대상 선종이 확대되었다. 건조 목표는 제1종과 제2종 각각 15만 총 톤수였다.[4] 예산액은 제1종선에 4,469만 , 제2종선에 600만 이 배정되었다.

기본적인 보조금 교부 요건은 다음과 같았다.[5]

항목요건
대상 선박제1종, 제2종 모두 6000 총 톤수 이상, 속력 19 노트 이상
선적일본 내지, 조선, 대만, 관동주 중 하나
건조 장소 및 자재내지의 조선소에서 건조하고, 자재·기관·의장품은 원칙적으로 일본 국산품을 사용할 것
설계선체와 스크류의 모형에 의한 수조 시험을 실시할 것
선원외국인 선원의 승무를 하지 말 것



이러한 요건은 기존 선박개선조성시설의 요건(4000총톤 이상, 13.5노트 이상)에 비해 훨씬 대형화되고 고속화된 선박을 요구하는 것이었으며, 이는 상선으로서의 경제성을 해치는 측면이 있었다.[6]

지원금은 제1종 선박의 경우 속력에 따라 차등 계산되어 지급되었으며, 제2종 선박은 1 총 톤수당 40이 지급되었다.[5]

또한 선박의 세부 설계에는 군용으로 징발될 경우를 상정한 요구가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항공모함으로 개조될 예정이었던 닛타마루급 화객선의 경우 항공기용 엘리베이터와 연료 탱크를 설치할 위치가 미리 준비되어 있었다. 화물선은 군대 수송선으로 징용될 것을 상정하여, 병사들의 거주 구역이 될 선창에도 다수의 현창을 설치하고 자위용 화포나 상륙용 주정 등의 탑재도 고려했다.[7] 가와사키형 유조선과 같은 유조선에는 해군 군함을 위한 해상 급유 설비가 미리 장착되었다.

건조할 선박은 선사별로 미리 할당되었는데, 제1종 우수선은 일본우선이 7척, 오사카 상선이 5척을 지정받았으며, 제2종 우수선은 여러 다른 선주에게 1척씩 건조하도록 지정되었다.[8] 이러한 고성능 선박의 건조가 가능한 조선소는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미쓰비시 중공업, 가와사키 중공업, 미쓰이 조선(타마조선소) 등 일부 대형 조선소에 건조 물량이 집중되는 결과를 낳았다.[9]

원래 제1종선 12척, 제2종선 16척이 계획되었지만, 미일 관계 악화로 인한 계획 변경으로 최종적으로 제1종선 11척, 제2종선 15척(화물선 7척, 유조선 8척)이 준공되었다.[10][11] 이들 중에는 가스가마루(春日丸, 닛타마루급)처럼 준공 전에 해군에 매수되어 항공모함으로 완성되거나, 호고쿠마루(護国丸)처럼 특설순양함의 의장을 갖추고 준공된 경우도 있었다.

3. 3. 건조 현황



우수선박건조조성시설을 통해 건조될 선박의 수는 선박 회사별로 미리 할당되었다. 제1종 우수선(여객선)의 경우, 일본유선이 7척, 오사카 상선이 5척을 배정받아 특정 대형 선박 회사에 건조량이 집중되는 경향을 보였다. 다만, 일본유선은 근해유선 명의로도 1척을 추가로 할당받았다.[8] 제2종 우수선(화물선·유조선)은 여러 선박 회사에 각각 1척 이상씩 건조하도록 지정되었다.

이러한 고성능 선박의 건조는 높은 기술력을 요구했기 때문에, 건조 가능한 조선소는 일부 대형 조선소로 한정되었다. 결과적으로 미쓰비시 중공업, 가와사키 중공업, 다마조선소(미쓰이 조선) 등 소수의 대형 조선소에 선박 건조 수주가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났다.[9] 이는 당시 일본 조선업계의 역량 편중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당초 계획은 제1종선 12척, 제2종선 16척 건조였으나, 미국과의 관계가 계속 악화되면서 계획 조선 체제로 이행됨에 따라 계획이 일부 변경되었다. 제1종선과 제2종선에서 각각 1척씩 건조가 중지되어, 최종적으로 준공된 선박은 제1종선 11척, 제2종선 15척(화물선 7척, 유조선 8척)이었다.

건조된 선박 중 일부는 본래 목적과 달리 군사적 용도로 전환되었다. 예를 들어, 닛타마루급 화객선 중 하나인 '카스가마루'(春日丸)는 준공 전에 해군에 매수되어 항공모함 오타카로 완성되었다. 또한, 오사카 상선 소속의 남아프리카 항로용 화객선으로 계획되었던 '고코쿠마루'(護国丸)는 특설순양함으로 의장을 변경하여 준공되었다. 이는 우수선박건조조성시설이 단순한 상선 건조 지원을 넘어, 당시 일본의 군사력 증강 계획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4. 대형우수선건조조성시설

'대형우수선건조조성시설'은 우수선박건조조성시설에 이어 승인된 조선 진흥 정책으로, 이전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속도가 빠른 호화 여객선 건조를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당초 1937년 예산으로 시작될 예정이었으나 예산 문제로 1938년으로 연기되었고, 지원 규모 역시 계획보다 축소되었다.[9] 이 정책은 계획 단계부터 유사시 건조된 선박을 군사적 목적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조건을 포함하고 있었다.[12]

4. 1. 지원 요건 및 내용

대형우수선건조조성시설은 이전의 우수 선박 건조 지원 시설에 이어 시행된 조선 진흥 정책으로, 더 크고 빠른 호화 여객선 건조를 목표로 했다.

원래 1937년 예산으로 시작될 계획이었으며, 초기 안에서는 2만 6천 총톤 이상, 24노트 이상의 속력을 내는 여객선 2척의 건조 비용(1척당 2400만) 중 80%를 정부가 지원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예산 부족 문제로 시행은 다음 해인 1938년으로 미뤄졌고, 지원 금액도 건조 비용의 60% 수준으로 줄어들었다.[9]

특히 이 정책에는 계획 단계부터 유사시 3개월 안에 군함으로 개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명시되어 있었다.[12] 이는 사실상 니혼유센이 샌프란시스코 항로에 투입할 예정이었던 가시하라마루급 화객선인 '가시하라마루'와 '이즈모마루' 두 척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이들 선박은 유사시 중형 항공모함으로 개조될 예정이었다.[6]

표면적으로 내세운 건조 명분은 1940년 도쿄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제12회 올림픽의 외국인 관광객 유치였다. 그러나 니혼유센 측은 정부 지원금이 원안보다 삭감된 데다, 건조 후 여객선 운항만으로는 수익을 내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건조를 망설였다. 결국 정부가 손실을 보전해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나서야 마지못해 건조를 수락했다.[9] 이는 겉으로는 정부의 '요청' 형식을 취했지만, 실제로는 일본 해군의 '명령'에 가까웠기 때문에 니혼유센으로서는 거부하기 어려웠다.[12]

두 척의 선박은 1939년에 건조를 시작했으나, 완공되기 전인 1940년 10월 일본 해군에 의해 매수되어 히요형 항공모함으로 개조, 준공되었다.

4. 2. 건조 현황

대형우수선건조조성시설은 우수 선박 건조 지원 시설에 이어 시행된 조선 진흥 정책으로, 더 크고 빠른 호화 여객선을 건조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 정책은 실질적으로 일본우선샌프란시스코 항로에 투입할 예정이었던 가시하라마루급 화객선 2척, 즉 '가시하라마루'와 '이즈모마루'의 건조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었다[6]

표면적인 건조 명분은 1940년 개최 예정이던 1940년 도쿄 올림픽의 외국인 관광객 유치였으나, 계획 단계부터 유사시 3개월 안에 군함으로 개조한다는 조건이 명확히 포함되어 있었다[12]。이는 두 선박을 중형 항공모함으로 개조하려는 해군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었다.

정부는 건조 비용의 60%를 지원하기로 했으나[9], 이는 당초 계획했던 80%보다 삭감된 금액이었다. 일본우선은 삭감된 지원금과 더불어 운항 시 채산성이 맞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여 건조를 주저했다. 하지만 정부가 손실을 보전해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사실상 해군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에[12], 일본우선은 어쩔 수 없이 건조를 진행했다[9]

두 척의 선박은 모두 1939년에 기공되었으나, 건조가 진행 중이던 1940년 10월 해군에 의해 매수되었다. 이후 두 선박은 히요형 항공모함으로 완성되어 취역하였다.

5. 조성 선박 목록

화객선화물선유조선
우수 선박 건조 조성 시설신덴마루, 야하타마루, 가스가마루, 아르헨티나마루, 브라질마루, 아이코쿠마루, 호코쿠마루, 고코쿠마루, 미이케마루, 아키마루, 아와마루사쿠라마루, 사도마루, 도잔마루, 규슈마루, 아와지야마마루, 긴카마루, 히로카와마루이쓰쿠시마마루, 겐요마루, 니치에이마루, 도에이마루, 고쿠요마루, 겐요마루, 신코쿠마루, 아카쓰키마루, 닛쇼마루
대형 우수 선박 건조 조성 시설가시하라 마루, 이즈모 마루


참조

[1] 서적 米田(1978年)
[2] 서적 米田(1978年)
[3] 서적 米田(1978年)
[4] 간행물 日本造船学会(1977年)
[5] 서적 米田(1978年)
[6] 서적 岩重(2011年)
[7] 문서 優秀船特別施設ニ関スル件 参謀本部
[8] 서적 米田(1978年)
[9] 서적 米田(1978年)
[10] 서적 岩重(2011年)
[11] 간행물 日本造船学会(1977年)
[12] 서적 日本近代造船業の展開 ミネルヴァ書房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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