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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용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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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을용타는 2003년 동아시아컵 축구 경기에서 대한민국 축구 선수 이을용이 중국 선수 리이의 뒤통수를 가격한 사건과 이를 소재로 한 인터넷 패러디를 일컫는다. 이 사건은 이전부터 이어진 한중 축구 경기에서의 거친 플레이와 2002년 월드컵에서의 중국인들의 한국 폄하, 고구려, 간도, 동북공정 문제 등 복합적인 배경 속에서 발생했다. 이을용의 행위는 언론 보도와 사진을 통해 확산되었고, 특히 디시인사이드를 중심으로 다양한 패러디물이 제작되었다. 을용타는 단순한 스포츠 사건을 넘어 반중 정서, 한일 관계 등 사회, 정치적 문제와 연결되어 패러디되었으며, '지단타'와 같은 용어에도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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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용타
을용타
2002년 FIFA 월드컵 16강전 대한민국 대 이탈리아 경기 당시 [[안정환]]의 골든골 직후 [[이을용]]이 [[파울로 말디니]]의 뒤통수를 가격하는 장면
2002년 FIFA 월드컵 16강전 대한민국 대 이탈리아 경기 당시 안정환의 골든골 직후 이을용이 파울로 말디니의 뒤통수를 가격하는 장면
개요
발생 시기2002년 FIFA 월드컵 16강전 대한민국 대 이탈리아
관련 인물이을용
파울로 말디니
설명안정환의 골든골 직후 이을용이 파울로 말디니의 뒤통수를 가격한 사건
파생인터넷 유행어

2. 사건의 배경

중국 축구팀은 이전부터 대한민국과의 축구 경기에서 스포츠 정신에 어긋나는 거친 반칙을 일삼아 왔다. 1998년 FIFA 월드컵 직전 열린 중국과의 평가전에서 황선홍은 중국 골키퍼의 거친 반칙으로 무릎에 심각한 부상을 입기도 했다.[2][3]

중국팀은 공한증이라 불릴 만큼 오랫동안 대한민국을 상대로 한 번도 이기지 못했고, 거친 경기를 펼쳐서라도 1승을 거두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4강에 진출한 것을 중국인들이 시기하며 폄하한다는 것이 알려졌고, 고구려사 왜곡 문제까지 겹치면서 대한민국 국민들의 반중 감정은 더욱 심화되었다.[4][1] 을용타 사건은 이러한 정서가 표면으로 분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인터넷PC의 보급으로 그래픽 관련 프로그램을 다룰 수 있는 컴퓨터 사용자가 급격히 증가했고, 디시인사이드와 같은 사이트에서 합성 사진을 올리는 인터넷 문화가 발달해 있었다. 을용타는 이런 사회적 배경에 힘입어 수많은 패러디 사진을 양산했다.

2. 1. 한중 관계

1998년 FIFA 월드컵 직전 중국과의 평가전에서 황선홍 선수가 중국 골키퍼의 반칙으로 무릎 부상을 당해 월드컵 본선에 출전하지 못했다.[2][3] 이처럼 이전부터 대한민국과 중국의 축구 경기에서 스포츠 정신에 어긋나는 반칙으로 인한 갈등이 있었다.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4강에 진출하자, 중국에서 이를 폄하하는 여론이 있었고, 고구려사 왜곡 문제까지 겹쳐 대한민국 내에서 중국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었다.[4][1] 이러한 상황에서 을용타 사건이 발생하면서, 당시의 정서가 표면으로 분출되는 계기가 되었다.

2. 2. 공한증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오랫동안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승리하지 못하는 '공한증'을 겪었다. 2003년 동아시아컵 당시 대한민국은 2002년 FIFA 월드컵 이후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 체제였고, 중화인민공화국은 아리 한 감독 체제였다.[1]

1998년 FIFA 월드컵 직전 평가전에서 황선홍이 중국 골키퍼의 반칙으로 부상을 입는 등,[1] 중국팀은 이전부터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서 거친 반칙을 일삼아 왔다. 이는 공한증 극복을 위해 더욱 거친 플레이를 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으로 작용했다.

공한증은 중국 언론이 한국에 대한 패배 의식을 표현하기 위해 만든 용어이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2006년까지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과 26번의 경기에서 15승 11무를 기록했다.[1]

2. 3. 2003년 동아시아컵

동아시아컵은 원래 2003년 5월 28일부터 6월 3일까지 일본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사스) 확산으로 인해 12월 4일부터 12월 10일까지로 연기되었다.[1] 대회 본선에는 개최국인 일본대한민국, 중화인민공화국, 홍콩 4개국이 참가했으며, 2차전에서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의 경기가 예정되어 있었다.[1]

대한민국은 홍콩과의 1차전에서 3-1로 승리했고, 중화인민공화국은 일본과의 1차전에서 0-2로 패했다.[1] 대한민국은 2002년 FIFA 월드컵 이후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이 취임했으며, 중화인민공화국 또한 2002년 FIFA 월드컵 이후 아리 한을 새 감독으로 맞이하였다.[1]

3. 경기 진행

2003년 12월 7일 사이타마 스타디움 2002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의 경기는 공한증을 이어가려는 대한민국과 공한증에서 벗어나려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상반된 입장으로 인해 매우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이 경기에서 대한민국은 유상철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두었다.

3. 1. 전반전

2003년 동아시아컵에서 공한증 탈출을 노리는 중국과 공한증을 이어가려는 대한민국의 대립으로 경기가 과열되었다. 전반전에만 양 팀 합쳐 4명의 선수가 경고를 받을 정도로 팽팽한 경기가 이어졌다. 전반 종료 직전 이을용이 올린 코너킥을 유상철이 머리로 받아 넣어 대한민국이 1-0으로 앞서게 되었다.[11]

2003년 동아시안컵 대한민국 대 중국 전반전 경고 선수
선수경고 시간
정즈중국28분
안정환대한민국40분
저우팅중국40분
최진철대한민국44분


3. 2. 후반전

후반전 14분경, 이을용이 동료에게 패스를 받아 공을 돌리고 있을 때 리이가 이을용의 오른쪽 발목을 뒤에서 걷어찼다. 발목 부상에서 회복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이을용은 순간적으로 흥분하여 리이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때렸다.[11] 리이가 뒤통수를 감싸 쥐고 그라운드에 쓰러지자 흥분한 중국 선수들이 몰려왔고, 대한민국 선수들도 이에 맞서 몰려들어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양 팀 선수들 간의 실랑이가 어느 정도 가라앉자 주심은 리이에게 경고를, 이을용에게는 퇴장을 선언했다.[11] 이후 안정환리웨이펑을 걷어차는 등 양 팀 선수들 간의 실랑이가 계속되었다.[12]

이을용의 퇴장으로 대한민국은 수적 열세에 놓였으나, 결국 한 골 차 리드를 지켜 승리했고, 중국을 상대로 무패 기록을 이어갔다. 이 기록은 2010년 2월 중국이 대한민국을 3-0으로 격파하면서 깨지게 된다.

3. 3. 경기 결과

공한증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중국과 공한증을 이어가려는 대한민국의 상반된 입장이 경기를 가열시켰고, 전반전에만 양 팀 합쳐 4명의 선수들이 옐로카드를 받을 정도로 팽팽한 경기가 이어졌다. 이후 전반 종료 직전 왼쪽 코너에서 얻은 코너킥 기회에서 이을용이 올린 공을 유상철이 머리로 받아 넣어 대한민국이 1-0으로 앞서게 되었다.[11]

우세한 경기를 펼치던 대한민국은 이을용의 퇴장으로 수적 열세에 놓이게 되었으나, 결국 한 골 차 리드를 지켜서 경기에서 승리했고 중국을 상대로 무패 기록을 이어가게 되었다. 이 기록은 2010년 2월 중국이 대한민국을 3-0으로 격파하면서 깨지게 된다.

4. 반응과 영향

연합뉴스 한상균 기자가 포착한 이을용의 분노에 찬 표정은 을용타 패러디 확산에 큰 영향을 미쳤다.[5] 이 사진은 디시인사이드 등 여러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빠르게 퍼져나가며 다양한 합성 그림으로 재탄생했고, "을용타"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큰 인기를 얻었다.

당시 동북공정으로 인한 반중 감정과 2002년 FIFA 월드컵에서의 중국의 한국 폄하 논란, 1998년 FIFA 월드컵 직전 평가전에서 황선홍에게 부상을 입힌 사건 등 중국 축구팀의 거친 플레이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을용타 사건은 국민들의 반중 정서가 표출되는 계기가 되었다.

인터넷PC 보급 확대로 그래픽 프로그램 사용자가 늘어나고, 디시인사이드와 같은 사이트에서 합성 사진을 공유하는 문화가 발달한 것도 을용타 패러디 확산에 영향을 주었다.

을용타는 2006년 FIFA 월드컵 결승전에서 지네딘 지단마르코 마테라치에게 박치기를 한 사건과 연결되어 '지단타'와 같은 신조어를 탄생시키기도 했다.[8]

4. 1. 대한민국 내 반응

언론에서는 이을용이 분노에 찬 눈빛으로 리이를 쏘아보는 사진과 함께 리이의 행동을 "할리우드 액션"이라고 비난했다.[5] 이 사진은 사건 동영상과 함께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다.

디시인사이드를 비롯한 한국 웹사이트에서는 이 사건을 조롱하는 수많은 패러디물이 제작되었다. 초기에는 이을용이 망치나 전기톱을 들고 있는 모습이 주를 이루었으나, 점차 영화 포스터나 조각상과 유사하게 변형되면서 더욱 복잡해졌다. 예를 들어 이을용이 중국 선수 앞에서 전기톱을 들고 있거나, 리이를 향해 크레인을 운전하는 모습, 손오공의 초사이어인 형태로 변신한 모습 등이 나타났다. 2006년 6월 기준으로 패러디의 수는 200건을 넘어섰다.[5]

특히 당시 중국 정부가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 지방 정권의 역사로 편입하려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및 중국 선수와 관련된 패러디물이 다양하게 등장했다.

미니미가 리이 앞에서 험악한 눈빛을 쏘아본다.


을용타는 반중 정서와 한국과 일본의 긴장된 관계와 같은 다른 사회적, 정치적 문제를 묘사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2004년 하계 올림픽에서 양태영이 폴 햄에게 패했을 때나, 2006년 월드컵에서 한국이 스위스와의 경기에서 패배한 후에도 새로운 패러디가 계속 만들어졌다.[7]

이을용 선수는 2005년 6월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후회하며, 고참 선수로서 감정을 다스렸어야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을용타 패러디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재미있어한다면 괜찮다는 반응을 보였다.[13][9]

4. 2. 중국 내 반응

경기 후 중국 언론은 경기 중 발생한 이을용의 반칙을 대서특필했으며, 중국 네티즌 또한 이을용을 비난하는 방향으로 여론이 확산되었다. 중국인의 고질적인 민족주의가 작용하여 리이의 반칙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12]

4. 3. 사회적 영향

을용타는 단순한 해프닝을 넘어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디시인사이드를 중심으로 수많은 패러디물이 제작되었는데, 초기에는 이을용이 망치나 전기톱을 들고 있는 모습처럼 단순한 합성이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영화 포스터나 고구려 관련 이미지 등 더욱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5][6]

이러한 패러디 열풍은 당시 동북공정으로 인한 반중 감정과 2002년 FIFA 월드컵에서의 중국의 한국 폄하 논란, 그리고 1998년 FIFA 월드컵 직전 평가전에서 황선홍에게 부상을 입힌 사건 등 중국 축구팀의 거친 플레이에 대한 불만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또한, 인터넷PC 보급 확대로 그래픽 프로그램을 다루는 사용자가 늘어나고, 디시인사이드와 같은 사이트에서 합성 사진을 올리는 문화가 발달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5][6]

을용타 패러디는 단순히 재미를 추구하는 것을 넘어, 반중 감정이나 반일 감정과 같은 사회적 문제를 반영하기도 했다. 2004년 하계 올림픽 체조에서 양태영이 폴 햄에게 패했을 때나, 2006년 FIFA 월드컵에서 한국이 스위스에 패했을 때도 새로운 패러디가 등장했다.[7]

또한, 을용타는 2006년 FIFA 월드컵 결승전에서 지네딘 지단마르코 마테라치에게 박치기를 한 사건과 연결되어 '지단타'와 같은 신조어를 탄생시키기도 했다.[8] 이는 스포츠 경기에서 발생하는 폭력과 비신사적인 행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5. 을용타 패러디

을용타는 단순한 스포츠 사건을 넘어 사회, 정치적 맥락과 결합하여 다양한 패러디를 낳았다. 특히, 디시인사이드와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며, 단순한 재미를 넘어선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초기에는 이을용 선수가 망치나 전기톱을 든 모습과 같이 단순한 형태의 패러디가 주를 이루었지만, 점차 영화 포스터나 동북공정과 같은 시사 문제를 결합한 복잡한 형태의 패러디로 발전했다. 드물게는 배경에 있는 중국 선수 (양천)도 포토샵의 대상이 되었다.

2005년 말, 이을용이 부천 FC 유니폼을 입고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경기에서 공중 발차기를 하는 사진은 대한민국 내 반일 감정을 반영하여 고이즈미 준이치로나 아폴로 안톤 오노를 발로 차는 합성 사진과 같은 패러디의 대상이 되었다.[10]

5. 1. 초기 패러디

연합뉴스의 한상균 기자가 당시 상황을 순간적으로 잘 포착한 사진은 이 사건이 유명해지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뒤통수를 감싸 쥐고 엄살을 피우며 누워 있는 리이를 이을용이 분노에 찬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절묘한 구도의 사진이 인터넷 뉴스 사이트를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디시인사이드를 비롯한 여러 사이트에는 이 사진에 여러 모습을 합성한 그림들이 올라왔다. 이 그림들은 이을용의 이름과 상대방의 뒤통수를 때린 상황에서 이름을 따 “을용타”라고 불렸다.[5]

초기 패러디는 이을용이 망치나 전기톱 같은 것을 손에 들고 있는 것처럼 사진을 약간만 변형하는 수준이었다.[6]

5. 2. 발전된 패러디

을용타가 유명해진 데에는 연합뉴스의 한상균 기자가 당시 상황을 순간적으로 잘 포착한 사진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뒤통수를 감싸 쥐고 엄살을 피우며 누워 있는 리이를 이을용이 분노에 찬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절묘한 구도의 사진이 인터넷 뉴스 사이트를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디시인사이드를 비롯한 여러 사이트에는 이 사진에 여러 모습을 합성한 그림들이 올라왔다.[5] 이 그림들은 이을용의 이름과 상대방의 뒤통수를 때린 상황에서 이름을 따 "을용타"라고 불렸으며, 그전에도 수많은 상황과 인물을 합성한 패러디 사진이 등장하게 되었다.

수많은 패러디 사진이 만들어지면서, 패러디 내용도 점점 다양해졌다. 이을용이 망치나 전기톱 같은 것을 손에 들고 있는 것같이 사진을 약간만 변형하는 단계에서, 디시인사이드의 '필수 합성 요소'라고 부르는 인물들을 사진에 합성하거나 영화 포스터 등에 합성하는 등 패러디 그림은 점점 복잡한 형태로 발전했다.[6] 특히 당시 중국 정부가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 지방 정권의 역사로 편입하려 한다는 소식이 대한민국에 전해지자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및 중국 선수와 관련된 패러디물이 다양하게 등장했다.

패러디는 영화 포스터나 조각상과 유사하게 변형되면서 더욱 복잡해졌다. 패러디의 예로는 이을용 선수가 중국 선수 앞에서 전기톱을 들고 있거나, 리 이를 향해 크레인을 운전하는 모습, 손오공의 초사이어인 형태로 변신한 모습 등이 있다. 2006년 6월 기준으로 패러디의 수는 200건을 넘어섰다.[5]

을용타는 반중 정서와 한국과 일본의 긴장된 관계와 같은 다른 사회적, 정치적 문제를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 을용타는 한국 체조 선수 양태영2004년 하계 올림픽에서 폴 햄에게 패했을 때 다시 인기를 얻었다. 2006년 월드컵 이후 한국이 스위스와의 경기에서 패배한 후에도 새로운 패러디가 계속 만들어졌다.[7]

을용타는 지네딘 지단2006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마르코 마테라치를 머리로 들이받았을 때, 한국에서 을용축과 "지단타"와 같은 새로운 용어에 영향을 미쳤다.[8]

5. 3. 패러디의 확장

연합뉴스의 한상균 기자가 포착한 사진과 함께 을용타는 인터넷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디시인사이드를 비롯한 여러 사이트에는 이 사진에 여러 모습을 합성한 그림들이 올라왔고, '을용타'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수많은 패러디 사진이 등장했다.[5]

초기에는 망치나 전기톱을 든 이을용의 모습을 보여주는 등 비교적 단순한 형태였으나, 점차 영화 포스터나 조각상과 유사하게 변형되는 등 복잡한 형태로 발전했다.[6] 당시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인한 반중 감정이 고조되면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및 중국 선수와 관련된 패러디물이 다양하게 등장하기도 했다. 2006년 6월 기준으로 패러디의 수는 200건을 넘어섰다.[5]

을용타는 다른 사회적, 정치적 문제에도 영향을 주었다. 2004년 하계 올림픽에서 양태영 선수의 오심 사건이나, 2006년 월드컵에서 한국이 스위스와의 경기에서 패배한 후에도 새로운 패러디가 계속 만들어졌다.[7]

또한, 지네딘 지단2006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마르코 마테라치를 머리로 들이받은 사건은 한국에서 을용축과 "지단타"와 같은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내는 데 영향을 주었다.[8] 2005년 말에는 이을용이 부천 FC 유니폼을 입고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경기에서 공중 발차기를 하는 사진이 다시 등장하여 고이즈미 준이치로나 아폴로 안톤 오노를 발로 차는 합성 사진과 같은 패러디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10]

참조

[1] 뉴스 2004 인터넷신조어 Top 10 http://news.media.da[...] 2005-01-01
[2] 뉴스 이동국, '제2의 황선홍'이 되어줬으면… http://news.media.da[...] 2006-04-14
[3] 뉴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소댕 보고 놀란다 http://news.media.da[...] 2006-05-30
[4] 웹사이트 Talk Talk 을용타, 한반도 네티즌을 깨우다 http://zine.media.da[...] 2008-02-10
[5] 뉴스 "`하하 호호 을용타` 진화 언제까지?" http://news.media.da[...] 2006-06-30
[6] 뉴스 축구 한·중전 ‘을용타’ 가 떴다 http://www.kbsnews.c[...]
[7] 뉴스 인기만점-화제만발 '월드컵 패러디' http://news.media.da[...] 2006-06-29
[8] 웹사이트 뉴스타임 '을용타' 뒤 이은 '지단타' http://sports.kbs.co[...] 2006-08-21
[9] 뉴스 트라브존의 별 이을용, "챔피언스리그에서 멋진 모습 보여줄 터"① http://www.kfa.or.kr[...]
[10] 뉴스 '[인터넷 스타] 이을용, 을용타, 을용축' http://h21.hani.co.k[...]
[11] 뉴스 한국, 중화인민공화국에 진땀 승리(1-0) http://sports.news.n[...] 뉴시스 2003-12-07
[12] 뉴스 中언론 이을용 반칙 대서특필 http://sports.news.n[...] 경향신문 2003-12-08
[13] 링크 http://www.kf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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