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희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장영희는 1952년 서울에서 태어난 영문학자이자 수필가, 번역가이다. 소아마비로 인한 신체적 어려움과 유방암, 척추 종양 등 질병과의 투병 속에서도 학문 연구와 저술 활동을 지속했다. 서강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칼럼니스트, 번역가로도 활동했다. 2001년 유방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가, 2009년 척추 종양으로 사망했다. 저서로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내 생애 단 한번》 등이 있으며, 번역가로서도 활동하며 여러 작품을 한국어로 소개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결성 장씨 - 장덕수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교육자, 정치인이었던 장덕수는 와세다 대학교 유학 중 조선인 유학생 단체를 이끌고 신한청년당 결성에 참여했으며, 동아일보 주필과 고려공산당 상하이파 국내 지부 조직 등의 활동을 하였고, 광복 후 한국민주당 창당에 참여했으나 암살당했으며,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정되었다. - 결성 장씨 - 장욱진
장욱진은 충청남도 연기군 출신의 한국 화가로, 단순하고 순수한 화풍으로 일상적인 소재를 표현하여 한국적인 정서를 담아낸 작품 활동을 하였으며,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를 역임하고 양주시에 장욱진미술관이 건립되었다. - 뉴욕 주립 대학교 올버니 동문 - 장하성
장하성은 대한민국의 경영·경제학자이자 정무직 공무원으로, 고려대학교 교수와 참여연대 위원장을 지내며 소액주주 운동과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주도했고, 문재인 정부에서 정책실장과 주중국 대사를 역임했으나, 소득주도성장 정책 추진과 여러 논란으로 비판을 받았다. - 뉴욕 주립 대학교 올버니 동문 - 박승
박승은 1936년 출생하여 서울대학교와 뉴욕 주립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한국은행 총재,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 건설부 장관 등을 역임하며 한국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 -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동문 - 윤석남
윤석남은 자연과 여성을 주제로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실험하며 독창적인 화풍을 선보이는 한국의 여성주의 미술가로, 1985년 '시월모임' 결성을 통해 한국 여성주의 미술 운동의 시작을 알렸고 국제적인 무대에서도 활동하며 여성의 삶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과 연대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동문 - 이범관 (1943년)
이범관은 대한민국의 법조인 출신 정치인으로, 검사로서 주요 요직을 거쳐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제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이천오층석탑 환수 문제 관련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다.
장영희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한자 | 張英嬉 |
로마자 표기 | Jang Yeong-hui |
한국어 매큔-라이샤워 표기 | Chang Yŏng-hŭi |
인물 정보 | |
출생일 | 1952년 9월 14일 |
출생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훈동 |
사망일 | 2009년 5월 9일 |
사망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신촌동 세브란스병원 |
사망 원인 | 간암 |
본관 | 결성 |
종교 | 천주교(세례명 : 마리아) |
학력 | 뉴욕주립대학교 올버니 대학원 영문학 박사 |
직업 | 대학교수, 수필가, 번역가 |
부모 | 부친 장왕록박사 (전 서울대 명예교수) |
배우자 | 없음(독신) |
웹사이트 | 없음 |
2. 생애
장영희는 저명한 영문학자 장왕록()과 어머니 이길자() 사이에서 195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두 다리와 오른팔이 마비되었다.[4] 서강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1975년과 1977년에 각각 학부 및 석사 과정을 마쳤다. 1985년 뉴욕 주립 대학교 올버니에서 "현실과 이상 사이의 여정"이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5년부터 장영희는 서강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1987년부터 코리아 타임스와 2001년부터 중앙일보에 각각 칼럼을 기고했다. 또한 1995년부터 한국 호손 학회, 2003년부터 한국 마크 트웨인 학회의 이사 및 편집인으로 활동했다.
2001년 유방암 진단을 받은 후, 장영희는 종양 제거를 위해 두 번의 수술과 화학 요법을 받았다. 그러나 장영희는 2009년 5월 9일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에서 척추 종양으로 사망했다. 이는 8년간의 투병 생활 끝에 유방암이 전이된 결과였다.
2. 1. 초기 생애 및 교육
장영희는 1952년 서울에서 저명한 영문학자 장왕록과 이길자 사이에서 태어났다.[4] 태어났을 때부터 소아마비에 걸려 두 다리와 오른팔이 마비되었다.[4] 서강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여 1975년과 1977년에 각각 학부 및 석사 과정을 마쳤다.장영희가 대학교에 진학하려 할 때, 차별 때문에 입학 시험을 볼 수 없었다. 장왕록 서울대학교 교수가 로마 가톨릭 예수회 대학교인 서강대학교의 영문과장이던 브루닉 신부를 찾아가 시험이라도 보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브루닉 신부는 "시험을 머리로 보는 것이지, 다리로 보나요? 장애인이라고 해서 시험보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라며 입학 시험을 허락했다.[7]
박사과정을 다른 대학교에서 공부하려고 했을 때 교수들이 받아주지 않아 영어 공부를 한 후, 다음 해 미국 뉴욕주립대학교 올버니로 유학을 떠났다.[8] 1985년 "현실과 이상 사이의 여정"이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같은 해부터 서강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했다.[4]
2. 2. 소아마비와 암 투병
장영희는 1952년 서울에서 태어나, 생후 1년 만에 소아마비를 앓아 두 다리와 오른팔이 마비되었다.[4] 평생을 소아마비 장애인으로 살아야 했다.2001년에 유방암 선고를 받고 3번의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받은 끝에 회복되었으나, 2004년에 다시 척추에서 암이 발생하여 2006년에 회복되었다.[9] 그러나, 2008년에 간암까지 발병하여 학교를 휴직하고 치료를 받았으나 2009년 사망하였다.[9] 이렇게 세 차례 암이 발병하였으나 희망을 버리지 않았고, 투병 와중에도 여러 책을 펴내었다.[9]
2. 3. 차별 극복과 장애인 인권 보호
장영희는 생후 1년 만에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소아마비에 걸려 1급 장애인 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비장애인들의 차별과 싸워야 했다.[6] 어린 시절 겪은 차별에 대해 "중학교 3학년 때부터 택시를 타야 되는 거리가 되었는데, 당시 택시 운전수들이 불친절하여 기본요금 나온다고 구박하고, 골목으로 들어간다고 구박했다. 토요일 같은 때에는 택시를 못 잡아서 다섯 시간 동안 길거리에 서 있어야 한 적도 있었다."라고 회고했다. 대학교에 진학하려 할 때에는 입학 시험을 보지 못하게 하는 차별을 겪기도 했다. 아버지 장왕록 서울대학교 교수가 로마 가톨릭 예수회 대학교인 서강대학교의 영문과장이던 브루닉 신부를 찾아가 시험이라도 보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브루닉 신부는 "시험을 머리로 보는 것이지, 다리로 보나요? 장애인이라고 해서 시험 보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라며 입학시험을 허락했다.[7]박사과정을 공부하기 위해 다른 대학교에 지원했을 때는 교수들이 받아주지 않아 영어 공부를 한 후 다음 해 미국 뉴욕주립대학교 올버니로 유학을 떠났다.[8] 2001년 미국 하버드대학교 방문교수로 있었을 때, 거주했던 7층짜리 아파트의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 3주 동안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다. 이에 부동산 회사를 상대로 싸워 사과와 보상을 받아냈으며, 이 이야기는 '보스턴 글로브'에 머리기사로 소개되었고, NBC TV와 지역 방송들도 앞다투어 보도했다.
2. 4. 사망
2001년 유방암 진단을 받은 후, 종양 제거를 위해 두 번의 수술과 화학 요법을 받았다.[4] 그러나 2009년 5월 9일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에서 척추 종양으로 사망했는데,[4] 이는 8년간의 투병 생활 끝에 유방암이 전이된 결과였다. 사망 당시 56세였다.3. 학문 및 사회 활동
장영희는 한국아메리카학회에서 ''은유로서의 신체장애: 미국 문학의 경우''를 2001년 7월에 발표했다. 2002년 12월에는 한국호손학회에서 ''여전히 흔적을 따라: 에머슨, 소로우, 그리고 초월주의의 실패''를 발표했다. 2003년 5월에는 한국호손학회 및 한국 미국 소설학회에서 ''The Scarlet Letter(주홍 글자)와 Sister Carrie(캐리 언니)에서 도시를 정신으로''를 발표했다. 같은 해 10월, 근대영미소설학회 및 한국영미소설학회에서 ''허클베리 핀의 이중적 시각: 이스마엘적인 동등한 시각을 향한 여정''을 발표했다. 2003년 12월에는 한국아메리카학회에서 ''잭 런던의 한국 자료 및 참고 문헌''을 발표했다.
3. 1. 교수 및 학회 활동
장영희는 한국아메리카학회에서 ''은유로서의 신체장애: 미국 문학의 경우''를 2001년 7월에 발표했다. 2002년 12월에는 한국호손학회에서 ''여전히 흔적을 따라: 에머슨, 소로우, 그리고 초월주의의 실패''를 발표했다. 2003년 5월에는 한국호손학회 및 한국 미국 소설학회에서 ''The Scarlet Letter(주홍 글자)와 Sister Carrie(캐리 언니)에서 도시를 정신으로''를 발표했다. 같은 해 10월, 근대영미소설학회 및 한국영미소설학회에서 ''허클베리 핀의 이중적 시각: 이스마엘적인 동등한 시각을 향한 여정''을 발표했다. 2003년 12월에는 한국아메리카학회에서 ''잭 런던의 한국 자료 및 참고 문헌''을 발표했다.3. 2. 칼럼니스트 활동
3. 3. 번역가 활동
장영희는 여러 외국 문학 작품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소개하는 번역가로도 활동했다. 1991년 《종이시계》를 시작으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스칼렛》 등을 공역했다. 1996년에는 《살아있는 갈대》를 공역했고, 2001년에는 《바너비 스토리》, 2004년에는 《백 년 자작나무 숲에 살자》, 《피터팬》, 《세상을 다 가져라》를 번역 출간했다.4. 저서 및 번역
4. 1. 저서
-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2009년)
- 《공부의 즐거움》 (공저, 2006년)
- 《생일》 (2006년)
- 《축복》 (2006년)
- 《문학의 숲을 거닐다》(2005년)
- 《내 생애 단 한번》 (2000년)
- 《큰물고기》(동아시아, 2004년 2월 15일)
- 《그러나 사랑은 남는것》(샘터사, 2004년 6월 30일)
- 《이름없는 너에게》(창비, 2004년 8월 30일)
- 《슬픈 카페의 노래》(열림원, 2005년 1월 15일)
- 《스무살이 되는 당신 여자에게》(공저, 2007년 2월, 한겨레출판)
- 미친 퀼트(동문사,1971)—영문 에세이
4. 2. 번역
wikitable제목 | 출판사 | 출판일 |
---|---|---|
종이시계 | 동문사 | 1991년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공역) | ||
스칼렛 (공역) | 교원문고 | 1993년 |
살아있는 갈대 (공역) | 동문사 | 1996년 |
바너비 스토리 | 프레스21 | 2001년 4월 1일 |
백 년 자작나무 숲에 살자 | 2004년 | |
피터팬 | 비룡소 | 2004년 1월 30일 |
세상을 다 가져라 | 이레 | 2004년 2월 10일 |
5. 수상
2002년 국민문화운동본부에서 수여하는 올해의 문장상을 수필집 《내 생애 단 한번》으로 수상하였다. 1981년에는 한국일보가 주최한 한국 문학 번역상을 김현승의 시를 번역해 수상하였다. 2009년에는 대한민국장애인문화예술대상을 수상하였다. 2005년 12월에는 서강대학교 총동문회에서 수여하는 제10회 자랑스러운 서강인상을 수상하였다.
6. 평가 및 영향
7. 남긴 글
- "아무리 운명이 뒤통수를 쳐서 살을 다 깎아먹고 뼈만 남는다 해도 울지 마라. 기본만 있으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살이 아프다고 징징거리는 시간에 차라리 뼈나 제대로 추려라. 그게 살 길이다." ~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p. 141)
- "어차피 인생은 장애물 경기이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은 드라마의 연속이고, 장애물 하나 뛰어 넘고 이젠 됐다고 안도의 한숨을 몰아 쉴 때면 생각지도 않았던 또 다른 장애물이 나타난다. 그 장애가 신체장애이든, 인간관계이든, 돈이 없는 장애이든, 돈이 너무 많은 장애이든." 《문학의 숲을 거닐다》 (p. 228)
- "희망을 가지지 않는 것은 죄이다. 빛을 보고도 눈을 감아버리는 것은 자신을 어둠의 감옥 속에 가두어버리는 자살행위와 같기 때문이다." ~ 《내 생애 단 한번》 (p. 89)
- "어쩌면 우리 삶 자체가 시험인지 모른다. 우리 모두 삶이라는 시험지를 앞에 두고 정답을 찾으려고 애쓴다. 그것은 용기의 시험이고, 인내와 사랑의 시험이다. 그리고 어떻게 시험을 보고 얼마만큼의 성적을 내는가는 우리들의 몫이다." ~ 《내 생애 단 한번》 (p. 135)
- Henry James영어의 <미국인>이라는 책의 앞부분에는 한 남자 인물을 소개하면서 '그는 나쁜 운명을 깨울까 봐 살금살금 걸었다'라고 표현한 문장이 있다. 나는 그때 마음을 정했다. 나쁜 운명을 깨울까 봐 살금살금 걷는다면 좋은 운명도 깨우지 못할 것 아닌가. 나쁜 운명, 좋은 운명 모조리 다 깨워가며 저벅저벅 당당하게, 큰 걸음으로 걸으며 살 것이다, 라고.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후문 中)
참조
[1]
뉴스
故 장영희 교수 약력
http://news.chosun.c[...]
The Chosun Ilbo
[2]
뉴스
癌 투병 장영희 교수 “내 계획에 죽음은 없다”
http://www.donga.com[...]
[3]
뉴스
(사람과 이야기) 그녀의 삶, 그 자체가 기적이었다
http://news.chosun.c[...]
김기철
2009-05-11
[4]
뉴스
명수필가이자 영문학자 장영희 교수, 암 투병중 별세
http://news.chosun.c[...]
[5]
웹사이트
네이버 인물검색
http://people.naver.[...]
[6]
뉴스
열정적인 강의하는 장영희 교수 - 연합뉴스 2009년 5월 11일
http://news.naver.co[...]
[7]
간행물
기독교 사상 2005년 10월호
대한기독교서회
2005-10
[8]
간행물
기독교 사상 2005년 10월호
대한기독교서회
2005-10
[9]
뉴스
그녀의 삶, 그 자체가 기적이었다 - 조선일보 2009년 5월 11일
http://news.chosun.c[...]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