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한조선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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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재한 조선족은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중국 국적의 조선족을 지칭한다. 1945년 광복 이후 오랫동안 단절되었던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개선되면서 조선족의 한국 방문이 시작되었고, 1990년대 이후 경제적 성공을 목표로 한국으로 이주하는 조선족이 증가했다. 1990년대부터 재한 조선족 인구는 꾸준히 증가하여 2023년에는 약 53만 명에 달하며, 한국 국적을 취득한 인원까지 포함하면 70만 명 이상이다. 재한 조선족 관련 정책과 사회적 문제, 긍정적 사례, 그리고 조선족 밀집 거주 지역과 유명인에 대한 정보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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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족 - 옌볜 푸더
1955년 창단하여 한때 중국 갑급연맹전 우승과 슈퍼 리그 승격을 이뤘으나 재정난, 승부 조작, 세금 체납 등으로 2019년 해체된 중국의 축구 클럽이다. - 조선족 - 서탑교회
서탑교회는 1913년 한국인 여성 선교사들이 세운 선교 교회로, 중국 선양시에 위치하며, 오애은 목사의 주도로 재건되었고 다국적 교회를 지향하며 현재 3,000명의 교인과 함께 사회 참여 활동을 펼치고 있다. - 대한민국에 거주한 중국인 - 준 (1996년)
준(1996년)은 홍콩 출신 배우로, 아역으로 데뷔하여 영화, 드라마에서 활동했으며, 2012년 세븐틴 멤버로 데뷔하여 솔로 활동과 중국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 대한민국에 거주한 중국인 - 리웨이펑
리웨이펑은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축 수비수로 활약하며 센추리 클럽에도 가입한 전 축구 선수로, 다혈질적인 플레이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풍부한 경험과 뛰어난 공중볼 장악 능력을 바탕으로 중국 축구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재한조선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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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 | |
관련 민족 | 조선족 한국인 |
거주 지역 | 대한민국 수도권 영남 지방 |
인구 현황 | |
총 인구 | 약 70만 명 (2023년 추정) |
인구 구성 | 중국 국적의 조선족 한국 국적의 조선족 (귀화) |
인구 변화 추이 | 지속적인 증가 추세 (1990년대 이후) |
언어 | |
사용 언어 | 한국어 (표준어, 조선어) 중국어 (주로 표준중국어) |
언어 사용 특징 | 한국어와 조선어 혼용 젊은 세대 중심으로 표준중국어 사용 증가 |
사회와 문화 | |
주요 생활 방식 | 한국 문화와 조선족 문화의 융합 한국 사회 적응 노력 |
문화적 특징 | 조선족 전통 문화 (음식, 의복, 풍습) 향유 한국 문화에 대한 높은 관심 |
사회 활동 | 다양한 분야에서 경제 활동 재한 조선족 단체 중심의 커뮤니티 형성 |
경제 활동 | |
주요 직업 | 서비스업 (식당, 건설업, 간병업) 제조업 자영업 |
경제적 특징 | 초기에는 저임금 단순 노동 종사 점차 전문직, 관리직으로 진출 확대 |
사회적 문제 및 논쟁 | |
사회적 편견 및 차별 | 부정적인 인식 및 차별 존재 사회 통합 노력 필요 |
법적 지위 문제 | 외국인으로서의 법적 제약 참정권 및 건강보험 제한 논란 |
문화적 갈등 | 한국 문화와 조선족 문화 간의 갈등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이해 부족 |
재한 조선족 관련 단체 | |
주요 단체 | 재한중국동포위원회: 재한중국동포위원회 웹사이트 기타 조선족 관련 시민단체 |
단체 활동 | 권익 보호 활동 문화 교류 및 지원 사업 한국 사회와의 소통 강화 |
기타 정보 | |
관련 연구 | 재한 조선족 사회에 대한 다양한 연구 진행 사회, 문화, 경제 등 다양한 측면에서 분석 |
2. 조선족의 한국 진출 초기
1945년 광복 이후 1990년대 초까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과 반공주의를 국시로 하는 한국 사이에는 외교 관계가 없었다. 중국 공산당군이나 소련군에 속했던 조선족 부대가 그대로 북한군에 편입되는 등, 많은 조선족이 한국 전쟁에 참전했다. 실제로 전쟁 중에 조선족과 한국인 간의 충돌도 발생했다. 체제의 차이 등으로 인해 조선족과 한국 간의 교류는 오랫동안 중단되었다.[5] 1970년대 후반, 중국은 문화 대혁명이 종료된 후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였고, 한국은 북방 외교를 통해 사회주의 국가와의 관계 개선을 추진하면서 양국 관계는 점차 개선되었다.[15]
- 1965년, 문화대혁명 직전에 차균희의 부모가 한국을 방문하였는데, 이는 '한국에 처음으로 방문한 조선족'으로 간주된다.[61][15]
- 1974년 3월 7일부터 KBS는 '공산권 동포에게', '망향의 편지'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의 이산가족과 중국의 조선족 간에 주고받은 편지를 방송했다. 대한적십자사는 중국의 조선족이 한국의 친척과 연락을 맺을 수 있도록 초청장, 항공권, 여행비용 등을 제공하며 지원했다.[62][15]
- 1978년, 중국 정부는 조선족의 한국 방문을 허가했고, 같은 해 12월에는 조선족 일가족 4명이 한국으로 영주 귀국했다.[15]
- 1984년 3월 23일, 중국은 이산가족 재회를 위해 한국인의 방중을 승인하였다. 1985년에는 조선족의 한국 방문과 친족 방문이 증가하여, 그 해 방문자 수는 약 250명에 이르렀다.[15]
- 1986년,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조선족 2명이 중국 정부에 의해 스파이 활동으로 적발되기도 했다.[15]
-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중국은 선수단을 파견했다.[15] 1991년 1월에는 양국이 무역 사무소의 상호 설치를 합의하였다.[5]
- 1992년 8월 24일, 중국-대한민국 국교 정상화가 실현되었다. 이후 1993년에는 약 15만명, 1994년에는 30만명의 한국인이 중국을 방문하였으며, 특히 조선족이 거주하는 연변 조선족 자치주와 백두산 지역을 방문한 관광객도 크게 증가하였다.[5]
2. 1. 초기 교류 사례
1970년대 후반, 중국은 문화 대혁명이 종료된 후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였고, 한국은 북방 외교를 통해 사회주의 국가와의 관계 개선을 추진하면서 양국 관계는 점차 개선되었다.[15]- 1965년, 문화대혁명 직전에 차균희의 부모가 한국을 방문하였는데, 이는 '한국에 처음으로 방문한 조선족'으로 간주된다.[61][15]
- 1974년 3월 7일부터 KBS는 '공산권 동포에게', '망향의 편지'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의 이산가족과 중국의 조선족 간에 주고받은 편지를 방송했다. 대한적십자사는 중국의 조선족이 한국의 친척과 연락을 맺을 수 있도록 초청장, 항공권, 여행비용 등을 제공하며 지원했다.[62][15]
- 1978년, 중국 정부는 조선족의 한국 방문을 허가했고, 같은 해 12월에는 조선족 일가족 4명이 한국으로 영주 귀국했다.[15]
- 1984년 3월 23일, 중국은 이산 가족 재회를 위해 한국인의 방중을 승인하였다. 1985년에는 조선족의 한국 방문과 친족 방문이 증가하여, 그 해 방문자 수는 약 250명에 이르렀다.[15]
- 1986년,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조선족 2명이 중국 정부에 의해 스파이 활동으로 적발되기도 했다.[15]
-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중국은 선수단을 파견했다.[15] 1991년 1월에는 양국이 무역 사무소의 상호 설치를 합의하였다.[5]
- 1992년 8월 24일, 중국-대한민국 국교 정상화가 실현되었다. 이후 1993년에는 약 15만명, 1994년에는 30만명의 한국인이 중국을 방문하였으며, 특히 조선족이 거주하는 연변 조선족 자치주와 백두산 지역을 방문한 관광객도 크게 증가하였다.[5]
3. 조선족의 본격적 한국 이주
1985년 378명이던 조선족의 한국 방문자 수는 1989년 9,388명, 1991년 3만 6147명으로 해마다 증가했으며,[63][5] 방한 목적도 처음의 친척 방문에서 한약재 보따리상, 연수, 유학 등으로 변화했다.[5] 나아가 중국 국내에서는 얻을 수 없는 고소득 등 경제적 성공('''코리안 드림''')을 목표로 한국에서 사는 조선족도 점점 늘어났다.[5]
1995년 7월 말 현재 한국에 불법 체류하는 조선족은 2만 명으로 추정되며[15], 1995년 3월 26일에는 불법 체류하는 조선족 등에 의해 '중국 노동자 협회'가 설립되었다.[63]
; 방한자 수의 추이[63]
- 1978–83년, 88명의 조선족이 방한(또는 영주)
- 1984년, 206명의 조선족이 방한(또는 영주)
- 1985년, 378명의 조선족이 방한(또는 영주)
- 1986년, 663명의 조선족이 방한(또는 영주)
- 1987년, 708명의 조선족이 방한(또는 영주)
- 1991년, 3만 6147명의 조선족이 방한
- 1992년, 3만 1500명의 조선족이 방한
- 1993년에는 대한민국 정부가 조선족의 입국을 제한했다. 전년보다 적은 1만 227명의 조선족이 방한
조선족에 의한 한약재 보따리상은 가짜나 불량품이 횡행했기 때문에 1990년 말에는 대한민국 정부가 금지령을 도입해 단속했다.[15]
대한민국에서는 3D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이라고 불리는 일손 부족 해소에 말이 통하는 조선족을 환영했으며, 1991년 7월 24일에는 한국 선주 협회가 전국 선원 노동 조합 연맹과 합의한 후 조선족 고용을 정식으로 해운 항만청에 요청했고, 이는 후에 실현되었다.[63]
교류가 깊어짐에 따라 한국인과 조선족 간의 갈등도 심각해졌다.
1996년 8월에는 온두라스 선적의 참치어선 페스카마호에서 일하던 조선족 선원 6명이 잦은 폭행을 견디다 못해 한국인 7명, 인도네시아인 3명, 조선족 1명 등 총 11명을 살해하는 '''페스카마호 사건'''·페스카마호 선상 반란 사건 (페스카마호 선상반란 사건)도 발생, 많은 한국인이 살해되는 동시에 어선에서의 일상적인 폭력이 드러나 대한민국 및 조선족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3. 1. 조선족 방한자 수 추이
1978년부터 1983년까지 총 88명의 조선족이 한국을 방문하거나 영주권을 획득했다.[63] 1984년에는 206명,[63] 1985년에는 378명,[63][5] 1986년에는 663명, 1987년에는 708명이 한국에 입국하거나 영주권을 획득했다.[63] 1989년에는 9,388명이 방한하였다.[5] 1991년에는 조선족의 한국 방문이 급증하여 총 36,147명이 방한했고,[63][5] 1992년에는 31,500명이 한국을 방문했다.[63] 그러나 1993년에는 대한민국 정부가 조선족의 입국을 제한하였기 때문에 전년 대비 감소한 12,277명만이 한국을 방문했다.[63]방한 목적은 친척 방문에서부터 한약 행상, 연수, 유학 등으로 다양화됐다.[5] 특히, 중국 내에서는 얻기 힘든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코리안 드림"에 따라, 한국에 거주하는 조선족의 수도 증가 추세였다.[5] 1990년 말 한국 정부는 조선족에 의한 한약 판매를 금지하고 단속을 강화했다.[63]
1991년 7월 24일, 한국 선주 협회와 전국 선원 노동 조합 연맹 간의 합의를 통해 조선족 고용을 공식적으로 해운항만청에 요청하였다.[63]
3. 2. 페스카마호 사건
1996년 8월 2일, 온두라스 선적의 참치 어선 '페스카마(PESCAMAR)호'에서 일하던 조선족 선원 6명이 잦은 폭력에 반발, 사모아 근해에서 한국인 선원 등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은 한국인 7명, 인도네시아인 3명, 조선족 1명 등 총 11명을 살해하고 시체를 바다에 유기했다. 이 사건은 어선 내 폭력 문제를 드러내며 한국과 조선족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페스카마호는 1996년 6월 7일 부산 남항에서 출항했으며, 이후 테니안 섬에서 조선족 선원들이 합류했다. 조선족 선원들은 열악한 노동 환경과 한국인 선원들의 폭력에 시달렸으며, 하선을 요구했으나 거액의 비용 문제로 좌절되었다. 결국 이들은 반란을 일으켰고, 유일하게 생존한 한국인 항해사의 기지로 진압되어 일본 해상보안청에 의해 체포되었다.
대한민국으로 압송된 후, 주범 전재천 등 6명은 재판 과정에서 "한국인은 우리를 개라고 부르는 등 매일 욕설을 퍼붓고, 몽둥이나 쇠파이프로 구타했다"고 증언했다.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변호를 맡아 주범을 제외한 5명이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문재인은 "전재천은 주범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1997년 7월 26일, 대법원은 전재천에게 사형, 나머지 5명에게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이후 2007년 12월, 특별 사면으로 전재천은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4. 재한 조선족 인구 현황
1990년대부터 재한조선족 인구는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2007년에는 33만 명으로 확인되었고,[59][60] 2009년 5월에는 44만 3,836명,[59][60][10] 2011년 4월에는 44만 7,000명,[59][60][10] 2017년에는 49만 8,000명,[59][60][10] 2019년에는 54만 명으로 증가하였다.[59][60][10] 귀화자 및 영주권을 포함하면 대한민국 내 재한조선족 인구는 70만 8,000명에 달하며, 이는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거주하는 조선족 인구(2020년 11월 기준 59만 7,000명)보다 훨씬 많다.[59][60]
2002년 5월 현재 불법 체류자는 26만 2000명이었으며, 조선족이 7만 5964명으로 전체의 28.3%를 차지했다. 2006년 4월,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53만 6627명 중 '''16만 9995명'''이 조선족이었다. 2010년 6월 말 현재, 한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은 120만 8544명이었으며, 이 중 불법 체류자는 17만 4049명이었다. 불법 체류자를 국적별로 보면 중국이 8만 474명(조선족 포함)으로 46.2%를 차지했다. 2011년 9월 현재 한국 거주 외국인은 141만 8149명이었다. 2023년 11월,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193만 5000명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으며, 조선족은 '''53만 2000명'''(27.5%)이었다. 한국 국적을 취득한 인원은 23만 5000명으로, 출신 국가별로는 조선족이 10만 1000명(43.5%)으로 가장 많았다.
4. 1. 연도별 재한 조선족 인구 변화
1990년대부터 재한조선족 인구는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2007년에는 33만 명으로 확인되었고,[59][60] 2009년 5월에는 44만 3,836명,[59][60] 2011년 4월에는 44만 7,000명,[59][60] 2017년에는 49만 8,000명, 2019년에는 54만 명으로 증가하였다.[59][60] 귀화자 및 영주권을 포함하면 대한민국 내 재한조선족 인구는 70만 8,000명에 달하며, 이는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거주하는 조선족 인구(2020년 11월 기준 59만 7,000명)보다 훨씬 많다.[59][60]2020년 말 기준 중국 내 재한조선족 전체 인구는 170만 2,479명으로, 여성 87만 2,372명, 남성 83만 1,107명으로 구성되었다.[59][60] 2021년 중국 정부 발표에 따르면, 중국 국적을 가진 전체 재한조선족 인구는 약 170만 명이며, 중국 내 조선족은 전체 조선족 인구의 약 42%를 차지하여 70만 명에 달한다.[59]
2002년 5월 현재 불법 체류자는 26만 2000명이었으며, 조선족이 7만 5964명으로 전체의 28.3%를 차지했다. 2006년 4월,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53만 6627명 중 16만 9995명이 조선족이었다. 2010년 6월 말 현재, 한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은 120만 8544명이었으며, 이 중 불법 체류자는 17만 4049명이었다. 불법 체류자를 국적별로 보면 중국이 8만 474명(조선족 포함)으로 46.2%를 차지했다. 2011년 9월 현재 한국 거주 외국인은 141만 8149명이었다. 2023년 11월,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193만 5000명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으며, 조선족은 53만 2000명(27.5%)이었다. 한국 국적을 취득한 인원은 23만 5000명으로, 출신 국가별로는 조선족이 10만 1000명(43.5%)으로 가장 많았다.
5. 재한 조선족 관련 정책
1990년대부터 대한민국 정부는 조선족의 입국 및 체류 관련 정책을 지속적으로 변화시켜왔다. 초기에는 한약 판매 금지 및 불법 체류 단속을 강화하는 등 규제 중심의 정책을 시행했다.[63] 1991년 7월 24일에는 한국 선주 협회와 전국 선원 노동 조합 연맹 사이의 합의를 통해 조선족 고용을 공식적으로 해운항만청에 요청하였고, 이는 후에 구현되었다.[63]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한민국 정부는 조선족의 취업 기회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했다. 2003년에는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외국인 고용 허가제)을 시행하여 조선족의 합법적 취업을 허용했다. 2007년에는 '방문 취업제'를 도입하여 재외 동포의 체류 및 취업 기회를 더욱 확대했다.
이러한 정책 변화는 조선족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합법적인 취업 기회가 확대되면서, 조선족들은 '3K' 업종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일자리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방문 취업제 시행으로 인해 더 많은 조선족들이 대한민국에 체류하며 경제 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페스카마호 선상 살인 사건과 같이 조선족 선원들이 한국인들을 살해하는 사건은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63] 또한 흑룡강파 등 조선족 폭력배 조직이 생겨나기도 했다.[63]
6. 재한 조선족 관련 사회 문제 및 갈등
일부 조선족 범죄 사건으로 인해 한국 사회에서 부정적인 인식이 형성되기도 했다.[19][20] 2012년 4월 발생한 수원 토막 살인 사건과 2014년 12월 발생한 수원 토막 시체 유기 사건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조선족을 범죄자로 묘사하는 경우가 있어 차별과 편견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32] 특히, 2017년 영화 '청년경찰'은 조선족을 장기 매매 범죄 집단으로 묘사하여, 조선족 단체가 상영 중단과 제작진의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33]
6. 1. 조선족 관련 긍정적 사례
2024년 영화 '시민 덕희'에서는 보이스피싱 피해를 입은 한국인 여성을 돕는 조선족 여성이 등장하여 긍정적인 이미지를 보여주었다.7. 한국 내 조선족 타운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과 영등포구 대림동 일대는 조선족 타운, 연변 거리, 양꼬치 거리 등으로 불리며, 중국 음식점, 양꼬치 가게, 중국 잡화점 등이 밀집해 있고 중국어 간판이 즐비하다.[40] 가리봉동은 서울의 대표적인 조선족 타운으로, 과 같이 독특한 거리 풍경을 보인다. 대림동 또한 과 같이 중국어 간판이 많이 보인다.
1999년 6월 6일에는 서울 구로구 구로6동에 대한예수교장로회 "서울조선족교회"가 창립되었다.[41] 2008년 5월 기준, 영등포구에는 3만 9,793명, 구로구에는 2만 8,818명의 외국인이 거주하고 있었다.[41] 그러나 2004년 이후 가리봉동 재개발과 2017년 이후 중국계 대형 자본 유입에 따른 집값 상승으로 인해, 대림동의 조선족들은 인천 부평구 등 서울 외곽으로 이주하는 경향을 보였다.[41]
안산시, 수원시, 시흥시, 부천시, 성남시 등에도 조선족 밀집 거주 지역이 있다.[40][42] 2020년대 기준으로, 안산시 단원구(22,499명), 수원시 팔달구(11,520명), 시흥시(19,460명), 부천시(13,941명), 성남시 수정구(7,606명) 등에 많은 조선족이 거주하고 있다.[42]
8. 재한 조선족 출신 유명인
야구 선수 주취안은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였으며, 어릴 적부터 가족과 함께 한국에 거주했다.[43] 중국 야구 국가대표팀 소속이다. 옌지 출신 영화 감독 장률은 전 연변대학교 중어문학과 교수였다.[44] 전 북한 스파이이자 전 단국대학교 교수 정수일은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45] 가수 런쥔은 남성 아이돌 그룹 NCT 멤버이다. 장기 기사로는 이 있다.[46] 아이돌 용국은 남성 아이돌 그룹 JBJ 멤버이다.[47][48] 은 가수이다.[49] 는 트로트 가수이다.[50] 탁구 선수 은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으며,[51] "제23회 아시아 탁구 선수권 대회"에 대한민국 남자 탁구 대표팀 선수로 출전했다. 또한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탁구 선수이다.[51] 배구 선수 이영은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52] 래퍼 D.Ark가 있다.[53] 는 일란성 쌍둥이 음악 듀오이다.[54] 양금 연주가 윤은화가 있다.[55] 축구 선수로는 [56], 전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의 아들이자, 의 동생인 가오밍이가 있다.[57]
9. 북한 내 조선족
일본 제국의 식민 통치 종식 이후 많은 재중 한국인들이 한반도로 귀환했다.[3][4] 귀환 이주는 해방 후 약 2년 동안 절정에 달했으며, 이 기간 동안 중국 거주 한국인 약 70만 명, 즉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귀환했다.[3] 한국 전쟁 발발 직전부터 1960년대 초까지 여러 단계에 걸쳐 재중 한국인의 귀환이 이루어졌다.[3] 정전 이후 북한의 경제 재건 과정에서 노동력 부족은 주요 과제였다. 중국 정부는 재건 지원을 위해 재중 한국인의 북한 이주를 조직했고, 약 6만 명의 재중 한국인이 북한으로 이주하여 북한 국적을 취득했다.[3] 1961년과 1962년에는 2년도 안 되어 거의 10만 명의 "중국 탈북자"가 발생할 정도로 대규모 불법 이주가 절정에 달했다.[3] 이 과정에서 중국 정부는 북한의 의견을 존중하고 그 입장을 고려했다.[3] 북한으로의 이동과 재중 한국인의 민족적 정체성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이주 과정은 한반도의 민족적 정체성이 해체되고 중국 시민권을 가진 한국계 중국인, 즉 재중 한국인의 정체성이 확립되는 시기였다.[3][4]
참조
[1]
웹사이트
재한조선족사회 30년 총정리[2부] 현안분석과 제언
https://www.ekw.co.k[...]
2023-10-21
[2]
웹사이트
中国朝鲜族人口持续流失。据第七次人口普查,2020年末中国朝鲜族人口为170万,较10年前减少12万人(2010年为18... - 雪球
https://xueqiu.com/1[...]
2023-10-29
[3]
웹사이트
1949~1962년 중국조선족의 북한 이주와 민족정체성
https://korea.inha.a[...]
2023-10-29
[4]
웹사이트
한 조선족이 경험한 북한방문
https://www.rfa.org/[...]
[5]
웹사이트
6·25 터지자 ‘북한군’ 선봉 부대 돼 남침했던 ‘조선족 부대’
https://www.insight.[...]
2023-11-05
[6]
논문
한국의 “재한조선족” 연구 현황
https://www.dbpia.co[...]
2011-01
[7]
웹사이트
재한 조선족단체들, "참정권·건강보험 제한 추진은 차별" 성명
https://www.yna.co.k[...]
2023-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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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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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체류 중국동포: 국가의 경계를 초월한 삶의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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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체류 외국인 수 148만명 역대 최고…조선족 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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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조선족 인구 170만명…20년간 22만명 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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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옌볜 조선족 인구 급감…자치주 내 비중 30% 턱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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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동포의 귀환과 한국사회의 과제 : '중국의 조선족'과 '한국의 중국동포'를 넘어 :‘중국의 조선족’과 ‘한국의 중국동포’를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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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교포를 어떻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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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조선족동포와 한국국민의 갈등과 화합의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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延辺朝鮮族の社会学的考察 エスニシティに対する接近を中心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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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고 있는 총 인구…비결은 '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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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김성수, ‘조선족’ 소문 왜 돌았나?…‘조선족 포비아’ 슬픈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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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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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투 고치려 노력해봐도”…조선족 향한 시선은 여전히 ‘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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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 당선에 중국공산당 개입"… '어느 조선족의 고백' 온라인 글, 일파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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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총선 앞둔 북한의 선거 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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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사망 여아 친모가 조선족? 차별적 조선족 논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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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때문? 외국인이 서울시장 투표권 갖게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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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끼 들고 찾아갑시다” 재난지원금 못 받은 조선족들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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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안 줘, X같은 대한민국"…재난지원금 못 받아 뿔난 조선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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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동포 재난지원금 제외 분노 사실 아냐…혐오 조장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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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자녀 대학 쉽게 간다? 사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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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럽고 위험한 사람들’ 영화 속 편견이 중국동포 차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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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청년경찰' 반발 중국동포…"범죄자 취급 더는 못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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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영화 ‘청년경찰’ 상대 손배訴 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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俳優パク・ソジュンの主演映画に裁判所が謝罪と和解勧告…法的責任を問う初の事例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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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특집드라마 가리봉엘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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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자들' 2009년 신혼부부 장기밀매 사건 기반 스릴러 "실화라 더 무섭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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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화재 참사 유족들이 말하는 '조선족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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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추억]②남태평양 가운데서 11명이 죽었다…페스카마호 선상 반란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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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한국계 중국인’의 주요 거주 지형도와 경제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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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族街から朝鮮族を追い出す中国資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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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출신 주권, 할머니의 나라서 드림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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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장률 감독의 신작 “경주” 6월 12일 한국서 개봉 (인터넷요녕신문,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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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간첩 '깐수' 정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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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將棋실력 어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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买个西瓜就让见偶像!这样奇葩的经纪公司头次见!-搜狐娱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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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气男爱豆黑料被网友扒了个底朝天!粉丝痛骂:人渣不需要留粉!_金龙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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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면가왕' 백청강, 과거 조선족이라 멸시당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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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활동 중국동포 가수 최연화 "트로트 열풍, 중국에도 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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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라운지 조선족 출신 탁구 신예 정상은·강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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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V리거 1호 이영 “내일은 주전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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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랑해" 디아크, 편파 판정 비난→인스타 폭격→태세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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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쌍둥이’ 테이스티, 갑자기 한국떠나,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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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금스타 윤은화, 중국 대학교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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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松归属权成疑案 一旦延边胜诉他或将暂时无法回国效力_PP视频体育频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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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将门虎子!高仲勋次子高铭翼加盟韩国K3联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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东方体育新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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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출신 부모와 늦둥이 아역배우 정윤석군 사연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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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조선족 인구 170만명…20년간 22만명 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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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2022-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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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인용
중국 옌볜 조선족 인구 급감…자치주 내 비중 30% 턱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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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2022-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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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인용
학술논문 조선족동포와 한국국민의 갈등과 화합의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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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신문
2020-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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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조선족동포와 한국국민의 갈등과 화합의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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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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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조선족동포와 한국국민의 갈등과 화합의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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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신문
2020-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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