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휘옹주
1. 개요
정휘옹주는 조선 선조의 여섯째 딸이자 막내딸로, 인빈 김씨의 소생이다. 1604년 유영경의 손자 유정량과 혼인하여 전창위에 봉해졌으며, 1653년 6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묘소는 도봉산에 마련되었다가 남편 유정량의 묘에 합장되었다. 유정량과의 사이에서 2남 2녀를 두었으며, 아들 류심은 관찰사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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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3년 사망 -
로버트 필머
로버트 필머는 17세기 영국의 정치철학자로,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가부장적 권위의 계승으로 왕권을 옹호하는 왕권신수설을 주장하여 당대 정치 논쟁에 큰 영향을 미쳤다. -
1653년 사망 -
메고히메
메고히메는 1579년 다테 마사무네와 결혼하여 갈등을 겪었지만 관계를 회복하고 자녀를 낳았으며, 교토에서 외교관 역할을 수행하고 불교에 귀의하여 요토쿠인이라는 법명을 받았다가 1653년에 사망했다. -
한국사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한국사 -
토기
토기는 점토를 구워 만든 그릇으로, 일본에서는 구움 정도에 따라 도자기, 자기와 구분되며 인류 최초의 화학적 변화 응용 사례로 식생활과 문화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다원설이 유력한 발상지와 일본 열도 1만 6500년 전 토기 발견이 특징이며, 일본어 관점에서 정의, 역사, 제작 과정, 용도, 세계 각지 토기 문화를 설명한다. -
조선 선조의 자녀 -
광해군
광해군은 조선 제15대 국왕으로, 임진왜란 중 세자로 책봉되어 전란 수습에 기여하고 즉위 후 대북파를 등용, 일본과 기유약조를 맺고 후금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했으나 인조반정으로 폐위되었으며, 대동법 시행, 『동의보감』 편찬 등의 업적과 폐모살제 등의 논란으로 역사적 평가가 엇갈린다. -
조선 선조의 자녀 -
흥안군 (1598년)
흥안군 이제는 선조의 열번째 서자이자 활달한 성격의 왕자였으나, 이괄의 난에 연루되어 국청 없이 처형되었고, 위성원종공신 1등에 책록되었으나 작위와 시호는 철회되었으며, 묘소는 사라졌지만 흥안대로라는 지명으로 남아있다.
2. 생애
1593년 임진왜란 중에 황해도 해주 행궁에서 조선 제14대 왕 선조와 후궁 인빈 김씨 사이에서 여섯째 딸이자 막내딸로 태어났다. 성은 이, 본관은 전주이다. 정원군 등과 친남매간이며 능양군의 고모이다. 정휘옹주의 생모 인빈 김씨는 선조의 총애를 받은 후궁으로, 인빈 김씨의 아들 정원군의 장남 능양군이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
1604년(선조 37년) 영의정을 지낸 전주 유씨 유영경(柳永慶)의 손녀이자 유열(柳悅)의 딸인 유정량(柳廷亮)과 혼인하였고, 유정량은 전창위(全昌尉)에 봉해졌다.
1653년(효종 4년) 음력 윤7월 15일 향년 61세로 사망하였으며, 사망 후에도 3년동안 녹봉을 지급받았다. 묘소는 경기도 양주의 도봉산(道峯山)에 마련되었다가, 훗날 남편 유정량의 묘에 합장되었다.
2.1. 가계
임진왜란 중이던 1593년 황해도 해주 행궁에서 조선 제14대 왕 선조와 후궁 인빈 김씨 사이에서 여섯째 딸이자 막내딸로 태어났다. 성은 이, 본관은 전주이다. 정원군 등과 친남매간이며 능양군의 고모이다.
정휘옹주의 생모 인빈 김씨는 선조의 총애를 받은 후궁이다. 인빈 김씨의 아들 정원군의 장남이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는데, 이가 곧 능양군이다.
2.2. 옹주 시절
1604년(선조 37년) 영의정을 지낸 전주 유씨 유영경(柳永慶)의 손녀이자 유열(柳悅)의 딸로, 유정량(柳廷亮)과 혼인하였다. 이때 유정량은 전창위(全昌尉)에 봉해졌다.
1653년(효종 4년) 음력 윤7월 15일 향년 61세로 사망하였으며, 사망 후에도 3년동안 녹봉을 지급받았다. 묘소는 경기도 양주의 도봉산(道峯山)에 마련되었다가, 훗날 남편 유정량의 묘에 합장되었다.
2.3. 가족과 후손
류정량은 할아버지 류영경이 선조 말기 선조의 유일한 적자인 영창대군을 옹립하려 했던 사실 때문에 광해군과 대북파의 탄핵을 받았다. 1608년(광해군 즉위년) 광해군 즉위 직후 유영경은 유배되었다가 사사되었으며, 4년 후인 1612년(광해군 4년)에는 그 일가가 몰살되었다. 이때 류정량도 연좌되어 경상남도 남해로 유배를 갔으며, 이후 전라북도 고부를 거쳐 경상도 지역으로 이배되었다. 유정량은 이 유배 생활로 인해 한때 실명의 위기까지 겪기도 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류정량은 유배 생활에서 풀려났다. 이후 여러 관직을 거쳤으며, 사은사 등으로 청나라에도 여러 차례 다녀왔다. 1663년(현종 4년)에 향년 73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류정량과 정휘옹주는 2남 2녀를 두었다. 장남 류심은 아버지를 따라 유배 생활을 하다가 인조반정으로 한양으로 돌아왔다. 1627년 음보로 벼슬 생활을 시작하여 경상도와 평안도의 관찰사를 지냈으며, 예조참판과 도승지 등을 지냈다. 1667년(현종 8년) 향년 60세를 일기로 죽었다. 차남은 군수를 지낸 유흡이며, 장녀는 이중규의 처이고 차녀는 정화제의 처이다.
3. 가족 관계
| 구분 | 관계 | 성명 | 본관 | 비고 |
|---|---|---|---|---|
| 친정 전주 이씨 | 조부 | 덕흥대원군 | 전주 | |
| 조모 | 하동부대부인 | 하동 정씨 | ||
| 아버지 | 선조대왕 | 전주 | 제14대 왕 | |
| 외조부 | 김한우 | 수원 | 사헌부감찰 | |
| 외조모 | 전주 이씨 | 전주 | 충의위 이효성의 딸 | |
| 어머니 | 인빈 | 수원 | 선조의 후궁 | |
| 형제 | 정신옹주, 정혜옹주, 정숙옹주, 정안옹주 | 전주 | 선조와 인빈 김씨의 딸들, 정휘옹주의 언니들 | |
| 형제 | 의안군, 신성군, 정원군, 의창군 | 전주 | 선조와 인빈 김씨의 아들들, 정휘옹주의 오빠들 | |
| 시가 전주 류씨 | 시조부 | 류영경 | 전주 | 영의정, 전양부원군 |
| 시조모 | 황씨 | 창원 | 정경부인, 우찬성 황사우의 딸 | |
| 시아버지 | 류열 | 전주 | 통진현감, 전원군 | |
| 시어머니 | 이씨 | 전의 | 정경부인, 증 참판 이위의 딸 | |
| 부마 | 류정량 | 전주 | 전창군, 효정공 | |
| 장남 | 류심 | 전주 | 예조참판, 전평군 | |
| 차남 | 류흡 | 전주 | 금천군수 | |
| 딸 | 장녀 | 유백임 | 전주 | 이중규(진사)의 처 |
| 차녀 | 유중임 | 전주 | 정화제(종성부사)의 처 |
3.1. 친정 전주 이씨(全州 李氏)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593년(선조 26년) 황해도 해주의 행궁에서 조선 제14대 왕인 선조와 그 후궁 인빈 김씨의 여섯째 딸이자 막내딸로 태어났다. 성은 이(李), 본관은 전주이다. 정원군 등과 친남매간이며 능양군의 고모이다.
정휘옹주의 생모 인빈 김씨는 선조의 총애를 많이 받은 후궁이다. 그녀의 아들 중 정원군의 장남이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이 되니, 그가 곧 능양군이다.
3.2. 시가 전주 유씨(全州 柳氏)
정휘옹주의 남편 류정량은 할아버지 류영경이 선조 말기 영창대군을 옹립하려 했던 사실 때문에 광해군과 대북파의 탄핵을 받았다. 1608년 유영경은 광해군 즉위 직후 유배되었다가 사사되었으며, 4년 후인 1612년에는 그 일가가 몰살되었다. 이때 류정량도 연좌되어 경상남도 남해로 유배를 갔으며, 이후 전라북도 고부를 거쳐 경상도 지역으로 이배되었다. 유배생활로 인해 류정량은 한때 실명의 위기까지 겪기도 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면서 유배생활에서 풀려났다. 이후 여러 관직을 거쳤으며, 사은사 등으로 청나라에도 여러 차례 다녀왔다. 1663년 향년 73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류정량과 정휘옹주는 2남 2녀를 두었다. 장남 류심은 아버지를 따라 유배 생활을 하다가 인조반정으로 한양으로 돌아왔다. 1627년 음보로 벼슬을 시작하여 경상도와 평안도의 관찰사를 지냈으며, 예조참판과 도승지 등을 지냈다. 1667년 향년 60세를 일기로 죽었다. 차남은 군수를 지낸 유흡이며, 장녀는 이중규의 처이고 차녀는 정화제의 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