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고이즈미 내각
1. 개요
제2차 고이즈미 내각은 2003년 11월부터 2004년 9월까지, 그리고 2004년 9월부터 2005년 9월까지 두 차례에 걸쳐 구성되었으며,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했다. 이라크 전쟁에 대한 자위대 파병, 연금 개혁, 우정 민영화 등이 주요 정책으로 추진되었으며, 우정 민영화는 내각의 핵심 사업이었다. 내각 구성은 자유민주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일부 공명당 소속 각료도 포함되었다.
| 내각 이름 | 제2차 고이즈미 내각 |
|---|---|
| 내각 번호 | 88번째 |
| 관할 국가 | 일본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내각 출범일 | 2003년 11월 19일 |
|---|---|
| 내각 해산일 | 2005년 9월 21일 |
| 정부 수반 | 고이즈미 준이치로 |
| 국가 원수 | 아키히토 천황 |
| 정당 | 자민당-공명당 다수 연립 |
| 의회 지위 | 연립 다수 |
| 반대 정당 | 민주당 |
| 반대당 대표 | 간 나오토 (2004년 5월 18일까지) 오카다 가쓰야 (2004년 5월 18일부터) |
| 선거 | 2003년 총선거 2004년 참의원 선거 |
| 이전 내각 | 제1차 고이즈미 내각 |
| 후임 내각 | 제3차 고이즈미 내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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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카와 내각
호소카와 내각은 1993년 자민당 과반수 붕괴 후 신생당 중심의 비자민당 연립 정부로 출범하여 정치 개혁 4법을 통과시켰으나, 이념 갈등, 스캔들, 정책 실패로 1년 안에 총사퇴하며 다당제 연립 정부 운영의 어려움을 보여주었다.
2. 정치적 배경
2003년(헤이세이 15년) 제43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결과, 자유민주당을 비롯한 여당이 절대 안정 다수를 유지하면서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총리로 재지명되었다. 제1차 고이즈미 제2차 개조내각 발족 직후였고 낙선자가 거의 없어 각료는 모두 재임되었다. 총리를 포함한 모든 각료의 재임은 1967년(쇼와 42년) 제2차 사토 내각 이후 36년 만이며, 전후 3번째 사례이다.
고이즈미 내각은 구조적 경제 개혁의 일환으로 2004년 봄 연금 개혁을 단행했다. 그러나 내각 관방 장관 후쿠다 야스오가 연금 보험료 미납 문제로 사임하고, 호소다 히로유키가 후임으로 취임하는 등 정치적 파장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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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야당인 민주당에 밀려 제1당 자리를 내주었으나, 연립 여당은 과반수를 유지했다. 고이즈미는 사퇴를 거부했다.
2.1. 이라크 파병 문제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재선되면 연말까지 이라크 재건 지원을 위해 자위대를 파병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 공약은 선거 기간 중 인기가 없었다. 2기 취임 한 달 만에 내각은 파병을 승인했고, 자위대는 2004년 이라크 UN 평화유지군에 합류했지만, 이 조치는 여전히 고이즈미의 지지율을 떨어뜨렸고 여론조사는 국민들의 반대를 보여주었다.
2.2. 우정 민영화 논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개혁의 내성(內城)"이라고 부른 경제 프로그램의 중심에는 당시 2의 자산을 보유한 세계 최대 은행이었던 우정사업청의 민영화 계획이 있었다. 이 계획은 우정사업청을 주요 지지 기반으로 삼았던 많은 자민당 의원들에게 매우 인기가 없었고, 고이즈미 정부는 2기가 되어서야 법안을 확정하고 국회에 제출할 수 있었다(비록 자민당 자체는 찬성하지 않았지만).
자민당-공명당 연립 여당은 중의원에서 거의 80석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투표가 실제로 이루어졌을 때 대규모 당내 반란이 일어나 우정사업 민영화 법안은 2005년 7월 5표 차이로 간신히 통과되었다. 이후 참의원에서 법안이 부결되자 고이즈미는 즉각 국회를 해산하고 2005년 9월 조기 총선을 실시하여, 우정 민영화 반대파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개혁을 실시할 다수 의석을 얻지 못하면 사퇴하겠다고 약속했다. 총선에서 자민당은 압승을 거두었고, 고이즈미는 2005년 9월 3기 내각을 구성했다.
3. 내각 구성
2003년 11월 9일에 실시된 제43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결과, 자유민주당을 비롯한 여당이 절대 안정 다수를 유지했기 때문에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총리로 재지명되었다. 제1차 고이즈미 제2차 개조내각 발족 후 얼마 지나지 않았고, 낙선자가 거의 없었던 점 등을 이유로 새로운 인선은 거의 없이 각료는 모두 재임되었다. 총리를 포함한 모든 각료의 재임은 1967년의 제2차 사토 내각 이래 36년 만이며, 전후 3번째 사례이다.
2004년 5월 7일, 후쿠다 야스오 내각관방장관이 연금 보험료 미납 문제로 책임을 지고 사임하면서, 후임으로 호소다 히로유키가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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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내각 구성표이다.
| 직책 | 이름 |
|---|---|
| 내각총리대신 | 고이즈미 준이치로 |
| 내각총리대신 보좌관 (도시재생 담당) | 마키노 도오루 |
| 내각총리대신 보좌관 (이라크 담당) | 오카모토 유키오 ( ~ 2004년 3월 31일) |
| 내각총리대신 보좌관 (행정개혁 담당) | 사토 다쓰오 (2003년 11월 20일 ~ ) |
| 내각총리대신 보좌관 (우정민영화 담당) | 와타나베 요시아키 (2004년 4월 26일 ~ ) |
| 총무대신 | 아소 다로 |
| 법무대신 | 노자와 다이조 |
| 외무대신 | 가와구치 요리코 |
| 재무대신 | 다니가키 사다카즈 |
| 문부과학대신 국립국회도서관 연락조정위원회 위원 | 가와무라 다케오 |
| 후생노동대신 | 사카구치 지카라 |
| 농림수산대신 | 가메이 요시유키 |
| 경제산업대신 〈국제박람회 담당〉 | 나카가와 쇼이치 |
| 국토교통대신 〈수도기능이전, 관광입국 담당〉 | 이시하라 노부테루 |
| 환경대신 〈지구환경문제 담당〉 | 고이케 유리코 |
| 내각관방장관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남녀공동참여 담당) | 후쿠다 야스오 ( ~ 2004년 5월 7일) |
| 호소다 히로유키 (2004년 5월 7일 ~ ) | |
| 내각관방 부장관 | 호소다 히로유키 ( ~ 2004년 5월 7일) |
| 스기우라 세이켄 (2004년 5월 7일 ~ ) | |
| 내각관방 부장관 | 야마자키 마사아키 |
| 내각관방 부장관 | 후타하시 마사히로 |
| 내각위기관리감 | 스기타 가즈히로 ( ~ 2004년 1월 23일) |
| 노다 다케시 (2004년 1월 23일 ~ ) | |
| 내각법제국 장관 | 아키야마 오사무 ( ~ 2004년 8월 31일) |
| 사카다 마사히로 (2004년 8월 31일 ~ ) | |
| 국가공안위원회 위원장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청소년 육성 및 저출산 대책, 식품안전 담당) | 오노 기요코 |
| 방위청 장관 | 이시바 시게루 |
|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오키나와 및 북방대책, 개인 정보 보호, 과학기술정책 담당) 〈정보통신기술(IT) 담당〉 | 모테기 도시미쓰 |
|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금융, 경제재정정책 담당) | 다케나카 헤이조 |
|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규제개혁, 산업재생기구 담당) 〈행정개혁, 구조개혁특구 및 지역재생 담당〉 | 가네코 가즈요시 |
|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방재 담당) 〈사태대처법제 담당〉 | 이노우에 기이치 |
내각총리대신 임시대리 취임 예정 순위는 제1순위 호소다 히로유키, 제2순위 다니가키 사다카즈, 제3순위 아소 다로, 제4순위 시마무라 요시노부(~ 2005년 8월 8일) / 나카가와 쇼이치(2005년 8월 10일 ~ ), 제5순위 나카가와 쇼이치(~ 2005년 8월 10일) / 마치무라 노부타카 (2005년 8월 10일 ~)이다.
3.1. 각료 명단 (2003년 11월 19일 ~ 2004년 9월 27일)
| 직책 | 장관 | 임기 | ||
|---|---|---|---|---|
| 내각총리대신 | 고이즈미 준이치로 | 중의원 | 2001년 4월 26일 - 2006년 9월 26일 | |
| 총무대신 | 아소 다로 | 중의원 | 2003년 9월 22일 - 2005년 10월 31일 | |
| 법무대신 | 노자와 다이조 | 참의원 | 2003년 9월 22일 - 2004년 9월 27일 | |
| 외무대신 | 가와구치 요리코 | 2002년 2월 1일 - 2004년 9월 27일 | ||
| 재무대신 | 다니가키 사다카즈 | 중의원 | 2003년 9월 22일 - 2006년 9월 26일 | |
| 문부과학대신 | 가와무라 다케오 | 중의원 | 2003년 9월 22일 - 2004년 9월 27일 | |
| 후생노동대신 | 사카구치 지카라 | 중의원 | 2001년 1월 6일 - 2004년 9월 27일 | |
| 농림수산대신 | 가메이 요시유키 | 중의원 | 2003년 4월 1일 - 2004년 9월 27일 | |
| 경제산업대신 | 나카가와 쇼이치 | 중의원 | 2003년 9월 22일 - 2005년 10월 31일 | |
| 국토교통대신 | 이시하라 노부테루 | 중의원 | 2003년 9월 22일 - 2004년 9월 27일 | |
| 환경대신 | 고이케 유리코 | 중의원 | 2003년 9월 22일 - 2006년 9월 26일 | |
| 내각관방장관 성평등 담당 대신 | 후쿠다 야스오 | 중의원 | 2000년 10월 27일 - 2004년 5월 7일 | |
| 호소다 히로유키 | 중의원 | 2004년 5월 7일 - 2005년 10월 31일 | ||
| 국가공안위원회 위원장 청소년 육성 및 저출산 대책 담당 대신 식품안전 담당 대신 | 오노 기요코 | 참의원 | 2003년 9월 22일 - 2004년 9월 27일 | |
| 방위청 장관 | 이시바 시게루 | 중의원 | 2002년 9월 30일 - 2004년 9월 27일 | |
| 오키나와 및 북방 영토 담당 대신 개인정보보호 담당 대신 과학기술정책 담당 대신 | 모테기 도시미쓰 | 중의원 | 2003년 9월 22일 - 2004년 9월 27일 | |
| 경제재정정책 담당 대신 금융 담당 대신 | 타케나카 헤이조 | 2001년 4월 26일 - 2005년 10월 31일 | ||
| 규제개혁 담당 대신 일본산업혁신기구 담당 대신 행정개혁 담당 대신 구조개혁 특구 담당 대신 지역활성화 담당 대신 | 가네코 가즈요시 | 중의원 | 2003년 9월 22일 - 2004년 9월 27일 | |
| 재해대책 담당 대신 국가긴급법제 담당 대신 | 이노우에 기이치 | 중의원 | 2003년 9월 22일 - 2004년 9월 27일 | |
| 차관 | ||||
| 내각관방 부장관 (정무 - 중의원) | 호소다 히로유키 | 중의원 | 2003년 9월 22일 - 2004년 5월 7일 | |
| 스기우라 세이켄 | 중의원 | 2004년 5월 7일 - 2005년 10월 31일 | ||
| 내각관방 부장관 (정무 - 참의원) | 야마자키 마사아키 | 참의원 | 2003년 9월 22일 - 2005년 10월 31일 | |
| 내각관방 부장관 (관료) | 후타하시 마사히로 | 2003년 9월 22일 - 2006년 9월 26일 | ||
3.2. 개각 후 각료 명단 (2004년 9월 27일 ~ 2005년 9월 21일)
| 담당 부처 | 장관 | |
|---|---|---|
| 내각총리대신 | 고이즈미 준이치로 | |
| 총무대신 | 아소 다로 | |
| 법무대신 | 노노 치에코 | |
| 외무대신 | 마치무라 노부타카 | |
| 재무대신 | 다니가키 사다카즈 | |
| 문부과학대신 | 나카야마 나리아키 | |
| 후생노동대신 | 오쓰지 히데히사 | |
| 농림수산대신 | 시마무라 요시노부 | |
| 이와나가 미네이치 | ||
| 경제산업대신 | 나카가와 쇼이치 | |
| 국토교통대신 | 키타가와 카즈오 | |
| 환경대신 | 고이케 유리코 | |
| 내각관방장관 | 호소다 히로유키 | |
| 국가공안위원장 | 무라타 요시타카 | |
| 방위청 장관 | 오노 요시노리 | |
|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금융 담당) | 이토 다쓰야 | |
|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경제재정정책, 우정민영화 담당) | 다케나카 헤이조 | |
|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규제개혁, 산업재생기구, 행정개혁, 구조개혁 특별지구, 지역 활성화 담당) | 무라카미 세이이치로 | |
|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과학기술정책, 식품안전, 정보기술 담당) | 타나하시 야스후미 |
* 2005년 8월 8일, 우정 민영화 법안에 반대한 시마무라 요시노부 농림수산대신이 해임되었다. 후임으로 이와나가 미네이치가 임명되었다.
4. 주요 정책
고이즈미 내각은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리는 장기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구조 개혁을 추진했다. 규제 완화, 민영화, 재정 건전화 등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통해 경제 활성화를 꾀했다.
2004년 봄, 정부는 국가 혜택을 줄이고 사용자 부담을 늘려 연금 비용을 절감하는 연금 개혁을 도입했다. 그러나 이 정책은 인기가 없었고, 후쿠다 야스오 관방장관이 연금 미납 사실이 드러나 사임하는 등 정치적 어려움을 겪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재선되면 연말까지 이라크 재건 지원을 위해 자위대를 파병하겠다고 약속했다. 내각은 파병을 승인했고, 자위대는 2004년 이라크 UN 평화유지군에 합류했다. 이라크 파병과 연금 개혁은 2004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의 부진으로 이어졌다. 야당인 민주당이 근소한 차이로 최다 의석을 획득했지만, 연립 여당은 과반수를 유지했다.
고이즈미는 우정사업청 민영화 계획을 추진했다. 당시 2의 자산을 보유한 세계 최대 은행이었던 우정사업청의 민영화는 많은 자민당 의원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우정사업 민영화 법안은 2005년 7월 중의원에서 간신히 통과되었으나, 참의원에서 부결되자 고이즈미는 국회를 해산하고 2005년 9월 조기 총선을 실시했다.
5. 평가
고이즈미 내각은 구조적 경제 개혁 정책을 추진하였는데, 2004년 봄에는 연금 비용 절감을 위해 국가 혜택을 줄이고 사용자 부담을 늘리는 개혁을 도입했다. 그러나 이 정책은 인기가 없었고, 후쿠다 야스오 관방장관이 연금 미납 사실이 드러나 사임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이라크 파병과 연금 개혁의 정치적 여파는 2004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의 부진으로 이어졌다. 연립 여당은 과반수를 유지했지만, 야당인 민주당이 근소한 차이로 최다 의석을 획득하여 고이즈미 총리의 인기 하락을 보여주었다.
고이즈미 총리는 우정사업청 민영화를 "개혁의 내성(內城)"이라 부르며 핵심 과제로 추진했다. 당시 우정사업청은 2의 자산을 보유한 세계 최대 은행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자민당 내에서도 많은 반대에 부딪혔고, 2005년 7월 중의원에서 5표 차이로 간신히 통과되었다. 이후 참의원에서 법안이 부결되자 고이즈미 총리는 국회를 해산하고 2005년 9월 조기 총선을 실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