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군 (일본군)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제58군(일본군)은 1945년 4월 8일 나가츠 사다시게 중장의 지휘 하에 창설되어 일본 제17방면군에 배속, 제주도에 주둔했다. 연합군의 제주도 상륙에 대비했으나, 실제 전투 없이 종전을 맞이했다. 훈련이 부족한 예비군, 징집된 학도병, 향토 민병대로 구성되었으며,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과 함께 해산되었다. 제주도는 중일전쟁 이후 전략적 요충지로 인식되어 일본군 병력이 증강되었으며, 제58군은 결7호 작전을 수행하며 제주도 전역에 주둔지를 구축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주한 일본군 - 제150사단 (일본군)
제150사단은 1945년 일본 본토 결전 계획에 따라 창설되어 전라도 해안 방어를 맡았으나, 소련의 만주 침공 후 군산에서 항복한 일본군 해안배비사단이다. - 주한 일본군 - 제17방면군
제17방면군은 일본이 결호작전에 대비하여 한반도에 상륙하는 연합군을 저지하기 위해 창설한 군대로, 경성에 본부를 두고 조선군관구의 주요 직위 겸임, 관동군의 통제 하에 있었으나 실제 전투 없이 종전을 맞이했으며, 조선인 강제 동원의 대상이 되었다. - 일본 육군의 군 - 제38군 (일본군)
제38군은 1942년 일본군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주둔하며 창설되어 해당 지역 방위를 담당했고, 1945년 명호 작전에 참전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해체되었으며, 여러 문제로 비판받았다. - 일본 육군의 군 - 대만군 (일본군)
대만군은 1895년 일본 제국이 대만을 점령한 후 창설되어 제2차 세계 대전 종전까지 대만에 주둔하며 중국 본토 작전에 투입되거나 연합군 공격에 대비한 방어 체계를 구축했던 일본군의 군급 부대이다. - 1945년 설립된 단체 - 연합군 최고사령부
연합군 최고사령부(GHQ/SCAP)는 일본의 비군사화와 민주화를 목표로 일본 점령을 위해 설치되었으며, 1945년 포츠담 선언 이후 더글러스 맥아더를 최고사령관으로 하여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 다방면에 걸친 개혁을 진행했다. - 1945년 설립된 단체 - 조선문학건설본부
조선문학건설본부는 1945년 임화, 김남천 등 KAPF 소장파가 결성한 문학 단체로, 좌우 통합을 표방했으나 좌익 강경파의 반발과 KAPF 분리 후 조선문학가동맹으로 통합되어 해방 직후 문학 운동 방향 논쟁의 사례로 평가받는다.
제58군 (일본군) - [군대/부대]에 관한 문서 | |
---|---|
부대 정보 | |
부대 명칭 | 일본 제58군 |
원어 명칭 | 第58軍 |
로마자 명칭 | Dai-gojyūhachi gun |
별칭 | 砦 (도리데) |
창설일 | 1945년 4월 7일 |
해체일 | 1945년 8월 15일 |
국가 | 일본 제국 |
소속 | 일본 제국 육군 |
병과 | 보병 |
역할 | 군단 |
통칭호 | 도리데 (砦) |
최종 주둔지 | 제주도 |
주요 참전 | 다운폴 작전 |
지휘 구조 | |
상위 부대 | 일본 제17방면군 |
하위 부대 | 제96보병사단 제111보병사단 제121보병사단 제108독립혼성여단 제109독립혼성여단 제12포병사령부 |
2. 역사
제58군은 1945년 4월 8일, 永津佐比重|나가쓰 사히쥬jpn 중장을 지휘관으로 하여 창설되었으며, 제17방면군의 전투 서열에 편입되었다. 이는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연합군의 일본 본토 침공 작전인 다운폴 작전에 대비하여, 제주도 상륙을 저지하려는 일본 제국의 방어 계획(결7호 작전)의 일환이었다.
제58군의 통칭호는 토리데(砦)였으며, 주로 훈련이 부족한 예비군, 징집된 학도병, 향토 방위군 등으로 구성되어 전쟁 말기 일본의 다급한 상황을 보여주었다. 부대는 제주도에 배치되어 연합군의 침공에 대비했으나, 실제로 연합군이 제주도에 상륙하지는 않았다.
결국 제58군은 1945년 8월 15일 일왕의 일본의 항복 선언으로 인해 실제 전투를 치르지 못하고 해체되었다. 전쟁 후, 제58군 병기부장 大竹修|오무라 슈jpn 대좌가 사용했던 병영 건물은 한국 전쟁 당시 대한민국 국군 제1훈련소 본부로 사용되기도 했다.
2. 1. 창설 배경
1944년 제주도 제주비행장이 완공될 때까지만 해도 이곳에 주둔하던 일본군 지상 병력은 200여 명 수준의 경비 병력에 불과했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 말기, 미군이 사이판 및 필리핀 상륙 작전에 성공하면서 전황이 급격히 불리해지자, 위기감을 느낀 일본 군부는 제주도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병력 증강을 시작했다. 하지만 초기 증강은 소장급 사령부 신설, 혼성여단 배치, 요새 진지 구축 정도에 그쳤다.[1]결정적인 변화는 1945년 2월 미군이 이오지마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찾아왔다. 이 전투의 패배로 일본 열도는 미군에 의해 완전히 포위되는 상황에 놓였고, 극도의 위기감을 느낀 대본영은 1945년 3월 12일 각 군 작전 주임 참모 회합을 열었다. 이 회의에서는 일본 본토 방어를 위한 '결호 작전'이 논의되었으며, 미군의 상륙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홋카이도(결1호)와 함께 '''제주도'''(결7호)가 지목되어 방어 태세 강화가 결정되었다.[1]

이 결정에 따라 한반도를 관할하던 제17방면군에 '결7호 작전' 명령이 하달되었고, 작전 수행을 위해 제58군을 창설하여 제주도에 주둔시키기로 했다. 제58군은 일본 제국이 연합군의 제주도 상륙을 저지하기 위해 구상한 다운폴 작전에 대비한 최후 방어 노력의 일환으로, 1945년 4월 7일 제17방면군의 지휘 하에 편성되었다. 주력 부대는 주로 훈련이 부족한 예비군, 징집된 학도병, 향토 민병대 등으로 구성되어 전쟁 말기 일본의 다급한 상황을 보여준다. 제58군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인해 실제 전투 없이 해산되었다.
2. 2. 결7호 작전
1944년 제주비행장 완공 당시 제주도 주둔 일본군 지상 병력은 200여 명의 경비 병력에 불과했다. 그러나 미군이 사이판과 필리핀 상륙 작전에 성공하자 위기감을 느낀 일본 군부는 제주도 병력 증강을 결정했으나, 초기에는 소장급 사령부 창설, 혼성여단 배치, 요새 진지 신축 정도에 그쳤다. 1945년 2월 미군이 이오 섬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일본 열도가 완전히 포위되자, 대본영은 1945년 3월 12일 각 군 작전 주임 참모 회합을 열었다. 이 회의에서는 다운폴 작전 등 미군의 상륙 가능성이 높은 지역에 대한 방어 계획인 결호 작전을 논의했으며, 특히 결1호 지역인 홋카이도와 '''결7호''' 구역인 제주도의 방어 강화를 중요하게 다루었다.[1]대본영의 방침은 한반도를 관할하던 일본 제17방면군에 하달되었고, '결7호 작전'으로 명명된 이 계획에 따라 제주도 방어를 위해 제58군을 창설하고 예하 부대들을 배치하기로 결정되었다. 제58군은 1945년 4월 7일, 일본 제17방면군의 지휘 하에 창설되었으며, 주로 훈련이 부족한 예비군, 징집된 학도병, 향토 민병대로 구성되었다. 결7호 작전에 따라 제58군을 포함하여 제96사단, 제111사단, 독립 혼성 제108여단, 독립 속사포 제32대대, 제1특설 근무대가 제주도에 주둔하게 되었다. 1945년 4월 15일, 제58군 병력이 제주도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일본군은 이에 더해 제121사단, 박격포 대대, 독립 고사포 중대, 독립 제6포병 연대 등을 추가 배치하려 했으며, 군산에 주둔하던 제120사단도 제주도로 이동시킬 계획이었으나, 종전으로 인해 실행되지 못했다. 특히 제111사단과 제121사단은 관동군 소속 부대였다.
각 부대의 주둔지는 다음과 같이 계획되거나 배치되었다.
부대 | 주둔지 |
---|---|
제96사단 | 제주도 산천단 |
제111사단 | 제주도 서남부 해안 |
제121사단 | 제주도 서북부 해안 (배치 예정이었으나 종전으로 미실행) |
독립 혼성 제108여단 | 거문 오름, 부대 오름 |
결7호 작전 실행으로 제주도는 거대한 군사 요새로 변모했다. 불과 1년 반 만에 제주도 주둔 일본군 병력은 200여 명에서 7만 5천여 명으로 급증했다. 일본 해군 역시 제주, 고산, 서귀포, 성산포 등지에 가미카제 보트 기지와 대공포 진지를 설치했다. 또한, 섬 곳곳의 오름마다 수많은 갱도와 지하 진지를 건설했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제주도 원주민들이 강제로 동원되어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등 큰 고통을 겪었다.
제58군 사령부는 미 해병대의 상륙 시 최후 항전으로 유격전까지 구상했으며, 총력전을 위해 각종 물자를 제주도로 집중시키려 했다. 이러한 움직임을 감지한 미군은 공습을 감행했다. 1945년 4월 14일, 비양도 근해에서 일본 해군 수송선 1척과 호위하던 해방함 2척이 미 해군 잠수함의 기습 공격으로 격침되었다. 7월 6일에는 미군의 본격적인 공습이 이루어져 제주항에 정박 중이던 일본 해군 수송선이 격파되었고, 한림항의 탄약고가 폭격당하면서 그 여파로 민가까지 피해를 입었다. 사라봉 근처에서는 공중전이 벌어져 일본 전투기 4대가 격추되기도 했다. 일본 군부는 8월에 미군의 제주도 상륙 작전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8월 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미군의 상륙 작전은 실행되지 않았고 제58군은 전투 없이 해산되었다.
2. 3. 일본의 항복
제58군은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연합군의 일본 본토 침공 작전인 다운폴 작전에 대비하여 제주도 방어를 목적으로 창설되었다. 1945년 4월 8일에 편성되어 제17방면군 예하 부대로 제주도에 배치되었으나, 연합군이 제주도에 상륙하지 않으면서 실제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다.1945년 8월 15일, 일왕이 포츠담 선언 수락과 일본의 항복을 선언하면서 제58군은 별다른 교전 없이 해체되었다.
전쟁 후, 제58군 병기부장으로 근무했던 大竹修|오무라 슈일본어 대좌가 사용했던 막사 건물은 약 5년 뒤 발발한 한국 전쟁 기간 동안 대한민국 국군의 제1훈련소 본부로 활용되었다.
3. 전략적 가치
제주도는 중국 대륙과 일본의 규슈 지방을 잇는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일본은 중일전쟁 때부터 알뜨르 비행장에 해군 항공대를 주둔시켜 중국의 주요 대도시들을 공습하는 전진 기지로 사용했다. 또한, 태평양 전쟁 말기에 미군이 제주도를 점령하여 알뜨르 비행장과 제주 비행장을 활용할 경우, 일본 본토가 직접적인 위협에 노출될 수 있었기 때문에 일본에게 제주도 방어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4. 부대 구성
일본 제58군은 주로 훈련이 부족한 예비군, 징집된 학도병, 그리고 향토 민병대로 구성되었다. 이는 태평양 전쟁 말기 연합군의 제주도 상륙을 저지하기 위한 일본 제국의 방어 계획의 일환이었다.
4. 1. 주요 부대
1945년 2월 미군의 이오 섬 전투 승리 이후 위기감을 느낀 대본영은 같은 해 3월 12일, 미군의 상륙 가능성이 높은 지역 중 하나로 제주도를 지목하고 방어 계획인 '''결7호 작전'''을 수립했다.[1] 이 작전에 따라 1945년 4월 15일, 제17방면군 예하의 제58군이 창설되어 제주도에 배치되었다. 처음에는 제96사단, 제111사단, 독립 혼성 제108여단, 독립 속사포 제32대대 등을 주둔시키기로 계획했으나, 이후 제121사단, 박격포 대대, 독립 고사포 중대, 독립 제6포병 연대 등이 추가로 배치되었다.
제58군의 주요 예하 부대 및 편성은 다음과 같다.
- 사단 및 여단
- 제96사단: 제주도 산천단 지역 주둔.
- 제111사단: 관동군 출신 부대로, 제주도 서남부 해안 담당.
- 제121사단: 관동군 출신 부대로, 제주도 서북부 해안 담당.
- 독립혼성 제108여단: 거문오름과 부대오름 주둔. 사령관 히라오카 치카라 소장.
- 제12포병사령부: 사령관 모리토 류조 대좌
- 독립야전포병 제6연대: 연대장 이누이 신지 중좌
- 독립산포병 제20연대: 연대장 아사야마 코지로 중좌
- 야전중포병 제16연대: 연대장 모리야마 기요미츠 대좌
- 박격포 제29대대: 대대장 타구치 히데오 소좌
- 분진포 제1대대: 대대장 오카 마키지 소좌
- 기타 직할 부대
- 독립속사포 제32대대
- 독립공병 제126대대
- 독립공병 제127대대
- 독립전차 제14중대
- 전신 제11연대: 연대장 나가오카 모리타카 중좌
- 제64병참병원: 원장 코보리 히데오 소좌
한편, 군산에 주둔하던 제120사단도 제주도로 이동할 예정이었으나, 실행되기 전에 전쟁이 종결되었다.
4. 2. 장비



제58군이 제주도에 배치한 주요 장비는 다음과 같다.
- 45식 고정포 2문
- 14식 대공포 14문
- 38식 야포 44문
- 57mm 전차포 6문
- 41식 산포 32문
- 92식 야포 54문
- 200mm 박격포 16문
- 80mm 박격포 30문
- 94식 대전차포 13문
- 97식 박격포 12문
- 91식 곡사포 29문
- 4식 곡사포 12문
- 1식 대전차포 13문
- 70mm 로켓포 139문
- 200mm 로켓포 36문
- 97식 중전차 치하 14대
4. 3. 지휘관
구분 | 이름 | 계급 | 재임 기간 |
---|---|---|---|
사령관 | 나가쓰 사다시게 | 중장 | 1945년 4월 7일 ~ 1945년 8월 15일 |
'''참모진'''
직책 | 이름 | 계급 |
---|---|---|
참모장 | 기사키 규 | 소장 |
고급참모 | 야마모토 겐지 | 중좌 |
고급부관 | 오가와 세이지 | 중좌 |
병기부장 | 오타케 오사무 | 대좌 |
경리부원 | 이시이 도요키 | 주계 중좌 |
군의부원 | 가미무라 다키치 | 군의 중좌 |
4. 4. 참모장
wikitext이름 | 계급 | 임명일 | 퇴임일 |
---|---|---|---|
가토 요시히데 | 소장 | 1945년 4월 6일 | 1945년 8월 19일 |
키사키 히사시 | 소장 | 1945년 8월 19일 | 1945년 9월 1일 |
5. 주둔지
결7호 작전에 따라 제주도는 거대한 군사 요새가 되었다. 기존에 200여 명의 비행장 경비 병력만 있던 제주도 주둔 일본군 병력은 1년 반 만에 7만 5,000여 명으로 급증했다. 일본 해군 역시 제주, 고산, 서귀포, 성산포 등지에 가미카제 보트 기지와 대공포 진지들을 설치했다. 또한, 제주도의 여러 오름마다 수많은 갱도 및 지하 진지들을 건설했으며, 이 과정에서 많은 제주도민들이 강제로 동원되어 착취당했다.
제58군 사령부는 미 해병대에 밀릴 경우를 대비해 최후 항전으로 유격전까지 구상했다. 총력전을 위해 물자를 제주도로 집중시키려 했으나, 이를 감지한 미군의 공습이 이어졌다. 1945년 4월 14일, 비양도 근처에서 일본 해군 수송선과 호위하던 해방함 두 척이 미 해군 잠수함의 기습 공격으로 격침되었다. 7월 6일에는 미군의 본격적인 공습이 시작되어 제주항에 정박 중이던 일본 해군 수송선이 격파되고, 한림항의 탄약고가 폭격당해 민가까지 피해를 입었다. 사라봉 근처에서는 공중전이 벌어져 일본 전투기 네 대가 격추되기도 했다. 일본 군부는 8월에 미군의 제주도 상륙작전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8월 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실행되지 않았다.
제58군 및 예하 부대의 주요 주둔지는 다음과 같다.
주둔지 | 주둔 부대 및 시설 특징 | 출처 |
---|---|---|
알뜨르 비행장 | 비행장 | |
어승생악 동굴 진지 | 제58군 최고 사령부 위치 | [2] |
한라산 | 주요 방어 거점 | |
화순리 논오름 갱도 진지 | 제111사단 245연대, 포병부대 배치 | [3] |
사계리 바굼지오름 갱도 진지 | 제111사단 245연대, 포병부대 배치 | [4] |
송악산 외륜 동굴 진지 | 제111사단 예하 부대 주둔 | [5] |
일출봉 해안 동굴 기지 | 일본 해군 제45진양대 주둔, 자살 보트 보유 | [6] |
작은대나오름 갱도 진지 | 제96사단 293연대 주둔 | [7] |
사라봉 동굴 진지 | 제96사단 예하 부대 주둔 | [8] |
가마오름 동굴 진지 | 제111사단 243연대본부, 전차부대, 기마부대, 야전병원 등 중요 거점 | [9] |
새신오름 진지 | 제111사단 244연대본부, 전차부대, 기마부대, 야전병원 등 중요 거점 | [10] |
수월봉 특공 기지 | 일본 해군 자살 보트 주둔, 대공포 진지 2곳 위치 | [11] |
삼의악 진지 | 제96사단 292연대 주둔 | [12] |
명도암 오름 갱도 진지 | 제96사단 293연대 주둔 | [13] |
송악산 해안 동굴 진지 | 해군 특공 부대 배치 예정이었으나 실제 배치되지 않음 | [14] |
참조
[1]
웹인용
결7호 작전
http://m.terms.naver[...]
2023-09-02
[2]
웹인용
어승생악 동굴 진지
http://m.terms.naver[...]
2023-09-02
[3]
웹인용
논오름 갱도 진지
http://m.terms.naver[...]
2023-09-02
[4]
웹인용
바굼지오름 갱도 진지
http://m.terms.naver[...]
2023-09-02
[5]
웹인용
송악산 동굴 진지
http://m.terms.naver[...]
2023-09-02
[6]
웹인용
일출봉 동굴 진지
http://m.terms.naver[...]
2023-09-02
[7]
웹인용
작은대나오름 갱도 진지
http://m.terms.naver[...]
2023-09-02
[8]
웹인용
사라봉 동굴 진지
http://m.terms.naver[...]
2023-09-02
[9]
웹인용
가마오름 동굴 진지
http://m.terms.naver[...]
2023-09-02
[10]
웹인용
새신오름 진지
http://m.terms.naver[...]
2023-09-02
[11]
웹인용
수월봉 특공 기지
http://m.terms.naver[...]
2023-09-02
[12]
웹인용
삼의악 진지
http://m.terms.naver[...]
2023-09-02
[13]
웹인용
명도암 오름 갱도 진지
http://m.terms.naver[...]
2023-09-02
[14]
웹인용
송악산 해안 동굴 진지
http://m.terms.naver[...]
2023-09-02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