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버넌 매기
1. 개요
존 버넌 매기는 미국의 목사이자 기독교 라디오 방송인으로, 1967년부터 시작한 성경 강해 프로그램 《성경 통독》(Thru the Bible, TTB)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텍사스주에서 태어나 달라스 신학교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장로교의 자유주의 지도부에 반대하여 교단을 떠나 여러 장로교회와 초교파 교회에서 목회했다. 그는 로스앤젤레스 성경 연구소 성경학부 의장과 달라스 신학교 방문 교수를 역임했으며, 1988년 사망 이후에도 《성경 통독》은 전 세계 130개 이상의 언어로 방송되고 있다. 그는 창조론을 옹호하고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리를 비판했으며, 오직 믿음과 구원의 확신을 강조했다.
| {"alt":"","caption":"","image_file":""} | |
| 본명 | 존 버넌 매기 |
|---|---|
| 출생 | 1904년 6월 17일 |
| 출생지 | 힐즈버러, 미국 |
| 사망 | 1988년 12월 1일 |
| 사망지 | 템플턴, 미국 |
| 안장지 | 마운틴 뷰 묘지 및 영묘, 알타데나, 캘리포니아 |
| 국적 | 미국 |
| 배우자 | 루스 이네즈 조던 매기 |
| 직업 | 목사 성경 교사 |
|---|---|
| 주요 활동 | "성경을 꿰뚫어보기"(Thru the Bible) 라디오 프로그램 설립자 및 교사 |
| 학력 | 컬럼비아 신학대학원 신학사 (B.Div.) 댈러스 신학대학원 신학 석사 (Th.M.) 및 신학 박사 (Th.D.) |
|---|
| 경력 | 전 세계 복음 전파 라디오 방송 |
|---|
| 웹사이트 | 성경을 꿰뚫어보기 공식 웹사이트 |
|---|
-
1904년 출생 -
덩샤오핑
덩샤오핑은 마오쩌둥 사후 중국 최고지도자가 되어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 중국 경제 성장을 이끌었으나 톈안먼 사건 무력 진압 등 비판도 받으며, 실사구시와 선부론을 통해 실용주의 노선을 추구하고 일국양제 원칙을 제시한 중국의 정치가이자 개혁가이다. -
1904년 출생 -
살바도르 달리
스페인 출신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정교한 기술과 몽환적인 이미지, 다양한 예술 활동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논란적인 행보로도 알려져 있다. -
1988년 사망 -
허정
허정은 일제강점기 임시정부에서 활동하고 해방 후 제헌 국회의원, 교통부 장관, 사회부 장관, 서울특별시장 등을 역임한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독립운동가로, 4·19 혁명 후 대통령 권한대행 및 국무총리를 지내며 제2공화국 수립에 기여했다. -
1988년 사망 -
숀 맥브라이드
숀 맥브라이드는 아일랜드 독립운동가, 정치인, 변호사, 인권 운동가로 활동하며 아일랜드 독립 전쟁에 참여하고, 클란 나 포블라흐타를 창당하여 외무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국제앰네스티 공동 설립, 노벨 평화상 수상 등 인권 및 평화 운동에 기여했다. -
미국의 기독교 창조론자 -
커트 실링
커트 실링은 1988년부터 2009년까지 메이저 리그에서 투수로 활동하며 월드 시리즈 MVP를 수상하고 3번의 월드 시리즈 우승을 경험했으며, 통산 3,000탈삼진을 달성하고 은퇴 후에는 ESPN 해설가로 활동했으나 해고되었고 사업가로도 활동했다. -
미국의 기독교 창조론자 -
마이크 펜스
마이크 펜스는 1959년에 태어나 연방 하원 의원, 인디애나 주지사를 거쳐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미국 부통령을 역임했으며,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2. 생애
존 버넌 매기는 텍사스주 힐스보로에서 태어났다. 그는 컬럼비아 신학교에서 학사 학위를, 달라스 신학교에서 신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매기의 첫 목회지는 조지아주 미드웨이에 있는 교회였으며, 이후 조지아주 디케이터, 테네시주 내슈빌, 텍사스주 클레번 등 여러 장로교회에서 사역했다. 이후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를 거쳐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여, 1949년부터 1970년까지 오픈 도어 교회(Church of the Open Door)의 목사로 활동했다.
목회 활동 외에도 로스앤젤레스 성경 연구소(비올라 대학교)의 성경학과 학과장을 역임했으며, 달라스 신학교의 방문교수로도 활동했다. 그는 1988년 12월 1일에 세상을 떠났다.
2.1. 출생과 교육
존 버넌 매기는 텍사스주 힐스보로에서 순회 목사였던 존 매기와 캐리 매기(결혼 전 성은 링거)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여러 직업을 가졌으며, 마지막 직업은 오클라호마의 면방직 공장 기술자였다. 아버지는 매기가 14세 되던 해인 1918년에 세상을 떠났고, 이후 가족은 테네시로 이사했다. 목사가 되기 전에는 은행원으로 일했다.
매기는 그리스어를 전공하며 사우스웨스턴 앳 멤피스를 다닌 후, 컬럼비아 신학교에서 신학사(B.Div.) 학위를 라틴어 우등(magna cum laude)으로 받았다. 이후 달라스 신학교에서 신학 석사(Th.M.) 및 신학 박사(Th.D.) 학위를 취득했다. 매기가 이전에 일했던 은행의 매니저가 그의 신학교 학비를 지원해주었다. 매기의 목사 서품식은 1933년 6월 18일 테네시주 내슈빌에 있는 제2장로교회에서 열렸다.
2.2. 초기 목회 활동
1933년 6월 18일 테네시주 내슈빌에 있는 제2장로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매기의 첫 목회지는 조지아주 미드웨이의 교회였으며, 이후 조지아주 디케이터, 테네시주 내슈빌, 텍사스주 클레번의 장로교회에서 목회 활동을 이어갔다. 클레번에서 사역하던 중 루스 이네즈 조던(Ruth Inez Jorden)을 만나 결혼했다.
이후 부부는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로 이주했고, 매기는 1941년부터 링컨 애비뉴 장로교회(Lincoln Avenue Presbyterian Church)의 목사직을 맡았다. 이 교회에서 그는 주 1회 방송되는 라디오 프로그램 오픈 바이블 아워를 시작했다.
2.3. 라디오 사역과 "Thru the Bible"
매기는 그가 마지막으로 목회했던(1949-1970) 로스앤젤레스의 오픈 도어 교회에서 은퇴하기 약 3년 전인 1967년에 라디오 프로그램 《성경 통독》(Thru the Bible, TTB) 방송을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은 매기가 1941년부터 진행했던 '오픈 바이블 아워'(Open Bible Hour, 1941-1955)와 '하이 눈 바이블 클래스'(High Noon Bible Class, 1955-1967)에 이은 그의 주요 라디오 사역이었다.
《성경 통독》 방송에서 그는 성경의 첫 책인 창세기부터 마지막 책인 요한 계시록까지 각 권을 체계적으로 강해하며 청취자들을 2년 반 동안의 "성경 버스 여행"으로 이끌었다. 이는 그가 이전에 오픈 도어 교회에서 진행했던 "1년 성경 통독" 설교 시리즈를 확장한 것이었다. 그러나 1970년 1월 목회직에서 은퇴한 후, 매기는 2년 반이라는 시간이 성경 전체를 깊이 있게 다루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5년에 걸쳐 성경 전체를 다시 연구하고 가르치는 새로운 시리즈를 완성했다.
매기는 성경 해석에 있어 창조론을 지지했으며, 창세기 창조 서사의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여섯 "창조의 날"을 각각 문자 그대로 24시간으로 해석했다. 그의 방송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된 주제는 오직 믿음(Sola fide) 교리와 구원의 확신(영원한 안전)이었다. 그는 한 사람이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로 영접하면, 이후 어떤 죄를 짓더라도 구원을 잃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자신이 목격한 동시대 사회의 기독교 배교와 세속주의 경향에 대해 자주 언급하며, 영적 배교가 성경 전체에서 관찰되는 패턴처럼 부도덕과 무정부주의(정치적 무정부 상태)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성경 통독》 방송에서 매기는 종종 G. 캠벨 모건, 루이스 스페리 체이퍼, 멜 트로터, 드와이트 L. 무디, 그리고 시카고 무디 교회의 R. A. 토레이와 해리 A. 아이언사이드 같은 지난 세기의 저명한 복음주의 기독교 목사들에 대한 개인적인 회고를 포함한 일화를 나누곤 했다. 그는 또한 갈라디아서 6장 7절("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과 같은 특정 성경 구절을 자주 인용했다.
매기가 사망할 당시 《성경 통독》 프로그램은 34개 언어로 방송되었으나, 현재는 10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트랜스 월드 라디오 등을 통해 전 세계에 매주 평일 방송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극동방송에서 "매기성경강해"라는 제목으로 방송되어 청취자들을 만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오랜 성공은 매기의 설득력 있는 화술, 소탈한 태도, 독특한 남부 억양, 그리고 성경을 체계적으로 전파하려는 일관된 메시지와 그의 헌신에 기인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2.4. 신학적 관점과 논쟁
맥기는 댈러스 신학대학교에서 고등 학위를 받았다. 그가 설교에서 자주 언급했던 드와이트 L. 무디는 재림의 임박함을 설교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는 세대주의 신학에 중요한 요소이다. 맥기는 숙명론과 칼뱅주의의 절대적인 예정설 관점에는 반대했다.
또한 맥기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특정 교리를 비판했다. 그는 베드로 사도가 로마로 가서 교회를 세웠다는 가톨릭의 주장을 거부하고, 많은 설교에서 로마 교회는 바울에 의해 세워졌다고 주장했다. 맥기는 특히 초대 교회가 성경의 신약 성경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한 역할과 관련하여, 로마 가톨릭 교회와 초대 교회를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맥기는 오리건주 캐논 비치에 있는 캐논 비치 기독교 컨퍼런스 센터에서 자주 강연하며 인기 있는 강사로 활동했다.
2.5. 말년과 죽음
1970년 로스앤젤레스의 열린문 교회(Church of the Open Door) 목사직에서 은퇴한 후에도 매기 박사는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은퇴 후 암 투병에서 완전히 회복되었고, 여러 강연 활동을 계속했다. 그러나 1965년에 수술받았던 심장 문제가 재발하였고, 결국 1988년 12월 1일, 84세의 나이로 캘리포니아주 템플턴의 요양원에서 심부전으로 사망했다. 사망 당시 그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가 사망한 이후에도, 5년 과정의 프로그램인 《성경 통독》은 북미 지역 800개 이상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계속 방송되었으며, 라디오, 단파, 인터넷을 통해 130개 이상의 언어로 전 세계에 방송되고 있다.
그의 아내 루스는 10년 가까이 치매를 앓다가 1997년에 사망했다.
3. 신학 및 사상
존 버넌 매기의 신학은 복음주의와 세대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는 댈러스 신학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드와이트 L. 무디의 영향을 받아 예수의 재림이 임박했음을 강조했다. 그의 신학에서 중요한 두 가지 핵심은 오직 믿음(Sola fide) 교리와 구원의 확신(영원한 안전)이다. 이는 사람이 진심으로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면 이후의 죄로 인해 구원을 잃지 않는다는 믿음이다.
매기는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을 보이며, 창조론을 지지하고 창세기 1장의 창조 6일을 문자적인 24시간으로 이해했다. 반면, 숙명론이나 칼뱅주의의 절대적 예정설에는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다. 또한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리, 특히 베드로가 로마 교회를 세웠다는 주장을 거부하고 바울이 세웠다고 주장했으며, 신약 성경 형성 과정에서 초대 교회와 후대의 로마 가톨릭 교회를 구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적으로는 기독교 배교와 세속주의 현상을 경고하며, 이것이 부도덕과 무정부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설교에서는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는 갈라디아서 6장 7절 말씀을 자주 인용하여 개인의 책임과 결과를 강조했다.
3.1. 세대주의
매기는 댈러스 신학대학교에서 고등 학위를 받았다. 그가 설교에서 자주 언급했던 드와이트 L. 무디는 재림의 임박함을 설교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는 세대주의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매기는 숙명론과 칼뱅주의의 절대적인 예정설 관점에 반대했다. 또한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리, 즉 베드로가 로마로 가서 교회를 세웠다는 주장을 거부하고, 많은 설교에서 로마 교회는 바울에 의해 세워졌다고 주장했다. 매기는 특히 초기 교회가 성경의 신약 성경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한 역할과 관련하여, 로마 가톨릭 교회와 초대 교회를 구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3.2. 오직 믿음과 구원의 확신
맥기의 라디오 방송 《성경 통독》(Thru the Bible, TTB)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된 주제는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믿음으로 구원) 교리와 구원의 확신(절대적 구원의 확신) 또는 영원한 안전이었다. 이는 한 사람이 진심으로 그리스도를 개인적인 구세주로 영접하면, 이후 어떤 죄를 짓더라도 구원을 잃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사회의 기독교 배교와 세속주의 현상에 대해 자주 언급하며, 성경 전체에서 흔히 나타나는 영적 배교는 항상 부도덕과 무정부주의(정치적 무정부 상태)로 이어지는 세 단계를 거친다고 경고했다.
맥기는 창조론을 지지했으며, 창세기 1장의 여섯 "창조의 날"을 각각 24시간의 기간으로 해석하는 문자적 해석을 따랐다. 또한 숙명론과 칼뱅주의의 절대적인 예정설 관점에는 반대했다. 그는 로마 가톨릭교회가 주장하는 베드로가 로마에 교회를 세웠다는 교리를 거부하고, 많은 설교에서 로마 교회는 바울에 의해 세워졌다고 주장했다. 맥기는 특히 신약 성경 형성에 기여한 초대 교회와 후대의 로마 가톨릭 교회를 구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설교에서는 갈라디아서 6장 7절("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과 같은 성경 구절이 자주 인용되었다.
3.3. 창조론
맥기는 창조론을 옹호했으며, 창세기 창조 서사의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여섯 "창조의 날"을 각각 문자 그대로 24시간의 기간으로 해석했다. 그의 라디오 프로그램 《성경 통독》(Thru the Bible, TTB)에서는 오직 믿음(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교리)과 구원의 확신(절대적 구원의 확신 또는 영원한 안전)을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주제였다. 이는 한 사람이 진심으로 그리스도를 개인적인 구세주로 영접하면, 그들이 이후 저지를 수 있는 어떠한 죄도 그들의 구원을 잃게 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그는 종종 자신이 목격했다고 믿는 사회의 기독교 배교와 세속주의 경향에 대해 이야기하며, 영적 배교가 항상 성경 전체에서 흔히 관찰되는 세 단계, 즉 부도덕과 무정부주의(정치적 무정부 상태)로 이어지는 첫 번째 단계라고 경고했다.
맥기는 숙명론과 칼뱅주의의 절대적인 예정설 관점에는 반대했다. 또한,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리, 즉 베드로가 로마로 가서 교회를 세웠다는 주장을 거부하고, 많은 설교에서 로마 교회는 바울에 의해 세워졌다고 주장했다. 맥기는 특히 초기 교회가 성경의 신약 성경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한 역할과 관련하여, 로마 가톨릭 교회와 초대 교회 사이의 구별을 강조했다.
3.4. 사회적, 윤리적 견해
댈러스 신학대학교에서 고등 학위를 받았다. 그가 설교에서 자주 언급했던 드와이트 L. 무디는 재림의 임박함을 설교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는 세대주의 신학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매기는 숙명론과 칼뱅주의의 절대적인 예정설 관점에는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다.
또한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리, 특히 베드로가 로마로 가서 교회를 세웠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여러 설교를 통해 로마 교회는 바울에 의해 세워졌다고 주장했다. 매기는 초대 교회와 로마 가톨릭 교회를 구별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특히 초기 교회가 성경의 신약 성경을 형성하는 데 기여한 역할을 중요하게 언급했다.
매기는 오리건주 캐논 비치에 있는 캐논 비치 기독교 컨퍼런스 센터에서 자주 여름 컨퍼런스 강사로 활동하며 인기를 얻었다.
4. 저술 활동
1967년, 마지막 목회지였던 열린문 교회(1949-1970 재직)에서 은퇴하기 약 3년 전에 'Thru the Bible'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에서 그는 약 2년 반 동안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성경 전체를 강해했으며, 이 시리즈를 '성경 버스 여행'이라고 불렀다. 1970년 1월 목사직에서 은퇴한 후, 2년 반이라는 시간이 성경 전체를 다루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5년 과정의 새로운 시리즈를 완성했다. 'Thru the Bible' 프로그램은 10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 라디오 방송국에서 방송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극동방송을 통해 '매기성경강해'라는 제목으로 방송되고 있다.
5. 유산 및 평가
1967년, 마지막으로 목사직을 맡았던 열린문 교회(1949-1970)에서 은퇴하기 약 3년 전에 라디오 프로그램 'Thru the Bible'을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에서 약 2년 반 동안 성경의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모든 책을 강해했으며, 이 시리즈를 '성경 버스 여행'이라고 불렀다. 1970년 1월 목사직에서 은퇴한 후, 2년 반이 성경 전체를 다루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5년 과정의 새로운 시리즈를 완성했다.
'Thru the Bible'은 10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 라디오 방송국에서 매주 방송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극동방송에서 '매기성경강해'라는 제목으로 방송되고 있다.
1989년 사후 전미 종교 방송 협회(National Religious Broadcasters)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