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광 (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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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광은 오사카 출생으로 제주도 북제주군을 원적지로 둔 승려이자 예술가이다. 그는 '걸레 스님'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파격적인 행보와 예술 세계로 주목받았다. 1977년 영국 왕립 아시아 학회에서 선화와 선시를 발표하고, 1979년에는 '한국의 피카소'로 소개되기도 했다. 달마도 등 선화와 선시에 능했으며, 1980년대에서 1990년대에는 천상병, 이외수와 함께 기인삼총사로 불렸다. 1997년 광고 출연료를 기부하고, 2000년 마지막 작품전 수익금을 불우 이웃에게 나누는 등 선행을 베풀기도 했다. 2002년 통도사에서 다비식을 치렀다.

중광 (승려)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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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광
인물 정보
본명고창률
법명중광
법호농암(Nong'am)
출생일1935년 1월 4일
출생지제주도 젠란난도, 일본 제국
사망일2003년 1월 5일 (67세)
국적대한민국
묘지양산시, 경상남도, 대한민국
학력
학력제주도 북제주 제주고등농림학교 중퇴
종교 및 소속
종파대한불교조계종
소속대한불교조계종 중앙종단회의 의원
승려 정보
출가1963년 6월 13일 통도사
수행1977~1979년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종단회의 의원
직업
직업승려
시인
수필가
화가
기타 정보
알려진 이유기괴한 그림과 특이한 생활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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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혜림은 일제강점기 조선 출신으로 배우로 활동하다 김정일과의 관계를 통해 북한 사회에서 주목받았으며, 김정남을 낳았으나 김일성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고 모스크바에서 사망했다.
  • 2002년 사망 -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니어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니어는 미국의 외교관으로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와 주한 미국 대사를 지내며 한국 현대사의 격변기와 한미 관계의 주요 현안들을 다루었고 동아시아 문제 전문가로서 외교관계협의회 연구소장으로 활동했다.

2. 생애

(내용 없음)

2.1. 어린 시절과 출가

속명은 고창률(高昌律)이며 본관은 제주(濟州)이다. 법명은 중광(重光), 법호는 농암(聾庵)이다.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으며, 원적지는 제주특별자치도 북제주군이다. 3세 때인 1936년에 가족과 함께 제주도 북제주군으로 돌아와 정착했다. 제주도 북제주 함덕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제주도 북제주 제주고등농림학교에 진학했으나,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인해 2학년 때 중퇴했다.

해병대에서 사병으로 복무하고 병장으로 제대한 후, 1963년 6월 13일 경상남도 양산 통도사에서 출가했다.

2.2. 승려이자 예술가로서의 활동

해병대에서 사병으로 복무하고 병장으로 제대한 뒤, 1963년 6월 13일 경상남도 양산 통도사에서 출가하였다. 1977년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종단회의 의원을 지내기도 했으나, 파격적인 행동으로 인해 1979년 10월 종단에서 파문되었다.

1977년 영국 왕립 아시아 학회에 초대되어 선화(禪畵)와 선시(禪詩)를 발표했으며, 이때 〈나는 걸레〉라는 시를 낭송한 뒤 걸레 스님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의 독특한 예술 세계는 해외에서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1979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버클리의 루잉스 랭커스터 교수는 그를 소개하는 책 The Mad Monk영어를 출간하며 '한국의 피카소'라고 칭했다.

1981년 서울 '미 화랑'에서 열린 초대전을 통해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졌으며, 이후 국제적인 활동을 이어갔다. 1983년에는 미국 록펠러 재단하와이 주립대학교에서 초대전을 열었다. 1991년에는 일본 NHK, 영국 SKY Channel, 미국 CNN 등 세계 유수의 방송사들이 그의 예술 세계를 조명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1993년에는 제8회 인터내셔널 로스앤젤레스 아트페어에서 초청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1997년에는 독일 함부르크 미술대학교의 초빙교수로 초청되어 강의하기도 했다.

그의 저서 《허튼 소리》는 1986년 김수용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어 아시아 영화제에서 한국 우수영화로 선정되었으며, 1987년에는 이상화 각본, 이용우 연출로 연극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1989년에는 한국평론가협회로부터 최우수 예술인상을 받았다. 또한 1990년에는 영화 〈청송으로 가는 길〉에 주연으로 출연하여 대종상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등 다방면에서 예술적 재능을 펼쳤다.

중광 스님은 "나는 걸레다", "내 생활 전부가 똥이요, 사기다"와 같은 직설적이고 파격적인 말로도 유명하다. 음주와 끽연을 하면서도 평생 승복과 삭발을 고수했으며, 자신의 성기에 붓을 매달아 그림을 그리는 퍼포먼스를 하거나, 살아생전 자신의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버클리 강연 중에는 여학생에게 갑자기 키스를 하는 등 예측 불가능한 기행을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파격 속에서도 달마도를 비롯한 선화와 선시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1980년대와 1990년대 활동 당시 시인 천상병, 소설가 이외수와 함께 특유의 개성과 기행으로 '기인삼총사'로 불리기도 했다.

그의 대표적인 시와 발언은 다음과 같다.


반은 미친 듯, 반은 성한 듯/ 사는 게다./ 삼천대천(三天大天) 세계는/ 산산히 부서지고/나는 참으로 고독해서/ 넘실넘실 춤을 추는 거야/ 나는 걸레/남 한강에 잉어가 싱싱하니/ 탁주 한 통 싣고/ 배를 띄워라/ 별이랑, 달이랑, 고기랑/ 떼들이 모여들어/ 별들은 노래를 부르고/ 달들은 장구를 치오/ 고기들은 칼을 들어/ 고기회를 만드오/ 나는 탁주 한 잔/ 꺾고서/ 덩실 더덩실/ 신나게 춤을 추는 게다/나는 걸레

— 「나는 걸레」



미친 사람이지만 내 가슴 속에 지니고 다니는 좌우명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항시 발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슨 말을 할 것 같습니까? 알아보십시오. 잠깐……천당과 극락 자리가 많이 있으니 차를 급히 달리지 마십시오….

— 「허튼소리」 중에서

2.3. 파격적인 행보와 예술 세계

해병대 사병으로 복무하고 병장으로 제대한 뒤, 1963년 6월 13일 경상남도 양산 통도사에서 출가했다. 1977년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종단회의 의원을 지내기도 했으나, 틀에 얽매이지 않는 파격적인 행동으로 인해 1979년 10월 종단으로부터 파문당했다. 이는 기존 불교계의 권위적인 모습에 대한 저항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1977년 영국 왕립 아시아 학회에 초청되어 선화(禪畫)와 선시(禪詩)를 발표했다. 이때 자신의 시 〈나는 걸레〉를 낭송한 뒤 걸레 스님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1979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버클리의 루잉스 랭커스터 교수가 그를 '한국의 피카소'라고 칭하며 《The Mad Monk》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국제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1981년 서울 '미 화랑'에서 열린 초대전을 통해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졌으며, 1983년에는 미국 록펠러 재단과 하와이 주립대학교의 초청으로 전시회를 열었다. 1991년에는 일본 NHK, 영국 SKY Channel, 미국 CNN 등 세계적인 방송사들이 그의 독특한 예술 세계를 조명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후 1993년 제8회 인터내셔널 로스앤젤레스 아트페어에서 초청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1997년에는 독일 함부르크 미술대학교 초빙교수로 활동하며 강의하기도 했다.

그의 저서 《허튼 소리》는 1986년 김수용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어 아시아 영화제에서 한국 우수영화로 선정되는 등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또한 1987년에는 이상화 각본, 이용우 연출로 연극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1989년에는 한국평론가협회로부터 최우수 예술인상을 수상했다. 1990년에는 영화 〈청송으로 가는 길〉에 주연 배우로 출연하여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고, 대종상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중광은 스스로 "나는 걸레다", "내 생활 전부가 똥이요, 사기다"라고 말하며 기존의 관념과 권위를 조롱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음주와 끽연을 하면서도 승복과 삭발이라는 승려의 외형을 평생 유지했으며, 자신의 성기에 붓을 매달아 그림을 그리는 퍼포먼스를 하거나 살아생전에 자신의 제사를 지내는 등 예측 불가능한 기행을 일삼았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버클리에서 강연하던 중 갑자기 여학생에게 키스를 하는 돌발 행동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파격 속에서도 달마도를 비롯한 선화(禪畵)와 선시(禪詩)에서는 뛰어난 예술성을 보여주었다.

활발히 활동하던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비슷한 시기에 독특한 개성으로 주목받았던 시인 천상병, 소설가 이외수와 함께 '기인삼총사'로 불리기도 했다.

그의 자유분방하고 파격적인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시와 어록은 다음과 같다.

: 반은 미친 듯, 반은 성한 듯
: 사는 게다.
: 삼천대천(三天大天) 세계는
: 산산히 부서지고
: 나는 참으로 고독해서
: 넘실넘실 춤을 추는 거야
: 나는 걸레
: 남 한강에 잉어가 싱싱하니
: 탁주 한 통 싣고
: 배를 띄워라
: 별이랑, 달이랑, 고기랑
: 떼들이 모여들어
: 별들은 노래를 부르고
: 달들은 장구를 치오
: 고기들은 칼을 들어
: 고기회를 만드오
: 나는 탁주 한 잔
: 꺾고서
: 덩실 더덩실
: 신나게 춤을 추는 게다
: 나는 걸레
:: — 〈나는 걸레〉

: 미친 사람이지만 내 가슴 속에 지니고 다니는 좌우명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항시 발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슨 말을 할 것 같습니까? 알아보십시오. 잠깐……천당과 극락 자리가 많이 있으니 차를 급히 달리지 마십시오….
:: — 《허튼소리》 중에서

2.4. 노년과 죽음

1997년부터 치매와 조울증으로 건강이 나빠지면서 술과 담배도 끊었다. 이후 강원도 인제 백담사와 서울 구룡사 등에서 요양하였다. 1998년 강원도 백담사에서 달마화를 만들던 중 오현 스님으로부터 농암(聾庵)이라는 법호를 받았다. 입적하기 전 마지막 2년은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에 위치한 동굴에서 보냈는데, 이곳을 스스로 ‘벙어리 절간’이라고 불렀다. 2002년 3월 13일 통도사에서 다비식을 치렀으며, 장례식장에서는 가수 이남이가 노래를 부르는 등 창과 춤사위가 있었다.

3. 주요 작품 활동

1977년 영국 왕립 아시아 학회에 초대되어 선화와 선시를 발표했으며, 이때 〈나는 걸레〉라는 시를 낭송한 뒤 걸레 스님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1979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버클리의 루잉스 랭커스터 교수가 《The Mad Monk》라는 책을 통해 중광을 ‘한국의 피카소’로 소개하면서 국제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그의 저서 《허튼 소리》는 1986년 김수용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어 아시아 영화제에서 한국 우수영화로 선정되었고, 1987년에는 연극으로도 각색되었다. 1989년에는 한국평론가협회로부터 최우수 예술인상을 받았으며, 1990년에는 영화 〈청송으로 가는 길〉에 주연으로 출연하여 대종상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1991년 일본 NHK, 영국 SKY Channel, 미국 CNN 등 해외 유수 방송사들이 그의 예술 세계를 조명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1997년에는 독일 함부르크 미술대학교 초빙교수로 초청되어 강의하기도 했다. 그는 달마도를 비롯한 선화(禪畵)와 선시(禪詩)에 특히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중광은 파격적인 언행으로도 유명했는데, "나는 걸레다", "내 생활 전부가 똥이요, 사기다" 등의 말을 남겼다. 또한 시인 천상병, 소설가 이외수와 더불어 '기인 삼총사'로 불리기도 했다.

> 반은 미친 듯, 반은 성한 듯

> 사는 게다.

> 삼천대천(三天大天) 세계는

> 산산히 부서지고

> 나는 참으로 고독해서

> 넘실넘실 춤을 추는 거야

> 나는 걸레

> 남 한강에 잉어가 싱싱하니

> 탁주 한 통 싣고

> 배를 띄워라

> 별이랑, 달이랑, 고기랑

> 떼들이 모여들어

> 별들은 노래를 부르고

> 달들은 장구를 치오

> 고기들은 칼을 들어

> 고기회를 만드오

> 나는 탁주 한 잔

> 꺾고서

> 덩실 더덩실

> 신나게 춤을 추는 게다

> 나는 걸레
>

> — 중광, 〈나는 걸레〉

> 미친 사람이지만 내 가슴 속에 지니고 다니는 좌우명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항시 발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슨 말을 할 것 같습니까? 알아보십시오. 잠깐……천당과 극락 자리가 많이 있으니 차를 급히 달리지 마십시오….
>

> — 중광, 《허튼소리》 중에서

3.1.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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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연도출판사비고
〈허튼 소리〉1985년판매금지
〈땡초, 중광조사 예하〉1988년영암스님 저
〈유치찬란〉1990년삼성출판사시인 구상과 공저
〈도적놈 셋이서〉1990년인의출판사시인 천상병, 소설가 이외수와 공저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1990년시인 천상병과 공저
〈나는 똥이올시다〉1991년우리출판사
〈사랑도 주고 정도 주고〉1991년일계사
〈(한국의 피카소!)걸레스님 重光〉1991년밀알김정휴 저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것을...〉1993년보성출판사공저
〈나는 세상을 훔치(拭)며 산다〉1994년

3.2. 화집

* 〈중광 인터내셔널〉(1988년) 도쿄

3.3. 전시회

1981년 ‘미 화랑’에서 중광 초대전을 개최하며 세상에 알려졌다. 1983년에는 미국 록펠러 재단과 하와이 주립대학교에서 초대전을 열었다. 1993년에는 제8회 인터내셔널 로스앤젤레스 아트페어에 초대되어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2000년에는 가나 아트 센터에서 달마전 <괜히 왔다 갔다 한다>를 열었다.

3.4. 영화

중광의 저서 <허튼 소리>는 1986년 김수용 감독이 영화로 만들었으며, 이 영화는 아시아 영화제에서 한국 우수영화로 선정되었다. 또한 1990년에는 영화 〈청송으로 가는 길〉에 주연으로 출연하여 대종상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4. 기타

* 1997년 광고에 출연하고 받은 출연료(50)를 모두 지인의 치료비로 주었으며, 2000년 개최한 마지막 작품전 수익금도 불우한 이웃에게 나누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