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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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종상은 1962년 시작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영화 시상식이다. 1958년 문교부의 국산 영화상 제정으로 시작되어, 1961년 공보부로 주관이 이관되면서 대종상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70~80년대에는 정부의 정책 홍보 성향 영화가 주로 수상했으며, 1992년 민간 주도로 전환되었다. 시상 부문은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등을 포함하여 다양하며, 역대 주요 수상작과 수상자가 공개되어 있다. 2023년 11월 15일 제59회 시상식이 열렸으나, 주최 측의 파산 선고와 상표권 매각 발표로 영화제의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이다. 대종상 영화제 명칭, 대리 수상, 유료 투표 방식 등과 관련된 논란이 지속적으로 발생해 왔다.

대종상 - [상(Prize)]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한국어 표기대종상 영화제
한자 표기大鐘賞 映畫祭
로마자 표기Daejongsang Yeonghwajae
영문 표기Grand Bell Awards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대종상
시상 분야영화 예술 업적
주최한국영화인협회
주관한국영화인총연합회
한국방송공사
중앙일보
국가대한민국
개최 시기1962년 ~ 2023년
웹사이트공식 웹사이트
이전 시상식58회
다음 시상식60회
현재 시상식59회
시상식 정보
진행자신현준
하지원 (제50회)
개최 장소여의도 KBS홀 (제50회)
방송사KBS (제50회)
최근 수상작콘크리트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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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대종상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영화 시상식으로 1962년 제1회를 개최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1958년 당시 문교부에서 "국산 영화상"을 제정하였고, 1961년 주관 기관을 공보부로 옮기면서 "대종상"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970~80년대에는 반공과 국가 정책을 홍보하는 성향의 영화가 주로 수상하였으며, 1992년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바뀌며 진정한 영화인의 축제로 자리잡게 되었다.

1969년 제8회 시상식 명칭을 "대한민국 문화 예술상 (영화 부문)"으로 변경하였다가, 1971년 제10회에 다시 "대종상"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대한민국 영화 산업 진흥을 목적으로 1959년문교부가 시작한 우수 국산 영화상이 시초이며, 1962년에 공보부로 주관이 이관되어 제1회 대종상영화제가 개최되었다. 오랫동안 정부 주도의 영화제였으며, 1991년까지 정부 보조금을 받았던 관계로 정부의 영향 아래 있었다.

1962년부터 문화공보부가 대종상을 주최해왔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는 "반공 부문", "계몽 부문" 등이 존재했다. 1969년부터 몇 년간 시상식이 중단되었지만, 침체된 당시 영화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노력으로 한국영화진흥협회 설립 후 1972년에 부활했다. 70~80년대에는 반공과 국가 정책을 홍보하는 성향이 주류를 이루었던 영화가 주로 수상되었다. 1991년까지는 정부 보조금을 받았던 관계로 정부의 영향 아래 있었다.

1962년 제1회를 개최한 대종상은 1992년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바뀌며 영화인의 축제로 자리 잡았다. 1991년까지 정부 보조금을 받아 정부의 영향을 받았으나, 민간 주도 전환 이후 경제 불황으로 인한 중단 등을 겪으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과거에는 심사 기준이 작품성에 치중되었으나, 점차 매스컴과 일반 관객의 다양한 관점이 많이 반영되었다.

1998년에는 IMF 경제 위기로 인해 열리지 못하고, 이듬해 4월에 36회 시상식이 열렸다. 2016년에는 KBS2에서 중계를 안 하고 케이블 채널인 K-STAR에서 방송되었으며, 2017년에는 케이블 종합편성채널인 TV조선에서 방송되었다. 2019년에는 영화 시상 방식 변경으로 인해 이듬해 2~3월에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범유행으로 인해 시상식이 연기되었다.

제59회 시상식은 2023년 11월 15일 경기도문화의전당 대극장 및 컨벤션홀에서 경기도문화의전당과 처음으로 공동 주최되었으며, 차인표와 장도연이 사회를 맡았다. 2023년 12월, 시상식을 주최했던 한국영화감독조합은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부터 파산 선고를 받았다. 2024년 11월 대종상 영화제 상표권 매각이 발표되었으며, 대종상 영화제의 미래는 불확실하다.

2.1. 제정 및 초기 (1958년 ~ 1971년)

대종상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영화 시상식으로 1962년 제1회를 개최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1958년 당시 문교부에서 "국산 영화상"을 제정하였고, 1961년 주관 기관을 공보부로 옮기면서 "대종상"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970~80년대에는 반공과 국가 정책을 홍보하는 성향의 영화가 주로 수상하였으며, 1992년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바뀌며 진정한 영화인의 축제로 자리잡게 되었다.

1969년 제8회 시상식 명칭을 "대한민국 문화 예술상 (영화 부문)"으로 변경하였다가, 1971년 제10회에 다시 "대종상"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대한민국 영화 산업 진흥을 목적으로 1959년문교부가 시작한 우수 국산 영화상이 시초이며, 1962년에 공보부로 주관이 이관되어 제1회 대종상영화제가 개최되었다. 오랫동안 정부 주도의 영화제였으며, 1991년까지 정부 보조금을 받았던 관계로 정부의 영향 아래 있었다.

2.2. 정부 주도 시기 (1972년 ~ 1991년)

1962년부터 문화공보부가 대종상을 주최해왔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는 "반공 부문", "계몽 부문" 등이 존재했다. 1969년부터 몇 년간 시상식이 중단되었지만, 침체된 당시 영화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노력으로 한국영화진흥협회 설립 후 1972년에 부활했다. 70~80년대에는 반공과 국가 정책을 홍보하는 성향이 주류를 이루었던 영화가 주로 수상되었다. 1991년까지는 정부 보조금을 받았던 관계로 정부의 영향 아래 있었다.

2.3. 민간 주도 전환 이후 (1992년 ~ 현재)

1962년 제1회를 개최한 대종상은 1992년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바뀌며 영화인의 축제로 자리 잡았다. 1991년까지 정부 보조금을 받아 정부의 영향을 받았으나, 민간 주도 전환 이후 경제 불황으로 인한 중단 등을 겪으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과거에는 심사 기준이 작품성에 치중되었으나, 점차 매스컴과 일반 관객의 다양한 관점이 많이 반영되었다.

1998년에는 IMF 경제 위기로 인해 열리지 못하고, 이듬해 4월에 36회 시상식이 열렸다. 2016년에는 KBS2에서 중계를 안 하고 케이블 채널인 K-STAR에서 방송되었으며, 2017년에는 케이블 종합편성채널인 TV조선에서 방송되었다. 2019년에는 영화 시상 방식 변경으로 인해 이듬해 2~3월에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범유행으로 인해 시상식이 연기되었다.

제59회 시상식은 2023년 11월 15일 경기도문화의전당 대극장 및 컨벤션홀에서 경기도문화의전당과 처음으로 공동 주최되었으며, 차인표와 장도연이 사회를 맡았다. 2023년 12월, 시상식을 주최했던 한국영화감독조합은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부터 파산 선고를 받았다. 2024년 11월 대종상 영화제 상표권 매각이 발표되었으며, 대종상 영화제의 미래는 불확실하다.

3. 시상 부문

대종상은 매년 다양한 부문에서 시상을 진행한다. 1999년 제36회 대종상에서는 김영철이 《강원도의 힘》으로 촬영 신인상을 수상했다. 2000년 제37회 대종상에서는 문용식이 《북경반점》으로 촬영 신인상을 수상했다. 2001년 제38회 대종상에서는 계운정이 《팬지와 담쟁이》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2002년 제39회 대종상에서는 김기종, 정미경이 특별 연기상을, 이종형이 특별 기술상을, 송재석이 《킬러들의 수다》로 기술 신인상을 수상했다. 2004년 제41회 대종상에서는 이미연이 베스트 드레서상을 수상했고, 2006년 제43회 대종상에서는 안성기가 데뷔 50주년 기념상을 수상했다. 2007년 제44회 대종상에서는 전도연이 특별상을 수상했다.

2009년 제46회 대종상에서는 양준호가 《상견례하는 날》, 이은춘이 《솔로》로 참여상을 수상했다. 2010년 제47회 대종상에서는 신영균이 자랑스러운 영화 제작자상을, 압둘하미드 주마가 외국 영화 특별상을 수상했다. 2012년 제49회 대종상에서는 정지희가 특별 연기상을, 민효린이 개막식 포토제닉상을 수상했다.

2015년 제52회 대종상에서는 쑨훙레이(Sun Honglei)와 가오위위안(Gao Yuanyuan)이 최우수 외국 배우상을 수상했다. 2018년 제55회 대종상에서는 김영애김주혁이 특별상을 수상했다.

2007년 제44회 대종상의 주요 시상 부문은 다음과 같다:

👆
좌우로 밀어서 보기
부문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여우조연상
신인 감독상
신인 남우상
신인 여우상
인기상
기획상
각본상
촬영상
조명상
편집상
영상 기술상
음향 기술상
음악상
미술상
의상상

4. 역대 주요 수상작 및 수상자

대종상 역대 주요 수상작 및 수상자는 다음과 같다.

{| class="wikitable"
|-
! 회차 !! 연도 !! 최우수 작품상 !! 감독상 !! 남우주연상 !! 여우주연상 !! 남우조연상 !! 여우조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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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1962년 || 연산군 (신상옥 감독) || 신상옥 (《이별의 손님과 어머니》) || 신영균 (《연산군》) || 최은희 (《상록수》) || 이예춘 (《현해탄은 알고 있다) || 한은진 (《연산군》)
|-
| 2 || 1963년 || 《열녀문》 (신상옥 감독) || 유현목 (《아낌없이 주련다》) || 신영균 (《열녀문》) || 도금봉 (《새색시》) || 박노식 (《진시황과 만리장성》) || 황정순 (《새색시》)
|-
| 3 || 1964년 || 《혈맥》 (김수용 감독) || 이만희 (《돌아오지 않는 해병》) || 김승호 (《혈맥》) || 황정순 (《혈맥》) || 김희갑 (《》) || 최지희 (《김약국의 딸들》)
|-
| 4 || 1965년 || 《농아 삼룡》 (신상옥 감독) || 신상옥 (《농아 삼룡》) || 신영균 (《비련의 왕비 달기》) || 최은희 (《민며느리 허당》) || 박노식 (《일청전쟁과 여걸 민비》) || 윤인자 (《공중폭격 명령 빨간 목도리》)
|-
| 5 || 1966년 || 《해변의 마을》 (김수용 감독) || 유현목 (《순교자》) || 김진규 (《태양은 다시 뜬다》) || 최은희 (《민며느리 허당》) || 최남룡 (《가을풍경》) || 황정순 (《해변의 마을》)
|-
| 6 || 1967년 || 《귀로》 (이만희 감독) || 김수용 (《안개》) || 박노식 (《고발》) || 문정숙 (《귀로》) || 윤일봉 (《애하》) || 주증녀 (《만선》)
|-
| 7 || 1968년 || 《대원군》 (신상옥 감독) || 신상옥 (《대원군》) || 신성일 (《이상의 날개》) || 문희 (《카인의 후예》) || 박노식 (《카인의 후예》) || 황정순 (《어머니의 일기》)
|-
| 8 || 1969년 || colspan="6" | 중지되었으므로 수상자 없음
|-
| 9 || 1970년 || colspan="6" | 각본상만 수여(최금동, 《젊은 아들의 마지막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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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 1971년 || 《무명의 교사》 (불명) || 유현목 (《분례기》) || 장동휘 (《대전장》) || 윤정희 (《분례기》) || 최무룡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 사미자 (《분례기》)
|-
| 11 || 1972년 || 《의사 안중근》 (주동진 감독) || 신상옥 (《평양폭격대》) || 황해 (《평양폭격대》) || 고은아 (《며느리》) || 김희갑 (《작은 꿈이 피어날 때》) || 도금봉 (《작은 꿈이 피어날 때》)
|-
| 12 || 1973년 || 《홍의장군》 (이두용 감독) || 최훈 (《수선화》) || 남궁원 (《다정다한》) || 윤영경 (《비련의 농아 삼룡》) || 박암 (《십인궁녀》) || 최인숙 (《비련의 농아 삼룡》)
|-
| 13 || 1974년 || 《》 (김수용 감독) || 김수용 (《땅》) || 박근형 (《이중섭》) || 김지미 (《땅》) || 허장강 (《꽃가마》) || 도금봉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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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 1975년 || 《염》 (유현목 감독) || 이만희 (《삼포가는 길》) || 하명중 (《염》) || 김지미 (《육체의 약속》) || 김진규 (《삼포가는 길》) || 박정자 (《육체의 약속》)
|-
| 15 || 1976년 || 《어머니》 (임원식 감독) || 설태호 (《원산공작》) || 신일룡 (《아라비아의 열풍》) || 최미니 (《비속의 연인들》) || 장동휘 (《어머니》) || 태현실 (《원산공작》)
|-
| 16 || 1977년 || 《난중일기》 (장일호 감독) || 최인현 (《집념》) || 김진규 (《난중일기》) || 윤미라 (《고가》) || 윤일봉 (《초분》) || 손우영 (《산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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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 1978년 || 《경찰관》 (이두용 감독) || 임권택 (《족보》) || 하명중 (《족보》) || 고은아 (《과부》) || 최불암 (《세종대왕》) || 문정숙 (《경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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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 1979년 || 《깃발 없는 기수》 (임권택 감독) || 정진우 (《심봤다》) || 최불암 (《달려라 망서》) || 유지인 (《심봤다》) || 황해 (《심봤다》) || 정애란 (《을화》)
|-
| 19 || 1980년 || 《사람의 아들》 (유현목 감독) || 이장호 (《바람 불어 좋은 날》) || 이대근 (《뻐꾸기 울던 밤 이별》) || 정윤희 (《뻐꾸기 울던 밤 이별》) || 박암 (《지진》) || 김신재 (《뻐꾸기 울던 밤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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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 1981년 || 《초대받은 사람들》 (최하원 감독) || 임권택 (《만다라》) || 남궁원 (《피막》) || 불명 || 정무성 (《만다라》) || 정윤희, 김현주 (배우) (《사랑의 고향 격류를 건너서》)
|-
| 21 || 1982년 || 《하느님, 이곳에 빛을》 (이장호 감독) || 이장호 (《낮은 데로 임하소서》) || 안성기 (《철인들》) || 김보연 (《고봉실 가족》) || 김희라 (《고봉실 가족》) || 불명
|-
| 22 || 1983년 || 《실타래》 (이두용 감독) || 이두용 (《실타래》) || 안성기 (《안개마을》) || 장미희 (《적도의 꽃》) || 김희라 (《불의 딸》) || 고두심 (《질투》)
|-
| 23 || 1984년 || 《마님 사랑의 폭풍》 (정진우 감독) || 정진우 (《마님 사랑의 폭풍》) || 윤일봉 (《가고 싶다》) || 이미숙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 김무생 (《깊고 깊은 곳에》) || 박정자 (《마님 사랑의 폭풍》)
|-
| 24 || 1985년 || 《딥 블루 나이트》 (배창호 감독) || 배창호 (《딥 블루 나이트》) 및 임권택 (《킬리만자로》) || 안성기 (《딥 블루 나이트》) || 김지미 (《킬리만자로》) || 나기수 (《불여시》) || 한은진 (《오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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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 1986년 || 《안개의 기둥》 (박철수 감독) || 임권택 (《티켓》) || 이영하 (《안개의 기둥》) || 최명길 (《안개의 기둥》) || 신성일 (《달빛 사냥꾼》) || 이혜영 (《겨울 나그네》)
|-
| 26 || 1987년 || 《연산일기》 (임권택 감독) || 임권택 (《연산일기》) || 이영하 (《여자와 남자 사랑의 종착역》) || 강수연 (《여자와 남자 사랑의 종착역》) || 이대근 (《감자》) || 김현주 (배우) (《감자》)
|-
| - || 1988년 || colspan="6" | IMF 경제 위기의 영향으로 중지
|-
| 27 || 1989년 || 《파라가티》 (임권택 감독) || 임권택 (《파라가티》) || 이덕화 (《추억의 이름으로》) || 강수연 (《파라가티》) || 한지일 (《파라가티》) || 김지미 (《추억의 이름으로》)
|-
| 28 || 1990년 ||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장길수 감독) || 장길수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 신성일 (《처형 경찰 바이올런스 커넥션》) || 강수연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 김희라 (《수탉》) || 유혜리 (《우묵배미의 사랑》)
|-
| 29 || 1991년 || 《젊은 날의 초상》 (곽지균 감독) || 곽지균 (《젊은 날의 초상》) || 이영하 (《네가 여자라는 것만으로》) || 원미경 (《네가 여자라는 것만으로》) || 박근형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 배종옥 (《젊은 날의 초상》)
|-
| 30 || 1992년 || 《개벽》 (임권택 감독) || 김호선 (《사의 찬미》) || 이덕화 (《개벽》) || 장미희 (《사의 찬미》) || 이경영 (《사의 찬미》) || 이혜영 (《명자 명자 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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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 1993년 || 《바람의 언덕을 넘어/서편제》 (임권택 감독) || 임권택 (《바람의 언덕을 넘어/서편제》) || 이덕화 (《살어리랏다》) || 심혜진 (《결혼이야기》) || 이경영 (《화이트 배지》) || 이미연 (《눈꽃》)
|-
| 32 || 1994년 || 《두 여자의 이야기》 (이정국 감독) || 장선우 (《화엄경》) || 안성기, 박중훈 (《투캅스》) || 윤정희 (《만무방》) || 신성일 (《증발》) || 남숙정 (《두 여자의 이야기》)
|-
| 33 || 1995년 || 《영원한 제국》 (박종원 감독) || 박종원 (《영원한 제국》) || 김갑수 (《태백산맥》) || 최진실 (《아내 살인》) || 최종원 (《영원한 제국》) || 정경순 (《태백산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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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 1996년 || 《애니깽》 (김호선 감독) || 김호선 (《애니깽》) || 최민수 (《테러리스트 슬픈 남자에게 바치는 애가》) || 심혜진 (《은행나무 침대》) || 김일 (《학생부군신위》) || 김정 (《애니깽》)
|-
| 35 || 1997년 || 《접속》 (장윤현 감독) || 정지영 (《블랙잭》) || 한석규 (《초록물고기》) || 심혜진 (《초록물고기》) || 임창정 (《비트》) || 정경순 (《》)
|-
| - || 1998년 || colspan="6" | 경제 불황으로 스폰서가 모이지 않아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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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 1999년 || 《스프링 인 홈타운》 (이광모 감독) || 이광모 (《스프링 인 홈타운》) || 최민식 (《쉬리》) || 심은하 (《박물관 옆 동물원》) || 정진영 (《약속》) || 이미연 (《여고괴담》)
|-
| 37 || 2000년 || 《박하사탕》 (이창동 감독) || 이창동 (《박하사탕》) || 최민수 (《유령》) || 전도연 (《내 마음의 풍금》) || 주진모 (《해피엔드》) || 김여진 (《박하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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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 2001년 || 《JSA》 (박찬욱 감독) || 한지승 (《오! 수정》) || 송강호 (《JSA》) || 고소영 (《오! 수정》) || 정은표 (《킬리만자로》) || 윤소정 (《오! 수정》)
|-
| 39 || 2002년 || 《할머니의 집》 (이정향 감독) || 송해성 (《파이란》) || 설경구 (《공공의 적》) || 전지현 (《엽기적인 그녀》) || 나카무라 토오루 (《로스트 메모리즈》) || 방은진 (《수취인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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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 2003년 || 《살인의 추억》 (봉준호 감독) || 봉준호 (《살인의 추억》) || 송강호 (《살인의 추억》) || 이미연 (《순애보》) || 백윤식 (《지구를 지켜라》) || 송윤아 (《제일 브레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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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 || 2004년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김기덕 감독) || 박찬욱 (《올드보이》) || 최민식 (《올드보이》) || 문소리 (《바람난 가족》) || 허준호 (《실미도》) || 김가연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엇인가가 나타나면 나타나지 않으면 이상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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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 2005년 || 《말아톤》 (정윤철 감독) || 송해성 (《역도산》) || 조승우 (《말아톤》) || 김혜수 (《얼굴 없는 여자》) || 황정민 (《달콤한 인생》) || 나문희 (《크라잉 피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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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 2006년 || 《왕의 남자》 (이준익 감독) || 이준익 (《왕의 남자》) || 감우성 (《왕의 남자》) || 전도연 (《너는 내 운명》) || 유해진 (《왕의 남자》) || 강혜정 (《웰컴 투 동막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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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 || 2007년 || 《가족의 탄생》 (김태용 감독) || 봉준호 (《괴물》) || 안성기 (《라디오 스타》) || 김아중 (《미녀는 괴로워》) || 김윤석 (《타짜》) || 심혜진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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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 || 2008년 || 《추격자》 (나홍진 감독) || 나홍진 (《추격자》) || 김윤석 (《추격자》) || 김윤진 (《세븐 데이즈》) || 유준상 (《리턴》) || 김해숙 (《팜므파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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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 || 2009년 || 《신기전》 (김유진 감독) || 김용화 (《국가대표!?》) || 김명민 (《내 사랑 내 곁에》) || 수애 (《너는 멀리 있다》) || 진구 (《마더》) || 김영애 (《굿바이 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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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 || 2010년 || 《》 (이창동 감독) || 강우석 (《검은 사제들》) || 원빈 (《아저씨》) || 윤정희 (《》) || 송새벽 (《춘향뎐》) 및 김희라 (《》) || 윤여정 (《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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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 || 2011년 || 《고지전》 (장훈 감독) || 강형철 (《써니》) || 박해일 (《최종병기 활》) || 김하늘 (《블라인드》) || 조성하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 || 심은경 (《로맨틱 헤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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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 || 2012년 || 《왕이 된 남자》 (추창민 감독) || 추창민 (《왕이 된 남자》) || 이병헌 (《왕이 된 남자》) || 조민수 (《피에타》) || 류승룡 (《왕이 된 남자》) || 김해숙 (《도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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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 2013년 || 《관상》 (한재림 감독) || 한재림 (《관상》) || 류승룡 (《7번 방의 선물》) 및 송강호 (《관상》) || 엄정화 (《몽타주》) || 조정석 (《관상》) || 장영남 (《늑대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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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 || 2014년 || 《명량》 (김한민 감독) || 김성훈 (《끝까지 간다》) || 최민식 (《명량》) || 손예진 (《해적》) || 유해진 (《해적》) || 김영애 (《변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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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 || 2015년 || 《국제시장》 (윤제균 감독) || 윤제균 (《국제시장》) || 황정민 (《국제시장》) || 전지현 (《암살》) || 오달수 (《국제시장》) || 김해숙 (《왕의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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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 || 2016년 || 《내부자들》 (우민호 감독) || 우민호 (《내부자들》) || 이병헌 (《내부자들》) || 손예진 (《덕혜옹주》) || 엄태구 (《[[밀정 (영화

5. 논란 및 문제점

5.1. 대종상 명칭 논란

"대종상 시상식"을 "대종상 영화제"라 공식 표기하는 데에 문제가 지적되어 오고 있다. "영화제"(Film Festival)와 "영화 시상식"(Film Award)은 엄연히 다른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영어로는 "Award"로 제대로 표기하면서 한국어로는 명칭 말미에 "영화제"를 붙여 오고 있다. 대신 2007년 44회 대종상 때는 "대종상 영화 축제"(Daejongsang Film Festival)라는 명칭으로 시상식과는 상관없는, 별도의 행사를 다른 장소에 마련해 오고 있기도 하다.

5.2. 2015년 대종상 논란

2015년 대종상은 대리수상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방침에 남녀 주연상 후보 전원이 불참을 선언하면서 논란이 되었다. 결국 시상식은 진행되었지만 대부분 대리수상으로 이어져 파행 운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최근에는 대종상 투표 어플리케이션이 새로 생겼는데, 건당 200원의 유료 수수료를 받는 투표 방식과 본상 수상 인기 투표 또한 논란이 되고 있다. 1차 투표에서 후보에 없던 배우가 2차 투표에서 갑자기 투표율이 상승하는 등 조작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5.3. 2018년 대종상 논란

2018년 대종상 시상식에서는 신인 감독상을 비롯해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조명상, 음악상, 편집상, 촬영상 등 다수의 수상자가 불참하여 관계자가 대리 수상하는 모습이 연출되었다. 특히 음악상 부문에서는 《남한산성》의 사카모토 류이치가 수상자로 호명되었으나, 영화와 관련 없는 가수 한사랑이 무대에 올라 "가수 겸 배우 한사랑입니다"라고 인사하며 대리 수상했다.

5.4. 기타 논란

6. 기타

지하철 3, 4호선 충무로역 안에는 대종상 도안과 수상자의 사진이 있다. 1966년 제5회부터 반공 관련 영화상 (우수 반공 영화상, 반공 영화 각본상 등)을 수여하였는데, 1985년 제24회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수여하지 않았다. 1966년부터 외화 수입 자유화가 된 1980년대까지 대종상을 타면 부상으로 외화 수입 쿼터를 주었다.

1988년은 주최측 사정으로 인해 연기되었고, 1998년 대종상 시상식은 협찬사 쌍방울의 법정 관리로 인하여 개최하지 못하였다. 2019년은 시상일정의 변경으로 개최되지 못했고, 2020년은 코로나바이러스 여파로 무관중으로 대체되었다. 2002년(제39회)에는 『로스트 메모리즈』에서 나카무라 토오루/仲村トオル일본어가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이는 대종상 최초의 외국인 수상이다.

7. 시청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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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회2009년7.6%10.2%
47회2010년7.9%11.6%
48회2011년8.8%11.7%
49회2012년5.4%9.3%
50회2013년7.0%6.2%
51회2014년9.4%7.1%
52회2015년6.9%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