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마 이사금
1. 개요
지마 이사금은 신라의 제6대 이사금이며, 파사 이사금의 장남으로 김씨 가문 출신인 아례 부인과 결혼했다. 115년에 가야를 공격했으나 실패하고, 121년에는 왜의 침입을 받아 이듬해 강화했다. 125년에는 말갈의 침입으로 백제에 원군을 요청하여 격퇴했으며, 백제와 동맹 관계를 맺었다. 지마 이사금은 134년에 사망했으며, 아들이 없어 백부인 일성 이사금이 왕위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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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기 한국의 군주 -
기루왕
기루왕은 백제의 제5대 국왕으로, 다루왕 사후 즉위하여 신라를 공격했으나 패배하고 신라와 평화 조약을 맺었으며 말갈의 침입 시 신라의 지원을 받았고 자연재해가 빈번했다. -
2세기 한국의 군주 -
수로왕
김수로왕은 삼국시대 금관가야의 시조이자 초대 왕으로, 42년에 하늘에서 내려온 황금 알에서 태어나 가락국을 건국하고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을 왕비로 맞이하여 가야 문화 발전에 기여했으며, 그의 능은 경상남도 김해시에 위치하고 김해 김씨의 시조로 받들어지고 있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역사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역사에 관한 -
2013년
2013년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교황 사임, 북한 핵실험, 용산 개발 사업 부도, 윤창중 사건, 스노든 폭로, 김연아 우승, 방탄소년단 데뷔, 넬슨 만델라 사망 등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사건들이 발생한 해이다.
2. 배경
지마는 선대 국왕인 파사 이사금과 사성 부인의 장남이었다. 그는 김씨 씨족 출신인 아례 부인과 결혼했다.
3. 치세
지마 이사금은 재위 기간 동안 가야, 왜, 백제, 말갈 등 주변국들과 활발한 대외 관계를 펼쳤다. 때로는 전쟁을, 때로는 평화 관계를 맺으며 신라의 국력을 다졌다.
115년과 116년에는 가야를 공격했으나 실패했고, 121년에는 왜의 침입을 받았다. 123년에는 왜와 강화하였으며, 125년에는 말갈의 침입을 백제의 도움을 받아 격퇴했다.
134년에 지마 이사금이 사망하면서 후계자가 없어 왕위는 백부인 일성 이사금에게 계승되었다. 『삼국사기』에는 매장지에 대한 기록이 없다. 『삼국유사』에는 지마 이사금 시대에 음질국(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과 압량국(경상북도 경산시)을 멸망시켰다고 기록되어 있다.
3.1. 가야와의 관계
115년 음력 2월 가야(伽耶)가 남쪽 변경을 공격하자, 음력 7월 지마 이사금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가야를 공격하여 황산하(黃山河, 낙동강)를 건넜으나, 가야군의 복병에 걸려 패하고 퇴각하였다. 이듬해인 116년 음력 8월 다시 1만 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가야를 공격했으나, 공성전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물러났다. 이후 지마 이사금은 가야 정벌을 포기했다.
3.2. 왜와의 관계
121년 음력 4월 왜의 침입을 받았는데, 이듬해 음력 4월 수도 주민들이 왜의 침입이 다시 있을까봐 소문을 퍼트려 이찬 익종 등이 수습하였다. 123년 왜와 강화하였다.
121년 2월 대증산성(부산광역시 동래구)을 축조했다. 같은 해 4월 왜인이 동부 변방(해안 지역)에 침입해왔고, 2년 후인 123년 3월 왜국과 강화했다.
3.3. 백제와의 관계
파사 이사금 26년(105년)에 백제와 평화 관계를 맺은 이후, 지마 이사금 대에도 평화 관계가 이어졌다. 125년 말갈이 침입하자 백제의 기루왕에게 원군을 요청했고, 기루왕은 다섯 장수를 보내 말갈을 격퇴하였다. 113년 백제의 기루왕이 사신을 보낸 것을 바탕으로, 신라와 백제 사이에 동맹 관계가 맺어진 것으로 보인다.
3.4. 말갈과의 관계
125년 음력 1월과 음력 7월에 말갈이 침입하였다. 지마이사금은 백제 기루왕에게 원군을 청했고, 백제는 다섯 장수를 보내 이들을 격퇴하였다. 파사 이사금 26년(105년) 백제와 화친한 이후 신라와 백제의 관계는 지마, 일성 이사금 2대에 걸쳐 평화로웠다. 같은 해 7월, 말갈이 니하(泥河, 남대천)를 넘어 재차 침입해 오자, 백제에 국서를 보내 원군을 요청하여 백제의 다섯 장수가 말갈을 물리쳤다.
3.5. 기타
백제와의 관계는 파사가 수립한 휴전이 지속되어 평화로웠다. 125년 말갈이 북쪽에서 침략해오자 지마는 백제에 지원을 요청했고, 기루는 군대를 보내 침략자들을 성공적으로 격퇴했다.
115년과 116년에 낙동강을 건너 가야 연맹을 침략했으나 실패했다.
123년에는 일본의 왕국인 왜와 관계를 수립했다.
113년 백제의 기루왕이 사신을 보냈고, 신라와 백제 사이에 동맹 관계가 맺어진 것으로 보인다. 121년 2월에 대증산성(부산광역시동래구)을 축조했고, 같은 해 4월에는 왜인이 동부 변방(해안 지역)에 침입해왔다.
125년 7월에는 말갈이 니하(泥河, 남대천)를 넘어 침입해 왔으므로, 백제에 국서를 보내 원군을 요청했고, 백제는 5명의 장군을 보내 말갈을 물리치는 데 성공했다.
재위 23년 만인 134년 8월에 사망했다. 뒤를 이을 아들이 없었기에 왕위는 백부인 일성 이사금에게 계승되었다. 매장지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에 없다.
『삼국유사』 왕력에는 지마 이사금한국어 시대에 음질국(경상북도경주시 안강읍)과 압량국(경상북도경산시)을 멸망시켰다고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