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회
1. 개요
지수회는 일본 자유민주당 내 파벌로, 1999년 무라카미·가메이파로 시작하여 에토·가메이파, 가메이파, 이부키파를 거쳐 2012년 니카이파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보수 성향이 강하며, 개헌 지지, 북한에 대한 강경 노선, 외국인 참정권 및 인권옹호법안 반대 등의 정책을 펼쳤다. 니카이 도시히로가 회장을 역임하며 세력을 확장했으나, 정치자금 관련 비판과 논란으로 2024년 해산되었다.
| 원어명 | 志帥会 |
|---|---|
| 로마자 표기 | Shisuikai |
| 약칭 | (무라카미・가메이 파) ( 에토・가메이 파) (가메이 파) (구 가메이 파) ( 이부키 파) (니카이 파) |
| 설립 | 1999년 3월 18일 |
| 해산 | 2024년 1월 19일 |
| 종류 | 자유민주당 파벌 |
| 본부 | 사방회관 |
| 위치 | 일본도쿄도지요다구히라카와정 |
| 회원 수 | 42명 (자유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
| 사무총장 | 다케다 료타 |
| 회장 | 니카이 도시히로 |
| 설립자 | 무라카미 마사쿠니 가메이 시즈카 |
| 관련 조직 | 근미래정치연구회(모리야마 파) |
| 예산 | 139,096,701엔 (2010년) |
| 수익 | 3억 3599만 엔 |
| 수익 연도 | 2021년 |
| 웹사이트 | 志帥会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이념 | 보수주의 |
|---|---|
| 소속 정당 | 자유민주당 |
| 유형 | 자유민주당 파벌 |
| 창립 | 1999년 3월 18일 |
|---|---|
| 해산 | 2024년 1월 19일 |
| 창립자 | 무라카미 마사쿠니 가메이 시즈카 |
| 지도자 | 니카이 도시히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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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당의 파벌 -
유린회
유린회는 다니가키 사다카즈가 굉지회를 탈퇴하여 결성한 의원 모임으로, 느슨한 구속력과 중복 소속 허용 등 유연한 운영을 지향했으나, 다니가키 은퇴 후 2024년 해산되었다. -
자유민주당의 파벌 -
세이와 정책연구회
세이와 정책연구회는 1979년 후쿠다 다케오에 의해 창설되어 여러 총리대신을 배출하며 자민당 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했으나,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인해 2024년 1월 파벌 해산을 결정했다. -
자유민주당 (일본) -
55년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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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당 (일본) -
오히라 마사요시
오히라 마사요시는 일본의 정치인이자 제68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외무대신 시절 한일 및 중일 국교 정상화에 기여했으며, 총리 재임 중 환태평양 연대 구상을 제시하는 등 활발한 외교 활동을 펼쳤으나 총선 직전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2. 역사
1999년 무라카미 마사쿠니를 중심으로 하는 '무라카미파'와 가메이 시즈카를 중심으로 하는 '가메이 그룹'이 통합하여 지수회가 결성되었다. 파벌의 명칭은 맹자의 구절에서 유래했다. 초대 회장은 무라카미 마사쿠니가 맡았으며, 가메이 시즈카는 회장 대행이 되었다.
1999년 7월, 무라카미 마사쿠니가 자유민주당 참의원 의원회장으로 선출되면서 관례에 따라 파벌을 이탈했다. 이후 에토 다카미가 회장에 취임했고, 가메이 시즈카는 회장 대행직을 유지하며 파벌의 실무를 담당했다.
2003년 총선을 앞두고 에토가 정계를 은퇴하면서 가메이 시즈카가 2003년 10월 10일 3대 회장에 취임했다. 2005년 총선 이후, 이부키 분메이가 회장에 취임했다.
2012년 니카이 도시히로가 회장에 취임하면서 지수회는 니카이파로 변경되었다. 2023년 12월, 지수회를 포함한 자민당 파벌들의 정치자금 파티 수입 관련 비자금 조성 의혹이 제기되었다. 2024년 1월 19일, 니카이는 정치적 신뢰 회복을 위해 지수회 해산을 발표했다.
2.1. 무라카미·가메이파 (1999년)
1998년 11월 30일, 야마사키 다쿠가 이끄는 중견·소장파 의원들이 근미래정치연구회(야마사키파)를 결성하면서 정책과학연구소는 소규모 파벌로 전락했다. 이에 나카소네 야스히로와 무라카미 마사쿠니는 세이와 정책연구회(세이와회)를 이탈했던 가메이 시즈카 그룹과의 통합을 추진했다. 1999년 3월 18일, 맹자의 구절에서 이름을 딴 지수회가 결성되었다.
야마사키 그룹이 이탈할 때 참의원 간사장이었던 무라카미의 노력으로 참의원에서의 이탈자는 거의 없었지만, 중의원에서는 대다수가 야마사키파로 이동하여 원로 의원들이 많이 남았다. 반면 가메이 그룹은 소속 중의원 의원의 대다수가 3선 이하의 소장파 의원들이었다. 이 때문에 양 파벌은 대등하게 통합을 추진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소속 의원 60명이 넘는 대파벌로 성장했다.
초대 회장은 무라카미가 맡았으며, 가메이는 회장 대행이 되었다.
| 무라카미파 (34명) | ||||
|---|---|---|---|---|
| 나카소네 야스히로 (중의원) | 사쿠라이 요시오 (중의원) | 무라카미 마사쿠니 (참의원) | 이시와타리 키요모토 (참의원) | 이나가키 사네오 (중의원) |
| 이부키 후미아키 (중의원) | 에토 세이이치 (중의원) | 에토 다카미 (중의원) | 오치 이헤이 (중의원) | 가토 노리후미 (참의원) |
| 기베 요시아키 (중의원) | 고야마 다카오 (참의원) | 사카가미 요시히데 (중의원) | 사토 다카유키 (중의원) | 사토 시즈오 (중의원) |
| 시마무라 요시노부 (중의원) | 다니 요이치 (중의원) | 나카오 에이이치 (중의원) | 나카소네 히로후미 (참의원) | 나카야마 마사테루 (중의원) |
| 니시카와 고야 (중의원) | 노세 가즈코 (중의원) | 하기야마 교켄 (중의원) | 하라 겐자부로 (중의원) | 마키노 다카모리 (중의원) |
| 마쓰나가 히카루 (중의원) | 무토 요시후미 (중의원) | 야나기모토 다쿠지 (중의원) | 야노 데쓰로 (참의원) | 요시노 게이 (중의원) |
| 요시다 로쿠자에몬 (중의원) | 이다 도모하루 (참의원) | 요네다 겐조 (중의원) | 와타나베 요시미 (중의원) | |
| 가메이 그룹 (11명) | ||||
| 가메이 시즈카 (중의원) | 가리노 야스시 (참의원) | 가와무라 겐푸 (중의원) | 고바야시 고키 (중의원) | 사쿠라이 아타루 (중의원) |
| 나카가와 쇼이치 (중의원) | 히라누마 다케오 (중의원) | 후루야 게이지 (중의원) | 마쓰오카 도시아키 (중의원) | 야가미 마사요시 (중의원) |
| 야츠자 요시오 (중의원) | ||||
| 무파벌 (14명) | ||||
| 아이치 가즈오 (중의원) | 오노 쓰야코 (참의원) | 가메이 이쿠오 (참의원) | 구라타 히로유키 (참의원) | 구리하라 히로히사 (중의원) |
| 고지마 도시오 (중의원) | 스에히로 마키코 (참의원) | 나카가와 요시오 (참의원) | 나카미치 도시야 (참의원) | 히데 히데스케 (참의원) |
| 호사카 산조 (참의원) | 미우라 가즈미 (참의원) | 미즈노 겐이치 (중의원) | ||
2.2. 에토·가메이파 (1999년~2003년)
1999년 7월, 무라카미 마사쿠니가 자유민주당 참의원 의원회장으로 선출되면서 관례에 따라 파벌을 이탈했다. 후임 회장으로 가메이 시즈카가 거론되었지만, 와타나베 미치오 파 출신인 야마나카 사다노리, 나카야마 마사아키 등의 중진들이 반대했다. 노장파를 통제할 만한 힘이 없던 가메이는 에토 다카미에게 회장직을 권했지만, 에토는 "나는 돈이 없다. 그러니 받아들일 수 없다"라며 거절했다. 하지만 가메이의 끈질긴 설득 끝에 에토는 회장직을 받아들였다. 에토가 회장에 취임한 뒤에도 가메이는 회장 대행직을 유지하며 파벌의 실무를 계속 담당했다.
2000년 6월 25일 제42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사쿠라우치 요시오, 하라 겐자부로 등이 은퇴하고, 전 통상산업상 요사노 가오루, 정무조사회장 대리 사쿠라이 신 등 중진들과 나카오 에이이치, 기베 요시아키, 사토 고고, 마쓰나가 히카루, 시마무라 요시노부 등이 잇따라 낙선했다. 합쳐서 11명이나 낙선했는데, 정조회장으로 있던 가메이는 "숫자보다 실속이 더 아프다"라며 슬퍼했다. 총선 후 제2차 모리 내각이 발족했을 때 가메이는 정조회장직을 유지했으며, 다니 요이치가 농림수산대신으로, 히라누마 다케오가 통상산업대신으로 입각했다. 2001년 일본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 때 가메이가 입후보했지만 고이즈미 준이치로에게 패했다.
지수회는 결성 당초부터 당내에서도 수구파로 분류되었는데,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집권한 뒤 추진하는 각종 개혁에 반대하면서 고이즈미에 의해 이른바 저항 세력의 대표격으로 낙인되었다. 그리고 가메이는 고이즈미가 추진하는 성역 없는 구조 개혁을 비판하는 선봉장이 되었다.
2.3. 가메이파 (2003년~2005년)
2003년 총선을 앞두고 에토가 정계를 은퇴하면서 가메이 시즈카가 2003년 10월 10일 3대 회장에 취임했다. 하지만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추진하는 일본의 우정민영화에 가메이와 나카소네 히로후미 등이 격렬하게 반대했다. 파벌 내에서도 의견이 갈려 미즈노 겐이치 등이 파벌을 이탈하기도 했다. 가메이는 파벌을 이탈하려는 의원들을 만류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우정민영화 법안은 2005년 7월 5일 중의원에서 5표 차이로 통과되었지만, 8월 8일 참의원에서 부결되었다. 이에 고이즈미는 중의원을 해산했고, 가메이는 자민당을 탈당하여 국민신당을 결성했다.
2.4. 이부키파 (2005년~2012년)
2005년 9월 15일, 우정민영화 법안에 찬성했던 이부키 분메이가 차기 회장으로 내정되었지만 파벌 내에서 반대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 여파로 12월 14일이 되어서야 이부키는 정식으로 파벌 회장이 되었다. 이때 시마무라 요시노부가 명예회장이 되었다. 이부키는 지수회의 반(反) 고이즈미 세력이란 이미지를 불식하기 위해 파벌 명칭을 바꾸고자 했지만 내부의 반발로 무산됐다.
2007년 3월 15일, 시마무라가 파벌을 이탈했다. 이는 가메이 시즈카가 파벌을 떠난 뒤 시마무라와 이부키 사이에서 파벌의 주도권을 놓고 대립이 있었으며, 우정민영화에 반대했던 시마무라와 찬성했던 니시카와 쿄코·가기타 주베에 사이에서 갈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같은 해 9월에 진행된 총재 선거에서 지수회는 신재정연구회·세이와 정책연구회와 제휴하여 지공회를 제외한 8개 파벌과 합심해 후쿠다 야스오를 지지했다. 이는 지공회 회장이던 아소 다로가 총리대신이 되는 걸 막기 위함이었는데, 이를 아소 포위망이라 한다. 그런데 아소의 총재 후보 추천인 중 지수회 출신이 5명이나 나왔고 전체 의원 28명 중에서 20명이 아소 지지를 명확히 했다.
24일 총재 선거에서 승리한 후쿠다는 이부키를 자유민주당 간사장에 임명했다. 지수회 출신 간사장은 파벌 창립 이래 처음이었으며 정책과학연구소 시절을 포함해도 이부키가 세 번째였다. 간사장이 된 이부키는 형식적으로 파벌을 이탈했고 나카가와 쇼이치가 회장 대행이 되었다.
2008년 8월 후쿠다 야스오 내각 (개조)이 출범하자 이부키는 재무상이 되었지만 다음 달에 후쿠다가 총리대신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진행된 총재 선거에서 지수회는 간사장이던 아소의 지지를 선언했다. 아소의 맹우였던 나카가와가 일찌감치 아소 지지를 표명했으며 9월 4일 파벌 간부 회의에도 그 뜻이 전달됐다. 아소 내각이 발족한 뒤 가와무라 다케오가 내각관방장관이 되었고 이부키를 대신해 나카가와가 재무상이 되었다.
2009년 총선 때 이부키는 교토부 제1구에서 낙선했다가 비례대표로 부활했다. 차기 회장으로 점쳐지던 나카가와와 그 측근들은 대부분 낙선했다. 선거 직후 이토 요시타카가 지수회에 가입했다.
이 총선에서 자민당은 창당 이래 처음으로 원내 제1당의 지위를 잃었고 그와 함께 당내 파벌들도 세력이 크게 위축됐다. 자민당의 파벌이던 새로운 물결은 니카이 도시히로만이 당선됐었는데 지수회는 새로운 물결과의 합병을 추진했고 11월 5일 니카이와 새로운 물결 소속 참의원 의원이던 이즈미 신야·쓰루호 요스케가 지수회에 가입했다. 2010년 1월 후루야 게이지가 파벌을 이탈했으며 2010년 참의원 선거에 이즈미가 불출마한 뒤 정계를 은퇴했다. 2009년 총선에서 낙선했다가 2010년 참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가타야마 사쓰키가 선거 직후 가입했으며 8월에는 나카소네 히로후미가 자민당 참의원 의원회장 선거 출마를 위해 잠시 파벌을 이탈했다.
2011년 5월 12일 무소속 중의원 의원 나카무라 기시로가 지수회 특별회원으로 가입했다. 이후에도 나카무라는 자민당에 입당하지 않다가 2020년 9월 입헌민주당에 가입했다.
2.5. 니카이파 (2012년~2024년)
니카이 도시히로가 2012년에 회장에 취임하면서 지수회는 니카이파로 변경되었다. 니카이는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우정민영화에 반대하다 자유민주당을 탈당했다가 복당한 의원들이나 다른 정당 출신 의원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했다. 전자의 예로는 나가사키 고타로, 고이즈미 류지가 있으며, 후자의 예로는 민주당 출신 야마구치 쓰요시, 히라노 다쓰오, 모두의 당 출신 아사오 게이이치로가 있다.
2016년 8월 3일, 제3차 아베 신조 내각 (제2차 개조)에서 이마무라 마사히로가 부흥상으로 입각했고, 니카이는 자민당 간사장에 취임했다. 2018년 10월 2일, 제4차 아베 신조 내각 (제1차 개조)에서는 요시카와 다카모리와 사쿠라다 요시타카가 각각 농림수산상과 올림픽상으로 입각했다.
2020년 8월 아베 신조 총리가 사임 의사를 밝히면서, 니카이는 스가 요시히데를 지지하여 세이와 정책연구회, 지공회, 헤이세이 연구회 등 주요 파벌 3개가 스가를 지지하도록 이끌었다. 스가 내각 출범에 기여한 덕분에 지수회 소속 의원들이 중용되었다.
2021년 9월 29일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서 지수회는 스가의 재선을 지지했지만, 기시다 후미오가 당선되면서 지수회는 비주류파로 전락했다.
2023년 12월, 지수회를 포함한 자민당 파벌들의 정치자금 파티 수입 관련 비자금 조성 의혹이 제기되었다. 지수회의 정치자금수지보고서에 기재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날짜 | 파티명 | 장소 | 수입 (엔) | 매입자 수 | 출처 |
|---|---|---|---|---|---|
| 2018년 4월 23일 | 강하고 부드럽게 함께 살아가자 | 호텔 뉴 오타니 도쿄 | 217 | 8,371명 | |
| 2019년 5월 9일 |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자 「강인한 나라 만들기」 | 249 | 9,976명 | ||
| 2020년 10월 7일 | 원팀으로 시대를 앞서가자 ~ 빛나라 일본! | 227 | 9,106명 | ||
| 2021년 9월 24일 | 새로운 시대의 국가 전략 | 278 | 11,121명 | ||
| 2022년 5월 16일 | 지수회와 동지의 결집 | 188 | 7,538명 | ||
| (합계) | 1160 |
2024년 1월 19일, 니카이는 정치적 신뢰 회복을 위해 지수회 해산을 발표했다.
3. 역대 회장
| 대수 | 이름 | 파벌 명칭 | 임기 |
|---|---|---|---|
| 초대 | 무라카미 마사쿠니 | 무라카미·가메이파 | 1999년 |
| 2대 | 에토 다카미 | 에토·가메이파 | 1999년~2003년 |
| 3대 | 가메이 시즈카 | 가메이파 | 2003년~2005년 |
| - | 히라누마 다케오 | 가메이파 | 2005년 |
| - | (공석) | 2005년 | |
| 4대 | 이부키 분메이 | 이부키파 | 2005년~2007년 |
| - | (공석) | 2007년~2008년 | |
| 4대 | 이부키 분메이 | 이부키파 | 2008년~2012년 |
| 5대 | 니카이 도시히로 | 니카이파 | 2012년~2014년 |
| - | (공석) | 2014년~2021년 | |
| 5대 | 니카이 도시히로 | 니카이파 | 2021년~ |
| ※1 히라누마의 회장 사임 후 혼란 기간 ※2 이부키가 간사장에 취임하면서 회장직을 공석으로 둠 ※3 니카이가 총무회장·간사장에 취임하면서 회장직을 공석으로 둠 | |||
4. 파벌의 성향 및 정책
지수회는 매파(タカ派) 성향이 강한 파벌로, 친미(親米)보수(保守) 성향의 세이와세이사쿠켄큐카이(清和政策研究会)나 온건파(ハト派) 성향의 코우케이카이(宏池会) 등과는 다른 노선을 추구했다. 무라카미 마사쿠니(村上正邦)의 영향으로 매파 성향을 띠게 되었으나, 창립 당시에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曽根康弘)를 중심으로 했고, 현재는 세이와켄 분열파는 파벌 내에 거의 남아있지 않다.
개헌 지지, 북한에 대한 강경 노선, 외국인 참정권(外国人参政権) 및 인권옹호법안(人権擁護法案) 반대 입장을 보였다. 부락해방동맹(部落解放同盟)을 회유하고 있으며, 인권옹호법안 반대를 주장하는 의원 연맹인 진정한 인권옹호를 생각하는 懇談会(真の人権擁護を考える懇談会) 참가율이 높다.
경제 정책에 있어서는 우정민영화(郵政民営化)에 반대하고,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옹호하는 경향을 보였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가 추진한 성역 없는 구조개혁(聖域なき構造改革)에 반대하는 특권 의원(族議員)이 많았다. 건설상·운수상을 모두 역임한 카메이 시즈카(亀井静香)는, 현재는 범죄로 간주되는 담합을 "정의"라고 공언할 정도로 적극적 재정 및 퍼주기 재정을 지지했다. 반면, 요시노 케이(与謝野馨)는 재정 재건파로 증세파의 급선봉이었고, 이부키 후미아키(伊吹文明)는 대장성 관료(官僚) 출신으로 재정 규율을 중시하는 자세를 보였다.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의 권유로 입당하는 경우가 많고, 다른 당 출신자도 많이 소속되어 있다. 니카이 자신도 자민당 복귀 인사이다. 니카이는 오는 자는 거절하지 않고, 떠나는 자는 쫓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하며, 후배 의원들을 잘 챙기는 것으로 정계에서 유명하다.
5. 주요 소속 의원
| 무라카미 파 (34명) | ||||
|---|---|---|---|---|
| 나카소네 야스히로 (중의원) | 사쿠라이 요시오 (중의원) | 무라카미 마사쿠니 (참의원) | 이시와타리 키요모토 (참의원) | 이나가키 사네오 (중의원) |
| 이부키 후미아키 (중의원) | 에토 세이이치 (중의원) | 에토 타카미 (중의원) | 오치 이헤이 (중의원) | 가토 노리후미 (참의원) |
| 키베 요시아키 (중의원) | 코야마 타카오 (참의원) | 사카가미 요시히데 (중의원) | 사토 타카유키 (중의원) | 사토 시즈오 (중의원) |
| 시마무라 요시노부 (중의원) | 타니 요이치 (중의원) | 나카오 에이이치 (중의원) | 나카소네 히로후미 (참의원) | 나카야마 마사테루 (중의원) |
| 니시카와 코야 (중의원) | 노세 카즈코 (중의원) | 하기야마 교켄 (중의원) | 하라 켄자부로 (중의원) | 마키노 타카모리 (중의원) |
| 마츠나가 히카루 (중의원) | 무토 요시후미 (중의원) | 야나기모토 타쿠지 (중의원) | 야노 테츠로 (참의원) | 요시노 케이 (중의원) |
| 요시다 로쿠자에몬 (중의원) | 이다 토모하루 (참의원) | 요네다 켄조 (중의원) | 와타나베 요시미 (중의원) | |
| 카메이 그룹 (11명) | ||||
| 카메이 시즈카 (중의원) | 카리노 야스시 (참의원) | 카와무라 켄푸 (중의원) | 코바야시 코키 (중의원) | 사쿠라이 아타루 (중의원) |
| 나카가와 쇼이치 (중의원) | 히라누마 다케오 (중의원) | 후루야 케이지 (중의원) | 마츠오카 토시카츠 (중의원) | 야가미 마사요시 (중의원) |
| 야츠자 요시오 (중의원) | ||||
| 무파벌 (14명) | ||||
| 아이치 카즈오 (중의원) | 오오노 쓰야코 (참의원) | 카메이 이쿠오 (참의원) | 쿠라타 히로유키 (참의원) | 쿠리하라 히로히사 (중의원) |
| 코지마 토시오 (중의원) | 스에히로 마키코 (참의원) | 나카가와 요시오 (참의원) | 나카미치 도시야 (참의원) | 히데 히데스케 (참의원) |
| 호사카 산조 (참의원) | 미우라 카즈미 (참의원) | 미즈노 켄이치 (중의원) | ||
| 이미지 | 지수회 대표 | 재임 기간 | |
|---|---|---|---|
| 1 | 무라카미 마사쿠니 | 1999년 | |
| 2 | 에토 타카미 | 1999년–2003년 | |
| 3 | 카메이 시즈카 | 2003년–2005년 | |
| 4 | 이부키 붐메이 | 2005년–2012년 | |
| 5 | 니카이 도시히로 | 2012년–2024년 |
6. 비판 및 논란
지수회는 소속 의원들의 각종 비리와 추문으로 여러 차례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2023년 불거진 정치자금 파티 수입 관련 비자금 조성 의혹은 파벌 해산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2024년 1월 19일, 니카이파는 긴급 의원총회를 개최하여 파벌 해산을 결정했다. 니카이 회장은 "정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지수회를 해산한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니카이파의 회계책임자는 정치자금규제법 위반(허위 기재)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었으며, 6월 21일 사무소가 폐쇄되었다. 9월 10일, 전 회계책임자는 도쿄지방재판소로부터 징역 2년, 집행유예 5년의 판결을 선고받았고, 항소 기한인 24일까지 피고 측과 검찰 측 모두 항소하지 않아 판결이 확정되었다.
타하타 츠요시(田畑毅)는 2019년 2월 6일, 지인 여성으로부터 준강제추행 및 불법 촬영 혐의로 고소당해 같은 해 3월 1일 의원직을 사퇴했다.
6.1. 정치자금 스캔들
2019년 12월 25일, 아키모토 쓰카사(秋元司)는 IR(복합리조트) 관련 부정부패 사건과 관련된 뇌물 혐의로 도쿄 지방검찰청 특수부에 체포되었다. 2020년 6월 18일, 카와이 안리(河井案里)는 히로시마현 내 지방의원 및 수장 등 94명에게 투표 및 표 관리를 의뢰하고 총 약 25.7의 보수를 제공한 혐의로, 남편인 카와이 가쓰유키(河井克行)와 함께 도쿄 지방검찰청 특수부에 체포되었다. 요시카와 타카모리(吉川貴盛)는 2020년 12월 22일, 계란 관련 부정부패 사건의 책임을 지고 의원직을 사퇴했으며, 이후 불구속 기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