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열차분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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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조선 시대에 제작된 고대 천문도로, 하늘의 별자리를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조선 태조는 고구려 천문도를 바탕으로 새로운 천문도를 만들도록 명했고, 서운관 학자들의 노력 끝에 완성되었다. 이 천문도는 중국 한나라의 전통을 계승하여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성도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1467개의 별과 283개의 별자리를 담고 있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1만 원 지폐 뒷면에 도안으로 사용되어 한국의 전통 천문학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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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열차분야지도 | |
---|---|
기본 정보 | |
![]() | |
종류 | 천문도 |
제작 시기 | 1395년 (조선 태조 4년) |
발견 | 고구려 시대의 천문도를 바탕으로 제작 |
소장 | 국립고궁박물관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본) 부산박물관 (천상열차분야지도 탁본) |
문화재 지정 | 국보 제228호 (각석본) |
상세 정보 | |
구성 | 천문 현상을 묘사하고 별의 위치를 정확하게 나타냄 |
특징 | 각석본은 돌에 새겨져 있으며,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음 탁본은 종이에 찍어낸 형태로, 부산박물관에 소장 |
제작 배경 | 조선 건국 후 천문 관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하늘의 뜻을 받들어 백성을 다스리겠다는 의지를 담음 |
의의 | 고구려 천문학의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킴 조선 시대 천문학 연구의 중요한 자료 |
참고 사항 | 천상열차분야지도 (부산광역시립박물관 소장)은 별도의 항목으로 존재 |
기타 | |
관련 링크 | 국립고궁박물관 |
2. 역사적 배경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조선 건국 초기에 제작된 대표적인 천문도로, 단순한 별자리 그림을 넘어 당시의 정치적, 사상적 배경을 담고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새 왕조의 정통성을 하늘의 질서와 연결 짓고자 하였으며, 이러한 의도는 천문도 제작으로 이어졌다.
이성계는 고구려 시대 평양성에 있었던 천문도 석각의 탁본을 입수하고 이를 매우 귀하게 여겼다. 비록 원본 석각은 전란으로 유실되었지만, 이 탁본을 바탕으로 새로운 천문도를 제작하도록 명함으로써 조선이 고구려의 유구한 역사를 계승하며 하늘의 뜻에 따라 세워진 나라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자 했다. 이 작업에는 권중화, 권근, 류방택 등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 참여하여 고대의 천문 지식을 집대성하고, 조선의 독자적인 천문 관측 결과를 반영하여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완성하였다.[4]
이 천문도는 고대의 천문 지식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조선의 천문학 수준을 보여주는 독자적인 성과물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원본이 된 천문도의 제작 시기에 대해서는 별들의 위치 변화(세차 운동)를 근거로 한 기원 전후 시기 추정[5], 고려 태조 왕건의 이름을 피하기 위한 피휘(避諱) 흔적[6]이나 남송 시대 서적 인용[7] 등을 근거로 한 고려 시대 제작설 등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는 한국 천문학의 오랜 역사와 독자적인 발전을 보여주는 증거로 평가받는다.
2. 1. 제작 경위
조선 건국 직후, 이성계는 고구려 시대 평양에서 제작된 천문도 석각의 탁본을 한 사람으로부터 받게 되었다. 원본 석각은 평양성에 있었으나 전쟁으로 인해 강물에 빠져 유실된 상태였다. 이성계는 이 탁본을 매우 귀중하게 여겼는데, 이는 새 왕조가 하늘의 뜻에 따라 세워졌다는 정통성을 부여하는 상징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에 태조 4년(1395년), 이 탁본을 바탕으로 새로운 천문도를 돌에 새길 것을 명하였다.천문도 제작 작업은 당시 특진보국숭록대부 판문하부사였던 권중화가 책임자로 있던 서운관의 천문학자들이 주도하였다. 천문도 하단에 새겨진 권근의 설명문에 따르면, 권근 자신이 설명문을 작성하였고, 류방택은 시간이 흘러 변화한 별의 위치(중성기)를 새로 계산하여 수정하였으며, 설경수가 비문의 글씨를 썼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 설명문에는 천문도의 별자리 그림(성도)은 오래된 탁본의 내용을 따르되, 별의 위치 값(중성기)은 새로 측정하여 돌에 새겼다고 기록되어 있다.[4] 이렇게 권근을 비롯한 10여 명의 학자들이 수년간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천상열차분야지도가 완성되었다.
2. 2. 원본 및 유래
국보 제228호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天象列次分野之圖刻石)은 조선 태조 4년(1395)에 만들어진 천문도이다. 이는 고구려 시대 평양성에 있었던 천문도 석각의 탁본을 바탕으로 하여 돌에 새긴 것이다.천문도에 함께 새겨진 설명문에 따르면,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했을 때 어떤 사람이 천문도 탁본 한 점을 바쳤다고 한다. 이 탁본의 원본이 된 돌에 새겨진 천문도(석각)는 본래 평양성에 있었으나, 전쟁 중에 강물에 빠져 유실되었다. 이성계는 이 탁본을 매우 귀중하게 여겨, 새 왕조가 하늘의 뜻에 따라 세워졌다는 권위를 보여주기 위해 새로 돌에 새길 것을 명했다. 이 작업은 특진보국숭록대부 판문하부사였던 권중화가 책임자로 있던 서운관의 천문학자들이 맡았다. 권근이 설명문을 짓고, 류방택이 별의 위치 변화(중성기)를 새로 계산하여 수정했으며, 설경수가 비문의 글씨를 썼다고 기록되어 있다. 설명문에는 성도(星圖, 별자리 그림)는 탁본의 내용을 따르고, 중성기는 새로 계산하여 돌에 새겼다고 명시되어 있다.
현재 국립 고궁 박물관에 있는 이 천문도 석본은 가로 122.8cm, 세로 200.9cm 크기의 돌에 새겨져 있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원본 제작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있다. 1913년 칼 루퍼스는 조선 중기 학자 권별(1589-1671)의 해동잡록을 근거로 원본이 고구려 시대에 제작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해동잡록은 태조본 석각의 설명문을 요약하며 일부 내용을 추가했는데, 원본 설명문의 "전쟁 때문에 강에 빠졌다(因兵亂沈于江)"는 구절을 "고려 시대 말기의 병란 때문에 강에 빠졌다(因麗季兵亂沈于江)"고 바꾸었다. '려계(麗季)'는 보통 '고려 시대 말기'를 의미하는데, 루퍼스는 이를 '고구려 시대 말기'로 오해하여 고구려 제작설을 주장하게 되었다. 반면, 1934년에 발간된 경성부사(京城府史)에서는 이 천문도가 "이전 왕조인 고려의 천문도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고 설명했다.[6]
별들의 위치 변화(세차운동)를 고려하여 측정 연대를 추정하면, 대략 삼국 시대 초기인 기원 전후 시기가 된다.[5] 이는 기록상 1464개의 별이 그려진 천문도를 중국에서 처음 만들었다는 3세기보다 약 200년 앞서는 시기이다.
한편, 천문도의 원본이 고려 시대에 제작되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일부 별자리 표기에서 중국에서는 '건성(建星)'으로 표기하는 것을 '입성(立星)'으로 표기한 것이 발견되는데, 이는 고려 태조 왕건의 이름 '건(建)'을 피하기 위한 피휘(避諱)의 증거로 해석된다.[6] 또한, 천문도 설명문에는 남송(南宋) 시대 책의 문장이 인용되어 있다.[7] 이러한 점들을 근거로,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원본은 고려 시대에 제작되었고, 조선 시대에 이를 바탕으로 별자리 그림(성도)은 그대로 두고 적도환과 중성기만 수정하여 새긴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2. 3. 연구 및 평가
칼 루퍼스는 1913년에 이 천문도에 대한 최초의 영어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는 조선 중기 학자 권별(1589-1671)의 해동잡록을 참고하여,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원본이 고구려 시대에 제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해동잡록에는 원래 천문도 설명문의 "전쟁 때문에 강에 빠졌다(因兵亂沈于江)"라는 구절이 "고려 시대의 병란 때문에 강에 빠졌다(因麗季兵亂沈于江)"라고 다소 변경되어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서 '려계(麗季)'는 일반적으로 '고려시대 말기'를 뜻한다. 루퍼스는 이 '麗季'라는 표현을 근거로 원본이 '고구려 시대 말기'에 제작되었다고 해석하였으나, 이는 원문의 기록과 차이가 있어 오류의 가능성이 지적된다.반면, 일제강점기인 1934년에 발간된 경성부사(京城府史)에서는 이 천문도가 "전조(前朝) 고려(高麗)의 천문도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고 설명하였다.[6] 고려 시대 제작설을 뒷받침하는 근거로는 별자리 표기 방식이 제시되기도 한다. 천문도 일부에서 중국 별자리인 '건성(建星)'이 '입성(立星)'으로 표기된 점이 발견되는데, 이는 고려 태조 왕건의 이름 '건(建)'을 피하기 위한 피휘(避諱)로 해석될 수 있다.[6] 또한, 천문도의 도설에는 남송(南宋) 시대 서적의 문장이 인용되어 있어[7] 원본이 고려 시대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하여,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원본은 고려 시대에 제작되었고, 조선 초기에 성도의 적도환과 중성기만을 수정하여 새긴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한편, 별들의 위치 변화(세차 운동) 등을 고려한 측정 연대는 기원 전후, 즉 삼국시대 초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5] 이는 기록상 중국에서 유사한 천문도가 제작된 시기보다 앞서는 것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중국 한(漢)나라의 천문학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독자적인 발전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현존하는 동아시아 천문도 중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이며, 수록된 정보가 상세하고 정확하여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게 평가된다.
3. 형태
천상열차분야지도는 기본적으로 하늘의 별자리를 큰 원 안에 담은 형태이다. 이 중심 별자리 그림 주변에는 해와 달, 사방신 등에 대한 설명이 있으며, 하단에는 천문도의 제작 배경과 참여자 명단 등이 기록되었다. 별자리 그림 자체는 여러 개의 동심원과 그 위에 그려진 수많은 별들로 구성되고, 은하수 또한 표현되어 있다.
이 천문도는 중국 한나라 시대의 관측 결과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지만, 일부 요소는 조선의 실제 관측 위치인 한양의 위도에 맞게 조정된 특징이 있다. 또한, 조선 태조 때 만들어진 석각본과 숙종 때 만들어진 석각본은 글자의 배치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일 뿐, 전체적인 형태는 거의 같다.
3. 1. 구성
천상열차분야지도는 별자리 그림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주변에는 해, 달, 사방신에 대한 간략한 설명, 주관하는 각도, 각 절기별 해가 뜨고 질 때 남중하는 별자리가 설명되어 있다. 하단부에는 당시의 우주관, 측정된 28수의 거극도 및 각도, 천문도의 제작 내력, 그리고 제작에 참여한 서운관 관리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별자리 그림은 큰 원 안에 그려져 있다. 이 원 안에는 하늘의 적도와 황도를 나타내는 교차하는 중간 크기의 원이 있고, 그 안쪽에는 계절에 상관없이 항상 보이는 별들을 표시하는 중앙의 작은 원(주극원)이 있다. 이 원들 위에 각 분야별로 1467개의 별들이 283개의 별자리를 이루며, 별의 밝기에 따라 다른 크기로 그려져 있다. 또한 은하수가 그 모양대로 표현되어 있다. 큰 원의 가장자리를 따라서는 365개의 주천도수 눈금, 각 방향을 대표하는 12지, 각 땅(지역)을 대표하는 분야(分野), 그리고 황도 12궁이 표시되어 있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별자리 그림(성도)은 중국 한(漢) 무제(武帝) 때의 관측을 기반으로 하며, 이전 천문학파들인 무함(巫咸), 감덕(甘德), 석신(石申)의 별자리를 종합한 삼가성경(三家星經) 체계를 따른다. 성도의 중심은 하늘의 북극(천구의 북극)이며, 그 위치에는 북극오성(北極五星) 중 하나인 천추성(天樞星)이 있다. 천추성은 중국 한나라 시대의 북극성이었으므로, 이는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성도가 한나라 시대의 천문도 체계를 따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중국의 천문도는 북위 35도 정도를 기준으로 작성되는데,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적도원과 전몰성원(바깥 테두리) 역시 북위 35도 기준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주극원(안쪽 테두리)은 북위 39도 정도를 기준으로 그려져, 이는 관측지의 위도(한양)를 고려하여 조정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중국의 성도를 바탕으로 하되, 별자리는 그대로 두고 관측지의 위도에 맞춰 주극원의 반지름을 조정한 것이다.
3. 2. 특징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성도는 중국 한(漢) 무제(武帝) 때의 관측에 기반하여 이전의 천문학파들인 무함(巫咸), 감덕(甘德), 석신(石申)의 별자리를 망라한 삼가성경(三家星經) 체계를 따르고 있다. 성도의 중심은 천구의 북극이며, 그 위치에는 북극오성(北極五星) 중 하나인 천추성(天樞星)이 표시되어 있다. 천추성은 중국 한나라 시대의 북극성이었으므로, 이는 천상열차분야지도가 한나라 시대의 천문도 체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별자리 그림에는 총 1467개의 별이 283개의 별자리를 이루고 있으며, 별의 밝기에 따라 크기를 다르게 표현한 점이 특징이다. 또한 은하수가 실제 모양대로 그려져 있다.
중국의 천문도는 일반적으로 북위 35도 정도를 기준으로 작성되지만,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일부 차이를 보인다. 적도원과 항상 지평선 아래에 있어 볼 수 없는 별들의 경계인 전몰성원(외규)은 중국 기준인 북위 35도 정도로 그려졌으나, 계절에 상관없이 항상 보이는 별들의 영역인 주극원(내규)은 당시 한양(현재의 서울)의 위도인 북위 39도 정도를 기준으로 그려졌다. 이는 천상열차분야지도가 중국의 성도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별자리는 그대로 두되 조선의 관측 위치를 고려하여 주극원의 크기를 조정한 것임을 나타낸다.
3. 3. 배치
태조 석각본과 숙종 석각본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설명하는 글의 배치만 다를 뿐 거의 동일하다.4. 동아시아의 별자리
동아시아의 별자리는 3원 28수 체계에 따라, 크게 3개의 울타리(원垣)와 그 안의 별자리들, 그리고 적도대를 적경에 따라 28개의 영역으로 나눈 28수와 각 수(宿)에 속한 별자리들로 구분된다. 세종 대 이순지가 편찬한 《천문류초》에는 이러한 동아시아 별자리 각각의 형태, 의미, 해석 등이 자세히 정리되어 있다.
천상열차분야지도에 그려진 별자리는 송대의 순우천문도 등 중국의 전통적인 별자리 그림과 비교했을 때, 별을 잇는 방식이나 별자리의 형태에서 차이를 보인다. 일부 별자리는 위치가 다르거나 중국의 목록에는 없는 경우도 있다.
일본의 경우, 가장 오래된 별자리 그림은 7~8세기경 기토라 고분 벽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천상열차분야지도와 중국 별자리의 중간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에도 시대에 일본은 중국과 조선의 별자리를 참고하여 일부 별자리를 추가한 독자적인 천문도를 제작하기도 했으나, 널리 사용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조선의 문물이 일본에 전해지면서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모방한 천상열차지도나 천문분야지도가 제작되기도 하였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특징 중 하나는 별의 밝기를 시각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이다. 중국의 성도들과는 달리, 실제 밤하늘에서 보이는 별의 밝기에 따라 그 크기를 다르게 그려 넣어 사실성을 높였다.[8]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세차운동 등으로 별의 위치가 변했기 때문에, 천상열차분야지도에 그려진 별자리를 현대의 밤하늘에서 정확히 찾아내기는 어렵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철종 12년(1861년) 남병길은 청나라의 별 목록인 《흠정의상고성 속편》을 바탕으로 별의 위치를 보정하여 《성경(星鏡)》이라는 새로운 성도를 편찬하기도 했다.[9]
삼국시대 이전부터 이어져 조선시대까지 발전했던 한국의 전통 천문학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그 명맥이 크게 약화되었다. 이후 서양 천문학이 교육·보급되면서 전통적인 별자리 체계는 점차 사용되지 않게 되었고, 일반 대중들에게서도 잊혀 갔다. 현재는 주로 역사 기록에 나타난 천문 현상을 연구하거나 민속학적 연구 등 특수한 목적을 위해 참조되고 있다.
5. 10000원 지폐 뒷면
2007년에 대한민국에서 발행된 10000원 지폐 뒷면에는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일부가 그려져 있다. 여러 별자리들과 항상 보이는 별들을 표시한 항원권, 오늘날의 적경(赤經)에 해당되는 28수를 구분하는 선들, 황도와 천구의 적도 일부가 포함되어 있어 실제 천상열차분야지도의 별자리들과 쉽게 비교할 수 있다.
지폐 뒷면에서 식별할 수 있는 별자리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구분 | 별자리 목록 |
---|---|
태미원 (우측 상단) | 태미, 상진, 오제, 병, 오제후, 구경, 호분, 삼태, 소미 |
자미원 (중앙 부근) | 북극, 구진, 북두, 문창, 내계, 천상, 자미, 천봉, 오제좌, 팔곡, 전사, 천주, 현과 |
천시원 (우측 하단) | 천시원, 천시좌원, 칠공, 여상 |
기타 별자리 |
참조
[1]
웹사이트
국립고궁박물관
http://www.gogung.go[...]
2018-02-10
[2]
웹사이트
국립고궁박물관
http://www.gogung.go[...]
2018-02-10
[3]
뉴스
신한은행, 국립고궁박물관에 보물급 조선시대 천문도 기증 - 문화재청
http://newswire.ytn.[...]
연합뉴스
2006-11-21
[4]
서적
한국의 천문도
천문우주기획
1995
[5]
논문
천상열차분야지도의 별그림 분석
1998
[6]
간행물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에 나오는 고려시대(高麗時代) 피휘와 천문도의 기원
국립고궁박물관
2011
[7]
간행물
천상열차분야지도 도설(圖說)의 문헌학적 연구
한국고전번역원
2013
[8]
서적
하늘에 새긴 우리역사
김영사
2002
[9]
서적
하늘에 새긴 우리역사
김영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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