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 콜라 무차별 살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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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청산 콜라 무차별 살인 사건은 1977년부터 1988년까지 일본에서 발생한 일련의 독극물 테러 사건을 통칭한다. 콜라와 초콜릿 등에 청산가리를 넣어 무차별적으로 살인을 시도했으며, 1977년 도쿄에서 첫 번째 사건이 발생한 이후 여러 건의 유사 사건이 이어졌다. 이 사건들은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식품 안전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켰다. 사건 이후 정부는 식품 안전 관리 강화와 독극물 유통 감시를 강화했지만, 범인을 검거하지 못하고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미제 사건으로 종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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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 콜라 무차별 살인 사건 | |
---|---|
사건 개요 | |
명칭 | 청산 코라 무차별 살인 사건 |
발생 장소 | 서울특별시, 오사카부 |
발생 날짜 | 1977년 1월 4일 - 2월 중순 |
사건 유형 | 무차별 살인 사건 |
범행 수단 | 사이안화 나트륨 |
공격 대상 | 민간인 |
피해자 | 사망 3명 (자살 1명 포함), 의식불명 1명 |
범인 | 불명 |
동기 | 불명 |
사과 | 없음 |
결과 | 공소 시효 만료 (미해결) |
2. 사건의 흐름
1977년 일본에서는 청산가리가 든 음료수나 식품을 공공장소에 놓아 불특정 다수를 노린 무차별 살인 및 살인미수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사건은 도쿄에서 시작되었다. 1월 3일 밤, 시나가와역 근처 공중전화에 놓여 있던 코카콜라를 16세 남고생이 주워 마신 뒤 다음 날인 4일 새벽 사망했다.[1] 같은 날 오전, 첫 사건 현장 인근에서 46세 작업원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콜라를 마시고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경찰은 같은 날 오후, 또 다른 공중전화에서 청산가리가 든 콜라를 추가로 발견했으나, 다행히 이를 마신 사람은 없었다.
약 한 달 뒤인 2월 13일, 사건은 오사카부 후지이데라시에서도 발생했다. 39세 회사원이 공중전화에서 발견한 콜라를 마시고 중태에 빠졌다가 회복했으나, 퇴원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유서는 남기지 않았지만, 가족에게 "도쿄 사건을 알고 있었는데 이런 일이 생겨 세상에 면목이 없다"는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다음 날인 2월 14일, 범행 대상은 초콜릿으로 바뀌었다. 도쿄역 야에스 지하가에서 청산 화합물이 든 초콜릿 40상자가 발견되었고, 상자에는 "傲れる醜い日本人に天誅を下す|오코레루 미니쿠이 니혼진니 텐추오 쿠다스일본어"(거만하고 추악한 일본인에게 천벌을 내린다)라는 가타카나 고무 도장으로 찍힌 협박문이 첨부되어 있었다. 같은 날, 도쿄역 인근 간다역에서도 한 남성이 화장실에서 주운 초콜릿을 먹고 쓰러졌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이 초콜릿에서도 나중에 미량의 청산나트륨이 검출되었다.[2] 경찰 재수사 과정에서 2월 14일 이전에도 도쿄역에 비슷한 초콜릿이 놓여 있었다는 증언이 확보되기도 했다.
경찰은 일련의 사건들이 동일범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수사를 벌였으나, 범인을 특정할 만한 결정적인 증거를 찾지 못했다. 결국 모든 사건은 1992년 1월 4일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2. 1. 첫 번째 사건 (도쿄)
1977년 1월 3일 오후 11시 30분경, 도카이도 신칸센의 식당차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16세 남고생(당시 교토시 거주)이 일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던 중이었다.[1] 그는 도쿄도 미나토구에 위치한 시나가와역 근처의 시나가와 스포츠 랜드(현재의 시나가와 프린스 호텔) 앞 공중전화 위에 놓여 있던, 겉보기에는 개봉되지 않은 코카콜라 병을 발견하고 숙소로 가져갔다.[1]다음 날인 1월 4일 새벽 1시경, 남고생은 가져온 콜라를 마셨다.[1] 그러나 맛이 이상하다고 느껴 즉시 뱉어내고 수돗물로 입을 헹궜다.[1]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곧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1] 급히 병원으로 옮겨져 위세척 등 응급 처치를 받았으나, 안타깝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1] 사인은 청산가리 중독으로 밝혀졌다.[1]
2. 2. 두 번째 사건 (도쿄)
첫 번째 사건과 같은 날인 1월 4일 오전 8시 15분경, 첫 번째 피해자인 남고생이 콜라를 주운 전화 박스에서 제1경빈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약 600m 떨어진 보도에서 또 다른 남성(당시 46세, 작업원)이 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그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다. 사인은 첫 번째 사건과 마찬가지로 청산가리 중독이었다. 남성이 쓰러져 있던 곳 근처에서는 그가 개봉한 것으로 보이는 콜라 병이 발견되었고, 병에 남아있던 콜라에서도 청산 반응이 검출되었다. 이 남성 역시 공중전화에서 콜라를 주워 마신 것으로 밝혀졌다.경찰이 주변을 수색하던 중, 같은 날 오후 0시경, 두 번째 피해자가 콜라를 주웠던 전화 박스에서 약 600m 떨어진 시나가와구의 한 상점 앞 빨간색 공중전화 부스에서도 청산가리가 든 콜라 병이 추가로 발견되었다. 다행히 이 콜라를 마신 사람은 없었다. 이 상점 주인의 아들(당시 15세)이 외출 시 이 콜라를 발견하고 나중에 마시려고 했으나, 용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경찰관의 방문으로 콜라에 독극물이 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간발의 차로 위험을 피했다. 이 콜라에서는 치사량의 60배에 달하는 청산가리가 검출되었다.
경찰은 연이어 발생한 사건들의 범행 수법이 유사하다고 판단하여 동일범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수사를 진행했다. 특히 콜라가 젊은 층에게 인기가 있다는 점과 청산 화합물을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도장업이나 가공업 관련 종사자들을 중심으로 조사를 벌였으나, 결정적인 물증을 확보하지 못해 범인을 특정하는 데 실패했다. 결국 이 사건은 많은 의문점을 남긴 채 1992년(헤이세이 4년) 1월 4일 오전 0시(일본 표준시, UTC+9)를 기점으로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2. 3. 세 번째 사건 (오사카)
도쿄 사건 발생 약 1개월 후인 1977년 2월 13일 오전 6시 20분경, 오사카부 후지이데라시에 거주하는 39세 회사원 C 씨가 출근길에 담배를 사러 들른 술집 공중전화 위에 놓인 콜라병을 발견했다. 동료가 만류했지만 괜찮다고 말하며 콜라를 마신 C 씨는 갑자기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가 마신 콜라에서도 청산가리 반응이 검출되었다.C 씨는 다행히 목숨을 건졌으나, 퇴원한 다음 날 자택에서 가스로 자살했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사망 직전 가족에게 "'''도쿄 사건을 알고 있었는데 이런 일이 생겨 세상에 면목이 없다'''"는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 사건은 C 씨가 콜라를 마시는 장면을 목격한 사람이 없고, 그에게서 청산 중독 특유의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사후에 논란이 일었다.
2. 4. 네 번째 사건 (도쿄)
세 번째 사건 발생 다음 날인 2월 14일, 도쿄역 야에스 지하가에서 43세의 한 회사 사장이 계단에 놓인 초콜릿 40상자가 든 종이 봉투를 발견했다. 그는 앞서 발생한 청산가리 콜라 사건들을 알고 있었기에, 이 초콜릿에도 독극물이 들어있을지 모른다고 의심하여 경찰에 신고했다.경찰은 처음에는 단순 분실물로 처리했으나, 주인이 나타나지 않자 해당 초콜릿을 제조 회사로 반환했다. 제조 회사가 초콜릿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제조 번호가 의도적으로 훼손된 것을 발견하고 성분 검사를 실시했다. 검사 결과, 초콜릿에는 청산 화합물이 주입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초콜릿 상자에는 가타카나 고무 도장으로 찍힌 협박 문구가 발견되었다. 문구는 "오코레루 미니쿠이 니혼진니 텐추오 쿠타스"(傲れる醜い日本人に天誅を下す|오코레루 미니쿠이 니혼진니 텐추오 쿠다스일본어)로, "거만하고 추악한 일본인에게 천벌을 내린다"라는 의미였다.
제조업체의 신고로 경찰은 이 사건을 묻지마 살인 미수 사건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했으나, 범인을 특정하지는 못했다. 이 사건이 앞선 세 건의 청산가리 콜라 사건과 동일범의 소행인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며, 결국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2. 5. 다섯 번째 사건? (도쿄)
같은 해 2월 14일, 도쿄역 옆에 위치한 간다역의 화장실에서 한 남성이 초콜릿을 주웠다. 그는 전차 안에서 이 초콜릿을 먹었으나 곧 의식을 잃고 쓰러져 아키하바라역에서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다. 병원에서는 식중독으로 진단받았으며,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 다음 날 의식을 되찾고 퇴원했다.당시 이 사건은 같은 날 간다 지역에서 발생했던 다른 청산 초콜릿 사건과는 별개의 일로 여겨졌다. 단순 식중독으로 진단되었기 때문에 경찰에 신고되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 해, 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한 형사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고, 피해 남성이 제공한 초콜릿을 분석한 결과 미량의 청산나트륨이 검출되었다.
범행 수법은 앞선 야에스 출구 사건과 동일하게, 초콜릿의 은박지를 벗겨낸 뒤 뒷면을 깎아내고 그 안에 청산나트륨을 넣는 방식이었다.[2]
2. 6.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사건? (도쿄)
경찰이 2건의 청산 초콜릿 사건을 재수사하는 과정에서, 2월 14일 이전에도 도쿄역에 초콜릿이 든 가방이 놓여 있었다는 여러 증언이 나왔다. 이 초콜릿을 놓은 사람이 앞선 사건들과 동일범이며, 코카콜라에 청산을 넣은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졌지만,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 초콜릿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불명이다.3. 사건의 영향
이 사건은 당시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특히 음료 소비 방식에 변화를 가져왔다. 사건 이전에는 자동판매기에서 250ml 리터너블 보틀 음료를 흔히 볼 수 있었으나, 이 사건을 계기로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후 이러한 병 음료는 주로 사람이 직접 관리하는 매장에서 셀프 서비스 형태로 판매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3. 1. 음료 제품의 개량
이러한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 자동판매기에서 판매되는 음료는 개봉 여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포장 방식이 개선되었다. 캔 음료는 한번 열면 다시 닫을 수 없는 풀탭 방식으로 바뀌었고[3], 250ml 또는 350ml 용량의 스트레이트 캔이 자동판매기의 주된 상품이 되었다.병에 담긴 음료 역시 한번 개봉하면 병뚜껑 아래의 링 모양 부분이 떨어져 나가 열었는지 알 수 있는 스크류 캡 방식이 도입되었고[3], 캔 음료용 자판기에서도 취급할 수 있는 형태로 변경되었다.
3. 2. 재발 방지 계발
이 사건 이후, "구입처가 불분명하거나 개봉된 흔적이 있는 음료나 음식은 함부로 섭취하지 말 것"을 사회적으로 호소하는 운동이 일어났다.그러나 사건 발생 8년 뒤인 1985년(쇼와 60년)에는 유사한 방식의 파라코트 연쇄 독살 사건이 발생하여 13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 2019년(레이와 원년)에도 맹독성 물질인 파라코트가 캔맥주에 혼입되는 사건이 발생했으나, 구매자가 마시기 전에 이상한 점을 발견하여 다행히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4. 미디어에서의 재조명
- 연극 아리스가와 가문의 은밀한 즐거움(라쿠게키자 / 작: 세키구치 쥰)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eat me", "drink me"와 본 사건을 관련지어, 콜라를 마셔버린 피해자의 마음의 어둠을 그리고 있다.
- 만화 도베르만 형사(원작: 부론 슨・작화: 히라마츠 신지) - "대도시의 고독!!"과 "신부 경사 사키 짱" 두 에피소드는 본 사건을 바탕으로 한 스토리이다.
- 만화 여기는 잘나가는 파출소(아키모토 오사무) - 코믹스 제3권 "바퀴벌레와 료츠의 권" (1977년 첫 출판)에서, "요즘 세상은 험악하다"며 콜라나 초콜릿을 수상하게 여겨 자신 외에 다른 사람에게 독을 맛보게 하려는 내용이 있다.
- 텔레비전 드라마 특수 수사 최전선(토에이) - 1978년 11월 8일 방송된 제84화 "기억이 없는 독살마!"가 본 사건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이다.
5. 참고 사항
- 1997년부터 1999년까지 고단샤에서 발행된 『주간 일록 20세기』 33호(1977년 사건을 다룸)에서 첫 번째 두 사건("제1의 사건", "제2의 사건")이 다뤄졌으며, 피해자의 실명도 소개되었다.
참조
[1]
뉴스
毒入りコーラ殺人 高輪 拾って飲み高校生急死 青酸混入 電話ボックスに放置
朝日新聞
1977-01-04
[2]
뉴스
青酸チョコ 毒混入手口も同じ 八重洲地下と神田駅
朝日新聞
1978-04-18
[3]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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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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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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