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최영일 (축구인)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최영일은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 행정가이다. 중앙 수비수 포지션에서 활약했으며, 울산 현대 호랑이, 부산 대우 로얄즈, 랴오닝 푸순, 안양 LG 치타스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1994년 FIFA 월드컵과 1998년 FIFA 월드컵에 국가대표로 출전했고, 1990년대 중반에는 대한민국 대표팀 주장을 맡았다. 은퇴 후에는 동아대학교 감독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일본의 미우라 가즈요시를 전담 마크하여 '미우라의 그림자'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한일전에서 활약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대한민국의 중국 진출 남자 축구 선수 - 김동진 (1982년)
    김동진은 대한민국의 은퇴한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로, FC 서울을 시작으로 다양한 리그에서 왼쪽 풀백으로 활약했으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2006년과 2010년 FIFA 월드컵에 참가했고, 은퇴 후에는 킷치 SC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 대한민국의 중국 진출 남자 축구 선수 - 강상우
    강상우는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로, 풀백으로 활약하며, 포항 스틸러스에서 프로 데뷔 후 베이징 궈안을 거쳐 2024년 FC 서울로 이적했으며, 2012년 AFC U-19 챔피언십 우승을 이끌고 K리그1 베스트 11과 도움왕을 수상했다.
  • 장산초등학교 (부산) 동문 - 백승우 (야구 선수)
    2023년 두산 베어스에 입단한 백승우는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로, 2023년 데뷔하여 6경기에서 평균자책점 0.00을 기록했다.
  • 장산초등학교 (부산) 동문 - 어정원
    어정원은 김포 FC 임대 선수, 부산 아이파크 왼쪽 풀백, K리그2 베스트 11 후보를 거쳐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활동한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이다.
최영일 (축구인)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2010년 최영일
전체 이름최영일
출생일1966년 4월 25일 ()
출생지경상남도 남해군
1.81m
포지션센터백
클럽 경력
유소년 클럽동아대학교 (1985–1988)
클럽울산 현대 호랑이 (1989–1996)
부산 대우 로얄즈 (1997–1998)
랴오닝 푸순 (1999)
안양 LG 치타스 (2000)
출장 및 득점울산 현대 호랑이: 209경기 (3골)
부산 대우 로얄즈: 14경기 (0골)
랴오닝 푸순: 20경기 (0골)
안양 LG 치타스: 0경기 (0골)
총 출장 및 득점243경기 (3골)
국가대표 경력
국가대표팀대한민국 (1994–1998)
국가대표 출장 및 득점55경기 (0골)
지도자 경력
감독동아대학교 (2000–2013)

2. 생애

경상남도 남해군에서 태어나, 2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이후 어머니와 세 누나와 함께 부산으로 이사하여 신문배달 등을 하며 어려운 유년 시절을 보냈다.[11]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하였다.[11] 장산초, 동래중, 동래고, 동아대학교를 졸업하였다. 머리가 커서 '순한 대가리'의 줄임말인 '순대'라는 별명이 붙었으며, 상대 공격수를 끈질기게 막아 '진드기'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3. 축구인 경력

3. 1. 유년 시절과 프로 초기

동래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중앙 수비수로 자리매김하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주장을 맡았으며, 약점인 스피드를 보완하기 위해 꾸준히 러닝 훈련을 하고 90분을 뛰기 위한 지구력을 기르기 위해 산악 훈련을 하는 등 성실한 훈련 태도로 다른 선수들의 모범이 되었다.[11]

3. 2. 선수 경력

1989년 울산 현대 호랑이에 입단한 뒤, 1996년 K-리그 우승, 1991년 K-리그 준우승 등에 공헌하였다.[11] 1997년 부산 대우 로얄즈로 이적하여, 1997년 K-리그 우승 등에 공헌하였다.[11] 1999년 중국 슈퍼리그랴오닝 푸순으로 옮겨 활약하다가,[11] 2000년 안양 LG 치타스로 이적하였고, 시즌 중 은퇴하였다.[11] 2000년 안양 LG 치타스에 입단한 그는 후배들을 밟고 일어서야 하는 현실에 회의를 느끼고 은퇴를 결심하였다고 한다.[11]

3. 3. 국가 대표 경력

1994년 FIFA 월드컵 직전 1월에 있었던 미국 전지훈련 때 박정배정종선의 부상으로 수비수에 결원이 생기자 대한민국 대표로 첫 선발되었다.[11] 1994년 3월 12일 미국과의 친선경기에서 데뷔하여, 이후 성실한 자세를 보이며 코칭스태프의 신임을 얻어 이후 국가대표팀에서 주전으로 활약하게 된다.[11] 1994년 FIFA 월드컵 조별 예선 3경기를 전부 출전하며 당시로서는 월드컵 최고 성적(2무 1패)를 기록하는데 공헌하였다.

1990년대 중반 대한민국 대표팀의 주장을 맡았고, 이후 홍명보에게 주장 자리를 넘겨주었다.

1998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예선 통과에도 큰 기여를 하였고, 본선에도 출전하였다.

3. 4. 지도자 경력

2000년 은퇴 이후에 모교인 동아대학교의 감독을 맡고 있다.

3. 5. 행정가 경력

2021년부터 현재까지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4. 플레이 스타일

최영일의 거친 몸싸움과 태클은 공정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상대 팀 최고의 공격수를 전담 마크하는 데 효과적이었다.[1] 특히 일본미우라 가즈요시를 전담 마크하여 한국 팬들 사이에서 "미우라의 그림자"로 알려지게 되었다.[1]

5. 라이벌 미우라 가즈요시

1990년대 중반, 대한민국일본간의 축구 한일전 열기는 그 어느때보다도 높았다.[12] 2002년 FIFA 월드컵 개최경쟁과, "아시아 1위"를 자부하던 대한민국과 "탈(脫)아시아"를 외치며 발전하던 일본이 그 결정적 요인이었다. 그 일본의 필두에는 브라질 유학파 출신의 미우라 가즈요시가 있었는데, 최영일은 1994년부터 1997년까지 있었던 대한민국일본간의 경기에서 그의 전담 마크맨으로 활약한다. 최영일은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을 시작으로 미우라를 집중 마크하며 언론으로부터 "족쇄맨", "미우라의 그림자"라는 별명을 얻으며 큰 활약을 펼쳤다.[12] 최영일 본인은 기선 제압을 위해 일부러 미우라를 거칠게 마크했다고 회고한다.[11][13] 이 경기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이 미우라에게 선제골을 허용했지만 황선홍의 페널티킥으로 3:2 역전승을 거두었다.

최영일은 미우라 가즈요시에게, 미우라 가즈요시는 최영일에게 서로 편지를 보낸적이 있다.[13][12]

최영일이 미우라 가즈요시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인용 상자|오랜 세월 한국 대표팀 수비수로서 플레이 해 온 나에게 있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는 역시 가즈 자네일세. 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때 처음으로 내가 자네를 마크했었네. (중략) 그때 자네에 대해서는 유독 심한 마크를 했었는데, 그것은 나도 인정한다네. (중략) 자네를 마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심리적으로 우위에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네. 몸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으려고 했지. (중략) 그러나 아무리 치열한 게임이었더라도 게임 후에는 서로 악수를 교환하고, 라커룸으로 들어 올 때는 서로를 격려했지. 사나이끼리의 결투였기 때문에 나는 매우 기뻤다네. 90분간 나는 항상 자네 옆에 있었던 관계로 당연히 종료 휘슬이 울릴 때도 자네 옆에 있었지. 그렇기 때문에 우선 가까이 있는 선수와 악수를 한 것이기는 하지만 말일세. (중략) 언젠가 다시 자네와 만나고 싶소. 홈앤드 어웨이로 두 번 만나는 게 어떻겠나? (중략) 기쁜 마음으로 자네를 마크하게 될걸세.[13]

|카즈에게 보내는 편지 / 최영일}}

미우라 가즈요시가 최영일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인용 상자|(선략) 지금까지 만나본 수비수 중에 한국의 최영일 선수만큼 나에게 ‘집중’했던 수비수는 없다. 처음 최영일과 만난 것은 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때인데, 그 게임에서 나는 선제골을 터뜨렸지만 결국 3대2로 한국에게 역전패를 했다. 당시 그 게임 후반부터 최영일이 나를 마크한 거 아니었을까. 게임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리면 "또 나에게 붙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으면 어느샌가 여지없이 그 사각형 얼굴의 선수가 내 옆에 찰싹 붙어 있는 것이었다. 위 편지에 쓰여져 있는 대로 최영일과 나는 종료 휘슬이 울리는 그 순간까지 쭉 함께였다. 한국에서는 최영일을 ‘미우라의 그림자'라고 한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게 됐는데, 나에게 있어서 그는 단순한 비유가 아닌 진짜 "그림자"였다. 아무튼 19년 동안 프로 선수 생활을 하면서 그렇게 심한 맨투맨 마크를 당해본 것은 예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었다. 오로지 최영일뿐이었다. 브라질, 이탈리아 수비수들도 1대1 마크가 대단히 강력하다고 정평이 나있지만 최영일 같이 끈덕지게 달라붙는 경우는 없다. (중략) 말이 좀 나쁘게 들릴지는 모르겠으나, 아무리 그의 수비가 거칠고 지저분해도, 나를 막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그 모습은 나를 오싹하게 했다. 그 근성은 정말 대단했으며, 존경할 만한 것이었다. (중략) 최영일에게 마크당하면서 플레이하는 것은 무척 어려웠지만 한국이 그 정도로 나를 경계해서 최영일 같은 악착같은 수비수를 내보냈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기쁜 일이기도 했다. 최영일의 마크를 어떻게 뚫고 득점을 올릴까 하는 생각도 흥미로웠고, 그로 하여금 투지를 불태울 수 있게 되어서도 좋았다. (중략) 지금까지 여러 선수와 몸을 부딪히며 축구를 해왔지만, 최영일과 만나면 팀과는 별개로 단 둘이 승부를 가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정말 귀중한 순간이었고, 이러한 만남은 축구 선수로서 큰 재산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J-리그에서 뛰고 있지만, 그 때가 그리울 때가 있다. 나도 꼭 그를 다시 만나고 싶다. (후략)[12]

|최영일에게 보내는 편지 "최영일과의 싸움은 나의 재산이 되었다" / 미우라 가즈요시}}

최영일의 거친 몸싸움과 태클은 공정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상대 팀 최고의 공격수, 특히 일본의 전설적인 선수인 미우라 가즈요시를 전담 마크하는 데 효과적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한국 팬들 사이에서 "미우라의 그림자"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1]

6. 수상 내역

'''울산 현대 호랑이'''


  • K리그1: 1996
  • 대한민국 리그컵: 1995


'''부산 대우 로얄즈'''

  • K리그1: 1997
  • 대한민국 리그컵: 1997, 1997+, 1998+


'''개인'''

6. 1. 클럽

'''울산 현대 호랑이'''

  • K리그1: 1996
  • 대한민국 리그컵: 1995


'''부산 대우 로얄즈'''

  • K리그1: 1997
  • 대한민국 리그컵: 1997, 1997+, 1998+


'''개인'''

6. 1. 1. 울산 현대 호랑이

K리그 우승 1회 (1996년)

K리그 준우승 1회 (1991년)

리그컵 우승 1회 (1995 아디다스컵)

리그컵 준우승 1회 (1993 아디다스컵)

K리그1: 1996

대한민국 리그컵: 1995

6. 1. 2. 부산 대우 로얄즈


  • K리그 우승 1회 (1997년)
  • 리그컵 우승 3회 (1997년 아디다스컵, 프로스펙스컵, 필립모리스코리아컵)

6. 1. 3. 랴오닝 푸순

6. 2. 개인

최영일은 K리그에서 베스트 11에 2회 선정되었다.[2][3] 1995년 K리그 올스타전에 출전했다.[4] 2003년 K리그 90년대 올스타팀에 선정되었다.[5]

참조

[1] 뉴스 "[영상] 한일전 최고의 천적은? 미우라 지우개 최영일의 ‘그림자 수비’" https://news.kbs.co.[...] Korean Broadcasting System 2021-01-21
[2] 웹사이트 "李상윤 '93프로축구 MVP" https://newslibrary.[...] Kyunghyang Shinmun 1993-11-11
[3] 웹사이트 "신태용 올 축구 황금발" http://newslibrary.n[...] The Hankyoreh 1995-11-24
[4] 뉴스 프로축구 올스타전 출전선수명단 확정 https://newslibrary.[...] The Chosun Ilbo 1995-07-23
[5] 뉴스 "[프로축구]80년대 vs 90년대 축구 왕별들 뜬다…15일 OB 올스타전" https://www.donga.co[...] The Dong-a Ilbo 2003-08-01
[6] 웹사이트 平壌での南北戦「冷ややかな雰囲気」 ホテルに缶詰め=サッカー韓国代表帰国 https://www.wowkorea[...] 2019-10-17
[7] 웹사이트 サッカー=W杯予選で北朝鮮と対戦の韓国「戦争のようだった」 https://jp.reuters.c[...] 2019-10-18
[8] 웹사이트 崔英一の名言 https://number.bunsh[...] 2018-02-13
[9] 웹사이트 FIFA 홈페이지 1994년 월드컵 대한민국 대표팀 명단 http://www.fifa.com/[...]
[10] 웹사이트 FIFA 홈페이지 1998년 월드컵 대한민국 대표팀 명단 http://www.fifa.com/[...]
[11] 간행물 배진경 - 대한축구협회 기술정책 보고서 〈KFA 리포트〉2008년 3월호 "나의 선수 시절 10 - 최영일"
[12] 웹사이트 카즈에게 보내는 편지 14.최영일 "최영일과의 싸움은 나의 재산이 되었다" http://number.goo.ne[...]
[13] 웹사이트 카즈에게 보내는 편지 14.최영일 http://number.goo.ne[...]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