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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 레초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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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카 레초니코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대운하에 위치한 궁전으로, 17세기에 건설이 시작되어 18세기에 완공되었다. 본 가문, 레초니코 가문 등 여러 가문의 소유를 거쳐, 1935년 베네치아 시에 매입되어 현재는 18세기 베네치아 예술을 전시하는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궁전 내부에는 그랜드 살롱, 알레고리 살롱 등 다양한 전시 공간이 있으며, 카날레토, 티에폴로 등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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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 레초니코 - [지명]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카 레초니코 (베네치아)
그랜드 카날에 있는 카 레초니코의 흰색 대리석 파사드
위치이탈리아 베네치아 도르소두로 3136, 30123
유형미술관, 유적지
공식 웹사이트carezzonico.visitmuve.it
명칭
이탈리아어Ca' Rezzonico
다른 이름Museo del Settecento Veneziano (18세기 베네치아 박물관)
역사
개관1936년 4월 25일
감독알베르토 크라이에비치 (Alberto Craievich)

2. 역사

카날 그란데의 리오 디 산 바르나바에 있는 이 궁전은 고대 로마 귀족인 본 가문이 소유하고 있었다. 1649년 당시 본 가문의 당주 필리포 본이 궁전 건설을 결정하고, 베네치아 바로크 건축의 일인자인 발다사레 롱게나에게 설계를 의뢰했지만, 필리포 본과 발다사레 롱게나 모두 완공 전에 사망했다.

이후 궁전은 레초니코 가문이 매입했으며, 설계는 레초니코 가문의 의뢰를 받은 조르조 마사리가 이어받았다. 조르조 마사리는 발다사레 롱게나의 설계를 이어받으면서도 독자적인 설계를 수행하여, 르네상스 양식이나 팔라디오 건축 등 여러 양식을 가진 아름다운 궁전이 되었다. 건설은 1756년에 완공되었다.

레초니코 가문은 베네치아 공화국오스만 제국과의 전쟁 등으로 재정이 고갈되자 거액의 기부자에게 귀족 권리나 귀족 명감("Libro d'Oro") 등재 권리를 판매할 때 거액을 기부하여 궁전을 구입했다.

1758년 카를로 레초니코가 교황 클레멘스 13세로 선출되는 등 레초니코 가문은 한때 영화를 누렸지만, 1810년 가문이 단절되었다. 하지만 레초니코라는 이름은 궁전의 이름으로 남았다.

2. 1. 건설 (17세기-18세기)

베네치아 대운하의 오른쪽 둑, 산 바르나바 강과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카 레초니코는 원래 1500년대 초 베네치아 그림에 나타난 두 채의 낡은 집이 있던 부지였다. 이 집들은 베네치아의 귀족 가문인 본 가문 소유였다. 1649년, 본 가문의 수장이자 도시의 검사관, 예술 후원자였던 필리포 본은 두 채의 집을 하나의 대형 팔라초로 바꾸기로 결정하고, 베네치아 바로크 건축의 대가 발다사레 롱게나를 고용했다. 롱게나는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교회의 돔을 설계한 인물로, 1661년까지 이전 두 건물을 통합하고 운하 쪽 파사드 공사를 시작하여 1층까지 진행했다. 그러나 롱게나는 1682년에, 필리포 본은 재정 문제로 1712년에 사망하여 팔라초는 미완성 상태로 남게 되었다.[1]

1750년, 본 가문은 롬바르디 출신 은행가이자 직물 상인인 잔바티스타 레초니코에게 미완성 팔라초를 제안했다. 레초니코 가문은 오스만 제국과의 칸디아 전쟁 중이던 1648년에 베네치아 귀족 칭호를 산 가문이었다. 레초니코는 60000두카트를 지불하고 건물을 매입했다. 시 검사관들은 건물이 대부분 붕괴 위험이 있는 폐허라고 결론지었지만, 레초니코는 당시 가장 명망 있는 건축가인 조르조 마사리를 고용하여 재건을 추진했다. 마사리는 롱게나의 원래 계획을 따르면서도 로코코 취향에 맞게 수정했다. 그는 파사드의 이중 기둥을 가느다란 기둥으로 대체하고, 무거운 기둥 받침대를 제거하여 건물에 가볍고 우아한 모습을 부여했다. 또한 2층 창문 위에 작은 타원형 창문을 설치하여 로코코적인 느낌을 더했다.

파사드는 1750년에서 1752년 사이에 완성되었다. 마사리는 베네치아의 관습을 깨고 주요 의식실을 운하가 아닌 건물의 뒤쪽에 배치했다. 그는 이 방의 천장 높이를 두 배로 늘리고 벽을 제거하여 극적인 공간을 만들었다. 대운하의 부두와 게이트에서 실내 안뜰의 분수로 이어지는 의식적인 경로를 배치하고, 분수 위에는 레초니코 가문의 문장을 배치했다. 이후 개선의 복도를 지나 웅장한 계단으로 이어져 대연회장으로 연결되도록 설계했다. 살롱이 완성되자 조반니 바티스타 크로사토와 지로라모 멩고치 콜론나가 천장에 프레스코화와 트롱프뢰유를 그렸다.

내부 공사는 1756년에 거의 완료되었다. 1758년 잔바티스타 레초니코의 남동생 카를로가 교황 클레멘스 13세로 선출되고, 같은 해 루도비코 레초니코가 파우스티나 사보르난과 결혼하여 베네치아의 두 부유한 가문이 결합하면서 레초니코 가문의 권력과 팔라초의 웅장함은 정점에 달했다. 레초니코 가문은 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에게 두 살롱의 천장화를 의뢰했다.

1759년 아우렐리오 레초니코가 산 마르코의 검찰관으로 선출되었고, 1762년 루도비코 레초니코가 같은 직위에 선출되면서 궁전은 추가적인 축하 행사의 장소가 되었다.

2. 2. 19세기-20세기: 쇠퇴와 부활

궁전이 완공된 지 50년 후인 1810년, 레초니코 가문의 베네치아 지파의 마지막 구성원인 피사의 추기경 아본디오가 사망하면서 가문은 단절되었다. 궁전은 예수회 대학이 될 뻔했지만, 대신 여러 가문을 거쳐 1832년 피에몬테 출신의 시인이자 정치인인 이폴리토 핀데몬테의 손자인 카를로 핀데몬테에게 넘어갔다. 핀데몬테는 궁전의 모든 가구와 미술품 컬렉션을 팔아 치웠다.[2] 프레스코화만 제자리에 남아 있었다. 1837년 핀데몬테는 빈 건물을 라디슬라오 젤린스키 백작에게 팔았고, 젤린스키는 다시 궁전을 폰 뷜로 남작에게, 그 다음에는 지키 체르너 백작에게 임대했다. 1840년부터 1857년까지는 마드리드의 공작이자 스페인 왕위 요구자인 돈 카를로를 포함한 모데나 공작과 그의 가족에게 임대되었다.

1850년경부터 궁전의 2층은 골동품 수집가이자 미술상인 야코보 퀘르치 델라 로베레가 임대하여 루벤스, 렘브란트, 카라바조, 카날레토 등 거장들의 그림을 판매하는 갤러리로 사용했다. 1880년대에는 화가 로버트 바렛 브라우닝의 집이 되었으며, 그의 아버지인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은 1889년 그의 아파트의 메자닌 층에서 사망했다. 이 당시 미국의 초상화가 존 싱어 사전트도 궁전에 작업실을 가지고 있었다.

1906년 브라우닝은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로부터 건물을 매입하겠다는 제안을 받았지만, 대신 이탈리아 국회의원이자 현대 미술 수집가인 Lionello von Hierschel de Minerbi|라이오넬로 데 미네르비it 백작에게 팔았다. 궁전은 화려한 의상 무도회, 횃불과 촛불 행사, 콘서트의 무대가 되었다.

미국의 작곡가이자 작곡가인 콜 포터는 1920년대에 카 레초니코를 한 달에 4000USD에 임대했다.[2] 포터는 50명의 곤돌라 사공을 고용하고 "다채로운 불빛 속에서 공연"하기 위해 줄타기 곡예단을 고용했다.[3]

1930년대의 세계적인 대공황으로 인해 미네르비의 자금과 사치스러운 생활은 막을 내렸고, 그는 궁전의 매수자를 찾았다. 4년간의 협상 끝에 1935년 6월 베네치아 시는 궁전을 매입하여 18세기 베네치아 미술관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천장 프레스코화를 포함한 18세기의 미술 작품들은 시가 소유한 다른 저택과 컬렉션에서 카 레초니코로 옮겨져 천장의 원래 프레스코화와 함께 전시되었다. 시는 또한 티에폴로, 과르디, 카노바 및 기타 예술가들의 작품을 추가로 구입하여 컬렉션을 늘렸다. 건물은 1970년대 후반에 대대적인 복원 공사를 거쳐 2001년에 완공되었다.

3. 주요 공간

카 레초니코의 주요 공간은 1층, 피아노 노빌레, 2층 갤러리, 3층과 메자닌으로 구성되어 있다.
피아노 노빌레 (Piano Nobile)카 레초니코의 공식적인 방들은 피아노 노빌레에 위치해 있다.


  • 그랜드 살롱 (무도회장): 건물 뒤편에 있는 14 x 24미터 크기의 방으로, 조르조 마사리가 만들었다. 2층 높이에 지롤라모 멩고치 콜로나가 벽과 천장에 그린 ''트롱프뢰유'' 건축물 때문에 더 높아 보인다. 천장 중심부에는 조반니 바티스타 크로사토가 그린 아폴로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 사이를 마차를 타고 가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무도회장 입구 문 맞은편 벽에는 이중 독수리가 있는 레초니코 가문의 문장이 있다. 18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나무와 금박 금속으로 만든 두 개의 샹들리에가 있다. 안드레아 브루스톨론이 조각한 18세기 조각상(흑단으로 조각된 에티오피아 전사 조각상 포함)으로 장식되어 있다.
  • 알레고리 살롱: 클레멘스 13세 레초니코 교황의 조카 루도비코 레초니코와 파우스티나 사보르난의 1758년 결혼 기념 방이다. 잠바티스타 티에폴로와 잠도메니코 티에폴로 부자가 그린, 신랑과 신부가 아폴로의 전차에 실려 가는 모습을 묘사한 대형 프레스코화가 천장에 있다. 티에폴로의 프레스코화는 지롤라모 멩고치 콜로나가 그린 건축물, 가짜 난간 등 ''트롱프뢰유'' 그림으로 프레임을 이루고 있다. 18세기 전반 및 중반의 이탈리아 예술가들의 그림과 가구가 있으며, 안톤 라파엘 멩스가 그린 교황 클레멘스 13세 레초니코의 초상화, 프란체스코 주노의 ''제단화'', 조각된 호두나무의 프리에-디외가 있다.
  • 채플: 알레고리 살롱에서 리오 산 바르나바 위로 매달린 작은 공간이다. 18세기 후반 아우렐리오 레초니코 또는 교황 클레멘스 13세의 조카인 추기경 레초니코가 지었다. 흰색 벽에 조각되고 금박을 입힌 로코코 스투코 조각, 프란체스코 주노의 제단화 ''성모와 성인'', 베네치아 로코코 양식의 ''프리에-디외''가 있다.
  • 파스텔 방(Pastel Room): 원래 알현실로, 카를로 레초니코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곳이다. 천장에는 트롱프뢰유 기법 액자 안에 예술의 승리를 묘사한 프레스코화가 있다. 잠바티스타 크로사토 또는 가스파레 디지아니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로살바 카리에라를 비롯한 베네치아 예술가들의 파스텔 초상화가 걸려 있다.
  • 태피스트리 홀(Tapestry Hall): 17세기 말 플랑드르 태피스트리 3점과 조각 및 금박 가구가 전시되어 있다. 천장 프레스코화는 자코포 과라나의 '''미덕의 승리'''이다. 1760년에 제작된 양산을 든 중국 남자가 꽃무늬로 둘러싸인 래커 그림이 있는 노란색 문이 있다.
  • 왕좌의 방(Throne Room): 대운하와 리오 산 바르나바를 모두 조망한다. 1778년 교황 비오 6세가 사용했던 정교하게 조각되고 금박을 입힌 나무 왕좌가 있다. 잔바티스타 티에폴로와 그의 아들들이 그린 천장 프레스코화 ''공적의 알레고리''가 있다. 조각되고 금박을 입힌 테이블, 거울, 촛대에는 푸토와 다양한 덕을 나타내는 조각상이 장식되어 있다. 중국 도자기 화병도 있다.
  • 티에폴로 홀(Tiepolo Hall): 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의 ''무지와 미덕이 무지를 물리치는 모습'' 천장화가 있다. 피에트로 롱기, 프란체스코 과르디 등 베네치아 화가들의 그림과 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의 초기 작품 2점도 전시되어 있다. 게임 테이블, 화려하게 채색된 비서실 등 베네치아 바로크 가구도 있다.
  • 파를라토리오 홀(Parlor Hall): 프란체스코 과르디의 그림 ''산 자카리아 수녀원의 파를러''(1740-1745)에서 이름을 따왔다. 코스탄티노 체디니의 천장 프레스코 ''정의, 신중함, 절제, 명성, 풍요 앞에서 덕에 의해 왕관을 쓴 부부의 조화''가 있다.
  • 녹색 래커 방(Sala delle Lacche Verdi): 중국풍 모티프가 있는 녹색과 금색으로 칠해진 가구 세트 ''Salotto Calbo-Crotta''가 있다. 조반니 안토니오 과르디의 ''다이애나의 승리'' 프레스코화가 천장에 있다. 마르코 리치, 루카 카르레바리스, 요한 안톤 아이스만, 야콥 데 휴쉬, 주세페 자이스의 풍경화와 베두테가 있다.

2층 갤러리18세기 베네치아 회화와 장식 예술품을 전시하는 갤러리가 있다.

  • 카날레토의 "건축적 변덕", 대운하의 두 장면
  • 가스파레 디지아니의 "성 마르타 축제"
  • 프란체스코 과르디의 베네치아 삶을 묘사한 장면
  • 베르나르도 스트로치, 피에트로 벨로티, 세바스티아노 붐벨리, 프란체스코 주카렐리, 주세페 모레티, 니콜로 카사나, 로도비코 갈리나, 안토니오 벨루치, 도메니코 마지오토, 안토니오 마리네티, 주세페 노가리, 프란체스코 카펠라 등의 작품

지암도메니코 티에폴로 프레스코화2층의 한 구역에는 빌라 지아니고에 있던 지암도메니코 티에폴로의 프레스코화가 있는 방들이 있다.

  • 복도: 니콜로 밤비니의 ''아킬레와 리코메데의 딸들'', ''사비니 여인의 강탈'', 프란체스코 폰테바소의 ''베네치아의 신격화'', 지암도메니코 티에폴로의 ''달리는 참새 떼를 쫓는 매'' 등이 있다.
  • 풀치넬라 방: 코메디아 델라르테의 등장인물 풀치넬라를 묘사한 프레스코화가 있다.
  • 켄타우로스 캐비닛과 사티로스 캐비닛: 켄타우로스사티로스를 주제로 한 단색 장면들이 있다.
  • 예배당: 성 예로니모 에밀리안을 묘사한 그림이 있다.

과르디 방(Guardi Room)안토니오 과르디가 그린 프레스코화 ''미네르바'', ''불카누스의 대장간 앞에서 비너스와 큐피드'', ''아폴로''가 있다. 안토니오 코라디니의 ''베일의 여인'' 조각상도 있다.
롱기 방(Longhi Room)지암바티스타 티에폴로의 천장화 "제피로스와 플로라"와 피에트로 롱기의 베네치아 일상생활을 묘사한 그림들이 있다.

3. 1. 1층과 안뜰

방문객들은 보통 곤돌라를 타고 대운하로 연결되는 정문으로 도착했다. 건물은 좁고 깊으며, 운하에 면한 정면은 폭이 세 개의 방에 불과하다. 방문객들은 입구를 지나 레초니코 가문의 문장이 있는 분수가 있는 안뜰까지 긴 복도를 통과한다. 분수 뒤에는 베네치아 거리로 이어지는 입구가 있다. 1층에서 방문객들은 지우스토 르 코르의 조각상으로 장식된 대리석 난간이 있는 명예의 계단을 통해 ''피아노 노빌레''로 올라간다. 르 코르는 17세기 후반 베네치아의 주요 조각가였으며, 건물 최초의 건축가인 발다사레 롱게나와 함께 많은 프로젝트에 긴밀히 협력했다.[1]

3. 2. 피아노 노빌레 (Piano Nobile)

카 레초니코의 공식적인 방들은 ''피아노 노빌레''에 있다. 가장 크고 인상적인 방은 건물 뒤편에 있는 14 x 24미터 크기의 '''그랜드 살롱''' 또는 무도회장이다. 조르조 마사리가 만든 이 방은 2층 높이이며, 지롤라모 멩고치 콜로나가 벽과 천장에 그린 ''트롱프뢰유'' 건축물 때문에 훨씬 더 높아 보인다.[1] 조반니 바티스타 크로사토가 그린 천장 중심부에는 아폴로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 사이를 마차를 타고 가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이중 독수리가 있는 레초니코 가문의 문장은 무도회장의 입구 문을 마주보는 벽에도 두드러지게 표시되어 있다. 18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나무와 금박 금속으로 만든 두 개의 거대한 샹들리에는 건물의 원래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몇 안 되는 비품 중 하나이다. 현재 무도회장은 안드레아 브루스톨론이 조각한 18세기 조각상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여기에는 흑단으로 조각된 에티오피아 전사의 조각상도 포함되어 있다.[1]

교황 클레멘스 13세 레초니코의 조카이자 미래의 산 마르코 감사관인 루도비코 레초니코와 파우스티나 사보르난의 1758년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장식된 방인 '''알레고리 살롱'''도 ''피아노 노빌레''에 있다. 천장에는 잠바티스타 티에폴로와 그의 아들 잠도메니코 티에폴로가 그린 대형 프레스코화가 있는데, 신랑과 신부가 아폴로의 전차에 실려 운반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4] 이 작품은 1762년 마드리드로 떠나기 전 티에폴로가 베네치아에서 제작한 마지막 작품 중 하나였다. 티에폴로는 12일 만에 천장 작업을 마치고 비계를 설치했다. 그랜드 살롱의 그림과 마찬가지로 티에폴로의 프레스코화는 지롤라모 멩고치 콜로나가 그린 건축물, 가짜 난간 등의 ''트롱프뢰유'' 그림으로 프레임을 이루고 있다. 그는 또한 그랜드 살롱의 페인트 프레임도 만들었다. 이 그림은 태양신 아폴로가 이끄는 전차에 탄 신혼 부부를 묘사하고 있다. 다른 우화 인물로는 눈을 가린 큐피드, ''푸티''와 비둘기의 비행, 나팔을 든 명성의 인물, 구름 위의 세 명의 은총, 명예를 상징하는 월계관을 쓴 수염이 덥수룩한 노인, 그리고 베네치아의 상징인 사자와 두 가문의 문장이 있다.[1]

알레고리 살롱의 가구는 18세기 전반 및 중반의 이탈리아 예술가들의 그림과 가구를 포함했는데, 여기에는 안톤 라파엘 멩스가 그린 교황 클레멘스 13세 레초니코의 초상화, 티에폴로의 제자인 프란체스코 주노가 그린 ''제단화'', 그리고 이탈리아 로코코 양식의 환상을 보여주는 조각된 호두나무의 프리에-디외가 포함된다.

알레고리 살롱에서 리오 산 바르나바 위로 매달린 작은 '''채플'''로 통하는 통로가 있다. 채플은 18세기 후반에 아우렐리오 레초니코 또는 교황 클레멘스 13세의 조카인 추기경 레초니코에 의해 지어졌다. 흰색 벽에 조각되고 금박을 입힌 로코코 스투코 조각과 티에폴로의 제자인 프란체스코 주노가 그린 제단화 ''성모와 성인'', 그리고 뒤틀리고 돌아가는 베네치아 로코코 양식의 ''프리에-디외'' 또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좌석 등 일부 원래 장식이 남아 있다.[1]

The Tapestry Hall에는 17세기 말의 거대한 플랑드르 태피스트리 3점과 당시의 조각 및 금박 가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천장 프레스코화는 자코포 과라나의 '''미덕의 승리'''를 묘사한다. 또한 눈에 띄는 것은 노란색 문으로, 1760년에 제작된 양산(파라솔)을 든 중국 남자가 꽃무늬로 둘러싸인 래커 그림이 그려져 있다.[1]

3. 3. 2층 갤러리

두 번째 층(미국에서는 세 번째 층)에는 18세기 베네치아 회화와 장식 예술품을 전시하는 갤러리가 있다. 카날레토의 주요 작품 중 "건축적 변덕"과 1719-20년에 그려진 대운하의 두 장면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는 그의 유명한 베네치아 풍경 연작의 시작을 알렸다.[5] 이 작품들은 1983년 베네치아 시에서 박물관을 위해 구입했다.[5] 가스파레 디지아니의 항구 그림 "성 마르타 축제"와 프란체스코 과르디가 그린 당대 베네치아의 삶을 묘사한 여러 유명한 장면들도 전시되어 있다.[5]

이 층에서는 치마 다 코넬리아노, 알비세 비바리니, 보니파초 데 피타티, 틴토레토, 안드레아 스키아보네, 바사노 가문, 파올로 피아밍고, 람베르트 수스트리스, 파도바니노, 도메니코 카르피노니, 피에트로 델라 베키아, 조반니 세갈라, 팔마 일 조바네, 베르나르도 스트로치, 프란체스코 마페이, 조반 바티스타 란게티, 피에트로 리베리, 안토니오 발레스트라, 니콜로 밤비니, 조반니 바티스타 피아제타, 니콜라 그라시, 피에트로 롱기, 로살바 카리에라, 세바스티아노 리치, 마르코 리치, 조반니 안토니오 펠레그리니, 자코포 아미고니, 안토니오 마리니, 프란체스코 주카렐리, 주세페 자이스, 주세페 베르나르디노 비손, 나탈레 스키아보니, 이폴리토 카피, 만치니, 엠마 치아르디의 작품을 볼 수 있다.[5]

3. 4. 3층과 메자닌: 마르티니 컬렉션과 메스트로비치 컬렉션

3층에는 1936년에 당시 약국의 오리지널 자료로 복원된 18세기 베네치아 약국이 재현되어 있다. 또한 15세기부터 19세기 말까지 베네치아 거장들의 작품 264점을 전시하는 에지디오 마르티니의 수집 미술관도 있다. 이 공간은 3층 전체를 거의 다 차지하며, 베르나르도 스트로치, 프란체스코 마페이, 피에트로 베키아, 티에폴로 부자, 잠바티스타 피아체타, 가스파레 디치아니 등 베네치아 거장들의 중요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지상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 중이층에는 1945년 달마티아에서 베네치아로 이주한 페루치오 메스트로비치가 수집한 메스트로비치 컬렉션 미술관이 있다. 그는 2001년 12월과 2009년 10월에 자신의 컬렉션을 박물관에 기증했다. 이 컬렉션은 15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는 약 30점의 회화로 구성되어 있으며, 야코포 틴토레토와 보니파치오 베로네세의 주요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

최상층에서는 조반니 바티스타 피아체타의 역사적인 작품인 ''다리우스의 죽음''과 피에트로 벨로티의 초상화 3점, 베네치아 예술가 마리아 몰린의 파스텔화 작품도 볼 수 있다.

참조

[1] 웹사이트 Canaletto painting http://www.museicivi[...]
[2] 웹사이트 Cole Porter Is Dead; Songwriter Was 72 https://www.nytimes.[...] 1964-10-16
[3] 서적 Billboard https://books.google[...] Nielsen Business Media, Inc. 1949-10-29
[4] 웹사이트 Tiepolo fresco http://www.museicivi[...]
[5] 웹사이트 Third floor. http://carezzonico.v[...] 2016-01-17
[6] 서적 La donna nella pittura italiana del Seicento e Settecento: il genio e la grazia https://books.google[...] U. Alleman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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