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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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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토카타는 16세기 후반 이탈리아에서 처음 나타난 음악 형식으로, 즉흥적인 성격의 짧은 곡으로 시작하여, 오르간이나 건반악기를 위한 기교적인 곡으로 발전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클라우디오 메룰로, 안드레아 가브리엘리 등이, 바로크 시대에는 지롤라모 프레스코발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등이 토카타를 작곡하며 이 형식을 발전시켰다.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 라단조"는 가장 유명한 오르간 작품 중 하나이다. 낭만주의 시대와 20세기에도 로베르트 슈만,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등 많은 작곡가들이 토카타를 작곡했으며, 오르간, 피아노, 오케스트라 등 다양한 편성으로 연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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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카타

2. 역사

16세기까지 기악 음악은 성악 앙상블을 위한 다성 음악의 즉흥적인 전용 또는 편곡이었다. 오르간교회 전례에서 성악 다성 음악의 반주 악기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합창의 음정을 안정시키는 목적도 있었다. 최초의 토카타적인 특징을 가진 악곡은 교회에서 종교곡을 연주할 때 음을 제시하는 행위("음 맞추기")를 음악적으로 발전시킨 것으로, 일종의 화성적 진행에 음계적 구절을 동반한 간단한 즉흥곡이었다. 이러한 악곡은 초기 단계에서는 프렐류디움, 리체르카레 등으로 불렸다.[5]

류트나 비우엘라 등의 발현 악기에서도 성악 다성 음악을 편곡하여 연주하는 것이 성행했으며, 도입 부분으로 즉흥적인 악곡을 연주하기도 했다. 이들은 Ricercare라고 불리는 한편 Tastar de Corde(이탈리아어), Tiento(스페인어) 등으로 호칭되기도 했다. 이들은 각각 "현에 닿다", "감촉"의 의미로, 토카타(Toccata)와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오르간용 토카타도 이 계보에 속하는 악곡이다. 토카타라는 명칭을 가진 오르간 곡을 수록한 출판보는 1590년대에 처음 나타났으며,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안니발레 파도바노와 안드레아 가브리엘리의 것을 들 수 있다. 파도바노의 악보집 ''Toccate et ricercari d’organo''는 1604년에 출판되었지만, 파도바노는 1575년에 사망했으므로 16세기 중반에는 이미 오르간용 토카타가 출현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토카타의 발생은 초기 바로크 시대까지의 토카타에서 사용된 선법을 명기하는 곡명 표기와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제1선법의 토카타"는 그 토카타가 도리아 선법으로 쓰여 있음을 의미하며, 그 곡이 도리아 선법의 다성 음악의 음 맞추기 혹은 도입에 사용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2. 1. 르네상스 시대

토카타는 르네상스 시대 후기인 16세기 후반 이탈리아 북부에서 처음 나타났다. 초기에는 성악곡의 반주나 전주곡 역할을 하는 짧고 즉흥적인 성격의 곡이었다. 1590년대에 출판된 여러 작품집에는 클라우디오 메룰로, 안드레아 가브리엘리, 조반니 가브리엘리, 아드리아노 반키에리, 루차스코 루차스키와 같은 작곡가들의 토카타가 수록되어 있다.[5] 이들은 한 손으로 화음 반주에 맞춰 다른 손으로 기교적인 런과 화려한 패시지를 연주하는 건반악기 작품이었다.

초기 토카타는 교회에서 종교곡을 연주할 때 음을 제시하는 행위를 음악적으로 발전시킨 것으로, 프렐류디움, 리체르카레 등으로 불렸다. 류트나 비우엘라 등의 발현 악기에서도 성악 다성 음악의 도입 부분으로 즉흥적인 악곡을 연주했는데, 이들은 "현에 닿다"라는 의미의 Tastar de Corde(이탈리아어), Tiento(스페인어) 등으로 불렸으며, 이는 토카타와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오르간용 토카타도 이 계보에 속하며, 1590년대에 처음으로 토카타라는 명칭을 가진 오르간 곡이 출판되었다. 안니발레 파도바노와 안드레아 가브리엘리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파도바노의 악보집 ''Toccate et ricercari d’organo''는 1604년 출판되었지만, 그의 사망 연도는 1575년이므로 16세기 중반에는 이미 오르간용 토카타가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초기 토카타의 발생은 선법을 명기하는 곡명 표기와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제1선법의 토카타"는 도리아 선법으로 쓰여 있음을 의미하며, 그 곡이 도리아 선법의 다성 음악의 도입에 사용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파도바노와 안드레아 가브리엘리의 토카타는 단순한 화성 진행 부분과 음계적 주구 부분의 조합으로 쓰였지만, 점차 모방적, 대위법적인 악상으로 대체되었다. 베네치아 악파의 클라우디오 메룰로는 대위법적 부분을 갖춘 르네상스적 토카타 양식의 완성자로 여겨진다.

당시 한스 레오 하슬러는 베네치아에서 가브리엘리 형제에게 배우고 토카타 형식을 독일에 전파했다. 그는 이탈리아풍의 건반 음악을 독일에 가져왔다.

같은 시기에 플랑드르·네덜란드에도 뛰어난 오르가니스트들이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얀 피터스존 스벨링크이다. 스벨링크의 토카타는 십여 곡이 알려져 있으며, 형식상 베네치아 악파 등 이탈리아의 토카타와 유사하지만, 보다 구조적인 패시지워크가 특징이다. 이는 윌리엄 버드, 존 불, 필립스 등 영국 버지널 악파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이 시기 가장 중요한 건반 음악 작곡가는 지롤라모 프레스코발디이며, 그의 두 권의 토카타집(제1권 1615년/1637년 개정, 제2권 1627년)은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여겨진다. 프레스코발디는 토카타집 제1권 서문에서 연주 방법에 대한 주석을 통해, 몬테베르디 등의 마드리갈에서처럼 박자를 변화시켜 감정을 표현하는 제2작법을 건반 음악에 도입하겠다고 표명했다. 이는 르네상스적 형식을 벗어나 바로크적인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프레스코발디 토카타의 특징 중 하나는 카덴차로 끝나는 악절들을 차례차례 펼치는 형식에 있다.

르네상스 말기부터 초기 바로크 시대에 걸쳐 토카타는 전성기를 맞이했다. 이 시기에는 오르간, 쳄발로와 같은 건반악기 외에, 류트(조반니 지롤라모 카프스베르거, 알레산드로 피치니니 등)나 하프(조반니 마리아 트라바치 등)를 위한 토카타도 만들어졌다. 이 작품들은 각 악기의 테크닉에 따른 독자적인 표현을 갖고 있지만, 구성이나 주구의 만들기 등에서 프레스코발디 등 건반악기의 토카타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

2. 2. 바로크 시대

바로크 음악 토카타는 지롤라모 프레스코발디로부터 시작되었다.[1] 프레스코발디는 토카타를 여러 부분으로 나누고, 강렬함과 기교를 향상시켜 바로크 토카타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는 건반 음악에서 최초로 진정한 바로크적 표현을 사용한 음악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토카타는 어느 정도 정리된 악절을 차례차례 펼치는 형식으로, 이러한 악절 구성은 훗날까지 계승되었다.

프레스코발디의 제자들, 특히 미켈란젤로 로시는 프레스코발디의 반음계와 기괴한 리듬 표현법을 더욱 발전시켰다. 요한 야코프 프로베르거 또한 프레스코발디의 영향을 받았지만, 개별 악절이 더 길고 곡 전체의 조화를 이루는 특징을 보였다.

바로크 시대의 주요 토카타 작곡가로는 요한 파헬벨, 미켈란젤로 로시, 요한 야코프 프로베르거, 얀 피터스존 스벨링크,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 디트리히 북스테후데 등이 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토카타 형식을 절정에 올려놓았다. 그의 토카타와 푸가 라단조, BWV 565는 오늘날 가장 유명한 오르간 작품 중 하나이다.[1] 바흐의 하프시코드 토카타는 푸가, 레치타티보, 아리아 등 다양한 악장을 포함하는 다악장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2. 3. 바로크 이후 시대

바로크 시대 이후 토카타 작곡은 뜸해졌지만, 낭만주의 음악 시대에 로베르트 슈만프란츠 리스트가 각각 피아노 토카타를 작곡했다. 슈만의 토카타 다단조는 연주하기 매우 어려운 작품으로 알려져 있으며, 리스트의 토카타는 만년에 작곡된 짧고 간결한 작품이다. 소규모 토카타는 "토카티나"라고 불리기도 한다.

20세기 고전 음악 초기에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아람 하차투리안은 독주 피아노를 위한 토카타를 작곡했으며, 모리스 라벨은 ''쿠프랭의 무덤''의 일부로, 클로드 드뷔시는 모음곡 ''피아노를 위해''의 일부로 토카타를 작곡했다.

프랑스 낭만주의 오르간 악파에서는 샤를 마리 비도르의 ''교향곡 5번'' 마지막 악장과 루이 비에르느의 ''교향곡 1번'' 피날레가 유명한 토카타 작품이다. 이들은 빠른 화음 진행과 강력한 멜로디가 특징이다.

토카타는 오케스트라 작품에도 등장하는데, 랄프 본 윌리엄스의 교향곡 8번 마지막 악장이 대표적인 예이다.

고전 시대에는 토카타라는 이름이 붙은 작품이 거의 없었지만, 무한 동력 (moto perpetuo) 적인 곡상은 피아노 음악으로 계승되었다. 낭만파 시대의 토카타 대표 예는 로베르트 슈만의 토카타 작품 7이다.

근대에 들어서 클로드 드뷔시의 "피아노를 위하여"(Pour le piano)의 제3곡이나, 모리스 라벨의 "쿠프랭의 무덤"(Le Tombeau de Couperin) 제6곡이 주목할 만한 토카타의 예이다. 프로코피예프의 토카타 작품 11도 이 계보 위에 놓이는 작품이다.

3. 주요 특징

토카타는 일반적으로 빠른 템포와 화려한 기교, 즉흥적인 느낌을 주는 악구, 화음과 푸가 부분의 교대로 구성된다.[1] 바로크 시대의 토카타는 종종 규칙적인 템포가 없고 즉흥적인 성격이 강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오르간 토카타는 종종 독립적인 푸가 악장과 함께 연주되기도 한다.[1]

바로크 토카타는 지롤라모 프레스코발디로부터 시작되었으며, 르네상스 시대의 토카타보다 여러 부분으로 나뉘고 길어졌으며, 강렬함과 기교가 향상되었다.[1] 종종 빠른 런과 아르페지오가 화음 또는 푸가 부분과 번갈아 나타났다.[1] 바흐 이전 시대의 토카타 작곡가로는 요한 파헬벨, 미켈란젤로 로시, 요한 야코프 프로베르거, 얀 피터스존 스벨링크,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 디트리히 북스테후데 등이 있다.[1]

바흐의 토카타는 이 형식의 가장 유명한 예 중 하나이며, 그의 토카타와 푸가 라단조, BWV 565는 오늘날 가장 인기 있는 오르간 작품 중 하나이다.[1] 바흐의 하프시코드 토카타 BWV 910-916은 푸가, 수사적인 장식, 레치타티보 및 아리아와 같은 악장을 포함하는 여러 부분으로 구성된 작품이다.[1]

바로크 시대 이후 토카타는 덜 빈번하게 발견되지만, 낭만주의 음악 시대에는 로베르트 슈만프란츠 리스트가 각각 피아노 토카타를 작곡했다.[1] 20세기 고전 음악 초기에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아람 하차투리안은 각각 독주 피아노를 위한 토카타를 작곡했으며,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은 ''쿠프랭의 무덤''의 일부로 토카타를 작곡했다.

4. 대표적인 토카타 작품

바로크 시대 이후 토카타는 자주 작곡되지 않았지만, 몇몇 주목할 만한 작품들이 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하프시코드 토카타 BWV 910-916은 푸가, 수사적인 장식, 레치타티보, 아리아와 같은 악장을 포함하는 여러 부분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샤를 발랑탱 알캉은 마지막 출판물(작품 75)로 짧은 토카티나를 작곡했다.

프랑스 낭만주의 오르간 악파에서 토카타 형식은 매우 중요했으며, 자크 니콜라 레멘스가 ''팡파르''로 그 기반을 다졌다. 이 스타일의 토카타는 일반적으로 빠른 화음 진행과 강력한 멜로디(종종 페달로 연주됨)가 결합되어 구성된다. 대표적인 예로는 샤를 마리 비도르의 교향곡 5번 마지막 악장과 루이 비에르느의 ''교향곡 1번'' 피날레가 있다.

오케스트라를 위한 토카타 작품도 있는데, 랄프 본 윌리엄스의 교향곡 8번 마지막 악장이 대표적이다. 존 애덤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마지막 악장은 "토카레"라고 불리는데, 이는 토카타라는 단어의 기원을 언급한다. 파울 힌데미트의 다섯 번째 ''캄머무지크'' (비올라 협주곡) 첫 번째 악장(''Schnelle halbe'')은 토카타로 쓰였다.[3] 에마 루 디머는 오르간을 위한 여러 토카타 외에도 플루트 합창단, 바이올린과 피아노, 솔로 팀파니, 6개의 말렛 타악기를 위한 토카타를 작곡했다.[3] 사무엘 바버의 바이올린 협주곡 피날레도 토카타로 묘사될 수 있다. 아르헨티나 작곡가 알베르토 히나스테라는 하프 협주곡, 바이올린 협주곡, 기타 소나타, 피아노 소나타 등에서 토카타 또는 토카타와 유사한 형식을 피날레로 사용했다.

4. 1. 오르간

바로크 토카타는 지롤라모 프레스코발디로부터 시작되었으며, 르네상스 시대의 토카타보다 여러 부분으로 나뉘고 길어졌다. 또한, 강렬함과 기교가 향상되어 이 시대 건축물에서 볼 수 있는 압도적인 세부 사항과 같은 과장된 극치에 도달했다. 종종 빠른 런과 아르페지오가 화음이나 푸가 부분과 번갈아 나타났다. 때로는 규칙적인 템포가 없고, 거의 항상 즉흥적인 느낌이 있었다.

바흐 이전 시대의 토카타 작곡가로는 요한 파헬벨, 미켈란젤로 로시, 요한 야코프 프로베르거, 얀 피터스존 스벨링크,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 디트리히 북스테후데 등이 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토카타는 이 형식의 가장 유명한 예 중 하나이며, 그의 토카타와 푸가 라단조, BWV 565는 오늘날 가장 인기 있는 오르간 작품 중 하나이지만, 일부에서는 그 작곡가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있다.[1] 그의 오르간 토카타는 즉흥적인 작곡이며, 종종 독립적인 푸가 악장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경우, 토카타는 일반적으로 더 안정적인 전주곡 대신 사용된다.

4. 2. 피아노

낭만주의 음악 시대에 로베르트 슈만프란츠 리스트는 각각 피아노 토카타를 작곡했다. 슈만의 토카타 다단조는 레퍼토리에서 가장 기술적으로 어려운 작품 중 하나로 꼽히며, 1800년대 이 장르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리스트의 토카타는 만년에 작곡된 매우 짧고 간결한 작품으로, 이름만 토카타일 뿐이다. 소규모 토카타는 때때로 "토카티나"라고 불린다.[2]

20세기 고전 음악 초기에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아람 하차투리안은 각각 독주 피아노를 위한 토카타를 작곡했으며,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은 ''쿠프랭의 무덤''의 일부로 토카타를 작곡했다. 쥘 마스네, 클로드 드뷔시 (모음곡 ''피아노를 위해''와 "비 내리는 정원", 이 곡은 토카타이지만 이름뿐이다), 피에르 상캉, 요크 보웬 (토카타 작품 155)도 토카타를 작곡했다.[2] 카이호스로 샤푸르지 소라브지는 독주 피아노를 위한 토카타 4개를 작곡했고,[2] 모이세스 몰레이로는 2개를 작곡했다. 조르주 에네스쿠의 피아노 모음곡 2번, 작품 10은 토카타로 시작한다. 에릭 사티의 1912년 작 ''진짜 뻣뻣한 전주곡''(개들을 위해) 첫 번째 곡 "엄격한 질책"은 토카타이다. 영국의 작곡가 피터 시본은 바흐의 이전 다단 구성 방식을 피아노 사이클 ''Steps Volume 6: Toccatas and Fantasias''에서 되살렸는데, 그의 6개 예시는 바흐의 토카타 BWV 910-916 사이에 삽입되도록 설계되었다. 같은 작곡가의 이전 사이클 ''Steps Volume 1: An anthology''에는 이탈리아어 ''toccare''를 언급한 ''A Touch''라는 토카타 악장이 포함되어 있다.

프랑시스 풀랑크의 두 대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과 모리스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 피날레는 이름만 다를 뿐 토카타라고 할 수 있다. 벤자민 브리튼의 피아노 협주곡과 니콜라이 메트너의 제2 피아노 협주곡 첫 번째 악장도 토카타이다. 에마 루 디머는 피아노를 위한 토카타 3개를 작곡했다.[3] 사무엘 바버의 피아노 협주곡 피날레도 토카타로 묘사될 수 있다. 아르헨티나 작곡가 알베르토 히나스테라는 종종 토카타 또는 토카타와 유사한 형식을 작품 피날레로 사용했는데, 특히 피아노 협주곡 1번에서 그러하다. 러시아 재즈 작곡가 니콜라이 카푸스틴은 토카티나 2개를 작곡했는데, 하나는 여덟 개의 콘서트 에튀드 작품 40의 일부이고 다른 하나는 작품 36이다. 예브게니 키신은 ''네 개의 피아노 소품'' 작품 1의 일부로 재즈에서 영감을 받은 토카타를 썼다.

참조

[1] 간행물 BWV 565: a toccata in D minor for organ by J. S. Bach? 1981-07-01
[2] 웹사이트 Titles of Works Grouped by Categories http://www.mus.ulava[...] 2012-11-25
[3] 웹사이트 Kammermusik No. 5, for viola and orchestra, Op. 36, No. 4 http://www.classical[...]
[4] 뉴스 Research regarding the fictional toccata by Galuppi of Browning's poem 1923-05-01
[5] 문서 Ricercare(伊)は探す、模索するの意。16世紀後半のかなり早い段階で即興的楽曲の意味では使われなくなり、提示主題とその模倣からなる対位法的楽曲を指すようになる。
[6] 문서 ちなみにフランスではトッカータという曲の形式そのものは定着せず、ほとんど作曲されなかった。
[7] 문서 ただし、ブクステフーデの作品で、「前奏曲とフーガ」、「トッカータとフーガ」といった題名のついた曲は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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