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베셀
1. 개요
프리드리히 베셀은 1784년 독일에서 태어난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이다. 핼리 혜성 궤도 계산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릴리엔탈 천문대 조수를 거쳐 쾨니히스베르크 대학교 천문대장 겸 교수로 임명되었다. 그는 연주시차를 이용해 백조자리 61번 별까지의 거리를 최초로 정확하게 측정했고, 시리우스와 프로키온의 동반성 존재를 예측하는 등 천문학 발전에 기여했다. 또한 베셀 함수, 베셀 타원체, 베셀 요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업적을 남겼으며, 영국 왕립 천문학회 금메달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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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악기)
공은 금속으로 제작된 타악기로, 다양한 문화권에서 의식, 신호, 음악 연주 등에 사용되며, 형태와 용도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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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회의
국무회의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의장으로, 예산, 법률안, 외교, 군사 등 국정 현안을 심의하는 중요한 기관이며,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으로 구성되고, 정례회의는 매주 1회, 임시회의는 필요에 따라 소집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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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토카
라우토카는 피지 비치레부섬 서부에 위치한 피지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서부 지방의 행정 중심지로, 사탕수수 산업이 발달하여 "설탕 도시"로 알려져 있으며, 인도에서 온 계약 노동자들의 거주와 미 해군 기지 건설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피지 산업 생산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주요 기관들이 위치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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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넛
코코넛은 코코넛 야자나무의 열매로 식용 및 유지로 사용되며, 조리되지 않은 과육은 100g당 354kcal의 열량을 내는 다양한 영양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코코넛 파우더의 식이섬유는 대부분 불용성 식이섬유인 셀룰로오스이며, 태국 일부 지역에서는 코코넛 수확에 훈련된 원숭이를 이용하는 동물 학대 문제가 있다.
2. 생애
프로이센 왕국 민덴에서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난 프리드리히 베셀은 14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브레멘의 무역 회사 견습생으로 일하며 수학과 항해에 재능을 보였다. 이는 자연스럽게 천문학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1804년 핼리 혜성의 궤도 계산을 개선하여 천문학자 하인리히 빌헬름 올버스의 주목을 받았고, 이후 릴리엔탈의 사설 천문대에서 조수로 일하며 제임스 브래들리의 항성 관측 자료를 정리했다. 정규 대학 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1810년 25세의 나이로 새로 설립된 쾨니히스베르크 천문대의 책임자로 임명되어 사망할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학위 문제로 논란이 있었으나, 동료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의 도움으로 1811년 괴팅겐 대학교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베셀과 가우스는 오랫동안 서신을 교환하며 학문적 교류를 이어갔다.
쾨니히스베르크에서 베셀은 항성 시차 측정, 보이지 않는 동반성 예측 등 중요한 천문학적 업적을 남겼으며, 측지학 분야에도 기여하여 베셀 타원체를 계산하기도 했다.
1842년에는 영국 과학 진흥 협회 회의에 참석하는 등 국제적으로도 활발히 교류했다. 그는 화학자 카를 고트프리트 하겐의 딸 요한나와 결혼하여 두 아들과 세 딸을 두었으며, 그의 가족과 후손 중에는 여러 학자와 전문가가 배출되었다. 물리학자 프란츠 에른스트 노이만과는 동서지간이자 가까운 동료였다.
베셀은 몇 달간의 투병 끝에 1846년 3월, 자신이 평생을 바친 쾨니히스베르크 천문대에서 후복막 섬유증으로 사망했다.
2.1. 초기 생애 및 경력
프리드리히 베셀은 당시 프로이센 왕국의 행정 구역이었던 민덴-라벤스베르크의 수도 민덴에서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4세 때 라틴어 학교 교육에 흥미를 잃고 학교를 그만두었으며, 대신 브레멘에 있는 수입-수출 회사 쿨렌캄프(Kulenkampff)에서 견습생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회사가 화물선 운송에 크게 의존했기 때문에, 베셀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수학적 재능을 항해 관련 문제 해결에 적용하게 되었다. 이는 해상에서 경도를 정확히 측정하는 방법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고, 결국 천문학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1804년, 베셀은 토마스 해리엇과 너새니얼 토포레이가 1607년에 관측했던 오래된 데이터를 활용하여 핼리 혜성의 궤도를 더욱 정확하게 계산해냈다. 이 성과는 당시 독일 천문학계의 저명한 인물이었던 하인리히 빌헬름 올버스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천문학자 프란츠 자비어 폰 자흐는 베셀의 연구 결과를 자신의 저널 Monatliche Correspondenz에 게재하기도 했다.
상업 교육 과정을 마친 베셀은 1806년 쿨렌캄프를 떠나, 카를 루드비히 하르딩의 뒤를 이어 브레멘 근처 릴리엔탈에 위치한 요한 히에로니무스 슈뢰터의 사설 천문대에서 조수로 일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그는 영국의 천문학자 제임스 브래들리가 남긴 방대한 항성 관측 자료를 분석하여 약 3,222개 별들의 정확한 위치를 계산하는 중요한 작업을 수행했다.
정규 대학 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뛰어난 연구 성과는 널리 인정받았다. 1810년 1월, 25세의 젊은 나이에 베셀은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국왕에 의해 새로 설립된 쾨니히스베르크 천문대의 책임자로 임명되었고, 이후 평생을 그곳에서 연구에 헌신했다. 그러나 대학 학위가 없다는 이유로 일부 교수들이 그의 교수 자격에 의문을 제기하자, 동료이자 저명한 수학자인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의 도움으로 1811년 3월 괴팅겐 대학교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2.2. 천문학 연구 시작
베셀은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나 14세에 무역 회사인 쿨렌캄프사에 도제로 들어갔다. 그는 뛰어난 수학적 능력을 발휘하여 회사 경리 업무를 맡았고, 회사가 화물선을 운송 수단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항해 관련 문제 해결에 수학을 응용했다. 이 과정에서 선박의 위치, 특히 경도를 정확히 파악하는 데 천문학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천문학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핼리 혜성의 궤도 계산을 개량한 업적으로 당시 독일 천문학계의 거물이었던 하인리히 빌헬름 올버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 2년 후 그는 쿨렌캄프사를 그만두고 브레멘 근처에 있는 릴리엔탈 천문대의 조수가 되었다. 그는 여기서 제임스 브래들리가 관측하여 정밀한 위치를 제공한 3,222개의 항성 데이터를 연구했다.
2.3. 쾨니히스베르크 천문대장 시절
25세의 나이에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로부터 쾨니히스베르크 대학교의 천문대장으로 임명되었다. 천문대가 아직 건설 중일 때, 베셀은 제임스 브래들리의 관측 데이터를 기반으로 '천문학의 기초'(Fundamenta Astronomiae라틴어)를 정교하게 다듬었다. 이 연구의 예비 결과로 그는 대기 굴절 표를 만들어 1811년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에서 랄랑드 상을 수상했다. 쾨니히스베르크 천문대는 1813년에 본격적으로 운영을 시작했다.
1819년부터 베셀은 게오르크 폰 라이헨바흐의 자오선환을 사용하여 5만 개 이상의 별의 위치를 정밀하게 측정했다. 이 작업에는 자격을 갖춘 제자들이 참여했으며, 그중 가장 저명한 인물은 프리드리히 빌헬름 아르겔란더였다. 그의 후계자로는 오토 아우구스트 로젠베르거와 아우구스트 루트비히 부쉬가 있었다.
베셀은 별의 시차 측정법을 사용하여 별까지의 거리를 계산한 최초의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요제프 폰 프라운호퍼가 제작한 헬리오미터를 이용하여 태양계 너머의 천체까지 거리를 측정하는 데 신뢰할 만한 값을 최초로 얻어냈다. 천문학자들은 이전부터 시차 관측이 항성 간 거리 측정의 열쇠가 될 것이라 생각했고, 1830년대에는 정확한 시차 측정을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 1838년, 베셀은 61 백조자리의 시차가 0.314 각초임을 발표하며 이 경쟁에서 승리했다. 이는 별이 약 10.3 광년 (약 3 파섹) 거리에 있음을 의미했다. (현대 히파르코스 위성 관측값은 11.4 광년으로, 베셀의 측정치는 약 9.6%의 오차를 보였다.) 이 성과는 우주의 크기에 대한 인류의 이해를 확장했을 뿐만 아니라, 1728년 제임스 브래들리의 광행차 발견 이후 지구의 상대적 운동에 대한 두 번째 경험적 증거를 제시한 중요한 발견이었다. 베셀의 발표 직후, 프리드리히 게오르크 빌헬름 슈투르베와 토마스 제임스 헨더슨도 각각 베가와 센타우루스자리 알파의 시차 측정 결과를 보고했다.
베셀은 아돌프 레프솔트의 새로운 자오선환을 이용한 정밀 측정을 통해 시리우스와 프로키온의 고유 운동에서 미세한 편차를 발견했다. 그는 이 편차가 눈에 보이지 않는 동반성의 중력적 인력 때문에 발생한다고 추론했다. 1841년 시리우스의 "어두운 동반자" 존재 가능성을 발표했고, 이는 1844년 논문으로 정식 발표되었다. 이는 위치 측정을 통해 관측되지 않은 동반성의 존재를 정확하게 예측한 최초의 사례였으며, 결국 1862년 알반 그레이엄 클라크에 의한 시리우스 B의 발견으로 이어졌다. 이는 백색 왜성의 최초 발견이기도 했다. 이후 존 마틴 셰이버를레는 1896년에 프로키온의 동반성인 프로키온 B를 발견했다.
또한 베셀은 여러 관측자가 동시에 별의 통과 시간을 기록할 때 약간씩 다른 값을 얻는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지했다. 이 효과는 훗날 '개인 방정식'으로 불리게 되었다.
1824년에는 일식이나 월식과 같은 천문 현상의 상황을 계산하는 새로운 방법인 베셀 요소를 개발했다. 이 방법은 계산 과정을 크게 단순화하면서도 정확성을 유지하여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베셀의 제안에 따라 프로이센 과학 아카데미는 1825년부터 국제 협력 프로젝트로 '베를린 학술 별 지도' 발간을 시작했으며, 요한 프란츠 엥케가 실무 편집자를 맡았다. 이 별 지도는 1846년 9월, 요한 고트프리트 갈레가 위르뱅 르베리에가 예측한 위치 근처에서 해왕성을 발견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19세기 중반, n체 문제와 같은 역학적 중력 시스템을 연구하면서 베셀은 현재 베셀 함수로 알려진 특수 함수를 개발했다. 특정 미분 방정식의 해로서 중요한 이 함수는 고전 물리학과 양자 물리학 전반에 걸쳐 널리 응용된다.
통계학에서는 표본 분산 추정 공식에서 그의 이름을 딴 베셀의 보정이 사용된다. 이는 표본 분산을 계산할 때 분모를 표본 크기 n 대신 n − 1로 나누는 것을 의미하며, 모집단 평균 대신 표본 평균을 사용할 때 발생하는 편향을 보정하기 위한 것이다.
당대의 많은 천문학자들처럼 베셀은 측지학 분야에서도 중요한 기여를 했다. 그는 타원체 위의 측지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발표했으며, 1830년에는 프로이센과 러시아의 삼각망을 연결하기 위해 동프로이센 측량 작업을 왕명으로 수행했다. 이 작업은 당시 프로이센 육군 소령이었던 요한 야콥 바이어와 협력하여 이루어졌고, 최종 보고서는 1838년에 출판되었다. 또한 여러 호 측정 결과를 바탕으로 지구의 모양을 보다 정확하게 나타내는 지구 타원체 모델인 베셀 타원체를 계산했다.
대학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베셀은 당대 천문학계에서 중요한 인물로 인정받았다. 그는 영국 왕립 학회의 외국인 회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달의 맑음의 바다에 있는 가장 큰 충돌구 중 하나에 그의 이름이 붙여졌다. 그는 1829년과 1841년에 영국 왕립 천문학회의 골드 메달을 두 차례 수상했으며, 1842년에는 푸르 르 메리트 훈장을 받았다.
2.4. 말년
베셀은 시리우스와 프로키온의 운동에서 나타나는 미세한 차이를 발견하고, 이것이 보이지 않는 동반성의 중력 때문이라고 추론했다. 1841년 그는 시리우스의 "보이지 않는 동반성"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는 관측되지 않은 천체의 존재를 위치 측정을 통해 정확히 예측한 최초의 사례였으며, 나중에 시리우스 B의 발견으로 이어졌다.
베셀은 정규 대학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당대 천문학계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로 인정받았다. 그는 영국 왕립 학회의 회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달의 맑은 바다에 있는 가장 큰 크레이터 중 하나에 그의 이름이 붙여졌다.
그는 1829년과 1841년 두 차례에 걸쳐 영국 왕립 천문학회로부터 골드 메달을 수상했으며, 1842년에는 푸르 르 메리트 훈장을 받았다.
3. 주요 업적
프리드리히 베셀은 천문학과 수학, 측지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쾨니히스베르크 천문대가 건설되는 동안, 그는 제임스 브래들리의 관측 자료를 바탕으로 '천문학의 기초'(Fundamenta Astronomiae라틴어)를 저술하는 데 힘썼다. 이 연구의 예비 결과로 대기 굴절 표를 만들어 1811년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로부터 랄랑드 상을 받았다. 쾨니히스베르크 천문대는 1813년부터 본격적으로 운영되었다.
1819년부터 베셀은 게오르크 폰 라이헨바흐의 자오선환을 사용하여 프리드리히 빌헬름 아르겔란더와 같은 유능한 제자들의 도움을 받아 5만 개가 넘는 별의 정밀한 위치를 측정하는 방대한 작업을 수행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업적 중 하나는 연주시차 방법을 이용해 항성까지의 거리를 최초로 정확하게 측정한 것이다. 1838년, 요제프 폰 프라운호퍼가 제작한 헬리오미터를 사용하여 61 백조자리의 연주시차를 0.314 각초로 측정했는데, 이는 약 10.3 광년의 거리에 해당한다. 이는 항성 거리 측정의 새로운 장을 열었으며, 우주의 크기에 대한 인식을 크게 확장시켰다. (자세한 내용은 #연주시차 측정 참조)
또한 베셀은 정밀한 관측을 통해 시리우스와 프로키온의 운동에서 미세한 편차를 발견하고, 이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동반성의 중력 때문일 것이라고 추론했다. 1844년 시리우스의 "어두운 동반자" 존재를 발표한 것은 위치 측정을 통해 관측되지 않은 천체의 존재를 예측한 최초의 사례 중 하나였으며, 이는 훗날 시리우스 B(1862년 발견)와 프로키온 B(1896년 발견)의 실제 발견으로 이어졌다.
수학 분야에서는 n체 문제와 같은 역학적 시스템 연구 과정에서 베셀 함수를 개발했으며, 이는 고전 물리학 및 양자 물리학에서 널리 활용된다. (자세한 내용은 #베셀 함수 참조) 통계학에서는 표본 분산을 계산할 때 편향을 줄이기 위한 베셀의 보정을 고안했다.
측지학 분야에서도 중요한 기여를 했는데, 타원체 위의 측지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정밀한 측량 결과를 바탕으로 지구의 형태를 보다 정확하게 나타내는 베셀 타원체를 정의했다. (자세한 내용은 #베셀 타원체 참조)
이 외에도 여러 관측자가 동일한 현상을 측정할 때 발생하는 미세한 차이, 즉 '개인 방정식' 효과를 처음으로 인지했으며, 일식 계산을 단순화하는 베셀 요소를 개발했다. 또한 그의 제안으로 프로이센 과학 아카데미는 '베를린 학술 별 지도' 제작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이는 훗날 해왕성 발견에 기여하기도 했다. (자세한 내용은 #기타 업적 참조)
3.1. 연주시차 측정
베셀은 별의 시차 방법을 사용하여 별까지의 거리를 측정하려는 오랜 천문학적 과제에 도전했다. 특히 1830년대는 여러 천문학자들이 별의 시차를 최초로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던 시기였다. 베셀은 요제프 폰 프라운호퍼가 제작한 헬리오미터를 이용하여 이 연구를 수행했다.
1838년, 베셀은 61 백조자리의 연주시차를 0.314 각초로 측정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 측정값을 바탕으로 계산된 별까지의 거리는 약 10.3 광년 (약 3 파섹)이었다. 이는 별까지의 거리에 대한 최초의 신뢰할 수 있는 값으로 평가받는다. 현대의 히파르코스 위성이 측정한 시차(0.28547초각)에 기반한 현재 알려진 거리인 11.4 광년과 비교하면, 베셀의 측정값은 약 9.6%의 오차를 가지는, 당시로서는 매우 정확한 결과였다.
베셀의 이 업적은 항성까지의 거리를 신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측정한 최초의 성공 사례로, 천문학자들이 우주의 규모를 이전보다 훨씬 더 광대하게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이는 1728년 제임스 브래들리가 발견한 광행차 현상 이후 지구의 공전 운동을 경험적으로 증명하는 두 번째 증거가 되었다. 베셀의 성공 직후, 프리드리히 게오르크 빌헬름 슈투르베는 베가의 시차를, 토마스 제임스 헨더슨은 센타우루스자리 알파의 시차를 측정하여 발표하며 항성 거리 측정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알렸다.
3.2. 베셀 함수
19세기 두 번째 10년 동안, 베셀은 n체 문제와 같은 역학적 중력 시스템을 연구하면서 현재 베셀 함수로 알려진 것을 개발했다. 특정 미분 방정식의 해에 중요한 이 함수는 고전 물리학 및 양자 물리학 전반에 걸쳐 사용된다.
3.3. 베셀 타원체
베셀은 당대의 많은 천문학자들처럼 측지학 분야에도 관심을 기울여 연구했으며, 주요 난제였던 타원체 위의 측지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는 지구의 형상을 보다 정밀하게 파악하고자 여러 지역의 경도와 위도를 측정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1830년에는 프로이센 국왕의 명령으로 프로이센과 러시아의 기존 삼각망을 연결하기 위한 동프로이센 측량 작업에 착수했으며, 당시 프로이센 육군 소령이었던 요한 야콥 바이어와 협력하여 이 작업을 진행했다. 관련 연구의 최종 보고서는 1838년에 출판되었다.
베셀은 이러한 여러 호 측정(arc measurement) 결과를 종합하고 분석하여, 기존보다 정확도가 향상된 지구 타원체의 제원을 계산해냈다. 이를 바탕으로 1841년, 지구의 반장축(semi-major axis)과 편평도(flattening)를 새롭게 정의한 베셀 타원체를 제안했다. 베셀 타원체는 그 정확성을 인정받아 19세기와 20세기 초반에 걸쳐 세계 여러 나라에서 측지학의 기준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3.4. 기타 업적
베셀은 여러 사람이 동시에 관측할 때, 특히 별의 통과 시간을 기록할 때 약간 다른 값을 얻는다는 현상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이는 나중에 '개인 방정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1824년에는 일식 현상을 계산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이른바 베셀 요소를 개발했다. 이 방법은 계산 과정을 크게 단순화하면서도 정확성을 유지하여 오늘날에도 사용되고 있다.
베셀의 제안으로 프로이센 과학 아카데미는 1825년부터 국제적인 프로젝트로서 '베를린 학술 별 지도' 발간을 시작했으며, 요한 프란츠 엥케가 실무 편집자를 맡았다. 이 지도는 요한 고트프리트 갈레가 1846년 9월 베를린 천문대에서 르베리에가 계산한 위치 근처에서 해왕성을 발견하는 데 기여했다.
19세기 두 번째 10년 동안, n체 문제와 같은 역학적 중력 시스템을 연구하면서 베셀은 현재 베셀 함수로 알려진 수학적 개념을 개발했다. 특정 미분 방정식의 해로서 중요한 이 함수는 고전 물리학 및 양자 물리학 전반에 걸쳐 널리 사용된다.
통계학에서는 표본 분산 추정기 공식에서 분모에 단순히 표본 크기 n 대신 n − 1을 사용하는 것을 베셀의 보정이라고 부른다. 이는 모집단 평균 대신 표본 평균을 사용하여 분산을 계산할 때 발생하는 편향을 수정하기 위한 것이다.
당시 많은 천문학자들처럼 베셀은 측지학 분야에도 기여했다. 그는 타원체 위의 측지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발표했으며, 1830년에는 프로이센과 러시아의 삼각망을 연결하기 위해 동프로이센 측량 작업을 수행하라는 왕명을 받았다. 이 작업은 당시 프로이센 육군 소령이었던 요한 야콥 바이어와 협력하여 이루어졌고, 최종 보고서는 1838년에 출판되었다. 또한 여러 호 측정 결과를 바탕으로 지구 타원체에 대한 더 정확한 추정치인 베셀 타원체를 계산해냈다.
그의 이름은 다음과 같이 자연과학의 여러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 베셀 타원체 (지리학)
* 베셀 함수 (베셀 미분 방정식의 해) (수학)
* 베셀 보간 공식 (수학)
* 베셀 점 (계측 공학)
* 베셀 기점, 베셀 년 (천문학)
* 베셀 필터 (수학)
* 소행성 (1552) 베셀
4. 수상 경력 및 영예
| 연도 | 내용 | 비고 |
|---|---|---|
| 1811 | 게팅겐 대학교 명예 박사 학위 수여 | |
| 1811, 1816 |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 라랑드 상 수상 | |
| 1812 | 프로이센 과학 아카데미 회원 | |
| 1816 |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 회원 | |
| 1823 | 스웨덴 왕립 과학원 외국인 회원 | |
| 1825 | 왕립 학회 회원 | |
| 1827 | 네덜란드 왕립 예술 과학 아카데미의 전신인 네덜란드 왕립 연구소 회원 | |
| 1829, 1841 | 영국 왕립 천문학회 금메달 수상 | |
| 1832 | 미국 예술 과학 아카데미 외국 명예 회원 | |
| 1840 | 미국 철학회 회원 | |
| 1842 | 베로나 국립 과학 아카데미 회원 | |
| 1842 | 푸르 르 메리트 훈장 (민간 훈장) 최초 회원 중 한 명으로 선정 |
베셀의 이름을 딴 최초의 우주 물체는 달의 고요의 바다에 있는 가장 큰 크레이터이다. 소행성대 소행성 1552 베셀은 1938년 그의 시차 결정 100주년을 기념하여 명명되었다.
그린란드의 두 피오르인 베셀 피오르 (북동 그린란드)와 베셀 피오르 (북서 그린란드) 역시 그의 이름을 따 지어졌다.
삼비아의 발트해 호박에서 발견된 에오세 시대의 딱정벌레 화석인 Xyletinus besseli라틴어도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또한, Bar and Spiral Structure Legacy Survey (BeSSeL) 역시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5. 명칭이 붙은 것들
프리드리히 베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다양한 대상에 그의 이름이 붙여졌다.
* 천체 및 지형
달의 고요의 바다에 위치한 가장 큰 크레이터인 베셀 크레이터
소행성대에 있는 소행성 1552 베셀은 1938년 베셀의 시차 측정 성공 100주년을 기념하여 명명되었다.
그린란드의 피오르 두 곳: 베셀 피오르, 북동 그린란드 와 베셀 피오르, 북서 그린란드
* 생물 화석
발트해 호박에서 발견된 에오세 시대의 딱정벌레 화석 Xyletinus besseli는 베셀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 천문학 프로젝트
https://www3.mpifr-bonn.mpg.de/staff/abrunthaler/BeSSeL/index.shtml BeSSel (Bar and Spiral Structure Legacy Survey) 프로젝트
* 과학 및 수학 개념
베셀 타원체 (지리학)
베셀 함수 (수학, 베셀 미분 방정식의 해)
베셀 보간 공식 (수학)
베셀 점 (계측 공학)
베셀 초, 베셀 년 (천문학)
** 베셀 필터 (전자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