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경련
1. 개요
현경련 베네딕타는 한양의 역관 집안 출신으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여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한 한국 천주교의 성인이다. 삯바느질로 생계를 유지하며 교리를 가르치고 신자들을 돌보는 등 헌신적인 활동을 펼쳤으며, 체포 후 혹독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신앙을 지켰다. 1839년 참수형으로 순교했으며, 1925년 복자, 1984년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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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현경련 베네딕타 |
|---|---|
| 출생일 | 1794년 |
| 사망일 | 1839년 12월 29일 |
| 축일 | 9월 20일 |
| 교파 | 로마 가톨릭교회 |
| 출생지 | 서울 |
| 사망지 | 서울 서소문 |
| 직업 | 순교자 |
| 시복일 | 1925년 7월 5일 |
| 시복인 | 교황 비오 11세 |
| 시성일 | 1984년 5월 6일 |
| 시성인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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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 -
김효주 (종교인)
김효주 아녜스는 1816년 밤섬에서 태어나 언니 김효임 콜룸바와 함께 신앙 생활을 하다가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한 한국 천주교의 순교자이며, 1984년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
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 -
김대건
김대건 안드레아는 한국 최초의 천주교 사제이자 순교자로, 천주교 신앙을 가진 가문에서 태어나 사제의 길을 걸으며 마카오와 필리핀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조선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26세에 순교하였고, 그의 순교는 한국 천주교 역사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어 1984년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
1839년 사망 -
김효주 (종교인)
김효주 아녜스는 1816년 밤섬에서 태어나 언니 김효임 콜룸바와 함께 신앙 생활을 하다가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한 한국 천주교의 순교자이며, 1984년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
1839년 사망 -
페르난도 소르
페르난도 소르는 스페인 출신의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로,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양식을 결합한 기타 음악과 교육용 연습곡집으로 유명하며 후대 기타리스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
19세기 가톨릭 순교자 -
주문모
청나라 출신 가톨릭 신부 주문모는 1794년 조선에 잠입하여 선교 활동을 하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하였으며, 초기 조선 천주교회 성장에 기여하여 2014년 시복되었다. -
19세기 가톨릭 순교자 -
김효주 (종교인)
김효주 아녜스는 1816년 밤섬에서 태어나 언니 김효임 콜룸바와 함께 신앙 생활을 하다가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한 한국 천주교의 순교자이며, 1984년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2. 생애
현경련은 한양의 역관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 주문모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1811년 순교자 최창현 요한의 아들과 결혼했으나, 3년 후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자식이 없어 친정 어머니에게 돌아간 후, 삯바느질로 생계를 이으며 사람들의 성화, 문맹인 예비 신자 교육, 냉담교우 격려, 병자 간호 등 여러 활동을 했다. 선교사들이 방문했을 때, 자신의 집에 사람들을 불러들여 성사를 보도록 해주었다.
2.1. 기해박해와 순교
현경련은 한양의 한 역관 집안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 주문모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1811년에 순교자 최창현 요한의 아들과 결혼했지만, 남편은 3년 후에 세상을 떠났다.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친정 어머니에게 돌아왔다. 삯바느질로 생계를 이으며 평온한 삶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하며 살았다. 사람들의 성화와 문맹의 예비 신자를 가르치기, 냉담교우를 격려하기,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병자들을 돌보기, 죽을 위험에 처한 이교도 자녀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등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선교사들이 방문했을 때, 자신의 집에 사람들을 불러들여 성사를 보도록 해주었다.
1839년 기해년의 박해 초기에, 교리 선생이 된 현경련은 박해를 피해 숨었지만, 6~7월 경에 체포되었다. 관리들은 현경련이 선교사들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던 현석문의 누나인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가 숨은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 더 가혹하게 고문했다. 여덟 차례 심문과 두 차례의 주뢰형, 300여 대의 장형을 받았다. 형리들은 선교사들을 체포해서 포상을 받고 싶어했기 때문에, 선교사들에 대한 정보를 캐내기 위해 더 혹독하게 고문했다. 그러나 현경련의 강한 의지로 인해, 그들의 노력은 허사로 돌아갔다. 형조로 압송된 후, 다리를 거의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매질을 당했다. 온몸에 상처가 깊어서 피와 고름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감옥에서 콜레라에 걸려 앓기도 했다.
현경련은 동생 현석문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는 현재 전해지지 않지만, 많은 천주교인들이 그 편지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처형 전 수 시간을 단잠에 빠져 있었다. 1839년 12월 29일 서소문 밖의 사형장으로 끌려나가게 되어 행복해 했으며, 거기서 여섯 명의 교우와 참수를 받아 생을 마감했다. 순교하던 때의 나이는 46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