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리
1. 개요
황정리는 대한민국의 무술가이자 영화 배우, 영화감독, 제작자, 연출가이다. 태권도와 당수도 고수로 육군 병장으로 전역 후 태권도 사범으로 활동하다 1969년 영화 기획가로 데뷔했다. 1974년 영화 배우로 데뷔하여 주로 악당 역할을 맡았으며, 홍콩 영화계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1983년 영화 《광동살무사》로 감독 데뷔 후 무술 감독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서울현대전문학교 액션연기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세계무술총연합회 총재를 맡고 있다.
| 본명 | 황정리 |
|---|---|
| 원어명 | Hwang Jung-Lee (黃正利) |
| 출생일 | 1944년 12월 21일 |
| 출생지 | 일본 오사카시 (현재의 아오모리현) |
| 국적 | 대한민국 |
| 활동 기간 | 1974년–1996년; 2009년 |
| 직업 | 무술가 배우 |
| 별칭 | 다리 파이터의 왕 |
| 관련 인물 | 황춘수(막내 아우) |
| 자녀 | 제이슨황 |
| 소속 | 황정리세계무술총연합회 총재 대테러국제용병협회 최고고문 비케이시큐리티서비스 명예회장 |
| 학력 | 마산고등학교 |
| 웹사이트 | 황정리 공식 웹사이트 |
| 활동 시기 | 홍콩 |
|---|---|
| 활동명 | Hwang Jang-Le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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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 -
저우제룬
저우제룬은 타이완 출신의 가수, 작곡가, 배우, 영화 감독, 사업가로, 다양한 장르를 융합한 음악으로 중화권에서 큰 인기를 얻었으며, 영화 감독 및 사업가로도 활동하며 자선 활동에도 참여한다. -
대만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 -
류자창
류자창은 만주국 하얼빈 출신으로 대만에서 활동한 작곡가 겸 영화 감독으로, "중화민국가", "매화" 등의 히트곡을 작곡하고 '사랑은 여기서 시작된다', '승리' 등의 영화로 금마장 영화제에서 수상했으며, 2001년 금곡장 평생 공로상을 수상했다. -
홍콩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성시경
성시경은 2000년 데뷔한 대한민국의 가수로, 7장의 정규 앨범 발매와 방송 활동을 통해 대중적 인지도를 높이며 여러 시상식에서 수상했다. -
홍콩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함중아
함중아는 1971년 데뷔하여 《내게도 사랑이》, 《풍문으로 들었소》 등의 히트곡을 남긴 대한민국의 록 음악 가수로, 2019년 폐암으로 사망했다. -
대한민국의 남자 태권도 선수 -
문대성
문대성은 태권도 선수로 활동하며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고, 이후 정치인으로 활동하며 국회의원, IOC 선수위원을 역임했으나 논문 표절 논란으로 국회의원직과 IOC 위원직에서 직무 정지되었다. -
대한민국의 남자 태권도 선수 -
이왕표
'박치기왕' 김일의 제자였던 프로레슬링 선수 이왕표는 1975년 데뷔하여 WWA 헤비급 챔피언을 지냈고 격기도 창시, 영화 감수 등 다양한 활동을 하다 담낭암으로 사망했다.
2. 생애
일본 아오모리현에서 한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유아기에 한국으로 이주하여 성장했다. 대한민국 육군에서 병장으로 전역 후 태권도 사범으로 활동하다가, 1969년 영화 《미워도 다시 한 번(속)》의 기획을 맡으며 영화계에 처음 발을 들였다. 이후 1974년 영화 감독 이두용에게 발탁되어 영화 《돌아온 외다리》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배우로 데뷔하였고, 특유의 강력한 발차기 기술을 선보이며 주로 인상적인 악역으로 활약했다.
1976년부터는 홍콩으로 활동 무대를 넓혀 《남권북퇴》를 시작으로 여러 무술 영화에 출연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성룡과 함께 출연한 영화 《사형도수》와 《취권》에서의 대결 장면은 그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안겨주었다. 그는 대한민국과 홍콩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으며, 1983년에는 직접 주연과 감독, 제작을 맡은 영화 《광동살무사》를 통해 영화 감독으로 데뷔하기도 했다.
1995년 SBS TV 드라마 《모래시계》의 무술 지도를 담당하고 직접 출연하여 대중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으며, 1996년에는 영화 《보스》에 조연으로 출연함과 동시에 무술 감독을 맡았다. 같은 해 영화 《고스트 맘마》에서는 스턴트 무술 연출을 담당하는 등 활동 영역을 넓혔다.
이후 잠시 연예계를 떠나 제주도에 정착하여 사업가로 활동하다가, 2009년 MBC TV 드라마 《돌아온 일지매》를 통해 연기 활동을 재개하였다. 현재는 서울현대전문학교 액션연기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한편, 그의 막내 동생인 황춘수 역시 무술 영화 배우로 활동했으며, 황정리가 감독한 영화 《광동살무사》와 《암흑가의 황제》 등에 출연한 바 있다.
2.1. 초기 생애 및 무술 경력
황정리는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일본 아오모리현 혼슈 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해운 회사를 운영했으며, 황정리가 아기였을 때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이주했다.
그는 14세부터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하여 7단의 단 검은띠를 획득하였다. 1965년, 21세의 나이로 대한민국 육군 및 남베트남 군대의 태권도 무술 교관으로 복무했다. 또한 세계 당수도 총연맹에서 9단의 칭호를 가지고 있다.
황정리는 현재도 무술을 가르치고 있으며, 세계 당수도 총연맹에서 사범 및 기술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제자 중에는 여러 영화에서 함께 출연하고 황정리의 태권도 기술을 바탕으로 한 지도 비디오 시리즈 《하이 임팩트 킥의 기술》(1982)을 연출한 로이 호란 등이 있다. 2013년에는 다른 한국의 그랜드마스터들과 함께 전통 무술의 연구와 수련을 장려하기 위해 미국과 캐나다 투어를 진행했다.
황정리는 엉덩이에서 힘이 나온다며 강력한 발차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올림픽 태권도에 대해서는 "스포츠일 뿐, 무술이 아니다"라며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2.2. 영화계 데뷔 및 활동
태권도 고수로 알려진 그는 1969년 영화 《미워도 다시 한 번(속)》을 통해 영화 기획가로 먼저 데뷔하였다. 이후 태권도 사범으로 활동하다가 1974년 영화 감독 이두용에게 발탁되어 영화 《돌아온 외다리》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영화 배우로서 경력을 시작했다. 강렬한 인상과 특유의 호쾌한 발차기 기술로 주로 악당 역할을 맡아 활약했다.
1976년 홍콩으로 활동 무대를 옮겨 오사원의 제안으로 영화 《남권북퇴》에서 악당 '은여우' 역을 맡으며 홍콩 영화계에 진출했다. 홍콩 진출 초기, "남녀노소 누구라도 좋다. 나와 맞붙고 싶다면 누구든 덤벼라"라는 도발적인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어 실제로 도전해 온 모든 사람들을 제압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 사건으로 황정리는 홍콩에서 큰 명성을 얻게 되었고, 이는 이후 성룡과의 협업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홍콩에서는 유충량, 왕도 등과 함께 '빅3'(Big 3)로 불리며 다수의 무술 영화에 출연했다. 특히 성룡이 주연한 영화 《사형도수》(1978)의 상관 역과 《취권》(1978)의 염철심(일명 '썬더레그') 역으로 출연하여 주인공과 인상적인 대결 장면을 선보이며 국제적인 인지도를 높였다. 그의 뛰어난 발차기 기술 덕분에 다리 싸움의 왕(King of Leg Fighters), 천둥 다리(Thunderleg) 등의 별명을 얻었다. 당시 홍콩에서 악역 배우로서 높은 인기를 누려, 많은 영화 제작자들이 현금을 들고 그의 집을 찾아와 캐스팅 경쟁을 벌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1980년대에는 대한민국과 홍콩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했다. 한국 영화로는 박윤교 감독의 《비천권》(1980), 이혁수 감독의 《용호의 사촌들》(1981), 《천용란》(1981), 박우상 감독의 《광동관 소화자》(1983) 등이 있으며, 홍콩 영화로는 홍금보가 감독한 《부귀열차》(1986), 《예스마담: 중화전사》(1987) 등에 출연했다. 특히 《예스마담: 중화전사》 촬영 당시에는 양자경에게 발차기 기술을 지도하기도 하였다. 또한 1980년대 중반에는 중화민국의 텔레비전 드라마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배우 활동 외에도 제작 및 연출 분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1983년에는 중국으로 건너간 고려 무사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광동살무사》의 주연을 맡았을 뿐 아니라 직접 감독 및 제작을 맡아 영화 감독과 영화 제작자로 데뷔했다. 1994년에는 《소림사 용팔이》(1982)에서 함께 주연했던 배우 거룡을 캐스팅하여 《암흑가의 황제》를 연출했다.
1995년에는 SBS TV 드라마 《모래시계》의 무술 지도를 맡고 직접 출연하기도 했으며, 1996년에는 영화 《보스》에 조연으로 출연함과 동시에 해당 영화의 무술 감독을 맡았다. 같은 해 영화 《고스트 맘마》에서는 스턴트 무술 연출을 담당했다.
한동안 활동이 뜸했으나, 2009년 MBC TV 드라마 《돌아온 일지매》에 출연하며 연기 활동을 재개했다.
2.3. 감독 데뷔 및 기타 활동
1983년 영화 《광동살무사》에 주연으로 출연하며 영화 감독, 영화 제작자, 영화 연출가로 데뷔하였다. 이 작품을 통해 오랫동안 품었던 영화 감독의 꿈을 이루었다. 1981년에는 '왕 젠'(Wong Chin)이라는 이름으로 《부처의 손 안의 킬러》를 먼저 감독하기도 했다. 이후 《소림사 용팔이》(1982)에 함께 출연했던 배우 거룡을 캐스팅하여 《암흑가의 황제》(1994)를 연출했다.
1995년에는 SBS 드라마 《모래시계》의 무술 지도를 맡고 직접 출연하여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듬해인 1996년에는 영화 《보스》에서 조연 및 무술 감독을 맡았고, 같은 해 《고스트 맘마》에서는 스턴트 무술 연출을 담당했다.
홍콩 활동 시기인 1987년에는 《예스마담: 중화전사》에서 말레이시아 배우 양쯔충에게 발차기 특훈을 지도했으며, 같은 해 독일 배우 마티아스 휘스의 영화 데뷔작인 《노 리트리트, 노 서렌더 2》 출연을 위해 무술 훈련을 시키기도 했다. 1989년에는 미국으로 초청받아 영화 《스트리트 솔저》에 자신의 아들 이름을 딴 '제이슨 황'이라는 이름으로 출연했다.
1990년대 초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서울에서 골프 티 제조업체와 호텔, 사설 경호 회사를 운영하는 등 사업가로 활동했다. 1996년 7월, 51세의 나이로 공식 은퇴를 선언하고 제주도에 정착하기도 했으나, 2009년 MBC 드라마 《돌아온 일지매》를 통해 연기 활동을 재개하였다. 현재는 서울현대전문학교 액션연기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3. 출연작
태권도 고수로 알려진 황정리는 대한민국 육군에서 병장으로 전역한 후, 1967년부터 태권도 사범으로 활동했다. 1969년 영화 《미워도 다시 한 번(속)》의 기획을 맡으며 영화계에 입문했고, 1974년 이두용 감독의 영화 《돌아온 외다리》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배우로 데뷔했다. 주로 강렬한 발차기 액션을 선보이는 악역으로 인상을 남겼다.
1976년 오사원 감독의 제안으로 홍콩 영화계에 진출하여 《남권북퇴》를 시작으로 여러 무술 영화에 출연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성룡과 함께 출연한 《사형도수》(1978)와 《취권》(1978)은 그를 세계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뛰어난 발차기 실력으로 '다리 싸움의 왕(King of Legfighters)', '썬더풋(Thunderleg)' 등의 별명을 얻었다. 1980년대에는 홍콩과 대한민국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했으며, 대만의 TV 드라마에도 출연했다.
1983년 영화 《광동살무사》를 통해 영화 감독으로 데뷔했고, 1994년에는 거룡 주연의 《암흑가의 황제》를 연출했다. 또한 1995년 SBS 드라마 《모래시계》의 무술 지도를 맡고 직접 출연했으며, 1996년 영화 《보스》에서는 무술 감독을, 같은 해 영화 《고스트 맘마》에서는 스턴트 무술 연출가로 참여했다.
1996년 영화 《보스》 출연 이후 연기 활동을 중단하고 제주도에서 사업가로 활동하다가, 2009년 MBC 드라마 《돌아온 일지매》에 특별 출연하며 연기 활동을 재개했다. 현재는 서울현대전문학교 액션연기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자세한 출연 작품 목록은 아래 하위 섹션에서 확인할 수 있다.
3.1. 영화
황정리는 한국에서 배우 경력을 시작했다. 1976년, 오사원 감독의 제안으로 홍콩 영화계에 진출하여 첫 영화 비밀 라이벌에서 악당 은여우 역을 맡았다. 이후 많은 무술 영화에서 주로 인상적인 악역을 연기하며 명성을 쌓았다. 그의 뛰어난 발차기 기술 덕분에 "다리 싸움의 왕", "천둥 다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1970년대 중반에는 성룡과 함께 두 편의 영화에 출연했는데, 사형도수에서는 상관 영 역으로, 취권에서는 '썬더풋' 염철심 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2002년, 작가 겸 프로듀서 마이크 리더는 컨텐더 홍콩 레전드 DVD 시리즈를 위해 황정리와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1981년에는 왕진(Wong Chin)이라는 이름으로 첫 영화인 부처의 손에 있는 히트맨을 감독했으며, 왕 젠(Wong Chin)으로 크레딧에 올랐다. 1987년에는 독일 배우 마티아스 휘스가 영화 데뷔작인 노 리트리트, 노 서렌더 2에서 러시아인 유리 역을 맡을 수 있도록 직접 훈련시켰다. 당시 제작자 로이 호란의 추천으로 캐스팅된 휘스는 무술 경험이 전혀 없었으나 황정리의 지도를 통해 액션 연기를 소화했으며, 이후에도 무술 훈련을 계속했다. 황정리 본인도 이 영화에서 유리의 부하인 타이 장군 역으로 출연하여 신시아 로스록과 짧은 대결 장면을 선보였다. (미국 개봉판에서는 황정리의 총격 장면이 삭제되었다.)
1989년에는 태권도 그랜드마스터 전충의 초청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영화 스트리트 솔저에서 악당으로 출연했다. 이 영화에서는 국제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 아들의 이름을 딴 제이슨 황(Jason Hwang)이라는 예명을 사용했다. 1990년대 초, 황정리는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서울에서 골프 티 제조업체와 호텔을 운영했으며, 이후 사설 경호 회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도 암흑가의 황제(1994)와 보스(1996) 같은 영화에 간헐적으로 출연하며 연기 활동을 이어갔다. 1994년작 암흑가의 황제는 직접 감독을 맡기도 했다.
1996년 7월, 황정리는 51세의 나이로 배우 생활에서 은퇴했다.
| 연도 | 제목 | 역할 | 비고 |
|---|---|---|---|
| 1974 | 비밀 특사 | ||
| 흑표 | 고문당하는 영웅 | ||
| 코리안 커넥션 | 카지오 (야마모토의 경호원) | ||
| 코리안 커넥션 2 | |||
| 분노의 왼발 | |||
| 1975 | 독사 | ||
| 용의 해 | 영웅의 아버지 / 최종 도전 격투가 | ||
| 지옥에서 온 초대 | |||
| 태양의 분노 | |||
| 데스 게임 | 팽 마 코우 | ||
| 감옥 | |||
| 1976 | 비밀 요원 | 술 취한 학생 | |
| 비밀 라이벌 | 실버 폭스 | ||
| 브루스 리의 비밀 | 진 용 지 | ||
| 브루스 리, 무덤에서 반격하다 | |||
| 소림사 목인방 | 단역 출연 | ||
| 흑룡강 | |||
| 1977 | 비밀 라이벌 2 | 친 후 (골드 폭스) | |
| 무적의 갑옷 | 쳉 장관 | ||
| 소림의 영웅 | 티엔 룽-총 | ||
| 코담배 병 연결 | 샨퉁 장군 (치안 판사) | ||
| 인스턴트 쿵푸 맨 | 이 랑 | ||
| 1978 | 위대한 무술 선생 | ||
| 사형도수 | 상관 영 | 원제: 사학비보(蛇形刁手) | |
| 취권 | 염철심 (썬더풋) | ||
| 1979 | 무적의 듀오 | 고스트 레그 킬러 | |
| 취권 2 | 고무 다리 | 원제: 취협소걸아(醉俠蘇乞兒) | |
| 지옥의 바람 지팡이 | 루 샨 투 | ||
| 36가지 치명적인 스타일 | 장 쓰 (첫째 형) | ||
| 용의 발톱 | 링 코 펑 | ||
| 독수리의 살인자 | 고스트 핸드 로 신 | ||
| 악마의 일격 | 차이 차우-티엔 (영주) | ||
| 1980 | 하인과 레이디 타이거 | 섹 바 | |
| 법에 맞선 두 주먹 | 타이 마스터 | ||
| 벽 위의 호랑이 | 추 | ||
| 어린 영웅 | 일본 침략자 지도자 | ||
| 두 영웅 | |||
| 죽음의 링 | 러시아 격투가 | ||
| 부처 암살자 | 이 왕자 | ||
| 호랑이의 도전 | 양 동지 | ||
| 독수리 대 실버 폭스 | 사 성 (실버 폭스) | ||
| 소림사 무술 승려 | 커트 웡, 우동 학교장 | ||
| 1981 | 부처의 손에 있는 히트맨 | 웡 친 | 감독, 제작자 |
| 사망유희 2 | 친 쿠 | ||
| 유령 도둑 | (황정리) | ||
| 불교 권법과 호랑이 발톱 | |||
| 치명적인 칼날의 귀환 | 캄 (무적의 황금 고리) | 특별 출연 (단역) | |
| 하드 배스터드 | |||
| 1982 | 피의 아이 | 웡 훙 | |
| 닌자의 반격 | 왕 페이 | ||
| 용의 굴의 닌자 | 쿵푸 마스터 | ||
| 비밀 닌자, 포효하는 호랑이 | 타이거 소 | ||
| 광동에서 온 아이 | 루오 이후 | ||
| 비밀 처형인 | |||
| 호랑이 학의 마스터 | 실버 폭스 / 쿰웅 (악당) | ||
| 독수리 발톱 대 나비 손바닥 | 싱 쿤의 마스터 | ||
| 1983 | 오패턴 드래곤 클로 | 캄 푸 | |
| 궁극 무기의 결투 | 동완 / 기룡 | ||
| 고스트 갈로어 | 일본 마술사 | ||
| 광동 독사 | 칼 마룡 | 감독 | |
| 성난 젊은이 | 강 마스터 | ||
| 1984 | 소림: 피의 임무 | 단 방 / 원 퐁 장군 | |
| 1985 | 닌자 터미네이터 | 타이거 | 아카이브 영상 사용 |
| 1986 | 중국 최초의 뱀파이어 | 3월의 유령 | |
| 무고한 침입자 | 창백한 얼굴 | ||
| 튜바 경관은 어디에 | 갈취 갱 멤버 (협박범) | ||
| 백만장자의 특급열차 | 후시키 유키오 | ||
| 미래 사냥꾼 | 실버폭스 | ||
| 1987 | 아이언 엔젤 | 창 룽 보스 | |
| 매그니피센트 워리어 | 토가 장군의 부하 (협력자) | ||
| 노 리트리트, 노 서렌더 2 | 타이 | ||
| 1988 | 침대 동반자 | 리 치우 신 | |
| 1989 | 차이나타운의 어두운 면 | 셩 시우 퉁의 히트맨 | |
| 라이브 하드 | 테리 치우 경감 | ||
| 1991 | 스트리트 솔저 | 톡 | |
| 1994 | 암흑가의 황제 | 유덕팔 | 감독 |
| 1996 | 보스 | 성천 |
3.2. TV 드라마
* 1985년 타이완 TTV 《강호야우십년정》 - 유령곡주 역
* 1986년 타이완 TTV 《천룡검협》 - 통천영(通天影) 역
* 1995년 대한민국 SBS 《모래시계》
* 1995년 대한민국 SBS 《국화와 칼》- 이토 역
* 1996년 대한민국 SBS 《형제의 강》 - 안일구 역
* 2009년 대한민국 MBC 《돌아온 일지매》 - 미야모토 무사시 역 (특별출연). 오랫동안 배우 활동을 중단했던 황정리가 이 드라마를 통해 복귀했다.
4. 경력
태권도 무예 고수로 알려진 황정리는 대한민국 육군에서 병장으로 전역한 후, 1967년부터 태권도 사범으로 활동했다. 1969년에는 영화 《미워도 다시 한 번(속)》을 통해 영화 기획가로 데뷔하였고, 이후에도 태권도 사범 활동을 이어갔다. 1974년, 영화 감독 이두용에게 발탁되어 영화 《돌아온 외다리》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영화 배우로 데뷔했다. 그는 강렬한 인상과 호쾌한 발차기로 주로 악당 역을 맡아 스크린에서 활약했다.
1976년 홍콩 영화 《남권북퇴》를 시작으로 홍콩 영화계에 진출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유충량, 왕도 등과 함께 'Big 3'로 불리며 다수의 무술 영화에 출연했다. 특히 성룡과 함께 출연한 《사형도수》와 《취권》에서 1:1 대결 장면은 많은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1980년대 중반에는 중화민국의 텔레비전 드라마에 출연하기도 했다.
대한민국과 홍콩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했는데, 한국에서는 박윤교 감독의 《비천권》(1980), 이혁수 감독의 《용호의 사촌들》(1981)과 《천용란》(1981), 박우상 감독의 《광동관 소화자》(1983) 등에 출연했다. 홍콩에서는 홍금보가 감독한 《대나팔》(1986), 《부귀열차》(1986)를 비롯해 《예스마담: 중화전사》(1987) 등 다수의 작품에 참여했다. 《예스마담: 중화전사》 촬영 당시에는 말레이시아 출신 배우 양자경에게 직접 발차기 특훈을 지도하기도 했다.
배우 활동 외에도 연출가의 꿈을 키워왔던 그는 1983년, 중국으로 건너간 고려 무사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광동살무사》를 통해 영화 감독으로 데뷔했다. 이 영화에는 직접 주연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이후 《소림사 용팔이》(1982)에서 함께 주연을 맡았던 배우 거룡을 캐스팅하여 《암흑가의 황제》(1994)를 연출했다. 1996년에는 조양은 주연의 영화 《보스》에 조연으로 출연하며 영화 무술 감독으로 데뷔했으며, 같은 해 영화 《고스트 맘마》에서는 영화 스턴트 무술 연출가로 데뷔했다.
1995년에는 SBS TV 드라마 《모래시계》의 무술 지도를 맡았고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모래시계》와 영화 《보스》(1996)의 무술 감독을 맡은 후 사실상 은퇴하여 제주특별자치도에 정착, 사업가로 활동했다. 그러나 2009년 문화방송 TV 드라마 《돌아온 일지매》를 통해 연기 활동을 재개했다.
황정리는 14세에 태권도를 시작하여 공인 7단의 단 검은띠를 받았다. 1965년, 21세의 나이에 대한민국과 남베트남 군대의 태권도 교관으로 활동했으며, 세계 당수도 총연맹으로부터 9단 칭호를 받았다. 현재까지도 무술 지도를 계속하고 있으며, 세계 당수도 총연맹의 사범이자 기술 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그의 제자 중 한 명인 로이 호란은 여러 영화에 함께 출연했으며, 황정리의 태권도 기술을 바탕으로 한 지도 비디오 《하이 임팩트 킥의 기술》(1982)을 연출하기도 했다. 2013년에는 다른 한국의 그랜드마스터들과 함께 미국과 캐나다를 순회하며 전통 무술의 연구와 수련을 장려하는 활동을 펼쳤다.
황정리는 엉덩이에서 나오는 강력한 발차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여러분, 제 다리는 평범해요, 특별한 건 없어요. 훈련할 때 저는 항상 엉덩이를 사용하고, 원운동을 이용합니다… 엉덩이가 힘이 나오는 곳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발차기를 하고… 이렇게… 모든 것이 엉덩이에서 나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성룡, 원표, 로례, 적룡, 홍금보를 최고의 쿵푸 파이터 5명으로 꼽았다. 한편, 올림픽 태권도에 대해서는 "이것은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태권도는 사람을 죽이기 위한 것입니다… 올림픽의 태권도는 스포츠입니다. 무술이 아니에요. 그래서 저는 이 스타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에게 태권도는 무술입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막내 동생인 황춘수 역시 무술 영화 배우로 활동했으며, 황정리가 감독한 《광동살무사》와 《암흑가의 황제》에 출연하기도 했다.
현재 황정리는 다음과 같은 직책을 맡고 있다.
| 직책 | 소속/기관 |
|---|---|
| 총재 | 세계무술총연합회 |
| 총재 | 황정리무술사관학교 |
| 최고고문 | 대테러국제용병협회(IMACT) |
| 최고고문 | IMACT 글로벌시큐리티그룹 |
| 명예회장 | (주)비케이시큐리티서비스 |
| 교수 | 서울현대전문학교 액션연기학과 |
| 겸임교수 | 용인대학교 체육교육학과 |
| 특임강사 | 한양대학교 체육교육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