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6월 19일 일식
1. 개요
1936년 6월 19일 일식은 개기 일식으로, 그리스, 터키, 소련 남부, 만주국 통치 하의 중국 동북부, 일본 홋카이도 등에서 관측되었다. 유럽, 아프리카 북부, 아시아, 북아메리카 북부, 태평양 북서부 등에서는 부분 일식이 관측 가능했다. 소련은 대규모 관측팀을 조직하여 과학적 연구를 진행했으며, 일본과 중국에서도 관측 활동이 이루어졌다. 이 일식은 막심 고리키의 사망과 겹쳐 사회문화적 영향을 미쳤으며, 동아시아 정세와도 연관성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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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6월 -
1936년 르망 24시
1936년 르망 24시는 프랑스 파업으로 인해 연료와 인력 부족 문제로 취소된 르망 24시 레이스이다. -
1936년 과학 -
내핵
지구 내핵은 고체 상태의 철-니켈 합금으로 구성된 지구의 가장 안쪽 부분이며, 외핵의 냉각과 고화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지구 자기장 생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
1936년 과학 -
1936년 12월 13일 일식
1936년 12월 13일 일식은 금환 일식으로, 일식 시즌의 일부이며 사로스 주기 131의 일원으로서 18년 11일 주기로 반복된다. -
20세기 일식 -
1953년 2월 14일 일식
1953년 2월 14일에 발생한 부분 일식은 남극, 남부 호주, 뉴질랜드 등 남반구 지역에서 관측되었으며, 여러 주기와 연쇄에 따라 이전 및 다음 일식과 연결되는 사로스 149 주기의 18번째 일식이다. -
20세기 일식 -
1908년 1월 3일 일식
1908년 1월 3일에 발생한 개기 일식은 윌리엄 월리스 캠벨이 이끄는 관측대가 키리바시 플린트 섬에서 관측에 성공했으며, 마셜 제도, 키리바시 일부 섬, 코스타리카 등과 오스트레일리아 북동부, 오세아니아, 미국 남부 등에서 관측되었다.
2. 일식의 과학적 특징
1936년 6월 19일 일식은 달이 지구와 태양 사이를 지나면서 태양을 가리는 현상이다. 이 일식은 달이 태양을 완전히 가리는 개기일식이었다.
2.1. 일식 경로 및 관측 지역
개기일식을 볼 수 있었던 지역은 그리스 남부, 터키 북서부, 소련 남부(현재 러시아의 유럽 부분 남부, 카자흐스탄 북서부, 러시아의 시베리아 남부), 당시 만주국 통치 하의 중국 동북부 북부, 일본 홋카이도 북부였다.
부분일식을 볼 수 있었던 지역은 유럽의 대부분(이베리아 반도 제외), 아프리카 북부, 아시아의 대부분(남부 제외), 북아메리카 북부, 태평양 북서부의 섬들이었다. 그 중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현지 시간 6월 19일에 일식을 볼 수 있었고, 북아메리카 북서부에서는 현지 시간 6월 18일에 볼 수 있었으며, 백야가 있는 캐나다 북동부에서는 심야 0시를 넘겨 6월 18일부터 6월 19일까지 볼 수 있었다.
2.2. 일식 시간 및 관련 변수
다음 표는 1936년 6월 19일 일식에 대한 세부 정보를 보여준다. 첫 번째 표는 달의 반그림자 또는 본그림자가 특정 매개변수에 도달하는 시간을 나타내고, 두 번째 표는 이 일식과 관련된 다양한 다른 매개변수를 설명한다.
| 사건 | 시간 (UTC) |
|---|---|
| 첫 번째 반그림자 외부 접촉 | 1936년 6월 19일 02:45:25.3 UTC |
| 첫 번째 본그림자 외부 접촉 | 1936년 6월 19일 03:49:28.3 UTC |
| 첫 번째 중심선 | 1936년 6월 19일 03:50:07.0 UTC |
| 첫 번째 본그림자 내부 접촉 | 1936년 6월 19일 03:50:45.8 UTC |
| 황도 결합 | 1936년 6월 19일 05:14:49.8 UTC |
| 적도 결합 | 1936년 6월 19일 05:15:50.0 UTC |
| 최대 지속 시간 | 1936년 6월 19일 05:17:59.5 UTC |
| 최대 일식 | 1936년 6월 19일 05:20:31.1 UTC |
| 마지막 본그림자 내부 접촉 | 1936년 6월 19일 06:50:22.6 UTC |
| 마지막 중심선 | 1936년 6월 19일 06:50:58.9 UTC |
| 마지막 본그림자 외부 접촉 | 1936년 6월 19일 06:51:35.0 UTC |
| 마지막 반그림자 외부 접촉 | 1936년 6월 19일 07:55:44.4 UTC |
| 매개변수 | 값 |
|---|---|
| 일식 크기 | 1.03291 |
| 일식 가림 | 1.06691 |
| 감마 | 0.53889 |
| 태양 적경 | 05h50m06.8s |
| 태양 적위 | +23°25'41.1" |
| 태양 반지름 | 15'44.3" |
| 태양 적도 수평 시차 | 08.7" |
| 달 적경 | 05h50m17.9s |
| 달 적위 | +23°57'12.9" |
| 달 반지름 | 16'02.1" |
| 달 적도 수평 시차 | 0°58'50.8" |
| ΔT | 23.8초 |
3. 각국의 관측 활동
1936년 6월 19일 일식에는 소련, 일본, 중국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관측 활동이 이루어졌다.
소련은 국내 28개 관측대와 프랑스, 영국, 미국 등 12개 국제 관측대의 참여 속에, 소련 공산당의 파격적인 지원과 과학 아카데미의 2년간의 준비를 바탕으로 다양한 관측을 시도했다. 코로나그래프 6대 제작, 기구와 비행기 활용 등 입체적인 관측이 이루어졌다.
일본은 홋카이도에 20개의 천문 관측대와 18개의 지구물리학 관측대를 파견했고, 여러 국가의 관측대도 함께 참여했다. 에사시 촌은 1896년 8월 9일 일식에 이어 두 번째 개기일식 관측지가 되었다.
중국은 쯔진산 천문대 완공 직후, 중국 일식 관측위원회를 결성하여 소련과 일본에 두 개의 관측대를 파견했다. 이는 중국 최초의 해외 과학 관측이었다. 소련 관측대는 기상 악화로 실패했지만, 일본 관측대는 코로나 촬영에 성공했다.
3.1. 소련의 관측 활동
1927년 6월 29일 일식은 인구가 희박한 북극해 연안에서만 관측 가능했기 때문에, 이 일식은 소련 건국 이후 소련 내에서 관측 가능한 최초의 개기 일식이었다.(이전 일식은 1914년으로, 당시에는 러시아 제국이 통치하고 있었다). 소련 과학 아카데미는 특별 위원회를 설립하고 2년간 준비를 거쳤다. 소련 정부는 1934년, 1935년, 1936년에 각각 6만, 36만 5천, 40만 루블을 지원했다. 28개의 소련 관측팀(17개의 천문 관측팀과 11개의 지구물리 관측팀 포함)과 프랑스, 영국, 미국, 이탈리아, 체코슬로바키아, 스웨덴, 네덜란드, 중국, 일본, 그리고 폴란드에서 온 12개의 국제 관측팀이 소련에서 관측을 진행했다. 총 370명의 천문학자들이 관측팀에 참여했다. 그중 70명의 외국인들에게 더 나은 조건을 제공하기 위해, 전(全)소련 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는 철도 및 해상 운송 요금을 50% 할인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레닌그라드 천문 연구소의 전문가들은 지름 100mm, 초점 거리 5m의 코로나그래프 6개를 제작하여, 풀코보 천문대, 슈테른베르크 천문 연구소, Всесоюзное астрономо-геодезическое общество러시아어 모스크바 지부, 하르키우 국립 대학교 천문 연구소, V. P. 엥겔하르트 천문대, Астрономический институт имени Улугбека러시아어에 배포했다. 지상 관측 외에도, 기구와 항공기도 사용되었다.
풀코보 천문대와 그 시메이즈 지부(현재 크림 천체물리 천문대)는 3개 팀을 파견했다.
* 보리스 게라시모비치가 이끄는 팀은 오렌부르크 주 아크불라크에서 채층과 태양 홍염을 연구했으며, 그는 소련 과학 아카데미 일식 관측 특별 위원회 위원장이었다.
* 가브릴 아드리안노비치 티호프가 이끄는 팀은 오렌부르크 주 사라에서 관측했다.
* Балановский, Иннокентий Андреевич러시아어가 이끄는 팀은 옴스크에서 코로나를 연구했다.
슈테른베르크 천문 연구소 팀은 쿠이비셰프카(현재 아무르 주 벨로고르스크) 교외 보치카레프(Бочкарёв러시아어) 마을에서 채층과 코로나 스펙트럼, 코로나 편광, 상대성 이론에서 제안한 중력장 내 빛 굴절을 연구했다. 니콜라이 바라바쇼프가 이끈 하르키우 천문대 팀은 크라스노다르 지방 벨로레첸스크에서 코로나 광도, 편광, 채층 스펙트럼을 연구했다. 조지아 국립 천체물리 천문대 팀은 코로나 방사선을 연구했다. 전(全)소련 천문 및 측지 학회 모스크바 지부 팀은 표준 코로나그래프 관측을 수행하고 전국 아마추어 관측을 주도했다. V. P. 엥겔하르트 천문대 팀은 카자흐스탄 코스타나이 주에서 회절 격자를 사용하여 코로나 가시 스펙트럼을 연구하고 표준 코로나그래프로 코로나를 촬영했다.
도널드 하워드 멘젤이 이끄는 24명 미국 팀은 풀코보 천문대 팀과 함께 아크불라크로 향했다. 이탈리아 아르체트리 천문대 4명으로 구성된 팀은 조르지오 아베티 지휘 하에 풀코보 천문대 다른 팀과 함께 사라로 향했다.
3.2. 일본의 관측 활동
일본은 20개의 천문 관측팀과 18개의 지구물리학 관측팀을 홋카이도에 파견했다. 영국, 미국, 인도, 중국, 체코, 폴란드의 팀들도 홋카이도로 갔다. 몇몇 팀은 관측에 성공했고, 몇몇 팀은 실패했다. 1896년 8월 9일 일식도 많은 외국 과학자들을 홋카이도 에사시군 에사시 해안 마을로 이끌었기 때문에, 교통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교토 대학의 화산 천문대와 중국 팀은 이곳을 관측 장소로 선택했다.
이 개기일식 관측을 위해 호로노베 촌(현재의 호로노베정)에 체류 중이던 나가노현 스와시)의 아마추어 천문가 고미 가즈아키는 1936년 6월 18일 20시 40분경, 마을 사람들에게 별자리를 설명하던 중 세페우스자리 δ별 근처에서 신성을 발견했다. 이 신성은 최초 발견자인 고미의 이름을 따서 "고미 신성"이라고 불렸다.
3.3. 중국의 관측 활동
1934년 11월, 자금산 천문대가 설립된 직후, 천문학자 가오루는 1936년 일식과 1941년 9월 21일 일식 관측을 준비하기 위해 중국 일식 관측위원회를 조직했다. 위원회는 차이 위안페이가 위원장, 가오루가 사무총장을 맡았다. 위원회는 정부에 3만 위안의 기금을 요청했고, 의화단 사건 배상금 위원회로부터 영국, 프랑스, 미국의 지원으로 12만 위안을 추가로 받았다.
당시 일식의 개기일식 경로는 중국 동북부를 통과했지만, 중국-소련 국경과 가깝고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통제를 받고 있었다. 결국 2개의 관측팀이 해외로 파견되었는데, 이는 중국 과학 관측팀이 해외에서 관측을 수행한 첫 사례였다.
* 소련 관측팀: 장위저와 리헝 단 두 명으로 구성되어 시베리아로 향했다. 처음에는 기상 조건이 더 좋은 오렌부르크주로 가려고 했지만, 시간이 촉박하여 하바롭스크를 선택했다. 이들은 코로나 사진 촬영, 일식 시간 측정, 개기 일식 동안의 하늘 밝기와 황혼 밝기 비교 등을 목표로 했다. 일식 당일 오전과 정오에는 날씨가 맑았지만, 오후에는 구름이 끼었고 저녁에는 비가 많이 내려 관측에 실패했다.
* 일본 관측팀: 위칭쑹(余青松)을 팀장으로, 천준구(陈遵妫), 조우이신, 웨이 쉬에런, 선쉬안(沈璿), 펑젠(冯简) 등 6명으로 구성되어 홋카이도로 향했다. 이들은 1896년 8월 9일의 개기 일식 때 많은 외국 과학자들을 맞이했던 에사시 마을을 관측 장소로 선택했다. 이들은 코로나 사진 촬영, 대중 상영용 필름 촬영, 1941년의 개기 일식 관측을 위한 경험 축적 등을 목표로 했다. 일식 당일 처음에는 구름이 있었지만, 2차 접촉 전에 태양이 구름 밖으로 나와 일반 코로나 사진 3장, 자외선 사진 1장, 3세트의 영화를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난징에서는 부분 일식만 관측 가능했다. 가오 핑쩌와 리밍중은 이전 계산의 정확성을 확인하기 위해 일식 시간을 기록했다.
4. 사회문화적 영향
1936년 일식은 사회 전반에 여러 영향을 미쳤다. 특히 소련에서는 막심 고리키의 사망과 일식이 겹치면서, 전 연방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에 실린 시를 통해 이러한 분위기가 문학적으로 표현되었다.
4.1. 소련의 사회상과 일식
우연히도, 소련의 작가 막심 고리키는 일식 전날인 1936년 6월 18일에 사망했다. 장례식 날, 전 연방 공산당 기관지인 "프라우다"는 시인 Светлов, Михаил Аркадьевич러시아어가 고리키에게 헌정한 시를 게재했는데, 그 시에는 "실의에 찬 황혼이 일식을 동반한다"는 표현이 있었다.
4.2. 동아시아의 정세와 일식
1930년대 중일전쟁을 앞두고 만주국, 일본 제국, 중화민국 사이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1936년 6월 19일 일식 관측을 위한 국제적인 과학 교류는 계속되었다.
중국은 자금산 천문대를 중심으로 일식 관측 위원회를 조직하여 준비하였다. 이 위원회는 차이 위안페이가 위원장을, 가오루가 사무총장을 맡았다. 비록 개기일식 경로는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을 통과했지만, 중국은 두 팀을 해외로 파견하였다.
장위저와 리헝은 소련 시베리아로 향했으나, 기상 악화로 관측에 실패하였다. 余青松중국어이 이끄는 팀은 일본 홋카이도로 가서 코로나 사진 촬영과 필름 촬영에 성공하였다. 이는 1941년의 또 다른 개기 일식 관측을 위한 경험을 쌓는 데 기여하였다.
이러한 과학 교류는 정치적 긴장 속에서도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중국 과학 관측팀이 처음으로 해외에서 관측을 수행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5. 한국과의 관련성
1936년 6월 19일 일식은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직접 관측되지는 않았지만, 당시 한반도는 일본의 식민 통치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이 일식은 여러 측면에서 한국과 관련성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