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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영국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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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7년 영국 총선은 1997년 5월 1일에 치러졌으며, 18년간 집권했던 보수당을 꺾고 노동당이 압승을 거둔 선거이다. 선거 전, 보수당은 경제 위기와 당내 분열로 지지율이 하락했고, 노동당은 토니 블레어의 '신노동당' 전략과 중도층 공략으로 지지율을 높였다. 선거 결과, 노동당은 418석을 얻어 과반수를 확보하며 정권을 되찾았고, 보수당은 165석으로 대패했다. 자유민주당은 46석을 얻으며 약진했다. 이번 선거는 여성 의원 수가 대폭 증가하는 등 영국 정치 지형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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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영국 총선
지도
1997년 영국 총선 결과 지도
선거구별 1위 정당 지도
1997년 총선 후 하원 의석 구성
선거 후 하원 의석 구성
선거 정보
선거 이름1997년 영국 총선
국가영국
선거 종류의회 선거
선거일1997년 5월 1일
이전 선거1992년 영국 총선
이전 선거 연도1992년
다음 선거2001년 영국 총선
다음 선거 연도2001년
선출 의석 수659석
과반 의석 수330석
투표율71.3% ( 6.4pp)
등록 유권자 수43,846,152명
선거 결과
총리영국의 총리
선거 전 총리존 메이저
선거 전 총리 소속 정당보수당
선거 후 총리토니 블레어
선거 후 총리 소속 정당노동당
노동당
토니 블레어
토니 블레어
대표토니 블레어
대표 취임일1994년 7월 21일
소속 정당노동당
대표 지역구세지필드
이전 선거 의석수271석
이전 의석수273석
획득 의석수418석
의석 변화'146*'
득표수13,518,167표
득표율43.2%
득표율 변동'8.9pp'
보수당
존 메이저
존 메이저
대표존 메이저
대표 취임일1995년 7월 4일
소속 정당보수당
대표 지역구헌팅던
이전 선거 의석수336석
이전 의석수325석
획득 의석수165석
의석 변화'178*'
득표수9,591,085표
득표율30.6%
득표율 변동'11.3pp'
자유민주당
패디 애시다운
패디 애시다운
대표패디 애시다운
대표 취임일1988년 7월 16일
소속 정당자유민주당
대표 지역구요빌
이전 선거 의석수20석
이전 의석수18석
획득 의석수46석
의석 변화'28*'
득표수5,242,947표
득표율16.8%
득표율 변동'1.0pp'

2. 선거 전

1992년 영국 총선에서 예상 외로 승리했던 보수당은 집권 직후 검은 수요일 사태를 맞으며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었다. 이 사건은 보수당 정부의 경제 운영 능력에 대한 신뢰를 크게 떨어뜨렸고, 총선 승리 직후 잠시 상승했던 지지율은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다. 잇따른 탈당과 보궐선거 패배로 보수당은 점차 하원 과반수를 잃어, 1997년에는 324석만을 확보한 상태였다. 특히 1989년 리치먼드 보궐선거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보궐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하는 등 정치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다.

한편, 야당인 노동당1992년 닐 키녹 대표가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후, 존 스미스가 새로운 대표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스미스는 1994년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사망했고, 이후 치러진 대표 경선에서 그림자 내무장관이었던 토니 블레어가 승리했다.

블레어는 '신노동당'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당을 정치 중도 노선으로 이끌기 위한 개혁을 추진했다. 그는 당내 경쟁자였던 존 프레스코트와 고든 브라운을 각각 부대표와 그림자 재무장관 등 주요 직책에 임명하며 당내 통합을 꾀했다. 또한, 전통적인 노동당의 약점으로 지적되던 경제 정책 분야에서 제3의 길 노선을 표방하며 중산층의 지지를 얻고자 노력했다. 이를 위해 당원과 노동조합을 설득하여 산업의 대규모 국유화를 약속했던 당헌 4조항을 폐지하고, 일방적인 핵무장 해제 정책도 수정했다. 이러한 변화는 검은 수요일 이후 보수당 정부의 경제 운영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커진 상황과 맞물려, 노동당과 고든 브라운이 경제를 더 잘 관리할 수 있다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했다.

노동당은 1996년 ''신노동당, 영국을 위한 새로운 삶''이라는 제목의 선거 공약을 발표하며 5가지 핵심 약속을 제시했다.


  • 보조 학자금 재원을 활용하여 5~7세 아동의 학급당 학생 수를 30명 이하로 감축
  • 상습 청소년 범죄자의 체포부터 판결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절반으로 단축하여 신속한 처벌 시스템 구축
  • 국민건강서비스(NHS)의 관료주의 개혁을 통해 절감된 1억파운드을 투입하여 대기자 명단을 줄이고, 1단계로 10만 명 추가 진료 실시
  • 민영화된 공공 서비스 기업에 대한 일시적 부과금(횡재세)을 재원으로 활용하여 25세 미만 청년 실업자 25만 명에게 일자리 제공
  • 소득세율 인상 없이 난방 연료에 대한 부가가치세(VAT)를 5%로 인하하고, 인플레이션과 금리를 최대한 낮게 유지


보수당 정부는 1990년대 초 경기 침체 이후 경제가 회복되고 실업률이 감소하고 있다는 점을 내세우려 했지만, 유럽 연합 문제를 둘러싼 당내 극심한 분열과 연이어 터져 나온 정치인들의 '부정부패' 혐의(sleaze)로 인해 심각한 인기 하락을 겪고 있었다.[3][4] 경제 지표 개선에도 불구하고 보수당의 지지율은 거의 오르지 않았으며, 1992년 말부터 모든 주요 여론조사에서 노동당이 큰 격차로 앞서 나갔다.[10]

존 메이저 총리는 1997년 3월 17일 총선 실시를 공식 발표했으며, 의회 해산은 4월 8일에 이루어졌다.[11] 이로써 선거운동 기간은 6주로 이례적으로 길어졌는데, 이는 이후 세 차례의 총선이 5월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관행의 시작이 되었다. 보수당 측은 긴 선거운동 기간이 노동당의 정책적 약점을 드러내고 보수당의 메시지를 충분히 전달할 기회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메이저 총리가 닐 해밀턴 의원이 연루된 '돈을 받고 의회 질의를 해 준' 스캔들에 대한 의회 보고서 발표를 선거 이후로 미루기 위해 의도적으로 선거일을 앞당겼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메이저 총리는 이전에 해당 보고서가 선거 전에 발표될 것이라고 약속한 바 있었다.[12]

선거운동 기간 내내 여론은 정권 교체에 대한 기대감으로 기울었다. 블레어의 개인적인 인기와 '신노동당'의 중도적 이미지는 노동당에 대한 강력한 지지로 이어졌고,[5][6] 투표일을 두 달 앞두고는 유력 대중지인 ''더 선''이 노동당 지지를 공식 선언하기도 했다.[18] 선거 전 대부분의 언론은 노동당의 압도적인 승리를 예상했다.[37]

3. 선거 과정

보수당 후보의 포스터


1992년 총선에서 보수당은 존 메이저 총리의 지도 아래 승리했지만, 당시 영국 경제는 불황 상태였다. 불황은 1년 만에 끝났으나, 이후 발생한 블랙 웬즈데이 사건 등은 보수당 정부의 경제 운용 능력에 대한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했다. 1992년 총선 이후 보수당은 하원 651석 중 336석을 확보했으나, 잇따른 탈당과 보궐선거 패배로 점차 과반수를 상실하여 1997년에는 324석까지 의석수가 줄어들었다. 보수당은 1989년 리치먼드 보궐선거 이후 단 한 번의 보궐선거에서도 승리하지 못하는 부진을 겪었다.

한편, 야당인 노동당은 1992년 닐 키녹의 후임으로 존 스미스를 당수로 선출했다. 그러나 1994년 스미스가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새로운 당수 선거가 치러졌고, 당시 그림자 내무장관이었던 토니 블레어가 당선되었다. 블레어는 당을 정치 중도 노선으로 이끌며 "신노동당"으로의 변신을 주도했다. 그는 당 헌법에서 산업의 대규모 국유화를 명시했던 4조항을 삭제하고, 일방적 핵무장 해제 정책을 폐기하도록 당원과 노동조합을 설득했다. 블랙 웬즈데이 이후, 노동당과 그림자 재무장관 고든 브라운은 보수당보다 경제를 더 유능하게 관리할 수 있다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1992년 말부터 모든 주요 여론 조사에서 노동당은 보수당에 대해 꾸준히 큰 격차로 앞서 나갔으며, 선거 전 4년간 경제 회복과 실업률 감소에도 불구하고 보수당의 지지율은 미미한 상승에 그쳤다.[10]

존 메이저 총리는 1997년 3월 17일 월요일에 총선 실시를 공식 발표했고, 의회는 4월 8일에 해산되었다.[38][11] 이로써 선거 운동 기간은 이례적으로 긴 6주 동안 진행되었으며, 선거일인 5월 1일에는 지방 선거도 동시에 치러졌다. 보수당은 긴 선거 운동 기간이 노동당의 약점을 노출시키고 보수당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기회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12] 그러나 일각에서는 메이저 총리가 닐 해밀턴 의원의 부정 행위 의혹에 대한 의회 보고서 발표를 지연시키기 위해 조기 해산을 결정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12]

18년의 장기 집권에 대한 피로감과 여러 스캔들로 인해 보수당은 여론조사에서 낮은 지지율에 머물렀다. 보수당은 '보수당만이 여러분을 안심시킬 수 있다(You can only be sure with the Conservatives)'는 구호를 내걸고 '안정'을 핵심 가치로 내세웠다. 그러나 유럽 연합 문제를 둘러싼 당내 극심한 분열과 다양한 "부정부패" 혐의는 정부의 인기를 심각하게 훼손했다.[4] 특히 제임스 골드스미스가 영국의 유럽 연합 탈퇴 국민투표를 주장하며 국민투표당을 창당해 보수당의 우파 표를 잠식했고, 이 당은 실제 선거에서 2.6%를 득표했다. 또한 이 선거는 영국 독립당이 처음으로 참여한 총선이기도 했다. 약 200명의 보수당 후보가 당론을 어기고 유럽 단일 통화 도입에 반대하는 등[14] 당내 분열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재무장관 케네스 클라크가 내무장관 마이클 하워드의 유럽관을 "편집증적이고 외국인 혐오적인 허튼소리"라고 공개 비난하는 등 내각 내 갈등도 노출되었다. 메이저 총리는 유럽 문제와 관련해 "나에게 동의하든 반대하든, 나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내가 영국 국민을 대표하여 협상하는 동안 내 손발을 묶지 마십시오."라고 호소했으나,[15] 이는 오히려 당의 불안정한 상황을 부각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보수당은 토니 블레어의 '신노동당'을 공격하기 위해 블레어의 눈을 악마처럼 묘사한 '새로운 노동당, 새로운 위험(New Labour, New Danger)' 포스터를 제작했지만, 이는 인신공격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역효과를 냈다.[39] 선거 전략가들 사이에서도 노동당이 보수당 정책을 모방했다고 비판할지, 아니면 '신노동당'이 과거 '구노동당'의 위장에 불과하다고 공격할지를 두고 혼선이 빚어졌다.

반면 노동당은 여론조사에서의 압도적인 우위를 바탕으로 자신감 있게 선거 운동을 전개했다. 토니 블레어는 높은 개인적 인기를 활용하여 효과적인 선거 운동을 이끌었으며, 지난 18년간의 보수당 집권 시기의 실정을 집중적으로 비판했다. 노동당의 선거 운동 방식은 빌 클린턴1992년 및 1996년 미국 대선 캠페인을 참고하여 중도적인 가치를 강조하면서도, 범죄 예방이나 재정 건전성 확보와 같이 전통적으로 보수당의 강점으로 여겨졌던 정책들을 적극적으로 포용했다. 앨리스테어 캠벨과 피터 맨델슨과 같은 미디어 전문가들의 활약은 '신노동당'이라는 새로운 정치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는 데 기여했으며, 선거 기간 내내 'Things Can Only Get Better'를 캠페인 주제곡으로 활용했다.[16][17] 1996년에 발표된 노동당의 선거 공약 ''신노동당, 영국을 위한 새로운 삶''은 다음과 같은 5가지 핵심 약속을 담았다.

  • 보조 학자금 제도 재원을 활용하여 5~7세 아동의 학급당 학생 수를 30명 이하로 감축.
  • 상습 청소년 범죄자에 대한 신속한 처벌을 위해 체포부터 판결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절반으로 단축.
  • NHS 관료주의 개혁으로 절감된 1억파운드을 투입하여 NHS 대기자 명단을 줄이고, 1단계로 10만 명에게 추가 치료 기회 제공.
  • 민영화된 공익사업에 대한 한시적 부과금을 통해 25세 미만 청년 실업자 25만 명에게 일자리 제공.
  • 소득세율 인상 없이 난방 관련 부가가치세를 5%로 인하하고, 인플레이션과 금리를 최대한 낮게 유지.


노동당은 더 선[18]을 포함하여 데일리 미러, 인디펜던트, 가디언 등 주요 언론들의 지지를 확보했다.[19]

자유민주당은 노동당의 강세로 인해 지지율 자체는 하락했지만, 보수당 지지율이 크게 떨어질 것으로 예측되면서 보수당의 지역구를 공략하는 전략을 펼쳤다. 특히 보수당의 전통적 강세 지역인 사우스웨스트잉글랜드에 경쟁력 있는 후보들을 집중 배치했다. 패디 애시다운 대표는 교육 예산 증액을 위해 소득세를 1%p 인상하겠다고 공약했다. 선거 결과, 자유민주당은 득표율이 소폭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노동당과 자유민주당 지지자 간의 전략 투표가 효과를 발휘하면서 의석 수를 이전 총선 대비 거의 두 배로 늘리는 성과를 거두었다.[7]

4월 상순, 각 정당은 공식 선거 강령을 발표했다. 보수당은 감세, 고용 창출, 경제 안정을 전면에 내세웠고, 노동당은 교육 개혁, 고용 확대, 지방 분권 강화를 핵심 공약으로 제시했다. 자유민주당은 교육, 경제, 환경, 지역 사회 발전을 주요 정책 과제로 삼았다.[36]

지난 총선 이후 인터넷 보급이 확대됨에 따라, BBC 뉴스는 이번 총선을 위해 특별 웹사이트 'BBC Politics 97'을 개설하여 운영했다.[33] 이는 같은 해 하반기 정식 출범 예정이었던 온라인 뉴스 서비스의 성능과 효율성을 시험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34]

4. 여론조사

1997년 영국 총선 기간 정당 지지율 여론조사 추이. 빨강: 노동당, 파랑: 보수당, 노랑: 자유민주당


조사출처조사일보수당노동당자유민주당
bgcolor=#0087DC |bgcolor=#DC241F |bgcolor=#FDBB30 |
Gallup/Telegraph1997.04.2730%49%14%
Gallup/Telegraph1997.04.2829%51%13%
Gallup/Channel 41997.04.2831%49%14%
NOP/Reuters1997.04.2928%51%14%
MORI/Times1997.04.2927%51%15%
Harris/Independent1997.04.2931%48%15%
Gallup/Telegraph1997.04.2931%51%13%
MORI/Evening Standard1997.04.3029%47%19%
Gallup/Telegraph1997.04.3033%46%16%
CM/Guardian1997.04.3033%43%18%


5. 선거 결과

1997년 영국 총선 결과


선거구별 결과 (등면적 투영)


국가 및 잉글랜드 지역별 결과


1997년 5월 1일 실시된 총선거에서 토니 블레어가 이끄는 노동당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1979년 총선 이후 18년 만에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 노동당은 418석을 획득하여 창당 이래 최대 의석수를 기록했으며, 이는 이전 선거 대비 145석이 증가한 결과이다. BBC 선거 방송에서 앤서니 킹 교수는 출구조사 결과를 두고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하여 지구상의 거의 모든 생명체를 파괴한 것과 같다"고 표현할 정도로 노동당의 압승이었다.[10]

노동당의 승리는 토니 블레어의 카리스마[21]와 앨리스터 캠벨, 피터 맨델슨 등이 이끈 홍보 전략의 성공에 힘입은 바 크다. 특히 1992년 총선 이후 당을 "뉴 레이버"로 재정비하며 산업 국유화를 약속했던 4조항 폐지 등 중도 노선을 강화한 것이 주효했다. 이를 통해 노동당은 전통적인 지지층을 넘어 중도 및 일부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지지까지 확보할 수 있었다. 1997년 5월 2일 새벽,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열린 축하 파티에서 블레어는 "새로운 새벽이 밝았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라고 연설하며 승리를 자축했다.

반면 존 메이저가 이끄는 보수당은 165석을 얻는 데 그쳐 1832년 이후 최악의 참패를 기록했다. 이는 이전 선거 대비 178석이 감소한 수치이며, 특히 스코틀랜드웨일스에서는 단 한 석도 얻지 못하는 전멸에 가까운 결과를 맞았다. 마이클 포틸로, 말콤 리프킨드, 에드위나 커리, 데이비드 멜러, 닐 해밀턴, 노먼 라몬트 등 다수의 중진 의원들이 낙선하는 등[29] 보수당에게는 충격적인 결과였다. 블랙 웬즈데이 사태로 인한 경제 운용 능력에 대한 불신, 당내 유럽 연합 문제를 둘러싼 극심한 분열, 연이어 터진 부정부패 스캔들 등이 참패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패디 애슈다운이 이끄는 자유민주당은 득표율은 16.8%로 소폭 하락했지만, 노동당 지지자들의 전략적 투표에 힘입어 이전 선거보다 28석 늘어난 46석을 확보했다.[7] 이는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시절인 1929년 이후 자유당 계열 정당으로서는 가장 많은 의석 수였다.

제임스 골드스미스가 창당한 국민투표당은 유럽 연합 탈퇴 국민투표를 공약으로 내걸고 81만 표(2.6%) 이상을 득표하며 4위를 차지했으나, 의석을 확보하지는 못했다.[29] 그 외 스코틀랜드 국민당(SNP)은 3석 증가한 6석, 얼스터 통합당(UUP)은 1석 증가한 10석, 웨일스 민족당(Plaid Cymru)은 4석을 유지했으며, 신 페인은 2석을 새로 얻었다. 반면 북아일랜드 사회민주노동당(SDLP)과 민주통합당(DUP)은 각각 1석씩 감소하여 3석과 2석을 얻었다.

현금 지급 스캔들에 연루된 보수당 닐 해밀턴 의원의 지역구였던 태튼에서는 노동당과 자유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않고 전직 BBC 기자인 무소속 마틴 벨 후보를 지원하여 그가 당선되는 이변이 연출되었다. 윈체스터에서는 자유민주당 후보가 단 2표 차로 승리했으나, 투표용지 관리 문제로 보수당 후보가 이의를 제기하여 보궐선거가 치러졌고, 여기서 자유민주당 후보가 더 큰 표차로 다시 승리했다.

이번 선거에서는 여성 의원의 수가 크게 증가하여 주목받았다. 1992년 60명(9%)이었던 여성 의원은 120명(18.2%)으로 두 배 증가했다.[23] 이 중 노동당 소속이 101명으로 압도적이었는데, 이는 노동당이 여성 후보자 할당제(All-women shortlists)를 도입한 결과였다(이후 위헌 판결을 받음).[24] 이 때문에 1997년 총선은 영국 정치사에서 여성의 정치 참여 확대에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받는다.[25][26][27][28]

훗날 영국 총리가 되는 테리사 메이가 처음으로 당선된 선거이기도 하다. 이 선거 결과로 들어선 노동당 정부는 2010년 총선까지 13년간 집권하게 된다.

1997년 총선 결과 의석 분포


'''1997년 영국 하원 의원 총선거'''1997년5월 1일 실시)
정당당수득표수득표율 (%)증감 (%)의석수증감
주요 정당
노동당 (Labour)토니 블레어13,518,16743.2%+8.8%418+145
보수당 (Conservative)존 메이저9,600,94330.7%-11.2%165-178
자유민주당 (Liberal Democrat)패디 애슈다운5,242,94716.8%-1.0%46+28
지역 기반 정당
스코틀랜드 국민당 (SNP)알렉스 샐먼드621,5502.0%+0.1%6+3
얼스터 통합당 (UUP)데이비드 트림블258,3490.8%0.0%10+1
북아일랜드 사회민주노동당 (SDLP)존 흄190,8140.6%+0.1%3-1
웨일스 민족당 (Plaid Cymru)다피드 위글리161,0300.5%0.0%40
신 페인 (Sinn Féin)제리 애덤스126,9210.4%+0.2%2+2
민주통합당 (DUP)이언 페이즐리107,3480.3%0.0%2-1
영국 통합당 (UKUP)로버트 맥카트니12,8170.0%0.0%1+1
기타 정당 및 무소속
국민투표당 (Referendum)제임스 골드스미스811,8492.6%+2.6%00
무소속해당 없음64,4820.2%+0.1%1 (마틴 벨)+1
의장 (Speaker)베티 부스로이드23,9690.1%0.0%10
기타 정당 합계colspan="2" |547,0581.7%-0-
총계31,286,284100.0%659+8
투표자 수 (투표율)31,286,28471.3%-6.4%colspan="2" |
기권자 수 (기권율)12,559,86828.7%+6.4%colspan="2" |
유권자 수43,846,152colspan="4" |
출처: GENERAL ELECTION RESULTS, 1 MAY 1997 (parliament.uk)[29]



지역별 의석 분포
지역노동당 (LAB)보수당 (CON)자유민주당 (LD)스코틀랜드 국민당 (SNP)웨일스당 (PC)북아일랜드 정당기타합계
잉글랜드32816534---2529
웨일스34-2-4--40
스코틀랜드56-106---72
북아일랜드-----18-18
합계4181654664182 (의장 포함)659



여성 후보 및 당선자 수
정당여성 후보자 수여성 당선자 수 (a)정당 전체 당선자 수 (b)여성 당선자 비율 (a/b)
노동당15610141824.2%
보수당66131657.9%
자유민주당1393466.5%
기타 정당3112306.7%
합계67211965918.1%



출처: House of Commons Library Research Paper 05/33, "Social background of MPs"

6. 선거 이후

토니 블레어가 이끄는 노동당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1979년 영국 총선 이후 18년 만에 정권을 되찾았다. 블레어는 노동당 출신으로는 18년 만에 다우닝 가에 입성하며 총리가 되었다. 이 선거의 승리로 노동당은 2010년 영국 총선에서 보수당-자유민주당 연립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13년 동안 장기 집권의 기반을 마련했다.

선거에서 참패한 보수당의 존 메이저 총리는 "막이 내릴 때는 무대에서 내려올 때다"라는 말을 남기고 당 대표직에서 사임했다.[30] 보수당 내부에서는 온네이션 그룹, 토리 개혁 그룹, 그리고 우익 성향의 마스트리흐트 반란군 등이 서로에게 패배의 책임을 돌리며 분열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 의장 브라이언 마윈니는 18년간 이어진 보수당 집권에 대한 국민적 환멸이 패배의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메이저의 후임으로는 윌리엄 헤이그가 새로운 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반면 보수당은 탐워스 선언 이후 가장 긴 13년 간의 야당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는 18세기 조지 1세 및 조지 2세 치하 휘그당 우세 시대 이후 토리당 역사상 가장 긴 야당 기간이었다.[31] 이 기간 동안 보수당의 하원 의석수는 200석 미만에 머물렀다.

자유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의석을 늘리며 제3당으로서의 입지를 다졌다.[32] 당 대표 패디 애시다운1999년 "젊은 사람이 대표가 되어야 한다"며 사임했고, 찰스 케네디가 후임 대표가 되었다.

한편, 훗날 영국 총리가 되는 테리사 메이가 처음으로 하원의원에 당선된 선거이기도 하다.

이번 선거에서는 여성 의원이 크게 늘어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전체 여성 당선자는 120명으로, 지난 총선의 60명에서 두 배 가까이 증가하여 하원 전체 의석의 18.2%를 차지했다. 특히 노동당은 당선 가능성이 높은 지역구에 여성 후보를 적극 공천한 결과, 102명의 여성 의원을 배출하며 전체 노동당 의원의 24.4%를 여성이 차지하게 되었다. 이는 전체 여성 당선자의 80% 이상에 해당한다.

이번 총선 정당별 여성 후보 및 당선자 현황
정당여성 후보자 수여성 당선자 수 (a)정당 전체 당선자 수 (b)여성 당선자 비율 (a/b)
노동당15610241824.4%
보수당66131657.8%
자유민주당1393466.5%
기타 정당3112306.0%
합계67212065918.2%



출처: 「영국 총선거에서의 성별 현황. 당 주도 여성 후보 발탁 방안의 합법화와 그 문제점」 6쪽 표1 인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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