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스코틀랜드 독립 국민투표
1. 개요
2014년 스코틀랜드 독립 국민투표는 스코틀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할지 여부를 묻는 투표였다. 스코틀랜드 국민당(SNP)이 독립을 추진하면서 2013년 영국 정부와 2014년에 투표를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투표는 2014년 9월 18일에 진행되었으며, 16세 이상 스코틀랜드 거주민에게 투표 자격이 주어졌다. 투표 결과, 44.7%가 독립에 찬성하고 55.3%가 반대하여 독립은 부결되었으며,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투표 이후 알렉스 샐먼드 스코틀랜드 자치 정부 수반이 사임하고 니콜라 스터전이 뒤를 이었다. 브렉시트 이후 독립에 대한 논의가 다시 시작되었으며, 2023년 10월 19일에 두 번째 주민투표를 실시할 것이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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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독립운동 -
알바당
알바당은 2021년 로리 플린이 창당한 스코틀랜드 민족주의 정당으로, 스코틀랜드 독립과 사회적 정의, 환경적 책임을 목표로 하며, 앨릭스 새먼드와 케니 맥어스킬이 당 대표를 역임했다. -
스코틀랜드 독립운동 -
스코틀랜드 독립 2차 국민투표
스코틀랜드 독립 2차 국민투표는 스코틀랜드의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제안된 국민투표로, 2014년 독립 국민투표 부결 이후 스코틀랜드 국민당을 중심으로 논의가 지속되었으며 브렉시트 이후 유럽 연합 재가입 문제와 함께 논의가 활발해졌으나 영국 정부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
스코틀랜드의 국민투표 -
스코틀랜드 독립 2차 국민투표
스코틀랜드 독립 2차 국민투표는 스코틀랜드의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제안된 국민투표로, 2014년 독립 국민투표 부결 이후 스코틀랜드 국민당을 중심으로 논의가 지속되었으며 브렉시트 이후 유럽 연합 재가입 문제와 함께 논의가 활발해졌으나 영국 정부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
스코틀랜드의 국민투표 -
1997년 스코틀랜드 국민투표
1997년 스코틀랜드 국민투표는 스코틀랜드 자치 정부 설립과 과세 권한 부여에 대한 질문에 높은 찬성률을 보여 스코틀랜드 의회와 정부 설립의 계기가 되었다. -
2014년 국민투표 -
2014년 크림 주민투표
2014년 크림 주민투표는 크림 자치 공화국과 세바스토폴 특별시에서 러시아 연방으로의 귀속을 묻는 투표였으며, 투표 결과 러시아 편입에 대한 찬성률이 높았지만, 국제 사회는 투표의 불법성을 이유로 우크라이나 주권 침해로 규정했다. -
2014년 국민투표 -
2014년 이집트 개헌 국민투표
2014년 이집트 개헌 국민투표는 2013년 쿠데타 이후 임시 대통령의 정상화 계획에 따라 2012년 헌법을 개정하기 위해 실시되었으며, 대통령 임기, 국교 조항 등을 규정한 헌법안이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되었으나 일부 세력의 보이콧으로 논란이 있었다.
2. 역사적 배경
1707년 잉글랜드와의 합병 이후 스코틀랜드 의회는 그레이트브리튼 의회(The Parliament of Great Britain, 이후 그레이트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 의회)에 통합되었다. 그러나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전통적으로 잉글랜드에 대한 반감이 강했던 스코틀랜드에서는 독자적인 의회 설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1997년 스코틀랜드 출신 토니 블레어 정권은 의회 설치 여부를 묻는 주민 투표를 가결시켰다. 1999년 스코틀랜드 의회를 설치하고 중앙 정부의 권한을 스코틀랜드 자치 정부로 대폭 이양하여, 292년 만에 자치권을 획득한 스코틀랜드의 독립 지향은 일시적으로 억제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2011년 5월 스코틀랜드 의회 선거에서 스코틀랜드 독립을 공약으로 내건 스코틀랜드 국민당(SNP)이 의회 과반수를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고, 당수인 알렉스 샐먼드가 스코틀랜드 자치 정부의 수상에 취임했다. 2012년 10월 15일 영국의 수상 데이비드 캐머런과 샐먼드는 에든버러에서 회담을 갖고 합의서(Edinburgh Agreement)에 서명하여 주민 투표 실시가 결정되었다.
투표는 "스코틀랜드는 독립 국가가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원 선택으로 투표했고, 최저 투표율 설정은 없었다.
2.1. 영국의 형성
스코틀랜드 왕국과 잉글랜드 왕국은 중세 시대에 독립 국가로 설립되었다. 14세기 동안 일련의 전쟁을 치른 후, 두 왕국은 1603년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가 되면서 왕관 통합으로 동군연합을 이루었다. 1653년 올리버 크롬웰이 연방의 보호자로 선포되면서 두 국가는 일시적으로 하나의 정부 아래 통합되었지만, 1660년 왕정이 복고되면서 해체되었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는 1707년 연합하여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을 형성했다. 스코틀랜드는 다리엔 계획의 실패로 인한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합을 지지했고, 잉글랜드는 한노버 왕위 계승을 확보하기 위해 연합을 지지했다. 그레이트브리튼은 1801년 아일랜드 왕국과 다시 연합하여 그레이트브리튼 및 아일랜드 연합왕국을 형성했다. 아일랜드의 대부분은 1922년 연합에서 탈퇴하여 아일랜드 자유국을 형성했다. 결과적으로 1927년 이후 영국의 정식 명칭은 그레이트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이다.
2.2. 스코틀랜드 자치 확대
1970년대 후반 제임스 캘러헌의 노동당 정부는 스코틀랜드 국민당(SNP)의 압력을 받아 처음으로 스코틀랜드 자치를 진지하게 제안했다. 1979년 국민투표에서 분권화된 스코틀랜드 의회에 대한 찬성 투표가 근소한 다수를 차지했지만, '예'라고 투표한 사람의 수가 전체 유권자의 40%를 초과해야 한다는 요구 사항 때문에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1997년 5월 노동당이 압승을 거두고 집권할 때까지 더 이상의 헌법 개혁은 제안되지 않았다. 노동당 선거 공약대로 같은 해 말 두 번째 스코틀랜드 자치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다. 스코틀랜드 의회 설치(찬성 74.3%)와 의회가 기본 세율을 영국 소득세(찬성 63.5%)에서 변경할 권한을 갖는 것에 대한 명확한 다수의 지지가 표명되었다. 1998년 스코틀랜드 법은 1999년 5월 6일 첫 선거를 통해 새로운 스코틀랜드 의회를 설립했고, 스코틀랜드 내에서 비예약 사항에 대해 입법할 권한을 갖게 되었다.
1707년 잉글랜드와의 합병 이후 스코틀랜드 의회는 그레이트브리튼 의회(The Parliament of Great Britain, 이후 그레이트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 의회)에 통합되었지만,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전통적으로 잉글랜드에 대한 반감이 강했던 스코틀랜드에서는 독자적인 의회 설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스코틀랜드 출신 토니 블레어 정권 시대인 1997년 의회 설치 여부를 묻는 주민 투표에서 가결되었다. 블레어 내각은 스코틀랜드 주민의 독립 지향을 억누르기 위해 1999년 스코틀랜드 의회를 설치하고 중앙 정부의 권한을 스코틀랜드 자치 정부로 대폭 이양했다. 292년 만에 자치권을 획득함으로써 스코틀랜드의 독립 지향은 일시적으로 억제되는 듯 보였다.
2.3. 2014년 스코틀랜드 독립 국민투표 실시 배경
스코틀랜드 국민당(SNP)은 스코틀랜드의 완전한 독립을 목표로 하는 정당이다. 2011년 스코틀랜드 의회 선거에서 SNP가 과반수를 차지하며 집권하게 되면서 독립 국민투표 실시가 가시화되었다. 2013년 5월, SNP는 영국 중앙 정부와 2014년에 독립 찬반 투표를 실시하기로 합의하였다. 2014년은 스코틀랜드인들이 잉글랜드에 맞서 싸운 배넉번 전투로부터 700주년이 되는 해로서 스코틀랜드인들에게는 의미가 깊다.
1920년대 노동당은 스코틀랜드 자치에 헌신했지만, 이후 몇 년 동안 의제에서 밀려났다. SNP는 1934년에 설립되었지만, 1960년대까지는 상당한 선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자치를 요구하는 청원인 스코틀랜드 성약은 1940년대 후반에 500만 명의 인구 중 200만 명이 서명했다.
1970년대 후반 제임스 캘러헌의 노동당 정부는 SNP의 압력을 받아 처음으로 스코틀랜드 자치를 진지하게 제안했다. 1979년 국민투표에서 분권화된 스코틀랜드 의회에 대한 찬성 투표가 근소한 다수를 차지했지만, '예'라고 투표한 사람의 수가 전체 유권자의 40%를 초과해야 한다는 요구 사항 때문에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1997년 1997년 5월에 노동당이 압승을 거두고 집권할 때까지 더 이상의 헌법 개혁은 제안되지 않았다. 노동당 선거 공약대로 같은 해 말에 두 번째 스코틀랜드 자치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다. 분권화된 스코틀랜드 의회(찬성 74.3%)와 의회가 기본 세율을 영국 소득세(찬성 63.5%)를 변경할 권한을 갖는 것에 대한 명확한 다수의 지지가 표명되었다. 1998년 스코틀랜드 법은 1999년 5월 6일에 첫 선거를 통해 새로운 스코틀랜드 의회를 설립했고, 스코틀랜드 내에서 비예약 사항에 대해 입법할 권한을 갖게 되었다.
2007년 스코틀랜드 의회 선거에서 SNP는 2010년 독립 국민투표 실시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시 언론은 대체로 SNP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이 선거 결과, SNP는 스코틀랜드 의회에서 최대 정당이 되었고, 알렉스 샐먼드 수상이 이끄는 소수 정부를 구성했다.
SNP 정부는 2007년 8월, 국민투표 법안 초안인 '국민투표(스코틀랜드) 법안'을 포함한 협의 과정인 '국가 대화'를 시작했다. 2009년 11월 30일, 제안된 국민투표 법안에 대한 백서가 발표되었다. 백서에는 법안과 국민투표 내용은 추후 공개될 예정이라는 설명과 함께 네 가지 시나리오가 자세히 제시되었다. 네 가지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 현상 유지
* 스코틀랜드 분권위원회의 칼먼 검토에 따른 분권
* 추가 분권
* 완전 독립
스코틀랜드 정부는 2010년 2월 25일, 공개 협의를 위해 법안 초안을 발표했다. '스코틀랜드의 미래: 국민투표(스코틀랜드) 법안 협의 문서 초안'에는 협의 문서와 법안 초안이 포함되었다. 협의 문서는 제안된 투표용지, 제안된 국민투표의 절차, 그리고 제안된 국민투표의 규제 방법을 제시했다.
법안에는 세 가지 제안이 제시되었다.
* 완전한 분권 또는 '최대 분권': 스코틀랜드 의회가 "국방 및 외교; 금융 규제, 통화 정책 및 통화"를 제외한 "스코틀랜드의 모든 법률, 세금 및 의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 칼먼식 재정 개혁
* 완전한 독립
제3대 스코틀랜드 의회에서는 129명의 의원 중 50명(SNP 47명, 스코틀랜드 녹색당 2명, 마고 맥도널드 1명)만이 국민투표를 지지했다. 스코틀랜드 정부는 야당의 지지를 확보하지 못하자 2010년 9월 법안을 철회했다.
SNP는 2011년 스코틀랜드 의회 선거 선거 공약에서 독립 국민투표 개최에 대한 약속을 재확인했다. 선거에서 SNP는 비례 대표 제도에서 129석 중 69석을 차지하여 과반수 의석을 확보했다.
2012년 1월, 영국 정부는 국민투표를 개최할 권한을 스코틀랜드 의회에 부여하는 법안을 제정할 것을 제안했는데, 그 조건은 '공정하고, 합법적이며, 결정적'이어야 했다. 영국 정부가 투표 시기 등 법적 세부 사항을 검토하는 동안 알렉스 샐먼드는 2014년 가을에 국민투표를 실시할 의향을 발표했다. 두 정부 간의 협상은 2012년 10월 에든버러 합의가 도출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2013년 스코틀랜드 독립 국민투표 (선거권) 법은 2013년 6월 27일 스코틀랜드 의회에서 통과되었고, 2013년 8월 7일 왕실의 재가를 받았다. 2013년 11월 26일, 스코틀랜드 정부는 독립 주장과 스코틀랜드가 독립 국가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670페이지 분량의 백서 스코틀랜드의 미래를 발표했다.
1707년의 잉글랜드와의 합병 이후 스코틀랜드 의회는 그레이트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 의회에 통합되었지만,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전통적으로 잉글랜드에 대한 반감이 강했던 스코틀랜드에서는 독자적인 의회 설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토니 블레어 정권 시대인 1997년, 의회 설치 여부를 묻는 주민 투표에서 가결되었다. 블레어 내각은 스코틀랜드 주민의 독립 지향을 억누르기 위해 1999년에 스코틀랜드 의회를 설치하고 중앙 정부의 권한을 스코틀랜드 자치 정부로 대폭 이양했다.
그러나 2011년 5월 스코틀랜드 의회 선거에서 스코틀랜드 독립을 공약으로 내건 SNP가 의회 과반수를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고, 당수인 알렉스 샐먼드가 스코틀랜드 자치 정부의 수상에 취임했다. 2012년 10월 15일에 영국의 수상 데이비드 캐머런과 샐먼드가 에든버러에서 회담을 갖고 합의서에 서명함으로써 주민 투표 실시가 결정되었다.
투표는 "스코틀랜드는 독립 국가가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원 선택으로 투표했고, 최저 투표율 설정은 없었다.
3. 국민투표 준비 과정
2013년 3월 21일, 스코틀랜드 정부는 국민투표가 2014년 9월 18일 목요일에 실시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2014년은 배넉번 전투 700주년이 되는 해였고, 스코틀랜드에서 2014년 코먼웰스 게임과 2014년 라이더컵이 개최될 예정이었다. 알렉스 살몬드는 이러한 행사들이 2014년을 "국민투표를 개최하기에 좋은 해"로 만든다는 데 동의했다.
국민투표에는 "스코틀랜드는 독립 국가가 되어야 하는가?"(Should Scotland be an independent country?영어)라는 문구가 사용되었다. 스코틀랜드 정부는 중립적인 문구를 사용하고자 했으며, 선거관리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최종 확정되었다.
스코틀랜드 국민당은 스코틀랜드의 분리 독립을 추진해왔으며, 영국 중앙 정부와 2014년에 독립 찬반 투표를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2014년은 스코틀랜드인들이 잉글랜드에 맞서 싸운 배넉번 전투 700주년이 되는 해였다.
에든버러 합의를 통해 두 정부는 법적 권한을 일시적으로 이전하기로 합의했다. 영국 정부는 스코틀랜드 의회가 2014년 12월 31일 이전에 독립 국민투표를 개최하는 데 필요한 권한을 부여하는 국왕령을 작성했다. 의회 양원의 결의에 따라 법령 초안이 승인되었고, ("스코틀랜드 법 1998년 (5차 일정 수정) 명령 2013년") 명령은 2013년 2월 12일 추밀원 회의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승인을 받았다. 웨스트민스터로부터 30조 명령에 따라 일시적으로 이전된 권한에 따라 스코틀랜드 의회는 2013년 스코틀랜드 독립 국민투표법을 채택했다. 이 법은 2013년 11월 14일 스코틀랜드 의회에서 통과되었고, 2013년 12월 17일 왕실 재가를 받았다. 법 제36조에 따라, 왕실 재가 다음 날부터 시행되었다.
3.1. 투표일 및 투표 자격
스코틀랜드 정부는 2013년 3월 21일에 국민투표가 2014년 9월 18일 목요일에 실시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2014년이 배넉번 전투 700주년이 되는 해이며, 스코틀랜드가 2014년 코먼웰스 게임과 2014년 라이더컵을 개최한다는 점을 언급했다. 알렉스 살몬드는 이러한 행사들이 2014년을 "국민투표를 개최하기에 좋은 해"로 만든다는 데 동의했다.
3.2. 투표 문구
"스코틀랜드는 독립 국가가 되어야 하는가?"(Should Scotland be an independent country?영어)라는 문구가 2014년 스코틀랜드 독립 국민투표에 사용되었다. 스코틀랜드 정부는 중립적인 문구를 사용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선거관리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최종 확정되었다.
3.3. 캠페인
스코틀랜드 정부의 집권당인 스코틀랜드 국민당은 스코틀랜드의 분리 독립을 추진하고 있었다. 2013년 5월, 스코틀랜드 국민당은 영국 중앙 정부와 2014년에 독립 찬반 투표를 실시하기로 합의하였다. 2014년은 스코틀랜드인들이 잉글랜드에 맞서 싸운 배넉번 전투로부터 700주년이 되는 해로서 스코틀랜드인들에게는 의미가 깊은 해였다.
두 정부는 에든버러 합의를 통해 법적 권한을 일시적으로 이전하기로 합의했다. 이 합의에 따라 영국 정부는 스코틀랜드 의회가 2014년 12월 31일 이전에 독립 국민투표를 개최하는 데 필요한 권한을 부여하는 국왕령을 작성했다. 의회 양원의 결의에 따라 해당 법령 초안이 승인되었고, ("스코틀랜드 법 1998년 (5차 일정 수정) 명령 2013년") 명령은 2013년 2월 12일 추밀원 회의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승인을 받았다. 웨스트민스터로부터 30조 명령에 따라 일시적으로 이전된 권한에 따라 스코틀랜드 의회는 2013년 스코틀랜드 독립 국민투표법을 채택했다. 이 법은 2013년 11월 14일 스코틀랜드 의회에서 통과되었고 2013년 12월 17일 왕실 재가를 받았다. 법 제36조에 따라, 왕실 재가 다음 날부터 시행되었다.
4. 주요 쟁점
영국 선거관리위원회는 국민투표에서 투표 진행, 결과 발표, 보조금 지급을 제외한 감독 역할을 맡았다. 선거 운동 및 자금 규제와 관련해서는 스코틀랜드 의회에 보고했다. 투표와 개표는 지방 선거 관리관이 최고 개표 책임자의 지휘 아래 관리했다.
4.1. 경제
독립 찬성 측은 북해 유전 개발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영국 정부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며, 북해 유전에서 징수되는 세수를 활용하여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북해 유전 개발로 스코틀랜드의 1인당 소득이 연간 1,000파운드(약 170)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한, 영국 내 국내총생산(GDP)의 수도와 지방 간 격차가 크고, 런던에 경제력이 집중되는 현상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었다.
독립 진영은 유럽 연합(EU)과의 관계 강화를 추구하며, 바로주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이 독립 시 EU 가입이 어려울 수 있다고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EU 잔류를 희망했다. 이들은 북해 유전 세수를 활용하여 재정을 개선하고, 감세 등 기업 유치 정책을 실행하며, 의료, 복지, 사회보장을 충실히 하는 "북유럽 복지 국가"와 같은 유럽형 사회민주주의 국가 설립을 목표로 했다.
한편, "예스 스코틀랜드"는 징세, 안보, 외교 권한이 없는 자치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하며, 마가렛 대처 정부의 인두세 우선 도입, 트라이던트 핵미사일을 탑재한 뱅가드급 원자력 잠수함의 스코틀랜드 배치, 이라크 전쟁 참전 등 영국 정부의 정책에 대한 불만을 독립 주장의 근거로 제시했다.
4.2. 복지 및 사회 정책
독립을 추구하는 측은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에 반대하며, 북해 유전 세수를 활용하여 재정을 개선하고 기업 유치 정책을 펼치며, 의료, 복지, 사회보장을 강화하는 "북유럽 복지 국가"와 같은 유럽형 사회민주주의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였다.
마가렛 대처 시대에 인두세가 스코틀랜드에서 우선 도입되었고, 영국이 운용하는 유일한 핵무기인 트라이던트를 탑재한 뱅가드급 원자력 잠수함이 스코틀랜드의 클라이드 해군 기지에 배치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제기되었다.
4.3. 국방 및 국제 관계
스코틀랜드 독립 진영은 북해 유전 개발권을 영국 정부가 독점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하며, 독립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점을 강조했다. 이들은 북해 유전에서 징수되는 세수가 약 8,200억 엔에 달하며, 독립 시 1인당 소득이 연간 1,000 파운드(170)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런던 중심의 경제 구조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었다. 영국은 수도와 지방 간 1인당 국내총생산(GDP) 격차가 러시아에 이어 세계 2위(69%)를 기록할 정도로 런던에 경제력이 집중되어 있다(일본은 14%). 1997년부터 2010년까지 영국 전체 고용 증가분의 43%가 런던에서 발생했으며,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런던의 정부 부문 고용은 6만 6,300명 증가한 반면 에든버러에서는 3,000명의 고용이 감소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유럽 연합(EU)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독립 진영과 영국 정부 간의 입장 차이가 존재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정권이 EU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보인 반면, 스코틀랜드 국민당(SNP)은 EU와의 관계 강화를 주장했다. 그러나 조제 마누엘 두랑 바로주 당시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스코틀랜드가 독립하더라도 EU 가입이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언급했다.
독립을 요구하는 단체들은 징세, 안보, 외교 권한이 없는 자치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다. 이들은 마거릿 대처 총리 시절 인두세의 스코틀랜드 우선 도입, 스코틀랜드 클라이드 해군 기지를 모항으로 하는 뱅가드급 원자력 잠수함의 트라이던트 핵미사일 탑재, 이라크 전쟁 참전 등 영국 정부의 정책에 대한 불만을 제기했다.
5. 투표 결과 및 영향
2014년 9월 18일, 여론조사에서 찬반 양측이 팽팽하게 맞서는 가운데 투표가 진행되었다. 글래스고 등 4개 카운슬에서만 찬성이 우세했고, 나머지 지역에서는 반대가 더 많았다. 최종 결과, 스코틀랜드 전체에서 반대가 55%를 기록하며 독립은 부결되었다.
알렉스 샐먼드 자치 정부 수상은 "스코틀랜드 국민들은 당분간 독립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유감스럽지만 이 결정을 받아들입니다."라며 패배를 인정했다. 샐먼드는 수상 및 스코틀랜드 국민당 당수직에서 물러났고, 니콜라 스터전 부수상 겸 부당수가 그의 뒤를 이었다.
투표율은 84.59%로 매우 높았으며, 이는 스코틀랜드 국민들이 독립 문제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앞으로 재정 권한 이양 등 자치 확대 방안이 마련될 예정이나, 이양할 권한의 범위를 둘러싼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또한, 웨일스 독립 운동, 잉글랜드 독립 운동 등 영국의 다른 지역에서도 유사한 요구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었다.
5.1. 투표 결과
2014년 9월 18일에 실시된 국민투표 결과, 찬성 44.7%, 반대 55.3%로 스코틀랜드의 독립은 부결되었다. 스코틀랜드를 구성하는 32개 행정 구역 가운데 28곳에서 반대가, 4곳에서 찬성이 더 많았다.
최대 도시인 글래스고를 포함한 4개 카운슬에서만 찬성이 우세했을 뿐, 나머지 카운슬에서는 반대가 우세했다. 최종적으로 스코틀랜드 전체에서 반대표가 55%를 기록하여 독립은 부결되었다.
알렉스 샐몬드 자치 정부 수상은 "스코틀랜드 국민들은 현재로서는 독립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유감스럽지만 그것을 받아들입니다."라며 패배를 인정했다. 샐몬드는 책임을 지고 수상 및 스코틀랜드 국민당 당수직에서 사퇴했고, 부수상 겸 부당수이자 페미니스트인 니콜라 스터전이 그의 뒤를 이었다.
투표율은 84.59%로 매우 높게 나타나, 스코틀랜드 국민들의 독립 문제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5.2. 정치적 영향
투표 결과, 알렉스 샐몬드 스코틀랜드 자치 정부 수상이 패배를 인정하며 사임했다. 그는 "스코틀랜드 국민들은 현재로서는 독립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유감스럽지만 그것을 받아들입니다."라고 말했다. 샐몬드의 후임으로는 부수상 겸 스코틀랜드 국민당 부당수였던 니콜라 스터전(Nicola Sturgeon)이 임명되었다.
비록 독립은 부결되었지만, 투표율은 84.59%로 매우 높게 나타나 스코틀랜드 국민들의 독립 문제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향후 재정적 권한 이양 등 자치 확대 방안이 마련될 예정이지만, 어느 정도의 권한을 이양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또한, 영국의 다른 지역(웨일스 독립 운동, 잉글랜드 독립 운동)에서도 유사한 요구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었다.
6. 투표 이후 상황
2014년 8월 27일, 우편투표자들이 투표용지를 받으면서 투표가 시작되었다. 2014년 8월 15일 기준으로 680,235명이 우편투표를 신청했는데, 이는 3월에 비해 20% 증가한 수치이다. 우편투표 기간 동안, 스코틀랜드 경찰은 글래스고의 한 남성을 이베이(eBay)에서 자신의 투표권을 판매한 혐의로 체포했다.
유권자 등록 마감일은 2014년 9월 2일이었다. 여러 지방의회는 "전례 없는" 수준의 신규 등록 건수를 처리했다고 보고했고, 다른 지방의회들은 마지막 주에 "수만 건"의 신청서를 접수했다고 밝혔다.
6.1. 브렉시트와 제2차 독립 국민투표 논의
국민투표에서 영국 전체는 유럽 연합 탈퇴를 선택했지만, 스코틀랜드는 잔류를 선택했다. 이러한 영국의 유럽 연합 탈퇴(브렉시트, Brexit영어)를 계기로 스코틀랜드 독립에 대한 여론이 다시 높아졌다. 2022년 6월 28일, 니콜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2023년 10월 19일에 스코틀랜드 독립을 묻는 두 번째 주민투표를 실시할 것을 발표했다.
6.2. 한국과의 관계
스코틀랜드 독립 문제는 한국의 통일 문제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한국은 스코틀랜드의 자치 확대 노력과 민주적인 절차를 존중하며, 스코틀랜드와의 협력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
7. 결론
2014년 스코틀랜드 독립 국민투표는 2014년 8월 27일 우편투표자들이 투표용지를 받으면서 시작되었다. 2014년 8월 15일 기준으로 680,235명이 우편투표를 신청했는데, 이는 3월에 비해 20% 증가한 수치이다. 우편투표 기간 동안, 스코틀랜드 경찰은 글래스고의 한 남성을 이베이(eBay)에서 자신의 투표권을 판매한 혐의로 체포했다. 국민투표 유권자 등록 마감일은 2014년 9월 2일이었다. 여러 지방의회는 "전례 없는" 수준의 신규 등록 건수를 처리했다고 보고했고, 다른 지방의회들은 마지막 주에 "수만 건"의 신청서를 접수했다.
2013년 스코틀랜드는 유럽 연합(EU) 회원국으로서 공동농업정책(CAP)에 따라 EU로부터 583의 보조금을 받았다. 연간 CAP 지급액은 영국에 지급되며, 영국은 스코틀랜드를 포함한 각 지역 정부에 할당할 금액을 결정한다. 마지막 CAP 협정에서 영국 농민들은 추가적인 수렴 지급금을 받을 자격이 있었는데, 이는 스코틀랜드 농민들이 헥타르당 평균 단일 농장 지급액이 주로 스코틀랜드의 산악 지형 때문에 낮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립 지지자들은 독립 스코틀랜드가 독립 국가로서 더 많은 농업 보조금을 받을 것이라고 믿었다. 반면 독립 반대자들은 스코틀랜드 농민들이 영국이 EU 회원국 중 하나로서 CAP 협상에서 더 큰 발언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연합으로부터 이익을 얻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독립 스코틀랜드가 최근의 신규 회원국들이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지급받았던 것처럼 EU로부터 즉시 보조금을 전액 지급받을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