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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차 콜레라 범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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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7차 콜레라 범유행은 1961년 인도네시아에서 시작되어 현재까지 진행 중인 콜레라 범유행이다. 이 유행은 엘 토르 콜레라 균주에 의해 발생했으며, 1960년대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를 거쳐 1970년대에는 중동, 아프리카, 남태평양, 일본, 일부 유럽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1991년에는 페루에서 유행하여 라틴 아메리카에서 콜레라가 재유행하기도 했다. 7차 콜레라 범유행은 오염된 음식이나 물 섭취를 통해 감염되며, 경구 수액 요법과 백신 개발을 통해 대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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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차 콜레라 범유행
7차 콜레라 범유행
질병콜레라
박테리아 균주비브리오 콜레라 생물형 엘 토르
위치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아메리카
발생 시기1961년
확인된 감염자 수1,126,229명
최초 발생지마카사르, 남술라웨시 주

2. 7차 콜레라 범유행의 역사

1961년에 인도네시아에서 최초 발병이 보고되었다.[14] 1961년 5월 마카사르에서 여행객들이 방문한 켄달 근처 해안가 지역인 자바에서 엘 토르 콜레라 발병이 처음 보고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6월에는 세마랑과 자카르타가 감염되었다.[14]

이 질병은 셀레베스에서 온 배들이 쿠칭에서 열린 레가타에 참여하면서 사라왁, 쿠칭으로 옮겨졌다. 첫 콜레라 환자는 7월 1일에 나타났다. 이 발병은 2주 동안 지속되었고 582명이 감염되어 79명이 사망했다 (치사율 17%). 8월까지 이 발병은 칼리만탄마카오까지 도달했다 (환자 13명, 사망 6명). 홍콩의 첫 번째 사례는 8월 15일 광둥 근처의 어촌 지역에서 나타났다. 두 번째 사례는 광둥과 홍콩 사이에 위치한 배에 사는 인구에서 발생했다. 홍콩에서는 72건의 사례가 발생하여 15명이 사망했다 (치사율 20.8%).[15]

1962년 2월 1일까지 4,107명이 콜레라에 감염되었고 897명이 사망했다 (치사율 21.8%). 대규모 예방 접종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9월까지 콜레라는 필리핀을 빠르게 통과했고, 1962년 3월까지 감염된 사람 수가 15,000명에 달했으며, 2,005명이 사망했다. 필리핀에서만 1962년에 사망자 수가 1,682명에 달했다.[16] 그것은 영국령 보르네오로 다시 유입되었는데, 졸로 섬에서 온 무증상 여행자에 의해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캄보디아, 태국, 싱가포르인도에서 발병이 발생했다.[15]

1963년에 WHO는 콜레라가 국제 검역 대상 질병 중 사망 원인 1위로 남아있다고 발표했으며, 타이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이란, 남부 러시아, 이라크, 한국, 버마, 캄보디아, 남베트남,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네팔, 태국, 우즈베키스탄홍콩에서 보고되었다.[16] 1963년에는 방글라데시까지 확산되었다.[16]

1960년대 중반에는 콜레라가 동남아시아로 침투하여 1964년에 방글라데시, 치타공, 캄보디아, 태국, 말레이시아 및 인도에서 발병했다. 1964년에 인도에서 발병이 보도되었다.[16] 엘 토르 균주는 서쪽으로 더 이동하여 1965년에는 파키스탄, 네팔, 아프가니스탄, 이란우즈베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일부를 포함하여 남아시아를 침범했다. 1939년 이후 콜레라가 없었던 이란은 10월 중순까지 2,704건의 사례를 보고했다.[16] 이란에서 이러한 발병이 발생했을 때, 이란 파스퇴르 연구소는 이란 동부 지역의 인구를 보호하기 위해 950만 개의 콜레라 백신을 생산했다.[17] 1966년 이라크는 첫 번째 사례를 보고했고, 같은해 러시아에서 발병이 보도되었다.

2. 1. 발병 초기 (1960년대)

1961년에 인도네시아에서 최초 발병이 보고되었다.[14] 1961년 5월 마카사르에서 여행객들이 방문한 켄달 근처 해안가 지역인 자바에서 엘 토르 콜레라 발병이 처음 보고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6월에는 세마랑과 자카르타가 감염되었다.[14]

이 질병은 셀레베스에서 온 배들이 쿠칭에서 열린 레가타에 참여하면서 사라왁, 쿠칭으로 옮겨졌다. 첫 콜레라 환자는 7월 1일에 나타났다. 이 발병은 2주 동안 지속되었고 582명이 감염되어 79명이 사망했다 (치사율 17%). 8월까지 이 발병은 칼리만탄마카오까지 도달했다 (환자 13명, 사망 6명). 홍콩의 첫 번째 사례는 8월 15일 광둥 근처의 어촌 지역에서 나타났다. 두 번째 사례는 광둥과 홍콩 사이에 위치한 배에 사는 인구에서 발생했다. 홍콩에서는 72건의 사례가 발생하여 15명이 사망했다 (치사율 20.8%).[15]

1962년 2월 1일까지 4,107명이 콜레라에 감염되었고 897명이 사망했다 (치사율 21.8%). 대규모 예방 접종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9월까지 콜레라는 필리핀을 빠르게 통과했고, 1962년 3월까지 감염된 사람 수가 15,000명에 달했으며, 2,005명이 사망했다. 필리핀에서만 1962년에 사망자 수가 1,682명에 달했다.[16] 그것은 영국령 보르네오로 다시 유입되었는데, 졸로 섬에서 온 무증상 여행자에 의해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캄보디아, 태국, 싱가포르인도에서 발병이 발생했다.[15]

1963년에 WHO는 콜레라가 국제 검역 대상 질병 중 사망 원인 1위로 남아있다고 발표했으며, 타이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이란, 남부 러시아, 이라크, 한국, 버마, 캄보디아, 남베트남,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네팔, 태국, 우즈베키스탄홍콩에서 보고되었다.[16] 1963년에는 방글라데시까지 확산되었다.[16]

1960년대 중반에는 콜레라가 동남아시아로 침투하여 1964년에 방글라데시, 치타공, 캄보디아, 태국, 말레이시아 및 인도에서 발병했다. 1964년에 인도에서 발병이 보도되었다.[16] 엘 토르 균주는 서쪽으로 더 이동하여 1965년에는 파키스탄, 네팔, 아프가니스탄, 이란우즈베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일부를 포함하여 남아시아를 침범했다. 1939년 이후 콜레라가 없었던 이란은 10월 중순까지 2,704건의 사례를 보고했다.[16] 이란에서 이러한 발병이 발생했을 때, 이란 파스퇴르 연구소는 이란 동부 지역의 인구를 보호하기 위해 950만 개의 콜레라 백신을 생산했다.[17] 1966년 이라크는 첫 번째 사례를 보고했고, 같은해 러시아에서 발병이 보도되었다.

2. 2. 확산 (1970년대)

7차 콜레라 범유행은 1961년 인도네시아에서 시작되어[14] 1960년대에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로 확산되었다.[16] 1963년 WHO는 콜레라가 국제 검역 대상 질병 중 사망 원인 1위라고 발표했다.[16] 1962년 2월 1일까지 4,107명이 콜레라에 감염되었고 897명이 사망했다 (치사율 21.8%).[16]

1970년대에는 콜레라가 중동, 아프리카, 남태평양, 일본, 그리고 유럽 일부 지역까지 확산되었다.[18] 1970년 인도 오디샤주에서 발병이 보고되었고, 같은 해 8월에는 기니가 감염되었다.[18] 1972년에는 아제르바이잔의 수도인 바쿠에서 발병이 보고되었는데, 당시 소비에트 연방 정부가 정보를 묵살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1973년에는 북아프리카를 거쳐 이탈리아에 상륙했다. 1970년대 후반에는 일본과 남태평양에서 수차례 발생이 보고되었다.

1971년 전 세계적으로 보고된 확진자 수는 약 155,000명이었으며,[27] 1970년부터 1971년까지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 코트디부아르, 가나, 토고, 베냉, 나이지리아남부 카메룬에서 발병이 발생했다.[19] 1970-1971년 서아프리카 콜레라 발병은 40만 명 이상을 감염시켰다.[19]

2. 3. 정점 및 지속 (1980년대 ~ 현재)

1970년대 후반 일본과 남태평양에서 콜레라 발생이 보고되었다.[27] 1971년 전 세계 콜레라 확진자 수는 약 155,000명이었으나, 1991년에는 약 570,000명까지 증가했다.[27] 1991년에는 페루에서 시작된 콜레라 유행으로 약 10,000명이 사망하며 라틴 아메리카에서 다시 콜레라가 유행했다.[28]

3. 7차 콜레라 범유행의 원인균과 기원

전염병 학자들은 7차 콜레라 범유행의 기원을 추적했다.[29] 7차 콜레라 범유행을 일으킨 균주인 엘토르 콜레라를 조사한 결과 아시아에서 오염된 물을 통해서 라틴 아메리카로 온 것으로 분석되었다. 라틴 아메리카의 샘플과 아시아의 샘플이 동일한 것으로 확인되었다.[30]

7차 콜레라 범유행은 1961년 초부터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10] 이전 6차례의 범유행에서 알려진 고전적인 콜레라 균주의 진화는 유전자 분석을 통해 밝혀졌다. 새로운 계통에 대한 첫 관찰은 1897년 이집트 엘토르의 한 연구실에서 이루어졌다. 이 시점에서 '엘 토르' 균주는 친척 균주와 30% 달랐다.[11] 이 균주는 남아시아에서 기원하여 1900년 중동에서 비병원성 유기체 형태로 전환되었다. 1903년에서 1908년 사이 엘 토르 균주는 인간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능력을 유발하는 DNA를 획득했다.[11] 따라서 엘 토르 범유행 균주로 변이되었다.[12] 마카사르는 1960년 엘 토르 균주 발병의 근원지였으며, 여기서 전염성을 증가시킬 가능성이 있는 새로운 유전자를 얻었다.[11] 콜레라는 1961년 해외로 확산되었고, 이는 범유행 균주임을 나타낸다.

많은 연구에서 인도네시아를 7차 콜레라 범유행의 근원지로 지목하고 있지만, 1960년에서 1990년 사이에 중국에서 발생한 발병이 동일한 하위 계통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 균주들은 여러 차례 벵골 만에서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13] 중국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콜레라가 범유행으로 확산되는 동안 싱크와 소스 모두로 분류되었다. 콜레라 범유행 확산이 중국 발병 사례에 의해 증가되었을 수 있다는 점과, 중국이 인접 국가의 발병지점으로 확인되었다는 점은 범유행이 인도네시아에서 시작되었다는 견해와 대조된다.[13]

3. 1. 엘토르 콜레라균

전염병 학자들은 7차 콜레라 범유행의 기원을 추적했다.[29] 7차 콜레라 범유행을 일으킨 균주인 엘토르 콜레라를 조사한 결과 아시아에서 오염된 물을 통해서 라틴 아메리카로 온 것으로 분석되었다. 라틴 아메리카의 샘플과 아시아의 샘플이 동일한 것으로 확인되었다.[30]

3. 2. 기원 논쟁

전염병 학자들은 7차 콜레라 범유행의 기원을 추적했다.[29] 7차 콜레라 범유행을 일으킨 균주인 엘토르 콜레라를 조사한 결과 아시아에서 오염된 물을 통해 라틴 아메리카로 온 것으로 분석되었다. 라틴 아메리카의 샘플과 아시아의 샘플은 동일한 것으로 확인되었다.[30]

7차 콜레라 범유행은 1961년 초부터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10] 이전 6차례의 범유행에서 알려진 고전적인 콜레라 균주의 진화는 유전자 분석을 통해 밝혀졌다. 새로운 계통에 대한 첫 관찰은 1897년 이집트 엘토르의 한 연구실에서 이루어졌다. 이 시점에서 '엘 토르' 균주는 친척 균주와 30% 달랐다.[11] 이 균주는 남아시아에서 기원하여 1900년 중동에서 비병원성 유기체 형태로 전환되었다. 1903년에서 1908년 사이 엘 토르 균주는 인간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능력을 유발하는 DNA를 획득했다.[11] 따라서 엘 토르 범유행 균주로 변이되었다.[12]

많은 연구에서 인도네시아를 7차 콜레라 범유행의 근원지로 지목하고 있지만, 1960년에서 1990년 사이에 중국에서 발생한 발병이 동일한 하위 계통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 균주들은 여러 차례 벵골 만에서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13] 중국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콜레라가 범유행으로 확산되는 동안 싱크와 소스 모두로 분류되었다. 콜레라 범유행 확산이 중국 발병 사례에 의해 증가되었을 수 있다는 점과, 중국이 인접 국가의 발병지점으로 확인되었다는 점은 범유행이 인도네시아에서 시작되었다는 견해와 대조된다.[13]

4. 콜레라의 증상 및 진단, 치료

콜레라는 비브리오 콜레라라는 세균에 오염된 음식이나 물을 섭취하여 발생하는 급성 설사 감염병이다.[7] 가장 흔하게 음식이나 물의 오염은 분변을 통해 발생하며, 감염은 분변-경구 경로를 통해 확산된다. 콜레라는 날 조개류를 먹는 것으로 인해 발생하기도 한다. 질병의 증상은 감염 후 12시간에서 5일 사이에 나타나지만, 감염된 사람의 10%만이 심한 수양성 설사, 구토 및 다리 경련 증상을 보인다.[7]

콜레라는 대변 검사 또는 직장 면봉 검사를 통해 진단하며, 오늘날 치료는 경구 수액 요법(ORS)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ORS는 소장에서 나트륨 흡수를 극대화하기 위해 나트륨과 포도당의 등몰 농도를 사용하며, 체액 손실을 신중하게 보충한다.[8] 심각한 경우, 체액의 급격한 손실은 탈수로 이어지며 환자는 쇼크의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이는 정맥 주사 수액과 항생제 투여가 필요하다.

콜레라의 전파는 깨끗한 물과 위생 시설에 대한 부적절한 접근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따라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은 주로 빈민가와 가난한 지역 사회에 거주한다.[9]

4. 1. 증상

4. 2. 진단

4. 3. 치료

5. 콜레라 연구 및 대응

1970년 방글라데시 다카동남아시아 조약 기구(SEATO) 연구소를 비롯한 국제적인 협력을 통해 국립 보건원(NIH)이 후원하는 콜레라 백신 개발 실험이 시작되었다.[16] 1964년에는 콜레라 치료를 위한 경구 수분 보충염(ORS) 사용이 발명되었고, 1980년대 WHO에 의해 승인되었다.[20] ORS 치료는 콜레라 감염자들의 생존율을 크게 높였으며, 콜레라 대응 방식을 단기적 환자 치료와 장기적 안전한 물 공급 및 위생 개선으로 변화시켰다.[20]

1962년 시작된 콜레라 유행은 '엘 토르' 생물형으로 확인되었으며, 이전의 고전적인 생물형과 달리 환경 저항성이 강하고 무증상 보균자에 의한 전염 위험이 높았다.[20]

과거에는 콜레라 백신 투여보다 즉각적인 수분 공급과 위생 개선이 우선시되었다.[21] 그러나 새롭고 개선된 콜레라 백신 개발과 콜레라 및 면역 반응에 대한 이해 증진으로 비활성 균주 및 약독화 백신 개발이 이루어졌다.[23]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17년 단회 투여 생 콜레라 백신인 Vaxchora를 승인했다.[24] 아이티 연구에서는 2회 투여 콜레라 백신이 4년간 지속적인 보호 효과를 보였다.

1970년대에는 항균제 투여가 시도되었으나, 항생제 내성으로 인해 효과가 없었다.[25]

1992년, 콜레라 통제 글로벌 태스크 포스(GTFCC)가 구성되어 콜레라 발병 국가를 지원하고 있다.[26] 2017년, GTFCC는 2030년까지 콜레라를 종식시키기 위한 "2030년까지의 글로벌 로드맵" 전략을 발표했다.[22]

5. 1. 초기 연구

1964년 콜레라 치료를 위해 경구 수분 보충염(ORS)의 사용이 발명되었으며, 이는 1980년대에 WHO에 의해 승인되었다. 이러한 체액과 전해질 보충 방법은 콜레라에 감염된 4천만 명의 생명을 구한 것으로 추정된다.[20] ORS 치료의 성공으로 인해 지난 30년 동안 단기적으로는 환자 치료에 집중하고, 장기적으로는 안전한 물 공급과 위생 개선을 시도하는 방향으로 콜레라 대응 방식이 변화했다.[20]

1970년에는 방글라데시 다카, 동남아시아 조약 기구(SEATO), 영국, 호주, 그리고 다양한 미국 기관의 연구소를 포함한 국제적인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인간 자원 봉사자들이 효과적인 콜레라 백신 개발을 위해 국립 보건원(NIH)이 후원하는 일련의 실험에 참여했다.[16]

1962년에 시작된 콜레라 유행은 '엘 토르' 생물형으로 확인되었으며, 이 특정 콜레라 균주에 대한 상당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엘 토르 생물형은 환경에 대한 저항성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20]

이전에는 콜레라 백신 투여에 반대하는 보건 종사자들은 항상 제한된 자원을 즉각적인 수분 공급과 개선된 위생 관행, 안전한 물 공급과 위생 개선을 위한 장기 투자를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음식을 섭취하기 전에 적절하게 조리하고, 멸균된 물을 사용하며, 일반적인 개인 위생을 따르고, 환경을 위생적으로 관리하는 것과 같은 관행은 콜레라 확산을 감소시킨다.[21]

그러나 새롭고 개선된 콜레라 백신의 개발로 인해 이러한 긴급 대응 관행이 수정될 수 있었다.[20] 또한, 최근 연구를 통해 콜레라, 전염 방식, 그리고 면역 반응에 대한 이해가 향상되었다. 그 결과, 이러한 발전은 비활성 균주 및 약독화 백신에서 파생된 실험적 콜레라 백신의 개발로 이어졌다.[23]

1962년 콜레라 유행을 일으킨 엘 토르 생물형의 임상적 심각성으로 인해, 현대 연구에서는 발병 초기에 항균제 투여를 평가하기도 했다. 이는 1970년대에 테트라사이클린으로 테스트되었지만, 항생제 내성으로 인해 유용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25]

5. 2. 백신 개발 및 사용

1970년, 다카동남아시아 조약 기구(SEATO) 연구소를 비롯한 국제적인 협력을 통해 국립 보건원(NIH)이 후원하는 콜레라 백신 개발 실험이 시작되었다.[16] 1964년에는 콜레라 치료를 위한 경구 수분 보충염(ORS) 사용이 발명되었고, 1980년대 WHO에 의해 승인되었다.[20] ORS 치료는 콜레라 감염자들의 생존율을 크게 높였으며, 콜레라 대응 방식을 단기적 환자 치료와 장기적 안전한 물 공급 및 위생 개선으로 변화시켰다.[20]

1962년 시작된 콜레라 유행은 '엘 토르' 생물형으로 확인되었으며, 이전의 고전적인 생물형과 달리 환경 저항성이 강하고 무증상 보균자에 의한 전염 위험이 높았다.[20]

과거에는 콜레라 백신 투여보다 즉각적인 수분 공급과 위생 개선이 우선시되었다.[21] 그러나 새롭고 개선된 콜레라 백신 개발과 콜레라 및 면역 반응에 대한 이해 증진으로 비활성 균주 및 약독화 백신 개발이 이루어졌다.[23]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17년 단회 투여 생 콜레라 백신인 Vaxchora를 승인했다.[24] 아이티 연구에서는 2회 투여 콜레라 백신이 4년간 지속적인 보호 효과를 보였다.[24]

1970년대에는 항균제 투여가 시도되었으나, 항생제 내성으로 인해 효과가 없었다.[25]

1992년, 콜레라 통제 글로벌 태스크 포스(GTFCC)가 구성되어 콜레라 발병 국가를 지원하고 있다.[26] 2017년, GTFCC는 2030년까지 콜레라를 종식시키기 위한 "2030년까지의 글로벌 로드맵" 전략을 발표했다.[22]

5. 3. 국제 협력

1970년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동남아시아 조약 기구(SEATO), 영국, 호주, 그리고 여러 미국 기관의 연구소를 포함한 국제적인 협력이 시작되었다.[16] 국립 보건원(NIH)의 후원으로 진행된 일련의 실험에는 인간 자원 봉사자들이 참여하여 효과적인 콜레라 백신 개발에 기여했다.[16] 같은 해 이집트, 대한민국, 소련에서 새로운 콜레라가 발생했다.[16]

1964년에는 콜레라 치료를 위한 경구 수분 보충염(ORS) 사용법이 개발되었고, 1980년대에 WHO에 의해 승인되었다.[20] ORS 치료법은 콜레라에 감염된 4천만 명의 생명을 구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로 인해 콜레라 대응 방식은 단기적으로 환자 치료에 집중하고 장기적으로는 안전한 물 공급과 위생 개선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20]

1962년 콜레라 유행의 원인으로 '엘 토르' 생물형이 확인되면서 이 균주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다.[20] 엘 토르 생물형은 환경 저항성이 높아 증상이 없는 보균자에 의한 전염 위험을 증가시켰다.[20]

과거에는 보건 종사자들이 콜레라 백신 투여에 반대하며, 제한된 자원을 즉각적인 수분 공급과 위생 개선, 안전한 물 공급 및 위생 개선을 위한 장기 투자에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21] 그러나 새롭고 개선된 콜레라 백신 개발로 인해 이러한 긴급 대응 관행은 수정될 수 있었다.[20] 2017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콜레라 유행 지역으로 여행하는 18~64세 성인을 위한 단회 투여 생 콜레라 백신인 Vaxchora를 승인했다.[24]

1992년 페루에서 심각한 콜레라 발병 이후, 콜레라 통제 글로벌 태스크 포스(GTFCC)가 구성되어 활동을 조정하고 국가를 지원했다.[26] 현재 GTFCC는 NGO, 학술 기관, 유엔 기구를 포함한 30개 이상의 협력 기관으로 구성되어, 콜레라 발생 국가를 지원하고 있다.[26] 2017년에는 "2030년까지의 글로벌 로드맵" 전략을 발표하며, 2030년까지 콜레라를 공중 보건 위협에서 종식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22] 이 전략은 발병 억제를 위한 조기 발견 및 신속 대응, 콜레라 재발 방지를 위한 다 부문 접근 방식, 글로벌 차원의 기술 지원 및 옹호, 자원 동원, 파트너십 조정을 포함한다.[22]

6. 콜레라와 한국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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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논문 Analysis of Factors Contributing to the Spread of Cholera in Developing Countries 2019-06
[22] 논문 Current views and challenges on clinical cholera 2017-12-31
[23] 논문 Recent advances in cholera research: memorandum from a WHO meeting 1985
[24] 웹사이트 Cholera Fact Sheet https://www.health.n[...] 2020-05-26
[25] 논문 Tetracycline antibiotics: mode of action, applications, molecular biology, and epidemiology of bacterial resistance 2001-06
[26] 웹사이트 Global Task Force on Cholera Control https://www.gtfcc.or[...] GTFCC 2022-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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