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 시뮬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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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군사 시뮬레이션은 전쟁과 관련된 상황을 재현하여 연구, 훈련, 분석 등에 활용하는 기법이다. 고대 차투랑가와 체스에서 시작하여, 17세기에는 규칙이 정밀화된 '왕의 유희'가 등장했고, 19세기에는 모래판을 이용한 '전쟁 게임'이 개발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컴퓨터 게임 형태로 대중화되었으며, 실제 훈련, 컴퓨터 시뮬레이션, 분석 모델 등 다양한 형태를 포괄한다. 군사 시뮬레이션은 전략적 사고 훈련, 정책 결정 지원, 군사력 평가 등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되며, 수동 시뮬레이션, 컴퓨터 지원 시뮬레이션, 완전 자동화 시뮬레이션 등 여러 종류가 존재한다. 그러나 현실의 근사치일 뿐이며, 검증과 주관성, 인적 오류, 적의 기술 및 군사 철학 등 여러 한계와 비판에 직면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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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시뮬레이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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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유형 | 시뮬레이션 |
분야 | 군사 |
목적 | 훈련, 분석, 계획 |
관련 용어 | 군사 작전 지휘 통제 의사 결정 |
종류 | |
구분 | 사단급 쌍방 훈련 워게임 전술 토의 |
대상 | 개인 집단 조직 |
범위 | 전술 전략 작전 |
활용 | |
분야 | 군사 민간 |
목적 | 훈련 연구 분석 교육 |
같이 보기 | |
관련 항목 | 컴퓨터 게임 전쟁 게임 시뮬레이션 게임 가상 현실 모의 실험 군사 작전 |
2. 역사
병기연습의 기원은 불확실하지만, 전근대에는 도해상에 군사적 상황을 재현하여 연구하는 것으로 고대 인도의 차투랑가나 유럽의 체스가 있었다. 이러한 보드 게임은 임무 달성을 위한 전력 측정, 지형 효과 인식, 전술안 검토 등을 포함한 군사적 사고를 요구하지만, 구체적인 야전 연구에는 내용이 너무 추상적이었다.
17세기 중반에 체스의 틀에 군사에 관한 자세한 규칙이 도입되어, 군사 연구 도구로서 처음으로 정밀화되었다. 군사사에서 이렇게 체계화된 최초의 병기연습 기록은 1664년 독일의 울름에서 실시된 '왕의 유희'(Königspiel)이다. 이것은 체스를 기본으로 하면서 더 큰 격자형 판과 30개의 말을 사용하였으며, 그 말에는 국왕이나 여러 계급을 포함한 부대 지휘관, 병졸 등이 명명되었다. 이러한 병기연습은 '전쟁 체스'(War chess)라고 불리며, 이를 활용함으로써 군사적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
1797년에 독일 브라운슈바이크 출신의 군사학자요한 게오르크 율리우스 벤투리니/Johann Georg Julius Venturinies는 현대 병기연습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것은 구래의 '전쟁 체스'를 참고하면서 내용을 발전시킨 것이며, 이 작품은 '응용 전술과 전쟁 과학을 위한 수학적 체계'로 명명되었다. 여기에는 아직 사각형 격자가 사용되었지만, 그 격자의 개수는 3600개로 확대되면서 마일로 구분되었다. 각 칸에는 지형 효과가 색으로 표시되었으며, 가상의 지형이 아닌 프랑스와 벨기에 국경의 실제 지형을 사용했다. 병사 외에 화포나 집적소·다리 등을 본뜬 말이 채용되었고, 그 진행 방식도 체스 규칙이 아닌, 실제 각 부대의 움직임에 따른 방식으로 개정되었다.
또한 19세기에 게오르크 폰 라이스비츠/Georg von Reisswitz영어에 의해 병기연습에 모래판을 도입하여, 삼림 등의 지형을 보다 입체적으로 재현하면서 부대 운용을 연구하는 기법을 개발했다. 부대는 입방체에 대응하는 군대 부호를 부여하여 식별하도록 했다. 라이스비츠의 기법은 '전쟁 게임'(Kriegsspiel, War game)으로 당시 프로이센 군에 인지되기 시작했고, 그 후 병기연습의 기본이 되었다. 그리고 프로이센의 군사 기술이 각국에서 연구되고 도입되면서 병기연습도 각국으로 전파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미국에서 일반 대중을 위한 오락으로 병기연습을 간략화한 워 시뮬레이션 게임이 등장하여, 컴퓨터 게임화도 되는 등 널리 보급되고 있다.
현대에는 군사 연구로 행해지지는 않지만, 전략적 사고 훈련이 되기 때문에 서구의 군대에서는 사관학교, 주둔지, 함선 내에 체스 클럽이 존재하고 취미로 즐기는 사람도 많다. 특히 미국 해군의 항공모함에서는 체스 대회가 정기적으로 개최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방위대학교에 기원부(바둑과 장기)가 존재한다.
2. 1. 초기 역사
17세기 중반, 독일 울름에서 체스의 규칙을 군사 연구에 맞게 정밀화한 '왕의 유희'(Königspiel)가 등장했다. 이는 더 큰 격자형 판과 30개의 말을 사용했으며, 부대 지휘관, 병졸 등이 포함되었다. 이러한 병기연습은 '전쟁 체스'(War chess)로 불리며 군사적 능력 향상에 기여했다.1797년, 독일 브라운슈바이크 출신의 군사학자 벤투리니(Johann Georg Julius Venturini)는 실제 지형을 사용하고 부대 움직임을 현실적으로 반영한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의 시스템은 3600개의 격자로 구성된 판을 사용했으며, 프랑스와 벨기에 국경의 실제 지형을 바탕으로 지형 효과를 색으로 표시했다. 또한, 병사 외에 화포, 집적소, 다리 등을 본뜬 말을 사용하고, 실제 부대 움직임에 따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19세기, 프로이센의 라이스비츠(Georg von Reisswitz)는 모래판을 도입하여 지형을 입체적으로 재현하고, 군대 부호를 사용하여 부대 운용을 연구하는 기법을 개발했다. 그의 기법은 '전쟁 게임'(Kriegsspiel, War game)으로 불리며 프로이센 군에 널리 퍼졌고, 이후 각국으로 전파되었다.
2. 2. 현대
제2차 세계 대전 후, 미국에서 일반 대중을 위한 오락으로 병기연습을 간략화한 워 시뮬레이션 게임이 등장하여, 컴퓨터 게임화도 되는 등 널리 보급되고 있다. 현대에는 군사 연구로 행해지지는 않지만, 전략적 사고 훈련이 되기 때문에 서구의 군대에서는 사관학교, 주둔지, 함선 내에 체스 클럽이 존재하고 취미로 즐기는 사람도 많다. 특히 미국 해군의 항공모함에서는 체스 대회가 정기적으로 개최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방위대학교에 기원부(바둑과 장기)가 존재한다.3. 시뮬레이션의 종류
군사 시뮬레이션은 야외 훈련부터 컴퓨터 시뮬레이션, 분석 모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범위를 포괄한다.[1] 실제 기동 훈련은 현실적이지만 비용이 많이 들고, 추상적인 시뮬레이션은 경제적이다.[1] 군사 시뮬레이션은 실제 훈련에서[2] 인간 개입이 거의 없는 추상적인 컴퓨터 모델까지[3] 광범위하게 활용된다.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는 실제 관찰에서 얻어지며,[4] 군사 분석에서도 실제 야외 훈련과 시험을 통해 얻은 데이터가 중시된다. 예를 들어, 특정 조건에서 부교 건설에 걸리는 시간을 측정하여, 향후 유사한 상황에서의 성능 예측 규범을 생성하거나 교량 건설 과정을 개선할 수 있다.
그러나 전면적인 군사 훈련은 비용과 자원 문제로 인해 항상 실행 가능하지 않다.[5] 특정 전쟁 모델은 현실적인 방법으로 검증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소모 시나리오를 정확하게 테스트하기 위해 아군을 희생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이러한 제약 때문에 인력 참여 수준을 줄여 이론을 테스트하는 방법이 활용된다. 선임 장교와 기획관이 참여하는 지도 연습은 군대를 물리적으로 이동하지 않고도 인간적인 예측 불가능성을 반영할 수 있으며, 비용 절감과 접근성 향상이라는 이점이 있다.[5] 지도 연습은 또한 전면적인 배치보다 적은 사전 계획으로 수행할 수 있어, 비용이나 기밀 유지가 중요한 작전이나 소규모 시뮬레이션에 적합하다.
추상화 수준을 더 높이면 민간 워게이머에게 익숙한 환경이 된다. 이러한 시뮬레이션은 "수동", "컴퓨터 지원", 완전 자동화될 수 있다.
수동 시뮬레이션은 인류가 전쟁을 시작한 이래 사용되었을 것이다. 체스는 군사 시뮬레이션의 한 형태로 간주될 수 있다.[6] 현대 시뮬레이션의 선구자는 1811년경 등장한 프로이센의 ''크리그스슈필''이다.[7] ''크리그스슈필''은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승리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7] 1824년 독일 장교는 ''크리그스슈필''을 "전쟁 훈련"이라고 선언했다.[8] ''크리그스슈필''은 규칙의 엄격성에 따라 "엄격한 ''크리그스슈필''"과 "자유 ''크리그스슈필''"의 두 가지 버전으로 나뉜다.[9] 엄격한 ''크리그스슈필''은 역사적 전투에서 파생된 규칙을 엄격히 준수하여 검증 가능하고 관찰 가능한 데이터에 기반했지만, 창의적인 사고를 저해했다. 반면, 자유 ''크리그스슈필''은 심판의 해석에 따라 규칙을 유연하게 적용하여 창의적인 사고를 장려했지만, 심판의 주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어 검증 가능성이 낮았다.[9]
이러한 논쟁은 현대의 컴퓨터 기반 군사 시뮬레이션 환경에서도 유효하다. 전 세계 전쟁 대학에서 심판이 시뮬레이션 중재자 역할을 하는 수동 시뮬레이션이 여전히 활용되고 있다. 컴퓨터 지원 및 완전 컴퓨터화된 시뮬레이션도 상황에 따라 사용된다. 랜드 연구소는 미국 정부와 공군을 위한 군사 시뮬레이션 설계자로, 정치-군사 시뮬레이션의 선구자 중 하나이다.[10] 랜드 연구소의 ''SAFE''(전략 및 군사력 평가) 시뮬레이션은 수동 시뮬레이션의 예시로, 여러 팀이 별도 방에서 독립적인 감독관과 함께 전략을 논의하고 실행한다.[11] 시뮬레이션은 며칠 동안 진행될 수 있으며, 참가자들은 초기 시나리오와 역사적, 정치적, 군사적 배경 정보를 바탕으로 전략을 수립한다. 팀은 "파랑"(본국)과 "빨강"(반대 세력)으로 나뉘어 서로 대항하며, 감독관/심판("통제")은 움직임의 결과를 판결하고 시나리오 변화를 선언한다.[12]
''컴퓨터 지원'' 시뮬레이션은 수동 시뮬레이션의 발전된 형태로, 다양한 변형이 존재한다. 컴퓨터는 심판의 정보 추적을 돕는 데이터베이스 역할을 하거나, 팀 중 하나를 대체하는 ''에이전트''(자동 장치)로 활용될 수 있다.[13] 심판의 역할을 줄이거나 제거할 수 있다. ''블리츠크리크'', ''토탈 워'', ''문명'', ''아르마 2''와 같은 상업용 워게임이 이 범주에 속한다.
에이전트가 양쪽 팀을 대체하면 시뮬레이션은 완전 컴퓨터화되어 최소한의 감독으로 자체 실행될 수 있다. 접근성이 높고, 랩톱 컴퓨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실행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수동 시뮬레이션보다 훨씬 많은 반복 실행이 가능하여 통계 정보를 얻기 용이하다.
인간 요소가 제거되면 시뮬레이션 결과는 모델 자체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므로, 유효성 검사가 중요해진다. 데이터 정확성, 모델의 현실 반영 여부 등이 결과의 신뢰성을 좌우한다. 프레데릭 란체스터의 란체스터 제곱 법칙은 소모 모델의 대표적인 예시로, 군대의 전투력을 "개별 부대의 전투력에 곱한 수치적 강도의 제곱"에 비례하는 것으로 표현한다.[14][15]
3. 1. 추상화 수준
군사 시뮬레이션은 야외 훈련부터 컴퓨터 시뮬레이션, 분석 모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범위를 포괄한다.[1] 실제 기동 훈련은 현실적이지만 비용이 많이 들고, 추상적인 시뮬레이션은 경제적이다.[1] 군사 시뮬레이션은 실제 훈련에서[2] 인간 개입이 거의 없는 추상적인 컴퓨터 모델까지[3] 광범위하게 활용된다.가장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는 실제 관찰에서 얻어지며,[4] 군사 분석에서도 실제 야외 훈련과 시험을 통해 얻은 데이터가 중시된다. 예를 들어, 특정 조건에서 부교 건설에 걸리는 시간을 측정하여, 향후 유사한 상황에서의 성능 예측 규범을 생성하거나 교량 건설 과정을 개선할 수 있다.
그러나 전면적인 군사 훈련은 비용과 자원 문제로 인해 항상 실행 가능하지 않다.[5] 특정 전쟁 모델은 현실적인 방법으로 검증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소모 시나리오를 정확하게 테스트하기 위해 아군을 희생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이러한 제약 때문에 인력 참여 수준을 줄여 이론을 테스트하는 방법이 활용된다. 선임 장교와 기획관이 참여하는 지도 연습은 군대를 물리적으로 이동하지 않고도 인간적인 예측 불가능성을 반영할 수 있으며, 비용 절감과 접근성 향상이라는 이점이 있다.[5] 지도 연습은 또한 전면적인 배치보다 적은 사전 계획으로 수행할 수 있어, 비용이나 기밀 유지가 중요한 작전이나 소규모 시뮬레이션에 적합하다.
추상화 수준을 더 높이면 민간 워게이머에게 익숙한 환경이 된다. 이러한 시뮬레이션은 "수동", "컴퓨터 지원", 완전 자동화될 수 있다.
수동 시뮬레이션은 인류가 전쟁을 시작한 이래 사용되었을 것이다. 체스는 군사 시뮬레이션의 한 형태로 간주될 수 있다.[6] 현대 시뮬레이션의 선구자는 1811년경 등장한 프로이센의 ''크리그스슈필''이다.[7] ''크리그스슈필''은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승리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7] 1824년 독일 장교는 ''크리그스슈필''을 "전쟁 훈련"이라고 선언했다.[8] ''크리그스슈필''은 규칙의 엄격성에 따라 "엄격한 ''크리그스슈필''"과 "자유 ''크리그스슈필''"의 두 가지 버전으로 나뉜다.[9] 엄격한 ''크리그스슈필''은 역사적 전투에서 파생된 규칙을 엄격히 준수하여 검증 가능하고 관찰 가능한 데이터에 기반했지만, 창의적인 사고를 저해했다. 반면, 자유 ''크리그스슈필''은 심판의 해석에 따라 규칙을 유연하게 적용하여 창의적인 사고를 장려했지만, 심판의 주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어 검증 가능성이 낮았다.[9]
이러한 논쟁은 현대의 컴퓨터 기반 군사 시뮬레이션 환경에서도 유효하다. 전 세계 전쟁 대학에서 심판이 시뮬레이션 중재자 역할을 하는 수동 시뮬레이션이 여전히 활용되고 있다. 컴퓨터 지원 및 완전 컴퓨터화된 시뮬레이션도 상황에 따라 사용된다. 랜드 연구소는 미국 정부와 공군을 위한 군사 시뮬레이션 설계자로, 정치-군사 시뮬레이션의 선구자 중 하나이다.[10] 랜드 연구소의 ''SAFE''(전략 및 군사력 평가) 시뮬레이션은 수동 시뮬레이션의 예시로, 여러 팀이 별도 방에서 독립적인 감독관과 함께 전략을 논의하고 실행한다.[11] 시뮬레이션은 며칠 동안 진행될 수 있으며, 참가자들은 초기 시나리오와 역사적, 정치적, 군사적 배경 정보를 바탕으로 전략을 수립한다. 팀은 "파랑"(본국)과 "빨강"(반대 세력)으로 나뉘어 서로 대항하며, 감독관/심판("통제")은 움직임의 결과를 판결하고 시나리오 변화를 선언한다.[12]
''컴퓨터 지원'' 시뮬레이션은 수동 시뮬레이션의 발전된 형태로, 다양한 변형이 존재한다. 컴퓨터는 심판의 정보 추적을 돕는 데이터베이스 역할을 하거나, 팀 중 하나를 대체하는 ''에이전트''(자동 장치)로 활용될 수 있다.[13] 심판의 역할을 줄이거나 제거할 수 있다. ''블리츠크리크'', ''토탈 워'', ''문명'', ''아르마 2''와 같은 상업용 워게임이 이 범주에 속한다.
에이전트가 양쪽 팀을 대체하면 시뮬레이션은 완전 컴퓨터화되어 최소한의 감독으로 자체 실행될 수 있다. 접근성이 높고, 랩톱 컴퓨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실행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수동 시뮬레이션보다 훨씬 많은 반복 실행이 가능하여 통계 정보를 얻기 용이하다.
인간 요소가 제거되면 시뮬레이션 결과는 모델 자체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므로, 유효성 검사가 중요해진다. 데이터 정확성, 모델의 현실 반영 여부 등이 결과의 신뢰성을 좌우한다. 프레데릭 란체스터의 란체스터 제곱 법칙은 소모 모델의 대표적인 예시로, 군대의 전투력을 "개별 부대의 전투력에 곱한 수치적 강도의 제곱"에 비례하는 것으로 표현한다.[14][15]
3. 2. 목적
군사 시뮬레이션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16]휴리스틱 시뮬레이션은 연구와 문제 해결을 자극하기 위한 목적으로 실행된다.[16] 이는 반드시 경험적인 해결책을 제공할 것으로 예상되지는 않는다.[16]
확률적 시뮬레이션은 우연의 요소를 포함한다.[16] 대부분의 군사 시뮬레이션은 이 두 가지 정의 사이의 어딘가에 해당하지만, 수동 시뮬레이션은 휴리스틱 방식에, 전산화된 시뮬레이션은 확률적 방식에 더 적합하다.[16]
수동 시뮬레이션은 '만약에?' 시나리오를 탐구하기 위해 실행되는 경우가 많으며, 참가자들에게 의사 결정 과정과 위기 관리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기 위해 진행된다.[16] 전산화된 시뮬레이션은 무작위 요소를 통해 우연을 쉽게 통합할 수 있으며, 확률의 관점에서 결과를 제공하기 위해 여러 번 실행될 수 있다.[16] 예상치 못한 결과가 예상된 결과보다 더 흥미로운 경우가 있는데, 예를 들어 국가 A에 대한 국가 B의 침공을 모델링하는 시뮬레이션을 여러 번 반복하여 B군이 A 영토에 침투할 깊이를 결정하는 경우, 산술 평균 결과를 계산할 수 있다.[16] 이때, 정규 분포 확률 곡선의 양 끝에 존재하는 이상치를 검토하여 그 이유를 파악하고, 이를 통해 권장 사항을 제시할 수 있다.[16]
3. 3. 기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다른 수단으로 정치를 계속하는 것일 뿐이다"라고 선언했다.[17] 이후 군사 기획자들은 정치적 목표와 군사적 목표를 계획에 통합하려 노력해왔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서방 세계의 정치-군사 시뮬레이션은 소련에 집중했지만, 최근에는 테러와의 전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념적으로 동기 부여된 적을 모델링하기 위해 현실적인 대전략 시뮬레이션에서 정치적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17]이는 군사력 이동과 교전에만 관련된 ''크리그스슈필''(Kriegsspiel)과 같은 전통적인 군사 시뮬레이션 방식과는 다르다. 사도바 전투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일본, 러시아는 훈련 도구로 전쟁 게임을 사용했다. 미국은 1889년까지 전쟁 게임을 해군 문화에 확고히 했다.[18]
정치-군사 시뮬레이션은 정책 문제에 관련되어 운영 방식에 덜 규범적인 경향이 있다. 모델링 과정에 엄격성을 부여하기 위해 게임 이론과 같은 다양한 수학적 기법이 등장했다. 비제로섬 분석은 상대방 결정에 관계없이 유리한 결과가 나오도록 결정을 선택할 수 있게 돕는다.
최초의 현대 정치-군사 시뮬레이션은 1954년에 등장했다.[19] 미국은 핵무기 경쟁에 대한 우려로 시뮬레이션을 국가 통치의 도구로 발전시켰다. 소련은 1949년에 첫 핵무기를 폭발시켰고, 1955년에는 수소 폭탄을 개발했다.[20] 펜타곤에 영구적인 게임 시설이 만들어졌고, 사회 과학자 허버트 골드해머, 경제학자 앤드루 마셜, MIT 교수 링컨 P. 블룸필드 등 다양한 전문 분석가들이 초빙되었다.[21]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실행된 주목할 만한 미국의 정치-군사 시뮬레이션에는 ''SAFE'', ''STRAW'' (''Str''ategic ''A''ir ''W''ar, 전략적 공중전), ''COW'' (''Co''ld ''W''ar, 냉전) 등이 있다.[22] 전형적인 정치-군사 시뮬레이션은 수동 또는 컴퓨터 지원 휴리스틱 유형 모델이며, 전 세계의 많은 연구 기관과 싱크탱크가 정부에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냉전 동안, 랜드 연구소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는 베트남 전쟁, 이란 샤의 몰락, 남아메리카의 친공산 정권 부상, 인도, 파키스탄, 중국 간의 긴장,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의 잠재적 위협 지점을 모델링하는 시뮬레이션을 펜타곤을 위해 수행했다.[23] MIT와 랜드 연구소는 하버드 대학교, 스탠퍼드 대학교, 국방대학교와 함께 미국의 군사 시뮬레이션에 관여하고 있다. 다른 국가에도 크랜필드 연구소의 국방 아카데미와 같은 기관이 있다.
펜타곤 시뮬레이션 참가자들은 의회 의원, 백악관 내부자, 고위 군사 장교 등 매우 높은 직급의 사람들이었다.[24] 많은 참가자들의 신원은 비밀로 유지된다. 참가자들의 익명성을 보장하는 것은 미국 시뮬레이션의 전통이다. 주된 이유는 자신의 전문적 입장과 상반되는 역할이나 의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게임 내 인물이 알려지면 명성이나 경력에 해를 끼칠 수 있다. 게임 내 역할은 실제 생활에서 동등한 직급의 참가자가 수행하는 것이 전통이지만, 엄격한 규칙은 아니다.[25] 정치-군사 시뮬레이션의 주요 목적은 현실 세계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통찰력을 제공하는 것이지만, 특정 시뮬레이션에서 특정 결정이 나왔다고 지적하기는 어렵다. 시뮬레이션은 기밀로 분류되고, 공개된 후에도 검열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잠재적 적에게 민감한 정보를 공개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전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은 1980년대 시뮬레이션에 참여했지만, 관찰자 역할만 했다. 한 관계자는 "어떤 대통령도 전쟁 게임에서 자신의 패를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26]
정치-군사 시뮬레이션은 오늘날에도 널리 사용된다. 현대 시뮬레이션은 국제 협력, 세계 테러리즘의 부상, 전쟁 이외의 군사 작전과 코소보, 보스니아, 시에라리온, 수단의 소규모 분쟁에 더 관련되어 있다. 이스탄불의 아타튀르크 전쟁 게임, 시뮬레이션 및 문화 센터에서 운영된 ''MNE'' (''M''ulti''n''ational ''E''xperiment, 다국적 실험) 시뮬레이션이 있다. MNE 4는 2006년에 개최되었다. MNE에는 오스트레일리아, 핀란드, 스웨덴, 북대서양 조약 기구 (캐나다, 프랑스, 독일, 영국, 미국 포함)의 참가자가 포함되어 있으며, 세계 무대에서 외교, 경제 및 군사력 사용을 탐구하도록 설계되었다.[27]
4. 구성 요소 및 진행 방식
5. 활용 사례
크리그스슈필은 군사력 이동과 교전에만 초점을 맞춘 군사 시뮬레이션으로, 사도바 전투에서 프로이센이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승리한 후, 오스트리아-헝가리,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일본, 러시아 등 여러 국가에서 훈련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했다.[18] 미국은 1889년에 이르러서야 전쟁 게임을 군사 훈련에 도입했다.[18]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에 초점을 맞춘 정치-군사 시뮬레이션을 실행했다. 여기에는 ''SAFE'', ''STRAW''(''Str''ategic ''A''ir ''W''ar, 전략적 공중전), ''COW''(''Co''ld ''W''ar, 냉전) 등이 포함된다.[22] 냉전 기간 동안, 랜드 연구소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는 베트남 전쟁, 이란 샤의 몰락, 남아메리카의 친공산 정권 부상 등 다양한 국제 분쟁 및 위협을 모델링하는 시뮬레이션을 수행했다.[23]
현대 군사 시뮬레이션은 국제 협력, 테러리즘, 전쟁 이외의 군사 작전 등 현대 안보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스탄불의 아타튀르크 전쟁 게임, 시뮬레이션 및 문화 센터에서 운영된 ''MNE''(''M''ulti''n''ational ''E''xperiment, 다국적 실험)가 그 예시이며, 가장 최근의 MNE 4는 2006년에 개최되었다.[27] MNE에는 오스트레일리아, 핀란드, 스웨덴, 북대서양 조약 기구 (나토) 회원국 (캐나다, 프랑스, 독일, 영국, 미국 포함) 등이 참가하여 외교, 경제, 군사력 사용을 탐구했다.[27]
5. 1. 주목할 만한 사례
크리그스슈필은 군사력 이동과 교전에만 초점을 맞춘 군사 시뮬레이션으로, 사도바 전투에서 프로이센이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승리한 후, 오스트리아-헝가리,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일본, 러시아 등 여러 국가에서 훈련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했다.[18] 미국은 1889년에 이르러서야 전쟁 게임을 군사 훈련에 도입했다.[18]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에 초점을 맞춘 정치-군사 시뮬레이션을 실행했다. 여기에는 ''SAFE'', ''STRAW''(전략적 공중전), ''COW''(냉전) 등이 포함된다.[22] 냉전 기간 동안, 랜드 연구소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는 베트남 전쟁, 이란 샤의 몰락, 남아메리카의 친공산 정권 부상 등 다양한 국제 분쟁 및 위협을 모델링하는 시뮬레이션을 수행했다.[23]
현대 군사 시뮬레이션은 국제 협력, 테러리즘, 전쟁 이외의 군사 작전 등 현대 안보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스탄불의 아타튀르크 전쟁 게임, 시뮬레이션 및 문화 센터에서 운영된 ''MNE''(다국적 실험)가 그 예시이며, 가장 최근의 MNE 4는 2006년에 개최되었다.[27] MNE에는 오스트레일리아, 핀란드, 스웨덴, 북대서양 조약 기구 (나토) 회원국 (캐나다, 프랑스, 독일, 영국, 미국 포함) 등이 참가하여 외교, 경제, 군사력 사용을 탐구했다.[27]
6. 한국의 군사 시뮬레이션
6. 1. 현황
6. 2. 과제
7. 한계 및 비판
군사 시뮬레이션은 이상적으로 현실적이어야 하며, 실제 사건 관찰을 통해 확인 가능한 측정 가능하고 반복 가능한 결과를 제공해야 한다.[28] 그러나 모델은 현실의 ''근사''일 뿐이며, 모델 자체만큼 정확하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시뮬레이션의 검증은 과거 데이터를 제공하고 출력값을 알려진 과거 결과와 비교하여 모델을 테스트하는 과정이다. 모델이 알려진 결과를 안정적으로 재현할 수 있다면 검증된 것으로 간주된다.
해군 시뮬레이션은 현실적인 모델 개발이 육상 시뮬레이션보다 쉬운 것으로 입증되었다.[28] 플레처 프랫의 "해군 전쟁 게임"은 1939년 라플라타 해전에서 ''아드미랄 그라프 슈페''와 영국 순양함 간의 교전을 통해 검증되었으며, 프랫의 공식은 영국의 승리를 정확하게 예측했다.[29]
반면, 많은 현대적인 작전 연구 모델은 검증 시 역사적 결과를 재현하지 못했다. 1971년 ''아틀라스'' 모델은 역사적 결과와 68% 이상 일치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30] 트레버 듀피는 "많은 OR 분석가와 기획자들은 역사나 과거 전쟁의 데이터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31] 그는 저서 ''숫자, 예측, 그리고 전쟁''에서 알려진 결과를 재현할 수 없는 모델은 현실적인 근거가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아르덴 공세 직전, 독일 제5 ''판저아르메'' 참모들이 훈련을 시작하자마자 휠트겐 지역에서 강력한 미국 공격 보고가 도착했다. 발터 모델은 참가자들에게 최전선에서 받은 메시지를 게임 움직임으로 사용하여 계속 플레이하도록 명령했다. 시뮬레이션과 현실은 나란히 진행되었고, 제116 ''판저'' 사단 지휘관은 게임을 했던 움직임을 작전 명령으로 내릴 수 있었다.[32]
검증은 주관적인 데이터가 많은 정치-군사 시뮬레이션에서 특히 중요하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초창기 시뮬레이션에서 나온 "신호" 교리는 특정 움직임을 통해 상대방에게 의도에 대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교리의 단점은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이 수행한 폭격 공세에서 볼 수 있다. ''시그마'' 시뮬레이션 결과로, 북베트남의 선택된 산업 목표에 대한 제한적인 폭격 캠페인을 수행하기로 결정했지만, 이 공세는 정치적 목표에 실패했다.[23] 비평가들은 시그마의 적군과 청군 모두 공통 언어를 가진 미국인에 의해 운영되었기 때문에 신호 이해는 쉬웠지만, 문화적 격차는 제대로 번역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군사 시뮬레이션에 대한 비판은 예측 및 분석 도구로 잘못 적용한 데서 비롯된다. 모델에서 제공되는 결과는 인간의 해석에 의존하므로 '복음'과 같은 진실을 제공하는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톰 클랜시는 소설 ''붉은 폭풍''에서 소련 정치국에게 동맹국 간의 의견 차이로 인한 정치적 불확실성에 직면하여 NATO가 대응할 입장에 있지 않을 것이므로 정치적 위험이 용납될 수 있다고 설득하려 할 때, 그러한 사건을 모델링하기 위해 수행된 시뮬레이션의 결과를 증거로 정치적 워게임을 사용하면서 이러한 문제를 보여주었다. 시뮬레이션에서는 세 가지 결과(최상의, 중간, 최악)가 있었지만, 전쟁 옹호자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최상의 결과만 제시했다.[33]
일본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계획된 확장을 광범위하게 워게임했지만, 태평양 전쟁 전 지도 연습은 일본이 패배하는 결론에 도달하기 전 중단되었다. 미드웨이 전, 심판이 침몰한 일본 항공모함을 부활시킨 것은 주사위 굴림을 고려할 때 정당했다는 주장이 있다.[34] 그러나 시뮬레이션의 다른 영역, 주로 작전이 의존하는 기습 요소가 손실될 경우 일본이 자신의 입장을 고려하려 하지 않는 것과 관련된 근본적인 문제도 있었다.[35]
결과가 현재의 정치적 또는 군사적 사고와 일치하도록 시뮬레이션을 조정하는 것은 반복되는 문제다. 1980년대 미국 해군 훈련에서는 항공모함과 같은 고가치 유닛이 침몰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비공식적으로 이해되었다.[36] ''오션 벤처-81''의 결과는 ''Proceedings''에서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했다.[37] 딘 L. 너스는 2척의 블루 항공모함이 적군에 의해 성공적으로 공격받아 침몰했다고 주장했다.[38]
컴퓨터 모델이 비현실적이고 특정 결과에 편향되어 있다는 비난이 있었다. 군사 계약자의 경우, 무기 시스템은 컴퓨터에서 광범위하게 모델링된다. 잠재적 구매자는 제조업체의 자체 모델에 의존해야 하는데, 이는 매우 효과적인 시스템을 나타낼 수 있다. 미국 공군은 AIM-9 사이드와인더 미사일의 Pk를 0.98로 인용했지만, 포클랜드 전쟁 중 영국은 실제 Pk를 0.78로 기록했다.[39]
모델을 무효화할 수 있는 또 다른 요인은 인적 오류다. 미국 공군의 ''첨단 침투 모델''은 프로그래밍 오류로 인해 미국 폭격기가 적의 방공에 무력화되었다.[40] 이 오류는 수년 동안 발견되지 않았다.[41] 다른 비현실적인 모델은 전함이 70노트로 항해하고, 소모율이 각 부대가 시작한 숫자보다 50% 더 높았다.[41]
적의 기술 능력 및 군사 철학의 문제는 모든 모델에 영향을 미친다. '알 수 없는 것'을 발견하는 어려움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을 발견하는 것과 비교하면 사소해 보인다. 렌 데이튼은 ''스파이 스토리''에서 적이 예상치 못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이는 전술 및 전략적 가정을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인적 요인은 군사 시뮬레이션 설계자들의 끊임없는 골칫거리였다. 순수한 군사 모델은 딱딱한 숫자에 집중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육상전은 훈련, 사기, 정보 및 개성(리더십)이 작용하는 소규모 그룹의 행동에 달려 있는 경우가 많다. 상업용 워게임은 이러한 요소를 고려하려고 시도한다. 예를 들어 ''로마: 토탈 워''에서 유닛은 현장에서 도망간다. 군사 분석가들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에서 더 현실적인 민간 워게임으로 눈을 돌렸다. 짐 더니건은 1980년에 펜타곤의 워게임 서클에 합류하여 랜드 연구소 및 과학 응용 통합 (SAI)과 협력하여 보다 현실적인 모델을 개발했다.[42] 그 결과 ''SAS''(''S''trategic ''A''nalysis ''S''imulation)가 현재도 사용되고 있다.[43]
인적 요인 문제는 1980년대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 연구소에서 제레미아를 개발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였다. 제레미아의 개발자인 K. E. Froeschner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의 10초 시간 단계에 원리를 적용했다. 그 결과 측정된 행동과 높은 상관 관계를 보였다. 제레미아는 다른 연구자들에 의해 야누스로 개발되었고, '제레미아 알고리즘'은 삭제되었다. 그러나 제레미아와 알고리즘의 작동을 목격한 장군들은 일반적으로 호의적이었고 이 접근 방식의 타당성을 인식했다.
전쟁 모델은 의사 결정 과정에 정보를 제공하려는 비처방적인 시도일 뿐이다. 군사 시뮬레이션을 복음으로 취급하는 것의 위험성은 베트남 전쟁이 끝날 무렵 유포된 일화로 설명된다. 리처드 닉슨 행정부에서 닉슨이 1969년에 정부를 인수했을 때 양국과 관련된 모든 데이터를 컴퓨터 모델에 입력한 가상의 보좌관에 관한 것이다. 보좌관은 모델에 "우리가 언제 이길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고, 컴퓨터는 "당신은 1964년에 이겼습니다!"라고 대답했다.[46]
8. 결론 및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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