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국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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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은국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의 아들로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난 소설가이다. 평양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월남 후 목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했으나, 한국 전쟁 참전으로 학업을 중단했다. 이후 미국으로 이민하여 미들버리 대학교, 존스 홉킨스 대학교, 아이오와 대학교, 하버드 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았다. 1964년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한 소설 《순교자》를 발표하여 주목받았으며, 《심판자》, 《잃어버린 이름》 등의 작품을 썼다. 1981년 귀국하여 서울대학교에서 강의하고 KBS에서 다큐멘터리 원고를 집필했으며, 동서식품 커피 광고에 출연하기도 했다. 이후 미국에서 은둔 생활을 하다 2009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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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국 (소설가)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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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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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김은국 |
출생일 | 1932년 3월 13일 |
출생지 | 일제강점기 함경남도 함흥 |
사망일 | 2009년 6월 23일 |
사망지 | 미국 매사추세츠주 슐츠베리 |
국적 | 한국, 미국 |
시민권 | 미국 |
직업 | 작가 교사 다큐멘터리 제작자 |
학력 | 미들버리 칼리지 존스 홉킨스 대학교 아이오와 작가 워크숍 하버드 대학교 |
배우자 | 페넬로페 안나 그롤 |
친척 | 이옥현 (외사촌 누나) 이인범 (외사촌 형) 이인근 (외사촌 형) |
본관 | 수안 |
종교 | 개신교 |
로마자 표기 | Gim Eunguk |
작품 정보 | |
주요 작품 | 《순교자》 《죄 없는 사람들》 《잃어버린 이름들》 |
수상 내역 | |
수상 | 구겐하임 펠로우십 전미예술기금 펠로우십 포드 재단 펠로우십 |
군 복무 정보 | |
복무 | 대한민국 육군 |
계급 | 대한민국 육군 중위 |
복무 기간 | 1951년 7월 ~ 1954년 12월 |
근무 | 육군 수도사단 |
역할 | 통역장교, 정훈장교 |
공직 정보 | |
직책 | 대한민국 국방부 정훈국 예하 영어 통역 장교 |
대통령 | 이승만 대한민국 대통령 |
부통령 | 김성수 대한민국 부통령 |
국무총리 | 장면 대한민국 국무총리 허정 대한민국 국무총리 서리 |
국방부 장관 | 이기붕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 |
국방부 차관 | 김일환 대한민국 국방부 차관 |
임기 | 1951년 8월 15일 ~ 1952년 2월 29일 |
기타 정보 | |
영문명 | |
영문명 | Richard Eunkook Kim |
2. 생애
김은국은 1932년 일제강점기 함경남도 함흥에서 독립운동가 김찬도(金燦道)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황해도 황주와 평안남도 진남포를 거쳐 만주국 지린성 지린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냈고, 1936년 평양으로 돌아와 성장했다. 평양고등보통학교를 다니다 1947년 월남하여 목포에 정착, 목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학업을 중단하고 대한민국 육군에 입대, 통역장교와 정훈장교로 복무한 뒤 1954년 예편하였다. 군 복무 당시 아서 트루도 미 육군 소장의 부관으로 근무한 인연으로 1955년 미국으로 이민, 미들버리 대학교에서 공부하였다. 이후 존스 홉킨스 대학교(1960년), 아이오와 대학교(1962년), 하버드 대학교(1963년)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60년 덴마크계 미국 여성과 결혼하여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1964년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한 소설 《순교자》(The Martyred)를 영문으로 발표하여 1965년 '내셔널 북 어워드' 최종심에 오르고, 20주 연속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며 20개 언어로 번역되는 등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67년 노벨 문학상 후보로 추천되기도 했다. 이후 5·16 군사정변을 다룬 《심판자》(The Innocent, 1968), 창씨개명을 소재로 한 《잃어버린 이름》(Lost Names, 1970)을 발표했다.
매사추세츠 대학교 애머스트 등에서 영어 교수로 재직하다 1981년 귀국, 서울대학교 특임교수(1982-1983) 및 KBS 다큐멘터리 원고 집필 등으로 활동했다. 1989년부터 동서식품 커피 광고에 출연, '가슴이 따뜻한 사람과 만나고 싶다'라는 문구로 유명해졌다. 이후 미국에서 은둔 생활을 하다 2005년 암 투병 사실이 알려졌고, 2009년 사망하였다.
김은국은 포드 재단 해외 지역 연구 펠로우십(1962–63), 구겐하임 펠로우십(1966), 제1회 대한민국 현대문학 번역상(1974), 미국 예술 기금 문학 펠로우십(1978–79) 등 여러 상을 받았다.
2. 1. 초기 생애와 월남 (1932-1947)
1932년 일제강점기 함경남도 함흥에서 독립운동가 김찬도(金燦道)의 차남으로 태어났으며, 황해도 황주와 평안남도 진남포를 거쳐 만주국 지린성 지린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냈다.[1] 1936년 평안남도 평양으로 돌아와 평양고등보통학교에 다니다가[1] 1947년에 월남하여 전라남도 목포에 정착했다.[1] 이후 목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했다.[1]2. 2. 한국 전쟁 참전과 도미 (1950-1955)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재학 중 학업을 중단하고 대한민국 육군에 입대하였다. 통역장교를 거쳐 정훈장교로 복무한 뒤 1954년 예편하였다. 군 복무 당시 아서 트루도 미 육군 소장의 부관으로 근무했던 인연으로, 트루도 소장의 추천과 도움을 받아 1955년 미국으로 이민하여 미들버리 대학교에서 공부하였다. 이후 존스 홉킨스 대학교에서 문학 석사(1960년), 아이오와 대학교 작가 워크숍에서 인문과학 석사(1962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극동 언어와 문학 석사(1963년) 학위를 받았다.2. 3. 미국 유학과 작가 활동 (1955-1981)
1954년 군 복무를 마치고 예편한 뒤, 아서 트루도 미 육군 소장의 추천과 도움을 받아 1955년 미국으로 이민하여 미들버리 대학교에서 공부하였다.[1] 1960년 존스 홉킨스 대학교에서 문학 석사 학위를, 1962년 아이오와 대학교 작가 워크숍에서 인문과학 석사 학위를, 1963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극동 언어와 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1960년 미국에서 덴마크계 미국 여성 페닐로프 앤 그롤과 결혼하였고, 이 무렵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였다.
1964년 한국 전쟁 당시 한 목사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순교자》(The Martyred)를 영문으로 발표하였다. 《순교자》는 1965년 ‘내셔널 북 어워드(National Book Award)’ 최종심사에 올랐으며, 20주 연속 미주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독일어 등 20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평단으로부터도 호평을 받았다.[1] 1965년에 유현목 감독에 의해 한국에서 영화화되기도 했다. 1967년 노벨 문학상 후보로 추천되기도 했다. 1968년에는 5·16 군사정변을 소재로 한 《심판자》(The Innocent)를, 1970년 창씨개명을 소재로 한 《잃어버린 이름》(Lost Names)을 발표하였다.
매사추세츠 대학교 애머스트, 시라큐스 대학교, 샌디에이고 주립 대학교에서 영어 교수로 재직했다. 1981년 대한민국으로 건너와 서울대학교에서 특임교수로 초빙되어 1983년까지 풀브라이트 교수로 활동했다.
2. 4. 한국 귀국과 은둔 생활 (1981-2009)
1981년 대한민국으로 건너와 서울대학교에서 특임교수로 출강, 1982년부터 1983년까지 1년간 강의를 하였다.[1] 그 이후에는 KBS에서 다큐멘터리 원고를 집필하였다.[1] 1989년부터 여러 차례 동서식품의 커피 광고에 출연하여 '가슴이 따뜻한 사람과 만나고 싶다'라는 광고 문구로 유명해지기도 했다. 이후 활동을 완전히 중단하고 미국에서 은둔 생활을 했다. 2005년 매사추세츠주에서 암 투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2009년 사망하였다.3. 작품 세계
김은국은 소설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문학 세계를 펼쳐 보였다. 그의 작품들은 개인적인 경험과 역사적 사건, 그리고 사회적 문제들을 깊이 있게 다루면서도,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과 가치를 탐구하는 특징을 지닌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한국 전쟁의 비극을 다룬 《순교자》(1964), 전후 남한의 정치적 혼란을 그린 《심판자》(1968),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담은 자전적 소설 《잃어버린 이름》(1970) 등이 있다.
김은국은 소설 외에도 "파랑새"(1983, 한국어), "잃어버린 세월을 찾아서"(1985, 한국어) 등 어린이 책과, "중국과 소련의 잃어버린 한국인: 사진 에세이"(1989)와 같은 사진 에세이, "한국 기독교 200년"(1981, 서울 KBS-TV 제작), "한국 전쟁"(1983), "일본에 관하여"(1984) 등의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극본, 그리고 1981년부터 1984년까지 서울의 『코리아 헤럴드』와 『조선일보』에 칼럼을 기고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가족, 특히 아버지와의 관계는 그의 글쓰기에 큰 영감을 주었다. 김은국은 아버지를 성인이라고 묘사했으며,[1] 그의 아버지는 소설 《잃어버린 이름들》(1970)의 주요 등장인물이기도 하다.
3. 1. 《순교자》(The Martyred, 1964)
김은국의 첫 소설인 《순교자》는 한국 전쟁을 다룬 작품으로, 연극, 오페라, 영화로 제작되었다.[1] 전미 도서상과 노벨 문학상 후보에도 올랐다.[1]줄거리는 12명의 기독교 목사가 공산주의자에게 살해된 채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이야기의 화자인 이 대위는 생존자 두 명을 심문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이 대위는 신 목사가 동료를 배신했다고 자백하여, 공산주의자들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한국 기독교인의 전쟁 지지를 이끌어내기를 바란다. 그러나 신 목사는 무죄였고, 다른 사람들과 달리 신앙을 부인하지 않아 목숨을 건졌다. 그는 배신을 자백하고 '용서'받은 후, 대중에게 타락한 목사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를 '순교자'로 유지하는 인기 있는 설교자가 된다. 전쟁으로 고통받는 교인들의 믿음을 지켜주기 위해서였다.[1]
이 소설은 전쟁과 한국 기독교, 전시 상황에서 대중의 고통, 신앙, 희망, 고백 등 개인적인 측면을 병치하여 더 큰 질문을 제기한다. 12명의 살해된 목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무고한 한국인 전체의 고통으로 돌아가 한국 민중이 12명의 살해된 남자들만큼이나 '순교자'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1]
《순교자》는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20주 동안 머물렀으며, 10개 언어로 번역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1] 1964년 초판이 발행되었고, 2011년 펭귄 클래식스에서 재발행되었다.[1]
3. 2. 《심판자》(The Innocent, 1968)
김은 이 소설에서 대한민국(1961년에 일어난 군사 정변)을 배경으로 한 가상의 '쿠데타'를 중심으로, 소설 『순교자』의 등장인물들을 다시 등장시키며, 도덕성이 끔찍한 행위를 요구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은 육군 장교 집단이 겪는 윤리적 딜레마를 다루고 있다.[5] 전작의 이 대위는 부패한 민간 정부를 변화시키기 위해 평화적인 수단을 사용하고 싶어 하며, 폭력으로는 폭력을 종식시킬 수 없다고 믿는다. 그러나 함 장군을 제거한 후, 다른 공모자들은 그를 처형하려 한다. 이 대위는 더 강력한 방법을 선호하는 집단의 리더인 그의 친구 민 대령과 대조되며, 사건이 공모자들의 통제를 벗어나면서 민 대령은 이 대위의 비폭력 호소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쿠데타가 성공한 후 민 대령은 이 대위에게 이 대위의 비현실적일지라도 순수함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민 대령이 살인자로만 비춰지는 것을 막아준다고 인정한다.[5]이 소설에서 김은 끔찍한 전쟁 이후 국가를 재건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많은 부패 속에서 그리고 전시 폭력의 지속적인 기세에 직면하여 자신의 순수함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성찰한다.[5] 이 소설은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가 벌어지던 시기에 출판되었고 김에 대한 열정이 줄어들면서, 『순교자』만큼 성공하지 못했다.[3]
3. 3. 《잃어버린 이름》(Lost Names, 1970)
《잃어버린 이름》(Lost Names)은 김은국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로, 일제강점기 한국을 배경으로 한다. 김은국은 책의 허구와 사실적 측면에 대해 "이 책에 묘사된 모든 등장인물과 사건은 실제이지만, 그 외의 모든 것은 허구이다..."라고 말했다.[1] 김은국은 자신의 경험이 항상 긍정적이지만은 않았지만, 이 책이 반일적인 내용으로 해석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한국인들에게 제목의 "잃어버린"은 "강제로 빼앗긴"을 의미했지만, 김은국은 그것이 제목의 의도로 묘사되기를 원하지 않았으며, 단순히 '잃어버린'의 의미로 사용했다.[1]김은국이 《잃어버린 이름들》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옛날 옛적, 어느 일요일에"라는 챕터이다. 이 장면은 소년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모든 일이 밤하늘이 나타내는 광대함과 가능성에 비하면 사소하다는 것을 깨닫는 장면이다.[1]
1970년 초판이 발행되었고, 1998년 캘리포니아 대학교 출판부에서 재발행되었다. 2011년에는 40주년 기념 특별판이 새로운 서문과 함께 발행되었다.
3. 4. 기타 작품
- 《심판자》(The Innocent, 1968)
- 《소련과 중국, 그리고 잃어버린 동족들》(1989)
- "파랑새"(1983, 한국어)
- "잃어버린 세월을 찾아서"(1985, 한국어)
- "중국과 소련의 잃어버린 한국인: 사진 에세이"(1989)
- 텔레비전 작품:
- * "한국 기독교 200년"(1981, 서울 KBS-TV 제작)
- * "한국 전쟁"(1983)
- * "일본에 관하여"(1984)
- * "전쟁 중 대학살에 대한 성찰"(1985)
- * "만주로 가는 길"(1987)
- * "소련의 잃어버린 한국인들을 찾아서"(1988)
- * "위대한 시베리아 횡단 철도"(1989)
- 1981년부터 1984년까지 서울의 『코리아 헤럴드』와 『조선일보』의 칼럼니스트로 활동.[1]
4. 평가
김은국은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의 첫 소설 『순교자』는 한국 전쟁을 다루었으며, 연극, 오페라, 영화로 제작되었고 전미 도서상 후보에 올랐다.[1] 또한 포드 재단 해외 지역 연구 펠로우십, 구겐하임 펠로우십 등 여러 상을 받았다.[1]
4. 1. 문학적 성취
김은국의 첫 소설인 『순교자』는 한국 전쟁을 다룬 작품으로, 연극, 오페라, 영화로 제작되었다. 이 작품은 전미 도서상 후보에 올랐으며, 노벨 문학상 후보에도 올랐다.[1] 『순교자』는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20주 동안 머물렀으며 10개 언어로 번역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1]『순교자』는 열두 명의 기독교 목사가 공산주의자들에게 살해된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소설은 전쟁과 한국 기독교, 그리고 전시 상황에서 대중의 고통과 신앙, 희망, 고백 등 개인적인 측면을 병치하여 보여준다. 김은국은 무고한 한국인 전체의 고통을 통해 한국 민중이 열두 명의 살해된 목사들만큼이나 "순교자"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1]
이어서 전후 남한의 정치 상황을 다룬 『무죄』(1968)와 단편 소설집 『잃어버린 이름들: 한국 소년기의 장면들』(1970)이 출간되었다. 『무죄』는 5·16 군사 정변을 배경으로 한 가상의 ''쿠데타''를 중심으로, 도덕성이 끔찍한 행위를 요구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은 육군 장교 집단이 겪는 윤리적 딜레마를 다룬다. 이 소설에서 김은국은 끔찍한 전쟁 이후 국가를 재건하는 것뿐만 아니라, 부패와 전시 폭력 속에서 자신의 순수함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성찰한다.[5]
김은국은 포드 재단 해외 지역 연구 펠로우십(1962–63), 구겐하임 펠로우십(1966), 제1회 대한민국 현대문학 번역상(1974), 미국 예술 기금 문학 펠로우십(1978–79) 등 여러 상과 영예를 받았다.[1]
그의 출판된 원작으로는 소설 『순교자』(1964), 『무죄』(1968), 『잃어버린 이름들』(1970)이 있으며, 어린이 이야기인 "파랑새"(1983, 한국어), "잃어버린 세월을 찾아서"(1985, 한국어), 그리고 "중국과 소련의 잃어버린 한국인: 사진 에세이"(1989)가 있다. 그의 텔레비전 작품으로는 서울의 KBS-TV에서 제작한 "한국 기독교 200년"(1981), "한국 전쟁"(1983), "일본에 관하여"(1984), "전쟁 중 대학살에 대한 성찰"(1985), "만주로 가는 길"(1987), "소련의 잃어버린 한국인들을 찾아서"(1988), "위대한 시베리아 횡단 철도"(1989) 등이 있다. 그는 1981년부터 1984년까지 서울의 『코리아 헤럴드』와 『조선일보』(Korea Daily)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1]
가족과 삶의 경험은 그의 글쓰기에 큰 영감을 주었다. 특히 아버지의 영향력이 가장 컸으며, 김은국은 그의 아버지를 성인이라고 묘사했다.[1] 그의 아버지는 그의 저서 『잃어버린 이름들』(1970)의 주요 등장인물이기도 하다.
4. 2. 비판적 시각
주어진 자료에는 김은국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명시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다. 따라서 이 섹션에서는 그의 작품이 다양한 분야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는 점을 간략하게 언급한다.그의 첫 소설 『순교자』는 한국 전쟁을 다룬 작품으로, 연극, 오페라, 영화로 제작되었으며 전미 도서상 후보에 올랐다.[1] 그는 포드 재단 해외 지역 연구 펠로우십, 구겐하임 펠로우십 등 여러 상을 받았다.[1]
5. 수상 경력
김은국은 포드 재단 해외 지역 연구 펠로우십(1962–1963), 구겐하임 펠로우십(1966), 제1회 대한민국 현대문학 번역상(1974), 미국 예술 기금 문학 펠로우십(1978–1979)을 수상했다.[1] 또한, 그의 첫 소설인 『순교자』는 전미 도서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6. 가족 관계
7. 학력
참조
[1]
웹사이트
Lost Names: Scenes From a Korean Boyhood
http://www.asian-stu[...]
2011-01-26
[2]
간행물
The Martyred
[3]
서적
Asian American autobiographers: a bio-bibliographical critical sourcebook
[4]
서적
New immigrant literatures in the United States: a sourcebook to our multicultural literary heritage
[5]
간행물
The Innoc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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