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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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닌나지는 일본 헤이안 시대 초기에 창건된 사찰로, 888년부터 1869년까지 천황의 아들이 주지를 맡는 전통이 있었다. 1467년 오닌의 난으로 소실된 후 도쿠가와 이에미쓰에 의해 재건되었으며, 1946년 진언종 어실파의 총본산이 되었다. 17세기에 건립된 5층탑과 분재 벚나무 재배지를 포함한 많은 건물들이 있으며, 국보로 지정된 곤도(金堂)와 다양한 중요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특히, 오무로 벚꽃은 벚꽃 명소로 유명하며, 오무로 팔십팔개소 영장은 순례 코스로 활용된다. 현재는 영화 촬영지, 라이브 공연 장소 등으로도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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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지는 헤이안 시대 초기에 창건된 일본의 사찰로, 헤이안쿄에 세워진 세 곳의 사찰 중 유일하게 현존하며 국가 수호 역할을 했고, 고보대사와 관련이 깊으며, 일본에서 가장 높은 목조탑인 오중탑을 국보로 소장하고, 매달 홍법 시장이 열린다.
| 닌나지 | |
|---|---|
| 지도 정보 | |
| 기본 정보 | |
| 이름 | 닌나지 |
| 로마자 표기 | Ninna-ji |
| 한자 표기 | 仁和寺 |
| 종교 | 신곤 불교 오무로파 |
| 주요 신 | 아미타불 |
| 국가 | 일본 |
| 위치 | 교토부 교토시 우쿄구 오무로 33 |
| 설립자 | 우다 천황 |
| 창건 년도 | 888년 |
| 재건 완료 년도 | 1644년 |
| 웹사이트 | 닌나지 공식 웹사이트 |
| 별칭 | 구 오무로 어소 |
| 산 이름 | 오우치산 |
| 사찰 등급 | 총본산 |
| 문화재 정보 | |
| 국보 | 금당 목조 아미타여래 및 양협시상 목조 약사여래 좌상 |
| 중요 문화재 | 오층탑 관음당 이왕문 |
| 명승지 | 오무로 벚꽃 어소 정원 |
| 사적 | 닌나지 어소 유적 |
| 등록 유형 문화재 | 침전 대현관 백서원 |
| 세계 유산 | 등록됨 |
| 순례 정보 | |
| 진언종 18본산 | 제6번 |
| 교토 13불 영장 | 제9번 |
| 긴키 36부동존 영장 | 제14번 |
| 오무로 88개소 영장 | 해당 |
| 신불 영장 순례길 | 제92번 (교토 제12번) |
| 이미지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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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닌나지는 헤이안 시대 초기에 세워졌다. 886년에 고코 천황은 국가를 축복하고 불교의 가르침을 전파하기 위해 니시야마 고간지의 건설을 명령했으나[8], 재위 중 완공을 보지 못했다. 우다 천황이 888년에 절을 완성하고[3] 고코 천황 통치 이후의 연호인 "닌나"라는 이름을 붙였다.[9] 888년부터 1869년까지 천황이 자신의 아들을 절의 주지로 보내 관리하는 것이 전통이었다.
황위에서 내려온 후 우다 천황은 닌나지의 첫 번째 몬제키(황족, 귀족 승려)가 되었다. 에도 시대가 끝날 때까지 황족들이 절의 주지를 계속 이어받았다.
1467년 오닌의 난으로 절이 화재와 전투로 파괴되었다. 약 150년 후 도쿠가와 막부의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에 의해 재건되었다. 교토 황궁 재건축과 함께 복원되어 황실의 지원을 받았다.
귀족이나 왕족이 절의 주지로 임명되는 전통은 에도시대 말까지 이어졌다.
현존하는 건물 대부분은 17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5층탑과 분재 벚나무 재배지를 포함한다. 절에는 아름답게 채색된 벽과 정원이 있다.
1887년(메이지 20년) 신전(宸殿) 등 어전(御殿)이 소실되었으나, 가메오카 스에요시의 설계로 1914년(다이쇼 3년)에 재건되었다.[8][9]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의 패전이 짙어진 1945년(쇼와 20년) 1월 20일 이후, 여러 차례 전 내각총리대신 고노에 후미마로가 닌나지를 방문하여 쇼와 천황의 퇴위 및 출가 계획에 대해 닌나지 문적과 논의하고, 출가 후 거처 등을 검토했다. 1월 26일, 후미마로의 별장 양명문고(陽明文庫)에서 후미마로와 쇼와 천황의 동생 다카마쓰노미야 노부히토 친왕 사이에 쇼와 천황 출가에 대한 회담이 열렸다. 영명전(霊明殿)에 걸린 편액 "영명전" 글자는 후미마로가 닌나지 방문 시 쓴 것으로, 절필(絶筆)이라고 전해진다.[12]
1946년(쇼와 21년) 진언종 오무로파가 대진언종(大真言宗)에서 분리 독립하여, 닌나지는 그 총본산이 되었다.
2. 1. 창건과 황실과의 관계
헤이안 시대 초기, 고코 천황은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고 불교 교리를 널리 전파하기 위해 니시야마 고간지(Nishiyama Goganji Temple) 건립을 명령했지만, 완공을 보지 못하고 서거하였다. 우다 천황은 888년에 건립을 완료하고[3] 고코 천황의 재위 연호를 따서 "닌나(仁和)"라고 명명하였다. 888년부터 1869년까지는 재위 중인 천황이 사찰의 주지(head priest)가 공석이 되면 아들을 보내 주지로 삼는 것이 전통이었다.우다 천황은 퇴위 후 닌나지의 첫 번째 몬제키(황족, 귀족 승려)가 되었다. 그 이후 에도 시대 말까지 황실 출신의 주지들이 계속 이어졌다.
1467년, 닌나지는 오닌의 난의 전화와 화재로 파괴되었다. 약 150년 후, 고요제이 천황의 장남인 각신 호신노(Kakushin Hosshinnō)가 도쿠가와 막부의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의 도움을 얻어 재건하였다. 부흥은 교토 황궁의 재건과 맞물려 황실의 지원을 받았다.
에도 시대 말기 30대 몬제키인 준닌 호신노(Junnin Hosshinnō)를 끝으로 황족이나 귀족이 사찰의 주지직을 맡는 전통은 사라졌다. 메이지 유신 이후로는 닌나지의 문적에 황족이 취임하지 않게 되면서 “구 오무로고쇼(旧御室御所)”라고 부르게 되었다.[9]
2. 2. 중세 시대
헤이안 시대 초, 고코 천황은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고 불교 교리를 널리 전파하기 위해 니시야마 고간지(Nishiyama Goganji Temple) 건립을 명했으나, 완공을 보지 못하고 서거했다. 우다 천황은 888년에 건립을 완료하고[3] 고코 천황의 재위 연호를 따 "닌나(Ninna)"라 명명했다. 888년부터 1869년까지 재위 중인 천황이 사찰 주지(head priest)가 공석이 되면 아들을 보내 주지로 삼는 것이 전통이었다.우다 천황은 퇴위 후 닌나지의 첫 몬제키(귀족 승려)가 되었다. 이후 에도 시대 말까지 황실 출신 주지들이 계속 뒤를 이었다.
1467년, 닌나지는 오닌의 난의 전화와 화재로 파괴되었다. 약 150년 후, 고요제이 천황의 장남 각신 호신노(Kakushin Hosshinnō)가 도쿠가와 막부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의 도움을 받아 재건했다. 재건은 교토 황궁 재건과 맞물려 황실 지원을 받았다.
에도 시대 말, 30대 몬제키 준닌 호신노(Junnin Hosshinnō)를 끝으로 황족이나 귀족이 사찰 주지직을 맡는 전통은 사라졌다.
2. 3. 근세 시대
헤이안 시대 초기에 고코 천황은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고 불교 교리를 널리 전파하기 위해 니시야마 고간지(Nishiyama Goganji Temple) 건립을 명령했지만, 완공을 보지 못하고 서거하였다. 우다 천황은 888년에 건립을 완료하고[3] 고코 천황의 재위 연호를 따서 "닌나(仁和)"라고 명명하였다. 888년부터 1869년까지 재위 중인 천황이 사찰의 주지(head priest)가 공석이 되면 아들을 보내 주지로 삼는 것이 전통이었다.우다 천황은 퇴위 후 닌나지의 첫 번째 몬제키(귀족 승려)가 되었다. 그 이후 에도 시대 말까지 황실 출신의 주지들이 계속 이어졌다.
1467년, 닌나지는 오닌의 난으로 인한 전화와 화재로 파괴되었다. 약 150년 후, 고요제이 천황의 장남인 각신 호신노(Kakushin Hosshinnō)가 도쿠가와 막부의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의 도움을 얻어 재건하였다. 부흥은 교토 황궁의 재건과 맞물려 황실의 지원을 받았다.
에도 시대 말기 30대 몬제키인 준닌 호신노(Junnin Hosshinnō)를 끝으로 황족이나 귀족이 사찰의 주지직을 맡는 전통은 사라졌다.
2. 4. 근현대
메이지 유신 이후, 황족이 닌나지(인화사)의 문적에 취임하지 않게 되면서 "구 오무로고쇼(旧御室御所)"라고 불리게 되었다.오무로는 벚꽃 명소로도 알려져 있으며, 봄의 벚꽃과 가을의 단풍 시기에는 많은 참배객들로 북적인다. 『도연초(徒然草)』에 등장하는 "닌나지에 있는 승려" 이야기는 유명하다. 닌나지는 또한, 우다 천황을 시조로 하는 화도(華道) "오무로류(御室流)"의 가원(家元)(종가)이기도 하다.
평소에는 경내 입장은 무료이며, 본방어전·영보관 관람만 유료이다. 하지만, 오무로 벚꽃 개화 시기(4월)에 "벚꽃 축제"가 열리며, 그 기간에는 경내 입장에도 관람료가 필요하다.
숙방(사찰 숙박 시설)에서 숙박객을 받고 있다. 오무로카이칸[5] 외에, "쇼린안(松林庵)"을 개수하여[6] 고급 숙방으로 운영하고 있다.[7]
1887년(메이지 20년)에는 신전(宸殿) 등의 어전(御殿)이 소실되었으나, 가메오카 스에요시의 설계로 1914년(다이쇼 3년)에 재건되었다.[8][9]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의 패전이 짙어진 1945년(쇼와 20년) 1월 20일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전 내각총리대신 고노에 후미마로가 닌나지를 방문하여 쇼와 천황이 퇴위하고 닌나지에서 출가한다는 계획에 대해 닌나지의 문적과 논의하고, 출가 후 거처 등을 검토했다. 1월 26일, 후미마로의 별장 양명문고(陽明文庫)에서 후미마로와 쇼와 천황의 동생 다카마쓰노미야 노부히토 친왕 사이에 쇼와 천황의 출가에 대한 회담이 열렸다. 영명전(霊明殿)에 걸려 있는 편액 "영명전"의 글자는 후미마로가 닌나지를 방문했을 때 쓴 것으로, 절필(絶筆)이라고 전해진다.[12]
1946년(쇼와 21년)에 진언종 오무로파가 대진언종(大真言宗)에서 분리 독립하여, 닌나지는 그 총본산이 되었다.
3. 가람
닌나지는 황실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사찰(문적사원)로, 우다 법황이 출가 후 머물렀던 곳이라 “오무로고쇼(御室御所)”라고 불렸다. 메이지 유신 이후 황족이 닌나지의 문적을 맡지 않게 되면서 “구 오무로고쇼(旧御室御所)”라고 부르게 되었다.
경내에는 다양한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크게 국보, 중요문화재, 기타 건물로 나눌 수 있다.
- '''국보'''
- * 금당
- '''일본의 중요문화재'''
- * 탑
- * 교조(経蔵)
- * 니오 문(仁王門)
- * 추 문(中門)
- * 슈로(鐘楼)
- * 칸논도(觀音堂)
- * 미에이도(御影堂)
- * 미에이도 추문(御影堂 中門)
- * 큐쇼묘진(九所明神)
- * 혼보 오모테몬(本坊表門)
- * 료카쿠테이(遼廓亭)
- * 히토테이(飛濤亭)
- '''기타'''
- * 쵸쿠시몬(勅使門)
- * 신덴(宸殿)
- * 레이메이덴(霊明殿)
- * 쿠로쇼인(黒書院)
- * 시로쇼인(白書院)
평소에는 경내 입장이 무료이지만, 오무로 벚꽃 개화 시기(4월)에는 “벚꽃 축제”가 열려 입장료를 받는다. 숙방에서는 숙박객을 받고 있으며, "쇼린안(松林庵)"을 고급 숙방으로 운영하고 있다.[6][7]
- 물걸이 부동명왕 - 킨키 36 부동명왕 영장 제14번 찰소.
- 레이와 아미타당 - 2019년 건립. 영대위패 공양당.
- 오리베형 등롱 - 후루타 오리베가 고안한 등롱 3기가 세워져 있다. 기리시탄 등롱이라고도 한다.
- 본방 - 이왕문에서 중문에 이르는 참도 서쪽에 있으며, 우다 법황의 고쇼가 있던 곳이다. "인화사 고덴"이라고 불리며, 인화사 고쇼 터로서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 * 황족문(국가 등록유형문화재)
- * 대현관(국가 등록유형문화재)
- * 남정(국의 명승) - 백사로 구성되어 있다.
- * 북정(국의 명승) - 못과 섬이 있는 정원. 1690년에는 가라이 도이, 시라이 도쇼 등, 메이지부터 다이쇼 시대에는 7대 오가와 지헤이에 의해 개수·정비되었다.
- * 징수사
- * 토장
- * 사무소
- 영보관(국가 등록유형문화재) - 창건 당시의 본존인 아미타 삼존상 등이 전시되어 있다.
- 오무로카이칸 - 숙방.
- 쇼린안 - 고급 숙방. 1박 100만 엔으로 유명하다.
- 동문
3. 1. 주요 건물
- 금당(국보) - 1613년에 건립된 교토고쇼의 정전인 자신전을 1624년~1644년에 이축한 것으로, 근세 침전조 양식의 유구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자신전이다. 궁궐에서 불당으로 용도가 변경됨에 따라 지붕을 히와다부키에서 기와지붕으로 바꾸는 등 개조되었으나, 격자 모양의 쇼지도와 금색 장식 금구 등 궁궐 건축의 의장을 잘 남기고 있다.[13] 본존은 운절이 제작한 아미타여래이다. 수미단에는 아미타여래의 협시상과 사천왕상, 제석천상, 범천상, 용등귀상, 천등귀상 등이 안치되어 있다.[13]
- 경장(중요문화재) - 1641년부터 1645년까지 재건되었다. 선종 양식 건축물로, 윤장이 설치되어 총 768개의 경함이 보관되어 있다.
- 종루(중요문화재) - 1644년 재건되었다.
- 영묘당(중요문화재) - 1641년부터 1645년까지 재건되었다. 1613년에 건립된 교토고쇼의 청량전 재료를 사용하여 건립되었다. 종조 홍법대사, 개기 우다 법황, 인화사 제2세 성신입도친왕의 상을 봉안하고 있다.
- 영묘당 중문(중요문화재) - 1641년부터 1645년까지 재건되었다.
- 관음당(중요문화재) - 1641년부터 1645년까지 재건되었다.
- 오중탑(중요문화재) - 1644년 재건되었으며, 총 높이는 36.18m이다.
- 구소명신
- * 본전(중요문화재) - 1641년부터 1645년까지 재건되었다. 제신은 하치만 삼소(이시즈미 하치만구)이다.
- * 좌전(중요문화재) - 1641년부터 1645년까지 재건되었다. 제신은 가모 상하(가모미야쓰미 신사·가모와카미야 신사), 히요시 다이묘진(히요시타이샤 서본궁), 우시가시라텐노(야사카 신사), 이나리 다이묘진(후시미이나리타이샤)이다.
- * 우전(중요문화재) - 1641년부터 1645년까지 재건되었다. 제신은 마쓰오 다이묘진(마쓰오타이샤), 히라노 다이묘진(히라노 신사), 고히요시 다이묘진(히요시타이샤 동본궁), 키노시마 텐진(키노시마자텐쇼고콘진자)이다.
- 중문(중요문화재) - 1641년부터 1645년까지 재건되었다.
- 본방
- * 본방 표문(중요문화재) - 1596년~1615년 건립되었다.
- * 칙사문(국가 등록유형문화재) - 1913년에 재건되었다.
- * 백서원(국가 등록유형문화재) - 툇마루 그림은 1937년에 후쿠나가 세이호가 그렸다.
- * 신전(국가 등록유형문화재) - 1624년~1644년에 교토고쇼·조고덴을 하사받아 신전으로 사용했으나 1887년에 소실되어 1914년에 재건되었다. 툇마루 그림과 벽 등의 그림은 하라 자이센과 후쿠나가 세이호가 그렸다.[14]
- * 흑서원(국가 등록유형문화재) - 1909년에 건립되었다. 툇마루 그림은 1937년에 도모토 인쇼가 그렸다.[14]
- * 영명전(국가 등록유형문화재) - 1911년에 건립되었다.
- * 다실 "료곽정"(중요문화재) - 1661년부터 1750년 사이에 오가타 고린의 저택에서 이축되었다.
- * 다실 "히토테이"(중요문화재) - 1830년부터 1867년에 건립되었다.
- 이왕문(중요문화재) - 1641년부터 1645년까지 재건되었다. 화양 건축 양식이다.
4. 문화재
닌나지에는 일본의 국보와 일본의 중요문화재를 포함한 다양한 문화재가 소장되어 있다.
| 종류 | 명칭 | 비고 |
|---|---|---|
| 일본의 국보 | 금당(金堂) | 1613년에 건립된 교토고쇼의 정전인 자신전을 1624년에서 1644년 사이에 이축한 것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자신전 건물이다. |
| 일본의 중요문화재 | 오중탑(五重塔) (36.18m}), 칸논도(觀音堂), 추 문(中門), 니오 문(仁王門), 슈로(鐘楼), 교조(経蔵), 미에이도(御影堂), 미에이도 추문(御影堂 中門), 큐쇼묘진(九所明神) 본전, 혼보 오모테몬(本坊表門), 료카쿠테이(遼廓亭), 히토테이(飛濤亭) | |
| 국가 등록유형문화재 | 쵸쿠시몬(勅使門), 신덴(宸殿), 레이메이덴(霊明殿), 쿠로쇼인(黒書院), 시로쇼인(白書院), 칙사문, 황족문, 대현관, 백서원, 신전, 흑서원, 영명전, 영보관 | |
| 기타 | 비단 바탕 채색 성덕태자상, 비단 바탕 채색 승형 하치만 신 영향도, 종이 바탕 백묘 및 채색 밀교 도상 17점, 종이 바탕 먹그림 고승상 1권, 종이 바탕 먹그림 사천왕도상 1권, 종이 바탕 먹그림 미륵보살영상집 1첩, 종이 바탕 먹그림 약사십이신장상 1권, 종이 바탕 먹그림 별존잡기(도상입) 57권, 비단 바탕 채색 현성 쇼지(賢聖障子) 20면 (가노 다카노부(狩野孝信) 필, 게이쵸 19년[17]), 목조 부엌 신입 목조 애염명왕좌상, 목조 吉祥天입상, 목조 싯다르타 태자좌상 (1991년에 현재 명칭으로 변경[18]), 목조 증장천·다문천입상, 목조 문수보살좌상, 주짓시 마키에 쓰쿠에(住吉蒔絵机), 색에 요라쿠문 화생(野々村仁清 작), 동제 사리탑(불사리탑)·오고령·삼고령·구두룡령·금강저(오고저), 일월 마키에 켄바코(日月蒔絵硯箱), 보주 갓마문 긴요코히(부:보주 갓마문 긴렬) | 종이 바탕 백묘 및 채색 밀교 도상 17점에는 당본 만다라도(금강계오불 등), 당본 만다라도(천비군달리 등), 아미타여래상, 아미타여래상, 마니주상, 자재륜관음, 지장보살 만다라도, 당본 밀보살상, 부동명왕이동자상, 부동명왕삼동자상, 애염명왕상, 비사문천상, 비사문천상, 급속금강동자상, 일체염송행사구당상(이상 백묘), 상굴리독녀상, 북두만다라도(이상 채색) 등이 있다. |
4. 1. 국보
- 금당
- 목조 아미타여래 및 양 협시상 - 원래는 금당에 안치되었으나, 현재는 사찰 내 영보관으로 옮겨져 있다. 인화 4년(888년) 창건 당시의 본존으로 여겨진다.
- 목조 약사여래좌상 - 본방 북쪽에 있는 영명전(인화사 역대 문적의 위패를 모신 당)의 본존. 1986년(쇼와 61년), 교토국립박물관의 조사로 처음으로 개요가 밝혀졌고, 1990년(헤이세이 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강화 5년(1103년), 백하천황의 황자 · 각행법친왕의 발원으로 불사의 원세와 장원이 조성되었다. 본체의 상고는 11센티미터, 광배와 대좌를 포함해도 24센티미터 정도의 백단 재질의 소상으로, 광배에는 칠불약사상과 일광보살·월광보살, 대좌에는 전후좌우 각 면에 3체씩의 십이신장을 나타내는 정교한 작품이다.[16]
- 견본 채색 공작명왕상(회화) - 북송 시대의 불화.
- 보상화(寶相華) 마키에 보주상(부:목제 채색 사천왕상 4매) - 헤이안 시대 전기의 칠공예품. 마키에 초기의 유품으로 귀중하다.
- 삼십첩 책자(30첩) · 보상화 가릉빈가 마키에 곽(속, 토변에 "塞") 책자상(부: 행변 승정 소식 1권, 삼십첩 책자 세부 1권) - "삼십첩 책자"는, 공해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사경의 소책자(크기는 세로 가로 모두 10센티미터 정도) 30권이며, 일부에 공해 자필을 포함한다. 예로부터 진언종의 중보로서 존중되고 있다. 부속의 상자는 조정에서 하사한 것으로, 헤이안 시대의 칠공예품으로서 귀중하다.
- 오실상승기 6권 - 닌나지의 역대 법친왕의 기록. 가마쿠라 시대.
- 고쿠라 천황 친한 소식(부: 수각법친왕 소식) - "친한"은 천황의 직필, "소식"은 편지의 뜻. 젊어서 붕어한 고쿠라 천황의 18세 때 필적이며, 동천황의 현존 유일의 유필이다.
- 고사가 천황 친한 소식 - 고사가 천황의 확증 있는 유필로서는 유일하다.
- 황제내경명당 제1권 2권(영인 4년, 영덕 3년 서사), 황제내경태소 23권(인안 2년, 동 3년 서사) - 중국의 의학서 『황제내경』의 주석서. "명당"은 가마쿠라 - 남북조 시대, "태소"는 헤이안 시대의 사본.
- 의심방 제1권, 제5권, 제7권, 제9권, 제10권 잔권 5첩 - 일본 최고의 의학서 『의심방』의 헤이안 시대 후기 사본.
- 신수본초 제4권, 제5권, 제12권, 제17권, 제19권 5권 - 당나라 시대의 약초에 관한 책 『신수본초』의 가마쿠라 시대 사본.
4. 2. 중요문화재
| 종류 | 명칭 | 비고 |
|---|---|---|
| 일본의 중요문화재 | 오중탑(五重塔) | 1644년 재건. 총 높이 36.18m. |
| 일본의 중요문화재 | 관음당(観音堂) | 1641년 ~ 1645년 재건. |
| 일본의 중요문화재 | 중문(中門) | 1641년 ~ 1645년 재건. |
| 일본의 중요문화재 | 이왕문(二王門) | 1641년 ~ 1645년 재건. 화양 건축. |
| 일본의 중요문화재 | 종루(鐘楼) | 1644년 재건. |
| 일본의 중요문화재 | 경장(経蔵) | 1641년 ~ 1645년 재건. 선종 양식 건축. 윤장이 설치되어 총 768개의 경함이 수장되어 있다. |
| 일본의 중요문화재 | 미에이도(御影堂) | |
| 일본의 중요문화재 | 미에이도 중문(御影堂中門) | 1641년 ~ 1645년 재건. |
| 일본의 중요문화재 | 구소묘진사(九所明神社) 본전 3동 | 1641년 ~ 1645년 재건. |
| 일본의 중요문화재 | 본방표문(本坊表門) | 1596년 ~ 1615년 건립. |
| 일본의 중요문화재 | 요곽정(遼廓亭) | 1661년 ~ 1750년 사이에 오가타 고린의 저택에서 이축. |
| 일본의 중요문화재 | 비도정(飛濤亭) | 1830년 ~ 1867년 건립. |
| 일본의 중요문화재 | 비단 바탕 채색 성덕태자상 | |
| 일본의 중요문화재 | 비단 바탕 채색 승형 하치만신 영향도 | |
| 일본의 중요문화재 | 종이 바탕 백묘 및 채색 밀교 도상 17점 | 당본 만다라도(금강계오불 등), 당본 만다라도(천비군달리 등), 아미타여래상, 아미타여래상, 마니주상, 자재륜관음, 지장보살 만다라도, 당본 밀보살상, 부동명왕이동자상, 부동명왕삼동자상, 애염명왕상, 비사문천상, 비사문천상, 급속금강동자상, 일체염송행사구당상(이상 백묘), 상굴리독녀상, 북두만다라도(이상 채색) |
| 일본의 중요문화재 | 종이 바탕 먹그림 고승상 1권 | |
| 일본의 중요문화재 | 종이 바탕 먹그림 사천왕도상 1권 | |
| 일본의 중요문화재 | 종이 바탕 먹그림 미륵보살영상집 1첩 | |
| 일본의 중요문화재 | 종이 바탕 먹그림 약사십이신장상 1권 | |
| 일본의 중요문화재 | 종이 바탕 먹그림 별존잡기(도상입) 57권 | |
| 일본의 중요문화재 | 비단 바탕 채색 현성 쇼지(賢聖障子) 20면 | 가노 다카노부 필, 1614년[17] |
| 일본의 중요문화재 | 목조 부엌 신입 목조 애염명왕좌상 | |
| 일본의 중요문화재 | 목조 길상천입상 | |
| 일본의 중요문화재 | 목조 싯다르타 태자좌상 | 처음에는 「목조 성덕태자좌상」으로 지정. 1991년에 현재 명칭으로 변경.[18] |
| 일본의 중요문화재 | 목조 증장천·다문천입상 | |
| 일본의 중요문화재 | 목조 문수보살좌상 | |
| 일본의 중요문화재 | 주짓시 마키에 쓰쿠에(住吉蒔絵机) | |
| 일본의 중요문화재 | 색에 요라쿠문 화생(노노무라 닌세이 작)(色絵瓔珞文花生) | |
| 일본의 중요문화재 | 동제 사리탑(불사리탑)·오고령·삼고령·구두룡령·금강저(오고저)(銅製舎利塔・五鈷鈴・三鈷鈴・九頭竜鈴・五鈷杵) | |
| 일본의 중요문화재 | 일월 마키에 켄바코(日月蒔絵硯箱) | |
| 일본의 중요문화재 | 보주 갓마문 긴요코히(부:보주 갓마문 긴렬)(宝珠羯磨文錦横被(附:宝珠羯磨文錦裂)) |
4. 3. 기타 문화재
닌나지에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문화재가 있다.| 종류 | 명칭 | 비고 |
|---|---|---|
| 일본의 중요문화재 | 교조(経蔵), 니오 문(仁王門), 추 문(中門), 슈로(鐘楼), 칸논도(觀音堂), 미에이도(御影堂), 미에이도 추문(御影堂 中門), 큐쇼묘진(九所明神), 혼보 오모테몬(本坊表門), 료카쿠테이(遼廓亭), 히토테이(飛濤亭), 오중탑(五重塔) (36.18m), 구소명신 본전, 구소명신 좌전, 구소명신 우전, 이왕문 | --, -- |
| 기타 | 쵸쿠시몬(勅使門), 신덴(宸殿), 레이메이덴(霊明殿), 쿠로쇼인(黒書院), 시로쇼인(白書院) | |
| 국가 등록유형문화재 | 칙사문, 황족문, 대현관, 백서원, 신전, 흑서원, 영명전, 영보관 | |
| 비단 바탕 채색 성덕태자상, 비단 바탕 채색 승형 하치만 신 영향도, 종이 바탕 백묘 및 채색 밀교 도상 17점, 종이 바탕 먹그림 고승상 1권, 종이 바탕 먹그림 사천왕도상 1권, 종이 바탕 먹그림 미륵보살영상집 1첩, 종이 바탕 먹그림 약사십이신장상 1권, 종이 바탕 먹그림 별존잡기(도상입) 57권, 비단 바탕 채색 현성 쇼지(賢聖障子) 20면 (가노 다카노부(狩野孝信) 필, 게이쵸 19년[17]), 목조 부엌 신입 목조 애염명왕좌상, 목조 吉祥天입상, 목조 싯다르타 태자좌상 (1991년에 현재 명칭으로 변경[18]), 목조 증장천·다문천입상, 목조 문수보살좌상, 주짓시 마키에 쓰쿠에(住吉蒔絵机), 색에 요라쿠문 화생(野々村仁清 작), 동제 사리탑(불사리탑)·오고령·삼고령·구두룡령·금강저(오고저), 일월 마키에 켄바코(日月蒔絵硯箱), 보주 갓마문 긴요코히(부:보주 갓마문 긴렬) | 종이 바탕 백묘 및 채색 밀교 도상 17점에는 당본 만다라도(금강계오불 등), 당본 만다라도(천비군달리 등), 아미타여래상, 아미타여래상, 마니주상, 자재륜관음, 지장보살 만다라도, 당본 밀보살상, 부동명왕이동자상, 부동명왕삼동자상, 애염명왕상, 비사문천상, 비사문천상, 급속금강동자상, 일체염송행사구당상(이상 백묘), 상굴리독녀상, 북두만다라도(이상 채색) 등이 있다. |
5. 오무로 벚꽃

닌나지의 벚나무 중에는 특히 "오무로자쿠라(御室桜)"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 있으며, 경내 일부에 있는 벚꽃 숲은 대한민국의 국가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다.
에도 시대부터 벚꽃 명소로 유명하여, 1684년(정교 원년) 옹주부지(雍州府志)에는 "지금 오무로 시미즈는 쌍벽을 이룬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1718년(교호 3년) 개원익헌(貝原益軒)의 『경성승람(京城勝覽)』에는 "봄에는 이 경내 깊숙한 곳에 겹벚꽃이 많다. 낙중(洛中) 낙외에서 첫째로 친다"라고 극찬하였다.
약 200그루가 있으며, 겹꽃이다. 나무 높이가 낮은 것은 이 지역의 암반이 단단하여 뿌리를 깊이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코가 낮다"는 뜻에서 "오타후쿠 벚꽃"이라고도 한다. 이 때문에 교토에서는 키가 작고 코가 낮은 여성을 "오무로 벚꽃과 같다"고 평가하기도 한다고 한다. 만개는 매년 4월 20일 이후로 늦어 벚꽃 명소가 많은 교토에서 계절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오무로 벚꽃은 일본 벚꽃 명소 100선에 선정되어 있다.
클론 기술을 이용한 증식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15]
6. 오무로 팔십팔개소 영장
오무로 팔십팔개소 영장(御室八十八ヶ所霊場)은 仁和寺(닌나지) 경내의 조쥬산(成就山)에 사국팔십팔소 영장(四国八十八ヶ所霊場)을 소규모로 재현한 순례지이다. 각 찰소에는 소규모의 당(堂)이 설치되어 있으며, 그것들이 약 3km의 산길을 따라 산재해 있다. 88개의 당에는 실제 사국팔십팔소의 찰소 사찰과 같은 본존과 弘法大師(구카이)를 모시고 있다. 조쥬산 팔십팔개소(成就山八十八ヶ所)라고도 불린다.
1827년(분세이 10년)[8] 닌나지(仁和寺) 제29세 문적(門跡)이었던 붓카이 신원(不壊心院) 오무로(御室)·제인법친왕(済仁法親王)이 사국팔십팔소를 순례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발원하여, 닌나지(仁和寺) 사시(寺侍)·구후토오에슈(九風塔応守)에게 명하여 사국팔십팔소 각 찰소의 모래를 가지고 돌아오게 하고, 닌나지(仁和寺) 경내의 조쥬산(成就山)에 사국팔십팔소를 본떠 같은 수의 88개의 당을 설치하고, 가지고 돌아온 모래를 설치한 당에 묻은 것이 기원으로 여겨진다.
현재는 일반인을 위해 "교토에서 할 수 있는, 하루 순례."라고 칭하며, 사국팔십팔소의 사본인 찰소를 약 2시간의 여정으로 모두 순례할 수 있으며, 이를 결원(結願) 성취하면 사국팔십팔소 영장 순례와 같은 공덕을 얻을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으며, 워킹, 하이킹 코스로도 즐길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닌나지(仁和寺) 주최로 "닌나지 조쥬산 팔십팔개소 워크(구, "오무로 닌나지 조쥬산 88개소 스탬프 하이크")"도 개최되고 있다. 참배도는 자연이 넘쳐나고, 도중에 몇 군데 설치되어 있는 절경 포인트에서 아래로 펼쳐지는 교토 시내가 바라보이며, 맑은 날에는 멀리 후시미 부근을 바라볼 수 있다.
7. 현대의 닌나지
닌나지 경내의 오무로 벚꽃 일대는 국가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다.[26][27] 닌나지는 벚꽃 명소로도 알려져 있으며, 봄의 벚꽃과 가을의 단풍 시기에는 많은 참배객들로 북적인다. 특히 4월에는 "벚꽃 축제"가 열려 경내 입장에도 관람료를 받는다.
7. 1. 숙박 시설
닌나지는 숙방에서 숙박객을 받고 있다. 오무로카이칸[5] 외에, "쇼린안(松林庵)"을 개수하여[6] 고급 숙방으로 운영하고 있다[7].7. 2. 행사
오무로는 벚꽃 명소로도 알려져 있으며, 봄의 벚꽃과 가을의 단풍 시기에는 많은 참배객들로 북적인다. 특히 4월에는 "벚꽃 축제"가 열려 경내 입장에도 관람료를 받는다.
7. 3. 논란
2013년 7월, 노동기준감독서는 닌나지가 경영하는 숙박시설인 ‘오무로카이칸’에서 근무하는 조리장이 월 200시간의 초과근무로 우울증을 앓게 된 것에 대해 산업재해를 인정했다.[32] 조리장은 2012년 8월에 우울증 진단을 받고 휴직했는데, 우울증 발병 전 1년간 근무일수는 356일에 달했다. 이후 휴업 중 및 초과근무에 대한 미지급 임금 4700만엔을 요구하는 소송을 닌나지를 상대로 제기했다. 2016년 4월 12일, 교토지방법원은 닌나지에 약 4200만엔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판결 이유로 "극히 가혹한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고, 상당한 시간외 수당을 노동기준법에 위반하여 지급하지 않은 것은 악질적"이라고 하며, 업무와 발병 사이의 인과관계도 인정했다.[33]8. 갤러리
9. 교통
케이후쿠 전기철도 기타노 선 오무로니치온지 역에서 도보로 약 3분 거리에 있다. JR 사가노 선 하나조노 역에서는 도보로 약 25분, 또는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교토시영버스, JR 버스를 이용하는 경우에는 "오무로니치온지" 정류장에서 하차하면 바로 앞에 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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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Ninna-ji Temple
Benrido Co., L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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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oto : city of Zen : visiting the heritage sites of Japan's ancient capi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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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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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nna-ji Temple - Kyoto Travel Guide {{!}} Planety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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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和寺 御室会館(宿坊)世界遺産に泊まってみません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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京都世界遺産で旧家再生 総本山仁和寺(にんなじ)「松林庵(しょうりんあん)」建物改修・造園工事を担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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住友林業ニュースリリース
2018-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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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和寺 1泊100万円で/世界遺産、境内の旧家屋を改築/高級宿坊、1日1組 海外富裕層狙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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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和寺ホームページ 仁和寺の歴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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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冬の京都旅・世界遺産で仏像めぐり!
2016-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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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京都浪漫~美と伝統を訪ねる「仁和寺~悠久なる国宝の世界
2018-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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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第58回 京の冬の旅 非公開文化財特別公開ガイドブック
2023-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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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京都市】右京区『仁和寺』第49回京の夏の旅・ 仁和寺御所庭園 黒書院修復完成記念!堂本印象画の拝観
https://news.yahoo.c[...]
[15]
보도자료
総本山仁和寺にんなじ 御室桜おむろざくら研究プロジェクト:“名勝 御室桜”組織培養による苗木増殖に成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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住友林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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霊宝館特別公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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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化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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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部科学省告示第109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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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部科学省告示第117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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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部科学省告示第45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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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化審議会の答申(史跡等の指定等)につい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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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化庁
2020-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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京都府指定・登録等文化財
http://www.kyoto-be.[...]
京都府教育庁指導部文化財保護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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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京都市指定・登録文化財-美術工芸品-右京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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京都市ホームペー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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京都市教育委員会告示第8号
http://www2.city.kyo[...]
2016-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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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京都市指定・登録文化財-名勝-右京区
http://www.city.kyot[...]
京都市ホームペー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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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長時間労働でうつ…料理長、世界遺産の寺を提訴
https://web.archive.[...]
2014-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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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宿坊349日連続勤務 京都地裁が仁和寺に賠償命令
https://mainichi.jp/[...]
2016-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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