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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류합기유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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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동류합기유술은 세이와 겐지의 미나모토노 요시미츠를 시조로 하는 일본의 전통 무술이다. 가이 다케다 씨에게 전해졌으며, 아이즈 번의 무사들에게 극비리에 전수되다, 다케다 소카쿠에 의해 널리 알려졌다. 다케다 소카쿠는 전국을 돌며 대동류 기술을 가르쳤고, 그의 아들 다케다 도키무네는 대동류합기무도를 가르쳤다. 대동류는 유술과 합기유술 기술을 모두 포함하며, 던지기, 관절 꺾기, 급소 타격 등을 특징으로 한다. 현재는 여러 분파로 나뉘어 전승되고 있으며, 아이키도, 합기도 등 현대 무술에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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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류합기유술
기본 정보
다케다 가문의 문장
다케다 가문의 문장
이름대동류 합기유술 (大東流 合気柔術)
다른 이름대동류 (大東流)
대동류 유술 (大東流柔術)
로마자 표기Daitō-ryū Aiki-jūjutsu
로마자 표기 (다른 이름)Daitō-ryū Jujutsu
종류합기유술
창시 시기대략 780년–1200년
창시자미나모토노 요시미츠
재건자다케다 소카쿠 (武田 惣角, 1859년 10월 10일 – 1943년 4월 25일)
현재 수장여러 독립 분파 존재
주요 기술합기유술 (Aiki-jūjutsu)
계보
선조 무술불명
파생 무술하단 참조
선조 유파불명
주요 수련자불명
웹사이트
웹사이트불명

2. 역사

대동류합기유술은 아이키도합기도의 기원이 되는 무술이다. 세이와 미나모토 씨족으로부터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무술로 여겨지며, 11세기경 신라 삼랑 미나모토노 요시미츠에 의해 집대성되었다.[2]

미나모토노 요시미츠는 가문에 전해지는 기술을 연구하고, 해부를 통해 인체 구조를 파악하여 관절 꺾기와 급소 가격 기술 등을 발전시켰다고 한다.[4] 대동류라는 명칭은 요시미츠가 어린 시절 살았던 시가현의 '다이토'라는 저택에서 유래했다.[5]

이후 다케다 가문에 전해진 대동류는 다케다 신겐 시대까지 야마나시현에서 전승되었다. 신겐 사후 후쿠시마현 아이즈 지역으로 이주한 다케다 가문은 호시나 마사유키 시대에 오노하 잇토류와 오시키우치 등의 무술을 통합하여 대동류를 발전시켰다.[5]

19세기 후반, 다케다 소카쿠는 가문 외부 사람들에게 대동류를 가르치기 시작하며 대동류 중흥의 조로 불리게 된다.[6][7] 그는 전국을 순회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대동류를 전파했고, 그의 제자들은 영명록과 사례록에 기록되었다. 다케다 소카쿠 사후, 그의 아들 다케다 도키무네는 오노하 잇토류 검술을 포함한 대동류 합기무도를 가르쳤다.[8] 다케다 도키무네는 현대적인 단 급을 만들었으며, 그가 사망한 후에는 곤도 가쓰유키 등의 제자들이 각자의 단체를 이끌고 있다.

그러나 최근 무술사 연구에서는 다케다 소카쿠가 주장한 대동류 전승 역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의견이 많다. 사가와 유키요시는 대동류가 다케다 소카쿠에 의해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아이즈반게마치는 2017년 다케다 소카쿠를 대동류 창시자로 인정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대동류는 다케다 소카쿠가 기존 무술들을 바탕으로 창안한 비교적 새로운 무술이며, 다케다 가문의 전통 무술이라는 설명은 후대에 덧붙여진 이야기라는 설이 유력하다.

2. 1. 기원 및 초기 역사

미나모토 씨족의 사무라이이자 세이와 겐지(일본 제56대 천황인 세이와 천황의 후손인 미나모토 가문의 분파)의 일원이었던 신라 삼랑 미나모토노 요시미츠(新羅 三郎 源 義光, 1045–1127)는 가문에 전해 내려오는 기술들을 더욱 자세히 연구하고 탐구했다.[3] 요시미츠는 전투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시체를 해부하여, 관절 꺾기 기술과 아테미와자(급소 가격) 기술을 배우기 위한 목적으로 해부학을 연구했다는 설도 있다.[4] 대동류는 요시미츠가 어린 시절 살았던 오미국(현 시가현)의 다이토|大東일본어라는 저택에서 이름을 따왔다.[5]

세이와 겐지 가계도


요시미츠는 가이국(현 야마나시현)에 정착하여 그가 배운 것을 가문에 전했다. 요시미츠의 증손자 노부요시는 "다케다"라는 성을 채택했으며, 이는 오늘날까지 이어진 가문의 이름이 되었다. 다케다 가문은 다케다 신겐(武田 信玄, 1521–1573) 시대까지 가이국에 머물렀다. 신겐은 일본을 통일하고 지배하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오다 노부나가에 반대했다. 신겐과 그의 후계자 다케다 가쓰요리(武田 勝頼, 1546–1582)가 사망하면서 다케다 가문은 아이즈 영지(현 후쿠시마현 서쪽 3분의 1에 해당하는 지역)로 이주했다.[5]

이러한 사건들로 인해 다케다 가문은 어느 정도의 권력과 영향력을 잃었지만, 일본의 통치 계급과 계속 얽혀 있었다. 아이즈로의 이주와 그 이후의 사건들이 19세기에 대동류 합기유술로 나타날 무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다케다 신겐의 넷째 딸인 다케다 겐쇼인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손자인 고마쓰마루(1611–1673)를 입양했다. 고마쓰마루는 다케다 가문의 무술 연구에 전념했고, 이후 호시나 마사미쓰에게 입양되었다. 고마쓰마루는 이름을 호시나 마사유키(保科 正之)로 바꾸었고, 1644년에 아이즈의 지사로 임명되었다. 지사로서 그는 아이즈의 모든 후임 통치자들에게 오노하 잇토류의 무술(그가 직접 습득한)과, 쇼군 고문과 가신들을 위해 궁궐 내 상황에 맞춰 개발한 무술인 오시키우치를 배우도록 명령했다. 이 무술들은 다케다 가문 무술에 통합되어 결합되었다.[5]

대동류의 전통에 따르면, 19세기 후반에 다케다 소카쿠가 가문의 구성원이 아닌 사람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러한 무술들이었다. 다케다는 아버지 다케다 소키치로부터 검술과 창술을 배웠고, 또한 유명한 검객 사카키바라 겐키치의 우치데시(제자)로 가시마 신덴 지키신카게류를 배웠다.[6] 소카쿠는 가족의 전통을 보존하고 일본 전역에 대동류를 전파하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생전에 광범위하게 여행했다.[7]

다케다 소카쿠의 셋째 아들 다케다 도키무네(武田 時宗, 1916–1993)는 1943년 소카쿠의 사망 후 이 무술의 종주가 되었다. 도키무네는 오노하 잇토류의 검술과 대동류 합기유술의 전통적인 기술을 포함하는 대동류 합기무도|大東流合気武道일본어라고 불리는 무술을 가르쳤다. 도키무네가 종주로 있을 때 현대적인 단 등급이 처음 만들어졌고, 대동류의 제자들에게 수여되었다. 다케다 도키무네는 1993년에 사망했고, 공식적인 후계자를 남기지 않았지만, 곤도 가쓰유키(近藤 勝之, 1945–)와 가토 시게미츠와 같은 그의 고위 제자들은 현재 각자 대동류 합기유술 단체를 이끌고 있다.[8]

미나모토노 요시이에의 동생인 신라사부로 요시미츠(미나모토노 요시미츠)를 유조로 하여, 가이 다케다 씨에 전해졌고, 가이 다케다 씨가 멸망한 후에는 아이즈 번 주, 호시나 씨(아이즈 마쓰다이라 씨)와 가이 다케다 씨의 후손을 칭하는 아이즈반게의 다케다 씨에게 계승되었으며, 그 후 어식내(御式内)로서 아이즈 번의 상급 무사에게만 극비리에 가르쳐졌다고 한다.

1897년(메이지 30년), 레이잔 신사에서 궁사인 호시나 요리모(사이고 다모)는, 아이즈 다케다 씨의 무술가 다케다 소카쿠에게 어식내(御式内)의 기법을 전수하고, 널리 세상에 알리도록 권했다고 한다. 다케다 소카쿠는 대동류 중흥의 조로도 불리며, 전국을 방랑하며 대동류의 기법을 다수의 사람들에게 가르쳤다. 다케다 소카쿠가 가르친 사람들에 대해서는 영명록, 사례록이라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근년의 무술사 연구에서, 다케다 소카쿠가 주장했던 '대동류의 전승사'를 의문시하거나 부정하는 의견이 많다.

  • 소카쿠가 고향 아이즈에서 가르친 흔적이 없다.
  • 다케다 소카쿠의 고제자인 사가와 유키요시는 그렇게 방대한 체계가 그렇게 오랫동안 전해질 리가 없고, 호시나 요리모의 사진을 보면 합기를 사용할 수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동류는 소카쿠가 만들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 2017년(헤이세이 29년)의 아이즈반게마치의 인물 소개는, '''대동류 창시자'''로서 높이 평가했다.


이상의 점으로부터, 대동류는 다케다 소카쿠가 스스로 배운 검술이나 타 유파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비교적 새로운 무술이며, 다케다 가문의 전통 무술이라는 설명은 후일담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또한, 다케다 소카쿠는 고노파 일도류와 직심영류, 특히 죽도 연습을 중심으로 배웠다고 전해지고 있다. 다만 소카쿠의 제자나 실제로 접한 인간의 증언으로부터, 직심영류가 아니라 경신명지류라는 설도 있다.[40]

2. 2. 아이즈 번 전승

미나모토노 요시미츠의 증손자 노부요시는 '다케다'라는 성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는 다케다 가문의 시작이 되었다.[5] 다케다 신겐 시대까지 다케다 가문은 가이국(지금의 야마나시현)에 머물렀다. 신겐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오다 노부나가의 일본 통일에 반대했다. 신겐과 그의 후계자 다케다 가쓰요리가 사망하면서 다케다 가문은 아이즈 지역(지금의 후쿠시마현 서쪽 3분의 1)으로 이동했다.[5]

이러한 사건으로 다케다 가문은 권력과 영향력을 일부 잃었지만, 일본 통치 계급과의 관계는 계속되었다. 아이즈로의 이주와 이후 사건들은 19세기에 대동류 합기유술로 나타날 무술에 큰 영향을 주었다. 다케다 신겐의 넷째 딸 다케다 겐쇼인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손자 고마쓰마루(1611–1673)를 입양했다. 고마쓰마루는 다케다 가문의 무술 연구에 전념했고, 이후 호시나 마사미쓰에게 입양되었다. 고마쓰마루는 호시나 마사유키로 이름을 바꾸고 1644년 아이즈의 지사가 되었다. 그는 아이즈의 모든 후임 통치자들에게 오노하 잇토류와 ''오시키우치''를 배우도록 명령했다. 이 무술들은 다케다 가문 무술에 통합되었다.[5]

대동류 전통에 따르면, 19세기 후반 다케다 소카쿠가 가문 외부 사람들에게 이러한 무술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다케다는 아버지 다케다 소키치로부터 검술과 창술을 배웠고, 가시마 신덴 지키신카게류를 우치데시(제자)로서 사카키바라 겐키치에게 배웠다.[6] 소카쿠는 가문의 전통을 보존하고 일본 전역에 대동류를 전파하기 위해 생전에 광범위하게 여행했다.[7]

다케다 소카쿠는 대동류 중흥의 조로 불리며, 전국을 방랑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대동류 기법을 가르쳤다. 그가 가르친 사람들은 영명록, 사례록이라는 기록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최근 무술사 연구에서는 다케다 소카쿠가 주장한 '대동류 전승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거나 부정하는 의견이 많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소카쿠가 고향 아이즈에서 가르친 흔적이 없다.
  • 사가와 유키요시는 방대한 체계가 오랫동안 전해지기 어렵고, 호시나 요리모의 사진을 보면 합기를 사용할 수 있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동류는 소카쿠가 만들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소카쿠는 진언 밀교, 수험도 등을 수행했으며, 메이지 시대 발행된 기합술 관련 문헌과 대동류 이론이 일치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 2017년 아이즈반게마치는 '''대동류 창시자'''로서 소카쿠를 높이 평가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대동류는 다케다 소카쿠가 자신이 배운 검술이나 다른 유파를 바탕으로 만든 비교적 새로운 무술이며, 다케다 가문의 전통 무술이라는 설명은 후대에 덧붙여진 이야기라는 설이 유력하다.

다케다 소카쿠는 고노파 일도류와 직심영류를 배웠다고 전해지지만, 제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경신명지류라는 설도 있다.[40]

2. 3. 다케다 소카쿠와 근대 대동류



대동류의 전통에 따르면, 19세기 후반에 다케다 소카쿠가 가문의 구성원이 아닌 사람들에게 이 무술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다케다는 아버지 다케다 소키치로부터 검술과 창술을 배웠고, 유명한 검객 사카키바라 겐키치의 ''우치데시''(제자)로 가시마 신덴 지키신카게류를 배웠다.[6] 소카쿠는 가족의 전통을 보존하고 일본 전역에 대동류를 전파하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생전에 광범위하게 여행했다.[7]

다케다 소카쿠는 고노파 일도류와 직심영류를 배웠다고 알려져 있으나, 제자나 소카쿠와 교류했던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경신명지류를 배웠다는 설도 있다.[40]

다케다 소카쿠는 대동류 중흥의 조로도 불리며, 전국을 방랑하며 대동류의 기법을 다수의 사람들에게 가르쳤다. 다케다 소카쿠가 가르친 사람들에 대해서는 영명록, 사례록이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러나 근년의 무술사 연구에서는 다케다 소카쿠가 주장했던 '대동류의 전승사'를 의문시하거나 부정하는 의견이 많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소카쿠가 고향 아이즈에서 대동류를 가르친 흔적이 없으며, 자손들이 고향에 정보를 제공해도 대동류 현창비나 안내판은 없다.
  • 다케다 소카쿠의 제자 사가와 유키요시는 방대한 체계가 오랫동안 전해질 리 없고, 호시나 요리모의 사진을 보면 합기를 사용할 수 있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동류는 소카쿠가 만들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메이지 44년(1911) 발행된 『활살자재 기합술』(구마시로 히코타로)의 기합(유심 기합·동적), 합기(무심 기합·정적)는 대동류 합기 무도회보 2호(쇼와 34년, 1959년 4월), 다케다 소카쿠 일대기와 이론적으로 일치한다. 소카쿠는 아이즈에서 유일하게 모든 것을 가르칠 수 있는 수험도역사 만노스케에게 배우고 합기유술을 창시했으며, 아이즈 번 어식내(호신술)는 유술이고, 옆 번사인 어공번 사토 킨에몬에게 배웠다고 한다. 또한 호시나 킨토쿠(요리모)로부터 대동류의 이름 외에 역사·와카를 받았고, 수행했다는 레이잔지 수험도장은 에도 시대 이후 존재하지 않으므로 합기유술은 가르쳐지지 않았다고 한다. 소카쿠는 자택 화재로 인한 빚을 갚기 위해 전승 역사를 호시나와 다케다에게 가탁했으며, 이는 전전에서는 드문 일이 아니라고 한다. 고향 아이즈 조사에서 친척 선조 다케다 구니쓰 묘비, 무진 전쟁 이후 명부, 아버지 다케다 소키치(족경), 메이지 5년(1872) 신호적(다케다 성, 농민), 야나기즈 엔조지 고노파 일도류 문도 명부(다케다 소카쿠), 아내 콘의 친정 사토 가 자서전 등이 확인되었다.
  • 2017년 아이즈반게마치의 인물 소개는 '''대동류 창시자'''로서 소카쿠를 높이 평가했으며, 지역과 자손들은 대동류 발상 기념비 건립을 기대하고 있다.


이상의 점을 종합해 볼 때, 대동류는 다케다 소카쿠가 스스로 배운 검술이나 타 유파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비교적 새로운 무술이며, 다케다 가문의 전통 무술이라는 설명은 후일담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다케다 소카쿠의 셋째 아들 다케다 도키무네(1916–1993)는 1943년 소카쿠가 사망한 후 대동류 종주가 되었다. 도키무네는 오노하 잇토류 검술과 대동류 합기유술의 전통적인 기술을 포함하는 무술을 가르쳤다. 도키무네가 종주로 있을 때 현대적인 ''단'' 등급이 처음 만들어져 대동류 제자들에게 수여되었다. 다케다 도키무네는 1993년에 사망했고, 공식적인 후계자를 남기지 않았지만, 곤도 가쓰유키(1945–)와 가토 시게미츠와 같은 그의 고위 제자들은 현재 각자 대동류 합기유술 단체를 이끌고 있다.[8]

다케다 소카쿠의 다이토류 합기유술을 계승하는 회파(단체)나 다이토류 계열의 무술 교실은 전국에 다수 존재한다. 유도고도칸, 합기도의 합기회처럼 널리 인정받는 중심적인 조직은 없다. 반면, 다케다 소카쿠나 다케다 도키무네로부터 교슈 대리, 면허 개전 등의 면허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정통성을 내세우는 회파도 적지 않다.

이러한 혼란의 원인은 다음과 같다.

  • 사가와 유키요시는 다케다 도키무네에게 "다이토류 총전을 사가와에게 양보해 달라. (전쟁에서) 돌아오면 사가와에게 배우겠다"라는 요청을 받고 정통 총전 인가 면장을 받았지만, 생전에 그 면장을 공개하지 않고 금고에 보관했다. 도장에는 2단계 아래 면장을 장식했기 때문에, 면허 개전이 아닌 교슈 대리임에도 후계자를 자칭하는 듯한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 다케다 소카쿠가 다수의 교슈 대리 면허를 발급했고, 각각의 교슈 대리가 독자적으로 회파나 도장을 열어 지도 활동을 펼쳤다.
  • 다케다 소카쿠는 특정한 커리큘럼에 따라 다이토류를 가르치지 않았다. (엄밀한 커리큘럼은 없었지만, 어느 정도 골격은 있었다는 설도 있다.)
  • 제자들은 다케다 소카쿠의 연무를 보거나 기술을 걸어달라고 하여 스스로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고전적인 교수법을 따랐다. 따라서 제자에 따라 습득한 기술, 해석, 특기가 달랐다.
  • 다케다 소카쿠 사망 후, 아바시리시에서 다이토류를 지도했던 아들 다케다 도키무네가 다이토류 합기 유술과 다이토류 합기 무도의 호칭을 구분하여 사용했다.


다케다 소카쿠가 정해진 커리큘럼 없이 가르친 점, 상대나 상황에 따라 교수법과 기술 이름이 달랐던 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설이 있다.

  • 대동류 비고류설: 다케다 소카쿠가 대동류의 실질적인 창시자이며, 소카쿠 생존 당시 대동류는 발전 과정에 있었다. 따라서 명확한 교수 단계 없이 소카쿠의 연령에 따라 교수법과 기술 내용이 변천했다. 즉, 소카쿠가 가르치던 기술은 선대로부터 계승된 것이 아니라, 소카쿠가 창의적으로 고안하여 가르치던 기술일 가능성이 높다.
  • 대동류 고류설: 1대1 개별 지도(개인 교수가 전제는 아니며, 여러 명 대상 그룹 레슨도 많았다)였기 때문에 제자의 체격, 체력, 성격에 따라 가르치는 기술이나 해석에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같은 기술이라도 내제자와 외제자에 따라 가르치는 법(특히 기술의 핵심)이 다른 것은 다른 고류 유파나 중국 무술 문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다케다 소카쿠도 제자의 입장이나 신뢰도에 따라 기술을 가르치는 법을 바꾸었다. (다케다 도키무네 문하의 콘도 가쓰유키에 따르면, 도키무네도 같은 기술이라도 내제자와 외제자로 교수법을 달리했다고 한다.)


현재는 대동류 비고류설에 찬동하는 의견이 많으며, 대동류는 다케다 소카쿠가 배운 몇몇 전통 무술 유파의 기술을 바탕으로 창조한 유파이며 고류가 아니라는 설이 유력하다. 다른 고류의 전통 유파에서도 대동류는 고류 중에서도 특이한 무술 유파, 혹은 비고류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2. 4. 현대의 대동류

다케다 소카쿠는 아버지 다케다 소키치에게서 검술과 창술을 배웠고, 우치데시(제자)로서 가시마 신덴 지키신카게류를 유명한 검객 사카키바라 겐키치에게서 배웠다.[6] 소카쿠는 가문의 전통을 보존하고 일본 전역에 대동류를 전파하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생전에 광범위하게 여행했다.[7]

다케다 소카쿠의 셋째 아들 다케다 도키무네(1916–1993)는 1943년 소카쿠가 사망한 후 이 무술의 종주가 되었다. 도키무네는 오노하 잇토류 검술과 대동류 합기유술의 전통적인 기술을 포함하는 大東流合気武道|대동류 합기무도일본어를 가르쳤다. 도키무네가 종주로 있을 때 현대적인 단 등급이 처음 만들어져 대동류 제자들에게 수여되었다. 1993년에 다케다 도키무네는 사망했고 공식적인 후계자를 남기지 않았지만, 곤도 가쓰유키(1945–)와 가토 시게미츠와 같은 그의 고위 제자들은 현재 각자 대동류 합기유술 단체를 이끌고 있다.[8]

다케다 소가쿠가 가르친 유파명은 대동류합기유술이며, 대동류합기무도의 명칭은 다케다 소가쿠의 삼남인 다케다 도키무네가 사용하기 시작한 호칭이다. 대동류합기유술과 대동류합기무도의 관계는 유술에 대한 유도, 무술에 대한 무도처럼 술(術)에서 인격 교육을 목표로 하는 '도(道)'로서, 보다 높은 단계임을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동류합기무도 외에도 대동류합기무술, 대동류합기도, 대동류 3대 기법 일본 전 합기유술 등의 명칭이 존재하며, 각 전승자가 유파명에 소망 혹은 독자성을 담은 호칭으로 보인다. 다케다 소가쿠가 전한 대동류합기유술에는 단위 제도가 존재하지 않고, 각 단계의 전수권(두루마리)이 전수되었다. 이에 반해, 전후 각 파 대동류에서는 단위 제도를 채택하는 곳이 늘어났으며, 병행하여 전수권(두루마리)을 발행하는 회파나 도장도 있다.

한편, 대동류합기유술에는 원래 종가 제도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다케다 소가쿠도 생전에는 본부장 혹은 총무장이라고만 칭했다. 전후에 다케다 도키무네와 다케다 무네키요의 추천으로 사카와 유키요시가 종가를 칭한 것이 종가 호칭의 시작이며, 종가를 다케다 도키무네에게 양위한 이후에는 대동류합기무술 종범을 칭했다. 야마모토 가쿠기는 대동류합기유술 총주를 독자적으로 칭하고 있다.

또한, 대동류합기유술은 수기체술만으로, 검술이나 봉술 등을 통합한 것이 대동류합기무도라는 해설도 많지만, 이는 "유술"과 "무도"라는 어감의 차이거나, 사카와 유키요시가 칭한 대동류합기무술과의 혼동으로 인한 오해로 보인다.

3. 기술 체계

아이키도합기도에서 언급되는 ''아이키 주주쓰''는 주주쓰(딱딱함), 아이키노 주쓰(부드러움), 그리고 아이키주주쓰(딱딱함/부드러움의 결합)의 세 가지 스타일로 나눌 수 있다. 현대의 합기도는 아이키주주쓰에서 유래되었으며, "공격의 조기 무력화"를 강조한다.[9] 다른 형태의 주주쓰와 마찬가지로, 효과적으로 상대를 제압하거나 부상을 입히기 위해 던지기 기술과 관절 조작을 강조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방어 기술의 타이밍으로, 공격의 효과를 융합하거나 무력화하고, 공격자의 움직임의 힘을 역이용하는 것이다. 다이토류는 아테미 또는 급소를 타격하여 관절 꺾기나 던지기 전술을 펼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이 기술의 일부 타격 방법은 뻗은 팔을 휘둘러 힘을 만들고 속이는 각도로 주먹을 쳐서 ''갸쿠 우데도리''(역 팔꿈치 꺾기)와 같은 기술을 구성하는 아테미에서 관찰할 수 있다. 다케다 토키무네는 이 기술의 독특한 특징 중 하나가 쓰러진 공격자의 관절을 무릎으로 제어하여 손을 무기 사용이나 다른 공격자의 위협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선호한다는 점이라고 여겼다.[10]

대동류 기술은 유술과 ''합기유술'' 기술을 모두 포함하며, 공식적으로 수천 개의 기술로 구성되어 있고 ''오모테''와 ''우라''(문자 그대로 '앞'과 '뒤' 버전)로 나뉜다. 그러나 이 중 많은 기술이 핵심 기술의 변형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소카쿠와 토키무네는 장검과 단검을 활용하는 기술과 같이 커리큘럼의 특정 부분을 나타내는 두루마리를 수여했다.

아사히 신문 ''도장''에서 모리헤이 우에시바와 다케다 소카쿠가 가르친 기술은 ''소덴''이라는 일련의 11개의 훈련 매뉴얼로 정리되어 있다.[32]

다케다 소카쿠가 발행한 면장(목록)에 따르면, 메이지 32년부터 쇼와 초까지는 비전 목록 118개조와 비전 오의지사 36개조의 2권만을 수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그 외의 전수권의 존재는 불명확하다. 상기 2권 이외의 전수권이 메이지 32년 당시부터 존재했는지, 다케다 소카쿠가 시대를 거치면서 새롭게 작성해 나갔는지는 고증을 기다리고 있다. 또한 해석 총전지사 477개조와 같이 전수권 자체의 존재 확인이 불분명한 것도 있다.

다케다 소카쿠로부터 교수 대리 면허를 받은 각 사범은 독자적으로 새로운 기술 체계나 전수권(두루마리)을 제작하기도 한다.

3. 1. 주요 기술 목록

대동류 기술은 유술과 ''합기유술'' 기술을 모두 포함하며, 순차적으로 훈련되는 특정 목록으로 나뉜다. 학생은 이전 기술을 마스터해야 다음 목록으로 진행할 수 있다. 각 목록을 완료하면 해당 수준의 기술을 나열하는 증명서 또는 두루마리를 받는다. 이는 띠, 등급, 학위 시대 이전의 고전 일본 무술 학교에서 흔히 사용되던 시스템이다.[28]

토키무네 분파 시스템의 목록과 포함된 기술 수는 다음과 같다:[28]

목록 이름기술 수
1秘伝目録|Hiden Mokuroku|비전 목록일본어118
2合気之術|Aiki-no-jutsu|합기의 과학일본어53
3秘伝奥義|Hiden Ōgi|내면의 신비일본어[29]36
4護身用の手|Goshin'yō-no-te|호신의 기술일본어[30]84
5解釈相伝|Kaishaku Sōden|전수의 해설일본어477
6완전 전수의 면허(Menkyo Kaiden)88



위 목록 외에 타쿠마카이(Takumakai)는 "대동류 합기 이도류 비전"을 추가한다.[31]

무다 소카쿠가 발행한 면장(목록)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기술 체계가 있다. 단, 아래 6종의 전수권 전수권이 모두 실존하는지는 불명확하다.

# 대동류유술 비전 목록 118개조 앞뒷면

# 합기지술 53개조 앞뒷면

# 비전 오의지사 36개조 앞뒷면

# 비전 어신용지수 84개조 상중하

# 해석 총전지사 477개조

# 개전지사 88개조

이 외에 합기 이도류를 비롯한 합기 무기술(검술·창술·봉술·수리검술 등)이 있다. 단, 유파에 따라서는 처음부터 전해지지 않았거나, 전해져도 실전된 것, 혹은 일부 기술에 특화된 형태를 전수하는 경우도 보인다.

3. 2. 합기(Aiki) 개념

아이키도합기도에서 언급되는 ''아이키''는 주짓수(딱딱함), 아이키노 주쓰(부드러움), 아이키주짓수(딱딱함/부드러움의 결합)의 세 가지 스타일 중 아이키주짓수에서 유래되었다. 현대 합기도는 아이키주짓수에서 유래되었으며, "공격의 조기 무력화"를 강조한다.[9] 다른 형태의 주짓수와 마찬가지로, 효과적으로 상대를 제압하거나 부상을 입히기 위해 던지기 기술과 관절 조작을 강조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방어 기술의 타이밍으로, 공격의 효과를 융합하거나 무력화하고, 공격자의 움직임의 힘을 역이용하는 것이다.

다케다 소카쿠는 ''아이키''를 "한눈에 상대방을 정신적으로 압도하고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으로 정의했다.[27]

다케다 소카쿠의 아들 다케다 토키무네는 ''아이키''에 대해 "밀릴 때 당기고, 당겨질 때 미는 것이다. 그것은 느림과 빠름의 정신이며, 상대의 기와 조화를 이루는 움직임이다. 그것의 반대인 기합은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것이지만, 아이키는 결코 저항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아이키''의 ''기''는 ''고노센''으로, 공격에 대응한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10]

다케다 토키무네는 ''아이키''가 ''선선''의 승리와 다르며, 상대가 공격해오는 ''고노센'' 상황에서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카츠진켄''(생명을 살리는 검)과 ''세츠닌켄''(죽음의 검)의 개념을 통해 ''아이키''를 설명했는데, 상대의 공격을 막고 두 번째 공격에서 그의 칼을 부러뜨리고 생명을 구하는 것이 ''카츠진켄''이며, 상대가 찌를 때 칼이 상대의 배를 관통하면 ''세츠닌켄''이라고 했다. 이 두 가지 개념이 검의 본질이라고 하였다.[10]

4. 분파

대동류합기유술은 다케다 소카쿠로부터 여러 제자들에게 전승되었고, 그의 제자 6명을 통해 다양한 분파가 생겨났다. 주요 분파는 다음과 같다.


  • 다케다 도키무네의 도키무네 계열
  • 히사 타쿠마의 히사 계열
  • 호리카와 코도의 호리카와 계열, 행도회 계열
  • 마쓰다 토시미의 송무관 계열
  • 사가와 유키요시의 사가와 계열
  • 코바야시 소메키치


이 외에도 무다 소가쿠로부터 일본 각지로 퍼져나간 여러 계열이 존재한다.
구 대동관 계열무다 소가쿠의 삼남 무다 토키무네가 홋카이도 아바시리시에 개설한 대동류합기무도·대동관 도장을 중심으로 이어진 계통이다.

  • 구 대동관
  • 진무관
  • 구 성심회 계열, 나카가와 기념 도장(아바시리시), 지성관(기타미시)
  • 기도회
  • 가와고에 무다 가문 계열
  • 아이즈 무다 가문 계열
  • 독립 계열
  • 춘풍회

칸사이 합기도 클럽 계열면허개전 사범 구 큐마가 간사이 지역에 개설한 칸사이 합기도 클럽을 중심으로 이어진 계통이다.

  • 탁마회
  • 대무관
  • 청지향
  • 백봉류합기무도

송무관 계열교수대리 마쓰다 토시미가 홋카이도 아사히카와시에 개설한 송무관 도장을 중심으로 이어진 계통이다.

  • 구 송무관
  • 원신관
  • 유신관 (오비히로시)
  • 연심관
  • 홍도관
  • 융도회
  • 팔광류유술
  • 신류유술
  • 도가 합기술
  • 국무관 (한국 전 대동류 계열 - 폐관)

유진관 계열교수대리 야마모토 카쿠기가 홋카이도 도마코마이시에 개설한 유진관 도장을 중심으로 이어진 계통이다. 후에 선포회 유진관으로 개칭되었으나 본래의 정식 명칭은 유진관이다.

  • 구 유진관
  • 유진관
  • [https://daito-seisinkan.com/dojo_syokai/ 신도유진회]
  • 현무관세계닌법무예연맹·국제유술연맹 총본부
  • [https://yamamotoden.wixsite.com/fujijushinkai 종주 나가오 젠유 직문 후지 신도 유진회/시즈오카현 후지시]
  • 일본병법대화도본부
  • 합기연체회

4. 1. 도키무네 계통

다케다 도키무네는 다케다 소카쿠의 아들로, 아버지 사후 대동류합기유술의 후계자로 지정되었다. 도키무네는 사망 시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았고, 그의 가르침을 잇는 두 개의 주요 그룹이 있다.

첫 번째 그룹은 콘도 카츠유키가 이끌고 있다. 그는 호소노 츠네지로에게서 훈련을 시작해 잠시 요시다 코타로에게서 훈련을 받다가 도키무네를 소개받았다. 콘도는 도키무네에게서 높은 수준의 가르침 면허를 받았으며, 이를 근거로 그의 추종자들은 그의 유파를 대동류 "주류"로 여긴다. 콘도는 도쿄와 해외, 특히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세미나를 개최하여 무술의 인지도를 높였다.[12] 최근 몇 년간 전 세계에 많은 분파가 생겨났다. 주요 분파는 다음과 같다.

국가도장/연구 그룹
이탈리아알렉스 무라치니, 루카 카노비
러시아예브게니 보드렌코, 스타니슬라프 코핀
네덜란드로버트 브리드벨트, 닐스 반 윌리겐, 안톤 브란트레흐트, 일세 반 데르 호벤
슬로바키아스테판 쿠릴라
미국데릭 스틸(필라델피아), 마크 수미(로스앤젤레스), 호세 가리도(뉴욕시 메트로 지역)
영국오란 레먼드 (서퍽 연구 그룹)
호주레이첼 크롬튼 (시드니 연구 그룹)
스위스파스칼 바단 (로잔), 셀라하틴 악 (취리히)



도키무네 계파의 두 번째 그룹은 홋카이도에 있는 도키무네의 다이토칸 본부에서 오랫동안 제자이자 지도자였던 카토 시게미츠와 아리사와 군파치가 이끌고 있다. 이 조직은 일본 대동류 합기무도 대동회|니혼 다이토류 아이키부도 다이토카이일본어라고 불린다. 이들은 홋카이도에 비교적 작은 조직을 유지하고 있으며, 유럽(특히 이탈리아), 미국, 브라질의 수련자들과 강한 연관성을 맺고 있다.[14]

4. 2. 히사 계통

대동류의 두 번째 주요 분파는 히사 타쿠마의 제자들이 대표한다. 그의 제자들은 단체를 결성하여 타쿠마회|다쿠마회일본어를 창립했다. 그들은 아사히 신문 ''도장''에서 촬영된 필름과 스틸 사진 형태로 풍부한 자료를 보유하고 있으며, 처음에는 모리헤이 우에시바에게, 나중에는 다케다 소카쿠에게 직접 배운 대동류 기술을 기록하고 있다. 그들의 주요 훈련 매뉴얼 중 하나인 ''소덴''에는 두 스승에게 배운 기술이 담겨 있다.[15]

타쿠마회는 두 번째로 큰 ''합기유술'' 단체이다. 현재 회장은 모리 하카루이며, 명예 회장은 치바 츠구타카이고, 매니저는 코바야시 키요히로이다.[15] 조직의 이름을 "타쿠마회"로 짓는 아이디어를 제안한 치바 츠구타카는 홋카이도에 있는 다이토칸에서 다케다 도키무네 밑에서 훈련을 받기도 했다.[17]

1980년대, 노년의 히사가 오카바야시 쇼겐(1949-2018년 출생)을 중심으로 타쿠마회는 다케다 도키무네가 처음 확립한 대로 무술의 기본을 가르치기 위한 형태를 구현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러한 움직임은 히사의 원래 교육 방식을 보존하려는 일부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었고, 히사의 오랜 제자인 오가미 켄키치(1936년 출생)가 창립한 다이부칸이라는 새로운 조직이 결성되었다.[18] 이후 오카바야시 본인은 커리큘럼에 더 큰 변화를 주기 위해 타쿠마회에서 분리되어 하쿠호류를 창설했다.[19]

4. 3. 호리카와 계통

호리카와 코도(堀川 幸道)의 가르침에서 유래한 호리카와 분파는 그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여러 단체가 설립되었다.

幸道会|고도회|Kōdōkai일본어는 호리카와 코도의 제자들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그의 제자들의 움직임에서 ''합기'' 움직임에 대한 독특한 해석을 볼 수 있다.[20] 고도회는 홋카이도에 있으며, 이노우에 유스케(井上 裕介, 1932년생)가 이끌고 있다. 이노우에의 아버지와 그의 주요 스승인 호리카와는 다케다 소카쿠의 직계 제자였다. 이노우에는 호리카와의 유언에 따라 면허를 받았다.

고도회에서 분파하여 자신만의 전통을 세운 두 명의 주요 스승이 있다. 첫 번째는 大東流 合気柔術 六方会|대동류 합기유술 롯포카이|Daitō-ryū Aiki-jūjutsu Roppōkai일본어를 창시한 오카모토 세이고(岡本 正剛, 1925-2015)였다. 그의 해석은 ''합기''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상대를 던지는 기술에 중점을 둔다. 이 단체는 특히 미국과 유럽에서 많은 추종자를 가지고 있다.[21][22] 또 다른 단체는 牧羊館|보쿠요칸일본어을 창시한 요네자와 카츠미(米沢 克巳, 1937–1998)의 단체였다. 1970년대 초, 요네자와가 고도회의 선임 지도자였을 때, 그는 대동류 합기유술을 미국과 캐나다에 처음으로 소개한 사람이었다.[23] 보쿠요칸은 현재 그의 아들 요네자와 히로미츠(米沢 宏充)가 운영하고 있으며, 홋카이도에 본부를 두고 있고, 요네자와 도장과 미국 내 여러 지부, 그리고 독일에도 도장이 있다.[24]

'''행도회 계열'''

홋카이도 기타미시에 교수대리 호리카와 코도가 개설한 대동류 합기유술 행도회에 이어진 계통이다.

  • 행도회
  • 육방회
  • 연찬숙
  • 강도회
  • 기타미 합기무도회
  • 기타미 공업대학 합기도부
  • 광도
  • 아이치·다키구치 도장
  • 오가와 도장
  • 목양관
  • 무전숙
  • 심기청영관 (거합심검류유술)
  • 행심회

4. 4. 사가와 계통

다케다 소카쿠의 계승자로 여겨졌던 사가와 유키요시(1902–1998)의 제자들이 마지막 주요 그룹을 구성한다. 사가와는 도장 하나만을 운영하며 비교적 적은 수의 제자들을 가르쳤다. 1914년 아버지인 사가와 네노키치(1867–1950)로부터 먼저 무술을 배운 후 다케다 소카쿠에게서 다이토류를 배웠다. 사가와 네노키치는 소카쿠의 제자이자 ''교주대리''(지도 자격)를 가지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소카쿠의 가장 뛰어난 제자 중 한 명으로 여겨지는[25] 사가와 유키요시는 1932년에 ''교주대리''를 받았지만, 다케다 소카쿠에게서 수련하던 당시에는 최고 면허가 ''멘쿄 카이덴''(전수 면허)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 유술의 비밀에 대한 ''멘쿄 카이덴''을 받지 못했다. 사가와는 종종 다케다의 조교 역할을 했고, 그와 함께 일본 각지를 다니며 다이토류를 가르쳤다. 그는 아이키를 적용하는 기술을 더욱 발전시켰으며, 말년까지 매우 강력했다고 전해진다. ''투명한 힘''(Transparent Power)의 성공으로 인해 1998년 사망하기 전 아이키 뉴스 잡지에 일련의 기사가 실렸다.[25]

쓰쿠바 대학의 전 수학 교수이자 사가와의 수제자인 기무라 타츠오(1947년 출생)는 그곳에서 소규모 ''아이키주주츠'' 연구 그룹을 운영했다. 2013년 6월 교수직에서 은퇴하고 다이토류 공개 지도를 그만두었다. 현재는 소수의 제자들을 개인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사가와에게서 수련한 내용에 관해 ''투명한 힘''과 ''아이키의 발견'' 두 권의 책을 저술했다.[26]

도쿄도 고다이라시에 대동류합기유술 총본부·사가와 도장을 개설한 사가와 유키요시에 이어진 계통은 다음과 같다.

계통도장
사가와 전 대동류합기유술 계열대동류합기유술 사가와 도장(본부 도장)
대동류합기유술 사가미하라 지부(다카하시 겐 사범)


5. 현대 무술에 미친 영향

아이키도합기도는 대동류합기유술과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아이키도우에시바 모리헤이에 의해 창시되어 국제적으로 널리 수련되고 있다.[34] 합기도에 관심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 기원을 대동류합기유술에서 찾으면서, 수십 년 전만 해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대동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합기도의 영향력은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우에시바 모리헤이가 대동류에 더 가까운 전투 형태를 가르치던 초기에도 상당했다. 토미키 켄지는 쇼도칸 합기도를 창시했는데,[35][36] 그는 우에시바 모리헤이에게 수련을 받기 시작했을 때 이미 유도 5단이었다. 오늘날의 '고신 주츠 카타'(자기 방어 형태)는 1956년에 만들어졌으며, 토미키 켄지의 쇼도칸 합기도 조직과 마찬가지로 이 가르침을 보존하고 있다.[37][38]

다케다 소카쿠는 대동류 기술을 신분이나 출신에 차별 없이 다양한 제자들에게 전수했으며, 이로 인해 여러 유파가 파생되었다. 대표적인 유파로는 합기도, 팔광류유술, 무한신도류 거합도, 거합심검류 유술, 대한민국합기도 등이 있으며, 그 외에도 유술이나 가라테 등에서도 기술에 영향을 받은 유파가 많아 현대 무술에 미친 영향은 매우 크다.

어떤 대동류 합기유술 관계자는 유도가 사이고 시로가 다케다 소카쿠의 스승으로 여겨지는 사이고 타노모의 양자였던 점에 착안하여, 사이고 시로의 야마아라시(山嵐)가 대동류합기유술의 기술 중 하나인 시호나게를 개량한 것이라는 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신 무술사 연구에서는 이 설이 부정되고 있다.[41]

6. 한국과의 관계

대한민국의 무술 합기도최용술이 창시했으며, 최용술은 다케다 소카쿠에게 훈련을 받았다고 주장한다.[39] 최용술은 1962년과 1982년에 각각 다른 두 가지 이야기를 했다. 합기도의 많은 기술은 다이토류의 기술과 유사하다.[27]

7. 주요 수련자

대동류합기유술은 많은 주요 수련자를 배출했다. 주요 수련자 목록은 다음과 같다.


  • 도네다 마사오
  • 히사 타쿠마
  • 다케다 도키무네
  • 우에시바 모리헤이
  • 요시다 고타로
  • 호리카와 코도
  • 마츠다 토시미
  • 사가와 유키요시
  • 최용술


다케다 소카쿠의 대동류합기유술을 계승하는 단체나 계열 무술 교실은 전국에 다수 존재한다.[8] 유도고도칸, 합기도의 합기회와 같이 널리 인정받는 중심 조직은 없다.[8] 다케다 소카쿠나 다케다 도키무네로부터 교슈 대리, 면허 개전 등의 면허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정통성을 내세우는 단체도 적지 않다.[8] 다케다 도키무네로부터 면허 개전과 종가 대리를 받았다고 칭하는 곤도 가쓰유키는 "대동류", "대동류 합기 무도", "대동류 합기 유술"의 3단어를 상표 등록하여, "대동류" 독점에 대한 부정적 의견과 상업적 이용 방지에 도움이 된다는 긍정적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8]

이러한 혼란의 원인은 다음과 같다.[8]

# 다케다 소카쿠는 다케다 도키무네의 요청에 따라 정통 총전 인가 면장을 사가와 유키요시에게 수여했지만, 사가와 유키요시는 생전에 그 면장을 공개하지 않고 금고에 보관하여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 다케다 소카쿠가 다수의 교슈 대리 면허를 발급했고, 각각의 교슈 대리가 독자적으로 단체나 도장을 열어 지도 활동을 펼쳤다.

# 다케다 소카쿠는 특정한 커리큘럼에 따라 대동류를 가르치지 않았다. (엄밀한 커리큘럼은 없었지만, 어느 정도 골격은 있었다는 설도 있다.)

# 제자는 다케다 소카쿠의 연무를 보거나, 다케다 소카쿠에게 기술을 걸어달라고 하여 기술을 훔치는 고전적인 교수법이었기 때문에, 제자에 따라 습득한 기술, 해석, 특기 기술에 차이가 생겼다.

# 다케다 소카쿠 사망 후, 아들 다케다 도키무네가 대동류 합기 유술과 대동류 합기 무도의 호칭을 구분하여 사용했다.

다케다 소카쿠가 특정한 커리큘럼에 따라 가르치지 않은 점, 상대나 상황에 따라 교수법과 기술 이름이 달랐던 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설이 있다.[8]

# 대동류 비고류설: 대동류는 다케다 소카쿠가 실질적인 창시자이며, 발전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계통적인 교수 단계가 없었고, 다케다 소카쿠의 연령과 함께 교수법과 기술 내용도 변천했다.

# 대동류 고류설: 1명 1명의 제자에 대한 개별 지도였기 때문에, 제자의 체격, 체력, 성격에 따라 가르치는 기술이나 해석에 차이가 있었다. 또한, 같은 기술이라도 내제자와 외제자에 따라 가르치는 법이 달랐다.

이후 대동류 비고류설에 찬동하는 의견이 많아졌고, 대동류는 다케다 소카쿠가 배운 몇몇 전통 무술의 기술을 바탕으로 창조한 유파이며, 고류가 아니라는 설이 유력해지고 있다.[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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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웹사이트 Daito-Ryu Aiki Ju Jutsu https://daitouryu-ju[...] 2018-11-07
[3] 서적 Historical and Geographical Dictionary of Japan Librairie Sansaisha
[4] 웹사이트 Daito-Ryu Aiki Budo http://www.aikidojou[...]
[5] 웹사이트 History of Daito-ryu: prior to the 19th century http://www.daito-ryu[...] Daito-ryu Aikijujutsu Headquarters 2007-07-18
[6] 웹사이트 History of Daito-ryu: Takeda Sokaku http://www.daito-ryu[...] Daito-ryu Aikijujutsu Headquarters 2007-07-18
[7] 간행물 Daito-Ryu Aiki Budo http://www.aikidojou[...] 1990-Summer
[8] 백과사전 Takeda, Tokimune http://www.aikidojou[...] 2007-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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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서적 Daito-ryu Aikijujutsu: Hiden Mokuroku Ikkajo Aiki News
[12] 웹사이트 Kondo Katsuyuki http://www.daito-ryu[...] Daito-ryu Aikijujutsu Headquarters 2007-07-20
[13] 웹사이트 Kondo Katsuyuki http://www.daito-ryu[...] Daito-ryu Aikijujutsu Headquarters, Locations 2016-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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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웹사이트 Information on the Daibukan http://www.h2.dion.n[...] Daibukan Dojo 2007-07-20
[19] 웹사이트 Interview with Okabayashi Sensei, founder and headmaster of Daito Ryu Hakuho Kai, and Rod Ulher as interpreter. http://www.koryukan.[...] www.koryukan.com 2007-07-20
[20] 간행물 On separate language editions, Seigo Okamoto and Hakko-ryu Jujutsu http://www.aikidojou[...] 2007-07-20
[21] 간행물 Interview with Seigo Okamoto Shihan (02) http://www.aikidojou[...] 2007-07-20
[22] 웹사이트 History http://www.daitoryu-[...] www.daitoryu-roppokai.org 2007-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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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백과사전 Goshin'yo No Te http://www.aikidojou[...] 2007-08-01
[31] 웹사이트 Techniques http://www.asahi-net[...] www.asahi-net.or.jp 2007-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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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웹사이트 Shodokan and the Japan Aikido Association http://homepage2.nif[...] Shodokan HQ 2007-07-20
[39] encyclopedia Choi, Yong Sul http://www.aikidojou[...] 2007-07-21
[40] 문서 高橋賢
[41] 간행물 真説?これが必殺技<山嵐>の実体だ!? ベースボール・マガジン社 1987-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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