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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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리안은 프랑스 공화국을 상징하는 의인화된 여성상이다. 고대부터 추상적인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여성적 알레고리의 연장선으로, 프랑스 혁명 시기 '자유'와 '이성'의 상징으로 등장하여 공화국의 다양한 측면을 나타냈다. 마리안은 프랑스 혁명, 제1공화국, 제2공화국, 제3공화국 시기를 거치며 여러 형태로 묘사되었으며, 때로는 온건하고 시민적인 모습으로, 때로는 과격하고 전투적인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1848년 이후 공식적인 공화국 상징으로 자리 잡았으며, 현재 프랑스 정부의 공식 로고에도 사용되고 있다. 마리안은 프랑스 정체성과 여성성에 대한 특정 관념을 상징하며, 이슬람 복장 논쟁과 2024년 파리 올림픽 엠블럼에도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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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안 | |
|---|---|
| 프랑스 공화국 상징 | |
![]() | |
| 개요 | |
| 유형 | 프랑스 공화국의 상징 |
| 상징 | 자유, 이성, 국가, 프랑스, 공화국 |
| 관련 | 프랑스 혁명 자유, 평등, 박애 라 마르세예즈 프랑스 국기 |
| 세부 정보 | |
| 형상 | 여성 |
| 상징물 | 프리지아 모자 월계관 밀 이삭 올리브 가지 참나무 |
| 모토 | 자유, 평등, 박애 (Liberté, Égalité, Fraternité) |
2. 역사
고대부터 신, 여신, 우의적 의인화를 통해 아이디어와 추상적인 실체를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1789년 프랑스 혁명 동안 '자유'와 '이성'의 우의적 의인화가 나타났으며, 이들은 하나로 합쳐져 마리안이 되었다. 마리안은 자유, 이성, 국가, 조국, 공화국의 시민적 미덕을 상징했다.[2] 1792년 9월, 국민 공회는 국가 인장을 프리기아 모자를 쓴 창을 든 여성으로 결정했다.
역사가 모리스 아귈롱은 프랑스 전통과 정신이 여성이 공화국을 대표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여성적 알레고리는 왕정 구 체제와의 단절, 현대 공화주의 이념 홍보 방식이었다. 프랑스 왕국은 베르사유 궁전 천장화처럼 남성으로 구현되기도 했다. 프랑스, 공화국, 자유(Liberté), 이성(Raison)은 프랑스어로 여성 명사이다.[3]
마리안 엠블럼 사용은 처음에는 비공식적이고 다양했다.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1830년 7월 혁명을 기념한다.
프랑스 제2제국 시기 마리안은 억압받고 저항의 상징으로 은밀히 사용되었다.[4] 프랑스 제3공화국(1870~1940) 때 마리안 사용이 공식화되었다. 마리안은 프랑스 공화주의 상징이자 다양한 이념을 가진 사람들에게 거부감 없는 중립적 상징이었다. 1880년 파리 오텔 드 빌(시청)에 프리기아 모자를 쓴 마리안 조각상이 전시되었고, 다른 도시들도 따랐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마리안은 나치 독일 침략에 맞선 자유, 비시 정권에 맞선 공화국을 상징했다. 비시 정권은 마리안 기념비 427개 중 120개를 녹였고, 1943년 민병대는 시청에서 조각상을 제거했다.[3]
샤를 드골 대통령 시기 마리안은 우표, 국민투표에 자주 사용되었다. 1968년 5월 시위(68혁명) 때 파격적이고 혁명적인 모습으로 다시 등장했다.[3]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프랑스 혁명 200주년 기념행사에서 미국 오페라 가수 제시 노먼을 내세워 공화국을 강조했다.
2. 1. 프랑스 혁명과 제1공화국
고대 시대부터 추상적인 실체를 표현하기 위해 의인화가 사용되었다. 1789년 프랑스 혁명 당시 '자유'와 '이성'을 상징하는 여성 의인화가 등장했는데, 이들은 보통 프랑스 코케이드와 프리기아 모자를 착용하고 있었다.[2] 1792년 9월, 국민 공회는 프리기아 모자를 쓴 창을 든 여성상을 국가의 인장으로 결정했다.[2]역사가 모리스 아귈롱은 프랑스인들의 전통과 정신이 여성으로 공화국을 대표하게 만들었다고 보았다. 여성적 알레고리는 왕이 이끌던 구 체제와의 단절, 현대 공화주의 이념을 홍보하는 방법이었다.[3] 프랑스와 공화국, 자유(Liberté), 이성(Raison)을 나타내는 프랑스어 단어가 여성 명사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3]
외젠 들라크루아의 그림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1830)은 7월 혁명을 기념하며, 자유와 공화국의 여성적 알레고리를 담고 있다.
마리안의 이미지는 1792년까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1775년 장-미셸 모로가 프리기아 모자를 쓴 창을 든 젊은 여성으로 묘사하면서 국가적 상징이 되었다. 1789년 7월 바스티유 감옥 습격 기념 메달에 처음 등장한 마리안은, 1792년 9월 프랑스 제1공화국이 국가 대표 이미지로 선택하면서 인기가 높아졌다.
제1공화국의 인장 속 마리안은 고전적인 드레스를 입고 혁명의 창과 프리기아 모자를 든 젊고 결연한 모습으로, 권위의 상징인 다발 묶음에 기대고 있다. 이 묘사는 국민 공회의 온건파 지롱드당의 이념을 반영하여 "결코 공격적이지 않"다.
1793년, 공포 정치가 시작되면서 마리안은 맨가슴을 드러내고 전투를 이끄는 더 폭력적인 이미지로 바뀌었다. 이는 외국과 반혁명 세력에 대한 군사적 행동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급진적이지 않다고 여겨져, 헤라클레스 상징으로 대체되었다.
프랑스 총재정부 시기(1795-1799)에는 다시 온건하고 시민적인 이미지로 돌아왔다. 1798년 공식 비네트 속 마리안은 프리기아 모자를 썼지만, 창 대신 공화국 3년 헌법 태블릿에 기대고 옆을 바라보는 덜 대립적인 모습이었다. 프랑스 공화력 달력 포스터에도 비슷한 이미지가 사용되었다.

2. 2. 제2공화국
1848년 3월 17일, 새로 건립된 프랑스 제2공화국 내무부는 회화, 조각, 메달, 지폐, 인장에 공화국을 상징하는 대회를 개최했다.[1] 이는 공식적인 공화국을 나타내는 표현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1] 군주제가 몰락한 후, 임시 정부는 "자유의 이미지는 3일 만에 대담한 프랑스 국민에 의해 부서진 부패와 수치의 이미지를 모든 곳에서 대체해야 한다."라고 선언했다.[1] 처음으로, 마리안의 알레고리는 자유, 공화국, 혁명을 하나로 응축했다.[1]두 종류의 "마리안"이 허가되었다.[1] 하나는 싸우고 승리하는 모습으로, 그리스 여신 아테나를 연상시킨다.[1] 그녀는 가슴을 드러내고, 프리자 모자를 쓰고, 붉은 코르사주를 입었으며, 반항의 제스처로 팔을 들어 올렸다.[1] 다른 하나는 더 보수적이다.[1] 그녀는 고대 양식의 옷을 입고, 머리 주위에는 햇살이 비치는데—왕실의 상징을 공화국으로 옮겨온 것이다—밀, 쟁기, 로마 집정관의 파스케스 등 많은 상징들을 동반하며 다소 조용하다.[1] 이 두 마리안은 부르주아적 표현과 민주적이고 사회적인 표현, 두 가지 공화국 사상을 대표한다. 6월 봉기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1]
시청은 자발적으로 마리안의 표현을 선택했으며, 종종 그녀의 등을 교회에 돌렸다.[1] 마리안은 1849년 프랑스 우표에 처음 등장했다.[1]
2. 3. 제2제국
제2제국 (1852–1870) 시기에는 마리안의 사용이 억압되었고, 저항의 상징으로 은밀하게 사용되었다.[4] "마리안"이라는 이름은 1848년에서 1851년 사이에 등장하여, 1875년경에는 프랑스 전역에서 널리 사용되었다.[4]2. 4. 제3공화국
제3공화국 시대(1870~1940)에 마리안의 사용은 더욱 공식화되었다. 마리안은 프랑스 공화주의를 상징하는 동시에, 다양한 이념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중립적인 상징으로 여겨졌다.[4] 프랑스 혁명의 유산은 프랑스인들을 분열시키는 경향이 있었고, 혁명 영웅과 악당에 대한 인식도 달랐다. 미국과 달리 프랑스에는 모두가 존경하는 "건국의 아버지"가 없었다.[4] 이러한 이유로 프랑스 국가는 역사적 인물 대신 마리안과 같은 추상적인 상징을 통합적인 국가 상징으로 장려했다.[4] 마리안의 여성성은 그녀를 남성상보다 덜 위협적으로 보이게 했다.1880년대에 이르러 공화국은 대부분의 프랑스인들에게 받아들여졌고, 프랑스 국가는 마리안을 공화국의 통합 상징으로 사용했다.[4] 1880년 파리 오텔 드 빌(시청)에 프리기아 모자를 쓴 마리안 조각상이 전시되었고, 다른 프랑스 도시들도 이를 따랐다. 급진파의 영향으로 파리에서는 공화국 광장 조각상을 위한 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는 모리스 형제(조각은 레오폴 모리스, 받침대는 건축가 프랑수아-샤를 모리스)가 1879년에 우승했다. 에메-줄 달루는 경쟁에서 졌지만, 파리시는 1889년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그의 기념비를 파리 국민 광장에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달루의 마리안은 릿토르의 파스케스, 프리기아 모자, 맨 가슴을 가지고 있었고, 노동을 상징하는 대장장이와 자유, 정의, 교육, 평화의 알레고리가 동반되었다. 최종 청동 기념비는 1899년에 완공되었다. 이 행사는 적기를 든 노동자들의 대규모 시위와 함께 진행되었다. 마리안은 노동자들에게 사회민주 공화국(''La Sociale'')의 대표로서 재차 수용되었다.
1904년 영국-프랑스 협상 조약 체결 이후, 마리안과 존 불은 많은 그림과 만화에서 이 협정을 의인화하여 등장했다. 존 버나드 파트리지의 펀치 만평이 그 예시이다. 20세기 초 이념적 정당 간의 투쟁에서 마리안은 우익 언론에 의해 종종 매춘부로 비하되었다.[4] 독일 제국에서 마리안은 매우 저속한 방식으로 묘사되었는데, 매춘부이거나 문란한 사람인 동시에, 독일 군인을 보면 공포에 질려하는 히스테리컬하고 미친 여자로 묘사되었다. 독일 선전에서 마리안의 목적은 프랑스에 대한 경멸을 조장하고, 독일인이 되지 말아야 할 점에 대한 경고였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 선전은 마리안을 항상 곰, 험악한 외모의 코사크 또는 니콜라이 2세 황제로 다양하게 묘사된 러시아를 지배하는 모습으로 묘사했고, 마리안은 분노하고 남성성을 잃는 아내로 그려졌다. 반대로 존 불은 독일 만화에서 항상 마리안과 러시아를 모두 지배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는데, 이는 독일이 영국을 모든 독일의 적들 중 가장 위험한 존재로 인식했음을 반영한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마리안은 나치 독일 침략자에 맞서 자유를, 비시 정권에 맞서 공화국을 상징했다(폴 콜린의 표현 참조). 비시 정권 동안 마리안의 기념비 427개 중 120개가 녹았고, 민병대는 1943년에 시청에서 그녀의 조각상을 제거했다.[3] 비시 정권 하에서 마리안은 금지되었고 잔 다르크가 프랑스의 공식 상징이 되었다. 프랑스 학교와 정부 사무실에서 마리안의 흉상은 필리프 페탱 원수의 흉상으로 대체되었다. 마리안은 공화국과 그 모든 것을 상징했기 때문에 비시 정권 하에서 마리안은 공화국의 가장 "불쾌한" 상징으로 악마화되었다.
2. 5. 제5공화국
샤를 드골 대통령 시기에는 우표나 국민투표에 마리안이 자주 사용되었다. 1968년 5월 시위(68혁명) 동안에는 마리안이 파격적이고 혁명적인 모습으로 다시 등장하였다.[3]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은 마리안 대신 라 포스트를 우표에 사용하고, 라 마르세예즈의 리듬을 바꾸었으며, 1945년 5월 8일 기념 행사를 폐지하는 등 변화를 시도했다.[3]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프랑스 혁명 200주년 기념행사에서 마리안 대신 미국의 오페라 가수 제시 노먼을 내세워 공화국을 강조하고자 했다. 장 폴 고드가 연출한 퍼레이드에서 제시 노먼은 라 마르세예즈를 불렀다. 19세기와 20세기 초, 1934년 2월 6일 위기, 비시 정권 등 격렬한 내부 갈등을 겪은 후, 공화국은 합의에 도달했으며, 대다수의 프랑스 시민들이 공화주의자가 되면서 마리안 숭배의 중요성은 줄어들었다.[3]
3. 이름의 기원
"마리안"이라는 이름은 프랑스 혁명 당시 평민들 사이에서 흔한 이름이었던 "마리"와 "안"을 합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퓌로랑스에서 불린 노래 "La garisou de Marianno" (마리안의 회복)에서 처음 등장했다는 기록이 있다.[2] 당시 마리-안느는 매우 인기 있는 이름이었으며, 모리스 아귈롱에 따르면 "자신을 대중적인 것으로 여기는 정권을 지칭하기 위해 선택되었다."[2]
이 이름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 16세기 군주살해론자의 이론가인 스페인 예수회 후안 데 마리아나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 정치인 장 르벨의 아내의 이미지라는 설.
- 1797년 폴 프랑수아 장 니콜라, 비콩트 드 바라가 르벨의 집에서 그의 아내에게 이름을 묻자 "마리-안느"라고 답했고, 이에 바라가 "공화국에 어울리는 짧고 단순한 이름"이라고 말했다는 이야기.[3]
제2 프랑스 제국 시기에는 공화주의 비밀결사의 이름으로 사용되기도 했다.[3]
4. 모델
마리안의 공식 흉상은 처음에는 익명의 특징을 가진 일반 시민 여성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1969년부터 유명 여성들의 특징을 띠기 시작했으며, 배우 브리지트 바르도가 그 시작이었다.[3] 그녀의 뒤를 이어 미셸 모건(1972), 미레유 마티유(1978), 카트린 드뇌브(1985), 이네스 드 라 프레상주(1989), 라에티티아 카스타 (2000), 에블린 토마(2003)가 선정되었다.[6]
레티시아 카스타는 1999년 10월, 프랑스 36,000명 이상의 시장들이 처음으로 참여한 투표에서 프랑스 공화국의 상징적 인물로 선정되었다. 그녀는 5명의 후보 중 15,000명이 투표에 참여하여 36%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당선되었다. 다른 후보들은 에스텔 할리데이, 패트리샤 카스, 다니엘라 룸브로소, 레티티아 밀로, 나탈리 시몽이었다.[7]
2013년 7월,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올리비에 시아파와 데이비드 카웨나 팀이 디자인했다고 주장하는 새로운 마리안 우표를 공개했다. 시아파는 최근 프랑스에서 정치적 망명을 허가받은 우크라이나 시위 단체 페멘의 주요 멤버인 인나 셰브첸코가 새로운 마리안의 주요 영감이었다고 주장했다.[8] 그러나 카웨나와 그의 변호사는 시아파가 작품에 대한 창의적인 기여를 한 것처럼 거짓으로 자신을 나타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웨나는 또한 셰브첸코나 시아파가 영감이라고 주장하는 다른 어떤 인물도 작품의 모델이 아니었으며, 마리안 작품의 저작권 침해로 시아파를 고소했다고 밝혔다.[9][10]
다음은 역대 마리안 모델 목록이다.
| 연도 | 인물 | 직업 |
|---|---|---|
| 1970년 ~ 1978년 | 브리지트 바르도 | 배우 |
| 1978년 ~ 1985년 | 미레유 마티유 | 가수 |
| 1985년 ~ 1989년 | 카트린 드뇌브 | 배우 |
| 1989년 ~ 2000년 | 이네스 드 라 프레상주 | 패션 모델 |
| 2000년 ~ 2003년 | 레티시아 카스타 | 패션 모델 |
| 2003년 ~ 2012년 | 에블린 토마 | 저널리스트, 텔레비전 사회자 |
| 2012년 ~ 현재 | 소피 마르소 | 배우 |
5. 프랑스 정부 로고
1999년 리오넬 조스팽 총리 내각은 마리안, 삼색기, "자유·평등·박애"를 결합한 정부 로고를 채택했다.[14] 이 로고는 정부 부처, 프레펙튀르, 데파르트망 등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자료에 나타난다.[14]
1999년부터 프랑스 정부는 마리안과 삼색기를 디자인한 로고 마크를 정부 공보 등에 사용하고 있다. 파란색과 빨간색을 배경으로 마리안의 흰색 옆모습을 배치하고, 하단에는 프랑스어로 "프랑스 공화국(「정부」만인 경우도 있음) 자유, 평등, 박애"라고 쓰여 있으며, 프랑스 공화국 정부 포털 사이트의 머리말과 꼬리말에도 표시되어 있다.[21]
6. 이슬람 복장 논쟁
마리안은 프랑스 특유의 정체성과 여성성에 대한 특정 관념을 상징하며 프랑스의 이슬람 복장 논란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미국의 역사학자 조앤 윌라치 스콧은 2016년에 마리안이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상관없이 종종 상반신 노출로 묘사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며, 이는 여성에 대한 프랑스적 이상을 반영하며, 이것이 여성의 이슬람 복장이 프랑스적이지 않은 이유에 대한 논거로 사용되었다고 썼다.[15] 스콧은 상반신 노출의 마리안이 "이슬람에 종속된 베일을 쓴 여성과 대조되는 해방된 프랑스 여성의 전형"이 되었다고 썼다.[15]
2016년 후반, 프랑스 총리 마뉘엘 발스는 연설에서 부르키니 수영복은 여성의 "노예화"이며 마리안은 대개 상반신 노출을 한다고 말했다. ''이코노미스트''는 "그 함축적인 의미는 부르키니를 입은 여성은 프랑스적이지 않은 반면, 진정한 프랑스 여성은 상반신 노출을 한다는 것이었다"라고 언급했다.[16] 2016년 8월 29일 연설에서 발스는 "마리안은 국민을 먹여 살리기 때문에 젖가슴을 드러내고 있다! 그녀는 자유롭기 때문에 베일을 쓰지 않는다! 그것이 공화국이다!"라고 말했다.[17] ''가디언'' 신문의 앙젤리크 키사피스는 "상반신 노출이 프랑스의 상징인 반면 이슬람 히잡은 문제가 있다는 추론은 정치인들의 조롱과 역사학자 및 페미니스트들의 비웃음을 불러일으켰다"고 보도했다.[17] 프랑스 대통령 프랑수아 올랑드는 "베일을 쓴 여성이 내일의 마리안이 될 것이다"라는 논란이 된 발언으로 프랑스에서 많은 논쟁을 촉발했다.[18]
7. 2024년 파리 올림픽 및 패럴림픽 로고
2024년 하계 올림픽 및 2024년 하계 패럴림픽 공식 엠블럼의 요소 중 하나로, 금메달, 올림픽 및 패럴림픽 성화와 결합되어 역사상 처음으로 동일한 엠블럼을 사용했다.[19][20]
참조
[1]
웹사이트
Marianne on French stamps
http://www.abelard.o[...]
[2]
문서
Compare the [[Statue of Liberty]], created as ''Liberty Enlightening the World'' by French artist [[Frédéric Auguste Bartholdi]], with a copy in both [[Paris]] and [[Saint-Étienne]].
[3]
간행물
Marianne ou l'histoire de l'idée républicaine aux XIXè et XXè siècles à la lumière de ses représentations
http://hist-geo.ac-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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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nch PM suggests naked breasts represent France better than a headsca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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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president shouldn't say that ... but Hollande did any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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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s the Face of the 2024 Paris Olympics, and France Is Aflu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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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Bobmania Comes for the Paris Olymp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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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UVERN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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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共和国政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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