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빈 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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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빈 해리스는 1927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나 2001년 플로리다 게인즈빌에서 사망한 미국의 인류학자이다. 그는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았으며, 1950년대 후반 모잠비크에서의 현장 연구를 통해 문화의 이념적 측면보다 물질적, 행동적 측면에 주목하는 방향으로 연구를 전환했다. 해리스는 문화 유물론을 주창하며, 마르크스주의와 맬서스의 인구 이론을 통합하여 사회 구조와 문화를 설명하려 했다. 그는 '소, 돼지, 전쟁, 그리고 마녀' 등 다양한 저서를 통해 여러 문화 현상을 분석했으며, 학계에서 논쟁적인 인물로 평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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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빈 해리스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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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마빈 해리스 |
출생일 | 1927년 8월 18일 |
출생지 | 미국 뉴욕주 뉴욕, 브루클린 |
사망일 | 2001년 10월 25일 |
사망지 | 미국 플로리다주 게인즈빌 |
국적 | 미국 |
학문 분야 | |
분야 | 인류학 |
관심 분야 | 문화 인류학 |
경력 | |
근무 기관 | 플로리다 대학교 |
모교 | 컬럼비아 대학교 |
업적 | |
알려진 업적 | 문화 유물론 발전에 기여 |
수상 | |
개인 정보 |
2. 생애
마빈 해리스는 1927년 뉴욕 시의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1929년 대공황의 영향으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 미국 육군에 입대하였고, 전쟁 이후 1944년 재향 군인 원조법을 이용하여 컬럼비아 대학교에 입학했다. 찰스 워글리(Charles Wagley)에게 사사받았으며, 브라질을 대상으로 졸업 연구를 했다.
졸업 후 컬럼비아 대학교 조교수가 되었다. 1957년에는 모잠비크를 조사했다. 2001년 플로리다주게인즈빌에서 사망했다.
2. 1. 어린 시절과 교육
대공황 직전에 태어난 해리스는 브루클린에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 미국 육군에 입대하였고, 전쟁 이후 미국 인류학자들의 새로운 세대로서 컬럼비아 대학교에 입학할 때 G.I. 빌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받았다. 경마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열성적인 독서가였는데, 아내 매들린과 자신의 대학원 기간 동안에 도움이 될 정도로 성공적인 복잡한 수학적 베팅체계를 개발하기도 하였다. 초기 연구는 멘토였던 찰스 워글리와 함께였고, 학위논문연구는 인류학에서 보아스의 기술적 전통을 계속하였던 평범한 마을에 대한 연구였다. 그는 후에 이 전통을 맹렬하게 비판하기도 하였다. 졸업 후, 컬럼비아 대학교로부터 조교수직을 받았고, 1957년 모잠비크에서 야외연구를 하던 중 이론적 방향과 정치적인 성향을 전환시킨 엄청난 변화과정을 겪었다.2. 2. 학문적 전환점
해리스는 대공황 직전에 브룩클린에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 미국 육군에 입대하였고, 전쟁 이후 미국 인류학자들의 새로운 세대로서 컬럼비아 대학교에 입학할 때 G.I. 빌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받았다. 경마장에서 시간을 보내기 좋아하면서도 열성적인 독서가이기도 하였는데, 때문에 아내 매들린과 자신의 대학원 기간 동안에 도움이 되기에 충분할 정도로 성공적인 복잡한 수학적 베팅체계를 개발하기도 하였다. 초기 연구는 멘토였던 찰스 워글리와 함께였고, 학위논문연구는 인류학에서 보아스의 기술적 전통을 계속하였던 평범한 마을에 대한 연구였다. 그 전통은 후에 스스로 맹렬하게 비판하기도 하였다. 졸업 후, 컬럼비아 대학교로부터 조교수직을 받았고, 1957년 모잠비크에서 야외연구를 하던 중 이론적 방향과 정치적인 성향을 전환시킨 엄청난 변화과정을 겪었다.2. 3. 학문적 활동과 사망
해리스는 1949년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1953년 박사 학위를 받았다. 컬럼비아 대학교 교수로 임용되기 전 브라질과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아프리카에서 현장 연구를 수행했다. 그는 결국 컬럼비아 대학교 인류학과장이 되었다. 1968년 컬럼비아 대학교 시위 당시 해리스는 경찰에게 위협과 폭행을 당한 학생들 편에 섰던 몇 안 되는 교수 지도자 중 한 명이었다.[10]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그는 뉴저지주 레오니아에 거주했다.[11]1981년 플로리다 대학교 인류학과에 합류하여 2000년에 은퇴했으며, 인류학 대학원 연구 명예 교수가 되었다. 해리스는 또한 미국 인류학 협회 일반 인류학 분과 의장을 역임했다.
해리스는 17권의 저서를 썼다. 그의 대학 교재 중 두 권인 ''문화, 사람, 자연: 일반 인류학 입문''과 ''문화 인류학''은 7판으로 출판되었다. 그의 연구는 인종, 진화 및 문화라는 주제를 아울렀다. 그는 종종 라틴 아메리카와 브라질에 집중했지만,[12] 바히아 제도, 에콰도르, 모잠비크, 인도에도 집중했다.
2001년, 플로리다주게인즈빌에서 사망했다.
3. 이론적 기여: 문화 유물론
마빈 해리스는 프란츠 보아스의 전통을 따라 인류학 연구를 시작했지만, 1950년대 후반 모잠비크에서의 현장 경험을 통해 문화의 이념적 특징보다는 행동적 측면에 주목하게 되었다. 1969년에 출간된 그의 저서 《인류학 이론의 시작》은 문화 유물론이라는 인간 문화에 대한 이해를 구축하려는 시도를 담고 있으며, 수백 년간의 사회적 사고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이 책은 고전 및 현대 거시사회 이론을 종합한 것으로 평가받는다.[1]
해리스는 칼 마르크스의 토대와 상부구조 개념을 받아들여 수정하고 확장했지만, 변증법과 이론과 실천의 통일성과 같은 마르크스주의 사상의 핵심적인 부분은 거부했다. 그는 또한 토머스 맬서스의 인구 이론을 사회 문화적 진화의 주요 결정 요인으로 자신의 연구에 통합하여, 인구를 인과적 요소로 보지 않았던 마르크스와 차이를 보였다.
3. 1. 문화 유물론의 핵심 내용
문화 유물론은 상부구조와 토대에 대한 마르크스의 범주를 통합하고 정제했다. 해리스는 생산 수단, 착취와 같은 핵심적인 마르크스주의 개념을 수정하고 확장했지만, 마르크스주의 사상의 두 가지 핵심 측면인 변증법과 이론과 실천의 통일성은 거부했다. 그는 변증법을 마르크스 시대의 지적 유행이라고 여겼고, 이론과 실천의 통일성은 사회 과학자에게 부적절하고 해로운 입장이라고 생각했다.[1] 해리스는 또한 사회 문화적 진화의 주요 결정 요인으로 맬서스의 인구 이론을 연구 전략에 통합했는데, 이는 인구를 인과적 요소로 거부한 마르크스와 대조된다.해리스에 따르면, 사회가 환경을 착취하는 주요 메커니즘은 사회의 하부 구조, 즉 생산 방식(기술 및 작업 패턴)과 인구(인구 특성, 출산율 및 사망률)에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관행은 생명 유지에 필수적이므로 광범위한 사회 구조, 문화적 가치 및 신념은 이러한 관행과 일치해야 한다. 해리스는 과학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고 썼다.
> 연구 분야에서 최대의 질서를 발견하는 것이며, 이론 구축의 우선순위는 자연에서 주어진 제약의 직접적인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부문에 논리적으로 정해진다. 문화적 이상주의자들이 옹호하는 것처럼 정신적 상부구조(아이디어 및 이데올로기)에 전략적 우선 순위를 부여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신이 자비로운 아버지인지 피에 굶주린 식인종인지는 자연에게는 무관심하다. 그러나 윤작(화전) 밭의 휴경 기간이 1년인지 10년인지는 자연에게 무관심하지 않다. 우리는 하부 구조 수준에서 강력한 제약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제약이 구조적 및 상부 구조적 요소로 전달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다.
해리스는 ''인류학 이론의 부상''에서 설명된 이후 상당 부분 정제된 에믹과 에틱을 구분하는 중요한 구분을 했다. "에믹"과 "에틱"이라는 용어는 선교사 언어학자 케네스 파이크의 저작에서 유래했으나,[2] 해리스의 개념과는 차이가 있다. 해리스가 사용한 바에 따르면, 에믹은 정보 제공자 또는 대상에게 옳고 의미 있는 설명이며, 에틱 설명은 사회 문화적 삶에 대한 이론을 생성하고 강요하기 위해 과학계에서 사용되는 설명이다. 즉, 에믹은 참여자의 관점이며, 에틱은 관찰자의 관점이다. 해리스는 둘 다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설명하는 데 실제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2][3]
3. 2. 문화 유물론의 적용 사례
Cultural materialism영어은 상부구조와 토대에 대한 마르크스의 범주를 통합하고 정제했다. 해리스는 생산 수단과 착취와 같은 핵심적인 마르크스주의 개념을 수정하고 확장했지만, 마르크스주의 사상의 두 가지 핵심 측면, 즉 마르크스 시대의 지적 유행이라고 여긴 변증법과 사회 과학자에게 부적절하고 해로운 입장이라고 여긴 이론과 실천의 통일성은 거부했다.[1] 그는 또한 사회 문화적 진화의 주요 결정 요인으로 맬서스의 인구 이론을 연구 전략에 통합했는데, 이는 인구를 인과적 요소로 거부한 마르크스와 대조된다.해리스에 따르면, 사회가 환경을 착취하는 주요 메커니즘은 사회의 하부 구조, 즉 생산 방식(기술 및 작업 패턴)과 인구(인구 특성, 출산율 및 사망률)에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관행은 생명 유지에 필수적이므로 광범위한 사회 구조, 문화적 가치 및 신념은 이러한 관행과 일치해야 한다고 보았다.
해리스는 ''인류학 이론의 부상''에서 에믹과 에틱을 구분하는 중요한 구분을 설명하고 이후 상당 부분 정제했다. "에믹"과 "에틱"이라는 용어는 선교사 언어학자 케네스 파이크의 저작에서 유래했지만,[2] 해리스의 개념과는 차이가 있다. 해리스가 사용한 바에 따르면, 에믹은 정보 제공자 또는 대상에게 옳고 의미 있는 설명이며, 에틱 설명은 사회 문화적 삶에 대한 이론을 생성하고 강요하기 위해 과학계에서 사용되는 설명이다. 즉, 에믹은 참여자의 관점이며, 에틱은 관찰자의 관점이다. 해리스는 둘 다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설명하는 데 실제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2][3]
해리스의 주요 이론적 문제에 대한 초기 기여에는 비만 형성에 대한 생물학적 잉여 이론의 수정이 포함된다. 그는 또한 인도 문화에서 종교에서 소의 처리에 대한 유물론적 설명을 공식화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4] 마이클 하너와 함께 해리스는 아즈텍 식인 풍습이 널리 퍼져 있었고 그들의 식단에서 단백질 결핍으로 인해 발생했다는 제안과 가장 관련이 있는 학자 중 한 명이다.[5] 이 설명은 해리스의 책 ''식인종과 왕''에 나타난다.[6] 해리스는 또한 야노마모족의 전쟁을 설명하기 위해 인간의 동물성 단백질 추구를 언급했는데, 이는 민족지학자 나폴레옹 차그논의 선천적인 남성적 공격성을 포함하는 사회생물학적 설명과 모순된다.[7]
3. 3. 비판과 논쟁
마빈 해리스(Marvin Harris)는 자신의 이론에 대해 많은 비판과 논쟁에 직면했다. 그의 초기 연구는 프란츠 보아스 학파의 영향을 받았지만, 1950년대 후반 모잠비크에서의 현장 연구 경험을 통해 문화 유물론적 관점으로 전환했다.[1]문화 유물론은 토대와 상부구조에 대한 칼 마르크스의 개념을 수정하고 확장했지만, 변증법과 이론과 실천의 통일성 등 마르크스주의 사상의 핵심적인 측면을 거부했다. 또한 사회 문화적 진화의 주요 결정 요인으로 맬서스의 인구 이론을 통합하여 인구를 인과적 요소로 거부한 마르크스와 대조를 이루었다.[1]
해리스는 사회의 하부 구조(생산 방식과 인구)가 사회 구조, 문화적 가치 및 신념을 결정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과학의 목적이 연구 분야에서 최대의 질서를 발견하는 것이며, 하부 구조가 상부 구조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1]
해리스는 에믹과 에틱을 구분했는데, 에믹은 정보 제공자의 관점, 에틱은 관찰자의 관점을 의미한다. 그는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두 가지 관점이 모두 필요하다고 주장했다.[2][3]
그는 인도 문화에서 종교에서 소 숭배,[4] 아즈텍 식인 풍습에 대한 단백질 결핍 가설,[5][6] 야노마모족의 전쟁에 대한 설명 등 다양한 문화 현상에 대한 유물론적 설명을 제시했다.[7]
해리스의 저서로는 ''소, 돼지, 전쟁, 그리고 마녀: 문화의 수수께끼''(1975), ''먹기 좋음: 음식과 문화의 수수께끼''(1998), ''왜 아무것도 작동하지 않는가: 일상 생활의 인류학''(1981), ''우리의 종류: 우리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는가, 어디에 있는가''(1990), ''문화 유물론: 문화 과학을 위한 투쟁''(1979) 등이 있다.
해리스의 인류학적 기여는 광범위하지만,[8] 그의 이론은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스미소니언''은 그를 "생존해 있는 가장 논쟁적인 인류학자 중 한 명"이라고 칭했고, ''워싱턴 포스트''는 "그 분야의 폭풍의 중심"이라고 묘사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그가 "지나치게 일반화된 가정"을 했다고 비난했다.[9] 해리스는 다른 이론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했고, 자신도 자주 비판을 받았다. 미국 인류학회(AAA) 총회에서는 격렬한 질문을 받는 단골이었다.
4. 학문적 업적
해리스는 1949년에 석사 학위를, 1953년에 박사 학위를 모두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받았다. 컬럼비아 대학교 교수로 임용되기 전 브라질과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아프리카에서 현장 연구를 수행했으며, 컬럼비아 대학교 인류학과장이 되었다. 1968년 컬럼비아 대학교 시위 당시 해리스는 경찰에게 위협과 폭행을 당한 학생들 편에 섰던 몇 안 되는 교수 중 한 명이었다.[10]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그는 뉴저지주 레오니아에 거주했다.[11]
1981년 플로리다 대학교 인류학과에 합류하여 2000년에 은퇴했으며, 인류학 대학원 연구 명예 교수가 되었다. 미국 인류학 협회 일반 인류학 분과 의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해리스는 17권의 저서를 썼다. 대학 교재 중 ''문화, 사람, 자연: 일반 인류학 입문''과 ''문화 인류학''은 7판까지 출판되었다. 그의 연구는 인종, 진화 및 문화라는 주제를 아울렀으며, 라틴 아메리카와 브라질,[12] 바히아 제도, 에콰도르, 모잠비크, 인도에 집중했다.
문화 유물론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칼 마르크스의 생산력과 맬서스의 인구 통계학적 요인을 기반으로 하여 사회 구조와 문화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로 여겼다. 1968년에 "인류학 이론의 부상(The Rise of Anthropological Theory)"을 출판한 이후, 인류학 분야에서 문화와 생태학의 관계에 주목하는 연구에 남은 생을 바쳤다. 그의 저서 다수는 일반 독자들 사이에서도 널리 읽히고 있다.
학자로서 평생 동안 충실한 지지자를 얻는 한편, 수많은 비판도 받았다. 미국 인류학회(AAA) 연례 총회에서는 회장이나 연단에 선 사람 등으로부터 격렬한 질문을 받는 단골이었다.
5. 저서
- ''Cows, Pigs, Wars and Witches: The Riddles of Culture'' (1975). 박종렬 역, 《문화의 수수께끼》 (한길사, 2000). [1]
- ''Cannibals and Kings: The Origins of Cultures'' (1977). 《식인과 제왕》 (한길사, 2000). [2]
- ''Why Nothing Works: The Anthropology of Daily Life'' (1981). 원재길 역, 《아무 것도 되는 게 없어》 (황금가지, 1997). [3]
- ''Our Kind: who we are, where we came from, where we are going'' (1990). 김찬호 역, 《작은 인간》 (민음사, 1995). [4]
- ''The Sacred Cow and the Abominable Pig'' (1985). 《음식 문화의 수수께끼》 (한길사, 1992). [5]
- 『문화의 수수께끼를 풀다: 소·돼지·전쟁·마녀』 (미도오카 키요시 역, 도쿄 소겐샤, 1988)
- 『인간은 왜 인간을 먹었는가: 생태 인류학에서 본 문화의 기원』 (스즈키 요이치 역, 하야카와 쇼보, 1990; 문고화 하야카와 문고, 1997)
참조
[1]
서적
The Rise of Anthropological Theory: A History of Theories of Culture.
AltaMira Press
[2]
서적
Macmillan Dictionary of Anthropology.
The Macmillan Press
[3]
서적
Culture, People, Nature: An Introduction to General Anthropology
Harper & Row
[4]
서적
Cows, Pigs, Wars and Witches: The Riddles of Culture
Hutchinson & Co.
[5]
서적
[6]
서적
Cannibals and Kings: The Origins of Cultures.
https://archive.org/[...]
Vintage.
[7]
서적
Cows, Pigs, Wars and Witches: The Riddles of Culture
https://archive.org/[...]
Random House
[8]
간행물
Fare, dire, sentire
Il Maestrale
[9]
웹사이트
Marvin Harris' Cultural Materialism
http://faculty.rsu.e[...]
2023-01-17
[10]
웹사이트
Public Anthropology
http://www.publicant[...]
2009-04-01
[11]
웹사이트
Marvin Harris
http://www.cultural-[...]
2008-05-27
[12]
웹사이트
Profile of Harris
http://clasnews.clas[...]
2017-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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