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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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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민병갈은 1921년 미국에서 태어나 버크넬 대학교에서 화학을 전공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일본어 통역 장교로 한국과 인연을 맺었고, 1953년 한국은행에 취직하며 한국에 정착했다. 그는 1979년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천리포수목원 조성에 헌신했으며, 완도호랑가시나무를 발견하여 국제 학계에 보고했다. 천리포수목원은 국제적인 인정을 받았으며, 민병갈은 한국의 식물 연구와 수목원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금탑산업훈장 등을 수상했다. 그는 2002년 사망했으며, 천리포수목원은 현재 13,200종 이상의 식물을 보유한 한국의 대표적인 수목원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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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갈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한국어 이름민병갈
영어 이름Carl Ferris Miller
로마자 표기Min Byeong-gal
출생일1921년 4월 5일
출생지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턴
사망일2002년 4월 8일
사망지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직업은행가, 수목학자
군 경력
복무미국 해군
복무 기간1944년 ~ 1948년
최종 계급미국 해군 대위
근무지주한미군사령부
지휘통역 장교, 정책 고문관

2. 생애

1921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웨스트 피츠턴에서 태어나 버크넬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다. 제2차 세계 대전미국 해군 일본어 학교 과정을 이수한 것을 계기로 1945년 일본 오키나와섬에서 통역 장교로 근무하며 동아시아와 인연을 맺었다.

1946년 연합군 중위 신분으로 처음 한국 땅을 밟았고, 이후 주한미군 고문관, 한국은행 근무 등을 거치며 한국에 정착했다.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1962년 충청남도 태안군 천리포 해변 인근의 땅을 매입한 것을 시작으로 1970년부터 천리포수목원 조성에 헌신했으며, 1979년 '민병갈'이라는 한국 이름으로 귀화하였다.[6]

그는 1978년 완도에서 세계적인 희귀종인 '완도호랑가시나무'를 발견하여 국제 학계에 등록하는 등 한국 식물의 가치를 알리는 데 기여했다. 그가 평생을 바쳐 일군 천리포수목원은 활발한 국제 교류와 연구 활동을 통해 2000년 아시아 최초로 국제수목학회(IDS)로부터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지정받는 등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2002년 4월 8일 81세를 일기로 별세하였으며, 유해는 그의 뜻에 따라 천리포수목원에 수목장으로 안장되었다. 사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금탑산업훈장이 추서되었고, 미국 프리덤 재단으로부터 미국 우정의 메달이 수여되는 등 한국 자연과 식물 보전에 기여한 그의 공로가 높이 평가받았다.

2. 1. 초기 생애 및 교육

1921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웨스트 피츠턴에서 태어났다.[6] 버크넬 대학교에서 화학을 전공하였으며, 우등생 클럽인 파이 베타 카파 회원이기도 했다.[2][6] 그는 러시아어독일어를 구사할 줄 알았고, 한자를 배우기도 하였다.[6] 제2차 세계 대전 중이던 1944년, 징병을 피하기 위해[6] 콜로라도 대학교미국 해군 일본어 학교에서 일본어를 공부했다.[2][6]

2. 2. 한국과의 인연

1944년 미국 해군 일본어 학교 과정을 이수한 것이 계기가 되어 동아시아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는 1945년 4월, 제2차 세계 대전일본 오키나와섬에 주둔한 미군사령부의 통역 장교로 배치되어 일본군 포로 및 주민 심문 임무를 수행했다.[2]

1946년, 25세의 나이에 연합군 중위 신분으로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이후 1947년 1월에는 주한미군사령부 사법분과위원회 정책고문관으로 지원하여 다시 한국에 왔으며,[6] 1949년에는 경제 협력 행정부(ECA) 서울 지부 성과 검토 부서에서 부관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잠시 미국으로 귀국했으나, 한국 전쟁 발발 후인 1950년에는 일본으로 피난했다가 1951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전쟁 시기에는 일본, 미국, 한국을 오가며 생활해야만 했다.[6]

1953년 한국은행에 취직하면서 본격적으로 한국에 정착하기 시작했고, 1980년대 초까지 근무했다. 한국은행 퇴직 후에는 굿모닝증권을 비롯한 여러 한국 금융 회사에서 금융 자문 및 중개인으로 활동하며 서울에서 생활했다.[6] 그는 한국어에 능통했다.

1979년에는 '민병갈'이라는 한국 이름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여 귀화하였으며,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6][1] 그는 뛰어난 브리지 선수로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세계 대회에 참가하기도 했으며, 여러 가치 있는 사업에 시간과 돈을 기부하고 50명 이상의 어린이들을 지속적으로 후원하는 등 한국 사회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였다.[1]

2. 3. 천리포수목원 조성

1962년 수영 여행 중, 서울에서 주말 여행을 온 민병갈은 태안군 천리포 해변 근처의 황무지를 한 마을 주민의 설득으로 매입하게 되었다.[2] 이 땅은 처음에는 방치되었으나, 1970년 서울의 대기 오염에 실망한 그가 서울에 있던 자신의 전통 한옥을 이곳으로 옮기면서 본격적으로 수목원 조성에 착수하게 되었다.[2] 그는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수목원 조성에 헌신했다.[6]

민병갈은 처음에는 단지 몇 그루의 나무를 심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했지만,[2] 점차 더 많은 땅을 사들이고 나무를 심으며 수목원을 가꾸어 나갔다. 그는 한국과 식물에 대한 공부에도 힘을 쏟았다. 1979년에는 재단법인 천리포수목원을 설립하였다.[6]

재단 설립 전해인 1978년, 민병갈은 남해안 답사 중 완도에서 감탕나무(Ilex)와 호랑가시나무가 자연적으로 교잡된 새로운 식물 종을 발견하였다. 이 식물은 세계에서 오직 한국의 완도에서만 자라는 희귀종으로 확인되었다. 그는 국제 식물 명명 규약에 따라 발견자와 서식지 이름을 넣어 학명 'Ilex x wandoensis|완도엔시스lat C. F. Miller'를 국제 학회에 등록했고, 한국 이름은 '완도호랑가시나무'로 정했다.

천리포수목원은 종자목록(Index Seminum) 발행을 통한 다국간 종자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완도호랑가시나무를 세계에 알렸고, 동시에 1978년부터 1998년까지 36개국 140개 기관과 교류하며 다양한 품종의 나무를 들여왔다. 민병갈은 국제적인 교류를 통해 한국의 환경과 식물을 알리는 데에도 힘썼다. 1989년에는 영국 왕립 원예협회(RHS)로부터 공로 메달을 수여받았고, 1997년 4월에는 국제목련학회 연차총회를 서울에서 개최했으며, 1998년 5월에는 미국 수목원이 주축인 범세계적 학술 친목 단체 HSA(Holly Society of America) 총회를 천리포수목원에서 개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가 40여 년에 걸쳐 조성한 천리포수목원은 오늘날 13,200종 이상의 수백만 그루 나무와 식물을 보유하고 있으며,[3] 그가 옮겨와 개조한 한옥 여러 채도 자리 잡고 있다.[2] 이러한 노력과 성과를 인정받아 천리포수목원은 2000년 아시아 최초로 국제수목학회(IDS, International Dendrology Society)가 지정한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Arboretum Distinguished for Merit)으로 선정되었고, 미국 호랑가시학회(HSA)로부터 '공인 호랑가시 수목원'(Official Holly Arboretum)으로 인정받았다.

민병갈은 2002년 4월 8일 81세로 별세하였고, 유해는 수목장으로 천리포수목원에 안장되었다. 사후 대한민국 정부는 그에게 금탑산업훈장을 추서했으며, 같은 해 미국 프리덤 재단(Freedoms Foundation)은 평화, 자유, 민주주의 실현에 대한 공로를 인정하여 미국 우정의 메달을 수여했다. 이 상훈들은 그의 여동생 준 맥데이드(June MacDade)가 대신 받았다. 재단법인 천리포수목원은 민병갈 사후 문국현유한킴벌리 사장, 이은복 한서대 명예교수를 거쳐 2021년에는 인요한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을 이사장으로 추대하였다.

2. 4. 국제 교류 및 수상

천리포수목원1979년 재단으로 설립된 이후 활발한 국제 교류 활동을 펼쳤다. 민병갈은 재단 설립 전해인 1978년 남해안 답사 중 감탕나무호랑가시나무가 자연적으로 교잡된 새로운 식물 종을 발견했다. 이 식물은 세계적으로 완도 지역에서만 자생하는 희귀종으로 확인되었으며, 민병갈은 국제 규약에 따라 발견자와 서식지 이름을 넣어 'Ilex x Wandoensis C. F. Miller'라는 학명을 국제학회에 등록하고 한국 이름은 '완도호랑가시'로 명명했다.

천리포수목원은 '완도호랑가시'를 비롯한 다양한 식물 종자를 국제적으로 교류하기 위해 종자목록(Index Seminumlat)을 발행했다. 이를 통해 1978년부터 1998년까지 20년간 36개국 140개 기관과 교류 관계를 맺으며 다양한 수목 품종을 국내에 들여오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러한 국제 교류와 수목원 발전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민병갈은 1989년 영국 왕립 원예협회(RHS)로부터 공로메달을 수여받았다.

민병갈은 한국의 자연 환경과 식물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는 데에도 힘썼다. 1997년 4월에는 국제목련학회의 연차총회를 서울에서 성공적으로 개최했으며, 1998년 5월에는 미국 수목원들이 중심이 된 세계적인 학술 친목 단체인 미국 호랑가시학회(HSA, Holly Society of America)의 총회를 천리포수목원에서 유치했다.

그가 평생을 바쳐 일군 천리포수목원은 국제적으로도 그 가치를 높이 평가받았다. 2000년에는 아시아 지역 최초로 국제수목학회(IDS, International Dendrology Society)로부터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Arboretum Distinguished for Merit)으로 지정되었으며[4], 이는 세계적으로 12번째 '공로 수목원'으로 선정된 것이었다.[4] 또한 미국 호랑가시학회(HSA)는 천리포수목원을 '공인 호랑가시 수목원'(Official Holly Arboretum)으로 선정하기도 했다.[4]

민병갈 개인의 업적 역시 국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02년에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산업훈장 중 최고 등급인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이 훈장은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수여한 것이다.[4] 같은 해 미국의 프리덤 재단(Freedoms Foundation)은 평화, 자유, 민주주의 실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하여 그에게 미국 우정의 메달을 수여했다. 안타깝게도 민병갈은 이 상을 받기 직전 별세하여, 그의 여동생인 준 맥데이드(June MacDade)가 대신 수상했다.

2005년에는 대한민국 임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사후에 산림청에 의해 산림문화 명예의 전당 다섯 번째 헌정자로 선정되었다.[5]

2. 5. 사망 및 유산

민병갈은 2002년 4월 8일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유언에 따라 천리포수목원수목장으로 안장되었다. 사후인 200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금탑산업훈장을 추서받았으며, 같은 해 미국 프리덤 재단(Freedoms Foundation)에서는 평화와 자유, 민주주의 실현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 우정의 메달을 수여했다. 다만 이 상훈은 그의 사후에 결정되어 여동생인 준 맥데이드(June MacDade)가 대신 받았다.

재단법인 천리포수목원은 민병갈 사망 후 후임 이사장에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을 추대하였고, 2010년에는 이은복 한서대 명예교수를, 2021년에는 인요한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을 이사장으로 추대했다.

그가 평생을 바쳐 조성한 천리포수목원은 다양한 식물 품종으로 주목받아 2000년 아시아 최초로 국제수목학회(IDS, International Dendrology Society)가 지정한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Arboritum Distinguished for Merit)으로 선정되었고, 미국 호랑가시학회(HSA, Holly Society of America)로부터 '공인 호랑가시 수목원'(Official Holly Arboritum)으로 인정받았다. 현재 천리포수목원은 13,200종 이상의 식물을 보유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수목원으로 자리 잡았다.

3. 학력

참조

[1] 웹사이트 The Interpreter https://web.archive.[...] 2003-03-15
[2] 뉴스 Seoul: One Man's Dream of a World-Class Arboretum https://www.wsj.com/[...] 2010-05-08
[3] 웹사이트 Blue-eyed Korean, Min Byoung-gal (Carl Ferris Miller) http://www.chollipo.[...] Chollipo Arboretum 2010-09-12
[4] 뉴스 Can Spring Be Far Behind? https://www.koreatim[...] 2009-02-20
[5] 웹사이트 The Late Chairman Jong Hyun Choi: First Entrepreneur in Forest Hall of Fame http://www.sk.com/ha[...] 2010-03-17
[6] 뉴스 "[이희용의 글로벌시대] 한국의 나무가 된 귀화 미국인 1호 민병갈" https://www.yna.co.k[...] 2019-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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