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커스 6 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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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빅커스 6톤은 1928년 존 발렌타인 카든과 비비안 로이드가 개발한 전차이다. A형(쌍포탑)과 B형(단일 포탑) 두 가지 버전이 있으며, B형의 2인승 포탑은 전차 설계에 영향을 미쳤다. 영국군은 채택하지 않았지만, 소련, 폴란드, 그리스 등 여러 국가에 수출되어 각국에서 파생형이 개발되었다. 특히 소련은 T-26, 폴란드는 7TP를 개발했고, 핀란드는 T-26E로 개조하여 사용했다. 빅커스 6톤은 1930년대 각국의 전차 개발에 영향을 미쳤으며, 다양한 분쟁에 투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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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커스 6 톤 | |
|---|---|
| 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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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형 | 경전차 |
| 원산지 | 영국 |
| 사용 기간 | 1932–1939 (폴란드) 1938–1959 (핀란드) |
| 사용 국가 | 폴란드 핀란드 태국 중화민국 소비에트 연방 기타 |
| 참전 전쟁 | 차코 전쟁 스페인 내전 중일 전쟁 제2차 세계 대전 겨울 전쟁 프랑스-태국 전쟁 |
| 설계자 | 존 발렌타인 카든 비비안 로이드 |
| 설계 시기 | 1928년 |
| 제작사 | 비커스 |
| 제원 | |
| 길이 | 4.88 m (16 ft 0 in) |
| 폭 | 2.41 m (7 ft 11 in) |
| 높이 | 2.16 m (7 ft 1 in) |
| 무게 | 7.3 톤 |
| 현가 장치 | 판 스프링 보기 |
| 속도 | 35 km/h (22 mph) |
| 주행 거리 | 160 km (99 mi) |
| 주무장 | "Type A": 2정의 기관총, "Type B": 3파운드 (47 mm) 포 (50발) |
| 부무장 | "Type B": 1정의 비커스 기관총 |
| 장갑 | 19 mm에서 25 mm (0.75 in에서 0.98 in) |
| 엔진 | 암스트롱 시들리 가솔린 엔진 |
| 승무원 | 3명 |
| 엔진 출력 | 80–98 hp (60–73 kW) |
| 마력 대 중량비 | 11–13 hp/t |
2. 역사
1928년 영국의 비커스-암스트롱사에서 존 발렌타인 카든과 비비안 로이드 등 유명 전차 설계자들이 개발에 참여한 빅커스 Mk.E가 최초의 빅커스 6톤 전차이다. 초기에는 리벳 구조의 강철판으로 제작되었으며, 푸마 엔진을 탑재하여 도로에서 최고 35km/h의 속도를 낼 수 있었다. 2개의 차축과 판 용수철(leaf spring)을 이용한 보기륜 방식의 서스펜션은 당시 기준으로 우수한 야지 주행 성능을 제공했다.[1]
영국 육군은 서스펜션의 성능을 의심하여 채택하지 않았지만, 빅커스는 여러 국가에 홍보하여 소련, 그리스, 폴란드, 볼리비아, 시암(태국), 핀란드, 포르투갈, 중국, 불가리아 등에서 주문을 받았다.[3] 빅커스 6톤 전차는 총 153대가 생산되었다.
폴란드에서는 공랭식 푸마 엔진의 공기 흡입량 부족으로 인한 과열 문제가 발생하여, 차체 측면에 더 큰 공기 통풍구를 추가하는 방안이 제안되었다. 벨기에가 주문했을 때는 롤스로이스 팬텀II 수냉식 엔진으로 교체했지만, 벨기에는 채용을 거부했다.
영국 육군은 60파운드 포(127mm)를 견인할 수 있는 포병 트랙터 용도로 Mk.E를 소수 개조하여 ''Dragon, Medium Mark IV''라는 이름으로 12대를 주문했고, 중국은 23대, 인도는[15] 18대를 주문했다.

2. 1. 개발 배경
1928년, 존 발렌타인 카든과 비비안 로이드를 포함한 설계팀은 빅커스 Mk.E를 개발했다. 이 전차는 수출 시장을 목표로 개발되었다.영국 육군은 서스펜션 성능에 의문을 품고 채택하지 않았지만, 빅커스-암스트롱 사는 적극적으로 홍보하여 소련, 그리스, 폴란드, 볼리비아, 시암(태국), 핀란드, 포르투갈, 중국, 불가리아 등 여러 국가로부터 주문을 받았다.[3] 특히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구식 경전차를 운용하던 국가들이 새로운 전차 도입을 위해 빅커스 6톤 전차를 선택했다.
차체는 리벳으로 고정된 강철판으로 만들어졌으며, 전면과 포탑은 25mm, 차체 상부는 19mm 두께였다. 추진력은 80~95 마력을 내는 암스트롱 시들리 푸마 엔진을 사용했으며, 도로에서 최고 속도는 35km/h였다. 서스펜션은 2개의 차축을 사용하고 판 용수철(leaf spring)으로 연결된 2개의 바퀴로 구성된 보기륜에 힘을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이 시스템은 당시 기준으로 우수한 성능을 보였으며, 고강도 강철 궤도는 5000km 이상의 수명을 제공했다.
빅커스 6톤 전차는 두 가지 버전으로 제작되었다.
- '''A형''' - 2개의 포탑에 각각 빅커스 기관총을 장착했다.
- '''B형''' - 1개의 2인승 포탑에 기관총 1정과 단포신 47mm 포를 장착했다. B형은 2인승 포탑을 채택하여 무기 발사 속도를 높이는 혁신적인 설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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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는 빅커스 6톤 전차를 개량하여 7TP 전차를 개발했으며, 소련은 T-26 경전차를 개발하여 대량 생산했다. 핀란드는 겨울 전쟁 이후 노획한 소련제 45mm 포를 장착하여 '''T-26E'''로 개명하고 계속 전쟁에서 사용했다.
1927년 카덴-로이드 트랙터사는 보병 지원용 경전차 개발을 제안했고, 1928년에 비커스-암스트롱사는 자체 개발을 통해 새로운 전차(Mk.E)를 완성했다. 설계팀에는 이전에 카덴-로이드 트랙터사에서 전차 설계를 담당했던 존 카덴과 비비안 로이드가 포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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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 파생형 및 영향
소련은 T-26 경전차를 개발하여 여러 파생형을 포함, 대략 12,000대 이상 생산했다. 초기 T-26은 7.62mm DP-28 기관총을 각 포탑에 장착하거나, 기관총 1정과 37mm 포를 혼합 탑재했다. 이후 45mm 주포와 2정의 DT 기관총[16]을 장착한 형식이 일반화되었다. T-26의 마지막 버전은 차체와 포탑에 경사 장갑을 용접 방식으로 생산했다. T-26은 광범위하게 사용되었고, 다양한 플랫폼으로 활용되어, 소련은 T-26 차체를 기반으로 화염방사기, 가교 전차, 무선 조종 파괴 전차 등 공병 차량을 만들었다. 스페인 내전 중에는 공화파 군대에 300여 대를 지원했다. 1937년 3월, 과달라야라 전투에서 공화파의 T-26에 피해를 입은 이탈리아군은[17] 노획한 T-26을 참고하여 M13/40을 개발했다.폴란드는 빅커스 6톤 전차의 설계에 만족하여 50대를 구매하고 자국에서 면허 생산했다. 디젤 엔진과 기관총을 장착하고, 공기 흡입구를 확대하는 개조를 거쳐 7TP로 채용했다. 원형 빅커스 6톤 전차는 38대만 운용되었고, 12대는 예비 부품으로 활용되었다. 38대의 2포탑 전차 중 22대는 개량된 포탑과 47mm 주포를 탑재한 1개 포탑형(표준 B형)으로 개조되었다.

핀란드는 겨울 전쟁 중인 1940년 2월 26일 혼카니미 전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빅커스 전차를 소련군 기갑부대와 전투에 투입했다. 핀란드군 빅커스 6톤 전차 13대 중 6대만이 전투에 참가할 수 있었고, 그 중 1대는 참호를 넘지 못해 전진을 멈췄다. 남은 5대는 소련군 전차 12대와 교전하여 소련군 전차 3대를 격파했지만, 곧 핀란드군 전차도 격파되었다.[19] 이후 정찰전에서 핀란드군은 2대의 빅커스 전차를 더 잃었다.[20]
1941년, 핀란드는 노획한 소련제 45mm 포를 빅커스 6톤 경전차에 장착하고 '''T-26E'''로 개명했다. 핀란드 육군은 계속 전쟁 기간 동안 이 전차들을 사용했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도 1959년까지 훈련용으로 사용하다가 영국 및 소련제 전차로 교체했다.[21][22]
3. 버전
1928년에 존 발렌타인 카든과 비비안 로이드 등 유명한 전차 설계자들이 참여한 팀에 의해 빅커스 Mk.E가 개발되었다. 초기에는 두 가지 주요 버전으로 제작되었다.
- '''A형''' : 2개의 포탑을 가졌으며, 각 포탑에는 빅커스 기관총이 설치되었다.
- '''B형''' : 1개의 2인승 포탑에 기관총 1정과 단포신 47mm 포를 설치했다. 2인승 포탑은 당시 혁신으로 평가되었고 이후 전차 설계의 공통적인 요소가 되었다.
영국 육군은 채택하지 않았지만, 빅커스는 여러 국가에 판매를 시작하여 소련, 그리스, 폴란드, 볼리비아, 시암(태국), 핀란드, 포르투갈, 중국, 불가리아 등에서 주문을 받았다.[3]
폴란드에서는 엔진 과열 문제가 발생하여 차체 측면에 더 큰 공기 통풍구를 추가했다. 벨기에 주문에는 롤스로이스 팬텀II 수냉식 엔진으로 교체했지만, 채택을 거부당했다. 그러나 구형 엔진을 장착한 새로운 차체는 핀란드와 타이(시암)에 판매되었다.
이후 엔진 강화형인 Mk. F가 개발되었지만, 고객들은 기존의 암스트롱 시들리 엔진 탑재형을 선호하여, 1930년대 후반에 납입된 6톤 전차는 Mk. F 규격의 차체를 가진 Mk. E였다.
소련은 T-26 경전차를 대량 생산했고, 폴란드는 7TP 전차를 개발했다.
3. 1. A형 (쌍포탑형)
1928년에 개발된 빅커스 Mk.E 전차의 초기 형식으로, 2개의 포탑을 가졌으며 각 포탑에는 빅커스 기관총이 1정씩 설치되었다.[3] 주로 초기 생산 모델에 적용되었다.
- '''빅커스 6톤 전차 Type A''' : 쌍포탑(총탑)형 기관총 장비형. 포탑의 모양, 차체의 세부 사항에는 수출국의 요구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3. 2. B형 (단일 포탑형)
1928년에 개발된 빅커스 Mk.E B형은 기관총 1정과 단포신 47mm 포를 1개의 2인승 포탑에 장착했다. 2인승 포탑은 당시 혁신적인 설계로 평가받았는데, 이는 두 무기의 발사 속도를 크게 향상시켰기 때문이다. 설계자들이 "이중 설치"(duplex mounting)라고 부른 이 설계는 이후 모든 전차 설계의 공통적인 요소가 되었다.[3]3. 3. Mk. F
암스트롱 시들리제 공랭 엔진의 과열 문제와 마력 강화를 위해 롤스로이스 팬텀 II 수랭 6기통 120 hp 엔진을 탑재한 발전형이다. 1934년에 개발된 단포탑형이다. 원래 공랭 직렬 4기통 엔진을 옆으로 눕혀 탑재했던, 낮은 높이의 일반 Mk. E의 엔진룸에는 수납되지 않아 전투실을 후방으로 연장하고, 그 전투실 좌측에 엔진을 탑재했다. 이 때문에 일반형 Mk. E에서 전투실 좌측에 있던 포탑은 우측 끝 약간 후방으로 옮겨졌다. 머플러는 좌측에 배치되었다. 차체 전방에 큰 커버가 있는 공기 흡입구를 가지고 있다. FT-17의 후계를 찾고 있던 벨기에 육군에 제안했지만, 시험 결과 전투실 내부가 좁고 덥고, 공기 흡입구가 표적이 된다는 이유로 채택을 거부당했다. 영국의 군비 확충 계획이 시작되면서 빅커스사가 그쪽에 주력하게 되어 시제품으로만 남았다.[15]4. 주요 사용 국가
영국 육군은 빅커스 6톤 전차를 채택하지 않았지만, 여러 국가에 수출되어 사용되었다. 주요 사용 국가와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국가 | 도입 수량 | 사용 목적 및 특이사항 |
|---|---|---|
| 볼리비아 | A형 1대, B형 2대 | 남아메리카 최초 실전 투입 (차코 전쟁, 1933년)[11] |
| 타이 | B형 30대 | 프랑스-태국 전쟁 투입 (1940년 12월 ~ 1941년 1월)[13] |
| 불가리아 | B형 8대 | 훈련용[11] |
| 그리스 | A형, B형 각 1대 | 시험용, 1940년 이탈리아 침공에 맞서 사용[12] |
| 포르투갈 | 2대 | 시험용[4] |
| 스페인 | T-26, 볼리비아 노획 B형 1대 | - |
| 터키 | A형 16대 | -[13] |
| 루마니아 | 최소 19대 | 적군으로부터 노획[14] |
| 영국 | 4대 | 훈련용 |
4. 1. 중화민국
1935년 이후, 중화민국은 표준 차체 단포탑형 빅커스 6톤 전차 20대를 구입했다. 처음 도착한 16대는 통상적인 단포탑형이었고, 다음 4대는 포탑에 돌출부를 가진 무선기 탑재형이었다.[12] 제2차 상하이 사변에서 시내 방어전에 투입되어 일본군과 교전을 벌였으며, 이 중 일부는 일본군에 노획되었다.

4. 2. 소련
1930년 소련은 빅커스 6톤 전차 15대와 라이선스 생산권을 획득했다.[16] 이듬해부터 T-26 생산을 시작, 1940년까지 1만 대 이상의 T-26을 생산했다. T-26은 스페인 내전 등 다양한 전장에서 활약했다.초기 T-26은 2개의 포탑에 각각 7.62mm DT 기관총을 장착하거나, 기관총 1정과 37mm 포를 혼합 탑재했다. 이후 개량형은 45mm 주포와 2정의 DT 기관총을 장착했다.[16] T-26의 최종 버전은 차체와 포탑에 경사 장갑을 적용했다. T-26은 화염방사기, 교량 전차 등 다양한 파생형으로 활용되었으며, 무선 조종 파괴 전차도 T-26 차체를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스페인 내전에서 소련은 300여 대의 T-26을 공화파 군대에 지원했다.[17] 1937년 3월, 과달라야라 전투에서 공화파 T-26에 피해를 본 이탈리아군은 노획한 T-26을 참고하여 M13/40 전차를 개발했다.[17]
4. 3. 폴란드
폴란드는 빅커스 6톤 전차 설계에 만족하여 50대를 구매하고 자국에서 면허 생산했다.[4] 폴란드는 빅커스 6톤 전차에 디젤 엔진과 기관총, 그리고 더 커진 공기 흡입구를 장착하는 개조 작업을 수행했고, 이를 7TP라 명명하여 채용했다. 원래의 빅커스 6톤 전차는 38대만 운용되었고, 12대는 조립되지 않은 채 예비 부품으로 활용되었다.[4] 38대의 원래 2포탑 전차 중 22대는 나중에 개량된 포탑 및 47mm 주포를 탑재한 1개 포탑형(표준 B형)으로 개조되었다.
이 전차들은 5년 동안 훈련 부대에서 사용되었기 때문에 1939년에는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러나 1939년 폴란드 침공 당시 10. 기병 여단의 일환으로 르노 R35와 함께 실전에 투입되어 독일군을 상대로 좋은 성능을 발휘했다.
4. 4. 핀란드
1939년 소련과 핀란드 간의 겨울 전쟁 발발 당시, 핀란드군 기갑부대는 32대의 구식 르노 FT-17 전차, 기관총으로 무장한 몇 대의 빅커스-카든-로이드 Mk. IV 등과 함께 26대의 빅커스 6 톤 전차를 보유하고 있었다.[6] 이 전차들은 종전 후 37mm 보포스 대전차포로 주무장이 교체되었다.[6] 이 중 13대만이 전선에 투입되어 전투에 참가했다.[6]1940년 2월 26일 혼카니미 전투에서 핀란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빅커스 전차를 소련군 기갑부대와 전투에 투입했다. 결과는 참혹했는데, 핀란드군 빅커스 6톤 전차 13대 중 6대만이 전투에 참가할 수 있었고, 그 중 1대는 참호를 넘지 못해 전진을 멈춰야 했다. 남은 5대는 수백 미터를 전진했으나 소련군 전차 12대와 교전하여 3대를 격파했지만, 곧 핀란드군 전차들도 격파되었다.[7] 이후 핀란드군은 2대의 빅커스 전차를 더 잃었다.[8]
1941년 핀란드는 보유한 빅커스 6톤 경전차에 겨울 전쟁 중 노획한 소련제 45mm 포를 장착하고 '''T-26E'''로 개명했다.[9] 핀란드 육군은 계속 전쟁 기간 동안 이 개조된 빅커스 전차들을 사용했다. 19대가 개조되었고, 75대의 소련제 T-26 경전차와 함께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에도 계속 사용되었다.[9] 핀란드군은 1959년까지 이 개조형 빅커스들 중 일부를 훈련용으로 사용했고, 이후 영국 및 소련제 전차들로 교체했다.[10]
4. 5. 일본
대일본 제국은 1930년(쇼와 5년)에 연구 목적으로 빅커스 6톤 Type A 쌍포탑형 무선기 탑재형 1대를 수입했다. 궤도와 차량 탑재형 무선기 연구에 사용되었으며, 망간강제 궤도가 이후 일본 전차의 표준으로 채택되었고, 차체는 95식 경전차 개발의 참고가 되었다.[4] 이후 1937년(쇼와 12년) 제2차 상하이 사변 중 8월 21일 상하이 공평로 부근 전투에서 해군 특별 육전대 야스다 부대(고 제1특별 육전대, 사령 야스다 요시타츠 해군 중좌)가 국민혁명군이 보유하고 있던 Type B 단포탑형 무선기 탑재형 등을 총 3량 노획했다(다음날 22일에 자진에 예인).[4]일본에서는 '''비커스 경전차'''로 호칭되었다.[4]
4. 6. 기타 국가
- - A형(쌍포탑) 1대와 B형(단일 포탑) 2대를 사용했다. 볼리비아의 빅커스 전차는 남아메리카에서 처음으로 실전에 투입된 전차로, 1933년 파라과이와의 차코 전쟁에 참전했다.[11]
- - 빅커스 Mk.E B형 30대를 사용했다. 태국 육군의 B형 빅커스는 1940년 12월부터 1941년 1월까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서 벌어진 프랑스-태국 전쟁에 투입되었다.[13]
- - Mk.E B형 8대를 구매하여 훈련용으로 사용했다.[11]
- - 1931년 시험용으로 A형과 B형 각각 1대를 도입했다. 이 전차들은 1940년 이탈리아의 침공에 맞서 싸웠다.[12]
- - 시험용으로 2대를 구매했다.[4]
- - 소련제 T-26 경전차와 볼리비아에서 노획한 단일 포탑 빅커스 Mk.E B형 1대를 사용했다.
- - 1940년부터 A형 전차 16대를 사용했다.[13]
- - 적군으로부터 최소 19대를 노획했다.[14]
5. 제원
1928년에 개발된 빅커스 Mk.E는 존 발렌타인 카든과 비비안 로이드 등 유명 전차 설계자들이 참여했다. 차체는 리벳으로 고정된 강철판으로 만들어졌으며, 장갑은 전면과 포탑이 최대 25mm, 차체 상부는 19mm였다. 추진은 80~95마력(버전에 따라 다름)을 내는 암스트롱 시들리 푸마 엔진을 사용하여 도로에서 최고 35km/h의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서스펜션은 2개의 차축을 사용, 판 용수철(leaf spring)로 연결된 2개의 바퀴로 구성된 보기륜에 힘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당시 기준으로 우수한 야지 성능을 보였다. 고강도 강철 궤도는 5000km 이상의 수명을 제공했다.
빅커스 6톤 전차는 두 가지 주요 버전으로 제작되었다.
- '''A형:''' 빅커스 기관총을 장착한 2개의 포탑
- '''B형:''' 기관총 1정과 단포신 47mm 포를 갖춘 2인승 포탑
B형은 2인승 포탑을 채택하여 무기 발사 속도를 높이는 혁신적인 설계로, 이후 전차 설계의 표준이 되었다.
영국 육군은 채택하지 않았지만, 소련, 그리스, 폴란드, 볼리비아, 시암(태국), 핀란드, 포르투갈, 중국, 불가리아 등 여러 국가에서 주문했다. 빅커스는 총 153대의 빅커스 6톤을 생산했다.
폴란드에서의 시험 결과, 공랭식 푸마 엔진의 과열 문제가 발생하여 차체 측면에 더 큰 공기 통풍구를 추가했다. 벨기에는 롤스로이스 팬텀II 수냉식 엔진으로 교체한 Mk.F 모델을 주문했으나, 시험 결과 채택하지 않았다.
60파운드 포(127mm)를 견인하는 포병 트랙터 용도로 Mk.E를 개조한 Dragon, Medium Mark IV는 영국 육군이 12대, 중국이 23대, 인도가[15] 18대를 주문했다.
5. 1. 일반 제원
1928년에 개발된 빅커스 Mk.E는 존 발렌타인 카든과 비비안 로이드 등 유명 전차 설계자들이 참여했다. 차체는 리벳으로 고정된 강철판으로 만들어졌으며, 전면과 포탑 장갑은 최대 25mm, 차체 상부는 19mm였다. 암스트롱 시들리 푸마 엔진을 탑재하여 도로에서 최고 35km/h의 속도를 낼 수 있었다.서스펜션은 2개의 차축을 사용, 판 용수철(leaf spring)로 연결된 2개의 바퀴로 구성된 보기륜에 힘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당시 기준으로 우수한 야지 성능을 보였다. 고강도 강철 궤도는 5000km 이상의 수명을 제공했다.
빅커스 6톤 전차는 두 가지 주요 버전으로 제작되었다.
- '''A형:''' 빅커스 기관총을 장착한 2개의 포탑
- '''B형:''' 기관총 1정과 단포신 47mm 포를 갖춘 2인승 포탑
B형은 2인승 포탑을 채택하여 무기 발사 속도를 높이는 혁신적인 설계로, 이후 전차 설계의 표준이 되었다.
영국 육군은 채택하지 않았지만, 소련, 그리스, 폴란드, 볼리비아, 시암(태국), 핀란드, 포르투갈, 중국, 불가리아 등 여러 국가에서 주문이 이어졌다. 빅커스는 총 153대의 빅커스 6톤을 생산했다.
폴란드에서의 시험 결과, 공랭식 푸마 엔진의 과열 문제가 발생하여 차체 측면에 더 큰 공기 통풍구를 추가하는 방안이 제안되었다. 벨기에는 롤스로이스 팬텀II 수냉식 엔진으로 교체한 Mk.F 모델을 주문했으나, 시험 결과 채택하지 않았다.
60파운드 포(127mm)를 견인하는 포병 트랙터 용도로 Mk.E를 개조한 Dragon, Medium Mark IV는 영국 육군이 12대, 중국이 23대, 인도가[15] 18대를 주문했다.
5. 2. 무장
A형은 빅커스 기관총 2정을, B형은 단포신 47mm 3파운더 포 1문과 기관총 1정을 장착했다.[3] B형의 2인용 포탑은 두 무기의 발사 속도를 높이는 동시에 두 무기를 동시에 발사할 수 있게 하여, 이후 전차 설계의 일반적인 요소가 되었다.
5. 3. 엔진
1928년에 개발된 빅커스 Mk.E는 존 발렌타인 카든과 비비안 로이드 등 유명 전차 설계자들이 개발에 참여했다. 추진력은 80~95마력(버전에 따라 다름)을 내는 암스트롱 시들리 푸마 엔진을 사용했다. 이 엔진은 암스트롱 휘트워스사가 1917년에 개발한 항공기용 수냉 직렬 6기통 가솔린 엔진 "시들리 푸마"(Siddeley Puma, 최고 출력 265 hp/1500 rpm)를 기반으로 공랭 4기통화하여 출력을 절반으로 낮춘 것이었다. 그러나 공랭화로 인해 과열 문제가 발생했다. 이 엔진 덕분에 빅커스 6톤은 도로에서 최고 22mph의 속도를 낼 수 있었다.5. 4. 장갑
차체는 리벳으로 고정된 강철판으로 제작되었으며, 차체 및 포탑 전면의 장갑판 두께는 25mm였고, 차체 상부는 19mm였다.[15]6. 평가 및 의의
빅커스 6톤 전차는 당시 기준으로 혁신적인 설계를 갖춘 경전차였다. 특히 B형에서 채택된 2인승 포탑은 포와 기관총의 발사 속도를 크게 높여 이후 전차 설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보기륜 방식 서스펜션 또한 주목할 만한 특징이었다.
영국 육군은 채택하지 않았지만, 소련, 폴란드, 핀란드 등 여러 나라에 수출되어 제2차 세계 대전 초기까지 사용되었다. 각국의 전차 개발에도 기여했는데, 폴란드는 7TP를, 소련은 T-26 경전차를 개발하는 기반이 되었다.
6. 1. 한계
1928년에 개발된 빅커스 Mk.E는 초기 모델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우선, 폴란드에서 실시된 시험 결과, 공랭식 푸마 엔진의 공기 흡입량 부족으로 인해 엔진이 과열되는 경향이 있었다.[16] 이는 차체 측면에 더 큰 공기 통풍구를 추가하여 어느 정도 해결되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또한, 차체 및 포탑 전면 장갑판 두께는 25mm, 차체 상부의 얇은 부분은 19mm 정도로, 당시 기준으로도 충분한 방호력을 제공하지 못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더 강력한 화력과 장갑을 갖춘 전차들이 등장하면서 빅커스 6톤 전차는 점차 구식 전차로 전락하게 되었다.
7. 대중문화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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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arfare.gq/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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