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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호 (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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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소호(少昊)는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로, 황제의 아들이자 동이의 지도자로 묘사된다. 그는 금천씨(金天氏)로도 불리며, 84년간 재위했고 100세에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다. 소호는 한국의 김씨 성씨의 시조로 여겨지기도 하며, 특히 경주 김씨와 김해 김씨는 소호를 시조로 언급한다. 소호에 대한 기록은 《산해경》, 《춘추좌씨전》, 《사기》 등 다양한 고대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소호릉은 산둥성 취푸시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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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호 (오제)
개요
유명한 사람들의 초상화 - 소호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소장된 년경의 "유명한 사람들의 초상화" 앨범에 묘사된 소호
희 (姬, Ji)
이름교극 (蟜極, Jiāojí)
현효 (玄囂, Xuánxiāo)
존칭금천씨 (金天氏, Jīntiānshì)
백제 (白帝, Báidì)
가족 관계
아버지황제
어머니누조
자녀교극
통치 정보
직위군주
계승자황제
승계자전욱

2. 사서 원문

소호에 관한 기록은 다음 표와 같다.

문헌내용
산해경「대황동경」, 「대황남경」
『춘추명력서』
『역위계람도』
『일주서』
사기
춘추좌씨전소공 17년
『곡부현지』


2. 1. 산해경

밖의 큰 산골짜기에 소호의 나라가 있다는 기록이 산해경의 「대황동경」, 「대황남경」에 전해진다.[1]

2. 2. 춘추

소호는 성이 기(己)이고, 일설에는 영(嬴)이라고도 한다. 이름은 지(摯)이며, 호는 금천씨(金天氏)이다. 또한 주제(朱帝), 백제(白帝), 서황(西皇), 궁상씨(穷桑氏), 공상씨(空桑氏)로도 불린다. 84년 동안 재위했으며, 100세에 사망했다. 그 후를 이은 담자국(郯子国)에서는 소호를 높은 조상으로 존경하며 받들었다.[1]

소호와 관련된 기록은 다음과 같다.

문헌내용
산해경「대황동경」, 「대황남경」
『춘추명력서』
『역위계람도』
『일주서』
사기
춘추좌씨전소공 17년
『곡부현지』


3. 전승

소호는 청양씨(青陽氏), 금천씨(金天氏), 궁상씨(窮桑氏), 운양씨(雲陽氏), 주선(朱宣) 등으로도 불린다. 전설에 따르면 소호금천씨는 성은 기(己), 이름은 철(摰) 또는 질(質)이었으며, 황제 헌원의 아들이었다고 한다. 동이의 수령이었다고도 전해진다. 소호는 오제에 관한 전설과 기록에 따라 오제에 포함되기도 하고, 빠지기도 한다. 전설에 따르면 소호가 즉위했을 때 봉황이 날아왔다고 한다.[12]

로사》에서는 황제의 손자로 여겨지며[6], 어머니는 뢰조이다. 서해 근처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궁상(현재의 산둥성 취푸 시)에서 태어났다.[7] 《사기》 오제본기에는 교극의 아버지 제곡의 할아버지에 해당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오행상에서는 금덕, 서방, 백색을 나타낸다고 하며, 금천씨, 백제라는 칭호는 그것에서 유래한다.

동해의 청양에 나라를 세웠고, 후에 도읍을 취푸에 두었다고 한다. 《춘추좌씨전》 소공 17년 항목에는 역법을 작성하고, 관명을 현조씨, 백조씨, 청조씨, 단조씨 등 조류의 이름으로 불렀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신이경》에서는 사흉 중 하나인 궁기는 소호의 자손이라고 한다.[8]

삼국사기김유신 열전에 따르면, 신라무장 김유신은 금관가야 왕가의 자손이며, 그 시조인 수로왕은 소호의 자손에 해당한다.[9] 궁상은 높이가 1만 에 달하는 의 거목으로, 붉은 잎을 지니고 있으며, 1만 년에 한 번 장수의 효과가 있는 열매를 맺는다고 전해진다.[7] 강수 옆에 서 있었다고 전설에 기록되어 있다.

선녀 황아(皇娥)는 천궁에서 사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직물을 짜는 일을 했지만, 어느 날 일을 쉬고 은하수를 뗏목으로 내려가, 신목 궁상 아래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훗날 황제와 만나 소호를 낳았다고 전해진다.[10]

3. 1. 표준 전설

소호는 청양씨(青陽氏), 금천씨(金天氏), 궁상씨(窮桑氏), 운양씨(雲陽氏), 주선(朱宣) 등으로 불린다. 전설에 따르면 소호금천씨는 성은 기(己), 이름은 철(摰) 또는 질(質)이었으며, 황제 헌원의 아들이었다고 한다. 궁상에서 태어나 동이의 수령이었다고도 전해진다. '''소호'''(少昊)는 오제에 관한 전설과 기록에 따라 오제에 포함되기도 하고, 빠지기도 한다. 전설에 따르면 소호가 즉위했을 때 봉황이 날아왔다고 한다.[12]

소호의 기원은 기원후 1세기부터 신뢰할 수 있게 추적할 수 있지만, 전통적인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황제의 아들이라고 한다.[1] 그는 84년 동안 동이의 지도자로 통치했으며, 그 기간 동안 수도를 취푸로 옮겼다. 그의 뒤를 이어 형 창의의 아들인 전욱이 왕위를 계승했다.

그러나 사기에는 황제와 전욱 사이에 황제가 언급되어 있지 않다. 소호는 그 사이에 살고 있으며, 무능한 아들 궁기(窮奇|l=Extremely odd중국어) 때문에 초조해하는 인물로 언급되어 있다. 소호가 현효(玄囂중국어)와 동일시된다면, 사기에서 현효를 황제의 맏아들이라고 주장하므로, 궁기는 현효의 유일한 알려진 자손인 교지와 동일시될 것이다. 교지는 황제로 즉위하지 못했지만, 그의 아들 제곡, 손자 제지제요는 모두 황제가 되었다.

죽서기년에는 소호가 황제의 아들이 아니라 화저(華渚)로 흘러내리는 무지개 같은 별을 보고 기적적으로 그를 잉태한 여절(女節)의 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그의 어머니는 별의 여신인 직녀로, 황아라는 아름다운 요정이었으며, 금성(the planet Venus)을 짝사랑하며 은하수를 따라 흘러다녔다. 두 사람은 그녀의 뗏목에서 많은 밤을 함께 보내며 아들을 낳았다. 곧 그녀는 소호를 낳았고, 소호는 잠재력이 많은 잘생긴 청년으로 성장했다. 여기서 그의 고모부인 황제는 소호에게 깊은 감명을 받아 그를 서천의 신으로 임명했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소호는 동방의 낙원에 있는 다섯 개의 산에 다양한 종류의 새들이 사는 왕국을 세웠다. 이 땅의 통치자로서 그는 독수리의 정체성을 획득했고, 다른 새들은 그 밑에서 일했다. 봉황은 그의 재상이었고, 매는 법을 위임했으며, 비둘기는 교육을 담당했다. 그는 일 년의 네 계절이 나머지 새들을 지켜보도록 했다.

취푸 근처 소호릉의 석조 피라미드


그의 왕국은 여러 해 동안 성공했지만 그는 서쪽으로 돌아가 그의 새 왕국을 아들 충에게 맡겼다. 다른 아들 여수와 함께 그는 장류산에 정착하여 서천을 다스릴 수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로서 그들은 매일 해가 지는 것을 책임졌다. 또한 소호는 중국에 25현금(lute)을 소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황제의 아들(《로사》에서는 손자로 여겨진다[6])로, 어머니는 뢰조이다. 서해 근처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궁상(현재의 산둥성 취푸 시)에서 태어났다.[7] 《사기》 오제본기에는 교극의 아버지 제곡의 할아버지에 해당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오행상에서는 금덕, 서방, 백색을 나타낸다고 하며, 금천씨, 백제라는 칭호는 그것에서 유래한다.

동해의 청양에 나라를 세웠고, 후에 도읍을 취푸에 두었다고 한다. 《춘추좌씨전》 소공 17년 항목에는 역법을 작성하고, 관명을 현조씨, 백조씨, 청조씨, 단조씨 등 조류의 이름으로 불렀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신이경》에서는 사흉 중 하나인 궁기는 소호의 자손이라고 한다.[8]

삼국사기김유신 열전에 따르면, 신라무장 김유신은 금관가야 왕가의 자손이며, 그 시조인 수로왕은 소호의 자손에 해당한다.[9]

3. 2. 다른 전설들

소호는 청양씨(青陽氏), 금천씨(金天氏), 궁상씨(窮桑氏), 운양씨(雲陽氏), 주선(朱宣)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전설에 따르면 소호는 황제 헌원의 아들이라고도 하며, 궁상에서 태어나 동이의 수령이었다고도 한다. 소호가 즉위했을 때 봉황이 날아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12]

사기에는 황제와 전욱 사이에 소호가 언급되지 않는다. 다만, 소호는 그 사이에 살면서 무능한 아들 궁기 때문에 초조해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만약 소호가 현효와 동일인물이라면, 궁기는 현효의 유일한 자손인 교지와 동일시될 수 있다. 교지는 황제가 되지 못했지만, 그의 아들 제곡과 손자 제지, 제요는 모두 황제가 되었다.

죽서기년에는 소호가 황제의 아들이 아니라, 화저(華渚)로 흘러내리는 무지개 같은 별을 보고 기적적으로 소호를 잉태한 여절(女節)의 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소호의 어머니는 별의 여신인 직녀로, 황아(皇娥)라는 아름다운 요정이었다. 그녀는 금성(the planet Venus)을 짝사랑하며 은하수를 따라 흘러다녔고, 뗏목에서 함께 밤을 보내며 소호를 낳았다. 소호는 잠재력이 많은 청년으로 성장했고, 황제는 그를 서천의 신으로 임명했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소호는 동방의 낙원에 있는 다섯 개의 산에 다양한 종류의 새들이 사는 왕국을 세웠다. 그는 독수리의 정체성을 획득하고, 봉황은 재상, 매는 법, 비둘기는 교육을 담당하게 했다. 그는 일 년의 네 계절이 나머지 새들을 지켜보도록 했다.

소호는 여러 해 동안 왕국을 성공적으로 다스렸지만, 서쪽으로 돌아가 새 왕국을 아들 충에게 맡겼다. 다른 아들 여수와 함께 장류산에 정착하여 서천을 다스렸다. 아버지와 아들은 매일 해가 지는 것을 책임졌다. 또한 소호는 중국에 25현금(lute)을 소개했다고 전해진다.

로사》에서는 소호가 황제의 아들(손자)이고, 어머니는 뢰조라고 한다.[6] 궁상(현재의 산둥성 취푸 시)에서 태어났으며[7], 《사기》 오제본기에는 교극의 아버지 제곡의 할아버지에 해당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오행상으로는 금덕, 서방, 백색을 나타내며, 금천씨, 백제라는 칭호는 거기에서 유래한다.

동해의 청양에 나라를 세웠고, 후에 도읍을 취푸에 두었다고 한다. 《춘추좌씨전》 소공 17년 항목에는 역법을 작성하고, 관명을 현조씨, 백조씨, 청조씨, 단조씨 등 조류의 이름으로 불렀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신이경》에서는 사흉 중 하나인 궁기가 소호의 자손이라고 한다.[8]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 따르면, 신라무장 김유신은 금관가야 왕가의 자손이며, 그 시조인 수로왕은 소호의 자손에 해당한다.[9]

궁상(窮桑)은 높이가 1만 에 달하는 의 거목으로, 붉은 잎을 지니고 있으며, 1만 년에 한 번 장수의 효과가 있는 열매를 맺는다고 전해진다.[7] 강수 옆에 서 있었다고 전설에 기록되어 있다.

선녀 황아(皇娥)는 천궁에서 사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직물을 짜는 일을 했지만, 어느 날 일을 쉬고 은하수를 뗏목으로 내려가 신목 궁상 아래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훗날 황제와 만나 소호를 낳았다고 전해진다.[10]

4. 소호금천씨와 김씨(金氏)

소호는 청양씨(青陽氏), 금천씨(金天氏), 궁상씨(窮桑氏), 운양씨(雲陽氏), 주선(朱宣)으로도 불린다. 전설에 따르면 성은 기(己), 이름은 철(摰) 또는 질(質)이며, 황제 헌원의 아들이었다고 한다. 궁상에서 태어나 동이의 수령이었다고도 전해진다. 소호(少昊)는 오제에 관한 전설과 기록에 따라 오제에 포함되기도 하고, 빠지기도 한다. 전설에서는 소호가 즉위했을 때 봉황이 날아왔다고 전해진다.[12]

4. 1. 소호금천씨 김씨조상설

소호금천씨는 한국과 중국의 김씨들의 조상으로 많이 언급된다.[13] 특히 경주 김씨김해 김씨는 소호금천씨를 시조로 언급한 기록이 전하기도 한다.[14] 당나라에 살았던 신라인 김씨 부인의 행적을 기록한 대당고김씨부인묘명(大唐故金氏夫人墓銘)에는 신라 김씨의 조상이 소호씨금천(少昊氏金天)이라고 새겨져 있다.[15]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에는 가야 출신인 김유신 장군의 묘비명에 가야 김씨가 소호금천씨의 후손이라고 새겨져 있다는 기록이 있다.[16] 소호금천을 국조로 삼는 나라가 담국이었으며 새들로 관직명을 정했다. 《삼국사기》에는 김유신이 소호의 후손이라고 언급되어 있다.[3]

4. 2. 역사적 기록

소호금천씨는 한국과 중국의 김씨들의 조상으로 많이 언급된다.[13] 특히 한국의 성씨인 경주 김씨김해 김씨는 소호금천씨를 시조로 언급한 기록이 전하기도 한다.[14] 당나라에 살았던 신라인 김씨 부인의 행적을 기록한 대당고김씨부인묘명(大唐故金氏夫人墓銘)에는 신라 김씨의 조상이 소호씨금천(少昊氏金天)이라고 새겨져 있다.[15]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에는 가야 출신인 김유신 장군의 묘비명에 가야 김씨가 소호금천씨의 후손이라고 새겨져 있다는 기록이 있다.[16] 소호금천을 국조로 삼는 나라는 담국이었으며 새들로 관직명을 정했다.

소호(少昊)의 기원은 기원후 1세기부터 신뢰할 수 있게 추적할 수 있지만, 전통적인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황제의 아들이라고 한다.[1] 또한 그는 84년 동안 동이의 지도자로 통치했으며, 그 기간 동안 수도를 취푸로 옮겼다.

그러나, 사기에는 황제와 전욱 사이에 황제가 언급되어 있지 않다. 소호는 그 안에 두 사람 사이에 살고 있으며, 무능한 아들 궁기 때문에 초조해하는 인물로 언급되어 있다. 만약 소호가 현효와 동일시된다면—사기는 현효를 황제의 맏아들이라고 주장한다—무능한 궁기는 현효의 유일한 알려진 자손인 교지와 동일시될 것이다. 교지 역시 황제로 즉위하지 못했지만, 그의 아들 제곡, 손자 제지제요는 결국 모두 황제가 되었다.

전통적으로 소호릉으로 알려진 장소는 현재 취푸 동쪽 외곽에 있는 지우시안 마을에 위치해 있으며, 아마도 송나라 시대에 건설되었을 것이다.

황제의 아들 (《로사》에서는 손자로 여겨진다[6]), 어머니는 뢰조이다. 서해 근처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궁상(현재의 산둥성 취푸 시)에서 태어났다.[7] 《사기》 오제본기에는 교극의 아버지 제곡의 할아버지에 해당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오행상에서는 금덕, 서방, 백색을 나타낸다고 하며, 금천씨, 백제라는 칭호는 그것에 유래한다.

동해의 청양에 나라를 세웠고, 후에 도읍을 취푸에 두었다고 한다. 《춘추좌씨전》 소공 17년의 항목에는 역법을 작성하고, 관명을 현조씨, 백조씨, 청조씨, 단조씨 등 조류의 이름으로 불렀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신이경》에서는 사흉 중 하나인 궁기는 소호의 자손이라고 한다.[8]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 따르면, 신라무장 김유신은 금관가야 왕가의 자손이며, 그 시조인 수로왕은 소호의 자손에 해당한다.[9]

5. 소호의 치세

소호는 청양씨(青陽氏), 금천씨(金天氏), 궁상씨(窮桑氏), 운양씨(雲陽氏), 주선(朱宣) 등으로 불린다. 전설에 따르면 성은 기(己), 이름은 철(摰) 또는 질(質)이며, 황제 헌원의 아들이었다고 한다. 동이의 수령이었다고도 전해진다. '''소호'''(少昊)는 오제에 관한 전설과 기록에 따라 오제에 포함되기도 하고, 빠지기도 한다. 전설에 따르면 소호가 즉위했을 때 봉황이 날아왔다고 한다.[12]

죽서기년에는 소호가 황제의 아들이 아니라, 화저(華渚)로 흘러내리는 무지개 같은 별을 보고 기적적으로 그를 잉태한 여절(女節)의 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소호의 어머니는 별의 여신인 직녀로, 황아라는 아름다운 요정이었으며, 금성(the planet Venus)을 짝사랑하며 은하수를 따라 흘러다녔다. 두 사람은 뗏목에서 많은 밤을 함께 보내며 아들을 낳았다. 그녀는 소호를 낳았고, 소호는 잠재력이 많은 잘생긴 청년으로 성장했다. 그의 고모부인 황제는 소호에게 깊은 감명을 받아 그를 서천의 신으로 임명했다.

로사》에서는 소호를 황제의 손자로 보기도 한다.[6] 소호는 서해 근처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궁상(현재의 산둥성 취푸 시)에서 태어났다.[7]사기》 오제본기에는 교극의 아버지 제곡의 할아버지에 해당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오행상으로는 금덕, 서방, 백색을 나타낸다고 하며, 금천씨, 백제라는 칭호는 그것에서 유래한다.

《신이경》에서는 사흉 중 하나인 궁기가 소호의 자손이라고 한다.[8]

삼국사기김유신 열전에 따르면, 신라무장 김유신은 금관가야 왕가의 자손이며, 그 시조인 수로왕은 소호의 자손에 해당한다.[9]

5. 1. 도읍과 통치

소호는 동해의 청양에 나라를 세웠고, 후에 도읍을 취푸에 두었다고 한다. 《춘추좌씨전》 소공 17년의 항목에는 역법을 작성하고, 현조씨, 백조씨, 청조씨, 단조씨 등 조류의 이름으로 관명을 불렀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7]

전설에 따르면 소호는 동방의 낙원에 있는 다섯 개의 산에 다양한 종류의 새들이 사는 왕국을 세웠다. 이 땅의 통치자로서 그는 독수리의 정체성을 획득했고, 다른 새들은 그 밑에서 일했다. 봉황은 그의 재상이었고, 는 법을 위임했으며, 비둘기는 교육을 담당했다. 그는 일년의 네 계절이 나머지 새들을 지켜보도록 했다.

그의 왕국은 여러 해 동안 성공했지만 그는 서쪽으로 돌아가 그의 새 왕국을 아들 충에게 맡겼다. 다른 아들 여수와 함께 그는 장류산에 정착하여 서천을 다스릴 수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로서 그들은 매일 해가 지는 것을 책임졌다. 또한 소호는 중국에 25현금(lute)을 소개한 것으로 여겨진다.

5. 2. 궁상(窮桑) 전설

소호는 청양씨(青陽氏), 금천씨(金天氏), 궁상씨(窮桑氏), 운양씨(雲陽氏), 주선(朱宣)으로도 불린다. 소호금천씨는 전설에서 성은 기(己), 이름은 철(摰) 또는 질(質)이었으며 황제 헌원의 아들이었다고 한다. 궁상에서 태어나 동이의 수령이었다고도 전해진다.[12] 궁상(窮桑)은 높이가 1만 에 달하는 의 거목으로, 붉은 잎을 지니고 있으며, 1만 년에 한 번 장수의 효과가 있는 열매를 맺는다고 전해진다.[7] 전설에 따르면 강수 옆에 서 있었다고 한다.

선녀 황아(皇娥)는 천궁에서 사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직물을 짜는 일을 하였는데, 어느 날 일을 쉬고 은하수를 뗏목으로 내려가 신목 궁상 아래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훗날 황제와 만나 소호를 낳았다고 전해진다.[10]

6. 소호릉(少昊陵)

나라 건륭 3년(1738년)에 위치를 옮겨 현재의 모습을 갖춘 소호릉은 Chinese pyramids라고 불리는 형태의 능묘 중 하나이다.[11]

7. 역사성과 역사 서술

현대의 학문은 황제 신화의 어떤 부분도 역사적 사건을 묘사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지만, 전통적인 중국 역사학은 그들을 실존 인물로 간주했다. 소호의 계승 순위는 이 주제에 대한 초기 자료에서는 연대 측정이 불가능하며, 소위 "고문(古文) 텍스트"에서만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이후 신빙성이 떨어진 이론에서,[2] 강유위, 구제강, 전목 등이 대표하는 고대사 비판 학파는 소호가 한나라 시대에 황실 사서 유흠에 의해 정통 계보에 삽입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는 현재 군주, 즉 한 황실이나 이를 전복한 짧은 신나라를 정당화하기 위해 고대 텍스트를 광범위하게 개정하려는 캠페인의 일환이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유흠은 오행의 왕조 계승 이론, 즉 다양한 계보 사이를 순환하는 "생성 주기"를 만족스럽게 반영하여 한, 신 또는 둘 다의 통치를 정당화하는 서사를 만들고자 했다.

소호가 중국 동부에 살았던 동이의 실존 통치자인지 전설적인 통치자인지에 대한 논쟁이 있다. 소호에 대한 숭배는 서쪽 진으로 이주를 통해 전해졌다는 이론이 있다. 소호에 대한 문서 증거는 현존하는 고대 텍스트인 ''좌전''에서 기원하지만, 소호를 포함하는 그곳에 언급된 계보는 동시대 또는 이전 텍스트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다. 따라서 고대사 비판 학파는 유흠이 기존의, 그러나 별개의 전설적인 인물로부터 소호를 날조하여 ''좌전''을 편집하는 동안 초기 왕족 계보에 삽입했다고 이론화한다.

운양(雲陽)에 묻혔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산둥성 취푸시에는 소호의 능묘로 여겨지는 언덕이 있으며, 이를 "소호릉"이라고 부른다. 청나라 건륭 3년(1738년)에 위치를 옮겨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11] Chinese pyramids라고 불리는 형태의 능묘 중 하나이다.

참조

[1] 서적 Women and the family in Chinese history https://books.google[...] Psychology Press 2012-04-01
[2] 서적 The Cambridge History of Chinese Literature. Volume 1: To 1375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0
[3] 문서 三國史記』列傳 第一:金庾信 上
[4] 문서 窮桑で生まれたことに拠る 拾遺記
[5] 문서 曲阜の雲陽に葬られたことに拠る
[6] 인용 路史
[7] 서적 中国の神話伝説〈上〉 青土社 1993-04-01
[8] 서적 中国の神話伝説〈上〉 青土社 1993-04-01
[9] 인용 三国史記
[10] 서적 樹木の伝説 新紀元社 2011-07-29
[11] 서적 孔子廟参拝記 平凡社 1941
[12] 문서 春秋左氏傳》 〈昭公〉
[13] 뉴스 신라 김씨 왕족은 흉노의 후손일까? https://n.news.naver[...] 매일신문 2008-11-21
[14] 뉴스 <김성회의 뿌리를 찾아서> <6> 김씨의 기원 http://www.segye.com[...] 세계일보 2011-04-02
[15] 뉴스 문무왕릉비 사실상 다 찾은 셈 http://news.khan.co.[...] 경향신문 2009-09-03
[16] 서적 삼국사기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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