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카와 히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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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시라카와 히데키는 일본의 화학자이자 도쿄공업대학 명예교수이다. 그는 폴리아세틸렌 박막 합성 연구를 통해 전도성 고분자의 개발에 기여했으며, 앨런 매디어미드, 앨런 히거와 함께 2000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폴리아세틸렌에 할로겐을 첨가하여 금속 전도성을 나타내는 것을 발견했고, 액정 기술을 활용한 고분자 개발에도 성공했다. 그는 사회 활동으로 유네스코 위원, 소니 교육 재단 이사 등을 역임했으며, 특정 비밀 보호법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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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카와 히데키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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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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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일 | 1936년 8월 20일 |
출생지 | 일본 도쿄부 요도바시구 (현재 도쿄도 신주쿠구) |
국적 | 일본 |
거주지 | 일본, 미국 |
학력 | |
모교 | 도쿄 공업대학 (현재 도쿄과학대학) |
박사 지도교수 | 간바라 슈 |
학문 지도교수 | 가네마루 기소우 |
경력 | |
주요 소속 | 도쿄 공업대학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쓰쿠바 대학 |
연구 | |
분야 | 화학 |
주요 업적 | 전도성 고분자 |
영향 | 앨런 맥더미드 |
수상 | |
수상 내역 | 노벨 화학상 (2000년) 문화훈장 (2000년) 문화공로자 (2000년) |
기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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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시라카와 히데키는 일본 도쿄도에서 군 의사의 차남으로 태어났으며, 형제자매로 형, 남동생, 여동생이 있었다.[1] 2000년 하계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다카하시 나오코는 그의 사촌 조카이다.[2] 어린 시절 만주국과 타이완에서 살았으며, 초등학교 3학년 무렵에 어머니의 고향인 기후현 다카야마시로 이사했다.
1961년 도쿄공업대학에서 화학공학 학사 학위를, 1966년에는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도쿄공업대학 화학자원 연구소의 조교가 되었다.
1976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박사 연구원으로 앨런 맥더미드 연구실에서 연구를 시작했다.[3][4] 1977년 아이오딘 증기로 도핑하면 폴리아세틸렌의 전도성이 향상될 수 있음을 발견했다.
1979년 쓰쿠바 대학 조교수를 거쳐 1982년 교수로 승진했다. 2000년 쓰쿠바 대학에서 퇴임했으며,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일본학사원 회원이자 내각부 종합과학기술회의 의원을 역임했다.
2. 1. 유년 시절 및 학창 시절
1936년 도쿄부 요도바시구(현 도쿄도 신주쿠구)에서 육군 군의관이었던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5형제 중 셋째로 태어났다.[24] 시라카와의 할아버지와 다카하시 나오코의 큰할머니는 남매 지간으로, 다카하시는 육촌 조카(2종질)에 해당한다.[25]3~4살 경에 아버지의 일 때문에 타이완으로 건너갔다가, 어머니의 본가가 있는 기후현 다카야마에서 단기간 유치원을 다녔다. 이후 다시 아버지의 일 때문에 만주로 이사하면서 랴오양, 안산, 창강자 등 여러 곳에서 거주했다. 만주에 있는 국민학교 3학년이던 1944년에 가족과 함께 한반도를 경유하여 귀국해 다카야마로 돌아왔다.
자연이 풍요로운 다카야마에서 곤충채집을 취미로 삼았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진공관 라디오 제작이나 풀과 꽃에도 흥미를 가졌다. 이 때문에 화학, 전기공학, 농예화학 등을 대학에서 배우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공부한 후에 어떠한 직업을 가질 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중학교 졸업 문집에 ‘장래에는 플라스틱 연구를 하고 싶다’라는 작문을 쓴 적이 있었는데, 훗날 노벨 화학상을 수상할 당시에 널리 보도됐다. 플라스틱에 흥미는 있었으나 작문으로 쓰기 쉬운 대상이었기 때문일 뿐이며, 다른 분야에 대한 흥미도 강했다고 한다.
학창 시절의 경력은 다음과 같다.
연도 | 내용 |
---|---|
1949년 | 다카야마 시립 미나미 초등학교 졸업 |
1952년 | 다카야마 시립 제2 중학교 (현 마츠쿠라 중학교) 졸업 |
1955년 | 기후현립 다카야마 고등학교 졸업 |
1961년 | 도쿄공업대학 이공학부 화학공학과 (현 물질 이공학원 응용화학계) 졸업 |
1966년 | 도쿄공업대학 대학원 이공학부 연구과 화학공학 전공과 박사 과정 수료 |
2. 2. 도쿄 공업대학 시절
두 차례 재수 끝에 1957년 도쿄 공업대학에 입학하여 등산이 취미였기에 산악부와 반더포겔부, 그리고 흥미가 있었던 에스페란토부에 가입했다.[1] 반더포겔은 산악부와 큰 차이가 없어서 1개월 정도로 참가하지 않게 됐고 에스페란토부도 영어 공부에 힘을 쓰기 시작했던 2학년 무렵부터 점점 멀어졌으며 산악부만은 대학원 때까지 활동을 계속하였다고 한다.[2]학업면에서는 도쿄 공업대학에 입학한 것을 계기로 중합체를 연구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화학공학과를 택했다.[3] 3학년 때인 1월에는 졸업 연구를 위한 배속이 정해지면서 지망했던 합성연구실은 인기가 높았고 결국 자신은 제비뽑기로 떨어졌기 때문에 고분자물성과 관련한 연구실로 배속됐다.[4] 당시에는 석사를 채용하는 기업들이 증가하고 있어서 진로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은 채 대학원에 진학했다.[5]
지도 교수였던 가나마루 기소가 다음해에 정년 퇴임을 앞두고 2년 간의 석사 과정 지도를 할 수 없기도 해서 원래 희망했던 합성 연구를 하고 있는 간바라 슈의 연구실로 옮겼다.[6] 강좌에 소속된 3명의 조수 중 한 명이 다루고 있던 테마에서 파생된 연구를 하기 시작했으며[7] 박사 후기 과정 2년일 무렵에는 기업에 취직하는 것은 더 이상 무리라는 심리적인 압박을 느끼면서 장래에 대한 불안이 있었다고 한다.[8] 1966년에 《공중합체의 블럭사슬에 관한 연구》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9][10]
2. 3. 도쿄 공업대학 조수 시절
박사 과정을 수료한 후 시라카와 히데키는 자원화학연구소(현 화학생명과학연구소)의 이케다 사쿠지 강좌의 조수가 되었다.[1] 여기서 탄소-14(C)를 이용한 치글러-나타 촉매에 의한 폴리아세틸렌 중합 메커니즘 연구를 시작했다.[2]한국원자력연구소 연구원 신분으로 이케다 연구소에 와 있던 변형직이 폴리아세틸렌 중합 경험을 희망하여 시라카와는 레시피를 전해주었다. 그런데 변형직이 촉매 농도를 ‘m’이라고 적힌 문자를 잘못 보고 1000배로 만들어 버리는 실수를 했다. 그 탓에 분말이 제대로 생성되지 않고 비커 용액 표면에서 팽윤상태의 파손된 막이 생겨났다.[2] 조사 결과, 폴리아세틸렌 박막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라카와는 촉매 농도를 착각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여 농도를 더욱 진하게 늘려가면서 합성 실험을 하였다.[5] 그 결과, 일정 이상의 농도에서 깔끔한 박막을 얻게 되었고 특히 유리 표면에서 중합시키면 좋다는 것이 며칠 만에 판명됐다.[5] 용매 농도를 큰 폭으로 높였기 때문에 촉매 용액 표면에서 아세틸렌 중합 반응이 급속도로 진행돼 박막이 만들어진다는 것이 원리였다.[1] 생성된 박막을 적외선분광법으로 분석했더니 줄리오 나타가 이전에 보고했던 트랜스형 구조보다도 흡수대 수가 많다는 결과를 얻었다.[5]
이 원인 조사를 위해 인자군해석이나 행렬법으로 계산한 결과, 우선 시스형으로 만들어진 다음에 트랜스형에 이성화하였고 삼중 결합이 시스형으로 열리면서 시스형 폴리아세틸렌이 합성된다는 것이 밝혀졌다.[5] 이 결과에 대해 고분자학회 영문학술지에 적외 분광 논문을 투고하였고, 라만 분광법으로 분석했더니 박막이 아주 얇았기 때문에 흡수 스펙트럼과 전자 스펙트럼을 측정할 수 있었다.[5] 그 결과로부터 공역수가 상당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이와 관련한 논문도 고분자 학회 《''Polymer Journal''》에 게재되었다.[5] 다만, 이 논문들은 심사를 통과하기까지 시간이 걸렸고, 게재 후에도 큰 반향은 없었다.[1]
구조 등이 알려지고 중합 기구를 명확히 하여 1969년까지는 당초 테마를 달성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후에는 전도성 고분자에서 벗어나 환경 관련 연구를 했다.[6] 한편, 폴리아세틸렌 수소를 치환하여 카르빈을 합성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염소나 취소로 수소를 치환한 후 수산화 나트륨이나 암모니아 등 염기로 그것을 제거하려는 실험도 했다.[6] 반응 후 시료 원소분석을 진행하자, 98%가 탄소였지만, 카르빈이 아닌 비정질 탄소로 되어 있는 것이 밝혀졌다.[6] 고온 처리에 따른 흑연화도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폴리아세틸렌에서 유래된 비정질 탄소는 난흑연화탄소임을 알 수 있었다.[7]
폴리아세틸렌에 관한 마지막 시험으로 염소를 더했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조사했는데, 경미한 반응으로 박막이 검게 변했고 전자 상태가 크게 바뀌어 분자 진동에 의한 흡수가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됐다.[7] 이때 적외선을 투과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폴리아세틸렌 박막화에 필적할 정도로 인상에 남았다고 한다.[8] 이후 탄소에 양의 전하가 부여되었고 적외 활성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도핑에 의해 그러한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은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7]
2. 4. 맥더미드 & 히거와의 공동 연구
1975년 앨런 맥더미드가 자원연구소를 방문했을 때 황화 질소(SN)의 금색 결정을 가져온 것에서, 시라카와가 합성했던 은빛의 폴리아세틸렌 박막과의 상관성을 야마모토 아키오가 깨닫고 시라카와를 맥더미드에게 소개했다. 맥더미드는 이 박막에 매우 흥미를 느껴 그 자리에서 공동 연구를 제안했다고 한다.1976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의 맥더미드 연구실의 박사연구원이 되었고, 같은 해 9월 노동절 직후부터 해당 지역에서의 연구를 시작했다. 폴리아세틸렌의 전기전도성을 높이기 위해 할로젠으로 도프를 실시했다. 그해 11월 23일, 측정용 단자를 붙인 폴리아세틸렌을 아르곤 가스를 가득 채운 삼각 플라스크 안에 넣고 할로젠의 일종인 브로민을 주사기로 적하시킨 결과, 약 한 방울에 4-5자리나 시료의 전기 저항이 떨어졌고 최종적으로 전기 저항은 1,000만 분의 1까지 감소해 맥더미드나 히거 모두를 놀라게 했다. 몇 날 며칠간의 추가 시험에 의해 금속-절연체 전이가 일어나는 이러한 현상의 재현성이 확인되었고 더 나아가 이중 결합에 첨가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아이오딘 쪽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발견에 관한 제1보를 《''Chemical Communications''》에 제출하고, 더 나아가 화학계의 맥더미드가 《''Journal of the American Chemical Society''》, 물리계의 히거가 《''Physical Review Letters''》에 각각 논문을 투고하기로 협의를 통해 결정하게 된다. 그러나 ''Chemical Communications'' 이외의 투고는 논문 조사 단계에서 현상 자체에 의문이 있다고 보고 바로 수락되진 않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1977년 6월에 뉴욕에서 개최되는 저차원 물질의 합성과 물성에 관한 국제 학회에서 데먼스트레이션 실험을 하자고 맥더미드가 제안을 했다. 일본의 학회에서는 하지 않을 법한 ‘유치한 대처 방법’이라는 생각과 함께 실험면에서도 테플론제 스탑콕에서 공기가 새어 할로젠의 확산을 저해하고 도프의 진행이 어려워질 거라는 염려도 있어 시라카와는 당초 이 제안에 반대했다. 결국 증기압을 높이기 위한 브롬화 요드와 같은 할로젠간 화합물을 이용해 더 나아가 도판트의 용기를 따뜻하게 하기 위한 뜨거운 물을 준비하는 등의 대책을 마친 후 공개 실험을 실시하게 되었고 폴리아세틸렌의 전기 저항이 저하되었을 때 소형 백열등을 점등시키는 일에 성공하게 된다. 이러한 실험을 지켜본 청중의 화학자들에게 큰 놀라움을 안겼다고 한다.
히거의 논문은 그해 10월 ''Physical Review Letters'',[26] 맥더미드의 논문은 이듬해 1978년 2월 ''Journal of American Chemical Society''에[27] 각각 게재되었다.
1976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앨런 매디어미드(Alan MacDiarmid)의 연구실에서 일하도록 초청받았다. 시라카와와 매디어미드, 그리고 앨런 히거(Alan Heeger)는 함께 폴리아세틸렌의 전기 전도도를 개발했다.[3][4]
1977년 그들은 아이오딘 증기로 도핑하면 폴리아세틸렌의 전도성이 향상될 수 있음을 발견했다.
2. 5. 쓰쿠바 대학 시절
1979년 11월, 쓰쿠바 대학 물질 공학계 조교수로 부임했다. 폴리아세틸렌에 관한 기초 연구에 계속 중점을 두었던 역량이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1982년에 교수로 승진했다.1984년에는 히타치 제작소와의 공동 연구로 액정 배향을 이용해 섬유의 방향을 가지런히 한 폴리아세틸렌을 제작, 기존 섬유보다 전도성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 학생이나 젊은 연구자들을 대하는 자세가 유연해서 함께 연구를 진행하기가 수월했다고 한다.[28] 고등학생 대상 일일 체험 교실 때는 특별히 교재까지 만들어서 수업에 임하는 등 교육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28]
1991년 6월, 스웨덴 룰레오에서 열린 전도성 고분자에 관한 노벨 심포지엄에 초대되어 약 40명의 참석자들과 1주일에 걸친 토론을 벌였다. 이때 이 분야에서 노벨상을 수상하는 인물이 있다면 그 후보는 히거, 맥더미드, 시라카와 등 3명일 것이라는 합의가 참석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1997년에는 네마틱 액정을 이용해서 섬유를 꼬은 나선형 폴리아세틸렌을 합성하여 전자 반응 발현에 대한 기대를 모았다. 학교 교육 관련 업무로는 1994년부터 제3학군장을 3년간 맡았다.
2. 6. 정년 퇴임 후
2000년 3월에 쓰쿠바 대학에서 정년 퇴임했다. 그해 10월 10일에 신문사의 첫 문의에 이어 10월 18일에는 노벨 재단으로부터 정식 연락을 받고 히거, 맥더미드와 함께 노벨 화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일본에서는 구 제국대학이 아닌 대학 출신자로는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가 됐다. 12월 8일에는 스톡홀름 대학교에서 수상 기념 강연을 했고[22] 이에 맞춰 문화훈장을 받았다.그해 11월 29일에는 이듬해에 창설될 종합과학기술회의의 지식인 의원으로 내정됐다.[29] 연구 영역의 중복 등과 관련해서 각 성청 간의 조정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실태를 알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30] 재임 중에는 과학기술 관계 사업의 예산에 우선 순위를 매기는 한편으로 담당자들이 제기하는 불만에도 엄정하게 대처했다.[30] 더욱이 과학 예산 제도 중에서는 소액이면서도 자유 재량으로 사용할 수 있는 교비에 대해 세런디피티격인 발견이 이루어졌을 때 유효하다고 평가했다. 덧붙여 2001년에는 사전에 연락 없이 니가타 대학 총장으로 추천돼 본인은 고사했지만 추천을 취소하는 규정이 없어 결선 투표를 진행한 결과 후보 5명 중에서 3위를 기록했다.[31] 2001년부터 2003년 3월까지 일본학사원 회원이자 내각부 종합과학기술회의 의원을 역임했다.
3. 연구 업적
도쿄 공업대학 조교로 재직하며 금속 외관을 가진 폴리아세틸렌을 개발했다. 이 결과는 1975년 매디어미드가 도쿄 공대를 방문했을 때 앨런 매디어미드의 관심을 끌었다.[3][4]
시라카와 히데키의 전도성 고분자에 대한 연구는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5]
# 폴리아세틸렌 박막 합성
# 화학적 도핑에 의한 금속 전도성 발생
# 공액 액정 고분자(분자 내 단일 결합으로 분리된 이중 또는 삼중 결합)의 생성
# 액정을 용매로 사용한 아세틸렌 중합 개발
이러한 공로로 2000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시라카와는 폴리아세틸렌과 같은 p-공액 고분자의 측쇄에 액정 그룹을 도입하여 자기 배향된 공액 액정 고분자를 생성했다. 또한, 전기장 또는 자기장을 사용하여 고분자를 거시적으로 배향시키고, 분자의 전기적 이방성을 갖게 하는 데 성공했다.[5] 여기서 전기적 이방성이란 전류가 흐르는 방향(x, y, z)에 따라 전기적 특성이 달라지는 것을 말한다.[7]
3. 1. 폴리아세틸렌 박막 합성
시라카와 히데키의 전도성 고분자 연구 중 하나는 폴리아세틸렌 박막 합성이다. 폴리아세틸렌은 특정 성질을 가질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불용성 때문에 다루기 어려웠다. 시라카와는 폴리아세틸렌 박막을 합성할 수 있음을 발견했고, 이 박막을 통해 폴리아세틸렌의 분자 구조와 고체 구조를 규명했다.[5]3. 2. 도핑을 통한 전도성 향상
1976년, 시라카와는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앨런 매디어미드의 연구실에서 일하도록 초청받았다. 두 사람은 미국 물리학자 앨런 히거와 함께 폴리아세틸렌의 전기 전도도를 개발했다.[3][4]1977년, 요오드 증기로 도핑하면 폴리아세틸렌의 전도성이 향상될 수 있음을 발견했다. 전기 전도 메커니즘과 관련하여, 솔리톤 형태의 비선형 들뜬 상태가 역할을 하는 것으로 강력하게 여겨진다.
시라카와는 브롬이나 요오드와 같은 할로겐 원소를 미량 첨가하면 폴리아세틸렌 박막의 전기 전도성이 증가하고 금속 전도성을 나타낸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도펀트와 폴리아세틸렌의 p-전자의 부분적인 전자 이동이 금속 전도성을 생성할 수 있음을 밝혀냈다.
3. 3. 액정 기술을 활용한 폴리아세틸렌 개발
시라카와 히데키의 전도성 고분자 연구는 액정을 이용한 아세틸렌 중합 개발을 포함한다.[5] 시라카와는 아세틸렌 중합과 유사한 고전도성 폴리아세틸렌 박막 생산 방법을 개발했다. 또한, 거울상과 겹쳐지지 않는 비대칭성[6]인 키랄성을 제어할 수 있는 나선형 폴리아세틸렌 박막 합성에도 성공했다.4. 사회 활동 및 정치적 입장
시라카와 히데키는 과학 연구 활동 외에도 다양한 사회 활동과 정치적 입장을 표명해 왔다.
유네스코 일본 국내위원회 위원, 소니 교육 재단 이사[21] 및 「과학의 샘 - 어린이 꿈 교실」 학원장[22], 야마다 과학 진흥 재단 평의원[23], 헤이세이 기초 과학 재단 평의원 등을 역임하며 교육 개혁과 과학 대중화에 힘썼다.
2013년 12월 6일 일본 참의원에서 특정 비밀 보호법 법안이 통과되자, 마스카와 도시히데와 함께 "헌법이 정한 평화주의 원칙과 기본적 인권을 위협하며 즉각 거부되어야 한다"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12]
4. 1. 과학 기술 정책 참여
2000년 11월 29일에는 이듬해 창설될 종합과학기술회의의 유식자 의원으로 내정되었다.[18]。연구 분야의 중복 등에 대해 성청 간의 조정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실태를 알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19]。재임 중에는 과학 기술 관련 사업의 예산에 우선순위를 매기고, 담당자들의 불만에도 엄정하게 대처했다.[19]。과학 예산 제도로서는 소액이지만 자유로운 재량으로 사용할 수 있는 교비를, 세렌디피티적인 발견이 있었을 때 유효하다고 평가했다. 2001년에는 사전 연락 없이 니가타 대학의 총장으로 추천되었고, 본인은 고사했지만 추천을 취소하는 규정이 없어 결선 투표에 진출해 5명 중 3위를 기록했다.[20]。4. 2. 교육 개혁 및 과학 대중화 노력
4. 3. 특정 비밀 보호법 반대 운동
2013년 12월 6일, 일본 참의원은 특정 비밀 보호법 법안을 승인했다. 시라카와와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마스카와 도시히데는 이 법안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헌법이 정한 평화주의 원칙과 기본적 인권을 위협하며 즉각 거부되어야 한다"...(생략)..."어려운 시기에도 언론, 사상, 표현, 학문 연구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은 필수적이다."[12]
5. 수상 경력 및 훈장
- 1983년: 고분자학회상
- 2000년
- * 고분자화학 공적상
- * 노벨 화학상
- * 요코하마 문화상 학술특별상
- * 문화훈장 수훈 및 문화공로자 선정
- * 쓰쿠바 대학 명예 교수
- 2001년
- * 일본 화학회 특별 수상
- * 일본 학사원 회원
- 2006년: 저장 대학교 명예 교수
시라카와는 "전도성 고분자의 발견과 개발"에 대한 공로로 앨런 J. 히거 UPenn 물리학 교수 및 앨런 G. 맥다이아미드 화학 교수와 함께 2000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10] 그는 또한 일본 국립 7개 대학 출신이 아닌 최초의 일본인 노벨상 수상자이자 두 번째 일본인 화학상 수상자가 되었다.
6. 저서
- 合成金属 - ポリアセチレンからグラファイトまで|합성 금속 - 폴리아세틸렌에서 흑연까지 -일본어 (화학동인, 1980년, ISBN 9784759806878)
- 化学に魅せられて|화학에 매료되어일본어 (이와나미 서점, 2001년, ISBN 9784004307099)
- 私の歩んできた道 ノーベル化学賞の発想|내가 걸어온 길 노벨 화학상 발상일본어 (아사히 신문사, 2001년, ISBN 9784022597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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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挑戦性高分子で何が見えるか|도전성 고분자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는가일본어 (무라카미 요이치로 공저, 미타 출판회, 1990년, ISBN 9784895830706)
- 何を学ぶか - 作家の信条、科学者の心 -|무엇을 배울까 - 작가의 신조, 과학자의 마음 -일본어 (오에 겐자부로 공저), 요미우리 북클릿, 요미우리 신문사, 2004년, ISBN 9784643040081)
- ノーベル賞受賞者との対話 - 中高生の皆さんへ|노벨상 수상자와의 대화 - 중고등학생 여러분에게일본어 (요미우리 신문 도쿄 본사 조사 연구 본부 편집, 주오코론 신사, 2005년 3월 1일, ISBN 9784120036170)
- 「ロウソクの科学」が教えてくれること|「양초의 과학」이 가르쳐주는 것일본어 (오지마 요시미 편역, 시라카와 히데키 감수, 사이언스 아이 신서, SB 크리에이티브, 2018년, ISBN 9784797397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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