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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센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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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센구미는 1860년대 말 일본의 에도 막부 말기에 활동한 특별 경찰 조직으로, NHK 대하드라마로 제작되어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 조직은 곤도 이사미를 중심으로 결성되었으며, 막부의 권력 약화와 존왕양이 운동의 격화 속에서 교토의 치안을 유지하고 불령 무사들을 단속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신센구미는 로시구미의 분열과 미부 로시구미 결성을 거쳐 신센구미로 개칭되었으며, 내부 파벌 간의 갈등, 세리자와 가모 암살, 이토 가시타로와의 대립 등 격동적인 사건들을 겪었다. 이케다야 사건, 금문의 변, 아부라코지 사건 등 주요 사건들을 통해 신센구미의 활동과 역사적 중요성이 부각되었으며, 곤도 이사미, 히지카타 토시조, 오키타 소지 등 주요 인물들의 활약과 갈등이 드라마를 통해 묘사되었다. 드라마는 곤도 이사미의 처형으로 마무리되었으나, 속편 제작을 통해 팬들의 아쉬움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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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센구미! - [TV프로그램]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프로그램 명칭신센구미!
원어 명칭新選組!
장르드라마
방송 국가일본
방송 채널NHK
방송 기간2004년 1월 11일 ~ 2004년 12월 12일
방송 횟수총 49회 (2006년 설날 특집 포함 시 50회)
방송 시간일요일 20:00 ~ 20:45 (약 43분)
제작진
각본미타니 코키
연출시미즈 카즈히코 외
음악 작곡가핫토리 타카유키
주제가 작곡가히로카미 준이치
총괄 프로듀서요시카와 코지
내레이터코데라 야스오
출연진
주연카토리 싱고
조연후지와라 타츠야
야마모토 코지
유카
오다기리 죠
나카무라 칸쿠로 6세
야마모토 타로
사카이 마사토
야마구치 토모미츠
코바야시 타카시
쇼에이
나카무라 시도 2세
타바타 토모코
후키이시 카즈에
츠츠이 미치타카
타니하라 쇼스케
토다 케이코
이부키 고로
이시구로 켄
쿠리츠카 아사히
이하라 츠요시
노다 히데키
스즈키 쿄카
에구치 요스케
노기와 요코
사와구치 야스코
사토 코이치
이토 시로
타나카 쿠니에
이시자카 코지
아이지마 카즈유키
아사다 미요코
아사리 요스케
아소 쿠미코
아난 켄지
이케우치 히로유키
이시구로 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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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히나타 후미요
사사노 타카시
사토 B사쿠
스즈키 사와
타나카 테츠시
나마세 카츠히사
하바 유이치
후루타 아라타
미야케 히로키
야시마 노리토
야마구치 토모미츠
야마모토 코지
유카
주제곡제목: 신센구미! 메인 테마
작곡: 핫토리 타카유키
노래: 존 켄 누쪼, NHK 교향악단
관련 작품
관련 드라마요시츠네

2. 역사적 배경

2. 1. 쇄국 정책과 개항

2. 2. 존왕양이 운동

존왕양이 운동은 에도 시대 말기에 일본에서 일어난 정치 운동이다. 페리 내항 이후 미국 등 서구 열강의 압력에 막부가 개항을 하면서, 이에 대한 반발로 천황을 중심으로 국가를 재건하고 외세를 몰아내자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26] 이러한 배경 속에서 조슈 번을 중심으로 존왕양이 운동이 전개되었다.

조슈 번의 구사카 겐즈이는 아시카가 삼대 목상 효수 사건을 일으키는 등 과격한 존왕양이 활동을 주도했다.[26] 요시다 토시마로는 이케다야 사건 회합에 참가하여 가쓰라 고고로(키도 다카요시)에게 계획을 이야기하기도 했다.[26]

도쿠가와 이에모치가 상경했을 때, 다카스기 신사쿠가 "이요! 정이대장군"이라고 외치자 미부 낭사조와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가쓰라 고고로의 중재로 무마되었다.[26] 1863년 8월 18일의 정변에서는 사카이마치 어문에서 아이즈 번에게 저지당해 고쇼에 들어가지 못하고 교토에서 쫓겨났다.[26]

금문의 변에서 구사카 겐즈이는 다카쓰카사 스케히로에게 천황에게 중재를 간청했지만 거절당하고, 테라시마 츄자부로와 함께 다카쓰카사(다카쓰카사 스케히로) 저택에서 자결했다.[26] 이리에 구이치는 구사카 겐즈이의 부탁을 받고 귀국하여 주군에게 사정을 알렸다.[26]

금문의 변 이후에도 교토에 잔류한 조슈 번사들의 리더 격인 센바 코타로는 가쓰라 고고로와의 연락책이었던 스케스케에게 가쓰라 고고로의 행방을 캐물었으나, 스케스케는 쉽게 알려주지 않았다. 센바 코타로는 결국 스케스케의 도움으로 가쓰라 고고로를 만났지만, 가쓰라 고고로는 귀국하면서 교토에 남으라는 명을 내렸다. 얼마 후 센바 코타로는 신센구미에게 발각되어 가쓰라 고고로를 도망치게 하기 위해 방패막이가 되었고, 마츠바라 타다시에게 베였다. 그는 숨이 끊어지기 직전, 돈을 아내 오하츠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다.[26]

조슈 번의 지번인 조후 번사 미요시 신조는 사쓰마 번과 조슈 번의 사쓰-조 동맹을 맺으려 상경한 사카모토 료마의 호위를 맡았다. 테라다야 사건에서 습격당한 사카모토 료마와 함께 싸웠다.[26]

2. 3. 막부 권력 약화

안세이 대옥과 사쿠라다 문 밖의 변 등으로 에도 막부의 권위는 크게 실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존왕양이 운동이 격화되고, 교토는 각지에서 모여든 존왕양이파 로시들로 인해 치안이 극도로 악화되었다.

막부의 권력 약화를 보여주는 사건들은 다음과 같다.

  • 가쓰 가이슈는 군함 봉행, 육군 총재를 역임하였으며, 에도 성 무혈 개성을 실현시킨 인물이다. 그는 에도로 물러난 도쿠가와 요시노부에게 "더 이상 대의명분도 백성의 지지도 없는 무의미한 승리일 뿐"이라고 일갈하며 항복을 권한다.
  • 우치야마 히코지로는 오사카 니시마치 봉행소 요리키로서, 쿄오사카에서 갈취를 하는 낭사조에 반감을 가졌다. 그는 신센구미에게 습격당해 사망하는데, 이는 막부 권력의 약화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 나가이 나오무네는 오메츠케, 후에 와카도시요리 격으로, 대정봉환 후에 사카모토 료마의 방문을 받았다. 왕정복고의 대호령 후에는, 미마와리구미를 신유격대, 신센구미를 신유격대 어고용으로 하는 편성 변경을 전한다.
  • 마쓰마에 이즈노카미는 로주격으로 에도로 돌아온 곤도와 대면했을 때, "하타모토들에게 내는 준비금이 나오지 않는다"라고 소극적인 답변을 하였다.
  • 다케나카 시게카타는 와카도시요리, 육군 봉행으로 도바·후시미 전투 전에 나가쿠라 신파치의 진언을 거절했지만 사쓰마 세력의 총격에 항거하지 못하고 퇴각한다.


이러한 사건들은 신센구미가 등장하고 활동하는 배경이 되었다.

3. 신센구미 결성과 초기 활동

겐지 원년, 교토에서 곤도 이사미, 히지카타 토시조가 이끄는 신선조는 불령 무사 단속에 출동한다. 조슈 번의 카츠라 코고로는 놓쳐버렸지만 오키타 소지 등의 활약으로 큰 성과를 거둔다.

이 사건을 들은 사카모토 료마는 10년 전 에도에서의 일을 떠올린다.

청하 팔랑의 낭사조에서 분파되어 조직되었으며, 처음에는 "미부 낭사조", 제25회부터 "신선조"로 개칭되었다. 기본적으로 주인공인 곤도 이사미를 중심으로 한 시위관파, 세리자와 가모를 중심으로 하는 미토파(미토 덴구토), 이토 가시타로파의 3개의 파벌이 존재하고 있으며, 각각이 결탁하는 경우도 있고, 사상상의 갈등이나 노선 대립, 주도권 다툼을 벌이기도 한다. 또한, 파벌 내에서 내분이 발생한 적도 있고, 오키타 소지가 한때 미토파에 속하거나, 도도 헤이스케이토 가시타로 일파에 입대한 후 그들과 행동을 함께 하는 등 입장이 변동되기도 한다.

=== 로시구미 결성 ===

1863년 2월 4일, 기요카와 하치로의 제안으로 로시구미가 결성되었다. 기요카와 하치로는 존왕양이를 주장하는 인물이었다. 도쿠가와 이에모치의 경호를 명목으로 로시구미를 창설했지만, 실제 목적은 존왕양이파를 결집하는 것이었다. 기요카와곤도 이사미를 통해 마쓰다이라 가즈사노스케에게 로시구미 결성을 제안한다.

기요카와 하치로는 로시구미를 통해 낭사들을 통솔하고자 했지만, 우도노 큐오, 사사키 타다사부로 등은 기요카와를 경계하였다. 로시구미는 도카이도 대신 나카센도를 통해 교토로 향했다. 기요카와는 낭사조 일행과 별도로 행동하며, 야마오카 뎃슈를 통해 낭사들의 동향을 파악했다.

교토에 도착한 기요카와 하치로는 낭사 235명의 서명을 받아 조정에 건백서를 제출, 존왕양이의 뜻을 표명했다. 이는 막부의 의도와는 다른 행동이었기 때문에, 곤도 이사미, 세리자와 가모 등은 에도 귀환에 반대하며 로시구미는 분열되었다.

이케다 도쿠타로는 기요카와 하치로의 계략에 의해 조정에 건백서를 제출하게 되었지만, 건백서에는 서명하지 않고 에도 귀환에 반대했다. 오무라 다쓰오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입대했으나, 유텐 센노스케에게 부상을 입히고 도망쳤다. 무라카미 슌고로는 6번조의 코가시라였으며, 야마나미 케이스케를 "시골 무사"라고 부르며 깔보았다.

=== 미부 로시구미 결성 ===

1863년 3월, 로시구미가 교토에 도착한 후, 세리자와 가모와 니이미 니시키를 중심으로 하는 미토 출신들과 곤도 이사미를 중심으로 하는 시위관파가 미부에 남아 미부 로시구미를 결성한다.[15] 세리자와 가모는 미토 출신으로 덴구토에 속해 있었으며, 검술과 학문에 능한 인물이었다.[15] 니이미 니시키는 세리자와의 오른팔 역할을 하며, 낭사대가 상경한 후 기요카와 하치로의 조정에 대한 건백서의 진의를 파악하기도 했다.[15]

가스야 신고로미토번 출신으로 아라키 마타에몬의 재래라고 불리는 검호였다. 그는 콘도와 오키타에게 설득당해 파벌 싸움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미부 로시구미에 합류했다. 도노우치 요시오는 가즈사 출신으로, 낭사조 결성 시 선번 숙할을 맡았으나 출발 전에 콘도에게 교체당했다. 네기시 유잔은 과거 치바 슈사쿠에게 호쿠신잇토류를 배웠으며, 낭사조에서 제1조 소두를 맡았다. 아비루 에이자부로는 이노우에 겐자부로의 권유로 미부 로시구미에 참가했다.

히라야마 고로는 부장 보좌로, 무예 실력은 뛰어났지만 경솔한 면이 있었다. 히라마 쥬스케는 부장 보좌로, 초반에는 대내의 계산을 맡았다. 노구치 겐지는 부장 보좌로, 세리자와 파 중에서는 나이가 어렸다. 사에키 마타사부로는 부장 보좌로, 원래 야기 가의 하인이었으나 무사가 되기 위해 낭사대에 입대했다.

미부 로시구미는 아이즈번의 지휘 아래 교토의 치안 유지 활동에 참여했다.

=== 신센구미 개칭 ===

미부 로시구미는 청하 팔랑의 낭사조에서 분파되어 조직되었으며, 교토 수호직 산하로 들어가면서 제25회부터 "신선조"로 개칭되었다. 곤도 이사미를 중심으로 한 시에이칸파, 세리자와파(미토파), 이토파의 3개 파벌이 존재했으며, 이들은 결탁, 사상 갈등, 노선 대립, 주도권 다툼을 벌였다. 파벌 내 내분, 오키타 소지의 미토파 가담, 도도 헤이스케의 이토 일파 입대 등 구성원들의 입장이 변동되기도 했다.

=== 내부 갈등과 세력 다툼 ===

청하 팔랑의 낭사조에서 분파되어 조직되었으며, 처음에는 "미부 낭사조", 제25회부터 "신선조"로 개칭되었다. 기본적으로 주인공인 곤도 이사미를 중심으로 한 시위관파, 세리자와 가모를 중심으로 하는 미토파(미토 덴구토), 이토 가시타로파의 3개의 파벌이 존재하고 있으며, 각각이 결탁하는 경우도 있고, 사상상의 갈등이나 노선 대립, 주도권 다툼을 벌이기도 한다. 또한, 파벌 내에서 내분이 발생한 적도 있고, 오키타 소지가 한때 미토파에 속하거나, 도도 헤이스케이토 가시타로 일파에 입대한 후 그들과 행동을 함께 하는 등 입장이 변동되기도 한다.

=== 시위관파 vs. 미토파 ===

텐넨리신류종가 곤도 이사미를 중심으로 한 시위관파와 세리자와 가모를 중심으로 한 미토파의 갈등은 신선조 결성 초기 주요 사건이었다.


  • '''곤도 이사미'''(배우:카토리 싱고): 다마 출신으로, 텐넨리신류 종가 4대손이다. 낭사조에 참가하여 상경, 미부 낭사조를 결성하고 국장에 취임한다. 세리자와 가모의 난폭한 행동에 골머리를 썩지만, 결국 "귀신이 되어 나를 먹어치워!"라는 세리자와의 말에 암살에 동의한다.[10]
  • '''히지카타 토시조'''(배우:야마모토 코지): 곤도 이사미의 소꿉친구이자 부장이다. 곤도를 일본 제일의 무사로 만들기 위해 세리자와 가모 암살을 계획하고 실행한다. 이후 곤도를 위해 미움받는 역할을 자처하며 조직을 통제, '귀신 부장'으로 불린다.[11]
  • '''오키타 소지'''(배우: 후지와라 타츠야): 부장 보좌 겸 1번대 조장. 세리자와 가모에게 매료되어 잠시 행동을 함께 하기도 했지만, 세리자와 가모 암살에 참가한다.[12]
  • '''사이토 하지메'''(배우:오다기리 조): 부장 보좌 겸 3번대 조장. 세리자와 가모에게 은혜를 입어 암살을 막으려 하지만, 곤도의 중재로 길을 내준다.
  • '''야마나미 케이스케'''(배우:사카이 마사토): 총장. 세리자와 가모 암살에서 히지카타를 보좌했지만, 히라야마 고로를 베지 못하고 오히려 위기에 처한다. 이후 히지카타와 대립하고, 결국 탈주하여 할복한다.
  • '''나가쿠라 신파치'''(배우: 야마구치 토모미츠): 부장 보좌 겸 2번대 조장. 곤도 이사미의 동지라는 의식이 강하며, 히지카타 토시조와 대립하기도 한다.[13]
  • '''이노우에 겐자부로'''(배우:코바야시 타카시): 부장 보좌 겸 6번대 조장. 곤도의 형과 같은 존재로, 신센구미의 윤활유 역할을 한다.[14]
  • '''세리자와 가모'''(배우: 사토 코이치): 필두 국장. 미토 덴구토 출신으로, 난폭한 행동으로 문제를 일으킨다. 곤도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결국 곤도에게 암살당한다.
  • '''니이미 니시키'''(배우: 아이시마 카즈유키): 국장에서 부장으로 강등. 세리자와 가모의 오른팔이었으나, 히지카타 토시조와 야마나미 케이스케의 책략으로 할복한다.[15]
  • '''히라야마 고로'''(배우:사카타 사토시): 부장 보좌. 세리자와 가모 암살 때 야마나미 케이스케에게 덤벼들다 하라다 사노스케에게 죽는다.
  • '''히라마 쥬스케'''(배우: 고슈): 부장 보좌. 세리자와 가모 암살 때 도망친다.
  • '''노구치 켄지'''(배우: 오카모토 코사쿠): 부장 보좌. 세리자와 가모 파였으나 숙청 대상에서 제외된다.


세리자와 가모 암살 사건은 곤도 이사미 중심의 시위관파가 신선조의 주도권을 잡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 세리자와 가모 암살 ===

세리자와 가모는 미토 번 출신으로, 검술과 학문에 능한 인물이었지만, 자존심이 강하고 방자한 성격으로 인해 잦은 문제를 일으켰다.[15] 신선조의 전신인 미부로시구미 결성 후에도 난폭한 행동을 일삼아 아이즈 번의 미움을 받게 되었다. 특히 오사카 스모 선수들과의 난투극, 야마토야 습격 사건 등으로 곤도 이사미와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히지카타 토시조와 야마나미 케이스케는 세리자와 가모 일파 제거를 결의했지만, 곤도 이사미세리자와 가모에 대한 존경심과 비정한 방식에 대한 거부감으로 결단을 주저했다. 그러나 세리자와 가모는 니이미 니시키의 할복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고, 8월 18일의 정변 포상 축연 자리에서 곤도 이사미에게 "귀신이 되어 나를 먹어치워라"라며 자신의 각오를 전하고, 요시무네에게 받은 "신선조" 글씨를 보여주며 "내일부터 이 이름으로 가라"고 곤도 이사미의 결단을 촉구했다.[15]

결국 히지카타 토시조, 야마나미 케이스케, 하라다 사노스케, 오키타 소지는 야기 저택으로 돌아가는 세리자와 가모 일파를 습격했다. 사이토 하지메의 방해로 계획이 틀어졌지만, 야기 저택에 잠입하여 격전 끝에 세리자와 가모를 암살했다. 오키타 소지는 원래 습격에 가담할 예정이 아니었으나, 히지카타 토시조의 태도를 보고 자청하여 참여했고, 세리자와 가모오키타 소지의 칼에 쓰러지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15] 히지카타 토시조는 이 사건을 조슈 번의 소행으로 위장했다.

니이미 니시키는 세리자와 가모의 오른팔이었으나, 야마토야 사건의 책임을 지고 부장으로 강등된 후, 히지카타 토시조와 야마나미 케이스케의 계략에 빠져 할복했다. 히라야마 고로는 부장 보좌로, 세리자와 가모 암살 당시 하라다 사노스케의 창에 찔려 사망했다. 히라마 쥬스케는 세리자와 가모 암살 때 도망쳐 행방불명되었고, 노구치 켄지는 숙청 대상에서 제외되어 미토로 돌아갔다. 사에키 마타사부로는 야기 저택의 하인이었으나, 무사가 되기 위해 미부로시구미에 입대했다가 세리자와 가모에게 참살당했다.[15]

=== 이토 가시타로와 고료에지 ===

이토 가시타로는 참모로서 신선조에 합류했다. 처음 이름은 오쿠라였으나, 신선조 합류 후 가시타로로 개명했다.[16] 문무에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신선조를 존왕양이의 선두로 세우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16] 결국 '사쓰마와 조슈에 대한 정찰'이라는 명목으로 신선조를 탈퇴하여 고료에지를 결성한다.[16] 그러나 신선조에 있었던 과거 때문에 토막파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고뇌한다.[16]

오쿠보 이치조에게 콘도를 암살하라는 부추김을 받았으나, 콘도와의 대화를 통해 서로 추구하는 사상은 달라도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은 같다는 것을 깨닫고 화해한다.[16] 그러나 그 귀로에서 신선조 대원들에게 습격당해 사망한다.[16] 이토의 유해는 시치조 아부라코지에 방치되었고, 이를 수습하려는 고료에지 대원들과 신선조 사이에 충돌이 발생하여 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아부라코지의 변)[16]

가노 와시오는 이토 일파 중 온후한 인물로, 외교 역할을 담당했다.[16] 아부라코지의 변에서는 시노하라 야스노신과 함께 고료에지를 주도했다.[16] 사건 후, 복수를 위해 콘도를 저격했지만, 암살 방식에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16]

시노하라 야스노신은 이토 일파 중 호전적인 인물이었다.[16] 아부라코지의 변에서 가노 와시오와 함께 고료에지를 주도했고, 변 후 콘도를 저격하며 "녀석들(신선조)도 실컷 더러운 짓을 해왔잖아"라고 말했다.[16]

핫토리 타케오는 이토 일파 최고의 무투파였다.[16] 아부라코지의 변에서 나가쿠라 신파치에게 베여 전사했다.[16]

모우나이 아리노스케는 아부라코지의 변에서 하라다 사노스케에게 패배하여 전사했다.[16]

미키 사부로는 이토의 동생으로 추정되며, 고료에지에 합류하여 신선조를 떠났다.[16] 아부라코지의 변 이후, 병든 오키타 소지를 습격하려 했으나 실패했다.[16]

나카니시 노보루는 이토와 행동을 함께 했으나, 고료에지 결성 이후에는 등장하지 않는다.[16]

=== 아부라코지 사건 ===

이토 가시타로의 유해는, 히지카타 토시조의 판단으로 시치조 아부라코지에 방치되었고, 그의 죽음을 알게 된 고료에시의 대원들은 이것이 함정임을 알아차리지만, "설령 함정이라도, 이토 선생님의 시신을 내버려둘 수는 없다"는 이유로 현장으로 갔다.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신선조와 고료에시 사이에 전면 충돌이 발생했다. 이 충돌로 도도 헤이스케를 비롯해 양 진영에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16]

아부라코지의 변에서 가노 와시오는 시노하라 야스노신과 함께 고료에시를 주도했다. 가노 와시오는 아부라코지의 변에서 나가쿠라 신파치와 호각으로 싸웠다. 시노하라 야스노신은 칼 솜씨가 확실하여 기습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이토 하지메, 나가쿠라 신파치와 호각으로 싸웠다.

핫토리 타케오는 아부라코지의 변에서 이도류로 분전했지만 나가쿠라 신파치에게 베여 전사했다. 핫토리 타케오의 죽음을 본 도도 헤이스케는 포효와 함께 옛 동료와 칼을 맞대기로 결의를 굳혔다. 모우나이 아리노스케는 아부라코지의 변에서 하라다 사노스케에게 패배하여 전사했다. 미키 사부로는 아부라코지의 변에 참전하여 철수한 후, 보복으로 동료와 함께 병든 오키타 소지를 습격했지만 오코의 기지로 미수에 그쳤다.

3. 1. 로시구미 결성

1863년 2월 4일, 기요카와 하치로의 제안으로 로시구미가 결성되었다. 기요카와 하치로는 존왕양이를 주장하는 인물이었다. 도쿠가와 이에모치의 경호를 명목으로 로시구미를 창설했지만, 실제 목적은 존왕양이파를 결집하는 것이었다. 기요카와곤도 이사미를 통해 마쓰다이라 가즈사노스케에게 로시구미 결성을 제안한다.

기요카와 하치로는 로시구미를 통해 낭사들을 통솔하고자 했지만, 우도노 큐오, 사사키 타다사부로 등은 기요카와를 경계하였다. 로시구미는 도카이도 대신 나카센도를 통해 교토로 향했다. 기요카와는 낭사조 일행과 별도로 행동하며, 야마오카 뎃슈를 통해 낭사들의 동향을 파악했다.

교토에 도착한 기요카와 하치로는 낭사 235명의 서명을 받아 조정에 건백서를 제출, 존왕양이의 뜻을 표명했다. 이는 막부의 의도와는 다른 행동이었기 때문에, 곤도 이사미, 세리자와 가모 등은 에도 귀환에 반대하며 로시구미는 분열되었다.

이케다 도쿠타로는 기요카와 하치로의 계략에 의해 조정에 건백서를 제출하게 되었지만, 건백서에는 서명하지 않고 에도 귀환에 반대했다. 오무라 다쓰오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입대했으나, 유텐 센노스케에게 부상을 입히고 도망쳤다. 무라카미 슌고로는 6번조의 코가시라였으며, 야마나미 케이스케를 "시골 무사"라고 부르며 깔보았다.

3. 2. 미부 로시구미 결성

1863년 3월, 로시구미가 교토에 도착한 후, 세리자와 가모와 니이미 니시키를 중심으로 하는 미토 출신들과 곤도 이사미를 중심으로 하는 시위관파가 미부에 남아 미부 로시구미를 결성한다.[15] 세리자와 가모는 미토 출신으로 덴구토에 속해 있었으며, 검술과 학문에 능한 인물이었다.[15] 니이미 니시키는 세리자와의 오른팔 역할을 하며, 낭사대가 상경한 후 기요카와 하치로의 조정에 대한 건백서의 진의를 파악하기도 했다.[15]

가스야 신고로미토번 출신으로 아라키 마타에몬의 재래라고 불리는 검호였다. 그는 콘도와 오키타에게 설득당해 파벌 싸움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미부 로시구미에 합류했다. 도노우치 요시오는 가즈사 출신으로, 낭사조 결성 시 선번 숙할을 맡았으나 출발 전에 콘도에게 교체당했다. 네기시 유잔은 과거 치바 슈사쿠에게 호쿠신잇토류를 배웠으며, 낭사조에서 제1조 소두를 맡았다. 아비루 에이자부로는 이노우에 겐자부로의 권유로 미부 로시구미에 참가했다.

히라야마 고로는 부장 보좌로, 무예 실력은 뛰어났지만 경솔한 면이 있었다. 히라마 쥬스케는 부장 보좌로, 초반에는 대내의 계산을 맡았다. 노구치 겐지는 부장 보좌로, 세리자와 파 중에서는 나이가 어렸다. 사에키 마타사부로는 부장 보좌로, 원래 야기 가의 하인이었으나 무사가 되기 위해 낭사대에 입대했다.

미부 로시구미는 아이즈번의 지휘 아래 교토의 치안 유지 활동에 참여했다.

3. 3. 신센구미 개칭

미부 로시구미는 청하 팔랑의 낭사조에서 분파되어 조직되었으며, 교토 수호직 산하로 들어가면서 제25회부터 "신센구미"로 개칭되었다. 곤도 이사미를 중심으로 한 시에이칸파, 세리자와파(미토파), 이토파의 3개 파벌이 존재했으며, 이들은 결탁, 사상 갈등, 노선 대립, 주도권 다툼을 벌였다. 파벌 내 내분, 오키타 소지의 미토파 가담, 도도 헤이스케의 이토 일파 입대 등 구성원들의 입장이 변동되기도 했다.

3. 4. 내부 갈등과 세력 다툼

청하 팔랑의 낭사조에서 분파되어 조직되었으며, 처음에는 "미부 낭사조", 제25회부터 "신센구미"로 개칭되었다. 기본적으로 주인공인 곤도 이사미를 중심으로 한 시위관파, 세리자와 가모를 중심으로 하는 미토파(미토 덴구토), 이토 가시타로파의 3개의 파벌이 존재하고 있으며, 각각이 결탁하는 경우도 있고, 사상상의 갈등이나 노선 대립, 주도권 다툼을 벌이기도 한다. 또한, 파벌 내에서 내분이 발생한 적도 있고, 오키타 소지가 한때 미토파에 속하거나, 도도 헤이스케이토 가시타로 일파에 입대한 후 그들과 행동을 함께 하는 등 입장이 변동되기도 한다.

=== 시위관파 vs. 미토파 ===

텐넨리신류종가 곤도 이사미를 중심으로 한 시위관파와 세리자와 가모를 중심으로 한 미토파의 갈등은 신센구미 결성 초기 주요 사건이었다.

  • '''곤도 이사미'''(배우:카토리 싱고): 다마 출신으로, 텐넨리신류 종가 4대손이다. 낭사조에 참가하여 상경, 미부 낭사조를 결성하고 국장에 취임한다. 세리자와 가모의 난폭한 행동에 골머리를 썩지만, 결국 "귀신이 되어 나를 먹어치워!"라는 세리자와의 말에 암살에 동의한다.[10]
  • '''히지카타 토시조'''(배우:야마모토 코지): 곤도 이사미의 소꿉친구이자 부장이다. 곤도를 일본 제일의 무사로 만들기 위해 세리자와 가모 암살을 계획하고 실행한다. 이후 곤도를 위해 미움받는 역할을 자처하며 조직을 통제, '귀신 부장'으로 불린다.[11]
  • '''오키타 소지'''(배우: 후지와라 타츠야): 부장 보좌 겸 1번대 조장. 세리자와 가모에게 매료되어 잠시 행동을 함께 하기도 했지만, 세리자와 가모 암살에 참가한다.[12]
  • '''사이토 하지메'''(배우:오다기리 조): 부장 보좌 겸 3번대 조장. 세리자와 가모에게 은혜를 입어 암살을 막으려 하지만, 곤도의 중재로 길을 내준다.
  • '''야마나미 케이스케'''(배우:사카이 마사토): 총장. 세리자와 가모 암살에서 히지카타를 보좌했지만, 히라야마 고로를 베지 못하고 오히려 위기에 처한다. 이후 히지카타와 대립하고, 결국 탈주하여 할복한다.
  • '''나가쿠라 신파치'''(배우: 야마구치 토모미츠): 부장 보좌 겸 2번대 조장. 곤도 이사미의 동지라는 의식이 강하며, 히지카타 토시조와 대립하기도 한다.[13]
  • '''이노우에 겐자부로'''(배우:코바야시 타카시): 부장 보좌 겸 6번대 조장. 곤도의 형과 같은 존재로, 신센구미의 윤활유 역할을 한다.[14]
  • '''세리자와 가모'''(배우: 사토 코이치): 필두 국장. 미토 덴구토 출신으로, 난폭한 행동으로 문제를 일으킨다. 곤도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결국 곤도에게 암살당한다.
  • '''니이미 니시키'''(배우: 아이시마 카즈유키): 국장에서 부장으로 강등. 세리자와 가모의 오른팔이었으나, 히지카타 토시조와 야마나미 케이스케의 책략으로 할복한다.[15]
  • '''히라야마 고로'''(배우:사카타 사토시): 부장 보좌. 세리자와 가모 암살 때 야마나미 케이스케에게 덤벼들다 하라다 사노스케에게 죽는다.
  • '''히라마 쥬스케'''(배우: 고슈): 부장 보좌. 세리자와 가모 암살 때 도망친다.
  • '''노구치 켄지'''(배우: 오카모토 코사쿠): 부장 보좌. 세리자와 가모 파였으나 숙청 대상에서 제외된다.


세리자와 가모 암살 사건은 곤도 이사미 중심의 시위관파가 신센구미의 주도권을 잡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 세리자와 가모 암살 ===

세리자와 가모는 미토 번 출신으로, 검술과 학문에 능한 인물이었지만, 자존심이 강하고 방자한 성격으로 인해 잦은 문제를 일으켰다.[15] 신센구미의 전신인 미부로시구미 결성 후에도 난폭한 행동을 일삼아 아이즈 번의 미움을 받게 되었다. 특히 오사카 스모 선수들과의 난투극, 야마토야 습격 사건 등으로 곤도 이사미와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히지카타 토시조와 야마나미 케이스케는 세리자와 가모 일파 제거를 결의했지만, 곤도 이사미세리자와 가모에 대한 존경심과 비정한 방식에 대한 거부감으로 결단을 주저했다. 그러나 세리자와 가모는 니이미 니시키의 할복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고, 8월 18일의 정변 포상 축연 자리에서 곤도 이사미에게 "귀신이 되어 나를 먹어치워라"라며 자신의 각오를 전하고, 요시무네에게 받은 "신선조" 글씨를 보여주며 "내일부터 이 이름으로 가라"고 곤도 이사미의 결단을 촉구했다.[15]

결국 히지카타 토시조, 야마나미 케이스케, 하라다 사노스케, 오키타 소지는 야기 저택으로 돌아가는 세리자와 가모 일파를 습격했다. 사이토 하지메의 방해로 계획이 틀어졌지만, 야기 저택에 잠입하여 격전 끝에 세리자와 가모를 암살했다. 오키타 소지는 원래 습격에 가담할 예정이 아니었으나, 히지카타 토시조의 태도를 보고 자청하여 참여했고, 세리자와 가모오키타 소지의 칼에 쓰러지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15] 히지카타 토시조는 이 사건을 조슈 번의 소행으로 위장했다.

니이미 니시키는 세리자와 가모의 오른팔이었으나, 야마토야 사건의 책임을 지고 부장으로 강등된 후, 히지카타 토시조와 야마나미 케이스케의 계략에 빠져 할복했다. 히라야마 고로는 부장 보좌로, 세리자와 가모 암살 당시 하라다 사노스케의 창에 찔려 사망했다. 히라마 쥬스케는 세리자와 가모 암살 때 도망쳐 행방불명되었고, 노구치 켄지는 숙청 대상에서 제외되어 미토로 돌아갔다. 사에키 마타사부로는 야기 저택의 하인이었으나, 무사가 되기 위해 미부로시구미에 입대했다가 세리자와 가모에게 참살당했다.[15]

=== 이토 가시타로와 고료에지 ===

이토 가시타로는 참모로서 신센구미에 합류했다. 처음 이름은 오쿠라였으나, 신센구미 합류 후 가시타로로 개명했다.[16] 문무에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신선조를 존왕양이의 선두로 세우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16] 결국 '사쓰마와 조슈에 대한 정찰'이라는 명목으로 신센구미를 탈퇴하여 고료에지를 결성한다.[16] 그러나 신선조에 있었던 과거 때문에 토막파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고뇌한다.[16]

오쿠보 이치조에게 콘도를 암살하라는 부추김을 받았으나, 콘도와의 대화를 통해 서로 추구하는 사상은 달라도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은 같다는 것을 깨닫고 화해한다.[16] 그러나 그 귀로에서 신센구미 대원들에게 습격당해 사망한다.[16] 이토의 유해는 시치조 아부라코지에 방치되었고, 이를 수습하려는 고료에지 대원들과 신센구미 사이에 충돌이 발생하여 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아부라코지의 변)[16]

가노 와시오는 이토 일파 중 온후한 인물로, 외교 역할을 담당했다.[16] 아부라코지의 변에서는 시노하라 야스노신과 함께 고료에지를 주도했다.[16] 사건 후, 복수를 위해 콘도를 저격했지만, 암살 방식에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16]

시노하라 야스노신은 이토 일파 중 호전적인 인물이었다.[16] 아부라코지의 변에서 가노 와시오와 함께 고료에지를 주도했고, 변 후 콘도를 저격하며 "녀석들(신선조)도 실컷 더러운 짓을 해왔잖아"라고 말했다.[16]

핫토리 타케오는 이토 일파 최고의 무투파였다.[16] 아부라코지의 변에서 나가쿠라 신파치에게 베여 전사했다.[16]

모우나이 아리노스케는 아부라코지의 변에서 하라다 사노스케에게 패배하여 전사했다.[16]

미키 사부로는 이토의 동생으로 추정되며, 고료에지에 합류하여 신센구미를 떠났다.[16] 아부라코지의 변 이후, 병든 오키타 소지를 습격하려 했으나 실패했다.[16]

나카니시 노보루는 이토와 행동을 함께 했으나, 고료에지 결성 이후에는 등장하지 않는다.[16]

=== 아부라코지 사건 ===

이토 가시타로의 유해는, 히지카타 토시조의 판단으로 시치조 아부라코지에 방치되었고, 그의 죽음을 알게 된 고료에시의 대원들은 이것이 함정임을 알아차리지만, "설령 함정이라도, 이토 선생님의 시신을 내버려둘 수는 없다"는 이유로 현장으로 갔다.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신센구미와 고료에시 사이에 전면 충돌이 발생했다. 이 충돌로 도도 헤이스케를 비롯해 양 진영에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16]

아부라코지의 변에서 가노 와시오는 시노하라 야스노신과 함께 고료에시를 주도했다. 가노 와시오는 아부라코지의 변에서 나가쿠라 신파치와 호각으로 싸웠다. 시노하라 야스노신은 칼 솜씨가 확실하여 기습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이토 하지메, 나가쿠라 신파치와 호각으로 싸웠다.

핫토리 타케오는 아부라코지의 변에서 이도류로 분전했지만 나가쿠라 신파치에게 베여 전사했다. 핫토리 타케오의 죽음을 본 도도 헤이스케는 포효와 함께 옛 동료와 칼을 맞대기로 결의를 굳혔다. 모우나이 아리노스케는 아부라코지의 변에서 하라다 사노스케에게 패배하여 전사했다. 미키 사부로는 아부라코지의 변에 참전하여 철수한 후, 보복으로 동료와 함께 병든 오키타 소지를 습격했지만 오코의 기지로 미수에 그쳤다.

3. 4. 1. 시위관파 vs. 미토파

텐넨리신류종가 곤도 이사미를 중심으로 한 시위관파와 세리자와 가모를 중심으로 한 미토파의 갈등은 신센구미 결성 초기 주요 사건이었다.

  • '''곤도 이사미'''(배우:카토리 싱고): 다마 출신으로, 텐넨리신류 종가 4대손이다. 낭사조에 참가하여 상경, 미부 낭사조를 결성하고 국장에 취임한다. 세리자와 가모의 난폭한 행동에 골머리를 썩지만, 결국 "귀신이 되어 나를 먹어치워!"라는 세리자와의 말에 암살에 동의한다.[10]
  • '''히지카타 토시조'''(배우:야마모토 코지): 곤도 이사미의 소꿉친구이자 부장이다. 곤도를 일본 제일의 무사로 만들기 위해 세리자와 가모 암살을 계획하고 실행한다. 이후 곤도를 위해 미움받는 역할을 자처하며 조직을 통제, '귀신 부장'으로 불린다.[11]
  • '''오키타 소지'''(배우: 후지와라 타츠야): 부장 보좌 겸 1번대 조장. 세리자와 가모에게 매료되어 잠시 행동을 함께 하기도 했지만, 세리자와 가모 암살에 참가한다.[12]
  • '''사이토 하지메'''(배우:오다기리 조): 부장 보좌 겸 3번대 조장. 세리자와 가모에게 은혜를 입어 암살을 막으려 하지만, 곤도의 중재로 길을 내준다.
  • '''야마나미 케이스케'''(배우:사카이 마사토): 총장. 세리자와 가모 암살에서 히지카타를 보좌했지만, 히라야마 고로를 베지 못하고 오히려 위기에 처한다. 이후 히지카타와 대립하고, 결국 탈주하여 할복한다.
  • '''나가쿠라 신파치'''(배우: 야마구치 토모미츠): 부장 보좌 겸 2번대 조장. 곤도 이사미의 동지라는 의식이 강하며, 히지카타 토시조와 대립하기도 한다.[13]
  • '''이노우에 겐자부로'''(배우:코바야시 타카시): 부장 보좌 겸 6번대 조장. 곤도의 형과 같은 존재로, 신센구미의 윤활유 역할을 한다.[14]
  • '''세리자와 가모'''(배우: 사토 코이치): 필두 국장. 미토 덴구토 출신으로, 난폭한 행동으로 문제를 일으킨다. 곤도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결국 곤도에게 암살당한다.
  • '''니이미 니시키'''(배우: 아이시마 카즈유키): 국장에서 부장으로 강등. 세리자와 가모의 오른팔이었으나, 히지카타 토시조와 야마나미 케이스케의 책략으로 할복한다.[15]
  • '''히라야마 고로'''(배우:사카타 사토시): 부장 보좌. 세리자와 가모 암살 때 야마나미 케이스케에게 덤벼들다 하라다 사노스케에게 죽는다.
  • '''히라마 쥬스케'''(배우: 고슈): 부장 보좌. 세리자와 가모 암살 때 도망친다.
  • '''노구치 켄지'''(배우: 오카모토 코사쿠): 부장 보좌. 세리자와 가모 파였으나 숙청 대상에서 제외된다.


세리자와 가모 암살 사건은 곤도 이사미 중심의 시위관파가 신센구미의 주도권을 잡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3. 4. 2. 세리자와 가모 암살

세리자와 가모는 미토 번 출신으로, 검술과 학문에 능한 인물이었지만, 자존심이 강하고 방자한 성격으로 인해 잦은 문제를 일으켰다.[15] 신센구미의 전신인 미부로시구미 결성 후에도 난폭한 행동을 일삼아 아이즈 번의 미움을 받게 되었다. 특히 오사카 스모 선수들과의 난투극, 야마토야 습격 사건 등으로 곤도 이사미와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히지카타 도시조와 야마나 요시스케는 세리자와 가모 일파 제거를 결의했지만, 곤도 이사미세리자와 가모에 대한 존경심과 비정한 방식에 대한 거부감으로 결단을 주저했다. 그러나 세리자와 가모는 니이미 니시키의 할복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고, 8월 18일의 정변 포상 축연 자리에서 곤도 이사미에게 "귀신이 되어 나를 먹어치워라"라며 자신의 각오를 전하고, 요시무네에게 받은 "신선조" 글씨를 보여주며 "내일부터 이 이름으로 가라"고 곤도 이사미의 결단을 촉구했다.[15]

결국 히지카타 도시조, 야마나 요시스케, 하라다 사노스케, 오키타 소지는 야기 저택으로 돌아가는 세리자와 가모 일파를 습격했다. 사이토 하지메의 방해로 계획이 틀어졌지만, 야기 저택에 잠입하여 격전 끝에 세리자와 가모를 암살했다. 오키타 소지는 원래 습격에 가담할 예정이 아니었으나, 히지카타 도시조의 태도를 보고 자청하여 참여했고, 세리자와 가모오키타 소지의 칼에 쓰러지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15] 히지카타 도시조는 이 사건을 조슈 번의 소행으로 위장했다.

니이미 니시키는 세리자와 가모의 오른팔이었으나, 야마토야 사건의 책임을 지고 부장으로 강등된 후, 히지카타 도시조와 야마나 요시스케의 계략에 빠져 할복했다. 히라야마 고로는 부장 보좌로, 세리자와 가모 암살 당시 하라다 사노스케의 창에 찔려 사망했다. 히라마 쥬스케는 세리자와 가모 암살 때 도망쳐 행방불명되었고, 노구치 켄지는 숙청 대상에서 제외되어 미토로 돌아갔다. 사에키 마타사부로는 야기 저택의 하인이었으나, 무사가 되기 위해 미부로시구미에 입대했다가 세리자와 가모에게 참살당했다.[15]

3. 4. 3. 이토 가시타로와 고료에지

이토 가시타로는 참모로서 신센구미에 합류했다. 처음 이름은 오쿠라였으나, 신센구미 합류 후 가시타로로 개명했다.[16] 문무에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신선조를 존왕양이의 선두로 세우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16] 결국 '사쓰마와 조슈에 대한 정찰'이라는 명목으로 신센구미를 탈퇴하여 고료에지를 결성한다.[16] 그러나 신선조에 있었던 과거 때문에 토막파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고뇌한다.[16]

오쿠보 이치조에게 콘도를 암살하라는 부추김을 받았으나, 콘도와의 대화를 통해 서로 추구하는 사상은 달라도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은 같다는 것을 깨닫고 화해한다.[16] 그러나 그 귀로에서 신센구미 대원들에게 습격당해 사망한다.[16] 이토의 유해는 시치조 아부라코지에 방치되었고, 이를 수습하려는 고료에지 대원들과 신센구미 사이에 충돌이 발생하여 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아부라코지의 변)[16]

가노 와시오는 이토 일파 중 온후한 인물로, 외교 역할을 담당했다.[16] 아부라코지의 변에서는 시노하라 야스노신과 함께 고료에지를 주도했다.[16] 사건 후, 복수를 위해 콘도를 저격했지만, 암살 방식에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16]

시노하라 야스노신은 이토 일파 중 호전적인 인물이었다.[16] 아부라코지의 변에서 가노 와시오와 함께 고료에지를 주도했고, 변 후 콘도를 저격하며 "녀석들(신선조)도 실컷 더러운 짓을 해왔잖아"라고 말했다.[16]

핫토리 타케오는 이토 일파 최고의 무투파였다.[16] 아부라코지의 변에서 나가쿠라 신파치에게 베여 전사했다.[16]

모우나이 아리노스케는 아부라코지의 변에서 하라다 사노스케에게 패배하여 전사했다.[16]

미키 사부로는 이토의 동생으로 추정되며, 고료에지에 합류하여 신센구미를 떠났다.[16] 아부라코지의 변 이후, 병든 오키타 소지를 습격하려 했으나 실패했다.[16]

나카니시 노보루는 이토와 행동을 함께 했으나, 고료에지 결성 이후에는 등장하지 않는다.[16]

3. 4. 4. 아부라코지 사건

이토 가시타로의 유해는, 히지카타 도시조의 판단으로 시치조 아부라코지에 방치되었고, 그의 죽음을 알게 된 고료에시의 대원들은 이것이 함정임을 알아차리지만, "설령 함정이라도, 이토 선생님의 시신을 내버려둘 수는 없다"는 이유로 현장으로 갔다.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신센구미와 고료에시 사이에 전면 충돌이 발생했다. 이 충돌로 도도 헤이스케를 비롯해 양 진영에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16]

아부라코지의 변에서 가노 와시오는 시노하라 야스노신과 함께 고료에시를 주도했다. 가노 와시오는 아부라코지의 변에서 나가쿠라 신파치와 호각으로 싸웠다. 시노하라 야스노신은 칼 솜씨가 확실하여 기습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이토 하지메, 나가쿠라 신파치와 호각으로 싸웠다.

핫토리 타케오는 아부라코지의 변에서 이도류로 분전했지만 나가쿠라 신파치에게 베여 전사했다. 핫토리 타케오의 죽음을 본 도도 헤이스케는 포효와 함께 옛 동료와 칼을 맞대기로 결의를 굳혔다. 모우나이 아리노스케는 아부라코지의 변에서 하라다 사노스케에게 패배하여 전사했다. 미키 사부로는 아부라코지의 변에 참전하여 철수한 후, 보복으로 동료와 함께 병든 오키타 소지를 습격했지만 오코의 기지로 미수에 그쳤다.

4. 주요 사건

겐지 원년, 교토에서 곤도 이사미, 히지카타 토시조가 이끄는 신선조는 불령 무사의 단속에 출동하였다. 조슈 번의 카츠라 코고로는 놓쳐버렸지만 오키타 소지 등의 활약으로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 사건을 들은 사카모토 료마는 10년 전 에도에서의 일을 떠올린다.

4. 1. 이케다야 사건

4. 2. 금문의 변

금문의 변1864년 8월 20일(음력 7월 19일) 교토에서 조슈 번과 아이즈 번, 사쓰마 번을 중심으로 한 여러 번의 군세가 충돌한 사건이다. 이케다야 사건으로 많은 동료를 잃은 조슈 번은 구사카 겐즈이, 키지마 마타베, 마키 야스오미 등이 군세를 이끌고 교토로 진군했다.

조슈 번의 구사카 겐즈이는 아시카가 삼대 목상 효수 사건을 일으킨 낭사들을 부추기는 등 존왕양이 활동을 했다. 8월 18일의 정변에서는, 사카이마치 어문에서 아이즈 번에게 고쇼에 들어가는 것을 저지당한다. 교토를 쫓겨난 후, 조슈 급진파를 이끌고 다시 상경했으나, 패색이 짙어지자 다카쓰카사 스케히로에게 천황에게 중재를 간청했지만 거절당했다. 테라시마 츄자부로와 함께 다카쓰카사 저택에서 자결하면서, 스케스케에게 유발을 가쓰라 고고로에게 전하도록 부탁한다.

테라시마 츄자부로는 금문의 변에 참가하여 구사카 겐즈이와 함께 다카쓰카사 저택에서 자결했다. 이리에 구이치는 금문의 변에 참가, 구사카로부터 귀국하여 주군에게 사정을 알리도록 부탁받았다. 센바 코타로는 금문의 변 이후에도 교토에 잔류하는 조슈 번사의 리더 격으로, 가쓰라와의 연락역을 맡고 있던 스케스케에게 가쓰라의 행방을 알아내려 했다. 미요시 신조는 조슈 번의 지번인 조후 번사로, 사쓰-조 동맹을 맺으려 상경한 사카모토 료마의 호위를 맡았다.

가쓰라 고고로는 이케다야 사건 당시 음모에 반대했었고, 금문의 변 이후에는 교토를 떠났지만, 구사카 겐즈이, 테라시마 츄자부로의 유발을 가져온 스케스케를 교토의 정보를 전달하는 연락역으로 고용한다.

4. 3. 사카모토 료마 암살

4. 4. 도바-후시미 전투

5. 주요 인물

카토리 싱고 (SMAP)가 곤도 이사미 역을 맡았다.[21]

곤도 이사미는 미야가와 오토고로의 친아들로 태어났다. 곤도는 무사가 된 것을 매우 기뻐하며, 낭사대 결성 시에는 20냥에 구입한 고테츠를 전별품으로 주었다. 곤도는 가짜임을 알면서도 "형님의 마음을 소중히 하고 싶다. 내가 이것을 고테츠로 만들겠다"라며 기뻐했다. 이사미가 이타바시에서 참수될 때, "너는 타마의 자랑이다!"라고 외쳤다.[21]

다나카 구니에이가 연기한 곤도 슈사이는 곤도 이사미의 양아버지이다. 텐넨리신류 3대 계승자로, 이사미를 양자로 맞이한 후 은퇴하여 슈사이라고 칭했다. "낭사대에 참가하여 상경하고 싶다"라고 말한 이사미를 흔쾌히 보냈다. 대원 모집과 노중 설득을 위해 에도로 돌아온 이사미와 만났을 때는 병세로 누워 있었다. 도바·후시미 전투 이후 신선조가 에도로 돌아오기 전 사망했지만, "너는 나의 자랑이다. 너를 아들로 삼아 행복했다. 내 아들은 참된 무사다"라는 말을 이사미에게 전해달라고 후데와 츠네에게 부탁했다.

노기와 요코가 연기한 곤도 후데는 곤도 슈스케의 아내이자 곤도 이사미의 양어머니다. 슈스케가 이사미를 양자로 맞이한 후, 이사미가 농가 출신이라는 것에 불만을 품고 괴롭게 대한다. 그러나 이사미가 상경 전 "마음만이라도 무사가 되고 싶다. 무사 이상으로 무사답게 사는 것이 소원"이라고 본심을 털어놓자, 자신과 마찬가지로 무가의 세계로 가려고 발버둥 쳤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도 시모후사의 농가 출신으로, 사창가의 기생에서 슈스케에게 몸을 맡긴 과거를 고백하고 앙금을 푼다. 그 자리에서 "곤도 가문을 위해 마음껏 일해라. 그리고 무사보다 무사다워져서 돌아오너라"라고 말하는 동시에 "백성의 자식이라고 업신여기는 놈들에게 마음껏 되갚아주어라"라고 상경을 밀어주었다. 그 후 이사미를 응원하고, 이타바시에서 참수될 때는 "곤도 이사미, 잘 싸웠습니다!"라고 외쳤다.

다바타 도모코가 연기한 곤도 츠네는 곤도 이사미의 아내이자, 마츠이 야소고로의 딸이다. 이사미와 결혼하여 곤도 타마를 낳았다. 순수한 심성의 좋은 성격으로, 후데에게도 "일이 늦다"라고 들으면서도 평가받고 있다.

나카무라 시도가 연기한 타키모토 스테스케는 곤도 이사미의 소꿉친구로, 히지카타 토시조와 마찬가지로 그를 "캇짱"이라고 부른다. 타마의 자산가인 타키모토 가문 출신이다. "불러주지도 않았는데 나타난다"라고 자칭하는 대로, 이야기 중, 여러 곳에 출몰하여, 낭사대에 들어가기 위해 갖은 수단을 강구했다. 기내에서 철수할 때, 그의 완고함에 곤도 등이 질린 것과, 도바·후시미 전투에서 상실한 전력 보충을 위해, 드디어 입대를 허락받지만, 얼마 안 가 곤도가 체포되어, 그의 구출을 포기한 히지카타 등에게 납득이 가지 않아 결렬. 단신으로 곤도를 구출하러 가지만, 면회한 곤도로부터 "신선조 대원이 아니다"라고 일축당하고, 쫓겨난다. 그 일에 격노하여 불만을 품었지만, 후데나 츠네 등에게 지적을 받고, 앞서 말한 태도가 자신을 죽이지 않기 위해 곤도가 취한 고뇌에 찬 결단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곤도의 처형 직전, 그를 돕기 위해 단신으로 "신선조 대원, 타키모토 스테스케!"라고 이름을 외치며 형장에 들이닥치지만, 즉시 경비병에게 베여 절명했다.

사와구치 야스코가 연기한 오키타 미츠는 오키타 소지의 누나이다. 소지가 시위관의 문인이기 때문에 자주 시위관에 드나들었으며, 사이조와 마찬가지로 이사미를 "캇짱"이라고 부른다. 이사미의 신변을 돌보거나 이사미, 사이조 등과 도적 퇴치에 나서는 등 초반의 히로인 취급을 받았다. 이사미 등이 상경할 때, 이사미가 오랫동안 자신에게 연정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리고 사실 자신도 이사미를 좋아했다는 것을 고백하고, 동생을 부탁하고 보냈다. 에도로 돌아온 곤도와 덴츠인에서 재회하여, 소지가 노로[폐결핵]라는 것을 듣게 된다. 그리고 소지를 만나러 갔을 때, 자신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미츠에게 이야기하는 소지에게, 미츠 특유의 말로 소지를 격려한다. 또한 흑선 내항 당시, 이사미와 사이조가 입수한 샴페인 코르크 마개가 총집편에서 이사미 등을 회상하는 그녀의 손에 있는데, 이는 하코다테에서 싸우는 사이조가 이치무라 테츠노스케에게 명해서 가져오게 한 것이다.

고히나타 후미요가 연기한 사토 히코고로는 히노 숙의 명주이자, 히지카타 토시조의 의붓 형이다. 곤도 이사미와 의형제의 의를 맺고 있으며, 신선조를 지원했다. 춘일대를 조직하여, 코요 진무대에 참가했다. 종반 이사미가 관군에게 체포되어 참수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정신을 잃고 구출하러 가려 했다.

오노 타케히코가 연기한 고지마 시카노스케는 타마의 명주이자, 곤도 이사미의 후견인이자 의형제이다. 타마를 방문한 곤도 이사미에게 저택을 도적에게 습격당한 타키모토 시게조의 창고 물건을 이송하도록 부탁한다. 곤도 등이 낭사대로 상경하는 것을 반대했다. 그리고 곤도가 나가레야마에 체포되어 사토 히코고로가 구출하러 갔을 때는 사토 노부와 함께 막았지만, "이런 식의 사쓰마와 조슈의 시대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곤도 씨의 뒤를 잇는 자가 이 타마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아난 겐지가 연기한 곤도 유고로는 미야가와 오토고로의 아들이다.[21] 타마의 미야가와 가문을 방문한 이사미에게 졸라서 이사미와 오토고로에게 주먹을 입에 넣게 했다.

곤도 타마는 곤도 이사미의 딸이다. 주먹을 물고 있는 버릇이 있는 듯하다.

야마모토 코지가 히지카타 토시조 역을 맡았다. 히지카타 도시조는 신센구미에서 실질적인 2인자로서 조직 운영과 전투를 주도했다. 곤도 이사미와는 깊은 신뢰 관계였지만, 냉혹한 판단력과 카리스마로 조직을 장악했다. 때로는 냉혹한 면모를 보여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뛰어난 능력으로 신센구미를 이끌었다.

후지와라 다쓰야(소년시절: 다나베 도키마사)가 오키타 소지 역을 맡았다. 오키타 소지는 출생, 성장 과정, 뛰어난 검술 실력, 성격, 질병, 곤도 이사미 및 다른 대원들과의 관계, 최후 등이 상세하게 묘사되었다. 그는 천재적인 검객이었지만, 결핵으로 인해 젊은 나이에 요절한 비극적인 삶을 살았다.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15대 쇼군으로, 대정봉환을 통해 권력을 조정에 반환했지만, 왕정복고의 대호령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도바·후시미 전투에서 패배 후 에도로 돌아가 가쓰 가이슈의 진언에 따라 항복했다.

가쓰 가이슈사카모토 료마를 제자로 삼아 곤도 이사미와도 만났으며, 막부 붕괴 시기에 사이고 다카모리와 담판하여 에도성 무혈 개성을 이끌어냈다. 곤도의 처형을 막지 못했지만, 그의 삶을 "틀림없는 무사"라고 평가했다.

마쓰다이라 가타모리는 교토 수호직이자 아이즈 번 번주로, 신센구미에 '신센구미'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곤도를 신뢰했다. 곤도가 처형되자 그의 원수를 갚겠다고 맹세했다.

고메이 천황은 쇄국을 원했지만 과격한 행동은 좋아하지 않았으며, 마쓰다이라 가타모리를 신뢰했다. 그의 죽음은 신센구미의 장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와쿠라 도모미는 사쓰마 번, 조슈 번과 손을 잡고 복권하여 대정봉환을 성공으로 이끌었으며, 사카모토 료마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카모토 료마곤도 이사미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으나, 정치적 입장 차이로 갈등을 겪었다.[25] 기도 다카요시는 곤도와 에도에서 만났으며, 후에 신센구미와 교토에서 재회하게 된다.[26] 사이고 다카모리는 사쓰마 번 군부역으로, 곤도가 금문의 변에서 승리한 후 덴노잔에 조슈 세력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렸다. 료마와 만나 사쓰초 동맹을 맺었지만, 료마를 암살했다. 아리마로부터 곤도 구명을 간청받았지만, 지사들과 살아남은 자들의 원한을 곤도에게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하겠다고 거절했다.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이념을 위해 료마와 곤도를 죽게 한 것을 후회하는 모습도 보였다.

5. 1. 신센구미 대원

카토리 싱고 (SMAP)가 곤도 이사미 역을 맡았다.[21]

곤도 이사미는 미야가와 오토고로의 친아들로 태어났다. 곤도는 무사가 된 것을 매우 기뻐하며, 낭사대 결성 시에는 20냥에 구입한 고테츠를 전별품으로 주었다. 곤도는 가짜임을 알면서도 "형님의 마음을 소중히 하고 싶다. 내가 이것을 고테츠로 만들겠다"라며 기뻐했다. 이사미가 이타바시에서 참수될 때, "너는 타마의 자랑이다!"라고 외쳤다.[21]

다나카 구니에이가 연기한 곤도 슈사이는 곤도 이사미의 양아버지이다. 텐넨리신류 3대 계승자로, 이사미를 양자로 맞이한 후 은퇴하여 슈사이라고 칭했다. "낭사대에 참가하여 상경하고 싶다"라고 말한 이사미를 흔쾌히 보냈다. 대원 모집과 노중 설득을 위해 에도로 돌아온 이사미와 만났을 때는 병세로 누워 있었다. 도바·후시미 전투 이후 신선조가 에도로 돌아오기 전 사망했지만, "너는 나의 자랑이다. 너를 아들로 삼아 행복했다. 내 아들은 참된 무사다"라는 말을 이사미에게 전해달라고 후데와 츠네에게 부탁했다.

노기와 요코가 연기한 곤도 후데는 곤도 슈스케의 아내이자 곤도 이사미의 양어머니다. 슈스케가 이사미를 양자로 맞이한 후, 이사미가 농가 출신이라는 것에 불만을 품고 괴롭게 대한다. 그러나 이사미가 상경 전 "마음만이라도 무사가 되고 싶다. 무사 이상으로 무사답게 사는 것이 소원"이라고 본심을 털어놓자, 자신과 마찬가지로 무가의 세계로 가려고 발버둥 쳤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도 시모후사의 농가 출신으로, 사창가의 기생에서 슈스케에게 몸을 맡긴 과거를 고백하고 앙금을 푼다. 그 자리에서 "곤도 가문을 위해 마음껏 일해라. 그리고 무사보다 무사다워져서 돌아오너라"라고 말하는 동시에 "백성의 자식이라고 업신여기는 놈들에게 마음껏 되갚아주어라"라고 상경을 밀어주었다. 그 후 이사미를 응원하고, 이타바시에서 참수될 때는 "곤도 이사미, 잘 싸웠습니다!"라고 외쳤다.

다바타 도모코가 연기한 곤도 츠네는 곤도 이사미의 아내이자, 마츠이 야소고로의 딸이다. 이사미와 결혼하여 곤도 타마를 낳았다. 순수한 심성의 좋은 성격으로, 후데에게도 "일이 늦다"라고 들으면서도 평가받고 있다.

나카무라 시도가 연기한 타키모토 스테스케는 곤도 이사미의 소꿉친구로, 히지카타 토시조와 마찬가지로 그를 "캇짱"이라고 부른다. 타마의 자산가인 타키모토 가문 출신이다. "불러주지도 않았는데 나타난다"라고 자칭하는 대로, 이야기 중, 여러 곳에 출몰하여, 낭사대에 들어가기 위해 갖은 수단을 강구했다. 기내에서 철수할 때, 그의 완고함에 곤도 등이 질린 것과, 도바·후시미 전투에서 상실한 전력 보충을 위해, 드디어 입대를 허락받지만, 얼마 안 가 곤도가 체포되어, 그의 구출을 포기한 히지카타 등에게 납득이 가지 않아 결렬. 단신으로 곤도를 구출하러 가지만, 면회한 곤도로부터 "신선조 대원이 아니다"라고 일축당하고, 쫓겨난다. 그 일에 격노하여 불만을 품었지만, 후데나 츠네 등에게 지적을 받고, 앞서 말한 태도가 자신을 죽이지 않기 위해 곤도가 취한 고뇌에 찬 결단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곤도의 처형 직전, 그를 돕기 위해 단신으로 "신선조 대원, 타키모토 스테스케!"라고 이름을 외치며 형장에 들이닥치지만, 즉시 경비병에게 베여 절명했다.

사와구치 야스코가 연기한 오키타 미츠는 오키타 소지의 누나이다. 소지가 시위관의 문인이기 때문에 자주 시위관에 드나들었으며, 사이조와 마찬가지로 이사미를 "캇짱"이라고 부른다. 이사미의 신변을 돌보거나 이사미, 사이조 등과 도적 퇴치에 나서는 등 초반의 히로인 취급을 받았다. 이사미 등이 상경할 때, 이사미가 오랫동안 자신에게 연정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리고 사실 자신도 이사미를 좋아했다는 것을 고백하고, 동생을 부탁하고 보냈다. 에도로 돌아온 곤도와 덴츠인에서 재회하여, 소지가 노로[폐결핵]라는 것을 듣게 된다. 그리고 소지를 만나러 갔을 때, 자신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미츠에게 이야기하는 소지에게, 미츠 특유의 말로 소지를 격려한다. 또한 흑선 내항 당시, 이사미와 사이조가 입수한 샴페인 코르크 마개가 총집편에서 이사미 등을 회상하는 그녀의 손에 있는데, 이는 하코다테에서 싸우는 사이조가 이치무라 테츠노스케에게 명해서 가져오게 한 것이다.

고히나타 후미요가 연기한 사토 히코고로는 히노 숙의 명주이자, 히지카타 토시조의 의붓 형이다. 곤도 이사미와 의형제의 의를 맺고 있으며, 신선조를 지원했다. 춘일대를 조직하여, 코요 진무대에 참가했다. 종반 이사미가 관군에게 체포되어 참수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정신을 잃고 구출하러 가려 했다.

오노 타케히코가 연기한 고지마 시카노스케는 타마의 명주이자, 곤도 이사미의 후견인이자 의형제이다. 타마를 방문한 곤도 이사미에게 저택을 도적에게 습격당한 타키모토 시게조의 창고 물건을 이송하도록 부탁한다. 곤도 등이 낭사대로 상경하는 것을 반대했다. 그리고 곤도가 나가레야마에 체포되어 사토 히코고로가 구출하러 갔을 때는 사토 노부와 함께 막았지만, "이런 식의 사쓰마와 조슈의 시대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곤도 씨의 뒤를 잇는 자가 이 타마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아난 겐지가 연기한 곤도 유고로는 미야가와 오토고로의 아들이다.[21] 타마의 미야가와 가문을 방문한 이사미에게 졸라서 이사미와 오토고로에게 주먹을 입에 넣게 했다.

곤도 타마는 곤도 이사미의 딸이다. 주먹을 물고 있는 버릇이 있는 듯하다.

5. 1. 1. 곤도 이사미

카토리 싱고 (SMAP)가 곤도 이사미 역을 맡았다.[21]

곤도 이사미는 미야가와 오토고로의 친아들로 태어났다. 곤도는 무사가 된 것을 매우 기뻐하며, 낭사대 결성 시에는 20냥에 구입한 고테츠를 전별품으로 주었다. 곤도는 가짜임을 알면서도 "형님의 마음을 소중히 하고 싶다. 내가 이것을 고테츠로 만들겠다"라며 기뻐했다. 이사미가 이타바시에서 참수될 때, "너는 타마의 자랑이다!"라고 외쳤다.[21]

다나카 구니에이가 연기한 곤도 슈사이는 곤도 이사미의 양아버지이다. 텐넨리신류 3대 계승자로, 이사미를 양자로 맞이한 후 은퇴하여 슈사이라고 칭했다. "낭사대에 참가하여 상경하고 싶다"라고 말한 이사미를 흔쾌히 보냈다. 대원 모집과 노중 설득을 위해 에도로 돌아온 이사미와 만났을 때는 병세로 누워 있었다. 도바·후시미 전투 이후 신선조가 에도로 돌아오기 전 사망했지만, "너는 나의 자랑이다. 너를 아들로 삼아 행복했다. 내 아들은 참된 무사다"라는 말을 이사미에게 전해달라고 후데와 츠네에게 부탁했다.

노기와 요코가 연기한 곤도 후데는 곤도 슈스케의 아내이자 곤도 이사미의 양어머니다. 슈스케가 이사미를 양자로 맞이한 후, 이사미가 농가 출신이라는 것에 불만을 품고 괴롭게 대한다. 그러나 이사미가 상경 전 "마음만이라도 무사가 되고 싶다. 무사 이상으로 무사답게 사는 것이 소원"이라고 본심을 털어놓자, 자신과 마찬가지로 무가의 세계로 가려고 발버둥 쳤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도 시모후사의 농가 출신으로, 사창가의 기생에서 슈스케에게 몸을 맡긴 과거를 고백하고 앙금을 푼다. 그 자리에서 "곤도 가문을 위해 마음껏 일해라. 그리고 무사보다 무사다워져서 돌아오너라"라고 말하는 동시에 "백성의 자식이라고 업신여기는 놈들에게 마음껏 되갚아주어라"라고 상경을 밀어주었다. 그 후 이사미를 응원하고, 이타바시에서 참수될 때는 "곤도 이사미, 잘 싸웠습니다!"라고 외쳤다.

다바타 도모코가 연기한 곤도 츠네는 곤도 이사미의 아내이자, 마츠이 야소고로의 딸이다. 이사미와 결혼하여 곤도 타마를 낳았다. 순수한 심성의 좋은 성격으로, 후데에게도 "일이 늦다"라고 들으면서도 평가받고 있다.

나카무라 시도가 연기한 타키모토 스테스케는 곤도 이사미의 소꿉친구로, 히지카타와 마찬가지로 그를 "캇짱"이라고 부른다. 타마의 자산가인 타키모토 가문 출신이다. "불러주지도 않았는데 나타난다"라고 자칭하는 대로, 이야기 중, 여러 곳에 출몰하여, 낭사대에 들어가기 위해 갖은 수단을 강구했다. 기내에서 철수할 때, 그의 완고함에 곤도 등이 질린 것과, 도바·후시미 전투에서 상실한 전력 보충을 위해, 드디어 입대를 허락받지만, 얼마 안 가 곤도가 체포되어, 그의 구출을 포기한 히지카타 등에게 납득이 가지 않아 결렬. 단신으로 곤도를 구출하러 가지만, 면회한 곤도로부터 "신선조 대원이 아니다"라고 일축당하고, 쫓겨난다. 그 일에 격노하여 불만을 품었지만, 후데나 츠네 등에게 지적을 받고, 앞서 말한 태도가 자신을 죽이지 않기 위해 곤도가 취한 고뇌에 찬 결단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곤도의 처형 직전, 그를 돕기 위해 단신으로 "신선조 대원, 타키모토 스테스케!"라고 이름을 외치며 형장에 들이닥치지만, 즉시 경비병에게 베여 절명했다.

사와구치 야스코가 연기한 오키타 미츠는 오키타 소지의 누나이다. 소지가 시위관의 문인이기 때문에 자주 시위관에 드나들었으며, 사이조와 마찬가지로 이사미를 "캇짱"이라고 부른다. 이사미의 신변을 돌보거나 이사미, 사이조 등과 도적 퇴치에 나서는 등 초반의 히로인 취급을 받았다. 이사미 등이 상경할 때, 이사미가 오랫동안 자신에게 연정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리고 사실 자신도 이사미를 좋아했다는 것을 고백하고, 동생을 부탁하고 보냈다. 에도로 돌아온 곤도와 덴츠인에서 재회하여, 소지가 노로[폐결핵]라는 것을 듣게 된다. 그리고 소지를 만나러 갔을 때, 자신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미츠에게 이야기하는 소지에게, 미츠 특유의 말로 소지를 격려한다. 또한 흑선 내항 당시, 이사미와 사이조가 입수한 샴페인 코르크 마개가 총집편에서 이사미 등을 회상하는 그녀의 손에 있는데, 이는 하코다테에서 싸우는 사이조가 이치무라 테츠노스케에게 명해서 가져오게 한 것이다.

고히나타 후미요가 연기한 사토 히코고로는 히노 숙의 명주이자, 히지카타 토시조의 의붓 형이다. 곤도 이사미와 의형제의 의를 맺고 있으며, 신선조를 지원했다. 춘일대를 조직하여, 코요 진무대에 참가했다. 종반 이사미가 관군에게 체포되어 참수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정신을 잃고 구출하러 가려 했다.

오노 타케히코가 연기한 고지마 시카노스케는 타마의 명주이자, 곤도 이사미의 후견인이자 의형제이다. 타마를 방문한 곤도 이사미에게 저택을 도적에게 습격당한 타키모토 시게조의 창고 물건을 이송하도록 부탁한다. 곤도 등이 낭사대로 상경하는 것을 반대했다. 그리고 곤도가 나가레야마에 체포되어 사토 히코고로가 구출하러 갔을 때는 사토 노부와 함께 막았지만, "이런 식의 사쓰마와 조슈의 시대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곤도 씨의 뒤를 잇는 자가 이 타마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아난 겐지가 연기한 곤도 유고로는 미야가와 오토고로의 아들이다.[21] 타마의 미야가와 가문을 방문한 이사미에게 졸라서 이사미와 오토고로에게 주먹을 입에 넣게 했다.

곤도 타마는 곤도 이사미의 딸이다. 주먹을 물고 있는 버릇이 있는 듯하다.

5. 1. 2. 히지카타 도시조

야마모토 코지가 히지카타 토시조 역을 맡았다. 히지카타 도시조는 신센구미에서 실질적인 2인자로서 조직 운영과 전투를 주도했다. 곤도 이사미와는 깊은 신뢰 관계였지만, 냉혹한 판단력과 카리스마로 조직을 장악했다. 때로는 냉혹한 면모를 보여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뛰어난 능력으로 신센구미를 이끌었다.

5. 1. 3. 오키타 소지

후지와라 다쓰야(소년시절: 다나베 도키마사)가 오키타 소지 역을 맡았다. 오키타 소지는 출생, 성장 과정, 뛰어난 검술 실력, 성격, 질병, 곤도 이사미 및 다른 대원들과의 관계, 최후 등이 상세하게 묘사되었다. 그는 천재적인 검객이었지만, 결핵으로 인해 젊은 나이에 요절한 비극적인 삶을 살았다.

5. 2. 막부 및 조정 인물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15대 쇼군으로, 대정봉환을 통해 권력을 조정에 반환했지만, 왕정복고의 대호령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도바·후시미 전투에서 패배 후 에도로 돌아가 가쓰 가이슈의 진언에 따라 항복했다.

가쓰 가이슈사카모토 료마를 제자로 삼아 곤도 이사미와도 만났으며, 막부 붕괴 시기에 사이고 다카모리와 담판하여 에도성 무혈 개성을 이끌어냈다. 곤도의 처형을 막지 못했지만, 그의 삶을 "틀림없는 무사"라고 평가했다.

마쓰다이라 가타모리는 교토 수호직이자 아이즈 번 번주로, 신센구미에 '신센구미'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곤도를 신뢰했다. 곤도가 처형되자 그의 원수를 갚겠다고 맹세했다.

고메이 천황은 쇄국을 원했지만 과격한 행동은 좋아하지 않았으며, 마쓰다이라 가타모리를 신뢰했다. 그의 죽음은 신센구미의 장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와쿠라 도모미는 사쓰마 번, 조슈 번과 손을 잡고 복권하여 대정봉환을 성공으로 이끌었으며, 사카모토 료마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5. 3. 막말 지사

사카모토 료마곤도 이사미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으나, 정치적 입장 차이로 갈등을 겪었다.[25] 기도 다카요시는 곤도와 에도에서 만났으며, 후에 신센구미와 교토에서 재회하게 된다.[26] 사이고 다카모리는 사쓰마 번 군부역으로, 곤도가 금문의 변에서 승리한 후 덴노잔에 조슈 세력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렸다. 료마와 만나 사쓰초 동맹을 맺었지만, 료마를 암살했다. 아리마로부터 곤도 구명을 간청받았지만, 지사들과 살아남은 자들의 원한을 곤도에게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하겠다고 거절했다.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이념을 위해 료마와 곤도를 죽게 한 것을 후회하는 모습도 보였다.

6. 드라마 《신센구미!》

1864년 교토에서 곤도 이사미, 히지카타 도시조가 이끄는 신센구미는 불온한 낭사(浪士)들을 단속하려고 출동한다. 이들은 초슈 번의 가쓰라 고고로를 놓쳤지만 오키타 소지 등의 활약으로 큰 성과를 거둔다.

이 사건을 들은 사카모토 료마는 10년 전 에도에서 일어난 일을 회상하는데….

이 작품은 제43번째의 NHK 대하드라마이고 드라마의 소재는 교토 수호직(京都守護職)의 산하에 있는 경비조직으로 알려진 신센구미이다. 기존의 역사소설을 원작으로 하지 않는 작품은 2000년도의 《아오이 도쿠가와 삼대》이후 4년만에 나왔다. 주연인 카토리 싱고는 대하드라마에 처음으로 출연했고 원작과 각본은 무대나 민간방송국 드라마에서 많은 작품을 손수 창작한 미타니 코키가 담당하였다. 이 작품은 곤도와 사카모토 료마나 가쓰라 고고로가 에도에서 서로 아는 사이라는 등 사실과는 다른 대담한 창작을 포함하면서 존왕양이(尊王攘夷)를 명분으로 젊은이들이 펼치는 청춘군상극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또한 '콘도 이사미에 있어서 중요한 49일'이 채택되어 기본적으로 그 중 하루의 이야기가 1회로 구성되고 있다. 신센구미의 무사들이나 지사들의 배역에는 실제의 연령에 가까운 젊은 배우나 소극장에서 활약하는 무대배우가 적극적으로 기용되었다.

드라마의 주제곡으로는 《류큐의 바람》이 방영된 이후 11년만에 가사가 붙여진 곡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각회의 서두에 역사적인 사실을 설명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해설이 없는 대하드라마라는 이례적인 형식이 사용되었다. 작품의 중간에 나오는 이케다야 사건에서는 무대인 이케다야의 세트가 실제 건물의 설계도를 기초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기존의 영화 등에서 묘사된 큰 계단은 없고 건물은 실제에 가깝게 협소하다. 이 작품에는 지금까지의 고정된 신센구미의 이미지를 쇄신하려는 노력이 반영되었고 제목에 있는 느낌표에는 '이것이야말로 신센구미다.'라는 생각이 들어 있다고 한다.

첫회의 시청률은 26.3%였으나 이것이 최고의 시청률이었다. 이후에는 시청률이 계속 떨어져서 평균 시청률은 17.4%에 이르렀다. 이것을 두고 절찬하거나 옹호하는 이들의 의견이 적지 않았고 찬반양론도 매우 격렬하였다. 이 작품의 이야기에는 신센구미대원 각자의 캐릭터와 그들의 인간관계가 정성스럽게 묘사되고 있으며, 각본에는 막부 말기를 선호하는 미타니의 지식과 연극인으로서의 구성력이 제시되어 있다.

이야기는 곤도 이사미의 처형으로 끝나기 때문에 히지카타 도시조가 신센구미를 이끌고 아이즈, 하코다테에서 전투를 벌이는 장면이 없었다. 그래서 지역의 관계자들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고 한다. 이러한 사정과 시청자들의 희망으로 2006년 1월 3일에는 《신센구미! 히지카타 도시조 최후의 하루》가 정월시대극(正月時代劇)에서 이 작품의 속편으로 방영되었다.

6. 1. 작품 개요

1864년 교토에서 곤도 이사미, 히지카타 도시조가 이끄는 신센구미는 불온한 낭사(浪士)들을 단속하려고 출동한다. 이들은 초슈 번의 가츠라 고고로를 놓쳤지만 오키타 소지 등의 활약으로 큰 성과를 거둔다.

이 사건을 들은 사카모토 료마는 10년 전 에도에서 일어난 일을 회상하는데….

이 작품은 제43번째의 NHK 대하드라마이고 드라마의 소재는 교토 수호직(京都守護職)의 산하에 있는 경비조직으로 알려진 신센구미이다. 기존의 역사소설을 원작으로 하지 않는 작품은 2000년도의 《아오이 도쿠가와 삼대》이후 4년만에 나왔다. 주연인 카토리 싱고는 대하드라마에 처음으로 출연했고 원작과 각본은 무대나 민간방송국 드라마에서 많은 작품을 손수 창작한 미타니 고키가 담당하였다. 이 작품은 곤도와 사카모토 료마나 가츠라 고고로가 에도에서 서로 아는 사이라는 등 사실과는 다른 대담한 창작을 포함하면서 존왕양이(尊王攘夷)를 명분으로 젊은이들이 펼치는 청춘군상극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또한 '콘도 이사미에 있어서 중요한 49일'이 채택되어 기본적으로 그 중 하루의 이야기가 1회로 구성되고 있다. 신센구미의 무사들이나 지사들의 배역에는 실제의 연령에 가까운 젊은 배우나 소극장에서 활약하는 무대배우가 적극적으로 기용되었다.

드라마의 주제곡으로는 《류큐의 바람》이 방영된 이후 11년만에 가사가 붙여진 곡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각회의 서두에 역사적인 사실을 설명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해설이 없는 대하드라마라는 이례적인 형식이 사용되었다. 작품의 중간에 나오는 이케다야 사건에서는 무대인 이케다야의 세트가 실제 건물의 설계도를 기초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기존의 영화 등에서 묘사된 큰 계단은 없고 건물은 실제에 가깝게 협소하다. 이 작품에는 지금까지의 고정된 신센구미의 이미지를 쇄신하려는 노력이 반영되었고 제목에 있는 느낌표에는 '이것이야말로 신센구미다.'라는 생각이 들어 있다고 한다.

첫회의 시청률은 26.3%였으나 이것이 최고의 시청률이었다. 이후에는 시청률이 계속 떨어져서 평균 시청률은 17.4%에 이르렀다. 이것을 두고 절찬하거나 옹호하는 이들의 의견이 적지 않았고 찬반양론도 매우 격렬하였다. 이 작품의 이야기에는 신센구미대원 각자의 캐릭터와 그들의 인간관계가 정성스럽게 묘사되고 있으며, 각본에는 막부 말기를 선호하는 미타니의 지식과 연극인으로서의 구성력이 제시되어 있다.

이야기는 곤도 이사미의 처형으로 끝나기 때문에 히지카타 도시조가 신센구미를 이끌고 아이즈, 하코다테에서 전투를 벌이는 장면이 없었다. 그래서 지역의 관계자들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고 한다. 이러한 사정과 시청자들의 희망으로 2006년 1월 3일에는 《신센구미! 히지카타 도시조 최후의 하루》가 정월시대극(正月時代劇)에서 이 작품의 속편으로 방영되었다.

6. 2. 등장인물 및 캐스팅

카토리 싱고 - 곤도 이사미

야마모토 코지 - 히지카타 토시조 역

후지와라 타츠야 - 오키타 소지

오다기리 죠 - 사이토 하지메

나카무라 칸타로 2세 - 토도 헤이스케 역

야마모토 타로 - 하라다 사노스케

사카이 마사토 - 야마나미 케이스케 역

야마구치 토모미츠 - 나가쿠라 신파치

코바야시 타카시 - 이노우에 겐자부로

쇼에이 - 시마다 카이 역

하시모토 준 - 야마자키 스스무

오오쿠라 코지 - 카와이 키사부로 역

야시마 노리토 - 다케다 간류사이

사토 코이치 - 세리자와 카모 역

아이지마 카즈유키 - 니이미 니시키 역

사카타 타다시 - 히라야마 고로 역

고슈 - 히라마 쥬스케 역

타니하라 쇼스케 - 이토 카시타로 역

오바라 마사토 - 카노 와시오 역

츠츠이 미치타카 - 마츠다이라 카타모리 역

야지마 켄이치 - 히로사와 토미지로 역

하라 야스요시 - 테시로기 스구에몬 역

에구치 요스케 - 사카모토 료마

미야케 히로키 - 모치즈키 카메야타 역

마스자와 노조무 - 나카오카 신타로

이시구로 켄 - 키도 타카요시 역

이케우치 히로유키 - 쿠사카 겐즈이 역

우카지 타카시 - 사이고 다카모리

야스무라 야마토 - 오쿠보 도시미치

고호 타카토 - 구로다 료스케

이마이 토모히코 - 도쿠가와 요시노부 – 마지막 쇼군 역

이하라 츠요시 - 사사키 타다사부로 역

노다 히데키 - 가쓰 가이슈

사사키 이사오 - 우치야마 히코지로 역

쿠사나기 츠요시 - 에노모토 다케아키

다나카 테츠시 - 마츠모토 료준 역

나카무라 후쿠스케 9세 - 고메이 천황 – 제121대 천황 역

나카무라 유지 - 이와쿠라 도모미

사와구치 야스코 - 오키타 미츠 - 오키타 소지의 누나 역

이시즈카 코지 - 사쿠마 쇼잔

사가와 테츠로 - 오노가와 히데고로 역

마이노우미 슈헤이 - 쿠마카와 쿠와지로 – 스모 선수 역

노부유키 다이시 - 쿠로가미 – 스모 선수 역

제이 카비라 - 헨리 휴스켄 역

마티 쿠네르트 - 타운센드 해리스 역

유카 - 오코 역

쿠리즈카 아사히 - 히지카타 타메지로, 토시조의 형 역

키쿠카와 레이 - 이쿠마츠 역

6. 3. 제작진

각본은 미타니 코키가 맡았으며, 음악은 핫토리 타카유키가 담당하였다. 주제음악 연주는 NHK 교향악단이 맡았으며, 지휘는 히로가미 준이치가 담당했다. 존 켄 눗초가 테너 독창을 맡았다. 시대 고증은 오이시 마나부와 야마무라 타츠야가 담당하였고, 건축 고증은 히라이 세이, 의상 고증은 코이즈미 키요코가 담당하였다. 하야시 쿠니시로가 무술 지도를 담당했다.

제작 총괄은 요시카와 고지가 담당했으며, 미술은 야마시타 고히코, 오카시마 다로, 야마우치 히로키가 담당했다. 기술은 오누마 유지, 사사키 요시아키가 담당했고, 음향 효과는 요네모토 미쓰루, 오노테라 시게키, 이시카와 야스오가 담당했다. 촬영은 오가사와라 요이치, 나가노 이사무, 히라노 다쿠야, 스기야마 요시카쓰가 담당했고, 조명은 오이시 스미오, 나카무라 마사노리, 세키 야스아키가 담당했다.

연출은 시미즈 카즈히코, 요시카와 구니오, 이세다 마사야, 야마모토 도시히코, 요시다 고키, 고바야시 다이지, 도이 쇼헤이, 시미즈 다쿠야가 담당했다.

6. 4. 방영 정보

《신센구미!》는 2004년 1월 11일부터 12월 12일까지 NHK에서 방영된 대하드라마이다. 총 49회로, 제1회와 최종회는 1시간 확대판으로 방영되었다. 국내에서는 채널J에서 《바람의 검 신선조!》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다.

회수(回數)방영날짜부제연출신센구미에 가다시청률
제1회1월 11일흑선(黑船)이 왔다시미즈 가즈히코우라가와 페리의 내항26.3%
제2회1월 18일다마의 자랑이란곤도 이사미의 고향 조후시23.9%
제3회1월 25일어머니는 가출한다히지카타 도시조의 고향 히노시20.3%
제4회2월 1일천지가 뒤집어지다사쿠라다 문과 에도 성20.6%
제5회2월 8일혼례식날에곤도 이사미의 고향 조후 시20.4%
제6회2월 15일휴스켄 도망치라이세다 마사야시위관과 천연이심류19.9%
제7회2월 22일축 사대째의 이름 세습곤도 이사미의 도복, 고지마 자료관19.7%
제8회2월 29일어찌될 것인가, 일본은에도의 삼대도장18.5%
제9회3월 7일모든 것은 이 편지에사쿠마 쇼잔의 고향 마쓰시로 정19.8%
제10회3월 14일드디어 로시구미를 조직하다히지카타 도시조의 고향 히노 시15.6%
제11회3월 21일어머님 다녀 오겠습니다시미즈 가즈히코기요카와 하치로와 덴즈인17.5%
제12회3월 28일서쪽으로!대원이 되고 싶어했던 남자 마쓰모토 스테스케14.0%
제13회4월 4일세리자와 가모 폭발이세다 마사야세리자와 가모와 미토, 다마쓰쿠15.6%
제14회4월 11일교에 도착하다신센구미 주둔지 야기 저택14.4%
제15회4월 18일갈 것인가, 남을 것인가시미즈 가즈히코신토쿠지17.6%
제16회4월 25일간략히 올립니다, 쓰네 님구 마에카와 저택16.6%
제17회5월 2일처음 맞이하는 죽음이세다 마사야미부데라와 미부쿄겐15.6%
제18회5월 9일첫출동! 미부로시(壬生浪士)아이즈번 본진 곤카이코묘지15.4%
제19회5월 16일장례를 치르는 날에요시다 고키충의의 번주 마쓰다이라 가타모리15.5%
제20회5월 23일가모를 술취하게 하지 말라육번조장 이노우에 겐자부로15.3%
제21회5월 30일돗코이 사건시미즈 가즈히코오사카와 신센구미 대원14.2%
제22회6월 6일지붕위의 가모이세다 마사야가쓰라 고고로의 아내 이쿠마쓰17.9%
제23회6월 13일정변, 팔월 십팔일교토고쇼 하마구리고 문16.8%
제24회6월 20일피해서는 통하지 않는 길시미즈 가즈히코신센구미의 이야기꾼 나가쿠라 신파치17.8%
제25회6월 27일신센구미 생성세리자와 습격장소 야기 저택19.3%
제26회7월 4일국장 곤도 이사미이세다 마사야요시다 쇼인초슈, 하기17.4%
제27회7월 11일이케다야 사건의 직전교토 료젠 역사관13.4%
제28회7월 18일그리고 이케다야로시미즈 가즈히코교토 이케다야16.6%
제29회7월 25일초슈를 정벌하라야마모토 도시히코구사카 겐즈이와 초슈, 하기 시14.4%
제30회8월 1일나가쿠라 신파치의 반란교토 료젠 묘지17.6%
제31회8월 8일에도에 돌아가다이세다 마사야교토 시 아케보노테이 사건16.5%
제32회8월 15일야마나미 게이스케의 탈주로시구미 외전14.8%
제33회8월 22일벗의 죽음총장 야마나미 게이스케와 고엔지16.1%
제34회8월 29일데라다야 대소동야마모토 도시히코제2의 주둔지 니시혼간지18.1%
제35회9월 5일잘 있거라, 미부무라난부번 탈번자 요시무라 간이치로18.7%
제36회9월 12일대결 미마와리구미!이세다 마사야사이고 다카모리가쓰 가이슈16.0%
제37회9월 19일삿초 동맹 체결!시미즈 가즈히코사쓰마번 저택의 유적과 삿초 동맹15.9%
제38회9월 26일어느 대원의 할복야마모토 도시히코데리다야와 오료16.2%
제39회10월 3일쇼군의 서거이세다 마사야다니 산주로 형제14.5%
제40회10월 10일도도 헤이스케의 나그네길시미즈 가즈히코사카모토 료마의 고향 도사 현14.2%
제41회10월 17일다케다 간류사이의 몰락고바야시 다이지사카모토 료마 탈번의 길16.0%
제42회10월 24일료마 암살시미즈 가즈히코사카모토 료마 암살사건16.5%
제43회10월 31日결전, 아부라노 고지이세다 마사야이토 가시타로와 도도 헤이스케19.6%
제44회11월 7일국장피습도이 쇼헤이곤도 이사미의 피습17.9%
제45회11월 14일겐자부로 전사하다시미즈 가즈히코도바 후시미 전투16.0%
제46회11월 21일동쪽으로병을 앓는 천재검사 오키타 소지18.5%
제47회11월 28일재회고요친부타이 패하다17.3%
제48회12월 5일나가레야마요시카와 구니오곤도, 히지카타의 이별장소 나가레야마 시16.2%
제49회
(최종회)
12월 12일사랑하는 벗이여시미즈 가즈히코신센구미대원 각자의 길21.8%
평균시청률: 17.4%(시청률은 간토 지방 비디오 리서치사에서 조사함)



제27회는 참의원선거 특별방송 때문에 지상파에서 19시 15분에서 20시 사이에 방영되었다. 각 부제는 연관성을 의식하여 정해졌다. (예: 제5회와 제19회, 제12회와 제46회, 제39회와 제45회)

6. 5. 평가 및 영향

《신센구미!》는 곤도 이사미를 주인공으로, 교토 수호직 아래의 경비 조직이었던 신선조를 다룬 작품이다. 기존 역사 소설을 원작으로 하지 않고 미타니 코키가 각본을 맡은 오리지널 작품으로, 막말 청춘 그래프티를 테마로 곤도 이사미의 인생에서 중요한 49일을 다루며, 기본적으로 1일을 1화로 구성하는 방식을 취했다.[2]

가토리 싱고(당시 SMAP)를 비롯하여 젊은 배우들이 대거 기용되었으며, 특히 히지카타 도시조 역을 맡은 야마모토 코지는 실제 히지카타와 매우 흡사한 외모와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2] 구리즈카 아사히는 야마모토에게 "드디어 다음 사람에게 바통을 넘겨줄 수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2]

하지만, 곤도를 주인공으로 했기 때문에 하코다테 전쟁까지 다루지 않아 해당 지역 관계자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3] 이러한 사정과 속편을 바라는 시청자들의 목소리에 힘입어 2006년에는 속편인 《신센구미!! 히지카타 도시조 최후의 하루》가 방송되기도 했다.

사카모토 료마 암살에 대해서는 삿쓰마번 흑막설을 중심으로, 미마와리구미 실행범설을 덧붙이는 등, 기존의 신선조 이미지를 쇄신하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이케다야 사건의 무대가 된 이케다야 세트는 실제 건물의 설계도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사료에 가까운 어둡고 좁은 공간으로 묘사되었다.

첫 회 시청률은 26.3%로 높았지만, 평균 시청률은 17.4%로 부진했다.[4] 사료와 다른 각색이 많다는 비판도 있었지만,[7] 더 텔레비전 드라마 아카데미상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는 등 긍정적인 평가도 많았다.[5] 야마나미 게이스케가 할복한 회는 방송 당일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야마나미 기"가 열리기도 했다.

《신센구미!》는 젊은 세대에 팬층을 넓혔고,[7] 데포르메된 캐릭터 상품이 발매되기도 했다. TV 아사히 계열 프로그램 《SmaSTATION-4》에서 본편 영상과 함께 프로모션을 하는 등 이례적인 홍보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7. 신센구미에 대한 평가와 역사적 의의

7. 1. 긍정적 평가

7. 2. 부정적 평가

7. 3. 역사적 의의

참조

[1] 웹사이트 TV 新撰組! http://www.allcinema[...] Stingray 2015-06-13
[2] 뉴스 香取慎吾、『新選組!』忘年会後に電車へ「局長!」勘九郎らが“随行” | マイナビニュース https://news.mynavi.[...]
[3] 서적 大河ドラマの50年 中央公論新社 2011
[4] 웹사이트 ビデオリサーチ NHK大河ドラマ 過去の視聴率データ http://www.videor.co[...] 비데오 리서치
[5] 웹사이트 ザテレビジョン ドラマアカデミー賞: 【第43回 最優秀作品賞】「新選組!」 http://blog.televisi[...] 2014-07-17
[6] 문서 第83回、2007年11月16日放送。
[7] 뉴스 三谷幸喜のありふれた生活703 朝日新聞 2014-05-22
[8] 문서 三谷幸喜のエッセイ集「ありふれた生活・大河な日々」巻末おまけの香取と三谷の対談。
[9] 문서 ただし、矢部が演じた阿比留は新選組と名を変える前に脱退していたため、浅葱の羽織に袖を通すのは初めてであった。
[10] 문서 近藤も公共の場では「土方君」と呼んでいるが、感情が昂った時や2人だけで会話する際には「トシ」と呼んでいる。
[11] 뉴스 山本耕史朝ドラ出演 NHKの求愛実る https://www.daily.co[...] 株式会社デイリースポーツ 2015-10-01
[12] 문서 このことから、「自分の命」を大切にしない人間を嫌うようになり、河合が短慮が理由で切腹の危険を冒したと勘違いをした時には同情をしなかった(ただし、真相が分かった時は逆に同情するようになった)。
[13] 문서 土方は「さん付けしちまったよ。」と言ってむせていた。
[14] 문서 その為浪士組上洛前の編成発表の際に試衛館派で唯一(但し、門人の沖田林太郎と同じであったので完全に一人ぼっちではない。)みんなと違う組に配属された時には原田に「影薄いからね〜」と言われていた。
[15] 문서 見捨てた芹沢には「俺がいなくなったら、次(に粛清されるの)は自分」「そんなことも分かんないなんて」と吐き捨て、土方には「こんな形で隊をまとめようとしてもいずれ綻びが生じる」と、山南には「(法度に)足元をすくわれないようせいぜい気をつけることだな」とそれぞれ忠告し、最後に「先に行って待っている」と言い放った。土方だけは一笑に付して受け流していたが、後に(自らは死を覚悟していたが)芹沢は暗殺され、新撰組は御陵衛士(伊東一派)の伊東甲子太郎と藤堂平助、後に加わる河合耆三郎、武田観柳斎をはじめ多くの同志の離反や粛清が相次ぎ、近藤が銃撃される遠因を作り出してしまう。そして山南も(本人が望んだこととはいえ)局中法度の罪で切腹することになり、皮肉にも新見の忠告は全て現実となった。
[16] 서적 プレイバックNHK大河ドラマ 時代・人物トピックス別徹底ガイド NHK出版 2021
[17] 문서 実際には、50両は河合が両親に頼んで持ってきてもらう手筈になっていたので、武田は無償で西洋軍学の本を手に入れたことになる。
[18] 문서 実際に、土方と沖田に捕まり屯所に戻ったときに、大石たちから石を投げつけられた。
[19] 문서 土方は「そいつが自らまいた種だ。しょうがねえよ」と口では厳しく突き放しながらも、目の焦点を合わせない態度をとっており、どう思っていたのかなどの真意は不明。
[20] 문서 特に伊東暗殺の一件は、近藤や土方達がなんとか避けようとしていた御陵衛士との全面闘争の火種となり、藤堂の戦死や、その後の御陵衛士残党からの報復による近藤の負傷へと繋がる遠因となった。一方で土方は「(大石達がやらずとも)いずれこうなる事(新選組と御陵衛士の抗争)は予想できた」として大石達の独断行為に対して特に処罰する事はなかった。
[21] 문서 三谷幸喜脚本の舞台『彦馬がゆく』(1990年・1993年)や、テレビドラマ『竜馬におまかせ!』(1996年・日本テレビ放送網|日本テレビ)で近藤勇を演じている。三谷作品における「近藤勇」といえば、阿南健治を指すほどだった。
[22] 문서 テレビドラマ『燃えよ剣』(1970年・テレビ朝日|NET)等で土方歳三を演じたことにちなんだキャスティング。
[23] 문서 療養中の沖田から剣術の稽古をしないよう、お考が刀を平五郎に預けたが、皮肉にもそれが自分自身の命取りのきっかけとなってしまった。
[24] 문서 八木源之丞の長男の名で、実在の人物。
[25] 문서 三谷幸喜原作・脚本の映画『竜馬の妻とその夫と愛人』(2002年)で、竜馬にあこがれて竜馬にそっくりの振る舞いをしようとする的屋の虎蔵を演じており、「新選組!」で龍馬役に抜擢された際、「やっと本人になれた」と言っている。
[26] 문서 7年以降からテレビドラマ『竜馬がゆく』(1997年・TBSテレビ|TBS)の桂小五郎をもう一度に続けて演じたことにちなんだキャスティング。
[27] 문서 テレビドラマ『燃えよ剣』(1970年・テレビ朝日|NET)等で沖田総司を演じたことにちなんだキャスティング。
[28] 문서 瑳川は1967年のNHK大河ドラマ『三姉妹』にて近藤勇を演じている。
[29] 문서 史実での実際の末路である。
[30] 간행물 3月26日(金)始発から 西調布駅の列車接近メロディーがNHK大河ドラマ「新選組!」のメインテーマに変わります! https://www.keio.co.[...] 京王電鉄/調布市 2021-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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