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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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앙드레 김은 대한민국의 패션 디자이너로, 1935년 경기도 고양에서 태어나 2010년 사망했다. 한국 최초의 남성 패션 디자이너로, 1962년 의상실을 열고 같은 해 데뷔 패션쇼를 개최했다. 1966년 한국 디자이너 최초로 파리에서 패션쇼를 열었으며, 이후 뉴욕, 몽골, 앙코르와트 등 국내외에서 다양한 패션쇼를 개최하며 명성을 쌓았다. 1980년 미스 유니버스 대회 주 디자이너, 1988년 서울 올림픽 선수복 디자인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으며, 마이클 잭슨이 그의 의상을 즐겨 입기도 했다. 앙드레 김은 흰색을 선호하며, 고전적인 디자인과 미래적인 요소를 결합한 독창적인 스타일로 평가받았다. 그는 대통령 문화예술훈장, 이탈리아 문화 공로 훈장 등을 받았으며, 유니세프 친선 대사로도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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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김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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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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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김봉남 |
로마자 표기 | Gim Bong-nam |
출생일 | 1935년 8월 24일 |
출생지 | 일제 강점기 경기도 고양군 신도면 구파발리 |
사망일 | 2010년 8월 12일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
학력 | 서울 한영고등학교 국제 패션 디자인 아카데미 |
직업 | 패션 디자이너 |
종교 | 불교 |
배우자 | 없음 |
자녀 | 김중도 (양자) |
분야 | 패션 디자인 |
수상 |
2. 학력
3. 생애 및 경력
앙드레 김(본명 김봉남)은 1935년 8월 24일 일제강점기 조선(현재의 대한민국) 경기도 고양군 신도면 구파발리(현재의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동)에서 태어났다. 한국전쟁 중 부산으로 피난하여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키웠다. 1961년 국제복장학원을 졸업하고, 1962년 소공동에 '살롱 앙드레'를 열어 한국 최초의 남성 패션 디자이너가 되었다.
1966년 한국인 최초로 파리에서 패션쇼를 개최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2] 1960년대부터 엄앵란 등 유명 배우들의 의상을 제작하며 이름을 알렸고, 1980년 미스 유니버스 대회 심사위원, 1988년 서울 올림픽 대한민국 선수단 유니폼 디자인을 맡는 등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2000년대에도 유니세프 친선 대사로 활동하고, 앙코르 와트와 베이징 등 해외에서 패션쇼를 개최하며 활동을 이어갔다. 2006년에는 해외 유출 문화재 반환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패션쇼를 개최하기도 했다.[26]
2005년 대장암 판정을 받았음에도, 2010년 3월 중국 상하이에서 마지막 패션쇼를 여는 등 열정적인 활동을 펼쳤으나, 2010년 8월 12일 폐렴과 대장암으로 인해 7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19] 사후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3. 1. 초기 생애와 디자이너 데뷔
1935년 8월 24일 일제강점기 조선 경기도 고양군 신도면 구파발리(현재의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동)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2] 신도국민학교, 고양중학교, 한영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부산으로 피난을 갔고, 그곳에서 우연히 오드리 햅번 주연의 영화 《화니 페이스》를 보고 패션에 매료되어 의상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했다. 당시 국내에는 의상 교육 기관이 없어 외국의 패션 잡지를 보며 독학하다가, 1961년 국제복장학원이 개설되자 1기 입학생으로 들어갔다.1962년 서울 소공동에 '살롱 앙드레(앙드레 김 의상실)'를 열어 한국 최초의 남성 패션 디자이너가 되었으며, 같은 해 반도호텔에서 데뷔 패션쇼를 개최했다.[24] 초창기 손님 중 한 명이었던 엄앵란은 앙드레 김 의상실에 걸려있는 콜렉션을 보고 단숨에 매료되어 그와 인연을 맺고, 연예계 생활 내내 그의 의상을 즐겨 입었다.[25]
1966년에는 한국 디자이너 최초로 프랑스 파리에서 패션쇼를 개최했다.[2] 이후 미국 뉴욕,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일본 도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등지에서 패션쇼를 개최했다. 그의 패션쇼에는 주한 외교관들이 모델로 참여하여 외교 현장이 조성되기도 했다.
3. 2. 국내외 활동과 명성
앙드레 김은 1962년 서울 소공동에 '살롱 앙드레(앙드레 김 의상실)'를 열어 한국 최초의 남성 패션 디자이너가 되었다. 같은 해 반도 호텔에서 데뷔 패션쇼를 개최했다.[24] 그의 의상실 초기 고객 중 한 명인 엄앵란은 앙드레 김의 의상에 매료되어 연예계 생활 내내 그의 의상을 즐겨 입었다.[25]1966년 앙드레 김은 한국 디자이너 최초로 프랑스 파리에서 패션쇼를 개최했다. 이후 미국 뉴욕,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일본 도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등지에서 패션쇼를 열었다. 그의 패션쇼에는 주한 외교관들이 모델로 참여하여 외교 현장과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1960년대 엄앵란 등의 영화배우 옷을 만들며 이름을 알린 앙드레 김은 1964년 신성일-엄앵란 부부 결혼식 의상을 제공하며 주목받았다. 1970년대부터 국내 유일의 남성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대중적 인지도를 얻었다. 1980년 미스 유니버스 대회의 수석 디자이너로 선정되었고,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선수단복을 디자인했다. 2006년에는 서울에서 '문화재 환수 기금 마련을 위한 패션쇼'를 개최하여 해외 유출 문화재 반환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26] 그는 특유의 말투와 한영 혼용체로 인해 성대모사 소재로 자주 활용되기도 했다. KD운송그룹 유니폼은 그가 디자인한 유일한 회사 유니폼이다. 2009년에는 롯데시네마 영화 티켓을 디자인했다.
나스타샤 칸스키, 브룩 쉴즈 등 해외 연예인들도 그의 의상을 즐겨 찾았다. 특히 마이클 잭슨은 1996년 첫 내한 공연 당시 앙드레 김과 인연을 맺은 후 그의 의상을 애용했다. 마이클 잭슨은 앙드레 김에게 전속 디자이너가 되어달라고 요청했지만, 앙드레 김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한 가수의 전속이 될 수는 없다"며 거절했다. 대신 앙드레 김은 마이클 잭슨에게 매년 맞춤복 수십 벌을 판매했고, 마이클 잭슨은 콘서트 무대보다는 공식 석상에서 앙드레 김의 의상을 착용했다. 2002년 베를린 방문, 2009년 사망 전 마지막 공식 석상인 'This is it' 기자 간담회에서도 앙드레 김의 의상을 입었다.
2002년 앙드레 김은 한국 디자이너 최초로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패션쇼를 개최했고, 2004년과 2006년에도 추가로 개최했다. 2006년 12월에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서 최초로 패션쇼를 열어 동아시아 문화와 패션을 접목시켜 주목받았다.
1981년, 앙드레 김은 1981년 미스 유니버스 미인대회 수석 디자이너로 선정되었다. 1997년에는 패션 산업에 기여한 공로로 대한민국 대통령 문화예술훈장을 받았다. 2003년에는 이탈리아 문화 공로 훈장을 받았고 유니세프 친선 대사로 선출되었다.
2006년 2월, 앙드레 김은 하와이 터틀 베이 리조트에서 SBS 오픈 기간 동안 "하와이 패션 판타지아"라는 두 번의 개인 쇼를 개최했다. 린 리글 주지사와 무피 해너먼 시장이 참석했으며, 7벌의 드레스와 신랑이 등장하는 결혼식 피날레까지 자리를 지켰다.
2006년 11월, 앙드레 김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인 캄보디아 씨엠립의 앙코르 와트 사원에서 "패션 판타지아: 앙코르 와트"라는 제목의 패션쇼를 선보였다. 이 패션쇼는 2006년 11월에 시작되어 2007년 1월 9일까지 진행된 앙코르-경주 세계 문화 엑스포 2006의 일환이었다. 배우 김희선과 김래원이 특별 게스트 모델로 참여했다. 같은 달, 앙드레 김은 13일에 경복궁에서 패션쇼를 열기도 했다.
2007년 2월 10일, 앙드레 김은 맨헌트 인터내셔널 2007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5] 3월에는 중국 상하이에서 패션쇼를 열었고, 2007년 6월 19일에는 워싱턴 D.C.에서 유니세프를 위한 자선 패션쇼를 개최했다. 2007년 5월 7일, 앙드레 김은 일본 고리야마에서 한일 우호의 해를 기념하는 패션쇼를 열었다.[2] 그는 한국외국어대학교의 유니폼을 디자인했으며, 삼성을 위해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을 디자인했다.[6] 또한 화장품, 골프 용품, 선글라스, 아파트 인테리어 디자인 분야에서도 사업을 시작했다.[7]
2007년 7월 12일, 앙드레 김은 중국 우시에서 "사계절 판타지"라는 제목의 패션쇼를 개최했다.[8] 슈퍼주니어의 최시원, 아이비, 손호영과 같은 가수들과 2007년 미스코리아 미인대회 출전자 65명 전원이 모델로 참여했다.[9] 8월에는 서울대학교에 대형 미술관 개관을 기념하는 쇼를 열었다.
2007년 가을,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최를 기념하여 중국 칭다오에서 패션쇼를 개최했다.[10] 김래원과 김태희가 모델로 참여했다. 2007년 9월 15일에는 사북에서 패션쇼가 열렸다. 11월 27일, 앙드레 김은 최지우를 모델로 한 패션쇼를 개최했다.[11]
2008년 6월 13일, 앙드레 김은 대한민국 경기도에서 패션쇼를 개최했다.[12] 2007년 미스 유니버스 3위 이하늬, 가수 팀, 배우 이은성과 하석진이 모델로 참여했다.
2010년 3월 앙드레 김은 미스터 월드 2010 선발대회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여 마지막 공식석상 중 하나를 가졌다. 미스터 월드 2010 참가자들은 앙드레 김 패션쇼의 모델로 활동했다.
3. 3. 사회 참여와 문화 예술 활동
앙드레 김은 1980년 미스유니버스 대회의 주디자이너로 선정되었고, 서울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복을 디자인했다.[26] 2006년에는 서울에서 '문화재 환수 기금 마련을 위한 패션쇼'를 열어 해외 유출 문화재 반환에 대한 관심을 나타냈다.[26]그는 KD운송그룹의 유니폼을 디자인했으며, 이는 그의 유일한 회사 유니폼 디자인이었다. 2009년에는 롯데시네마의 영화티켓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해외 유명 인사들도 그의 의상을 즐겨 찾았다. 나스타샤 킨스키, 브룩 쉴즈 등이 그의 단골 고객이었다. 특히 마이클 잭슨은 1996년 첫 내한 공연 당시 앙드레 김과 인연을 맺은 후 그의 의상을 애용했다. 마이클 잭슨은 앙드레 김에게 전속 디자이너가 되어달라고 요청했지만, 앙드레 김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라는 이유로 거절했다. 대신 매년 맞춤복 수십 벌을 판매했고, 마이클 잭슨은 콘서트 무대보다는 공식 석상에서 앙드레 김의 의상을 착용했다. 2009년 마이클 잭슨 사망 전 마지막 공식 석상이었던 'This is it' 기자간담회에서도 앙드레 김의 의상을 입었다.
2002년, 앙드레 김은 한국 디자이너 최초로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패션쇼를 개최했고, 이후 2004년과 2006년에도 추가로 개최했다. 2006년 12월에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서 최초로 패션쇼를 열어 동아시아 문화와 패션을 접목시켜 주목받았다.
2006년 2월, 하와이 터틀 베이 리조트에서 "하와이 패션 판타지아"라는 개인 쇼를 두 차례 개최했다. 린 리글 주지사와 무피 해너먼 시장이 참석했으며, LPGA 선수들과 한국 배우 심지호, 김민정, 정준호 등이 모델로 참여했다. 두 번째 쇼는 하와이 대학교 마노아의 기금 마련 행사로 진행되었다.[4]
2006년 11월에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인 앙코르 와트에서 "패션 판타지아: 앙코르 와트"라는 제목의 패션쇼를 개최했다. 이는 앙코르-경주 세계 문화 엑스포 2006의 일환이었으며, 배우 김희선과 김래원이 특별 게스트 모델로 참여했다. 같은 달, 경복궁에서도 패션쇼를 열었다.
2007년 2월, 맨헌트 인터내셔널 2007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했고,[5] 3월에는 중국 상하이에서 패션쇼를 개최했다. 6월에는 워싱턴 D.C.에서 유니세프 자선 패션쇼를 열었다. 5월에는 일본 고리야마에서 한일 우호의 해 기념 패션쇼를 개최했다.[2] 한국외국어대학교의 유니폼을 디자인했으며, 삼성을 위해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을 디자인하기도 했다.[6] 화장품, 골프 용품, 선글라스, 아파트 인테리어 디자인 사업도 시작했다.[7]
2007년 7월, 중국 우시에서 "사계절 판타지"라는 제목의 패션쇼를 개최했다. 슈퍼주니어의 최시원, 아이비, 손호영 등과 2007년 미스코리아 출전자들이 모델로 참여했다.[8][9] 8월에는 서울대학교 미술관 개관 기념 쇼를 열었다.
2007년 가을, 베이징 올림픽 개최 기념으로 중국 칭다오에서 패션쇼를 개최했다. 김래원과 김태희가 모델로 참여했다.[10] 9월에는 사북에서, 11월에는 최지우를 모델로 한 패션쇼를 개최했다.[11]
2008년 6월, 경기도에서 패션쇼를 개최했다.[12] 이하늬, 팀, 이은성, 하석진 등이 모델로 참여했다.
2010년 3월, 미스터 월드 2010 선발대회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여 마지막 공식 석상 중 하나를 가졌다. 미스터 월드 2010 참가자들은 앙드레 김 패션쇼의 모델로 활동했다.
3. 4. 질병과 사망
2010년 8월 12일 저녁 7시 40분 경,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폐렴과 대장암이 악화되어 향년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27] 그는 2005년 폐암 판정을 받았으나 주위에 알리지 않고 정상적으로 패션쇼 일정을 소화하는 등 초인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그의 마지막 패션쇼는 2010년 3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패션쇼였다. 백남봉이 타계한 지 불과 2주일 후의 일이었다. 앙드레 김의 종교였던 불교의 방식대로 장례를 치른 후, 유해가 천안공원의 묘지에 묻혔다.[27] 2010년 8월 13일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그는 75번째 생일을 12일 앞둔 2010년 8월 대한민국 서울에서 폐렴과 대장암으로 사망했다. 그의 빈소는 8월 12일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열렸다.[13][14] 한국 언론은 그의 죽음을 한국 패션 아이콘의 손실로 묘사했다.[15]
사망 후 그의 아들 김중도(개명 전 이름 김정도로 확인됨)가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앙드레 김 디자인 아틀리에를 통해 앙드레 김 브랜드를 CEO로 이어받아 다양한 라이선스 브랜드를 관리했다.[16]
4. 디자인 철학과 스타일
앙드레 김의 디자인은 고전적인 요소와 미래적인 요소를 결합한 독특한 스타일로, 대담하고 풍부한 색상과 아시아적인 패턴, 특히 큰 장미, 새, 나뭇가지 등의 모티프를 활용했다.[3] 그의 패션쇼는 흰색 배경을 사용하여 디자인의 독특한 색감을 강조했다.
마이클 잭슨이 개인 디자이너가 되어달라고 요청할 정도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앙드레 김은 자신의 옷이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며 거절했다.[3] 그는 "패션은 우아함, 지성, 예술적 아름다움, 그리고 젊은 에너지를 표현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너무 고전적이면 안 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앙드레라는 예명과 달리, 본명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다소 서민적인 인상을 주어 농담이나 개그의 소재가 되기도 했지만, 대중적인 인기를 높이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본명은 1999년 국회 청문회에서 밝혀졌다.
앙드레 김은 얼굴의 단점을 가리기 위해 가볍게 화장을 한다고 설명했다.[20]
4. 1. 흰색에 대한 애정
앙드레 김이 가장 좋아하는 색은 흰색이었다. 그는 생전 늘 흰색 옷과 바지만 입었으며, 패션쇼에서도 전체적인 색상으로 흰색 계통을 유지했다. 이는 어머니가 가난한 집안 형편에도 자식들에게 늘 흰색 옷만 입혔기 때문으로, 앙드레 김에게 흰색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그 자체였다.[20]앙드레 김은 흰색 옷을 입는 이유에 대해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을 읽고 감동받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흰색은 순수함, 정신적인 세계의 순수함이다.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마음을 정신적인 세계로 이끌어준다. 흰색이 그것을 가장 많이 느끼게 해주고, 정신적인 안정을 준다"라고 설명했다.[20]
4. 2. 한국 전통 의상과 서양 의상의 조화
앙드레 김의 디자인은 "고전적인 디자인과 미래적인 요소를 결합"한 것으로 평가받으며, 대담하고 풍부한 색상과 아시아적인 패턴, 종종 큰 장미, 새, 또는 나뭇가지 모티프를 사용하여 독특한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앙드레 김은 패션쇼를 할 때 자신의 디자인이 가진 독특한 색상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흰색 톤의 배경을 선호한다.그의 디자인은 한국 연예인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많은 연예인들이 그의 패션쇼에서 모델로 활동한다. 특히 그의 웨딩드레스 패션쇼는 연예인들을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앙드레 김의 명성은 한국을 넘어 마이클 잭슨이 한때 그에게 개인 디자이너가 되어달라고 요청할 정도로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앙드레 김은 자신의 옷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며 요청을 거절했다.[3]
앙드레 김은 "패션은 우아함, 지성, 예술적 아름다움, 그리고 젊은 에너지를 표현해야 합니다. 너무 고전적이면 안 됩니다. 저는 '늙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1935년에 태어났지만, 제 나이를 느끼지 않습니다. 저는 동화 속, 판타지 속에서 10대, 15세 또는 20세의 젊고 빛나는 청소년처럼 느낍니다."라고 말했다.
4. 3. 화려함과 독창성
앙드레 김의 디자인은 "고전적인 디자인과 미래적인 요소를 결합"한 것으로 평가받으며, 대담하고 풍부한 색상과 아시아적인 패턴, 종종 큰 장미, 새, 또는 나뭇가지 모티프를 사용하여 독특한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3] 패션쇼를 위해 앙드레 김은 자신의 디자인의 독특한 색상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흰색 톤의 배경을 선호했다.그의 디자인은 한국 연예인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많은 연예인들이 그의 패션쇼에서 모델로 활동했다. 그의 웨딩드레스 패션쇼는 특히 연예인들을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앙드레 김의 명성은 한국 국경을 넘어 확장되어, 마이클 잭슨이 한때 그에게 개인 디자이너가 되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앙드레 김은 자신의 옷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며 거절했다.[3]
앙드레 김은 "패션은 우아함, 지성, 예술적 아름다움, 그리고 젊은 에너지를 표현해야 합니다. 너무 고전적이면 안 됩니다. 저는 '늙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1935년에 태어났지만, 제 나이를 느끼지 않습니다. 저는 동화 속, 판타지 속에서 10대, 15세 또는 20세의 젊고 빛나는 청소년처럼 느낍니다."라고 말했다.
흰 옷을 입는 이유에 대해 "가와바타 야스나리 선생님의 『설국』을 읽고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흰색은 순수함...전신적인 세계의 순수함이다. 또한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마음을 정신적인 세계로 이끌어 준다. 흰색이 그것을 가장 많이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정신적인 안정을 준다."라고 말했다. 또한 화장에 대해서는 "저는 얼굴에 단점이 많다. 단점을 커버하기 위해 가볍게 (화장을) 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20]
5. 앙드레 김과 대중문화
앙드레 김은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활동 외에도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폭넓은 영향을 미쳤다. 1981년 미스 유니버스 미인대회 수석 디자이너로 선정되었고,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한국 선수단의 유니폼을 디자인했으며,[3]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가 주최하는 행사에도 여러 차례 초청받았다.
1997년에는 패션 산업에 기여한 공로로 대한민국 대통령 문화예술훈장을 받았으며, 2003년에는 이탈리아 문화 공로 훈장을 받고 유니세프 친선 대사로 선출되었다.[3]
2006년에는 하와이에서 "하와이 패션 판타지아"라는 두 번의 개인 쇼를 개최했고, 이는 SBS 오픈 기간 동안 진행되었다. 린 리글 주지사와 무피 해너먼 시장이 참석했다.[4] 같은 해 11월에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인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에서 "패션 판타지아: 앙코르 와트"라는 제목의 패션쇼를 개최했는데, 이는 고대 사원을 배경으로 열린 최초의 패션쇼였다.[4]
2007년에는 맨헌트 인터내셔널 2007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했고,[5] 일본 고리야마에서 한일 우호의 해를 기념하는 패션쇼를 열었다.[2] 또한 한국외국어대학교의 유니폼을 디자인하고, 삼성을 위해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을 디자인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6] 화장품, 골프 용품, 선글라스, 아파트 인테리어 디자인 분야에도 진출했다.[7]
그는 중국에서도 여러 차례 패션쇼를 개최했다. 2007년에는 중국 우시에서 "사계절 판타지"라는 제목의 패션쇼를 개최했고,[8]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최를 기념하여 중국 칭다오에서 패션쇼를 열었다.[10] 2008년에는 대한민국 경기도에서 패션쇼를 개최했다.[12] 2010년 3월에는 미스터 월드 2010 선발대회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했고, 참가자들은 앙드레 김 패션쇼의 모델로 활동했다.
5. 1. 유명 연예인들과의 협업
앙드레 김은 자신의 패션쇼에 유명 연예인들을 모델로 자주 기용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특히 그의 웨딩드레스 패션쇼는 연예인들을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했다.[3]연도별 주요 협업은 다음과 같다.
- 2006년 2월: 하와이 "하와이 패션 판타지아"에서 LPGA 선수들과 한국 배우 심지호, 김민정, 정준호가 모델로 참여했다.[4]
- 2006년 11월: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 "패션 판타지아: 앙코르 와트"에서 배우 김희선과 김래원이 특별 게스트 모델로 참여했다.
- 2007년: 중국 우시 패션쇼에 슈퍼주니어의 최시원, 아이비, 손호영 등 가수들과 2007년 미스코리아 미인대회 출전자들이 모델로 참여했다.[8][9]
- 2007년: 중국 칭다오 패션쇼에서 김래원과 김태희가 모델로 섰다.[10]
- 2007년 11월: 배우 최지우가 앙드레 김 패션쇼 모델로 활동했다.[11]
- 2008년: 이하늬, 팀, 이은성, 하석진 등 여러 한국 연예인들이 앙드레 김 패션쇼 모델로 참여했다.[12]
- 2010년 3월: 대한민국 인천 미스터 월드 2010 선발대회 참가자들이 앙드레 김 패션쇼 모델로 활동했다.
마이클 잭슨이 앙드레 김에게 개인 디자이너가 되어달라고 요청했지만, 앙드레 김은 자신의 옷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며 거절했다는 일화도 있다.[3]
5. 2. 대중매체와 성대모사
앙드레라는 예명과 그에 어울리는 말투, 몸가짐과는 달리, 본명은 대한민국 국민의 시각에서 다소 서민적인 인상을 주어, 이름이 주는 인상과 괴리감 때문에 종종 농담이나 개그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이 그의 대중적인 인기를 높이는 요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의 본명은 1999년 당시 한국 법무장관 부인에 대한 뇌물 수수와 관련된 국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하면서 밝혀져 주목을 받았다.그는 흰 옷을 입는 이유에 대해 "가와바타 야스나리 선생님의 『설국』을 읽고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흰색은 순수함...전신적인 세계의 순수함이다. 또한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마음을 정신적인 세계로 이끌어 준다. 흰색이 그것을 가장 많이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정신적인 안정을 준다."라고 말했다. 또한 화장에 대해서는 "저는 얼굴에 단점이 많다. 단점을 커버하기 위해 가볍게 (화장을) 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20]
2012년, 그를 기리는 영화가 제작될 예정이라고 발표되었다. 하정우가 이 전기 영화에서 그를 연기할 것으로 예상되었다.[17][18] 그 이후 더 이상의 세부 사항은 공개되지 않았으며, 2013년 3월 현재까지 이 영화는 아직 개봉되지 않았다.
6. 수상 내역
연도 | 수상 내역 |
---|---|
1981년 | 미스 유니버스 미인대회 수석 디자이너 |
1982년 | 이탈리아 문화 공로 훈장 |
1997년 | 화관문화훈장[19], 대통령 문화예술훈장 |
1999년 | 샌프란시스코 시 훈장, 앙드레 김의 날(Andre Kims Day)' 선포 |
2000년 | 프랑스 예술문학훈장[19], 프랑스 문화예술 공로훈장, MBC 명예상 |
2003년 | 유니세프 친선대사 |
2004년 | 광주 명예 홍보대사 |
2005년 | 한국 복식학회 '최고의 디자이너상' |
2006년 | 미국 하와이 주지사 린다 링글로부터 감사패 |
2007년 | 제7회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 맨헌트 인터내셔널 공식 패션 디자이너 |
2008년 | 보관문화훈장 (3등급)[19] |
2009년 | 아시아 모델 페스티벌 어워즈 국제문화교류 공로상[19] |
2010년 | 금관문화훈장 (1등급, 추서)[19] |
7. 기타
온라인 게임 그라나도 에스파다에는 앙드레 김을 모티브로 하는 앙드레 장쥐르라는 캐릭터가 나왔는데 예상외로 큰 인기를 끌었다.[28]
고향 마을인 구파발은 1973년에 서울의 확장으로 서울에 편입되었으나 '서울 사람'대신 '고양 사람'의 정체성을 유지하였다. 앙드레 김은 초등학교는 고양군 시절의 신도초등학교를, 중학교는 현재 고양시 지역의 학교를, 고등학교는 고향과 꽤 떨어진 서울의 학교를 다녔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은 흰색이며, 실제로 그는 생전 늘 흰색 옷과 바지만 입고 다녔으며 패션의 전체적인 컬러 역시 흰색 계통을 유지했다. 이는 생전 그의 어머니가 가난한 집안 형편에도 늘 자식들에게 백색의 옷만 입혔기 때문에, 앙드레 김에게 흰색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그 자체였던 것이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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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Andre Kim's real estate worth 30 billion won
https://koreatimes.c[...]
2010-08-13
[2]
웹사이트
Endless Pursuit of Creativity
http://english.kbs.c[...]
2007-01-01
[3]
웹사이트
The Andre Kim Effect
http://www.koreafocu[...]
2006-04-27
[4]
뉴스
A Longtime Shepherd of Korean Fashion (''New York Times'')
https://www.nytimes.[...]
2007-09-15
[5]
웹사이트
Andre Kim – The Designer Extraordinaire (''Manhunt International'')
https://web.archive.[...]
2007-03-07
[6]
웹사이트
Glam Up With A Gilded Washing Machine (''Scifi Tech'')
https://web.archive.[...]
2007-02-05
[7]
웹사이트
The ‘Andre Kim Effect’ (''Korea Focus'')
https://web.archive.[...]
2015-06-29
[8]
웹사이트
Korean Fashion Gains Popularity in China (''KBS Global'')
https://web.archive.[...]
2007-09-29
[9]
웹사이트
Designer Andre Kim to Hold a Fashion Show in China (''KBS Global'')
https://web.archive.[...]
2007-09-29
[10]
웹사이트
Andre Kim to Hold Fashion Show in Beijing (''KBS Glob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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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9
[11]
웹사이트
Choi Ji-woo catwalk | Yummy! Celebrities and Entertainment News
http://yummycelebrit[...]
[12]
웹사이트
Andre Kim June 2008 Fashion Show (''Newsen'')
http://www.newsen.co[...]
2008-06-13
[13]
뉴스
Choi Si-won arrives at Andre Kim wake service
http://www.asiae.co.[...]
2010-08-13
[14]
뉴스
Saying goodbye to Andre Kim
https://koreatimes.c[...]
2010-08-13
[15]
뉴스
Korea's premier fashion icon Andre Kim leaves lasting legacy
https://www.koreatim[...]
2010-08-12
[16]
뉴스
Andre Kim's brand starts a new chapter with designer's heir
http://koreajoongang[...]
2011-08-08
[17]
뉴스
Biopic of Fashion Designer Andre Kim in the Works
http://english.chosu[...]
2012-01-11
[18]
뉴스
Life of late fashion designer to be made into film
https://www.koreatim[...]
2012-01-10
[19]
뉴스
アンドレ・キムさん、大腸がんに肺炎を併発し死去
https://japanese.joi[...]
中央日報
2010-08-13
[20]
기타
2009年9月20日 SBSスペシャル『アンドレ・キムとの七重インタビュー』より
[21]
뉴스
디자이너 앙드레 김 씨 별세
http://news.sbs.co.k[...]
2010-08-12
[22]
뉴스
불자 디자이너 앙드레 김 씨 별세
http://www.hyunbulne[...]
2010-08-13
[23]
웹인용
링크
https://woman.donga.[...]
2020-01-21
[24]
기타
문화방송 다큐멘터리 성공시대(成功時代)106회에 앙드레 김이 청년시절에 의상실을 꾸려갈때에 손님들이 겉으로는 존중하지만, 뒤에서 수근거리는 장면이 나온 적이 있다. 앙드레 김이 생전에 조선일보에 칼럼을 실었는데, 아버지|춘부장(남의 아버지를 높여 부르는 말)께서도 "남자]]가 만든 옷을 사 입을까?"라고 걱정하셨다 한다.
[25]
기타
2000년 2월 13일 MBC 《성공시대》 106회 中
[26]
기타
'위대한 유산 74434', 해외 유출 문화재 환수 위한 패션쇼 '성공'앙드레
https://news.naver.c[...]
[27]
기타
李대통령, 故[앙드레김에 금관문화훈장 추서]
https://news.naver.c[...]
[28]
기타
나도 모르는 나, '편견·오해의 세계'를 아십니까?
https://news.nave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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