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 (노르드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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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드(Óðr)는 노르드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로, '마음', '지혜', '영혼' 등을 의미하는 고대 노르드어에서 유래되었다. 그는 여신 프레이야의 남편으로, 종종 긴 여행을 떠나 프레이야가 그를 찾아다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오드는 오딘과 이름의 어원적 유사성을 보이며, 두 신을 동일시하거나, 또는 오딘의 젊은 시절 이름으로 보기도 한다. 오드의 이야기는 다양한 에다(Edda) 문헌에서 언급되며, 그의 행적과 프레이야와의 관계, 딸 흐노스와 게르세미에 대한 내용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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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드 (노르드 신화) | |
|---|---|
| 신화 정보 | |
| 이름 | 오드 |
| 다른 이름 | 오주르 |
| 문화 | 노르드 신화 |
| 역할 | 격렬함, 열정, 갈망의 신 |
| 배우자 | 프레이야 |
| 자녀 | 흐노스 게르세미 |
2. 어원
고대 노르드어의 신격 ''오드/Óðrnon''는 '마음, 지혜, 영혼, 감각' 또는 '노래, 시'를 의미하는 명사에서 파생되었으며, 이는 다시 '소유된, 영감을 받은, 헛소리하는, 격노한'을 의미하는 게르만 조어 *''보-다즈/wōðazgem''에서 유래되었다.[2] ''오드/Óðrnon''는 고대 영어 ''보-드/wōðang''( '소리, 잡음; 목소리, 노래'), 고대 고지 독일어 ''부오트/wuotgoh''( '전율, 격렬한 동요') 및 중세 네덜란드어 ''부-트/woetdum''( '분노, 광란')과 같은 중세 게르만 언어의 다른 명사와 어원 관련어이다.[2] 또한 고대 노르드어 신격 ''오딘/Óðinnnon''과 어원적으로 관련이 있으며, ''오딘/Óðinnnon''은 접미사 *-''나즈/nazgem''( '~의 주인')이 붙은 어간 *''보-다/wōđagem''에서 파생되었다.[2][3]
언어학자 얀 데 브리스는 고대 노르드 신 오딘과 오드가 원래 연결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오드/Óðrnon''(*''보-다즈/wōđazgem'')가 더 오래된 형태이고 ''오딘/Óðinnnon''(*''보-다-나즈/wōđa-nazgem'') 이름의 궁극적인 근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분노의 신 오드/Óðrnon–오딘/Óðinnnon이 베다 시대의 바루나와 미트라 사이의 대조와 유사한 방식으로 영광스러운 위엄의 신 울/Ullrnon–울린/Ullinnnon에 대립한다고 제안했다.
형용사 ''*보-다즈/wōđazgem''는 '예언자, 점쟁이'를 의미하는 켈트 조어 용어 wātis]]/*Vatescel 및 '예언, 시적 영감'을 의미하는 *wātussga와 관련이 있는
2. 1. 어원 연구와 오딘과의 관계
고대 노르드어의 신격 ''Óðr''는 '마음, 지혜, 영혼, 감각' 또는 '노래, 시'를 의미하는 명사에서 파생되었으며, 이는 다시 '소유된, 영감을 받은, 헛소리하는, 격노한'을 의미하는 게르만 조어 *''wōðaz''에서 유래되었다. ''Óðr''는 고대 영어 ''wōð''( '소리, 잡음; 목소리, 노래'), 고대 고지 독일어 ''wuot''( '전율, 격렬한 동요') 및 중세 네덜란드어 ''woet''( '분노, 광란')과 같은 중세 게르만 언어의 다른 명사와 어원 관련어이다. 또한 고대 노르드어 신격 ''Óðinn''과 어원적으로 관련이 있으며, ''Óðinn''은 접미사 *-''naz''( '~의 주인')이 붙은 어간 *''wōđa-''에서 파생되었다.언어학자 얀 데 브리스는 고대 노르드 신 오딘과 오르가 원래 연결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Óðr''(*''wōđaz'')가 더 오래된 형태이고 ''Óðinn''(*''wōđa-naz'') 이름의 궁극적인 근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분노의 신 Óðr–Óðinn이 베다 시대의 바루나와 미트라 사이의 대조와 유사한 방식으로 영광스러운 위엄의 신 Ullr–Ullinn에 대립한다고 제안했다.
형용사 ''*wōđaz''는 '예언자, 점쟁이'를 의미하는 켈트 조어 용어 *wātismis 및 '예언, 시적 영감'을 의미하는 *wātussga와 관련이 있는 게르만 조어 형태인 ''*uoh₂-tós''에서 유래되었다.[2] 일부 학자에 따르면 라틴어 용어 ''vātēs''( '예언자, 선지자')는 골어에서 유래된 켈트어 차용어이며, ''*uoh₂-tós ~ *ueh₂-tus''( '신이 영감을 준')는 게르만어와 켈트어에 공통적인 공유된 종교 용어이다.[2]
오르(Óðr)와 프레이야는 주신 오딘(Óðinn)과 프리그 부부와 이름 유사성, 잦은 여행 등 적지 않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3. 신화 속 등장
Óðr은 다음과 같은 자료에서 언급된다.
오드와 프레이야 두 사람에 관해서는, 『스노리 에다』에서의 기술을 비롯한 다음과 같은 전승이 있다.
오드는 종종 긴 여행을 떠났는데, 어떤 때는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아 프레이야는 남편을 그리워하며 세계를 찾아다녔다[20]。 가는 곳마다 많은 별명(마르델(Mardöll), 헬른(Hörn), 게븐(Gefn), 쉴(Sýr) 등)을 칭했다고 전해진다[21]。 『에다』에서는 남편과 만날 수 있었는지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다른 전승에서는, 오드가 남쪽 나라에서, 천인화가 핀 가운데 넋을 잃고 앉아 있는 것을 프레이야가 발견하고 그녀가 부르자 오드는 정신을 차렸다. 프레이야는 오드를 데리고 귀향했는데, 두 사람이 한 걸음씩 나아갈수록, 지금까지 프레이야의 부재로 인해 말라 있던 대지에 꽃이 피어났다고 한다[22]。 『스노리 에다』에 따르면, 이 탐방 중에 프레이야가 흘린 눈물이 황금이 되어 조금씩 대지에 스며들었기 때문에, 황금을 "마르델의 눈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이 전승은 동시에, 세계 각지에서 황금이 소량씩 산출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21]。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딸 흐노스는 매우 아름다워서, 북유럽인들은 아름다운 사람을 흐노스처럼 아름답다고 칭하기도 한다[22]。 『잉글링가 사가』에 따르면, 또 다른 딸로 게르세미가 있다고 하며[23], 북유럽인들은 아름다운 것을 흐노스와 게르세미의 이름으로 불렀다고 한다[24]。
3. 1. 《고 에다》
《볼루스파》의 25절에서 프레이야는 "오드의 소녀"(고대 노르드어 ''Óðs mey gefna'')라고 불리는데, 이는 오드와의 관계를 암시한다.[4]《힌들루요드》의 47절에는 ''Œdi''라는 인물에 대한 언급이 있다. 힌들라는 프레이야가 "항상 욕망으로 가득 차" Œ디에게 달려갔다고 조롱한다.[5] 학자 캐롤린 래링턴은 Œ디의 정체가 불분명하며, 단순히 오드이거나 프레이야의 또 다른 연인일 수 있다고 말한다.[5] 존 린도는 이 언급이 "당혹스럽다"고 묘사하며, 힌들라가 언급한 상황에 대한 추가 정보는 없다고 언급했다.[6] 학자 브리트-마리 뇌스트룀은 이 언급이 오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닐 가능성이 높으며, 소푸스 부게의 수정 결과일 수 있다고 말한다. 뇌스트룀은 이 구절이 단순히 프레이야의 욕망을 지적하며, "아마도 19세기의 언어학자들은 그들의 낭만적인 의도에 의해 오도되었을 것이다"라고 언급했다.[7]
오드는 종종 긴 여행을 떠났고, 프레이야는 남편을 그리워하며 세계를 찾아다녔다.[20] 프레이야는 마르델(Mardöll), 헬른(Hörn), 게븐(Gefn), 쉴(Sýr) 등 많은 별명을 사용했다.[21] 다른 전승에 따르면, 오드가 남쪽 나라에서 천인화가 핀 가운데 넋을 잃고 앉아 있는 것을 프레이야가 발견하고 그를 데리고 귀향했으며, 두 사람이 걸을 때마다 대지에 꽃이 피어났다고 한다.[22] 프레이야가 흘린 눈물은 황금이 되어 대지에 스며들었기 때문에, 황금을 "마르델의 눈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21]
두 사람 사이에는 흐노스와 게르세미라는 딸이 있었다.[22][23] 북유럽인들은 아름다운 것을 흐노스와 게르세미의 이름으로 불렀다고 한다.[24]
3. 2. 《신 에다》
《신 에다》의 〈길피의 속임수〉 제35장에서, 옥좌에 앉은 인물 하이는 여신 프레이야가 "오드"라는 사람과 결혼했다고 말한다. 하이는 이 둘이 딸 흐노스를 낳았고, 이 딸이 매우 아름다워서 "hnossir"(뜻: "보물")라는 용어가 그녀의 이름에서 유래되었으며 "아름답고 귀중한" 모든 것에 적용된다고 설명한다. 하이는 오드가 장기간 여행을 떠나곤 했으며, 프레이야는 그동안 붉은 금의 눈물을 흘리며 남았다고 덧붙인다. 그러나 프레이야는 오드를 찾아 "낯선 사람들 사이"를 여행했고, 그래서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길피의 속임수〉 제36장에서는 오드를 언급하는 〈무녀의 예언〉의 연이 인용된다.《신 에다》의 〈시어의 언어〉 제20장에는 여신 프레이야의 시적 이름이 나열되어 있으며, 그중에는 "오드의 아내"도 포함된다. 제36장에서 산문적 이야기는 시인 에이나르 스쿨라손의 작품에서 발췌한 내용이 프레이야를 오드의 아내("오드의 침대 짝")라고 언급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같은 발췌문은 제49장에도 나타난다. 제75장에서 오드는 "Prose Edda"에서 마지막으로 언급되는데, 프레이야가 오드를 위해 "금을 울었다"고 인용된다.
오드는 종종 긴 여행을 떠났는데, 어떤 때는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아 프레이야는 남편을 그리워하며 세계를 찾아다녔다.[20] 가는 곳마다 많은 별명(마르델(Mardöll), 헬른(Hörn), 게븐(Gefn), 쉴(Sýr) 등)을 칭했다고 전해진다.[21] 다른 전승에서는, 오드가 남쪽 나라에서, 천인화가 핀 가운데 넋을 잃고 앉아 있는 것을 프레이야가 발견하고 그녀가 부르자 오드는 정신을 차렸다.[22] 프레이야는 오드를 데리고 귀향했는데, 두 사람이 한 걸음씩 나아갈수록, 지금까지 프레이야의 부재로 인해 말라 있던 대지에 꽃이 피어났다고 한다.[22] 『스노리 에다』에 따르면, 이 탐방 중에 프레이야가 흘린 눈물이 황금이 되어 조금씩 대지에 스며들었기 때문에, 황금을 "마르델의 눈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21]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딸 흐노스는 매우 아름다워서, 북유럽인들은 아름다운 사람을 흐노스처럼 아름답다고 칭하기도 한다.[22] 『잉글링가 사가』에 따르면, 또 다른 딸로 게르세미가 있다고 하며, 북유럽인들은 아름다운 것을 흐노스와 게르세미의 이름으로 불렀다고 한다.[24]
3. 3. 《헤임스크링글라》
헤임스크링글라의 제1장인 ''잉글링가 사가''에서 스노리 스투를루손은 오드와 프레이야를 언급하며, 프레이야는 오드라는 남편과 흐노스, 게르세미라는 두 딸을 두었는데, 그들의 이름이 "가장 소중한 소유물"에 사용되었다고 설명한다.[8]오드는 종종 긴 여행을 떠났는데,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아 프레이야는 남편을 그리워하며 세계를 찾아다녔다.[20] 가는 곳마다 마르델(Mardöll), 헬른(Hörn), 게븐(Gefn), 쉴(Sýr) 등 많은 별명을 칭했다고 전해진다.[21] 다른 전승에서는, 오드가 남쪽 나라에서 천인화가 핀 가운데 넋을 잃고 앉아 있는 것을 프레이야가 발견하고 그녀가 부르자 오드는 정신을 차렸다. 프레이야는 오드를 데리고 귀향했는데, 두 사람이 한 걸음씩 나아갈수록, 지금까지 프레이야의 부재로 인해 말라 있던 대지에 꽃이 피어났다고 한다.[22]
이 탐방 중에 프레이야가 흘린 눈물이 황금이 되어 조금씩 대지에 스며들었기 때문에, 황금을 "마르델의 눈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21]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딸 흐노스는 매우 아름다웠으며, 또 다른 딸로 게르세미가 있다고 한다.[23] 북유럽인들은 아름다운 것을 흐노스와 게르세미의 이름으로 불렀다고 한다.[24]
4. 해석 및 이론
오드(Óðr)와 프레이야의 관계는 주신 오딘(Óðinn)과 프리그 부부와 여러 공통점을 보인다.[6] 예를 들어 오드와 오딘, 프레이야와 프리그(다른 이름 프린)처럼 이름이 유사하며,[11] 오드와 오딘 모두 장기간 여행을 다녔다는 점이 유사하다.[6] 전사자의 절반은 오딘의 것이 되지만, 남은 절반은 그의 아내 프리그가 아닌 프레이야가 가져간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오딘과 프리그가 각각 오드와 프레이야라는 이름으로 숭배받던 시기가 있었거나, 혹은 각자의 젊은 시절 이름이었다고 추정하는 연구자도 있다.
《무녀의 예언》(Völuspá) 25절에서는 "오드의 소녀(Óðs mey)"가 거인들에게 주어졌다고 언급되지만, 에다 시에서 더 이상 오드에 대한 언급은 없다.[6] 《길피의 속임수》(Gylfaginning)에서 스노리는 오드가 여러 나라로 여행을 갔고, 프레이야가 슬픔에 잠겨 그를 찾아다녔다고 간략하게 언급한다.[6]
학자들은 오드와 오딘의 이름 사이의 어원적 유사성(린도우는 언어학적 관계가 울과 울린 사이의 관계와 동일하다고 언급)과[6] 둘 다 장기간 여행을 떠났다는 사실을 근거로[6][11] 두 신을 연관 짓는 이론을 제시한다. 그러나 스노리가 의도적으로 그들을 분리하려 했다는 점도 지적된다.[6][11] 오드에 대한 모든 이론은 자료의 제한된 설명 때문에 추측에 머물 수밖에 없다.[6]
빅토르 뤼드베리는 프레이야의 남편 오드와 에다 시의 《그로우갈드르》와 《표르스빈스말》에 나오는 영웅 스비프다그가 동일 인물이라고 제안했다. 야코프 그림을 비롯한 학자들은 멩글라드("목걸이 애호가")를 브리싱가멘의 소유주인 프레이야와 동일시했다.[9]
힐다 엘리스 데이비드슨은 노르드교가 쇠퇴하던 시기에 스칸디나비아의 기독교화 동안 바니르 숭배가 에시르 숭배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으며, 그 결과 오드라는 인물이 등장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며, 그를 "오딘의 이상한 이중 인물"이라고 언급한다.[10]
루돌프 지멕은 오드가 11세기의 시인 에이나르 스쿨라손이 사용한 케닝에서 (《스칼드스카파르말》에서) 그리고 《고 에다》의 시 《무녀의 예언》과 《힌들루요드》에 등장하므로, 늦게 만들어진 인물이 아니라고 말한다.[11] 지멕은 "가장 명백한 설명은 오드를 오딘과 동일시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이름의 유사성, 오랜 부재(오딘의 《데인인의 사적》에서의 추방에 비유), 오드의 프레이야와의 결혼 등을 근거로 제시한다.[11]
지멕은 이러한 유사점에도 불구하고, "프레이야가 오딘을 위해 흘리는 눈물과 그녀의 수색은 동기가 부족하다"거나 "그들의 유일한 자녀로 흐노스를 언급하는 것은 놀랍다 - 예를 들어, 발드르가 언급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와 같이 반대되는 점이 있다고 덧붙인다.[11] 이러한 문제로 인해 소푸스 부게와 얄마르 팔크는 아도니스를, 루돌프 무흐는 아티스를, 리 홀랜더는 아모르와 프시케의 민담을 오드에게서 찾으려는 시도를 했다.[11]
지멕은 두 신이 동일하다면, 스노리가 그들을 분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동의한다. 하지만 오딘과 오드의 이름이 너무나 가까워서 두 신 사이의 연관성이 없을 수는 없다고 말한다.[11] 일부 학자들은 오드와 오딘의 인물에서 "더 오래된" 층과 "더 젊은" 층을 찾으려 했지만, 자료 부족으로 인해 설득력 있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11]
스테판 그런디는 야생 사냥과 관련된 민속에서 오드라는 이름의 인물이 스위스와 같은 지역까지 남아있기 때문에, 오드가 기독교화 이후 오딘과 별개의 인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은 낮다고 주장한다.[12] 그런디는 오드가 적어도 바이킹 시대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며, ''오딘''이 ''오드''의 형용사 형태이며, ''오드''가 더 오래된 형태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12]
그런디는 프리그와 프레이야가 단일 여신에서 유래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게르만족의 일부다처제 관습을 언급한다.[13]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 18장에서는 게르만 사회에서 일부일처제가 일반적이었지만, "고귀한 출생을 위해" 일부다처 결혼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13] 메로빙거 왕조와 카롤링거 왕조의 일부다처 결혼 사례와 서고트족 법전을 제외한 초기 게르만 법전에서 일부다처 결혼을 금지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오딘/오드는 "프리그와 프레이야를 동시에 기뻐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그런디는 결론 내린다.[13]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일부다처 결혼이 줄어들면서 신들의 모습도 변화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13]
4. 1. 오딘과의 동일시
오드(Óðr)와 프레이야의 관계는 주신 오딘(Óðinn)과 프리그 부부와 여러 공통점을 보인다.[6] 예를 들어 오드와 오딘, 프레이야와 프리그(다른 이름 프린)처럼 이름이 유사하며,[11] 오드와 오딘 모두 장기간 여행을 다녔다는 점이 유사하다.[6] 전사자의 절반은 오딘의 것이 되지만, 남은 절반은 그의 아내 프리그가 아닌 프레이야가 가져간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오딘과 프리그가 각각 오드와 프레이야라는 이름으로 숭배받던 시기가 있었거나, 혹은 각자의 젊은 시절 이름이었다고 추정하는 연구자도 있다.《무녀의 예언》(Völuspá) 25절에서는 "오드의 소녀(Óðs mey)"가 거인들에게 주어졌다고 언급되지만, 에다 시에서 더 이상 오드에 대한 언급은 없다.[6] 《길피의 속임수》(Gylfaginning)에서 스노리는 오드가 여러 나라로 여행을 갔고, 프레이야가 슬픔에 잠겨 그를 찾아다녔다고 간략하게 언급한다.[6]
학자들은 오드와 오딘의 이름 사이의 어원적 유사성(린도우는 언어학적 관계가 울과 울린 사이의 관계와 동일하다고 언급)과[6] 둘 다 장기간 여행을 떠났다는 사실을 근거로[6][11] 두 신을 연관 짓는 이론을 제시한다. 그러나 스노리가 의도적으로 그들을 분리하려 했다는 점도 지적된다.[6][11] 오드에 대한 모든 이론은 자료의 제한된 설명 때문에 추측에 머물 수밖에 없다.[6]
빅토르 뤼드베리는 프레이야의 남편 오드와 에다 시의 《그로우갈드르》와 《표르스빈스말》에 나오는 영웅 스비프다그가 동일 인물이라고 제안했다. 야코프 그림을 비롯한 학자들은 멩글라드("목걸이 애호가")를 브리싱가멘의 소유주인 프레이야와 동일시했다.[9]
힐다 엘리스 데이비드슨은 노르드교가 쇠퇴하던 시기에 스칸디나비아의 기독교화 동안 바니르 숭배가 에시르 숭배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으며, 그 결과 오드라는 인물이 등장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며, 그를 "오딘의 이상한 이중 인물"이라고 언급한다.[10]
루돌프 지멕은 오드가 11세기의 시인 에이나르 스쿨라손이 사용한 케닝에서 (《스칼드스카파르말》에서) 그리고 《고 에다》의 시 《무녀의 예언》과 《힌들루요드》에 등장하므로, 늦게 만들어진 인물이 아니라고 말한다.[11] 지멕은 "가장 명백한 설명은 오드를 오딘과 동일시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이름의 유사성, 오랜 부재(오딘의 《데인인의 사적》에서의 추방에 비유), 오드의 프레이야와의 결혼 등을 근거로 제시한다.[11]
지멕은 이러한 유사점에도 불구하고, "프레이야가 오딘을 위해 흘리는 눈물과 그녀의 수색은 동기가 부족하다"거나 "그들의 유일한 자녀로 흐노스를 언급하는 것은 놀랍다 - 예를 들어, 발드르가 언급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와 같이 반대되는 점이 있다고 덧붙인다.[11] 이러한 문제로 인해 소푸스 부게와 얄마르 팔크는 아도니스를, 루돌프 무흐는 아티스를, 리 홀랜더는 아모르와 프시케의 민담을 오드에게서 찾으려는 시도를 했다.[11]
지멕은 두 신이 동일하다면, 스노리가 그들을 분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동의한다. 하지만 오딘과 오드의 이름이 너무나 가까워서 두 신 사이의 연관성이 없을 수는 없다고 말한다.[11] 일부 학자들은 오드와 오딘의 인물에서 "더 오래된" 층과 "더 젊은" 층을 찾으려 했지만, 자료 부족으로 인해 설득력 있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11]
스테판 그런디는 야생 사냥과 관련된 민속에서 오드라는 이름의 인물이 스위스와 같은 지역까지 남아있기 때문에, 오드가 기독교화 이후 오딘과 별개의 인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은 낮다고 주장한다.[12] 그런디는 오드가 적어도 바이킹 시대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며, ''오딘''이 ''오드''의 형용사 형태이며, ''오드''가 더 오래된 형태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12]
그런디는 프리그와 프레이야가 단일 여신에서 유래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게르만족의 일부다처제 관습을 언급한다.[13]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 18장에서는 게르만 사회에서 일부일처제가 일반적이었지만, "고귀한 출생을 위해" 일부다처 결혼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13] 메로빙거 왕조와 카롤링거 왕조의 일부다처 결혼 사례와 서고트족 법전을 제외한 초기 게르만 법전에서 일부다처 결혼을 금지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오딘/오드는 "프리그와 프레이야를 동시에 기뻐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그런디는 결론 내린다.[13]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일부다처 결혼이 줄어들면서 신들의 모습도 변화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13]
4. 2. 스비프다그와의 동일시
오드(Óðr)와 오딘 (고대 노르드어: ''Óðinn'')은 이름의 어원적 유사성과 둘 다 장기간 여행을 떠났다는 사실 때문에 종종 연관되어 있다고 여겨진다.[6] 린도우는 언어학적 관계가 울과 울린 사이의 관계와 동일하며, 이들은 종종 단일 신의 변형 이름으로 간주된다고 언급한다.[6] 그러나 린도우는 스노리가 그들을 분리하려 조심했다고 지적한다.[6] 그에 관한 모든 이론은 자료에 포함된 제한된 설명 때문에 추측에 머물 수 밖에 없다.학자 빅토르 뤼드베리는 프레이야의 남편 오드와 에다 시의 《그로우갈드르》와 《표르스빈스말》에 나오는 영웅 스비프다그가 동일 인물이라고 제안했다. 야코프 그림과 다른 학자들은 오랫동안 그 시에 나오는 스비프다그의 연인인 멩글라드("목걸이 애호가")를 브리싱가멘의 소유주인 프레이야와 동일시했다.[9]
학자 힐다 엘리스 데이비드슨은 노르드교가 쇠퇴하던 시기에 스칸디나비아의 기독교화 동안 바니르 숭배가 에시르 숭배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으며, 잠재적으로 오드라는 인물이 노르드 신화에 등장하게 되었고, 그녀는 그를 "오딘의 이상한 이중 인물"이라고 언급한다.[10]
학자 루돌프 지멕은 오드가 11세기의 시인 에이나르 스쿨라손이 사용한 케닝에서 (《스칼드스카파르말》에서) 그리고 《고 에다》의 시 《무녀의 예언》과 《힌들루요드》에 등장하므로, 오드는 늦게 만들어진 인물이 아니라고 말한다. 지멕은 "가장 명백한 설명은 오드를 오딘과 동일시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그들의 이름의 유사성(그리고 울/울린의 유사성에 동의하며), 오랜 부재(오딘의 《데인인의 사적》에서의 추방에 비유), 오드의 프레이야와의 결혼 등을 언급한다.[11]
지멕은 이러한 유사점에도 불구하고, "프레이야가 오딘을 위해 흘리는 눈물과 그녀의 수색은 동기가 부족하다"거나 "그들의 유일한 자녀로 흐노스를 언급하는 것은 놀랍다 - 예를 들어, 발드르가 언급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와 같이 반대되는 점이 있다고 덧붙인다.[11] 지멕은 이러한 문제로 인해 때로는 매우 다른 설명이 나왔다고 언급하며, 소푸스 부게와 얄마르 팔크는 그리스 신 아도니스의 모습을 오드에게서, 루돌프 무흐는 신 아티스의 모습을, 리 홀랜더는 스노리의 《산문 에다》에서 오드와 프레이야에 대한 설명에서 아모르와 프시케의 민담의 모습을 이론화했다.[11]
지멕은 두 신이 동일하다면, 스노리가 그들을 그렇게 분리해 두지 않았을 것이라고 동의한다. 하지만 오딘과 오드의 이름이 너무나 가까워서 두 신 사이의 연관성이 없을 수는 없다. 일부 학자들은 오드와 오딘의 인물에서 "더 오래된" 층과 "더 젊은" 층을 찾기 위해 두 신의 관계를 조사했지만, 지멕은 오드를 언급하는 자료가 부족하여 이 접근 방식이 아직 설득력 있는 결과를 내지 못했다고 말한다.[11]
학자 스테판 그런디는 오드가 기독교화 이후 오딘과 별개의 인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은 있지만, 야생 사냥과 관련된 민속에서 오드라는 이름의 별개의 독립적인 인물이 스칸디나비아에서 남쪽으로 멀리 떨어진 스위스와 같은 지역까지 남아있기 때문에 그 생각은 설득력이 없다고 언급한다. 그런디는 오드가 적어도 바이킹 시대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한다. 그런디는 "얀 데 브리스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이 지적했듯이" 오드와 오딘이 한때 동일한 인물이었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디는 ''오딘''이 ''오드''의 형용사 형태이며, ''오드''가 두 단어 중 더 오래된 형태일 수 있다고 말한다.[12]
오르(Óðr)와 프레이야 두 사람에게는 주신 오딘(Óðinn)과 프리그 부부와 적지 않은 공통점이 있다. 예를 들어, 오르와 오딘, 프레이야와 프리그(다른 이름 프린)처럼 이름이 유사하다는 점, 오르와 오딘이 모두 여행을 자주 다닌다는 점이다. 또한 전사자의 절반은 오딘의 것이 되지만, 남은 절반은 그의 아내 프리그가 아닌 프레이야가 가져간다.
그런디는 여신 프리그와 프레이야가 단일 여신에서 유래하지 않았다고 이론화하면서, 게르만족이 때때로 일부다처제를 실천했다는 점을 언급한다.[13] 타키투스의 서기 1세기의 저서 《게르마니아》 18장에서 타키투스가 게르만 사회에서 일부일처제가 예외가 거의 없지만, "고귀한 출생을 위해" 적극적으로 일부다처 결혼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기록한 부분을 인용한다.[13] 메로빙거 왕조와 카롤링거 왕조의 일부다처 결혼에 대한 설명과 대조하고, 그러한 관계를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유일한 게르만 법전이 서고트족의 법전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스칸디나비아 자료에서는 일부다처 결혼이 거의 증명되지 않지만, 노르웨이의 하랄 1세는 일곱 명의 아내와 동시에 결혼했다고 지적한다.[13] 그런디는 "신들은 숭배자들의 사회적 규범을 반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결론을 내리며, 오딘/오드는 원래 "프리그와 프레이야를 동시에 기뻐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한다.[13]
4. 3. 기타 해석
오드(Óðr)의 이름은 《무녀의 예언》 25절에 "오드의 소녀(Óðs mey)"라는 구절로 나타난다.[6] 《길피의 속임수》에서 스노리는 오드가 여러 나라를 여행했고, 프레이야가 그를 찾아다녔다고 간략하게 언급한다.[6] 오드는 오딘과 이름의 어원적 유사성[6]과 둘 다 장기간 여행을 떠났다는 점 때문에 연관되어 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6] 그러나 스노리가 그들을 분리하려 했다는 점을 린도우는 지적한다.[6]빅토르 뤼드베리는 오드와 영웅 스비프다그가 동일 인물이라고 제안했다. 야코프 그림을 비롯한 학자들은 스비프다그의 연인인 멩글라드를 프레이야와 동일시했다.[9]
힐다 엘리스 데이비드슨은 노르드교가 쇠퇴하던 시기 스칸디나비아의 기독교화 동안 바니르 숭배가 에시르 숭배에 영향을 미쳐 오드라는 인물이 등장했을 수 있다고 보았다.[10]
루돌프 지멕은 오드가 11세기 에이나르 스쿨라손의 케닝과 《고 에다》의 〈무녀의 예언〉, 〈힌들루요드〉에 등장하므로 늦게 만들어진 인물이 아니라고 말한다.[11] 지멕은 오드를 오딘과 동일시하는 것이 "가장 명백한 설명"이라고 언급하며, 이름의 유사성과 오랜 부재, 프레이야와의 결혼 등을 근거로 제시한다.[11]
지멕은 두 신이 동일하다면 스노리가 그들을 분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면서도, 이름이 너무나 가까워 연관성이 없을 수는 없다고 말한다.[11] 오드와 오딘의 관계에 대한 조사는 아직 설득력 있는 결과를 내지 못했다.[11]
스테판 그런디는 야생 사냥과 관련된 민속에 오드라는 이름이 남아있기 때문에, 오드가 바이킹 시대 이전부터 존재했을 것이라고 본다.[12] 그런디는 오드와 오딘이 한때 동일한 인물이었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거의 없다고 주장하며, ''오딘''이 ''오드''의 형용사 형태이고, ''오드''가 더 오래된 형태일 수 있다고 말한다.[12]
그런디는 프리그와 프레이야가 단일 여신에서 유래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게르만족의 일부다처제 관습을 언급한다.[13] 타키투스는 《게르마니아》에서 게르만 사회에서 일부일처제가 일반적이었지만, 일부는 "고귀한 출생을 위해" 일부다처 결혼을 추구했다고 기록했다.[13] 그런디는 신들이 숭배자들의 사회적 규범을 반영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오딘/오드는 원래 프리그와 프레이야 모두와 관계를 맺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 내린다.[13]
오드와 프레이야는 오딘과 프리그 부부와 여러 공통점을 가진다. 이름이 유사하고, 둘 다 여행을 자주 다닌다는 점 등이 그 예시이다. 또한 전사자의 절반은 프레이야가 가져간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오딘과 프리그가 각각 오드와 프레이야라는 이름으로 숭배받던 시기가 있었거나, 젊은 시절의 이름이었다고 추정하는 연구자도 있다.
5. 한국 신화와의 비교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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