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요쓰야 괴담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요쓰야 괴담은 1825년 초연된 일본의 가부키 연극으로, 에도 시대에 큰 인기를 얻었다. 쓰루야 난보쿠가 실제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창작한 이 작품은, 무사 다미야 이에몬이 공금 횡령을 숨기기 위해 요쓰야 사몬을 살해하고, 그의 딸 오이와를 배신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오이와는 이에몬에게 버림받고 흉측하게 변한 뒤 원혼이 되어 복수하며, 작품은 사회적 불안과 여성의 억압된 지위를 반영한다. 요쓰야 괴담은 다양한 형태로 각색되어 영화, 드라마, 만화, 애니메이션 등 대중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오이와의 모습은 일본 유령의 전형적인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1825년 희곡 - 지혜의 슬픔
    《지혜의 슬픔》은 알렉산드르 그리보예도프가 쓴 고전 희극으로, 몰리에르의 영향을 받아 자유로운 운율과 재치 있는 언어 구사로 19세기 러시아 귀족 사회를 묘사하며, 파무소프, 소피아, 차츠키 등이 주요 등장인물이다.
  • 가부키 희곡 - 아오토조시 하나노니시키에
    아오토조시 하나노니시키에는 벤텐 코조 키쿠노스케, 센주 공주, 닛폰 다에몬 등의 인물들이 얽혀 도둑들의 삶과 갈등을 그리며, 벤텐 코조의 자결과 닛폰 다에몬의 체포로 끝나는 작품이다.
  • 가부키 희곡 - 요시쓰네 센본자쿠라
    요시쓰네 센본자쿠라는 미나모토노 요시쓰네를 소재로 겐페이 전투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 일본의 기다유 조루리 작품이며, 가부키와 분라쿠에서 3대 걸작으로 꼽힐 만큼 인기가 높다.
  • 도시마구를 배경으로 한 작품 - 망가미치
    《망가미치》는 후지코 후지오가 1970년부터 2013년까지 연재한 만화가의 삶을 다룬 대장편 만화로, 다섯 편으로 구성되며 후지코 후지오 Ⓐ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드라마화 및 단행본으로 발매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고, 2022년 최종화가 재게재되었다.
  • 도시마구를 배경으로 한 작품 - 쪽빛보다 푸르게
    후미즈키 코우의 만화 《쪽빛보다 푸르게》는 재벌가 후계자 출신 하나비시 카오루가 평범한 대학생으로 살아가며 사쿠라바 아오이와의 사랑과 화령가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애니메이션과 게임으로도 제작되었으며 뛰어난 작화와 주제가가 호평을 받았다.
요쓰야 괴담
기본 정보
요쓰야 괴담
요쓰야 괴담
원작가나데혼 주신구라
종류괴담
국가일본
언어일본어
창작 정보
작가쓰루야 난보쿠 4세
발표일1825년 7월
등장인물
주요 등장인물이오몬
오이와
오우메
고헤이
요모시치
영화
영화다수 존재
연극
연극가부키

2. 역사적 배경

1825년 7월, 쓰루야 난보쿠의 도카이도 요쓰야 괴담에도(현재의 도쿄) 나카무라자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이 작품은 《가나데혼 주신구라》와 함께 2부로 상연되었는데, 당시 가부키 2부작은 첫 번째 극을 전체 상연한 후 두 번째 극을 상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요쓰야 괴담》은 두 작품을 섞어 이틀에 걸쳐 상연하는 독특한 방식을 택했다. 첫째 날에는 《가나데혼 주신구라》 1막~6막과 《도카이도 요쓰야 괴담》 1막~3막을, 다음 날에는 《가나데혼 주신구라》 7막~11막과 《도카이도 요쓰야 괴담》 4막과 5막을 상연했다.

《요쓰야 괴담》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어, 제작자들은 특별 비정기 공연을 계획해야 할 정도였다. 이 작품은 유령을 사찰이나 귀족의 저택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집으로 끌어들여 관객들의 공포를 자극했다.

난보쿠는 실제 일어났던 두 건의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요쓰야 괴담》을 창작하여 사실과 허구를 결합했다. 첫 번째 사건은 주인을 살해한 두 하인에 관한 이야기로, 이들은 체포되어 같은 날 처형되었다. 두 번째 사건은 자신의 이 하인과 불륜을 저지르는 것을 알게 된 무사가 첩과 하인을 나무 판자에 못 박아 간다 강에 던져 버린 사건이었다.

2. 1. 『오이와이나리 유래 서상』 (1827년)

정년기의 손자 우에몬과 모하치로라는 인물이 1827년(분세이 10년)에 막부에 제출한 조사 보고서이다. 각 마을에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일화나 지리지에 대해 보고하기 위해 작성되었으며, 『분세이 정방서상』이라는 책 속의 『요츠야 정방서상』편의 부록 형식으로 되어 있다(이하 『서상』).[1]

『서상』의 내용은 조쿄 연간(1684년 ~ 1688년), 요츠야 사몬 마을에 타미야 이에몬(31세)과 아내 오이와(21세)가 살고 있었는데, 이에몬은 데릴사위였음에도 불구하고 상관의 딸과 중혼하여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오이와는 발광한 후 실종되었다. 그 후, 오이와의 저주에 의해 이에몬의 관계자들이 잇달아 죽어 갔고, 최종적으로 18명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타미야 가문이 멸망한 후, 겐로쿠 연간에 타미야 가문의 터에 이치카와 나오에몬이라는 인물이 이사오고, 그 후 1715년(쇼토쿠 5년)에 야마우라 진페이라는 인물이 이사오자 기괴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 때문에 자신의 보리사인 묘코지(妙行寺)에 이나리를 권청하여 추선 불사를 행하자 괴이한 현상이 멈추었다.[1]

『서상』이 쓰여진 시기는 쓰루야 난보쿠의 도카이도 요츠야 괴담이 상연된 2년 후인 1827년(분세이 10년)이라는 점이 문제가 된다. 와세다 대학 명예 교수 군지 마사카츠는 난보쿠의 요츠야 괴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을 제시하며, "난보쿠가 자작을 선전하기 위해 수뢰를 써서 쓰게 한 것이 아닌가"라고 추측하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검토해 보면 『서상』의 내용이 모두 지어낸 이야기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1]

2. 2. 『요쓰야 잡담집』 (1727년)

정년기의 손자 우에몬과 모하치로라는 인물이 1827년(분세이 10년)에 막부에 제출한 조사 보고서이다. 각 마을에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일화나 지리지에 대해 보고하기 위해 작성되었으며, 『분세이 정방서상』이라는 책 속의 『요츠야 정방서상』편의 부록 형식으로 되어 있다(이하 『서상』).

내용은 조쿄 연간(1684년 ~ 1688년), 요츠야 사몬 마을에 타미야 이에몬(31세)과 아내 오이와(21세)가 살고 있었는데, 이에몬은 데릴사위였음에도 불구하고 상관의 딸과 중혼하여 아이를 낳았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오이와는 발광한 후 실종되었다. 그 후, 오이와의 저주에 의해 이에몬의 관계자들이 잇달아 죽었고, 최종적으로 18명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타미야 가문이 멸망한 후, 겐로쿠 연간에 타미야 가문의 터에 이치카와 나오에몬이라는 인물이 이사오고, 그 후 1715년(쇼토쿠 5년)에 야마우라 진페이라는 인물이 이사오자 기괴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 때문에 자신의 보리사인 묘코지(妙行寺)에 이나리를 권청하여 추선 불사를 행하자 괴이한 현상이 멈추었다는 줄거리이다.

문제는, 쓰여진 시기가 쓰루야 난보쿠의 도카이도 요쓰야 괴담이 상연된 2년 후인 1827년(분세이 10년)이라는 점이다. 난보쿠의 요쓰야 괴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도 있으므로, 와세다 대학 명예 교수 군지 마사카츠는 "난보쿠가 자작을 선전하기 위해 수뢰를 써서 쓰게 한 것이 아닌가"라고 추측하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검토해 보면 『서상』의 내용이 모두 지어낸 이야기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17]

『요쓰야 잡담집』은 겐로쿠 시대에 일어난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쓰루야 난보쿠의 『도카이도 요쓰야 괴담』의 원전이 된 이야기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에도 시대 초기에 건립된 이나리 신사의 유래와는 연대가 맞지 않으며, 타미야 가문은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타미야 가문에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오이와는 정숙한 여성이었고 부부 사이도 좋았다고 한다. 이로 인해, 타미야 가문과 관련된 여성의 실종 사건이 괴담으로 개변된 것이 아니냐는 고찰이 있다.[17]

오카모토 키도는 오이와 이나리에 대해, 시타마치의 서민들이 말하는 것은 괴담이며, 야마노테의 무가들이 말하는 것은 미담으로 나뉘는 것을 보아, 사건이 무가와 관련된 것이므로 무가 측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미담을 꾸며낸 것이 아니냐는 고찰을 하고 있다.[18]

난보쿠의 『도카이도 요쓰야 괴담』 이전에 이 이야기를 토대로 한 작품으로는 교쿠테이 바킨의 『권선영세 이야기』(1806년(분카 3년))와 류테이 타네히코의 『근세 괴담 서리 내리는 밤의 별』(1808년(분카 5년))이 있다.

2. 3. 기타

정년기의 손자인 우에몬과 모하치로가 1827년(분세이 10년) 막부에 제출한 조사 보고서인 『분세이 정방서상』 속 『요츠야 정방서상』 편의 부록(이하 『서상』)에 요쓰야 괴담 관련 내용이 실려있다.

『서상』의 내용은 조쿄 연간(1684년 ~ 1688년) 요쓰야 사몬 마을에 살던 타미야 이에몬과 아내 오이와의 이야기이다. 이에몬은 데릴사위였음에도 상관의 딸과 중혼하여 아이를 낳았고, 이 사실을 안 오이와는 발광 후 실종되었다. 이후 오이와의 저주로 이에몬의 관계자들이 잇달아 죽어 18명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타미야 가문 멸망 후, 겐로쿠 연간에 이치카와 나오에몬, 1715년(쇼토쿠 5년) 야마우라 진페이가 타미야 가문 터에 이사 오자 기괴한 사건이 일어났다. 보리사인 묘코지(妙行寺)에 이나리를 권청하여 추선 불사를 행하자 괴이한 현상이 멈췄다고 한다.

문제는 『서상』이 쓰루야 난보쿠의 도카이도 요쓰야 괴담 상연 2년 후인 1827년(분세이 10년)에 쓰였다는 점이다. 와세다 대학 명예 교수 군지 마사카츠는 난보쿠가 자작을 선전하기 위해 수뢰를 써서 쓰게 한 것이 아닌가 추측했다. 그러나 『서상』 내용이 모두 지어낸 이야기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요쓰야 잡담집』(1727년(교호 12년) 간행)에는 겐로쿠 시대에 일어난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쓰루야 난보쿠의 『도카이도 요쓰야 괴담』의 원전이 되었다.

에도 시대 초기 건립된 이나리 신사 유래와는 연대가 맞지 않고, 타미야 가문은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며, 타미야 가문에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오이와는 정숙한 여성이었고 부부 사이도 좋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타미야 가문과 관련된 여성 실종 사건이 괴담으로 변형된 것이 아니냐는 고찰이 있다[17]

오카모토 키도는 오이와 이나리에 대해 시타마치 서민들이 말하는 것은 괴담, 야마노테 무가들이 말하는 것은 미담으로 나뉘는 것을 보아, 무가 측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미담을 꾸며낸 것이 아니냐는 고찰을 했다[18]

난보쿠의 『도카이도 요쓰야 괴담』 이전에 이 이야기를 토대로 한 작품으로는 교쿠테이 바킨의 『권선영세 이야기』(1806년(분카 3년))와 류테이 타네히코의 『근세 괴담 서리 내리는 밤의 별』(1808년(분카 5년))이 있다.

3. 등장인물

에도 나카무라 좌다미야 이에몬주인공요쓰야 사몬이에몬의 표적오이와사몬의 딸이자 이에몬의 처고노 모로노이에몬의 이웃이토 기헤에모로노의 하인오우메기헤에의 딸이자 이에몬의 둘째 처오소데오이와의 동서사토 요모시치오소데의 약혼남나오스케 곤베에오소데의 실질적 남편



호쿠사이의 그림 속 오이와가 등불에서 나타나는 모습


오이와는 복수를 갈망하는 유령인 온료이다. 복수에 대한 강렬한 열정은 그녀가 세상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준다. 그녀는 일본 유령의 일반적인 특징을 공유하는데, 이는 매장 때 입었을 흰색 기모노, 가부키 극장에서 유령을 나타내는 길고 헝클어진 머리카락, 흰색/남색 얼굴 등이 포함된다.[4]

오이와는 다른 온료와 구별되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이몬이 그녀에게 준 독으로 인해 얼굴 아래로 축 처진 왼쪽 눈이다. 이 특징은 오이와에게 독특한 외모를 부여하기 위해 가부키 공연에서 과장되게 묘사된다. 그녀는 종종 부분적으로 대머리로 나타나는데, 이것 또한 독의 영향이다. 가부키극의 웅장한 장면에서 살아있는 오이와는 거울 앞에 앉아 머리를 빗는데, 독 때문에 머리카락이 우수수 떨어진다. 이 장면은 가부키 연애극의 에로틱한 머리 빗는 장면의 전복이다.[4] 머리카락은 무대 아래에 앉아 오이와가 머리를 빗는 동안 바닥을 통해 점점 더 많은 머리카락을 밀어 올리는 무대 스태프에 의해 엄청난 높이로 쌓인다.

오이와는 도쿄의 스가모 지역에 있는 묘교지라는 사찰에 묻혔다고 한다. 그녀의 사망 날짜는 1636년 2월 22일로 기록되어 있다.[5]

영화 《링》의 사다코 야마무라는 오이와에 대한 명백한 오마주이다. 그녀의 마지막 모습은 오이와의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축 처지고, 기형적인 눈을 포함하여 오이와의 직접적인 각색이다.[7]

4. 줄거리 (도카이도 요쓰야 괴담)

무사 다미야 이에몬은 공금 횡령을 하다 요쓰야 사몬에게 발각되어 그를 암살한다. 이후 이에몬은 사몬의 딸 오이와와 부부 생활을 하지만, 이웃 고노 모로노의 하인 이토 기헤에의 딸 오우메가 자신을 연모하는 것을 알고 모로노의 집에 취직하는 조건으로 오우메와 결혼하기로 한다. 이에몬은 오이와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이혼을 요구하고, 결국 이토 기헤에는 오이와에게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지는 독약을 먹인다.[19]

오이와는 배신감에 이에몬의 칼로 목을 찔러 자결하고 원혼이 된다. 한편 오이와의 동서 오소데는 사토 요모시치라는 약혼자가 있었으나, 암살 소식과 오이와의 자결 소식을 듣고 나오스케 곤베에와 복수를 위해 결혼한다.[19]

얼마 후 요모시치가 살아 돌아오고, 오소데와 나오스케가 남매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오소데는 나오스케와 요모시치의 손에 죽고, 나오스케도 자결한다.[19]

이에몬은 밤중에 천변에서 오이와의 시신이 묶인 판자를 발견하고 저주를 받는다. 뒤집힌 판자에는 요쓰야의 시체가 있었고, 요쓰야 또한 저주를 퍼붓는다. 이에몬은 판자를 놓쳤다가 다시 들춰보자 백골 시체가 나타나 강물에 빠진다.[19]

이토 가문의 남은 구성원들은 전멸하고, 이에몬은 오우메의 어머니 등을 온보 운하에 빠뜨려 죽인다. 이후 이에몬은 오이와의 망령에 시달리며 산속 은신처로 도망치지만, 광기에 빠진다. 결국 요모시치가 이에몬을 살해하면서 극이 마무리된다.[19]

4. 1. 1막

다미야 이에몬은 공금 횡령을 저지르다 요쓰야 사몬에게 발각되어 그를 암살한다. 이후 이에몬은 사몬의 딸 오이와와 부부 생활을 하지만, 이웃인 고노 모로노의 하인 이토 기헤에의 딸 오우메가 자신을 연모한다는 것을 알고 모로노의 집에 취직하는 조건으로 오우메와 결혼하기로 한다. 이에몬은 오이와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이혼을 요구하고, 결국 이토 기헤에는 오이와에게 독약을 먹여 흉측하게 만든다.

배신감에 오이와는 이에몬의 칼로 목을 찔러 자결하고 원혼이 된다. 한편 오이와의 동서 오소데에게는 사토 요모시치라는 약혼자가 있었으나, 그가 암살당했다는 소문과 오이와의 자결 소식에 그를 단념하고 나오스케 곤베에와 복수를 위해 결혼한다.

얼마 후 요모시치가 살아 돌아오고, 오소데와 나오스케가 남매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오소데는 요모시치와 나오스케에게 죽고, 나오스케도 자결한다.

이에몬은 밤중에 천변에서 오이와의 시신이 묶인 판자를 발견하고 저주를 받는다. 요쓰야의 시신도 나타나 저주를 퍼붓고, 이에몬은 충격으로 판자를 놓친다. 다시 판자를 들추자 백골 시체가 나타나 으스러져 강물에 빠진다.[19]

겐코 원년(1338년), 전 시오야 가문의 가신 요쓰야 사몬의 딸 이와는 남편 이우에몬의 부정행위 때문에 친정에 돌아와 있었다. 이우에몬은 재결합을 요구하지만, 과거의 공금 횡령을 지적받고 사몬을 살해한다. 같은 장소에서 이와의 여동생 소데를 짝사랑하던 약장수 나오스케는 소데의 남편 사토 요모시치(사실은 다른 사람)를 살해한다. 이와와 소데가 나타나 시신을 발견하고 슬퍼하자, 이우에몬과 나오스케는 원수를 갚아주겠다고 설득한다. 이우에몬과 이와는 재결합하고, 나오스케와 소데는 동거하게 된다.

타미야 가문으로 돌아온 이와는 산후 조리가 좋지 않아 병이 잦아지고, 이우에몬은 이와를 혐오하게 된다. 고노 모로나오의 가신 이토 키헤이의 손녀 우메는 이우에몬을 짝사랑하고, 키헤이도 이우에몬을 사위로 원한다. 고위 가문에 출사하는 조건으로 승낙한 이우에몬은 안마사 타쿠에츠를 협박하여 이와와 간통을 저지르고, 이를 구실로 이혼하려 한다. 키헤이에게서 받은 약 때문에 용모가 망가진 이와를 보고 겁을 먹은 타쿠에츠는 이우에몬의 계획을 폭로한다. 이와는 괴로워하며 칼에 목이 찔려 죽는다. 이우에몬은 모시던 코보토케 코헤이를 간통범으로 꾸며 참살하고, 부하들은 이와와 코헤이의 시체를 널빤지 앞뒤로 묶어 강에 흘려보낸다.

4. 2. 2막

고노 모로나오의 가신 이토 기헤에의 손녀 오우메는 무사 다미야 이에몬을 연모한다. 이에몬은 공금횡령을 하다 요쓰야 사몬에게 발각되어 그를 암살하고, 사몬의 딸 오이와와 부부생활을 한다. 기헤에는 이에몬을 사위로 삼기 위해 오이와에게 얼굴이 흉측하게 변하는 독약을 먹인다. 한편, 이에몬은 오우메와 결혼하기 위해 오이와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이혼을 요구한다.

오이와는 이에몬의 칼로 목을 베어 자살하고 원혼이 되어 기헤에와 오우메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오이와의 동서 오소데는 사토 요모시치와 결혼하려 했으나, 요모시치가 암살당했다는 소문과 오이와의 자결 소식을 듣고 나오스케 곤베에와 복수를 위해 결혼한다.

얼마 후 요모시치가 살아 돌아오고, 오소데와 나오스케가 남매라는 것이 밝혀진다. 오소데는 나오스케와 요모시치의 손에 죽고, 나오스케도 자살한다.

이에몬은 밤중에 천변에서 오이와와 요쓰야의 시신이 묶인 판자를 발견하고 저주를 받는다. 충격받은 이에몬이 다시 판자를 들춰보자 백골이 된 시체가 으스러져 강물에 빠진다.[19]

이토 기헤이는 손녀 오우메와 이에몬의 결혼을 위해 오이와에게 독약을 보낸다. 오이와는 얼굴 크림으로 위장한 독약을 바르고 흉터가 생긴다. 이에몬은 타쿠에츠에게 오이와를 강간하라고 부탁하지만, 타쿠에츠는 거울로 오이와의 모습을 보여준다. 오이와는 칼에 목이 찔려 죽어가며 이에몬을 저주한다. 이에몬은 오우메와 약혼하지만, 결혼식 날 오이와의 망령에게 속아 오우메와 기헤에를 살해한다.

4. 3. 3막



오이와는 모두에게 배신당한 것을 받아들이고 이에몬의 칼로 목을 베어 죽고 원혼이 된다. 한편 오이와의 동서 오소데에게는 사토 요모시치라는 약혼자가 있었으나, 요모시치가 암살당했다는 소문과 오이와의 자결 소식을 듣고 나오스케 곤베에와 요모시치의 복수를 위해 결혼한다.

그러나 요모시치가 살아 돌아오고, 오소데와 나오스케가 남매라는 것을 알린다. 결국 오소데는 나오스케와 요모시치의 손에 죽고, 나오스케도 자살한다.

이에몬은 밤중에 천변에서 오이와의 시신이 묶인 판자를 발견한다. 오이와의 시체는 이에몬에게 저주를 퍼붓고, 뒤집힌 판자에는 요쓰야의 시체가 있었다. 요쓰야 또한 저주를 퍼붓는다. 이에몬은 충격으로 판자에서 손을 떼고, 다시 판자를 들춰보자 백골이 된 시체가 묶여 있었고, 이에몬이 질겁하자 백골은 강물로 빠져들어갔다.[19]

이토 가문의 남은 구성원들은 전멸한다. 이에몬은 오우메의 어머니인 오유미를 온보 운하에 빠뜨려 죽이고, 오유미의 하녀인 오마키는 우연히 익사한다. 나오스케는 뱀장어 장수 곤베로 변장하여 이에몬을 협박해 귀중한 문서를 넘겨받는다. 이에몬은 온보 운하에서 낚시를 하며 자신의 앞날을 고심한다. 운하 위 제방에서 이에몬, 요모시치, 나오스케는 쪽지를 차지하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다 우스꽝스럽게 넘어진다.

4. 4. 4막

무사 다미야 이에몬은 공금 횡령을 저지른 후, 이를 목격한 요쓰야 사몬을 암살하고 그의 딸 오이와와 부부 생활을 한다. 이웃인 이토 기헤에의 딸 오우메가 자신을 연모하는 것을 안 이에몬은 오우메와 결혼하기 위해 오이와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이혼을 요구하고, 결국 오이와에게 독약을 먹여 흉측하게 만든 후 버린다.[19]

배신감에 오이와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원혼이 되어 기헤에와 오우메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한편, 오이와의 동서 오소데는 약혼자 요모시치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오스케 곤베에와 복수를 위해 결혼한다.[19]

얼마 후, 요모시치가 살아 돌아오고 오소데와 나오스케가 남매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오소데는 나오스케와 요모시치의 손에 죽고, 나오스케는 자살한다.[19]

이에몬은 밤길에 오이와와 요쓰야의 시체가 묶인 판자를 보고 저주를 받는다. 판자에서 손을 뗀 후 다시 들춰보자 백골이 된 시체가 묶여 있었고, 이에몬이 겁을 먹자 백골은 강물에 빠져 사라진다.[19]

나오스케는 오소데에게 결혼을 재촉하지만, 오소데는 꺼리는 듯하다. 요모시치가 나타나 오소데의 간통을 비난하자, 오소데는 속죄를 위해 죽음을 택하고 나오스케와 요모시치에게 자신을 죽여달라 한다. 오소데는 나오스케가 자신의 동생임을 알리는 편지를 남기고, 수치심과 죄책감에 나오스케는 자살한다.[19]

4. 5. 5막

타미야 이에몬은 공금을 횡령하고 이를 목격한 요쓰야 사몬을 살해한다. 이후 이에몬은 사몬의 딸 오이와와 부부생활을 하지만, 이웃 고노 모로노의 하인 이토 기헤에의 딸 오우메가 자신을 연모하는 것을 알고 모로노의 집에 취직하는 조건으로 오우메와 결혼하기로 한다. 이에몬은 오이와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이혼을 요구하고, 결국 기헤에는 오이와에게 독약을 먹여 흉측한 얼굴로 만든다. 배신감에 오이와는 칼로 목을 찔러 자결하고 원혼이 되어 기헤에와 오우메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한편, 오이와의 동서 오소데는 약혼자 사토 요모시치가 암살당했다는 소문과 오이와의 자결 소식을 듣고 나오스케 곤베에와 복수를 위해 결혼한다. 그러나 요모시치가 살아 돌아오고, 오소데와 나오스케가 남매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결국 오소데는 나오스케와 요모시치의 손에 죽고, 나오스케도 자결한다.

이에몬은 밤중에 천변에서 오이와와 요쓰야 사몬의 시체가 묶인 판자를 발견하고 저주를 받는다. 오이와의 망령에 시달리던 이에몬은 산속 은신처로 도망치지만, 꿈과 현실이 뒤섞이며 광기에 빠진다. 결국 요모시치가 복수심과 연민으로 이에몬을 살해하면서 극이 마무리된다.[19]

5. 초연 당시의 공연 방식

1825년 7월, 요쓰야 괴담은 에도(현재의 도쿄)의 나카무라자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이 공연은 가나데혼 주신구라(충신장)와 함께 2부작으로 구성되었는데, 일반적인 가부키 2부작과는 다른 방식으로 상연되었다.[1]

일반적인 가부키 2부작은 첫 번째 극을 전체 상연한 후 두 번째 극을 상연한다. 그러나 《요쓰야 괴담》은 두 작품을 섞어 이틀에 걸쳐 상연하는 방식을 택했다. 첫째 날에는 《가나데혼 주신구라》의 1막부터 6막까지 상연하고, 《도카이도 요쓰야 괴담》의 1막부터 3막까지 상연했다. 둘째 날에는 온보 운하 장면으로 시작하여, 《가나데혼 주신구라》의 7막부터 11막까지 상연한 후, 《도카이도 요쓰야 괴담》의 4막과 5막으로 마무리했다.[1]

이러한 상연 방식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시도였으며, 연극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제작자들은 몰려드는 관객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특별 비정기 공연을 계획해야 할 정도였다.[1]

초연 당시 배역은 다음과 같다.[6]

배역배우
이와오노에 키쿠고로
이에몬이치카와 단주로
나오스케마츠모토 코시로
오소데이와이 쿠메사부로


6. 오이와 전설과 신앙



오이와는 복수를 갈망하는 유령인 온료이다. 복수에 대한 강렬한 열정으로 인해 오이와는 세상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오이와는 일본 유령의 일반적인 특징인 매장 때 입었을 흰색 기모노, 가부키 극장에서 유령을 나타내는 길고 헝클어진 머리카락, 흰색/남색 얼굴 등을 가지고 있다.

오이와는 이몬이 준 독으로 인해 얼굴 아래로 축 처진 왼쪽 눈을 가진 것이 특징이다. 이는 가부키 공연에서 과장되게 묘사된다. 또한 독의 영향으로 종종 부분적으로 대머리로 나타나며, 가부키극에서 살아있는 오이와가 거울 앞에서 머리를 빗을 때 독 때문에 머리카락이 우수수 떨어지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4]

오이와는 도쿄 스가모 지역의 묘교지에 묻혔다고 전해지며, 사망 날짜는 1636년 2월 22일이다.[5] 영화 《링》의 사다코 야마무라는 오이와를 오마주한 것으로, 흩날리는 머리카락과 축 처진 기형적인 눈은 오이와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각색한 것이다.[7]

6. 1. 오이와이나리

오이와이나리타미야 신사(요쓰야 사몬초)


오이와이나리 요운지(요쓰야 사몬초)


현재 요쓰야 사몬초에는 '''오이와이나리타미야 신사'''와 '''오이와이나리 요운지'''가 길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있다. 또한 주오구 신카와에도 '''오이와이나리타미야 신사'''가 있다.

요쓰야의 오이와이나리타미야 신사(타미야 가문 터)는 1879년(메이지 12년) 화재로 소실되어 신카와로 이전했다. 신카와의 오이와이나리타미야 신사는 전재로 소실되었지만 태평양 전쟁 후 재건되었고, 요쓰야의 옛 터에도 다시 세워졌다.

요운지는 쇼와 초기에 창건된 니치렌종 사원이다. 경내에는 "쇼와 32년에 신주쿠구에서 문화재로 지정된 오이와 님과 관련된 우물"이 있으며, 경내에 있는 태산목 아래에는 "오이와 님과의 인연이 있는 사당"이 있었다고 전해진다[20]。원래는 오이와이나리타미야 신사가 주오구 신카와로 이전했을 때, 지역 명물이 없어 곤란해진 지역 유지들이 "요쓰야 오이와이나리 보존회"를 발족했고, 이때 본부에 모셨던 오이와 존이라는 작은 사당이 커진 것이 요운지의 시작이다.

오이와이나리가 여러 개 생긴 요인으로는 단순하게 돈이 되기 때문이다. 가부키 배우는 물론이고, 오이와의 외도에 대한 원념에서 남자의 외도 방지에 효과가 있다고 하여 화류계로부터 신앙을 모았기 때문에, 사전 외에도 토산품 등으로 지역 경제가 윤택해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도쿄일일신문, 도쿄 새벽신문과 같은 메이지 시대 신문에는 오가와 모라는 인물이 여러 번 또 다른 오이와이나리를 만들려고 획책했다는 내용이 기사로 남아 있다[16]

덧붙여 오이와의 "묘"는 스가모의 묘코지(메이지 시대에 요쓰야에서 이전)에 있다. 아마도 2대 타미야 이에몬의 아내의 묘일 것이라고 추측된다[21]

6. 2. 오이와의 묘

오이와는 도쿄 스가모 지역의 묘교지라는 사찰에 묻혔다고 전해지며, 사망 날짜는 1636년 2월 22일로 기록되어 있다.[5] 《요쓰야 괴담》을 각색한 텔레비전 및 영화 제작 과정에서 불가사의한 사고, 부상, 심지어 사망까지 발생했다는 보고가 있다. 이 때문에 《요쓰야 괴담》을 각색하기 전에는 주연 배우와 감독이 오이와의 무덤을 방문하여 제작 허가와 축복을 구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6] 특히 오이와 역을 맡는 배우에게 이 의식은 중요하게 여겨진다.

현재 요쓰야 사몬초에는 '''오이와이나리타미야 신사'''와 '''오이와이나리 요운지'''가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또한 주오구 신카와에도 '''오이와이나리타미야 신사'''가 있다.

요쓰야의 오이와이나리타미야 신사(타미야 가문 터)는 1879년(메이지 12년) 화재로 소실되어 신카와로 이전했다. 신카와의 오이와이나리타미야 신사는 전쟁 중에 불탔지만 태평양 전쟁 이후 재건되었고, 요쓰야의 옛 터에도 다시 세워졌다.

요운지는 쇼와 초기에 창건된 니치렌종 사원이다. 경내에는 "쇼와 32년에 신주쿠구에서 문화재로 지정된 오이와 님과 관련된 우물"이 있으며, 태산목 아래에는 "오이와 님과의 인연이 있는 사당"이 있었다고 전해진다.[20] 원래 오이와이나리타미야 신사가 주오구 신카와로 이전했을 때, 지역 명물이 사라져 곤란해진 지역 유지들이 "요쓰야 오이와이나리 보존회"를 결성했고, 이때 본부에 모셨던 오이와 존이라는 작은 사당이 커진 것이 요운지의 시작이다.

오이와이나리가 여러 곳에 생긴 이유는 간단히 말해 돈벌이가 되기 때문이었다. 가부키 배우는 물론이고, 오이와의 원념이 남자의 외도를 막는 데 효과가 있다고 하여 화류계에서도 신앙을 얻었기 때문에, 사전 외에도 토산품 등으로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도쿄일일신문』, 『도쿄 새벽신문』과 같은 메이지 시대 신문에는 오가와 모라는 인물이 여러 번 또 다른 오이와이나리를 만들려고 했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16]

오이와의 "묘"는 스가모의 묘코지 (메이지 시대에 요쓰야에서 이전)에 있으며, 2대 타미야 이에몬의 아내의 묘로 추정된다.[21]

6. 3. 오이와의 저주?



오이와는 복수를 갈망하는 유령인 온료이다. 복수에 대한 강렬한 열정으로 인해 오이와는 세상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오이와는 일본 유령의 일반적인 특징을 공유하는데, 매장 때 입었을 흰색 기모노, 가부키 극장에서 유령을 나타내는 길고 헝클어진 머리카락, 흰색/남색 얼굴 등이 그러하다.

오이와는 다른 온료와 구별되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이몬이 그녀에게 준 독으로 인해 얼굴 아래로 축 처진 왼쪽 눈이다. 이 특징은 가부키 공연에서 오이와에게 독특한 외모를 부여하기 위해 과장되게 묘사된다. 또한 독의 영향으로 종종 부분적으로 대머리로 나타난다. 가부키극의 웅장한 장면에서 살아있는 오이와는 거울 앞에 앉아 머리를 빗는데, 독 때문에 머리카락이 우수수 떨어진다. 이 장면은 가부키 연애극의 에로틱한 머리 빗는 장면을 전복한 것이다.[4] 머리카락은 무대 아래에 앉아 오이와가 머리를 빗는 동안 바닥을 통해 점점 더 많은 머리카락을 밀어 올리는 무대 스태프에 의해 엄청난 높이로 쌓인다.

오이와는 도쿄 스가모 지역의 묘교지라는 사찰에 묻혔다고 한다. 그녀의 사망 날짜는 1636년 2월 22일로 기록되어 있다.[5] 텔레비전 및 영화 각색을 포함한 여러 편의 《요츠야 괴담》 제작에서 신비한 사고, 부상, 심지어 사망까지 보고되었다. 현재는 《요츠야 괴담》을 각색하기 전에 주연 배우와 감독이 오이와의 무덤을 순례하여 제작 허가와 축복을 구하는 것이 전통이다.[6] 이는 특히 오이와 역을 맡는 배우에게 중요하게 여겨진다.

영화 《링》의 사다코 야마무라는 오이와에 대한 명백한 오마주이다. 사다코의 마지막 모습은 오이와의 흩날리는 머리카락, 축 처지고 기형적인 눈을 포함하여 오이와를 직접적으로 각색한 것이다.[7] 또한 주온에서 히토미가 텔레비전을 볼 때, 텔레비전 진행자가 눈이 작고 눈이 큰 여성으로 변하는데, 이는 오이와를 언급한 것일 수 있다.

현재 요쓰야 사몬초에는 '''오이와이나리타미야 신사'''와 '''오이와이나리 요운지'''가 길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있다. 주오구 신카와에도 '''오이와이나리타미야 신사'''가 있다.

요쓰야의 오이와이나리타미야 신사(타미야 가문 터)는 1879년(메이지 12년) 화재로 소실되어 신카와로 이전했다. 신카와의 오이와이나리타미야 신사는 전재로 소실되었지만 태평양 전쟁 후 재건되었고, 요쓰야의 옛 터에도 다시 세워졌다.

요운지는 쇼와 초기에 창건된 니치렌종 사원이다. 경내에는 "쇼와 32년에 신주쿠구에서 문화재로 지정된 오이와 님과 관련된 우물"이 있으며, 경내에 있는 태산목 아래에는 "오이와 님과의 인연이 있는 사당"이 있었다고 전해진다.[20] 원래 오이와이나리타미야 신사가 주오구 신카와로 이전했을 때, 지역 명물이 없어 곤란해진 지역 유지들이 "요쓰야 오이와이나리 보존회"를 발족했고, 이때 본부에 모셨던 오이와 존이라는 작은 사당이 커진 것이 요운지의 시작이다.

오이와이나리가 여러 개 생긴 요인은 단순하게 돈이 되기 때문이다. 가부키 배우는 물론이고, 오이와의 외도에 대한 원념에서 남자의 외도 방지에 효과가 있다고 하여 화류계로부터 신앙을 모았기 때문에, 사전 외에도 토산품 등으로 지역 경제가 윤택해졌다. 이 때문에 『도쿄일일신문』, 『도쿄 새벽신문』과 같은 메이지 시대 신문에는 오가와 모라는 인물이 여러 번 또 다른 오이와이나리를 만들려고 획책했다는 내용이 기사로 남아 있다.[16]

오이와의 "묘"는 스가모의 묘코지(메이지 시대에 요쓰야에서 이전)에 있다. 아마도 2대 타미야 이에몬의 아내의 묘일 것으로 추측된다.[21]

7. 대중문화에 미친 영향

분세이 시대는 사회 불안이 심했고, 여성의 억압된 지위는 심각했다. ''요쓰야 괴담''은 권력의 교환에서 무력함으로의 변화를 보여주며 관객들의 공감을 얻었다.[2] 오이와는 연약한 피해자에서 강력한 복수자로, 이에몬은 가해자에서 고통받는 자로 변모한다. 오이와는 오키쿠보다 훨씬 더 직접적이고 잔혹하게 복수하는데, 이러한 폭력성은 당시 관객들을 열광시켰다.

''요쓰야 괴담''은 귀족이 아닌 사람들의 삶을 다룬 ''키제와모노''와 유령 연극인 ''카이단모노''를 결합했다.[2] 공연은 망가진 오이와의 얼굴이 등불에 투영되는 등 환상적인 특수 효과로 가득했다.

''요쓰야 괴담''은 가부키 극으로, 1825년 에도 나카무라좌에서 초연되었다. 4대 츠루야 난보쿠의 대표작이며, 가나데혼 주신구라의 외전 형식을 취하고 있다. 오이와 전설에 더해, 불륜을 저지른 남녀가 널빤지에 못 박혀 간다강에 떠내려갔다는 당시의 화제와, 스나무라 온보보리에 동반자살한 시체가 떠내려왔다는 이야기 등이 차용되었다.

이후 요쓰야 괴담은 다양한 예술 분야에 영향을 주었다.

7. 1. 우키요에

가쓰시카 호쿠사이는 자신의 연작 ''백 귀 이야기''에서 성난 유령의 얼굴을 절의 등불과 합쳐 그린, 가장 상징적인 오이와의 이미지를 창조했다. 우타가와 쿠니요시는 헤비야마의 장면을 묘사했는데, 등불 머리를 한 오이와가 뱀과 연기에 둘러싸여 이에몬을 향해 다가오는 모습을 보여준다.

인기 있는 가부키 연극인 ''요쓰야 괴담''은 곧 우키요에 화가들의 인기 소재가 되었다. 1826년, 이 연극이 오사카의 스미자 극장에서 개봉한 해에 슌코사이 호쿠슈는 ''오이와의 유령''을 제작했다. 그녀는 축 처진 눈과 부분적인 탈모로 알아볼 수 있다.

츠키오카 요시토시는 살아있는 오이와를 ''36귀신의 새로운 형태'' 중 하나로 묘사했다.

슌코사이 호쿠에이는 위의 삽화에서 호쿠사이의 디자인을 시각적으로 인용하여 이에몬이 유령을 만나기 위해 돌아서서 칼을 뽑는 모습을 그렸다. 등불 장면은 넷케에 조각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8]

화가작품명소장
우타가와 도요쿠니『도카이도 요쓰야 괴담』국립극장
우타가와 구니사다『당삼승 요쓰야 문서』(따라 해 봅니다 요쓰야의 기록)와세다 대학 연극 박물관
가쓰시카 호쿠사이『근세 괴담 서리 내리는 밤의 별』 삽화
오치아이 요시이쿠『도카이도 요쓰야 괴담』고베 시립 박물관
깃카와 간호『아침 이슬, 저녁 안개』후쿠오카 시 미술관
우타가와 호사이『안마 타쿠에쓰 오노에 마쓰스케』


7. 2. 영화 및 드라마

요쓰야 괴담은 영화와 드라마로도 많이 만들어졌다. 최초의 영화는 1912년에 제작되었고, 1913년부터 1937년까지 약 18편의 영화가 만들어졌다. 이 중 주목할 만한 작품은 이토 다이스케 감독의 '신판 요쓰야 괴담'이다.

1949년에는 키노시타 케이스케 감독이 '신작 요쓰야 괴담'을 만들었는데, 이 영화에서는 귀신 요소를 없애고 오이와를 남편의 죄책감 때문에 나타나는 정신적인 환영으로 묘사했다.

신토호는 1959년에 나카가와 노부오 감독의 '도카이도 요츠야 괴담'을 제작했는데, 이 영화는 비평가들로부터 요쓰야 괴담을 가장 훌륭하게 각색한 영화로 평가받는다. 도호는 1965년에 토요다 시로 감독, 나카다이 타츠야 주연의 '요쓰야 괴담'을 제작했고, 이 영화는 해외에서 '피의 환상'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다. 1994년에는 후카사쿠 킨지 감독이 '배신의 문장'을 만들었는데, 이 영화는 충신구라와 요쓰야 괴담을 결합한 작품이다.

요쓰야 괴담은 텔레비전 드라마로도 각색되었다. 일본 텔레비전 드라마 '괴담 백화'의 첫 번째 이야기가 요쓰야 괴담이었고, 2006년 애니메이션 시리즈인 '아야카시: 사무라이 호러 테일즈'의 1~4화도 요쓰야 괴담을 재구성한 것이다.

몇몇 평론가들은 오이와 이야기와 영화 '주온' 사이에 느슨한 연관성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전후 영화 목록은 다음과 같다.

연도제목제작사감독이에몬오이와
1949년신석 요쓰야 괴담 (전·후편)쇼치쿠기노시타 게이스케우에하라 겐다나카 기누요
1956년요쓰야 괴담신토호모리 마사키와카야마 토미사부로소마 지에코
1959년요쓰야 괴담다이에이미스미 겐지하세가와 가즈오나카타 야스코
1959년도카이도 요쓰야 괴담신토호나카가와 노부오아마치 시게루와카스기 가쓰코
1961년괴담 오이와의 망령도에이가토 다이와카야마 토미사부로후지시로 요시코
1965년요쓰야 괴담도쿄 영화도요다 시로나카다이 타츠야오카다 마리코
1969년요쓰야 괴담 오이와의 망령다이에이모리 이세이사토 게이이나노 가즈코
1981년마성의 여름 요쓰야 괴담에서쇼치쿠니나가와 유키오하기와라 겐이치세키네 게이코
1994년충신장 외전 요쓰야 괴담쇼치쿠후카사쿠 긴지사토 코이치다카오카 사키
2004년웃는 이에몬도호니나가와 유키오가라사와 토시아키고유키
1976년신 괴담 색욕 외도 오이와의 원령 요쓰야 괴담오쿠라 영화오가와 타쿠히로미나미 유키
2014년쿠이메-토에이미이케 타카시이치카와 에비조



텔레비전 드라마 목록은 다음과 같다.

연도제목방송사이에몬오이와
1969년괴기 로망 극장·요쓰야 괴담 전편 후편NET다무라 다카히로
1970년일본 괴담 극장 요쓰야 괴담 번개의 장·물가의 장도쿄 12채널다무라 다카히로사가 쿄코
1972년괴담 제1화 「요쓰야 괴담」NET아마치 시게루엔야마 리에코
1979년일본 명작 괴담 극장 제3화 「요쓰야 괴담」도쿄 12채널이부키 고로야기 타카코
1987년일요 극장 여름 서스펜스 시리즈 「신·요쓰야 괴담」 (전·후편)TBS야쿠쇼 코지사카구치 료코
1991년아내 그리고 여자 시리즈·요쓰야 괴담마이니치 방송이소베 쓰요시요시자와 교코
2002년괴담 백물어·요쓰야 괴담후지 TV하라다 류지칸노 미호
2008년일본 사극 서스펜스 극장·요쓰야 괴담의 진실니혼 TV가네코 노보루스도 아쓰코
1976년새벽의 형사 제78화 "현대・요츠야 괴담"
1983년신・마츠다이라 우콘 제19화 "괴담 흐느끼는 오래된 우물"


7. 3. 기타


:* 산유테이 엔초의 창작 라쿠고 『요쓰야 괴담』에서는 이에몬이 본 유령이 알코올 의존증에 의한 환각이라는 해석을 덧붙였다.
:* 우타가와 도요쿠니의 『도카이도 요쓰야 괴담』 (국립극장 소장)

:* 우타가와 구니사다의 『당삼승 요쓰야 문서』(따라 해 봅니다 요쓰야의 기록) (와세다 대학 연극 박물관 소장)

:*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근세 괴담 서리 내리는 밤의 별』 삽화

:* 오치아이 요시이쿠의 『도카이도 요쓰야 괴담』 (고베 시립 박물관 소장)

:* 깃카와 간호의 『아침 이슬, 저녁 안개』 (후쿠오카 시 미술관 소장)

:* 우타가와 호사이 『안마 타쿠에쓰 오노에 마쓰스케』
:* 히라야마 로코의 『오이와 이에몬』 (1934년)

:* 교고쿠 나쓰히코의 『웃는 이에몬』 (1997년)

제목연도제작사감독이에몬오이와
신석 요쓰야 괴담 (전·후편)1949년쇼치쿠기노시타 게이스케우에하라 겐다나카 기누요
요쓰야 괴담1956년신토호모리 마사키와카야마 토미사부로소마 지에코
요쓰야 괴담1959년다이에이미스미 겐지하세가와 가즈오나카타 야스코
도카이도 요쓰야 괴담1959년신토호나카가와 노부오아마치 시게루와카스기 가쓰코
괴담 오이와의 망령1961년도에이가토 다이와카야마 토미사부로후지시로 요시코
요쓰야 괴담1965년도쿄 영화도요다 시로나카다이 타쓰야오카다 마리코
요쓰야 괴담 오이와의 망령1969년다이에이모리 이세이사토 게이이나노 가즈코
마성의 여름 요쓰야 괴담에서1981년쇼치쿠니나가와 유키오하기와라 겐이치세키네 게이코
충신장 외전 요쓰야 괴담1994년쇼치쿠후카사쿠 긴지사토 코이치다카오카 사키
웃는 이에몬2004년도호니나가와 유키오
원작: 교고쿠 나쓰히코
가라사와 토시아키고유키


제목연도방송사이에몬오이와
괴기 로망 극장·요쓰야 괴담 전편 후편1969년 (8월 23일 - 30일)NET다무라 다카히로
일본 괴담 극장 요쓰야 괴담 번개의 장·물가의 장1970년 (8월 8일 - 8월 15일)도쿄 12채널다무라 다카히로사가 쿄코
괴담 제1화 「요쓰야 괴담」1972년 (7월 21일)NET아마치 시게루엔야마 리에코
일본 명작 괴담 극장 제3화 「요쓰야 괴담」1979년 (7월 4일)도쿄 12채널이부키 고로야기 타카코
일요 극장 여름 서스펜스 시리즈 「신·요쓰야 괴담」 (전·후편)1987년 (8월 23일·8월 30일)TBS야쿠쇼 코지사카구치 료코
아내 그리고 여자 시리즈·요쓰야 괴담1991년 (7월 29일 - 8월 9일)마이니치 방송이소베 쓰요시요시자와 교코
괴담 백물어·요쓰야 괴담2002년 (8월 13일)후지 TV하라다 류지칸노 미호
일본 사극 서스펜스 극장·요쓰야 괴담의 진실2008년 (4월 16일)니혼 TV가네코 노보루스도 아쓰코


:* 쓰노다 지로의 『공포 신문』 (1973년 - 1976년주간 소년 챔피언』) 「검은 페이지 진설 요쓰야 괴담」
:* 애니메이션판 도카이도·요쓰야 괴담 (1981년, 감독: 사와다 류지·오쓰카 야스오 (스즈키명), 작화 감독: 단나이 쓰카사, 제작: 텔레콤 애니메이션 필름, 내레이션: 이치류사이 테이스이)

:* 히노 히데시 도카이도 요쓰야 괴담 (2000년, 감독: 히라노 히데아키, 그림: 히노 히데시, 목소리: 이에몬 (교모토 마사키), 오이와 (도카와 교코)

:* 괴 〜ayakashi〜 「요쓰야 괴담」 (2006년, 감독: 이마자와 데쓰오, 목소리: 이에몬 (히라타 히로아키), 오이와 (코야마 마미)
:* 『합창을 위한 디스커버·닛폰<제1집>「도카이도 요쓰야 괴담」』 (2011년, 작곡: 지요하라 히데키)

8. 참고 문헌

참조

[1] 웹사이트 TSURUYA NANBOKU IV https://www.kabuki21[...]
[2] 간행물 Realism in Kabuki of the early nineteenth century. A case study http://www.ssla.soc.[...] 2008-10-15
[3] 웹사이트 Yotsuya Kaidan http://www.kabuki21.[...] 2006-07-06
[4] 서적 Traditional Japanese Theater: An Anthology of Plays Columbia University Press
[5] 웹사이트 Yotsuya Kaidan http://www.shejapan.[...] 2006-02-22
[6] 서적 Chaos and Cosmos: Ritual in Early and Medieval Japanese Literature BRILL
[7] 웹사이트 From scrolls to prints to moving pictures: iconographic ghost imagery from pre-modern Japan to the contemporary horror film http://undergraduate[...] 2010-12-04
[8] 서적 Asian Horror Encyclopedia Writers Club Press
[9] 서적 Japanese Science Fiction, Fantasy and Horror Films McFarland
[10] 웹사이트 Yotsuya-Kaidan on Film http://www.weirdwild[...] 2006-07-28
[11] 서적 Japanese Fantasy, Science Fiction and Horror Films McFarland and Co., Inc.
[12] 서적 Japanese Science Fiction, Fantasy and Horror Films McFarland
[13] 웹사이트 Kaidan Hyaku Shosetsu 怪談百物語 https://jdorama.com/[...]
[14] 웹사이트 The Grudge's Ghost Origin Story Explained https://screenrant.c[...] Screen Rant 2019-12-28
[15] 웹사이트 歌舞伎座「九月大歌舞伎」 四谷怪談の決定版 https://www.sankei.c[...] 産経ニュース 2021-09-16
[16] 문서 『新・トンデモ超常現象56の真相』
[17] 서적 お岩 [[Gakken|学研]]
[18] 서적 江戸に就いての話(新装版) 青蛙房
[19] 문서 二代目竹田出雲・三好松洛・並木千柳の合作『仮名手本忠臣蔵』の設定。「東海道四谷怪談 歌舞伎脚本集」 (夕陽亭文庫) など
[20] 웹사이트 陽運寺公式サイト http://www.oiwainari[...]
[21] 문서 『書上』では発狂の後に失踪とあるので墓の建てようがなく、[[三田村鳶魚]]は「供養塔なら不審もないが、墓所なのだからお話にならぬ」と切って捨てている。また、妙行寺は赤坂・四谷と転々としており、お岩の墓も巣鴨から移ってきたが、墓の中には遺骨もなにも入ってなかったといわれている(『新・トンデモ超常現象56の真相』)。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