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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존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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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자(子)는 서주 시대 이후 존귀한 사람을 뜻하는 존칭으로 사용되었으며, 학문적 업적이 큰 사람의 이름 뒤에 붙여 존경을 표했다. 춘추 시대와 전국 시대를 거쳐 전한 시대에 정착되었으며, 공자, 맹자 등 제자백가에게 사용되었다. 한국에서는 고려 시대 안향 이후 유교 보급과 함께 사용되기 시작했으나, 조선 시대 붕당 간의 갈등 속에서 특정 인물을 조롱하는 용도로 변질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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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존칭)

2. 유래와 의미

'자(子)'는 원래 중국 서주 시대 이후 존귀한 사람을 뜻하는 존칭으로, 자작 작위를 받았거나 제후의 자녀에게 붙이던 칭호였다. 이후 학문적으로 큰 업적을 남긴 사람들의 경우, 본명 대신 성 뒤에 '자'를 붙여 존경을 표했다.

2. 1. 제자백가

춘추 시대전국 시대 이후 '자(子)'는 보편적인 존칭으로 쓰이기 시작하여, 전한 시대에는 이미 정착되었다. 초기에는 노자, 공자, 맹자, 장자, 순자제자백가에게 붙여졌다.

공자의 수제자들 중 공문10철로 불리는 10명에게도 특별히 '자'라는 칭호가 붙여졌는데, 그 중 공자가 유독 아낀 안회는 안자라 불렀고, 공자의 제자 중 가장 총애를 받던 증삼에게도 증자라는 칭호가 붙었다.

2. 2. 송나라

송나라 때의 학자인 주돈이(周敦頤) 또는 주염계(周濂溪)에게도 '주자'라는 칭호가 붙여졌다. 그 후대의 재전제자격인 주희(朱憙)를 '주자(朱子)'라 불렀는데, 조선에서는 주희를 학문적으로 더 높게 평가했고 음자가 비슷하여 '주자'라는 단어가 주희를 칭하는 말로 더 많이 통용되었다. 정호정이 형제에게도 '정자(程子)'라는 칭호가 붙여졌고, '2정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3. 한국에서의 사용

고려 중기 안향유교를 보급하면서 '자(子)' 칭호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안향에게 '자' 칭호를 붙이려는 시도는 없었고, 일부에서 성리학을 도입한 공로로 '안자'라고 존칭했을 뿐이다. 조선 시대에는 '자' 칭호를 사용하려는 여러 시도가 있었으나, 당파 간 갈등 등의 문제로 특정 인물에게 정착되지는 못했다.

3. 1. 고려 시대

고려 중기 안향유교를 보급한 이후 사용되었다. 그러나 안향에게 '자'라는 칭호를 붙이려는 시도는 없었고, 일부 극소수는 동방에 성리학을 소개했다 하여 안향을 안자(安子)라고 존칭하기도 했다.

3. 2. 조선 시대

고려 중기 안향유교를 보급한 이후 한국에서 '자' 칭호가 사용되었다. 그러나 안향에게 '자'를 붙이려는 시도는 없었고, 일부 극소수는 동방에 성리학을 소개했다 하여 안향을 '안자'라고 존칭하기도 했다. 김종직에게 '자'를 붙이려 했지만 훈구세력의 반대와 사림 내부의 비판 여론으로 무산되었다.

조선 중기, 퇴계 이황에게 남인북인 일부에서 '이자(李子)' 또는 '이부자(李夫子)'라는 칭호를 사용했지만, 서인은 인정하지 않았다. 서인은 율곡 이이에게 '이자(李子)' 또는 '이부자(李夫子)'라는 칭호를 붙이려 했으나, 남인의 반대와 이이불교 승려 경력 문제로 통용되지 못했다. 이이가 서모와 싸우고 홧김에 가출하여 불교 승려가 되었다는 낭설이 퍼지면서, 이이를 성인으로 추대하려는 시도는 실패했다.

조선 후기, 노론소론김장생을 '김부자', '김노자', 김집을 '김자', '김부자' 등으로 존칭했지만, 남인북인 계열에서는 '金老者'(김노자), '金者'(김자) 등으로 조롱했다. 숙종 말기 이후, 집권 노론송시열을 '송자'로 존칭했지만, 남인, 북인, 소론은 '宋者'(송자)로 조롱하며 반발했다. 영남 일부 지역에서는 강아지에게 '宋者'라고 부르는 식으로 극단적으로 반발하였다.

4. 풍자적 용법

중국어는 존칭의 의미를 담고 있지만, 者중국어는 상대를 격하시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붕당 간의 갈등 속에서 상대 당의 인물을 者중국어로 부르며 조롱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예송 논쟁과 문묘 종사 사태 이후 더욱 심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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